로그인시후는 손주도가 서울에서 보통 사람을 훨씬 뛰어넘는 영향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가 나서서 가교 역할을 해 준다면, 릴리가 말한 일은 반드시 성사될 터였다.게다가 릴리의 방법은 현실성도 매우 높았다. 공식적으로 국가가 보증에 나서고 Samson 그룹에 충분한 비중을 둔다면, 한국 내에서 Samson 그룹의 안전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았다.오시연에게 열 배의 배짱이 있다 해도, 공개적으로 한 국가와 맞서는 일은 감히 하지 못할 것이다.설령 400년을 살았다 해도, 정말로 삶이 지겨워진 게 아니라면 말이다.하지만 시후가 지금까지 파악한 상황으로 보아, 사람은 오래 살수록 목숨을 더 아끼고, 오래 살수록 죽음을 더 두려워한다.오시연은 400년을 살아온 만큼, 분명 죽음을 극도로 두려워하고 있을 터였다.그렇지 않았다면 지리산에서 그토록 초조하게 도망쳐 나올 리가 없었다.릴리는 시후가 이 제안에 이견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곧바로 손주도에게 전화를 걸어 상황을 설명했다.손주도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아무런 망설임 없이 바로 승낙했고, 동시에 즉시 한국 쪽과의 소통에 착수했다.외자 유치는 한국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시후는 Samson 그룹의 한국 재투자가 모든 면에서 전례 없는 수준에 이르기를 바라고 있었다.손주도 역시 자신의 인맥을 총동원해 상부에 보고하고, 이 사안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기 시작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손주도는 흥미로운 소식을 하나 받아 들었고, 곧바로 그 내용을 릴리에게 전했다.릴리는 흥분한 목소리로 시후에게 말했다.“선비님, 손 씨 쪽에서 이미 정리가 됐어요. Samson 그룹이 국내 투자 의사가 확실하기만 하면, 정부에서 최고 수준의 외국인 투자자 대우를 해 주고, 직접 보증에도 나서겠대요. 언론 자원도 총동원해서 대대적으로 장기간 밀착 보도해 주고, Samson 그룹 사람들과 투자 사업의 안전 역시 전면적으로 보장해 준다고 해요. 만약 Samson 그룹이 원한다면, 손 씨와
시후는 전화를 걸어 유가휘에게 오늘 밤 9시에 개인 전용기를 준비해 이중열을 서울로 보내 달라고 지시했고, 동시에 차량 행렬을 준비해 이중열의 자택에서 공항까지 직접 이동시키라고 요청했다.유가휘는 속으로는 못마땅했지만, 감히 반박할 생각은 전혀 하지 못한 채 억지 미소를 지으며 모두 알겠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었다.통화를 마친 뒤, 시후는 릴리와 함께 은충환에게 인사를 드리고 자리를 떠났다.돌아가는 길, 릴리가 시후에게 물었다.“선비님, 오늘 밤 바로 뉴욕으로 가신다면 서울에는 몇 시간 정도밖에 머무르지 못하실 텐데, 일정이 조금 촉박하지 않으신가요?”시후는 고개를 저었다.“서울에 가서 처리할 일은 많지 않아. 주된 목적은 외가 식구들을 한 번 만나 요 며칠 있었던 일을 대략 전하고, 혹시 도움이 될 만한 단서를 떠올릴 수 있는지 확인하는 거니까. 그리고 장인어른, 장모님께 인사만 드리면 바로 출발해도 되거든.”릴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부드럽게 말했다.“말씀을 듣고 보니, 선비님의 아내분도 마침 미국에 계시지요.”“응.” 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카운트 에버윈이 오기 전에, 페이셔스 그룹의 배유현 회장에게 부탁해 미국에서 도움을 받도록 했으니까. 지금은 뉴욕에 있지.”잠시 말을 멈춘 뒤, 시후는 덧붙였다.“다만 이번에 뉴욕에 가는 건, 아직은 아내에게 알릴 생각이 없어.”릴리가 의아해하며 물었다.“왜 알리지 않으시려는 건가요? 부부가 재회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텐데요.”시후가 담담하게 답했다.“이번 미국행의 목적은 피터 주의 행적을 확인하는 것뿐 아니라, 부모님이 『구현경서』를 손에 넣게 된 경로를 다시 정리해 보는 데 있어. 폴른 오더가 이 사실을 알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는 불분명해. 이런 상황에서의 미국행은 다소 민감하고 위험할 수 있으니까, 불필요한 변수를 만들고 싶지 않아.”릴리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지금 상황을 보면 뉴욕에서 벌어지는 여러가지 일들이 워
시후는 카카오톡으로 사진을 이중열에게 보내고, 음성 메시지를 하나 덧붙였다.“삼촌, 번거로우시겠지만 이것 좀 봐주세요. 제 아버지 옆에 있는 이 사람, 혹시 아시는 분인가요?”이중열은 곧바로 음성 메시지로 답장을 보내왔다.“도련님, 사진 속 이 사람은 예전에 본 적이 있습니다. 영어 이름은 피터, 피터 주였습니다. 한국식 이름은 주진운이죠. 아주 잘 아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한인교포 출신 골동품 상인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도련님 아버님과는 상당히 가까운 사이였습니다.”시후는 이중열이 그를 안다는 말을 하자마자 바로 전화를 걸었고 전화가 연결되자 곧장 물었다.“삼촌, 주진운에 대해 조금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습니까?”이중열이 말했다.“주진운의 집안은 오래전부터 해외에서 골동품 사업을 해왔습니다. 주요 무대는 유럽과 미국이었고, 특히 미국, 영국, 프랑스 쪽에서 활동이 많았습니다. 업계에서는 어느 정도 이름이 있는 집안이었습니다.”그러고는 덧붙였다.“도련님이 보내주신 사진 속 가게가 바로 주진운 집안이 뉴욕에서 처음 연 골동품점입니다. 집안의 첫 매장이라 규모도 작고, 겉보기엔 그다지 눈에 띄지 않는 곳이었죠.”시후가 다시 물었다.“삼촌께서 마지막으로 주진운을 보신 게 언제입니까?”이중열이 잠시 생각한 뒤 답했다.“꽤 오래전입니다. 제가 한인타운에서 식당을 운영하던 시절에 몇 번 들른 적은 있었는데, 그 이후로는 뉴욕에 머물지 않았던 것 같고, 자연스럽게 연락도 끊겼습니다.”그러다 이중열이 호기심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도련님, 혹시 주진운을 직접 찾으실 생각이십니까?”시후는 담담하게 말했다.“뉴욕에 한 번 가볼 생각입니다. 우선 그 골동품점부터 확인해 보고, 가능하다면 주진운을 직접 만나고 싶어서요.”이중열은 망설임 없이 말했다.“그렇다면 제가 동행하겠습니다. 뉴욕 지리에 익숙하기도 하고, 주진운과도 몇 차례 얼굴을 튼 적이 있으니까요.”시후가 물었다.“시간은 괜찮으십니까?”
말을 마친 뒤, 은충환은 시후에게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시후야, 그런데 저 릴리라는 아가씨는 왜 너를 ‘선비님’이라고 부르느냐?”시후는 잠시 생각하다가 웃으며 말했다.“릴리는 전통 문화를 굉장히 좋아해서요. 잠시 후에 스스로를 ‘소녀’라고 부르더라도 너무 놀라지 마세요.”은충환은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나이 먹은 사람으로서는 요즘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걸 도통 이해하기가 어렵구나.”그러고는 다시 목소리를 낮춰 시후에게 말했다.“그런데 그 릴리라는 아가씨는 정말로 대갓집 규수 같은 품위가 있더구나. 나이가 조금만 더 있었으면, 너와도 꽤 잘 어울렸을 텐데.”“네, 나이가 조금 어리긴 하죠……”시후는 웃으며 맞장구를 쳤지만, 속으로는 이렇게 생각했다.‘할아버지가 릴리가 이미 300년도 넘게 살았다는 걸 아신다면, 기절하실지도 모르겠군.’그 후 두 사람은 함께 식당으로 향했다.릴리는 사 온 아침 식사를 하나씩 꺼내 놓고 있었고, 시후는 들고 있던 앨범을 은충환 앞에 내밀며 물었다.“할아버지, 이 앨범 보신 적 있으세요?”“앨범?”은충환은 눈살을 찌푸렸다.“이게 어디서 난 앨범이냐?”“부모님의 예전 서재에서 발견했어요.”“그럴 리가……”은충환은 중얼거렸다.“시후 네 부모의 서재는 내가 몇 번이나 정리했는데, 안에 있는 책들도 다 기억하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앨범은 본 적이 없어!”시후는 다시 앨범을 가리키며 물었다.“정말 아무런 기억도 없으세요?”은충환은 앨범을 받아 들고 살펴본 뒤 고개를 저었다.“처음 본다. 그리고 확실히 말할 수 있는데, 이건 예전에 너희 부모 서재에 있던 물건이 아니다.”시후의 마음속에 의문이 피어올랐다.부모가 세상을 떠난 지 20여 년, 은충환은 늘 옛 별장의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게 했고, 집 안의 물건들 역시 훤히 알고 있을 터였다.그런 할아버지가 이 앨범에 대해서 전혀 모른다면, 이 앨범은 누군가가 나중에 가져다 둔 것이 분명했다.시후의
깊은 밤, 한 척의 화물선이 부산항을 떠나 남태평양에 위치한 타히티를 향해 항해를 시작했다.박상철은 선미에 서서, 밤빛 속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부산항을 바라보며 복잡한 심경에 휩싸였다.박상철은 시후의 아버지 은서준의 최측근이었지만, 20년 전 은서준은 그에게 두 가지 임무를 맡겼다. 하나는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긴 뒤에도 반드시 시후의 안전을 지키라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모든 일을 안예선의 지시에 따르라는 것이었다.그 이후 수십 년 동안 박상철은 겉으로는 LCS 그룹에서 집사로 지내왔지만, 실제로는 모든 행동이 안예선의 지시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다.지난 10여 년 동안은 은충환조차도 자신의 손자 시후가 살아 있는지, 죽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이는 은서준이 사고를 당하기 전, 박상철에게 시후의 소식을 언제 은충환에게 알릴지에 대해 아무런 지시도 남기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모든 흐름은 안예선이 뒤에서 조율하고 있었다.안예선이 시기가 무르익었다고 판단한 뒤에야, 박상철은 은충환에게 시후의 생존 사실을 털어놓았다. 은충환은 아들과 며느리에게 늘 죄책감을 느끼고 있었고, 손자 역시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났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팠다. 그 보상으로 그는 엠그란드 그룹을 인수했고, 박상철에게 100억 원 한도의 블랙카드를 건네 시후에게 전달하게 했으며, 그 뒤로 일련의 사건들이 이어지게 된 것이다.갑작스럽게 한국을 떠나게 된 것에 대해 박상철은 아쉬움이 컸지만, 지금 이 시점에서는 자신이 잠시 자리를 비우는 것이 최선이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다만 한 가지 마음에 걸리는 것은, 시후에게 아무 말없이 떠나온 것이었다.한편, 그 시각 시후는 LCS 그룹 옛 별장의 객실에 홀로 누워 쉽게 잠들지 못하고 있었다.박상철의 갑작스러운 이탈은, 시후에게 하나의 분명한 사실을 깨닫게 했다.박상철은 은충환을 위해 일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아버지 은서준만을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만약 박상철이 아버지를 위해 일하고 있었다면, 오늘
“그럴 수도 있겠어.”시후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집사님이 아무 말없이 사라진 걸 보니, 앞으로 다시는 쉽게 뵙기 어려울 것 같은 예감이 드네. 집사님은 영리한 분이라, 잠시 피할 수는 있어도 영원히 숨을 수는 없다는 걸 잘 아실 거야. 그렇다면 오늘 밤 휴대전화를 꺼 두고, 내일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LCS 그룹으로 돌아오는 일은 없겠지. 애초에 이번에 떠난 이상, 다시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겠다고 마음먹지 않는 한 말이야.”릴리는 적잖이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이제 와서 박상철 집사님께서 선비님께 숨길 만한 일이 또 있을까요? 그분은 오랜 세월 내내 선비님의 아버지께서 맡기신 일을 수행해 오신 분이잖아요. 그런데 왜 이 시점에서 갑자기 말없이 떠난 걸까요? 혹시 선비님께서 사진을 보신 뒤, 자신을 찾아 물을 거라고 미리 알았던 건 아닐까요?”시후는 고개를 저었다.“나도 정확히는 모르겠어. 다만 내가 아는 한, 집사님은 LCS 그룹에 대해 절대적인 충성을 바쳐 온 분이야. 이번 잠적에도 분명 그 나름의 이유가 있겠지. 어쩌면 이것조차도, 아버지께서 오래전에 짜 두신 배치의 일부일 수도 있어.”릴리는 조심스럽게 의견을 덧붙였다.“선비님께서는 영기를 다루는 데 능하시고, 사람의 속마음을 끌어내는 방법도 여러 가지를 알고 계십니다. 이 시점에 집사님이 떠난 건, 선비님께서 영기를 써서라도 그간의 내막을 모두 밝혀내실까 염려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어요.”시후는 낮게 탄식했다.“그만두자. 집사님이 그렇게 행동했다면, 분명 그만한 사정과 고충이 있을 거야. 나는 집사님이 LCS 그룹에 해가 되는 일을 할 분이 아니라고 믿어. 그러니 지금 말하지 않겠다면, 그 의사를 존중해야겠지. 언젠가 스스로 말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고.”그는 말을 마친 뒤, 다시 앨범 앞으로 돌아가 사진을 넘기기 시작했다.뒤쪽 사진들에는 시후의 부모가 자주 등장했다.두 사람은 등산과 탐험 장비를 갖추고 함께 여러 곳을 찾았고, 맹장명이 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