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차도진의 대표이사 사임은 수리됐지만, 사내이사 임기는 남아 있었다.
차성혁은 그것도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정기 이사회 하루 전, ‘중대한 경영 판단 실패 및 회사기밀 외부 유출’을 이유로 도진의 이사 해임안이 공시됐다. 주주총회에서 통과되면 그는 이사회 의석과 남은 공식 권한도 잃게 된다.
강태욱이 개인 휴대전화로 연락했다.
“우호 지분 세 곳이 돌아섰습니다.”
“이유는?”
“신용등급 하락과 파혼 손실을 들고 있습니다. 차성혁 전무가 금융사 만기연장과 해임안을 묶은 것 같습니다.”
도진은 숫자를 확인했다.
해임을 막으려면 시우 관련 문서 공개와 수사를 중단하겠다는 합의를 해야 했다. 성혁 측에서 보낸 비공식 제안은 여전히 유효했다.
“거절합니다.”
“한 번 더 생각해 보셔야 합니다.”
“생각했습니다.”
“해임되면 내부자료 접근권도
최종 좌석 미팅에 배정숙이 가져온 도면은 소민이 고른 홀의 것이 아니었다. 450석짜리 호텔 도면 위로 붉은 표시가 가득했다.“신랑 쪽 380석, 신부 쪽 70석. 이렇게 하면 딱 맞네.”지수가 서연을 봤다. 서연은 호텔 도면을 치우지 않고 옆에 원래 예약한 하우스홀 도면을 펼쳤다.“어머님, 저희가 준비 중인 곳은 여기예요. 200명 기준이고요.”“그러니까 여기로 옮기라는 거예요. 내가 아는 사람이 빈 시간 잡아준대요.”배정숙은 신부 측으로 표시한 구역을 펜으로 두드렸다.“지방 친척 몇 명만 앉히면 되잖아. 직장 친구들은 식당으로 먼저 보내면 되고.”소민이 도면에서 고개를 들었다.“제 친구들은 왜 식을 못 봐요?”“자리 없으니까. 우리 상가 손님들이 와서 서 있을 수는 없잖아.”“그 친구들도 저 보러 오는 거예요.”“밥을 안 준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래?”소민은 준비해온 명단을 펼쳤다. 회사 동료들 옆에는 함께 일한 기간이 아니라 이동 수단과 연락처가 적혀 있었다. 늦게 오는 사람은 뒤쪽에 앉혀달라는 메모도 있었다.“멀리서 오는 친구한테는 먼저 와서 같이 사진 찍자고 했어요. 그런데 식당으로 내려가서 기다리라고요?”배정숙이 대답하려는데 소민이 민재를 봤다.“우리 양쪽 100명씩 하기로 했잖아요. 민재 씨가 직접 말했죠?”민재는 명단을 집어 들었다 내려놨다.“그랬지. 그런데 아버지 쪽 손님들이 생각보다 많아서. 부모님이 이미 말씀하신 분들도 있고.”“내 친구들한테는 아직 청첩장
배정숙이 고른 드레스는 목선까지 비즈가 촘촘했다. 옷걸이를 옮기는 직원도 두 손으로 무게를 받쳤다.“대여료가 1,800만 원이라면서요? 이 정도는 입어야지.”배정숙은 소민을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소민은 옆에 걸린 실크 드레스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저는 저것도 입어보고 싶어요.”“밋밋한 걸 왜 입어? 조명 받으면 비즈가 훨씬 좋아.”민재가 소민에게 몸을 기울였다.“엄마가 골라주신 것도 한 번 입어보자. 입어보고 별로면 말하면 되잖아.”소민은 말없이 피팅룸으로 들어갔다. 서연은 직원에게 두 벌 모두 같은 조명과 각도에서 사진을 남겨달라고 했다. 직원은 카메라 높이와 신부가 설 위치를 맞춰뒀다.커튼이 열리자 배정숙이 곧바로 박수를 쳤다.“거봐. 훨씬 귀티 나잖아.”소민은 거울 앞에서 손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라 치맛자락만 만졌다. 가슴 위로 올라온 장식이 고개를 숙일 때마다 턱 아래에 닿았다. 서연이 한 걸음 다가갔다.“숨쉬기는 어때요? 팔을 조금 들어보실래요?”“여기가 당겨요.”소민이 어깨를 짚었다. 피팅 담당자가 뒤쪽 여밈을 조정했지만 신부의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행진할 때만 참으면 되지. 예쁜 옷은 원래 불편한 거야.”배정숙이 말하자 서연은 의자를 가져왔다.“인사하고 사진도 찍으셔야 해요. 앉았을 때도 한 번 볼게요.”소민은 치마를 모아 겨우 앉았다. 목 장식에 눌린 피부를 손끝으로 문질렀다. 민재가 그제야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아파?”“조금요.”
“예산은 내가 더 내면 돼요. 그런데 며느릿감이 싫다네요.”배정숙은 서연이 앉기도 전에 말을 꺼냈다. 테이블 위에 놓인 소민의 예산 노트는 이미 신랑 민재 쪽으로 밀려나 있었다.“하객 500명은 받아야죠. 민재 아버지 아는 분이 얼마나 많은데, 풀밭에서 몇 명 앉혀놓고 끝내면 누가 책임져요?”“어머니, 풀밭이 아니라 실내도 있는 하우스홀이에요.”“그게 그거지. 호텔 놔두고 왜 그런 데를 가?”소민은 끝까지 설명하지 못하고 손을 내려놨다. 민재가 어머니에게 찻잔을 권했다.“엄마, 일단 말씀 들어봐요. 한 대표님 오셨잖아요.”소민에게는 조금만 참으라는 눈짓을 보냈다. 서연은 노트를 자기 앞으로 당기지 않고 소민 앞에 다시 놓아줬다.“두 분이 정한 예산은 2,500만 원 맞으세요?”“네. 부모님께 손 벌리지 않고 하려고요.”소민이 대답하자 배정숙이 가방에서 카드를 꺼냈다.“얼마든지 더 낸다니까요. 1억이든 2억이든, 제대로 된 데로 잡아줘요. 우리 쪽 손님만 400명은 올 거예요.”민재가 말없이 카드를 봤다. 소민은 무릎 위에서 손가락을 접었다 폈다. 서연은 카드 대신 노트 첫 장을 폈다.대관과 식사, 드레스, 촬영. 각 항목 옆에는 두 사람이 문의한 날짜가 적혀 있었다. 지운 숫자 아래로 다른 숫자를 덧쓴 자국도 보였다.“이 식사 비용은 몇 분 기준이에요?”“200명이요. 저희가 각자 100명씩 부르기로 했어요.”“왜 네가 인원을 정해?”배정숙의 목소리가 높아졌다. 서연이 그녀 쪽으로 몸을 돌렸다.
“아빠, 이거 타면 안 돼.”“안 태워. 타이머 맞췄어.”“아까 소시지는 터졌잖아.”“그건 속이 너무 꽉 차서.”“또 핑계.”서연은 채소 바구니를 들고 펜션 테라스로 나오다 웃었다. 도진은 시우의 잔소리를 들으며 집게를 들고 있었다. 석쇠 위에서 새우 껍질이 빨갛게 익었다.금요일 업무를 마치고 출발하느라 도착했을 때는 바다가 어두워져 있었다. 시우는 차에서 졸다가 짐을 내릴 때 다시 눈을 떴다. 내일 공룡을 보러 가기 전까지 잠들지 않겠다고 고집을 부렸지만, 식탁에 앉고부터는 하품을 숨기지 못했다.“숯을 좀 옆으로 빼봐요. 불이 너무 세잖아요.”“감독이 둘이네.”“말 안 들으면 집게 압수예요.”도진이 집게를 든 손을 가슴 쪽으로 당겼다. 시우가 까르르 웃다가 새우 한 마리를 손가락으로 골랐다. 서연은 뜨거운 껍질을 벗겨 식힌 뒤 아이 접시에 놓았다.“아빠 것도 해줘.”“아빠는 손이 있잖아.”“아빠 손은 집게 잡았잖아.”도진이 기다렸다는 듯 서연을 봤다. 서연은 어이가 없어 웃으며 새우를 하나 더 깠다. 접시에 놓아주려 하자 그가 몸을 숙여 받아먹었다.“애 앞에서 뭐 해요.”“애가 하라고 했잖아.”시우는 이미 다른 새우를 고르는 중이었다. 서연은 도진의 소매에 붙은 소금 한 알을 떼어냈다. 반지 두 개가 잠깐 부딪쳤다.도진이 마지막 조개를 접시에 옮기다가 서연 앞에 놓인 짐 목록을 봤다. 수영복도 바닷놀이 장난감도 없었다. 아이가 고른 공룡 몇 마리와 책, 갈아
금요일 오전, 서연은 여행 가방 대신 취소 정산표를 다시 펼쳤다. 지수가 빨간 표시를 해둔 것은 연주 예식의 대관 시간이었다.“12월 마지막 토요일 저녁이요. 취소 접수되고 다른 업체가 바로 다시 예약했대요.”“다시 팔린 것 자체가 문제는 아니야. 우리한테 청구한 손실 내역부터 비교하자.”호텔은 예약을 비워둔 손실을 계산해 대관료의 80%를 요구해둔 상태였다. 아직 최종 합의가 끝나지 않았는데 같은 시간에 새 계약이 잡혔다면 정산 근거를 다시 물어볼 필요가 있었다.서연은 원래 계약의 취소 조항과 호텔에서 보낸 계산표를 나란히 놓았다.“이 날짜로 다시 계산해달라고 해줘. 이미 지급한 금액이 있으면 그것도 구분하고.”지수가 다른 서류 3장을 꺼냈다. 꽃과 무대, 조명 협력업체가 보내온 준비 비용이었다. 호텔 정산표에는 반영돼 있었지만 업체들은 아직 돈을 받지 못했다고 했다.“우리한테는 지급이 필요한 비용이라고 적어 보냈는데, 업체에는 행사가 취소돼서 못 준다고 했대요.”“그럼 누가 청구하고 누가 받아서 지급하는 건지 확인해야겠네.”서연은 금액보다 발주자 이름부터 살폈다. 같은 비용이 두 번 적힌 것도 있었고, 어느 계약에서 나온 것인지 알 수 없는 견적도 섞여 있었다.“정 대표님 건은 샘플 비용과 본식 꽃 예약금을 나눠달라고 해줘. 실제로 지출된 것만 확인할 수 있게.”“다른 업체들 것도 다시 받을게요.”업체 담당자가 보내온 문자에는 날짜가 서로 다르게 적혀 있었다. 한쪽은 취소 통지를 받은 날, 다른 쪽은 이미 재료를 주문한 날이었다. 서연은 빠른 쪽에 동그라미를 쳤다.“주문이 먼저 들어간 건 취소했다고 비용이 없어지지는 않아
다음 날 오후, 지수는 예식 취소 정산표를 들고 왔다. 대원물산 측이 루미에르에 요구했던 50억 원과 실제 준비 비용이 서로 다른 칸에 적혀 있었다.“기획 진행비와 확인된 실비는 지급하겠다고 했어요. 우리 쪽 사과문 요구는 문구 조율 중이고요.”“배상 청구를 철회한다는 내용도 서면으로 받아줘. 돈이 들어왔다고 다른 문제까지 끝난 건 아니니까.”서연은 비용 항목을 하나씩 확인했다. 드레스 숍의 별도 피팅 시간, 샘플 꽃과 운송비, 외부 스태프 예약금이 들어 있었다. 아직 발주하지 않은 본식 자재는 없었다.“이 조명 장비는 견적만 받았지?”“네. 설치도 안 했고요.”“그럼 실비 청구에서는 빼자.”지수가 해당 항목에 줄을 긋고 합계를 다시 냈다. 이미 일한 직원과 외부 스태프의 인건비가 빠진 곳도 찾아 채웠다.“대표님 것만 자꾸 빼지 마세요. 야간 상담도 실제 업무였어요.”“알았어. 그건 넣어.”지수는 그제야 계산기를 내려놨다.연주가 찾아온 것은 정산표를 다시 출력할 무렵이었다. 정장 대신 니트와 편한 바지를 입었지만, 양손으로 쇼핑백을 잡고 있는 모습은 여전히 조심스러웠다.“집에서 제 짐을 일부 가져왔어요. 회사에도 사직 의사를 전했고요. 처리해야 할 게 생각보다 많네요.”“쉬는 건 좀 쉬셨어요?”“잠은 잤어요. 자고 나니까 제가 무슨 일을 했는지 실감이 나더라고요.”연주가 작은 상자를 내밀었다. 안에는 쪽빛 스카프가 2장 들어 있었다. 서연은 손을 씻고 돌아와 천을 펼쳤다. 가장자리의 색이 한쪽만 조금 짙었다.“이 무늬가 다 다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