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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찾는 기나긴 길
나를 찾는 기나긴 길
Autor: 별

제1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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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아침.

유성준의 어릴 적 친구 구나린은 누추한 모습으로 아침을 맞은 두 사람의 모습을 마주했다. 구나린은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 눈시울이 붉어진 채 밖으로 뛰쳐나갔다가 그만 통제를 잃은 트럭과 부딪혀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다.

그 후로 신연희는 유성준이 꼭 다른 사람으로 변한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침착하게 구나린의 장례식을 치르고 난 유성준은 무정하게 신연희와 결혼하고 매일 밤 무정하게 그녀와 잠자리를 가졌다. 그러고는 또 무정하게 지금은 아이를 원하지 않는다며 몇 번이고 그녀를 데리고 중절 수술을 받으러 갔다.

18번째 중절 수술 중 과다 출혈로 수술대에서 숨이 끊어져 가고 있던 신연희는 의사와 유성준의 통화를 들었다.

그의 목소리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무정했다.

“죽었습니까? 죽고 나면 그때 연락하세요.”

그제야 신연희는 비로소 깨달았다. 그가 자신을 증오한다는 걸.

유성준은 신연희가 그의 해독제가 되어 준 걸 증오하고 의도치 않게 구나린을 죽게 한 걸 증오한다.

수술대에서 숨을 거두는 그 순간, 신연희는 뼈저리게 후회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신연희는 본인이 회귀했음을 깨달았다. 그것도 유성준이 최음제에 취했던 바로 그날로...

평소에는 고고하고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모습의 그가 지금은 와이셔츠 단추 몇 개가 풀려서는 눈가가 붉어진 상태로 침대에 누워있다. 그 모습은 마치 신전에서 끌어져 내린 타락한 신과 같아서 그런 그를 보는 신연희의 마음은 복잡했다.

지난 생에서 신연희는 이런 모습의 유성준에게 넘어가 욕망에 불타올랐다. 그가 아빠의 친구라는 사실도, 그와 띠동갑이라는 사실도 무시하고 모든 걸 뒷전에 둔 채 무작정 그의 해독제가 되어 주었다.

하지만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유성준과 구나린은 이미 오래전부터 서로를 좋아하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서로의 마음을 전할 타이밍이 없었을 뿐. 그런데 그 틈을 신연희가 비집고 끼어들었던 것이다.

운명을 결정짓는 이날로 다시 돌아온 건 하늘이 신연희를 불쌍히 여겨서일까?

회귀한 신연희가 원하는 건 단 하나, 유성준과 구나린을 이어주는 것이었다.

신연희는 망설임 없이 빠르게 가방에서 휴대폰을 꺼내 구나린의 전화번호를 입력했다.

10분 뒤 구나린이 급히 달려왔다.

신연희는 구나린의 손을 잡고 말했다.

“서로 좋아하는 거 알아요. 다만 마음을 전할 기회가 없었던 거예요. 지금 삼촌이 최음제에 취해서 언니가 필요해요. 지금이 마음을 전할 가장 좋은 타이밍이에요.”

구나린은 연락을 받을 때부터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지금 신연희의 말을 듣자니 함정은 아닐까 싶어 더욱 심란해졌다.

“신연희, 너 무슨 수작이야? 너 성준이 좋아하잖아. 최음제에 취해 있는 틈을 노리지 않고 오히려 우릴 이어주겠다고 나한테 연락한다고?”

이 말을 들은 신연희는 씁쓸하게 웃었다.

자신이 유성준을 짝사랑한다는 소문이 온 세상에 퍼졌을 때니까.

과거 신연희는 노력만 한다면 신분과 나이의 차이를 넘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 보니 유성준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걸 내어준다고 해도 남은 평생은 고통만 남을 뿐이었다.

지난 생에 이미 너무 잘못된 길을 걸었다.

신연희는 고개를 내저었다.

“안 좋아할 거예요. 앞으로 다시는 안 좋아할 거예요.”

신연희가 말을 끝맺자마자 방 안에서는 고통을 참는 듯한 신음이 들렸다.

“이미 한계예요. 지금 들어가지 않으면 늦어요.”

구나린은 신연희의 시선을 따라 방안을 바라보았다. 구나린의 눈빛에 머뭇거림이 섞여 있었다.

그러다가 구나린은 설득당한 듯 이를 악물었다.

“그러는 넌 여기 서서 뭐 해? 잠자리하는 소리 다 들으려고?”

신연희는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했다. 이내 몸을 비켜 구나린에게 길을 비켜주었다.

구나린이 유성준의 얼굴을 어루만지던 그때 신연희는 망설임 없이 문을 닫아주었다.

곧 남자의 신음과 여자의 가쁜 숨소리가 두툼한 문 너머로 흘러나와 신연희의 귓가에 꽂혔다.

연달아 들려오는 신음은 무거운 망치처럼 신연희의 마음을 피투성이가 되도록 산산이 조각냈다.

신연희는 힘이 빠져 그대로 바닥에 미끄러져 주저앉았다.

눈물이 통제할 수 없이 비집고 나와 눈가로 흘러내렸지만 신연희는 이상하게도 해방감을 느꼈다.

드디어 지난 생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신연희는 서둘러 얼굴을 타고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고 휘청이며 자신의 방으로 달려갔다.

그날 밤 옆방의 두 사람은 뜨거운 밤을 보냈지만 신연희는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

날이 밝을 무렵 신연희의 아버지, 신 회장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희야, 해외로 와서 아빠랑 같이 지낼래?”

몇 년 전, 신연 그룹이 해외 시장 진출을 본격화하면서 신 회장은 혼자 해외로 나가게 되었다. 딸을 돌볼 수 없게 되자, 그는 친구인 유성준에게 딸을 부탁했다.

그렇게 한번 돌봐준다는 게 몇 년이 되었다.

그 후, 신연희는 유성준를 좋아하게 되었다. 신연 그룹의 해외 사업이 안정되어 신 회장이 몇 번이고 신연희에게 같이 살자고 말했지만 그녀는 번번이 거절했다.

이제 유성준과 구나린이 서로의 마음을 확인했으니 신연희도 멀리 떠나 자신의 삶을 살아야 했다.

이러한 생각이 들자 신연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

“아빠, 저 해외로 갈래요.”

딸이 수락할 걸 전혀 예상치 못했는지 전화 건너편 신 회장의 목소리는 유독 흥분된 듯싶었다.

“잘 생각했어. 내가 진작 말했지? 유성준은 너랑 안 어울린다고. 집착에 얽매이면 좋은 결과가 있을 수 없단다. 연애를 하려는 생각은 옳지만 좋은 사람을 골라야 해. 아빠가 네 약혼남으로 좋은 녀석 봐뒀다. 해외로 오면 이 녀석이랑도 종종 만나고 다른 남자들도 만나 봐.”

신 회장의 말에 안 그래도 펑펑 울어서 발갛게 부어오른 신연희의 두 눈에 또다시 눈물이 고였다.

지난 생에서도 신 회장은 신연희를 타일렀지만 신연희는 그 말을 듣지 않고 제 삶을 망가뜨렸다.

신연희는 눈물이 흘러내지 않도록 주먹을 꽉 쥐고는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아빠 뜻대로 할게요. 이따가 이민 수속 밟으러 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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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22장

    오랜 영양실조와 고통으로 인해 한때 혈색이 좋았던 구나린은 앙상하게 말라 있었다.유성준의 어머니에게 고작 뺨 한 대만 맞았을 뿐인데 구나린은 그 자리에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그런데도 유성준의 어머니는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했다.자기 아들이 이 여자 때문에 그 지경이 된 걸 생각하자 유성준의 어머니는 더는 참지 못하고 구나린에게 달려들어 멱살을 잡고 뺨을 내려쳤다.이상한 걸 감지하고 교도관이 달려들어 유성준의 어머니를 말리지 않았다면 구나린은 이 자리에서 죽어버릴지도 모를 일이었다.유성준의 어머니는 두 교도관에 의해 단단히 붙잡혀 있으면서도 구나린을 향해 욕설을 퍼붓는 걸 멈추지 않았다.“망할 것, 차라리 네가 차에 치여야 했어!”“왜 네가 아니라 우리 아들이 식물인간이 된 건데!”...욕설을 들으며 구나린은 그저 우습다고 생각했다.유성준이 자신을 사랑할 때 유성준의 어머니는 자신을 친딸처럼 아끼고 예뻐하며 매일 딸이라고 부르기까지 했다.그런데 지금 유성준은 저를 끔찍이 미워하고 유성준 어머니의 태도도 완전히 뒤바뀌었다.‘망할 것’이라는 말이 구나린을 지칭하는 단어가 되었다.유성준의 어머니가 지쳐 차를 마실 때가 되어서야 구나린은 입을 열었다.“제가 망할 것이라고요? 그러는 어머님 아들은 얼마나 잘난 줄 아세요?”“절 좋아한다면서 신연희 연락이라고만 하면 절 버려두고 신연희한테 갔어요!”“신연희한테 미련이 있으면서 저한테 사랑한다고 하질 않나, 어느 쪽 하나 포기하지 못하는 그 사람이야말로 더 망할 자식 아니겠어요? 잘못한 건 본인이면서 여자 탓만 하는 사람은 차라리 죽는 게 나아요.”“하하, 교통사고로 식물인간 된 것도 싸요. 그런 인간은 평생 깨어나지 말아야 해요.”말을 마친 구나린은 미친 듯이 웃기 시작했다.그런데 구나린은 웃다가 결국 눈물을 흘렸다.분명 자신과 유성준은 한때 가장 사랑하는 사이였다.신연희만 아니었다면, 유성준이 두 여자를 다 놓치려 하지 않았다면 제가 이런 일을 저지를 리도, 이 지경에 이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21장

    과거 신연희가 유성준을 좋아할 때 신연희는 두 사람의 아이에 대해 상상하곤 했다.딸이라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공주님이 될 수 있게 사랑해 줄 거라고 했고 아들이라면 유성준만큼 멋있는 사람으로 키울 거라 했었다.그 말을 하는 신연희의 눈은 반짝거렸었다.심지어 신연희는 미래 아이들의 얼굴을 상상하며 여러 장의 그림으로 그려내기도 했다.그런데 신연희가 그 스케치를 유성준에게 건넸을 때 유성준은 스케치를 찢고 화로 속으로 던져 버렸다.그리고 냉랭하게 신연희에게 말했다. 누구와도 아이를 가질 수 있지만 그게 절대 신연희가 될 순 없다고. 그러니 그런 헛된 꿈은 꾸지 말라고.과거의 생각이 떠오른 유성준의 눈에는 씁쓸함이 비쳤다.예전에는 신연희가 그의 팔을 붙잡고 헛된 꿈을 꾸었는데 이젠 그녀와 아이를 갖고 싶다는 헛된 꿈을 꾸는 사람이 제가 되어버렸다.갑자기 누군가 서재의 문을 두드렸다.“대표님, 차 준비됐습니다.”유성준은 비서의 말을 듣고 서둘러 책상 위의 선물을 들고 나섰다.공항으로 가는 길, 그는 좌석 등받이에 기대어 눈을 감았다. 마음속으로는 신연희와 그녀의 딸을 만났을 때 꺼낼 말을 생각하고 있었다.이때 눈 부신 헤드라이트가 유성준의 차를 향해 비쳤다.급제동 소리와 함께 격렬한 충돌음이 들리더니 뒷좌석의 유성준은 거대한 충격과 함께 튕겨져 천장과 앞좌석에 머리를 박았다.하늘로 튕겨 나간 깨진 유리가 그의 피부를 베었고 피가 흘러나왔다.쾅!화물차에 의해 차가 공중에서 뒤집히더니 땅으로 추락했다.멈출 수 없는 피가 유성준의 몸에서 흘러나왔다.그 순간 유성준은 고통보다 유감이 앞섰다.다시는 신연희와 신연희를 닮은 아이를 볼 수 없게 됐으니까.비명, 구급차 소리, 경찰차의 사이렌 소리가 한데 뒤섞였다.차 안의 유성준은 눈꺼풀이 점점 더 무거워지는 걸 느꼈다. 이윽고 소리는 사라지고 그는 정신을 잃었다.병원 안, 유씨 가문 일가는 수술실 앞에 모여 있었다.각자의 얼굴에는 초조함만이 가득했다.벽에 걸린 시계의 시침은 느릿느릿 한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20장

    유성준은 임원훈의 주먹을 피하지 못하고 그대로 얻어맞아 바닥을 나뒹굴었다.임원훈은 자제력을 잃고 몇 번이고 주먹을 유성준에게 내리꽂았다. 달려온 집사가 말리지 않았다면 유성준은 그 자리에서 맞아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었다.임원훈은 제 손에 난 상처는 신경도 쓰지 않은 채 땅에 널브러져 간신히 숨만 쉬고 있는 남자를 냉랭하게 내려다보았다.“대체 연희가 얼마나 싫으면 이렇게 매번 상처를 주는 거야!”“오늘 연희의 생일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는지 알아? 네 그 잘난 드론 쇼를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볼 거고 그 사람들이 연희를 어떻게 생각할지 알긴 하냐고!”“연희가 세상 사람들한테 손가락질을 받아야 속이 시원하겠어?”“그... 그게 아니라...”유성준은 몸부림치며 바닥에서 일어나려 했지만 입을 여는 순간 피가 먼저 비집고 나왔다.그 순간 임원훈이 유성준의 가슴을 걷어찼다.“입 다물어. 유성준, 잘 들어. 연희만 아니었으면 네가 영국에 발붙이던 그날 내가 너 죽여버렸을 테니까.”임원훈의 발길질에 유성준은 완전히 쓰러져 일어나지 못했다.임원훈은 그 자리에 서서 이를 악물고 말했다.“오늘은 연희의 생일일 뿐만 아니라 곧 엄마가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날이기도 해!”윙윙유성준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믿을 수 없다는 듯 유성준은 눈앞의 남자를 올려다보았다.“너... 너 지금 뭐라고 했어?”무슨 힘인지 유성준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임원훈을 향해 주먹을 휘둘렀다.“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어!”“어떻게 애를 임신시켜! 연희가 얼마나 어린데!”임원훈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데려온 경호원에 의해 유성준이 다시 바닥으로 고꾸라지는 모습을 쳐다보기만 했다.“어떻게 그런 짓을 하냐고? 연희는 날 사랑하고 나도 연희를 사랑하니까! 우리 같이 아이를 키워나갈 거니까!”“그러는 넌 어떻게 몸도 안 좋은 연희를 냉동창고에 가둘 수 있었지? 또 어떻게 죽도록 연희를 때릴 수가 있었냐고!”“신씨 가문에서는 연희를 돌봐달라고 했는데 넌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19장

    이러한 파티장에서의 전례가 있었기 때문에 신연희의 생일 파티를 준비하는 임원훈은 입구마다 많은 보디가드를 배치해 두었다.혹시라도 유성준이 쳐들어올까 봐.그런데 예상외로 유성준은 나타나지 않았다.집사의 보고를 들은 임원훈은 놀라운 기색이었다. 하지만 왠지 모르게 어딘가 불안한 기분이 들었다.그래서 집사에게 사람을 시켜 계속 지키고 있을 것을 요구했다.이번 신연희의 생일 파티는 유난히 성대하게 치러졌다.임원훈은 영국 내의 모든 광고판에 생일 축하 영상을 띄웠을 뿐만 아니라 성 둘레에 불꽃을 가득 배치해 신연희가 촛불을 부는 순간 터지도록 준비했다.게다가 성 전체를 신연희가 좋아하는 각종 꽃과 다이아몬드로 장식했다.하객들이 보내온 생일 선물은 산처럼 쌓여 임원훈이 신연희를 위해 특별 주문한 성 모양의 케이크만큼이나 높았다.생일 파티 절정의 순간, 신연희는 임원훈이 수억 원을 들여 산 ‘트루 러브’ 목걸이를 착용했고 임원훈과 함께 생일 케이크의 촛불을 불었다.촛불이 꺼지는 순간, 성 밖 하늘 가득 불꽃놀이가 시작됐다.그 불꽃은 파티가 끝날 때까지 오래도록 하늘을 수놓았다.하객들이 하나둘씩 자리를 뜨고 신연희와 임원훈은 파티의 호스트로 성의 대문 앞에서 하객을 배웅했다.신연희가 뭐라 말을 꺼내려는 순간 하늘 위로 갑자기 수많은 드론이 떠오르더니 빛을 내며 여러 모양을 만들어 냈다.신연희는 본능적으로 옆에 서 있는 임원훈을 바라보며 또 그가 준비한 것이냐는 눈빛을 보냈다.하지만 임원훈은 고개를 저었다. 신연희를 위해 따로 드론 쇼를 준비하긴 했지만 지금은 시작할 타이밍이 아니었다.바로 그때 아직 떠나지 않은 하객들이 갑자기 감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세상에, 너무 예뻐요!”“누군가한테 고백하는 모양 같은데요?”“정말 로맨틱한 아이디어네요!”그 말을 듣자 신연희와 임원훈의 표정이 순식간에 바뀌며 무의식적으로 하늘 위의 드론을 바라보았다.보면 볼수록 드론이 이루는 모양이 낯익다고 느껴졌다. 그와 동시에 신연희의 표정도 점점 굳어져만 갔다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18장

    하인은 그러겠다고 대답하며 뒤돌아 쌓인 선물을 처리했다.유성준은 선물이 반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계속 보내라는 지시만 내릴 뿐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임씨 가문으로만 보내질 줄 알았던 임원훈의 예상과 달리 유성준은 아예 선물을 들고 파티에 나타났다.그건 임씨 가문과 오래 알고 지내던 가문에서 주최한 파티로 신연희가 처음으로 임원훈의 아내로 참석하는 파티이기도 했다.신연희가 입은 빨간 드레스가 임원훈의 앞주머니에 꽂힌 빨간 행커치프와 잘 어울렸다.신연희의 중지에서 반짝이는 25캐럿 루비는 임원훈이 그녀의 25번째 생일 선물로 준 것으로 파티에 참석한 모두의 부러움을 샀다.그녀가 임원훈의 팔짱을 끼고 등장하는 순간 모든 사람의 시선을 사로잡았다.물론 구석에 있던 유성준의 시선 또한 사로잡았다.사람들 속에서 밝고 환하게 웃는 신연희를 바라보자니 유성준의 눈빛에는 씁쓸함이 스쳤다.신연희의 웃음을 마지막으로 본 게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과거 신연희는 정말 잘 웃는 아이였다.그녀의 웃음은 해피 바이러스처럼 유성준의 기분이 아무리 바닥을 쳐도 그녀의 웃음만 보면 기분이 좋아지곤 했었다.그러나 유성준이 신연희의 마음을 거절하고 구나린과 사귄 후로 신연희는 유성준 앞에서 뭘 하든 조심스러워졌다.선물을 든 유성준의 손에 힘이 들어갔다.얇은 선물 박스가 그의 손에 구겨질 뻔했다.이번 파티의 중요 인물인 임씨 가문 안주인에게 하객들은 각자 선물을 건넸다.유성준도 그리로 발을 내디뎠다.그러나 그가 입을 열기도 전에 임원훈이 한 발 먼저 신연희를 감싸안으며 2층의 룸으로 향했다.“연희야!”유성준의 표정이 미세하게 굳으며 서둘러 쫓아가려 했다.그러나 덩치 큰 보디가드 두 명이 팔을 뻗어 그를 막아 나섰다.임씨 가문의 집사가 유성준의 바로 앞에 섰다.“유 대표님, 사람은 주제를 알아야 합니다.”“사모님께 무슨 짓을 하셨었는지는 본인이 가장 잘 알지 않습니까. 임 대표님께서 과거 일로 유 대표님을 매장하지 않은 것만 해도 이미 체면은 충

  • 나를 찾는 기나긴 길   제17장

    그날의 쏟아지던 눈으로 인해 유성준은 다시 고열과 혼수상태에 빠졌다.혼수상태 중에도 유성준은 신연희의 이름을 불렀다.그 모습이 안타까웠던 비서는 인맥을 동원해 병원에 와서 유성준을 한 번만 만나달라고 신연희에게 부탁했다.그러나 비서가 건네받은 건 임원훈이 하인을 시켜 보낸 녹음 펜 하나뿐이었다.고요한 방 안에 유성준 혼자 가만히 앉아 있었다.유성준은 손에 들린 녹음 펜을 한참 쳐다보다가 마침내 버튼을 눌렀다.한동안 잡음이 흐르다가 이내 신연희의 목소리가 유성준의 귀에 꽂혔다.신연희의 말에는 비아냥이 섞여 있었다.“구나린의 정체가 드러나지 않았다면 난 아마 평생 사과받지 못했겠죠. 사람은 늘 이렇다니까요. 진실이 밝혀지고 가진 걸 잃고 나서야 비로소 후회하죠. 이런 때늦은 후회 따위 필요하지 않아요. 귀찮아지기만 할 뿐 아무 소용 없으니까 과거의 그런 일들로 계속 유성준 씨와 얽히고 싶지 않아요. 다신 오가지 않고 다신 만나지 않는 것, 이거야말로 유성준 씨와의 가장 좋은 결말이에요.”길지 않은 녹음을 유성준은 몇 번이나 반복해서 들으며 이 녹음이 조작된 흔적을 찾을 수도 있을 거라는 망상을 했다.그러나 유성준은 신연희의 목소리를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너무 잘 알고 있어서 듣자마자 이건 조작된 게 아닌 진짜 신연희의 목소리라는 걸 단번에 알아차렸다.조작됐을 가능성은 조금도 없었다.그녀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는 유성준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담겨 있었다. 녹음된 그녀의 말에는 증오조차 없었다.그 담담한 말투가 유성준에게 똑똑히 알려주는 듯했다.‘포기해, 너랑 신연희는 이제 끝이야’라고.팟!유성준은 손에 든 녹음 펜을 바닥에 힘껏 내팽개쳤다.두 눈이 시뻘겋게 충혈된 유성준은 가슴을 부여잡고 거칠게 숨을 헐떡였다.소리를 듣고 달려온 비서는 유성준의 모습에 깜짝 놀랐다.비서가 입을 떼기도 전에 병상 위의 남자는 소리쳤다.“나가!”병실 문이 다시 닫히고 유성준은 절망에 그대로 침대 위로 쓰러졌다. 그의 눈에는 후회만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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