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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구원자는 나였다

나의 구원자는 나였다

에:  원진참여
언어: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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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챕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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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신고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서 지도현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 “나 바람피웠어.” 지도현은 내가 앉은 조수석을 툭 치며 잔인하게 웃었다. “어제 그 여자가 여기 앉아서 나랑 키스했어. 워낙 야한 옷을 입고 왔길래, 참지 못하고 그만 잤지.” 또다시 찾아온 배신이었다. 나는 그 자리에 멍하니 굳어버렸다. 너무 고통스러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그런데 지도현은 오히려 즐겁다는 듯 말을 이었다. “이제 정우진이 왜 그랬는지 알겠어. 방혜민이 확실히 너보다 여자로서의 매력이 넘치거든.” 정우진은 내 전남편이고, 방혜민은 한때 내 가장 친한 친구였다. 5년 전, 두 사람이 한 침대에 있는 걸 내 눈으로 직접 목격했었다. 모든 것이 무너져 내리던 그때, 나를 구원해 준 사람이 바로 지도현이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바로 그 사람들과 똑같은 방식으로 나를 짓밟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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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챕터
제1화
목구멍을 누군가 손으로 꽉 틀어쥔 것만 같았다. 한참이 지나서야 가까스로 정신을 차린 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왜...”‘도대체 왜 바람을 피워놓고 나와 혼인신고를 한 거지?’ ‘왜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해야 할 날, 이토록 잔인하게 진실을 내뱉는 거지?’지도현이 잠시 멍하니 있더니,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네가 이겼네.”영문도 모른 채 지도현을 바라보는데, 차량 스피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오늘 밤엔 내가 좋아하는 딸기 향으로 써야 해.]나는 경악하며 눈을 크게 떴다. 온몸의 피가 얼어붙는 것 같았다.“혜민이랑 내기했거든. 내가 바람 피운 걸 알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말이야. 나는 네가 내 뺨을 때릴 거라 했고, 혜민이는 네가 왜 그랬냐고 물어볼 거라고 했지.”지도현이 눈썹을 까닥였다.“내가 이기면 걔가 검은색 스타킹을 신기로 했고, 걔가 이기면... 다 들었지?”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피커에서 다시 방혜민의 비웃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임수아, 5년 만이네. 넌 여전히 내가 생각했던 대로 멍청하구나. 그래도 남자 보는 눈 하나는 변함없네. 이번 남자, 나도 아주 마음에 들거든.]비릿한 조롱에 손발마저 저려왔다. 문득 5년 전 그날로 되돌아간 것 같았다.출장을 서둘러 마치고 돌아온 날이었다. 전남편 정우진의 생일을 챙겨주려던 나는 문을 열자마자 창가에서 엉켜 있는 정우진과 방혜민을 목격했다. 나를 발견한 정우진은 얼어붙었지만, 방혜민은 태연하게 담배를 물며 말했다.“임수아, 미안하게 됐어. 너무 외로워서 잠깐 네 남편 좀 빌려 썼거든.”그때도 지금처럼 나는 울음을 터뜨리며 물었다. 방혜민과 정우진에게. “도대체 왜 그런 짓을 한 거야?”하지만 두 사람이 변명하는 순간, 내 귀에는 마치 솜뭉치를 쑤셔 박은 듯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들이 새파랗게 질린 표정으로 소리를 지를 때까지 나는 멍하니 서 있을 뿐이었다.그러다 아랫배가 끊어질 듯한 통증에 허리를 펼 수가 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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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자, 네 마음 다 아니까. 저녁에 보자. 일단 수아부터 집에 데려다 줄게.”지도현의 목소리가 끔찍했던 회상 속에서 나를 끌어냈다. 그가 전화를 끊자, 차 안에는 거친 숨소리만이 팽팽하게 감돌았다. 잠시 후, 지도현이 먼저 입을 뗐다.“배고프지? 네가 제일 좋아하는 케이크부터 사러 가자. 그 뒤에 집에 데려다 줄게.”말투는 다정했다. 마치 방금 전까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그래서일까, 눈시울이 붉어져 사시나무 떨듯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 꼴이 스스로도 우스꽝스럽게 느껴졌다.“지도현, 대체 왜 이러는 거야?”“평생 나를 아껴주겠다고 진심으로 말했잖아.”목이 메어 잔뜩 쉰 목소리가 새어 나왔다. 주르륵 흘러내리는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예전처럼 조심스레 눈물을 닦아주는 다정함 따위는 없었다. 지도현은 의자에 기댄 채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내려다보았다.“임수아, 네가 첫 번째로 선택한 사람이 나였다면 정말로 평생 널 아껴줬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의 넌 그저 중고품일 뿐인데, 내가 왜 너를 위해 정조를 지켜야 하지?”지도현은 마치 자비를 베풀듯 휴지 한 장을 건넸다. 나는 질겁하며 뒤로 물러섰다.내 눈앞에 앉은 남자가 마치 악마처럼 보였다.우리는 대학 동기였다. 몇 년 전, 그와 정우진이 동시에 내게 고백했었다. 그때 나는 정우진을 택했다. 지도현은 우리를 축복해 주었고, 결혼 후 나도 그와 적당한 거리를 유지했다.정우진이 바람을 피우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 충격을 견디지 못해 손목을 그었던 내 앞에 마치 천사처럼 지도현이 나타났다. 상처 입은 내 영혼을 치유해 주었고, 지옥 같은 나락에서 현실로 건져 올려 주었다. 지도현이 내게 쏟았던 수많은 다정함을 떠올리자 절망이 밀려들었다.“그렇게 신경 쓰였으면, 왜 나를 쫓아다니고 굳이 결혼까지 한 거야?”서로의 눈이 마주쳤다. 지도현이 한숨을 길게 내쉬었다.“난 내가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어. 그런데 결혼 준비를 하면서 깨달았지.”지도현은 괴롭다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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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밖에는 방금 전까지 거센 폭우가 쏟아진 참이었다.그렇게 나는 진흙탕 위에 주저앉은 꼴이 되고 말았다. 바닥이 미끄러워서 일어나려고 버둥거릴수록 넘어질 뿐이었다. 지도현은 차 안에 가만히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았다.“임수아, 이제 알겠어?”나와 눈이 마주치자 지도현이 비웃듯 입꼬리를 올렸다.“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넌 제대로 일어서지도 못해. 정말로 나랑 이혼이라도 하면, 넌 당장 어디로 갈 수 있겠어?”내 대답 따위 들을 생각도 없다는 듯, 지도현은 차 문을 닫아버렸다. 차는 화살처럼 내 곁을 스쳐 지나갔고, 튀어 오른 흙탕물이 온몸을 뒤덮었다. 시야가 캄캄해지는 순간, 주마등처럼 지도현과의 지난날들이 스쳐 지나갔다.정우진과 이혼한 직후, 배신감에 사로잡힌 나는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 자제하지 못하고 자해를 일삼던 시절, 내가 칼을 대고 자해하려고 하면 지도현이 달려와 자신의 몸에 상처를 냈다. 밤새 잠을 이루지 못할 때면, 나를 안은 채 별장 지붕에 유리창을 보면서 밤새 별을 세어주었다. 밥을 한 입도 삼키지 못할 때는 며칠이고 곁에서 함께 굶어주던 사람이었다.그렇게 1년이 지나고, 나는 비로소 지도현을 믿게 되었다. 내게 고백하던 날, 무릎을 꿇고 평생 나를 배신하지 않겠다던 지도현의 맹세를 나는 철석같이 믿었다. 하지만 고작 1년이 지났을 뿐인데, 그 약속의 유통기한은 진작 끝나 있었다.정신이 들자, 나는 얼굴에 묻은 진흙을 닦아내며 길바닥을 짚고 일어섰다.어설픈 몸짓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나를 보고 낄낄거렸다. 수치심과 두려움에 떨며 허둥지둥 택시를 잡았다. 다행히 내 몰골을 보고도 태워주겠다는 택시가 있었지만, 조건은 차비에 4만 원을 더 얹어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냉큼 알겠다고 했다.하지만 결제하려던 순간, 카드가 정지되어 단 한 푼도 쓸 수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차에서 내팽개쳐지듯 쫓겨난 순간, 다시 하늘에서 폭우가 쏟아졌다. 빗줄기가 온몸을 때릴 때마다 통증과 마비감이 밀려왔다.얼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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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나는 대꾸할 힘조차 없었다. 그저 극한의 피로감이 온몸을 짓눌렀다.그런데 내 반응에 자존심이 상한 건지, 지도현이 내 멱살을 거칠게 낚아챘다. 그는 화가 난 나머지 오히려 웃음을 터뜨렸다.“수아 네가 자초한 거야.”“원래 오늘 밤은 그만두려고 했는데, 안 되겠어. 내가 느꼈던 고통을 너도 똑같이 맛보게 해줄게.”지도현은 나를 홱 내던지고는 방혜민을 불렀다.“우리 결혼식할 때 네가 신부를 해.”방혜민이 기쁨에 겨워 지도현의 품으로 달려들었다.“정말? 그럼 임수아 보고 내 들러리나 서라고 해. 5년 전엔 내가 들러리였으니까, 이번엔 임수아가 내 들러리 서는 게 공평하잖아.”“좋아. 그럼 쟤가 네 들러리 서면서 우리 반지까지 갖다 바치게 하지.”지도현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며, 심장을 칼로 도려내듯 한 글자씩 내뱉었다.도저히 믿을 수 없는 말에 고개를 들었다. 거절하고 싶었지만 목구멍이 꽉 막혀 소리조차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저 절망에 빠져서 고개를 저을 뿐이었다. 그러자 지도현이 잔혹하게 웃었다.“힘들어? 괴로워?”“그래야지. 5년 전 네가 다른 놈이랑 결혼할 때, 나도 딱 그만큼 괴로웠으니까.”복수심으로 일그러진 지도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갑자기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그가 원한 건 공평함이 아니었다. 그저 내가 과거의 자기처럼 똑같이 고통받길 바랄 뿐이었다. 내가 괴로워할수록 지도현은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나는 감각조차 무뎌진 가슴을 움켜쥐고 입꼬리를 비틀어 올렸다.“아니.”“지도현, 난 괴롭지 않아. 그냥 네가 역겨울 뿐이야.”그 한마디가 지도현의 분노에 기름을 부었다. 그는 방혜민을 밀쳐내고 나를 2층으로 질질 끌고 올라갔다. 필사적으로 버텼지만, 남자의 힘을 당해낼 수는 없었다. 안방 앞을 지날 때 잠시 멈칫했지만, 곧바로 옆방 문을 발로 걷어차고는 나를 집어던졌다.쾅!문이 닫히는 찰나에 나는 문틈으로 손을 뻗으려고 했다.“문 열어!”하지만 한발 늦었다. 문밖에서 들려오는 지도현의 목소리는 차갑게 식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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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벽 너머로 끈적한 입맞춤 소리가 들려왔다. 방혜민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까지 귓가를 파고들었다.“너무해. 수아보고 우리 하는 소리까지 다 들으라는 거야?”“더한 짓도 할 수 있는데, 해볼까?”나는 두 손으로 귀를 틀어막았다. 하지만 소리는 손가락 사이를 비집고 고스란히 흘러들어왔다. 싸늘한 한기가 실타래처럼 심장 속으로 스며들었고, 나는 고통에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누웠다.머릿속이 너무 혼란스러웠다. 나를 향했던 지도현의 다정함, 맹세, 웃음들이 떠올랐다가 이내 방혜민과 엉켜 있을 그의 모습이 겹쳐지며 끔찍한 장면을 만들었다. 참을 수 없는 두통에 나는 허겁지겁 옷 안에서 우울증 약을 꺼내 입안으로 털어 넣었다.얼마간의 시간이 흐른 뒤, 샤워 타월만 허리에 두른 지도현이 문을 열고 들어와 나를 내려다봤다.“벌써 못 버티는 거야? 앞으로 1년은 어떻게 견디려고?”지도현의 뒤로 온몸에 붉은 흔적이 남은 방혜민이 웃음을 터뜨렸다.“도현아, 설마 마음 약해진 건 아니지?”지도현의 눈동자가 조금 흔들렸지만, 그는 곧 차갑게 비웃었다.“말도 안 되는 소리. 수아와 결혼한 건 그저 내가 겪었던 고통을 똑같이 맛보게 하려는 것뿐이야. 내가 왜 마음이 약해져?”나는 경악하며 고개를 들었다. 가슴속 밑바닥부터 절망이 번져 나갔다. 모든 게 가짜였다. 사랑은 없었고 치밀하게 계획된 복수만이 있었을 뿐이다.무너질 대로 무너지자 몸안에서 기이한 힘이 솟구쳤다. 나는 벌떡 일어나 지도현의 뺨을 세차게 후려쳤다. 찰싹-날카로운 마찰음이 정적을 깨뜨리자 우리 셋은 동시에 얼어붙었다.몇 초가 지났을까, 지도현이 고함을 질렀다.“감히 나를 때려? 임수아, 죽고 싶어서 환장했지!”가슴이 찢어질 듯 아팠지만, 나는 차가운 미소를 흘렸다.“내기했잖아. 바람피운 걸 알면 내가 뺨을 한 대 때릴 거라고. 이제 때렸으니 됐어?”나는 더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아, 참. 정우진이었으면 절대 안 때렸을 거야. 그 사람한텐 아까워서 손도 못 댔을 테니까.”내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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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하지만 지도현은 한발 늦었다.창문을 열었을 때, 임수아의 옷자락은 이미 그의 손끝에서 미끄러져 나갔다. 마치 나비가 지상으로 추락하듯 허공을 가로지른 몸에는, 그가 차에서 임수아를 밀쳐낼 때 묻었던 진흙만이 덩그러니 남아 있었다.엄청난 충격에 지도현은 넋을 잃고 멍하니 굳어버렸다. 뒤늦게 현실을 깨달은 지도현은 임수아의 이름을 내뱉으며 계단을 뛰어 내려갔다.3층 방에서 1층 정원까지. 그 짧은 거리가 지도현에게는 십 년처럼 길게만 느껴졌다. 드디어 임수아를 붙잡아 떨리는 손가락을 코끝에 대보았다. 희미하지만, 숨은 붙어 있었다.“멍하니 뭐 해! 당장 119 안 부르고 뭐 해!”뒤따라 내려온 방혜민을 향해 지도현이 짐승처럼 포효했다. 구급차를 기다리는 동안, 지도현은 임수아를 품에 꽉 안은 채 그녀의 창백한 얼굴 위로 굵은 눈물을 떨어뜨렸다. 갈피를 잡지 못한 채 횡설수설하며 매달렸다.“미안해, 수아야. 정말 미안해. 질투에 눈이 멀어서 너한테 상처를 주지 말았어야 했는데...”“내가 했던 말들 다 거짓말이야. 너랑 결혼한 건 그저 너를 사랑해서였어.”“제발, 제발 눈 좀 떠봐. 앞으로 다신 안 그럴게.”곁에서 이 모습을 지켜보던 방혜민의 속은 타들어 갔다. 구급차가 늦게 오기를, 차라리 임수아가 이대로 죽어버리기를 속으로 간절히 빌고 또 빌었다.방혜민에게 임수아와 보낸 10년은 열등감뿐이었다. 방혜민이 밥을 굶을 때 임수아는 자기 생활비를 쪼개서 나눠주었고, 방혜민이 왕따를 당할 때면 주저 없이 그녀의 편에 서서 싸워 주었다. 하지만 방혜민은 늘 임수아가 미웠다. 별다른 노력 없이도 1등을 차지하는 임수아를 보며 열등감을 느꼈고, 유능한 남자들이 임수아에게만 관심을 보이는 사실이 뼈저리게 증오스러웠다.그러다 임수아의 행복한 결혼 생활을 본 날, 방혜민은 질투에 눈이 멀어 임수아의 남편을 유혹했다. 임수아가 이혼하면 자신을 선택할 거라 믿었지만, 결과는 처참했다. 5년 뒤, 똑같은 수법으로 지도현을 유혹하며 복수를 꿈꿨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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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병원으로 향하는 길, 지도현의 머릿속엔 지난날들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치 임수아가 홀로 빗속을 걸어 집으로 돌아오던 그 순간처럼.임수아를 처음 만난 건 대학교 2학년 때였다. 농구를 하다가 저혈당으로 쓰러진 지도현을 일으켜 세워 사탕을 건네준 건 지나가던 임수아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지도현은 임수아가 룸메이트 정우진이 반년 넘게 쫓아다니던 후배라는 사실을 몰랐다. 그는 첫눈에 반한 임수아에게 미친 듯이 대시했다.뒤늦게 사실을 알았을 때, 임수아는 이미 정우진의 연인이 되어 있었다. 임수아가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은 날, 지도현은 밤새 술을 퍼마시면서 울었다. 허니문 차를 끝까지 뒤쫓기도 했다. 하지만 정우진이 임수아를 안고 차에서 내리는 모습을 차마 지켜볼 용기가 없어, 눈시울만 붉힌 채 핸들을 돌려야 했다.그날 밤, 만취한 지도현은 꿈을 꿨다. 신랑인 자신과 임수아가 결혼식을 올리는 꿈을. 잠에서 깬 지도현은 악에 받쳐 빌었다. 제발 정우진이 임수아의 소중함을 몰라주기를, 그래야 자신에게도 기회가 올 테니까.하늘이 도운 것인지, 그 소원은 현실이 되었다. 지도현은 마침내 다시는 얻을 수 없을 줄 알았던 임수아를 얻을 기회를 얻게 되었다. 임수아가 우울증을 견뎌내던 1년 동안, 지도현은 매 순간 고통과 환희를 동시에 맛보았다. 아파하는 모습에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과, 임수아가 자신의 곁에 있다는 사실이 주는 행복. 그때 지도현은 남몰래 맹세했었다. 임수아만 나을 수 있다면 자기 목숨을 내놓아도 좋다고.하늘은 그 기도도 들어주었다. 임수아는 회복되었고, 지도현의 연인이 되어주었다. 연애와 약혼, 결혼을 약속할 때까지 지도현의 영혼은 기쁨으로 떨렸다.그런데 하필 웨딩 촬영 날, 방혜민이 보낸 사진 한 장이 도착했다.사진 속에는 임수아와 지도현의 웨딩 사진이 담겨 있었다. 끓어오르던 환희는 폭우를 맞은 듯 순식간에 꺼져버렸고, 불만과 질투가 밀물처럼 밀려왔다.웨딩 플래너와 능숙하게 가격을 흥정하고 있는 임수아를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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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질투의 불길이 걷잡을 수 없이 타올랐다.그날 이후로 임수아의 행동 하나하나, 매사 조심스러운 당부 한마디까지 전부 자신을 향한 도발처럼 느껴졌다. 사랑이 깊어질수록 고통은 가중되었고, 그 고통은 이내 증오로 변해갔다.설상가상으로 방혜민은 곁에서 임수아와 정우진의 과거를 끊임없이 들먹이며 그를 자극했다.“불공평하다고 생각하지 않아?”“너는 임수아를 그토록 오래 사랑했는데, 걔는 결국 정우진에게 차이고 나서 너를 선택한 거잖아.”“나라면 절대 가만히 안 있어. 반드시 되갚아 줄 거야.”뒤이어 날아오는 방혜민의 노골적인 사진들. 지도현은 미친 짓인 줄 알면서도 결국 그 유혹에 응하고 말았다. 집에 돌아갈 때면 잊지 않고 임수아가 좋아하는 케이크를 사 들고 갔지만, 적당한 당분은 기분 전환에 좋다던 심리 상담사의 조언은 이제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케이크를 먹으며 달콤하게 웃는 임수아를 보며 지도현은 허망함을 느꼈다.‘도대체 왜?’자신은 임수아 때문에 이렇게 비참하게 고통받는데, 정작 그녀는 아무것도 모른 채 행복해하고 있었다. 결국, 혼인신고를 하던 날 지도현은 모든 것을 폭로해 버렸다.지도현이 그 기억을 떠올리는 순간, 질주하던 차가 급정거했다. 자신의 행동을 뼈저리게 후회했지만, 이미 늦은 뒤였다. 지도현은 서둘러 차에서 내려 임수아를 안고 응급실로 달렸다.그 폭로는 인생에서 가장 후회되는 결정이었다. 복수의 대가가 임수아를 잃는 것이라는 걸 알았더라면, 차라리 평생 고통 속에 살았을 것이다.생각할수록 심장을 칼로 난도질하는 듯했다. 수술실로 들어가는 임수아를 바라보며 지도현은 무릎을 꿇고 제발 그녀가 살아남게 해달라고 빌었다. 마침 병원을 지나던 임수아의 심리 상담사가 그 모습을 보고 불길한 예감에 다가왔다.“지도현 씨, 대체 무슨 일이죠?”지도현은 눈가에 핏발이 선 채 고개를 저었다.“수아가 자살을 기도했어요.”의사는 흠칫하더니 지도현을 밀쳐내고 수술실로 뛰어 들어갔다. 잠시 후 상황을 살피고 나온 의사가 고개를 저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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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임수아는 수술 후 3일째 되는 날 눈을 떴다.그녀가 깨어난 것을 확인하자마자, 3일 밤낮을 병상 곁에서 지켰던 지도현이 벌떡 일어나 다급히 물었다.“수아야, 정신이 들어? 어디 불편한 데는 없고?”임수아는 잠시 멍하니 있다가, 이불 속에 숨긴 손을 주먹을 꽉 쥐었다. 잠시 후, 그녀는 고개를 저으며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물었다.“당신은 누구세요?”지도현은 흠칫하며 굳어버렸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다행이라고도 생각했다. 임수아가 깨어나길 기다리는 동안 그는 수천 번도 넘게 사과할 말을 연습했고, 처음부터 새로 시작할 준비까지 마친 상태였다. 하지만 임수아가 모든 기억을 잃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오히려, 이것은 다시 시작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지도현은 벅차오르는 감정을 억누르며 태연하게 답했다.“나는 네 남편이야. 지난주에 혼인신고를 마쳤고, 이번달 말에 결혼식을 올릴 예정이었어.”지도현은 잠시 말을 멈추고 덧붙였다.“며칠 전에 네가 지붕 위에서 별을 보려다 실수로 떨어졌거든. 막 수술을 마친 상태라 회복 기간이 좀 필요해. 몸 좀 추스르면 그때 결혼식을 올리자.”지도현이 보지 못하는 사이에 임수아의 입가에 찰나의 비웃음이 스쳤다. 하지만 곧바로 아무것도 모르는 듯 천진하게 물었다.“결혼했다고 하면 다예요? 결혼증명서는요?”지도현은 당황했다. 사실 그 자신도 혼인신고서가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신고를 마친 날 임수아는 보물처럼 결혼증명서를 품에 안고 있었지만, 차에서 임수아를 내쫓았을 때 그 종이들도 함께 버려졌기 때문이다.그 모습을 보던 임수아는 보안 요원을 불러 지도현을 쫓아내라고 생떼를 썼다. 그를 사기꾼이라 부르면서 말이다. 어쩔 수 없이 지도현은 다급히 말했다.“난 사기꾼이 아니야. 서류는 집에 있으니까, 지금 당장 가서 가져올게.”지도현은 미친 듯이 차를 몰아 집으로 향했다. 집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졌지만 찾을 수 없었다. 결국 그는 임수아를 차에서 내쫓았던 그 장소로 다시 달려갔다.차에서 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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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그렇게 썩어 문드러진 결혼증명서는 당연히 임수아의 불만을 샀다.무슨 영문인지 기억을 잃은 임수아는 성격까지 변해 있었다. 그녀는 손에 잡히는 대로 지도현에게 물건을 던지며 눈시울을 붉히고 소리쳤다.“우리 결혼증명서 하나 제대로 간수 못 해? 넌 날 전혀 사랑하지 않아! 당장 이혼해!”이혼이라는 두 글자에 지도현은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는 곧장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내 잘못이야. 하지만 재발급받으면 되잖아. 이번엔 내가 정말 잘 간직할게. 제발 한 번만 믿어줘, 응?”결국 지도현이 몇 번이고 무릎을 꿇고 빌고 임수아의 계좌로 거액을 송금한 뒤에야, 퇴원 당일 결혼증명서 재발급에 동행하기로 했다.차에 탈 때, 임수아는 뒷좌석에 자리를 잡았다. 평소 차멀미를 한다는 걸 기억하는 지도현이 웃으며 물었다.“자기야, 뒤에 타면 멀미하는 거 잊었어?”임수아는 창밖을 내다보며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앞자리는 앉기 싫어. 조수석에 다른 여자가 앉았을 것 같아서. 보기만 해도 역겨우니까.”지도현의 안색이 굳어지더니 어색한 표정으로 변명했다.“아니야, 그런 적 없어. 그래도 싫다면 돌아오는 길에 바로 차부터 바꿀게.”임수아는 대답 대신 무심하게 고개를 돌렸다. 결혼증명서 재발급은 순식간에 끝났다. 하지만 증명서를 손에 쥐자마자 임수아는 지도현을 끌고 곧장 이혼 접수처로 향했다.“이혼해! 재발급받은 건 아무 의미 없어. 이혼했다가 다시 결혼할 거야!”지도현이 순순히 응할 리 없었다. 하지만 애교를 부리면서 억지를 쓰는 임수아의 기세를 도저히 꺾을 수가 없었다. 특히 임수아가 눈시울을 붉히며 다그칠 때는 더욱 그랬다.“이혼하면 다시 나랑 결혼 안 해줄까 봐 그래? 이 나쁜 인간!”지도현은 당황하여 허둥지둥 대답했다.“그게 무슨 소리야! 좋아, 그럼 먼저 이혼하고 다시 결혼하자.”지나가던 사람들은 그 광경을 보고 철없는 아내와 아내를 받아주는 사랑꾼 남편이라 생각하며 낄낄거렸다. 임수아는 굳이 해명하지 않았고, 지도현은 그 상황을 그대로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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