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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04 화

육문주의 키스는 언제나 뿌리침을 불허할 정도로 강압적이었다.

조수아를 테이블로 밀고 한 손으로 그녀의 턱을 잡은 그는 다른 한 손으로 허리를 제 쪽으로 바짝 당겼다.

부드럽게 휘어지는 향긋한 몸이 육문주의 모든 신경줄을 예민하게 자극했다.

마음속 깊은 곳에 갇힌 맹수가 나오고 싶다면서 울타리에 쉴 새없이 몸을 부딪쳤다.

조수아와 함께 한 시간 동안 육문주는 잠자리 쪽으로 아주 만족스러웠었다.

그가 얼마나 원하든 조수아는 힘들어서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의 수요에 다 맞춰줬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조수아는 뻣뻣하다 못해 계속해서 발버둥 칠 뿐이었다. 눈가에 눈물까지 매단 채로 말이다.

육문주는 계속하던 행동을 멈추었다. 시원하게 뻗은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꼬리에 맺힌 눈물을 훑음과 동시에 욕구불만인 목소리가 갈라져 나왔다.

“조수아, 우리 사이의 게임은 내가 끝났다고 할 때까지 끝난 게 아니야. 알겠어?”

뜨거운 눈물을 머금은 조수아가 피가 배어나온 입술을 열어 말했다.

“나 절대 다시 안 돌아갈 거야. 네가 날 모욕하게 가만 있지 않아.”

그녀의 입술에 맺힌 피를 할짝이며 남자가 거짓웃음을 지었다.

“조 씨 가문을 걸고서라도 그러고 싶으면 어디 한 번 해 봐.”

몸을 떼어난 육문주는 저도 모르게 조수아의 흐트러진 치마와, 그리고 치마 아래로 매끈하게 뻗은 두 다리를 훑어봤다.

조수아는 치욕스러움을 느끼며 얼른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문을 향해 걸어갔다. 문고리를 잡고 열자마자 밖에 하얀색 원피스를 입은 송미진이 서 있는 게 보였다.

송미진은 무해한 얼굴로 웃으며 목소리를 냈다.

“문주 오빠, 저 오빠가 먹을 아침 챙겨왔어요.”

이렇게 가까이서 송미진의 얼굴을 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조수아는 그녀와 자신의 얼굴이 확실히 닮은 점이 많다고 생각했다. 특히 눈과 코과 그랬다.

이로써 그녀의 추측이 증명된 셈이었다. 자신이 불순한 목적으로 그한테 다가온 것이라 생각했음에도 그녀를 곁에 둔 이유 말이다.

육문주는 분명 자신을 송미진의 대역이라고 생각한 게 틀림없었다.

3년간의 세월이 대역이라는 참혹한 결과로 막을 내렸다.

조수아는 칼로 심장을 도려내는 듯 아팠지만 애써 침착한 척 가장했다. 그리고 송미진을 향해 작게 고개를 끄덕여 인사한 뒤 그대로 대표님 사무실을 나갔다.

문이 닫히고 육문주가 싸늘한 눈빛으로 송미진을 쳐다봤다.

“여긴 어쩐 일이야?”

송미진은 꾸중 들은 아이처럼 눈을 붉히며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문주 오빠. 오빠가 요즘에 아침도 잘 못 챙겨먹고 그래서 위가 아프다길래 제가 주제넘게 아침을 챙겨왔어요.”

미간을 구긴 육문주가 아무런 온도도 느껴지지 않는 목소리로 말했다.

“거기 둬.”

다시 활짝 웃은 송미진이 사뿐사뿐 걸어와 도시락을 책상 위에 놓으며 나긋나긋하게 말했다.

“오빠 참치 김밥 엄청 좋아했던 게 기억나서 제가 직접 싸와 봤어요. 얼른 먹어 봐요.”

도시락에 알록달록하고 정갈하게 놓인 김밥을 보면서도 육문주는 식욕이 하나도 돌지 않았다. 도시락을 한쪽으로 민 그가 매정하게 답했다.

“이따가 회의에 들어가야 해. 끝나고 돌아와서 먹을게.”

송미진은 실망했지만 얌전히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어요. 그럼 회의하러 갔다 와요. 저는 방해 안 되게 여기에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옆에 손님 대기실이 있어. 거기에서 기다려.”

진영택에게 내선으로 전화를 건 육문주가 말했다.

“송미진 씨를 옆의 손님 대기실로 안내하고 적당한 사람으로 붙여놔.”

1분도 안 돼 나타난 진영택은 빠릿빠릿한 동작으로 송미진을 향해 손동작으로 안내하며 말했다.

“송미진 씨, 옆의 손님 대기실에 다과와 차를 준비해 놓았습니다. 기다리시는 동안 이 비서가 옆에서 함께할 겁니다.”

송미진은 진실함을 담아 진영택에게 말했다.

“저 조 비서님께서 사람이 엄청 나이스하다고 들었어요. 그래서 조 비서님이랑 같이 있으면 안 되나요?”

“죄송하지만 조 비서님은 대표님의 수석비서라 회의에 같이 참석하셔야 합니다.”

진영택은 머리가 나쁘지 않았다. 대표님이 최근에 조 비서랑 사이가 틀어진 게 뻔히 보이는데 이런 타이밍에 송미진을 끼어들게 했다가 두 사람의 화해시기가 늦어질 게 뻔한 일이었다.

“그렇군요. 그럼 조 비서님 커피 타는 솜씨가 엄청 좋다고 들었는데 커피 한 잔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세요.”

육문주의 잘생긴 눈매가 설풋 찌푸려졌다. 조수아는 그의 사람이었다. 누가 부리고 싶다고 부릴 수 있는 그런 존재가 아니었다.

그러나 방금 전 기를 쓰고 자신을 떠나겠다고 고집 부리던 그녀의 모습을 떠올린 그는 이참에 그녀의 기를 한 번 꺾어놓는 것도 괜찮겠다 생각하고 진영택을 향해 말했다.

“송미진 씨가 말한대로 해.”

진영택은 놀란 얼굴로 육문주를 한참이나 바라보다 결국 속으로 한숨을 삼킬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여자친구한테 전 파트너 심부름을 시키다니. 그렇게 하면 지금의 여자친구를 잃게 될 지도 모른다는 걸 대표님은 정녕 모르는 것일까?

어이가 없었지만 진영택은 일단 송미진을 데리고 옆의 손님 대기실로 안내했다.

한창 자리에 앉아 회의에 필요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데 진영택이 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말했다.

“조 비서님, 대표님께서 커피 한 잔 타서 2번 손님 대기실에 있는 송미진 씨한테 가져다 주라고 하십니다.”

고개를 든 조수아는 담담하게 답했다.

“알겠습니다. 지금 바로 가겠습니다.”

자료정리를 마친 뒤 조수아는 탕비실로 향했다. 커피머신에 커피콩을 먼저 넣고 간 뒤 다시 커피를 내리려는데 어느새 그녀의 옆에 송미진이 나타나 있었다. 조수아는 덤덤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송미진 씨, 죄송하지만 아직 5분은 더 있어야 커피가 준비됩니다.”

청순하고 귀여운 얼굴이 스산한 미소를 지었다.

“조수아 씨는 절 보고도 이상한 느낌이 들지 않던가요?”

조수아는 커피를 타는 동작을 멈추지 않으며 조용조용 답했다.

“매일 대표님한테 기꺼이 안겨오는 분들이 워낙에 많아서 딱히 이상한 점을 모르겠네요.”

“어떻게 전혀 모르시죠? 문주 오빠가 당신이랑 같이 있는 게, 그게 다 그쪽이 저랑 닮아서 그런 거잖아요. 문주 오빠는 조수아 씨를 안 좋아해요. 그저 저의 대역이라고 생각해서 여태까지 같이 있었던 거예요. 그러니 이제 제가 왔으니까 대역은 이만 떠나줬으면 좋겠는데.”

커피머신에 뜨거운 물이 흘러들어가고 곧 고소한 커피냄새가 탕비실 전체에 퍼지기 시작했다. 조수아는 향기에 취한 듯한 얼굴로 웃으며 물었다.

“이탈리아에서 직접 공수한 커피콩이랍니다. 목넘김이 아주 부드럽죠. 송미진 씨는 얼마나 달게 드실 건가요?”

송미진은 스펀지에 대고 주먹을 휘두른 것 같은 기분에 이가 갈렸다.

“조수아 씨, 우리 이제 연기는 그만합시다. 당신 문주 오빠한테 붙어있는 거 다 돈 때문에 그러잖아요. 여기 20억짜리 수표 줄 테니까 이제 문주 오빠 옆에서 꺼지세요.”

조수아는 복잡한 심경을 감추며 각설탕 하나를 꺼내 커피에 넣고 느릿느릿 저으며 말했다.

“듣자하니 송미진 씨 건강이 그리 좋지 못하다던데 그 돈 뒀다가 본인 치료에나 쓰세요. 괜히 대표님한테 시집 가기도 전에 뒤지면 안타깝잖아요.”

“너 이…”

송미진은 화가 나서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조수아가 이렇게 상대하기 어려운 사람일 줄 몰랐던 그녀는 제 화를 이기지 못하고 아직 뜨거운 커피잔의 손잡이를 쥔 채 조수아에게로 뿌렸다.

김이 펄펄 나는 커피가 공중에서 아름다운 호도를 그리며 조수아의 얼굴을 향해 날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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