登入그는 아미노를 마주하고 있는 이 시간과 공간 자체가 몹시 불편했다.
성스럽지 않은 신전에서 그를 이 세상에 남은 신앙으로 여기는 이곳에서 사라지고 싶었다.
“하하. 세상을 떠도는 친우가 근처에 있는데 얼굴 한번 보자는 것이지.”
이유가 필요한가?
아이작은 자신을 돌아보는 아미노의 푸른 눈을 직시했다.
“많이 피로할 테니 쉬어 갔으면 하는 바람도 있었다네.”
[이곳을 집이라고 생각해.]
그는 끝내 아미노에게서 고개를 돌렸다.
간사한 자의 혀 놀음에 빠져 잃고야 말았던 과거가 떠올랐다.
세상을 보는 회색빛 눈동자가 비탄에 빠지려 했다.
아미노는 그것을 알았는지 아주 깊게 웃더니 긴 머리칼을 한번 쓸어 넘기며 말했다.
“친우끼리 그간 못한 말도 할 겸.”
본론이었다.
“에테르는 어떠하던가?”
첫 번째, 아미노가 몸을 적시며 물었다.
“여전하다.”
아이작이 대답했다.
“호오.?”
성수가 삿된 기운을 정화 시키듯 신황의 몸을 타고 흘러내렸다.
“그의 심장은?”
두 번째, 아미노가 몸을 적시며 물었다.
“여전하다.”
아이작이 대답했다.
아미노의 입가에 미소가 띠었다.
세 번째. 아미노가 마지막으로 물었다.
“아르텐시아는?”
아이작의 눈동자에 회색빛이 거둬지고 인간의 눈동자가 드리웠다.
그는 고개를 들어 항아리를 든 여신상의 아래 한낱 인간에 불과한 선악의 현신을 바라봤다.
성스러워 보일 법한 광경이었다.
여신의 강력한 신관이자 신황의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그래서 더욱 눈을 돌리고 싶었다.
분명 과거에는 깨끗하고 맑았을지 모르나 지금은 이단과 마찬가지일 그의 영혼에게서.
‘아르텐시아여, 도대체 아미노에게서 무엇을 보셨기에 그에게 영광을 주셨습니까. 그는 그 영광으로 당신을 죽였습니다.’
끝내 아이작은 해서는 안 되는 원망을 자신의 여신을 향해서 했다.
자격이 없음을 알면서도.
그는 결국 세 번째 적신 몸으로 자신의 대답을 기다리는 아미노에게 의복을 건네며 말했다.
“여전하다.”
아이작도 알았다.
아미노가 하는 세 개의 질문 모두가 아이작에게서 원하는 대답이 있다는 것을.
하지만 그는 대답해줄 의무와 이유가 없었다.
그리고 아미노도 알았다.
아이작이 자신에게 세 번의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조만간 에테르를 만나러 가야겠네.”
아미노는 물속에서 나와 의복을 걸치며 말했다.
“그의 지혜를 빌릴 일이 생겼거든.”
그는 아이작의 어깨를 두어번 툭툭 치고 지나쳤다.
아미노가 가는 길에 성수가 빛을 받아 방울방울 떨어졌다.
누군가가 보면, 그것은 마치 축복과 같이 보일지도 몰랐다.
아이작은 그 길을 봤다.
태양과 별의 축복처럼 보일 질척한 집착의 부산물을.
“…….”
그래서 말하지 않았다.
아르텐시아의 재림을 확인하고 그것을 기록했음을.
아이작이 말하지 않으면 신황 아미노는 그의 기록과 기억을 읽을 수 없었다.
하물며 아이작 없이는 에테르에 닿지 못하는 자다.
그토록 영험하지 못한 자였다.
아미노는.
아이작은 짙게 웃으며 자신을 돌아보는 그를 보고 눈을 감았다.
이 자리에서 사라져야 했다. 벗어나야 했다.
자꾸만 마주하려 하는 저 눈동자를 참을 수 없었다.
“사흘 뒤. 다시 돌아오겠다.”
“그래, 그때 보자고 아이작.”
그는 아미노의 대답이 끝나기가 무섭게 사라졌다.
대화 상대가 사라진 공간에 적막이 잠시 스쳐 지나갔다.
“성하.”
아미노는 어느새 들어온 신관에게 시중을 받으려 턱을 치켜들었다.
그의 입매는 여전히 호선을 그리고 있었다.
신관은 그의 몸을 닦고 제의를 제대로 입히며 잿빛의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한쪽으로 묶어 넘겼다.
아미노는 어깨에 흰색의 긴 띠와 신발을 신겨지고 커다란 모자가 씌워질 때까지 자세를 유지했다.
“바로 이동하시겠습니까?”
“그래야지.”
찰나의 시간이 지나 그는 실로 당당하고 품위 있는 신황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그는 길을 여는 신관을 따라 발을 뗐다.
항아리를 든 여신의 방을 나와 그림자 따위 없는 복도를 걸었다.
신이 하사하신 성스러움과 태양 빛이 한데 어우러져 대리석으로 된 신전의 복도가 반짝였다.
감히 천상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아미노는 적막한 복도를 걸으며 이 길의 끝에 누군가의 형상을 상상했다.
하늘과 구름의 색깔이 한데 어우러져 태양 빛으로 빛나는 머리칼을 길게 늘어트린 여인을.
꿈속에서 만나 그녀를 흠모하여 곁에 서고자 했던 여인을.
“하아-.”
인간이 쌓아 올리고 비로소 신황이 된 자신이 꾸며놓은 이 신전의 구석구석 그녀의 기척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
눈을 뜨면 그녀가 있었고 감으면 연민을 끌어내 곁에서 아름다운 목소리를 들려주게 했었다.
생각만으로도 그는 가슴이 벅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자신을 이렇게 사랑의 미치광이로 만든 여인은 300년전이나, 지금이나 단 한 명뿐이었다.
그는 복도 끝에 도달하여 잠시 걸음을 멈췄다.
[아미노!]
손에 닿지 못하는 그 형상이 자신의 이름을 불렀다.
아미노의 가슴 아래로 음험한 기분이 뭉쳐 터질 듯 부풀어 올랐다.
그의 입매가 비틀려 올라갔다.
‘어서 보고 싶다….’
꼿꼿이 치켜들었던 턱이 내려가고 강렬한 눈동자 안에 무언가가 맺혔다.
300년이란 생각보다 너무나 긴 시간이었다.
‘이제 곧 이다.’
아미노는 곧 제 손에 떨어질 그 아름다운 머리칼이 참을 수 없이 그리웠다.
그래서 상상했다.
흘러내린 머리칼에 부드러운 목덜미가 드러나며 아기 같은 피부의 어깨선을.
자신의 손끝이 그녀의 고운 입술과 그 입매 끝에 다다를 때까지.
상상했다.
길고, 길게.
신관은 신황의 걸음이 멈췄음에도 돌아보지 않았다.
복도의 끝, 그는 신황의 비밀을 알았으니까.
하지만 불행은 둘이 신전을 감쌌던 메데이아의 줄기를 넘어갈 때, 다시 발밑에 모습을 드러냈다.“이게 무슨 일인가!”시작은 신전에 들어가 잊었던 병사들로부터였다.아비규환인 그곳에서 그들은 꽤나 일사분란하게 움직였다.“당장 몸이 성한 자는 부상자를 데리고 숲을 나가라!”“저 검은 구슬에 몸이 닿아서는 안됩니다!”이 모든 움직임과 소리를 들은 아이작이 아르텐시아의 잡은 손을 잡아당겼다.“조심하십시오. 천천히 내려오세요.”그는 말과 다르게 더욱 서둘렀다.“아이작, 우리는 숲을 빠져 나갈테니 걱정하지 말거라.”조급함을 눈치챈 아르텐시아는 부드러운 손길을 받으면서도.“네. 그럼요 아르텐시아.”서쪽으로 향하는 숲의 입구는 지척에 있었다.아이작은 긴장을 늦추지 않으면서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등 뒤로 들렸던 부산함이 조금씩 잦아들고 있던 탓이었다.그는 안심이 불러온 과장된 평온이 허상에 빠지게 할 줄 몰랐다.‘이 숲을 나가면, 잠시만 쉬자고 해야겠다. 아르텐시아도 피곤할거야.’그는 라리아의 집에서 피를 토했던 그녀를 기억했다.
와아아아! 와아아아!엄청난 함성이었다. 꽤 많은 병사가 아이작과 입씨름을 한 병사에게 동조하고 있었다.“더 들을 것도 없다. 아이작.”그때, 진정한 악신이 서슬 퍼런 눈을 하고 그들을 바라봤다.그녀의 어깨 위에는 크기는 크지 않았으나 본능적인 위험을 느끼게 할 악의 구가 살벌하게 떠 있었다.“뚫린 입이라고 한낱 벌레보다 못한 대거리를 하는구나.”“뭐, 뭐라?!”“너희 인간들은 곱게 만들어준 입으로 시궁창을 헤매니 화를 자초하는 것이다.”“아르텐시아….”아르텐시아는 애틋한 눈빛을 보내는 아이작에게 작게 웃어 보이고는 작고 마른 손을 유려하게 움직여 악의 구에서 여러 알갱이를 만들어 냈다.그것은 저잣거리에서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구슬과 비슷해 보였다.악의 구에서 나온 알갱이들은 아이작과 아르텐시아의 주변에 머물며 스산한 빛을 내뿜었다.병사들의 눈동자에 그것은 어떠한 공포심을 유발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한가지는 바로 해야겠구나.”그녀는 선연하게 드러나는 분노를 지우지 않은 채 웃어 보였다.그때,
불온한 기운이 내려앉는 메데이아의 줄기 위를 넘어 신전 앞마당으로 침투하려 하고 있었다.기어코 메데이아의 줄기가 움직임을 멈추었다.아이작은 아르텐시아의 손에서 얼굴을 떼지 않은 채 눈동자를 굴려 그 너머를 살폈다.“아르텐시아.”새카만 어둠은 닮은 인간의 눈동자가 달빛을 받아 희게 빛났다.신전의 앞마당 뒤, 메데이아의 줄기가 얼기설기 얽혀있는 지척에 마침내 그의 시선이 닿았다.긴 생각이 필요 없었다. 그녀와 함께 있었던 지금까지의 시간과 순간이 마치 주마등과 같았다면 어서 깨어나야 했다.“…못해도 수백, 수천이군.”아르텐시아는 그의 나지막한 목소리에 어깨에 한기가 느껴지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그녀는 뒤로 돌아 아이작의 시선을 따라갔다.지나가는 구름 사이로 달빛이 어지러이 흘러 내렸다.그 아래, 르완의 병사들이 아직 죽지 않은 숲을 밟고 서 있었다.“…….”아이작은 동요하듯 크기를 키워가는 악의 구를 보며 아르텐시아에게 속삭였다.“이토록 많은 병사를 보낸 것을 보면, 완전한 죽음 또는 생포가 목적일 겁니다.”“…어느 쪽이라 생각하지?”“둘 다이겠지요.”아르텐시아는 무언가에 홀린 듯 아이작의 팔을 잡고 그와 눈을 마주했다.그들은 동시에 말했다.“나를 죽이고 당신은 생포할 목적일 겁니다.”“너를 죽이고 나를 데려갈 생각이구나.”“아미노의 명령이겠죠.”“아미노에게 데려가기 위해서.”결국은 다시 아미노였다. 아르텐시아는 이가 갈렸다.교묘하고 약삭빠르기가 마귀와 다를 데가 없었다.아이작의 현자의 눈을 통해 이곳을 살피지 못하니 그가 가진 정보력을 의심해 이런 다음 수를 준비한 것이 틀림없었다.“더이상은 참지 못하겠구나, 아이작.”“생각보다 수가 많은데 괜찮으시겠습니까?”“감히, 너의 숨을 빼앗으러 온 것들이다. 난 이들의 숨을 갈취하는데 망설이지 않아.”아마도 병사의 수는 이 신전을 감싸고 마을에까지 닿아 있을지도 몰랐다.아르텐시아와 아이작이 짐승들을 처리하는데 시선을 빼앗겨 있을 때 이미 지척에 와있던 자들이다.분
아르텐시아를 가리고 선 그는 오래된 고목과도 같았고 단단한 요새와도 같았다.그리고 그의 손안에서 에테르의 창은 어느 때 보다 밝게 빛났다.“…그래, 아이작.”아르텐시아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는지 짧게 숨을 들이마시고 내쉬었다.긴 세월 동안 이어진 신뢰는 이깟 불안에 무너질 것이 아니었다.그녀의 눈동자가 다시 굳건해졌다.그 시선의 끝은 아이작의 어깨 너머에 있었다.아르텐시아는 신전 주변을 제외하고 꽤 많은 면적의 숲의 생명력을 빼앗아 악의 구를 더욱 키우기 시작했다.이제 메데이아의 뿌리는 피를 갈구하며 신전 위의 하늘을 덮어버렸다.완연한 어둠. 심연과도 같은 그것이 그들의 눈앞에 펼쳐졌다.소리마저 차단된 공간 속에서 그 누구도 움직이지 못하고 있었다.짐승은 울음을 삼키고 메데이아는 활기를 멈춘 그때.두 사람에게 신호는 필요 없었다. 촤악!숨소리조차 내지 않던 아이작이 움직이기 시작했다.“크아아아!”“깨갱!”아르텐시아는 어둠 속에서도 희미하지만 빛을 잃지 않은 그 푸름을 쫓았다.그 푸른 빛은 옅은 잔
***“이, 이게 무슨! 누구냐! 내 신전을 이토록 엉망으로 만든 것이!”아르텐시아의 고통이 담긴 목소리가 신전에 닿았다.그녀는 신전 문 앞에 다다라서 털썩 주저앉았다.발에 채며 나부꼈던 메데이아를 살펴보기 위함이었다.이어서 아이작이 그녀의 뒤를 따라 곁에 앉았다.“이런! 아르텐시아!”“…아이작. 보아라 나의 아이들이 이토록 고통을 받았구나.”“당신을 괴롭게 만들다니, 누구의 소행인지 알아내야겠습니다!”“아니다, 그럼 안돼. 너까지 다치면 어떻게 하란 말이냐….”“아르텐시아…….”그는 결국 손에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삼키는 아르텐시아가 안타깝다는 듯 신음했다.아르텐시아는 아이작의 위로를 받으며 겨우 고개를 들었다.참담함이 서린 눈동자는 형태가 남아 있는 메데이아 꽃에 닿아 있었다.“내 힘이 온전치 못해 신전과 숲과 메데이아를 지키지 못했구나….”“아닙니다, 아니에요. 아르텐시아.” 부스럭, 부스럭.아르텐시아와 아이작의 눈동자가 시선의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마주쳤다.생명력이 사라지는 숲의 마지막 움직임이 타인에 의해 들려왔다.그들이 움직이기 시작한 모양이었다.
“아이작, 저 병사 중에 아는 얼굴이 있느냐?”“없습니다.”“다 죽었으니까?”“네, 다 죽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모두.”아르텐시아는 고개를 끄덕였다.놀랄 일도 아니었다.처음 이상함을 느낀 것은 신전의 조사를 텐죠우의 자식들이 했다는 것이었다.짐승은 말을 하지 못 한다.하지만 인간들은 생각과 말을 할 줄 알았다.그러니 텐죠우의 자식들이 휩쓸고 간 자리에서 르완의 병사들이 숨어있던 고위 신관이나 제물들을 찾도록 내버려 둔 거다.“명분 자체를 없앤 거야.”병사들은 지루한 임무에서 신이 나 있었을 것이다.물러나 사라진 줄 알았던 짐승들이 수를 부풀려 지켜보고 있는 줄도 모르고.“병사들이 취한 것들은 모두 텐죠우의 자식들이 도로 가져갔습니다. 아미노에게 갔죠.”수법이란 이런 것이었다.아미노로서는 매우 쉬운 일이었을 터였다.명분, 경계. 그것들로부터 오는 반발심? 모두 죽이면 그만이었으니까.“그러나 오늘은 다 죽이지 못할 것이다.”아르텐시아의 검푸른 눈동자가 푸르게 빛났다.“너와 내가 있으니까.”“아르텐시아….”“우리는 아미노의 수를 죽이는 거다.”말을 끝낸 그녀의 어깨 위로 조금 전보다 더욱 위험한 악의 기운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