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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82화

Autor: 루에나
레미는 시선을 옆으로 돌렸다. 중현의 말에 대꾸하지 않았다.

중현이 어떤 약속 때문에 강솔과 이혼했을 때 레미는 막지 않았다.

부부 사이의 일에 지나치게 끼어들고 싶지 않았던 것도 이유였고, 정말 이혼하더라도 큰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했던 이유도 있었다.

강솔은 못된 남편을 벗어나면 되고, 중현은 뒤늦게 후회하며 강솔을 다시 붙잡으러 다니면 그만이었다.

그런데 이혼 과정에서 이런 짓까지 했다니.

“솔이한테 상처 주기 싫으면 방법은 간단해.”

레미는 중현의 말에 넘어가지 않고 소파에 기댄 채 나른하게 말했다.

“솔이한테서 멀리 떨어지면 돼.”

분위기가 어색하게 가라앉자 시후가 가볍게 헛기침했다.

‘아까 그 얘기는 중요한 일 다 끝난 다음에 할걸.’

[중현아.]

시후가 침묵을 깼다.

중현은 레미가 들고 있는 핸드폰을 바라봤다.

시후는 화제를 돌렸다.

[너 지금도 약속이 그렇게 중요하다고 생각해?]

중현은 이해하지 못한 표정을 지었다.

레미도 무의식적으로 중현을 한번 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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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88화

    “지금부터 단아가 약국에 가는 건 막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너희 시야에서 벗어나게 하지도 말고.”도현은 오늘 지켜야 할 핵심을 분명히 짚었다.“필요한 게 있으면 너희가 대신 사다 줘.”모두가 함께 대답했다.“알겠습니다.”도현은 그 외에도 몇 가지를 더 지시했다.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나니 정진도 도현이 왜 단아의 위험한 장면을 삭제하려 하는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단아가 찍어야 할 장면이 앞으로 몇 개 더 남았어?”도현이 물었다.“이제 없습니다.”정진은 단아의 촬영 분량을 전부 파악하고 있었다.“그 위험한 장면들이 마지막이긴 한데...”뒤의 말은 도현의 시선 때문에 끝내 나오지 못했다.단아는 잠에서 깬 뒤에야 비로소 이 사실을 알았다.씻고 나서 밖에 나가 약을 살 핑계를 만들 생각이었지만 정진과 경호원들이 앞을 막았다.“필요하신 물건이 있으면 저희가 사 오겠습니다.”경호원이 말했다.“내가 직접 가면 돼.”“하 대표님 지시입니다. 오늘부터 필요한 게 있으면 전부 저희에게 말씀해 달라고 하셨습니다.”단아는 정진을 바라봤다. 정진의 눈에도 같은 뜻이 담겨 있었다.단아는 바로 도현이 시킨 일이라는 걸 알아챘다.“됐어.”더 실랑이를 벌이지 않았다. 일단 다른 방법을 찾기로 하고 정진에게 말했다.“대본 좀 가져다줘. 다음 주에 찍을 장면들 다시 한번 볼게.”정진은 그 자리에 선 채 움직이지 않았다. 눈에는 미안함이 스쳤다.“왜 그래?”단아가 이상함을 눈치챘다.“하 대표님이 오늘 아침에 사람 시켜서 그 장면들 전부 삭제했어.”정진은 숨기지 않고 사실대로 말했다.“언니 촬영분은 이제 다 끝났어.”단아는 말을 잃었다. 잠시 뒤 핸드폰을 꺼내 도현의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연결음이 이어지는 동안 가슴속에서 화가 점점 치밀었다.아이를 낳으라고 강요한 것만으로도 모자랐다.이제는 자기 일에까지 함부로 간섭하고 건드렸다.[일어났어?]전화가 연결되자 도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렸다.“정진이 그러는데, 내 뒤쪽 촬영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87화

    “알았어?”도현은 단아의 허리를 천천히 쓸었다.단아는 모든 의욕이 사라진 기분으로 대답했다.“알았어.”도현이 결정한 일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없었다.지금 가장 급한 건 전날 관계에서 생긴 위험부터 해결하는 것이었다.단아의 매니저와 별장 경호원 모두 도현의 사람이었다. 그 사람들의 눈을 피해 사후피임약을 사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자.”도현은 단아를 끌어안았다. 단단한 가슴이 등 뒤에 닿아 따뜻했지만 단아에게는 오히려 서늘한 감각만 느껴졌다.처음에 도현은 단아를 그저 집에 두고 지내는 예쁜 인형 같은 연인 정도로만 생각했다. 단아가 도현이 원하는 성격을 연기하고 말만 잘 들으면 큰 문제는 생기지 않았다.단아의 신변도, 동생의 안전도 보장받을 수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아이를 낳으라고?’반지까지 끼워 줬다.‘내 존재를 밖에 알리기 싫어하던 사람이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아까 내 노력이 부족했나 보네.”단아의 몸이 오래도록 굳은 채 풀리지 않는 걸 알아챈 도현이 뜨겁고 낮은 숨을 귓가에 흘렸다.단아의 피부에 소름이 돋았다. 두려움 때문이었다.“잘게. 지금 잘 거야.”그 뒤 20분 동안 단아는 억지로 몸에 힘을 빼고 잠을 청했다.처음 있는 일도 아니었다. 긴장을 풀고 잠든 척하는 일 정도는 단아에게 어렵지 않았다.하지만 이번 일을 받아들이는 자신의 한계를 과대평가했다. 몸을 느슨하게 만들고 일정한 호흡까지 흉내 냈지만 머릿속에서는 계속 도망칠 방법과 도현의 생각을 돌릴 방법을 찾고 있었다.그날 단아는 새벽이 깊어서야 겨우 잠들었다.쌓인 피로가 불안보다 무거워진 뒤에야 깊은 잠에 빠졌다....다음 날 아침, 도현은 아직 잠든 단아를 보고 조심스럽게 이불을 걷어 침대에서 내려왔다. 씻고 준비를 마친 뒤 아래층으로 내려가 단아의 매니저와 전담 경호원들을 서재로 불렀다.자신들의 고용주 앞에 선 사람들은 몸에 잔뜩 힘이 들어가 있었다. 속으로 도현을 두려워하고 있었다.“단아가 맡은 분량의 위험한 장면 촬영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86화

    단아는 반지를 돌려주면 도현이 화낼 줄은 알았다. 하지만 그 화가 이런 식으로 번질 줄은 몰랐다.도현 곁에서 머무른 세월이 길었다. 다른 건 몰라도 도현의 기분을 맞추는 법만큼은 익숙했다.“안 돌려줄게. 내가 잘못했어.”“잘못했으면 벌도 같이 받아야지.”도현은 막 갈아입었던 옷이 젖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았다.그렇게 이어진 실랑이와 도현의 집요한 행동은 두 시간이나 계속됐다.단아는 사과도 하고 순순히 물러섰지만 도현의 화는 조금도 가라앉지 않았다.새벽 두 시가 되어서야 방 안이 조용해졌다.이미 지칠 대로 지친 단아에게는 손 하나 들 힘도 남아 있지 않았다.도현은 손가락으로 단아의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렸다. 콧등에 걸친 안경 때문에 겉모습은 더 반듯해 보였지만, 하는 행동은 정반대였다.“내가 준 물건을 되돌려 받는 경우는 없어. 알아들었어?”“미안해.”단아는 이번에는 얌전히 사과했다.“내가 듣고 싶은 말이 그 말이 아닌 거 너도 알잖아.”단아는 도현을 바라봤다. 깊고 어두운 눈과 시선이 맞부딪쳤다.한참 뒤 도현은 단아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여운이 남는 목소리로 이름을 불렀다.“임단아.”단아는 움직이지 않았다.도현이 말했다.“내 아이 낳아 줘.”단아의 몸이 굳었다. 어떤 반응을 해야 할지, 뭐라고 답해야 할지조차 알 수 없었다.그 말을 들은 머릿속이 하얗게 터져 버린 듯했다.‘아이를 낳으라고?’‘내가 어떻게 당신 아이를 낳아.’증거만 충분히 모으고 동생 쪽 준비만 끝내면 단아는 언제든 도현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다. 최악의 경우 도현 때문에 평판과 커리어를 전부 잃을 수는 있어도 자유까지 완전히 잃는 건 아니었다.하지만 아이를 낳으면 두 사람 사이에는 끊을 수 없는 실질적인 연결이 생긴다.출산 과정에서 달라지는 몸과 감정 때문에 단아 자신이 아이를 포기하지 못하게 될 가능성도 컸다.‘안 돼.’‘절대로 안 돼.’“중현이도, 상진이도 아이가 있잖아.”도현은 단아가 너무 놀라서 말을 못 하는 거라고만 생각했다.“약속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85화

    “네가 진태휘랑 몰래 연락하는 걸 내가 알게 되면.”도현의 손길은 부드러웠지만 단아의 몸에는 서늘한 떨림이 번졌다.“네 다리 부러뜨리고 평생 집 안에 가둬 둘 거야. 알았어?”단아가 물었다.“그렇게 꼭 무섭게 말해야 해?”“네가 말 안 들으면 더 심하게도 할 수 있어.”도현은 말을 마치고 몸을 숙여 단아의 옅은 입술에 입을 맞췄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촉 뒤로 묘한 단맛이 섞였다.단아는 반사적으로 도현을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이성이 그 행동을 붙잡았다.도현은 사람을 다루는 데 익숙했다. 몇 번 숨을 주고받는 사이 단아의 호흡은 흐트러졌다. 단아는 도현을 좋아하지 않았고 오히려 거부감까지 느꼈지만, 익숙하고 노련한 손길이 이어지자 몸만큼은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그만...”단아는 목덜미에 파묻은 도현의 얼굴을 밀어냈다.“내일 오후에 촬영 있어.”“아무것도 안 남겨.”도현은 단아의 손을 눌러 잡고 허리를 안아 들어 위층으로 향했다. 침대에 닿았을 때는 단아의 겉옷이 이미 벗겨져 매끄러운 셔츠 한 장만 남아 있었다.방 안에는 짙은 긴장감과 열기가 퍼졌다. 두 사람의 숨소리도 점점 거칠어졌다.단아는 계속 이어지는 도현의 공세를 끝내 견디지 못했다.분위기가 가장 짙어졌을 무렵, 단아는 왼손 중지에 차가운 물건 하나가 끼워지는 감각을 느꼈다.무엇인지 확인하려 하자 도현의 따뜻한 손이 단아의 뺨을 감쌌다. 낮고 유혹적인 목소리가 가까이서 떨어졌다.“딴생각하지 마.”단아의 머릿속에 짐작 하나가 떠올랐다.하지만 제대로 생각을 이어 가기도 전에 도현에게 다시 휩쓸렸다. 숨은 깊어졌다 얕아지기를 반복했고 낮은 소리가 방 안을 채웠다. 어둠 속에 겹친 두 사람의 실루엣은 밤이 깊어질 때까지 떨어지지 않았다.한참 뒤에 움직임이 멎었다.단아는 침대에 누운 채 손가락 하나 들 힘도 남지 않았다.도현은 단아를 안아 욕실로 데려갔다. 씻겨 주는 동안 단아는 중지에 끼워진 차가운 물건을 제대로 확인했다.다이아몬드 반지였다.단아는 반지를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84화

    중현의 기억상실은 도현과 관련이 있었고 상진은 도현 쪽 사람이었다.그렇다면 중현이 여기에서 하는 일은 상진을 통해 도현에게 전해질 것이다. 어쩌면 상진이 몰래 중현을 감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었다.숨기든 먼저 말하든 본질적으로 큰 차이는 없었다.차라리 겉으로는 움직임을 보여 주고 중요한 세부 사항만 뒤에서 따로 준비해서 도모하는 편이 낫겠다고 판단했다.“누군데?”상진이 물었다.“레미.”상진은 중현을 두어 번 더 살피더니 물었다.“뭐 좀 건졌어?”중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옷매무새를 정리했다.“이 근처에 뭐가 맛있어?”표정 하나 바꾸지 않고 말을 돌렸다.“밥 먹을 때 됐잖아.”상진은 어이없다는 표정을 했다.곧 숨기지도 않고 물었다.“나한테 말하기 싫다는 거야?”“너 알아듣도록 내가 충분히 티 낸 것 같은데.”“그래.”상진은 더 캐묻지 않았다. 지나치게 간섭하면 의심만 더 키울 뿐이었다.“말하기 싫으면 하지 마. 그래도 한 가지는 기억해. 지금 너는 기억이 없으니까 누구 말을 듣든 바로 믿지 마.”“네 말도?”중현이 물었다.상진이 고개를 끄덕였다.“나도.”중현은 더 말하지 않았다. 기억을 잃은 뒤 강솔을 처음 봤을 때 한눈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다면, 강솔을 보는 것만으로 심장이 제멋대로 뛰지 않았다면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지, 누가 진실을 말하는지 가려내기 훨씬 어려웠을 것이다.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가정법으로 되돌릴 수는 없었다.기억을 잃고 여러 사람을 만났지만 중현에게 가장 맑고 군더더기 없이 다가온 사람은 강솔뿐이었다.세상의 복잡한 계산과 상관없이, 강솔은 그저 강솔인 것처럼 느껴졌다....중현과 상진이 식사하는 동안 아연은 J시로 돌아가는 비행기표를 샀다. 도착하자마자 도현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중현이랑 헤어졌어.]도현은 막 집에 돌아온 참이었다. 답장은 짧고 담담했다.[상진이한테 들었어.]아연이 물었다.[그럼 나는?]아연은 도현에게 도구에 불과했다. 이제 도구가 쓸모를 잃었다. 도현이 계속

  • 난 결코 무너지지 않아   제883화

    아연과 상진은 동시에 의아한 눈을 했다.멀쩡히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자신을 욕하는 이유를 이해하지 못했다.“강솔이랑 결혼해 놓고 네가 준 반지를 결혼반지처럼 계속 끼고 있었다면 정상적인 인간이 할 짓은 아니잖아.”중현은 아주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네가 정말 내 여자친구라면 지금 정식으로 말할게. 우리 헤어져.”“하지만...”아연이 붙잡으려 했다.“깔끔하게 끝내. 그게 서로한테 좋아.”중현이 잘라 말했다.“넌 기억이 없어서 몰라. 우리한테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정말 많았어.”아연이 말했다.“그런데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이렇게 쉽게 끝내는 게 나한테 공평해?”중현은 아연을 바라봤다.아연이 계속 말했다.“넌 평생 나를 책임지겠다고 했어. 넌 잊었지만 나는 안 잊었어.”“상의가 아니라 통보야.”중현은 더 설명하지 않았다.아연이 다시 입을 열려 하자 상진이 몰래 눈짓을 보냈다.두 사람의 작은 신호를 중현은 전부 보고 있었다.그 모습을 본 뒤 중현은 강솔의 말을 믿은 것이 옳았다는 확신이 더 강해졌다.“진심이야?”상진이 물었다.중현은 느슨하게 눈을 들었다.“내가 농담하는 것처럼 보여?”“예전에 아연이하고 만나려고 네가 꽤 애썼다고 들었는데.”“그래서?”“기억 돌아오면 후회할까 봐 걱정 안 돼?”“후회할 것도 없어.”중현은 물을 한 잔 따라 컵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쓸었다.“내가 아연하고 정말 너희 말대로 그런 관계였다면 결말은 인터넷에서 흔히 하는 말 한마디로 정리할 수 있겠네.”상진이 물었다.“뭔데?”중현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담담하게 말했다.“쓰레기끼리 만나면 끝도 좋을 리 없지.”상진과 아연은 동시에 말문이 막혔다.중현이 독한 사람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하지만 자기 자신까지 저렇게 가차 없이 깎아내릴 줄은 몰랐다.“네가 생각 다 했으면 나도 더 말리지는 않을게.”상진은 돌릴 수 없는 일이라는 걸 알아차리고 아연에게 말했다.“조금 있다가 비행기표 알아봐 줄게. J시로 돌아가.”아연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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