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누구를 만나라는 말씀이세요?”‘오라버니에게 다른 부모님이나 친척이라도 계신 건가?’용강한이 대답했다.“폐하와 네 이곳 오라버니들이 진작부터 너를 기다리고 있단다.”소우연은 깜짝 놀라 되물었다.“이육진도 왔단 말씀이세요?”“그래.”“저…”소우연은 순식간에 얼굴이 확 달아올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용강한이 그녀의 얼굴을 다정하게 감싸 쥐었다.“본처니 첩이니 하는 자리는 차치하더라도, 그 사람과 내가 동등한 지위에 서는 것쯤은 괜찮겠지. 안 그러냐, 연아?”소우연은 민망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어쨌든 그 사람을 첩으로 들이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라.”소우연은 말없이 그를 바라보았다.두 사람은 손을 맞잡고 천기궁의 침전을 나섰다.밖은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있었다. 밝은 달이 푸른 창공 높이 걸려 있었고, 그 반쪽 얼굴은 은은한 구름 뒤에 숨어 있었다.장형선산의 산맥이 또렷이 드러나고 수목이 무성하여, 그 밤풍경이 마치 선경 같았다.“그분들은 어디 계신가요?”“문천각에 있단다.”용강한은 대답하면서도 그녀의 손을 꼭 쥐고 걸었다. 맑은 바람과 밝은 달 아래서 이렇게 거니는 것도 제법 운치가 있었다.문천각 안.소영아가 이육진에게 간드러진 목소리로 아양을 떨며 부추기고 있었다. “황태자 전하, 전 정말 이해가 안 가요. 언니는 엄연히 황태자 전하의 정혼녀인데, 왜 문도 안 두드려보는 거예요? 설마 언니가 다른 남자랑 같이 지내는 걸 정말 참을 수 있다는 거예요?”이육진은 차를 홀짝였다. 속으로는 질투가 났지만, 앞으로 펼쳐질 수만 년의 세월 동안 질투만 하며 살고 싶지는 않았다.용강한은 여전히 살아 있었다.자신과 소우연 역시 무사히 살아 있었다.그것만으로도 이미 충분했다.“황태자 전하, 언니는 전하를 정말 많이 사랑한다고요. 가서 문만 두드리면 틀림없이 따라 나올 테니, 어서 가서 데려오란 말이에요! 얼른 겨뤄 보세요!”소영아는 입술을 삐죽 내민 채 느긋하게 차를 마시는 이육진을 바라보았다. 답답해서 속이 터질 지경이었다
용강한이 고개를 돌려 한쪽에 놓인 횃대를 바라보았다. “저기 있단다.”소우연도 그의 시선을 따라 고개를 돌렸다. 아니나 다를까, 두 사람의 옷가지가 하나도 빠짐없이 횃대 위에 고이 놓여 있었다.“오라버니의 지금 능력은 정말이지 신통방통하군요.”용강한이 미소를 지었다. “연아, 오늘은 다른 말은 하지 말고 오직 잠자리 이야기만 하자구나.”“아, 잠, 잠자리라니요…”소우연은 얼굴을 붉히며 차마 용강한을 똑바로 바라보지 못했다.이번 생의 그는 지난 생과 조금 다른 듯했다. 말도 대담해졌고, 행동은 더욱 대담해졌다.그의 얇은 입술이 미지근하면서도 시원한 감촉을 남기며 그녀의 이마와 붉은 입술, 턱선, 귓불, 그리고 하얀 어깨 위로 내려앉았다.대체 어떻게 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소우연은 자신이 바다 위에 두둥실 떠 있는 듯했다. 떠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하며 당장이라도 잠에 빠져들 것처럼 기분이 좋으면서도, 차마 잠들고 싶지는 않았다.따스한 기운이 몇 겹이고 그녀를 감싸 안았다.몸속에서 무언가 요동치며 돌아다니는 듯했는데, 설마 이것이 말로만 듣던 능력일까?그 움직임은 깊은 밤이 되어서야 겨우 잦아들었다.소우연이 꼼짝도 하기 싫어하자, 용강한이 손수 그녀를 구석구석 닦아주기도 하고, 술법을 부려 눈 깜짝할 사이에 온몸을 말끔하고 보송보송하게 만들어주기도 했다. 다만 그녀의 눈가에는 눈으로 보아도 확연히 느껴질 만큼 관능적이면서도 아름다운 유혹이 서려 있었다.“오라버니, 이 장형선산에서는 정말로 아무도 오라버니를 건드릴 수 없는 건가요?”소우연이 웃으며 물었다. 가느다란 손으로 그의 잘생긴 눈썹을 살짝 문지르는 그녀의 얼굴에는 참으로 만족스러운 기색과 맑고 고결한 기운이 가득했다.“더는 그 누구도 우리를 막아서지 못한다.”“그… 소영아라는 아이도 안 되나요?”“그 아이도 안 되지. 그자는 지금 이 세계에서 평범한 수련자만도 못한 존재다. 하물며 무슨 능력으로 우리를 막아서겠느냐.”소우연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서 오늘 그 아이를
“호오? 그러냐?”용강한이 물었다.소영아는 막혀서 아무 말도 못 했다. “그게, 어쨌든 설정은 그렇다는 거예요. 강한 오라버니는 워낙 대단한 분이시잖아요. 진작에 자기 설정쯤은 바꾸셨겠죠. 분명 세상에서 가장 대단한 신선이 되셨을 거예요!”소우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용강한을 밀쳐 내고는 곧장 문밖으로 나가 소영아를 붙잡아 끌고 들어왔다. 그녀는 소영아를 매섭게 노려보았지만, 막상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소영아 역시 깜짝 놀랐다. 겨우 열일곱 살인 소우연의 눈빛이 어찌나 매서운지, 마치 사람을 잡아먹을 듯한 엄한 큰 언니를 마주한 기분이었다.“언니…”“네가 나를 언니라 부르니, 내가 너를 좀 다스려야겠구나. 그렇지 않으면 오라버니더러 너를 서천으로 보내라고 할 테다.”“아…”소영아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했다. “저한테 이러시면 안 되죠. 제가 그래도 두 분의 어머… 흠흠, 두 분의 은인 아니겠어요? 제가 없었으면 두 분이 어디 있었겠어요?”그녀는 하마터면 자기가 두 사람의 모친이라고 말할 뻔했다.하지만 용강한이 너무 강해서, 혹여나 그 말을 듣기 싫어해 자기를 죽여버리면 어쩌나 싶었다.그러니 꼬리를 내리는 편이 나았다!소우연이 말했다. “네가 날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으면 내 가르침을 따라야 한다!”“네, 다 언니 말 들을게요.”“그 이상한… 대단하다는 말인지 뭔지 하는 거, 내가 듣기엔 그리 좋은 말 같지 않으니 앞으로는 쓰지 마라!”소우연이 엄하게 말했다.소영아는 입을 꾹 다물었다.‘겨우 그거였어? 사람 놀래키기는…’소영아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네, 네, 언니 말 들을게요. 앞으로 꼭 조심할게요.”소우연이 그녀를 놓아주었다. “다시는 슬쩍 엿듣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매운맛을 보게 될 테니.”“네, 지금 당장 갈게요. 그런데 오라버니, 전 어디서 지내야 하나요?”“빈 궁전 중에 네가 알아서 골라라. 찾지 못하겠거든 내 제자나 손자뻘 제자들에게 길을 안내해 달라고 하거라.”“네, 알겠습니다
일생에 단 한 사람만을 바라보는 일편단심의 사랑은, 실로 그녀가 처음에 품었던 소망이었다.소우연은 소영아를 바라보았다. 동글동글하고 매끄러운 그 얼굴에는 아직 앳된 티가 가시지 않아, 어릴 적 이진의 모습과 무척이나 닮아 있었다.“언니, 전 정말 언니한테 나쁜 뜻이 없었어요. 그리고 이분께도…”소영아가 용강한을 바라보며 훌쩍이며 말했다. “아무런 악의도 없다고요.”“언니는 내 제일 소중한 여주… 흠흠, 언니는 온 세상에서 가장 착하고 좋은 사람이잖아요. 저를 죽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죠, 그렇죠?”그렇게 말하는 소영아의 눈시울이 붉어졌다.'지난날을 돌이켜보면, 우리 여주인공 소우연은 마음이 너무 착해서 악인을 놓아주는 바람에 사람들에게 힐난을 듣기까지 했지.'소우연은 깊은 숨을 내쉬었다.“됐다, 그만 가보아라.”“안 가요. 저는 계속 언니 곁을 지킬 거예요.”소우연은 말문이 막혔다.“정 그렇다면, 내가 너를 서천으로 보내버릴 것이다.”용강한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소영아를 슬쩍 바라보자, 소영아는 겁에 질려 감히 더는 떼를 쓰지 못했다.하지만 소우연과 너무 떨어져 있으면 그녀가 이육진과 혼인하는 모습을 볼 수 없을 테고, 그러면 자기는 어떻게 돌아간단 말인가?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소영아는 용강한의 눈치를 슬금슬금 살피며 소우연 앞에서 애원했다.“언니, 전 여기서 의지할 사람 하나 없어요. 오직 언니만 믿고 의지할 수 있다고요. 앞으로는 절대 언니 앞길을 가로막지 않을게요. 물론 이제 와서는 막고 싶어도 막을 수 없게 됐지만요. 그러니 그냥 없는 사람 셈 치고 곁에만 두어 주세요. 다른 요괴나 귀신한테 잡아먹히지만 않게 해주시면 돼요.”주르륵 떨어지는 소영아의 눈물이 마치 굴러떨어지는 진주알 같아 보이자, 소우연도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어서 가지 않고 무엇 하느냐? 정말 서천으로 보내지길 기다리는 거냐?”“네, 네! 지금 당장 갈게요.”소영아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 소우연과 용강한에게 고개를 꾸벅 숙이고는, 호다닥 밖
그리고 지금… 이 궁전도, 차도, 심지어 들숨 하나하나까지 가슴 깊이 스며들 만큼 기분 좋고 상쾌했다.문득, 휘파람 같은 바람 소리가 일더니, 익숙한 향기를 머금은 기류가 훅 밀려들었다. 소우연이 눈을 들어 보니, 용강한이 소영아의 덜미를 덥석 쥐고 들어와 백옥 바닥 위에 툭 내던지는 모습이 보였다.“아악!”소영아가 고통스러운 듯 비명을 내질렀다.소우연은 깜짝 놀라 옥석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영아…”용강한은 손을 털며, 자비로우면서도 위압적인 기운이 감도는 눈매로 소영아를 내려다보았다.“이 자가 바로 작가다.”웅…소영아의 머릿속이 터져 나가는 듯했다.용강한이 자신을 알아챘다는 것은 진작 알고 있었다. 하지만 줄거리를 정돈하고 여주인공의 줄을 잡아 보기도 전에, 이렇게 냅다 붙잡아 올 줄이야!게다가 이 신통력은… 그녀가 이전에 설정해 둔 장형상선보다 훨씬 더 막강했다.“이 아이가 누구라고요?”소우연은 소영아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여리고 부드러운 어린 소녀가 정말 그 작가란 말인가?“이 아이가 작가란 말인가요? 당신을 한낱 부군으로 만들어 버리려고 고집부리던 그 작가요?”“언니, 언니 살려주세요…”소영아는 용강한이라는 캐릭터를 정말 좋아했다. 하지만 지금의 그는 신통력이 광대할 뿐만 아니라 눈빛에도 등골이 서늘해지는 한기가 서려 있어, 정말이지 죽을 만큼 두려웠다.더 생각할 여지도 없었다.소영아는 다짜고짜 소우연의 다리를 붙잡았다.“언니, 언니 무슨 말씀이신지 전 하나도 모르겠어요. 전 그저 두 분이 걱정되어서 그런 거예요. 아버지와 큰오라버니는 오늘 일을 아뢰러 궁에 들어가셨고, 둘째 오라버니와 셋째 오라버니도 오는 길이에요. 저도 짐을 싸 들고 언니를 찾으러 오다가, 느닷없이 중간에 상선께 잡혀 여기까지 끌려온 것뿐이라고요.”“연아, 저 자가 죽기를 바라느냐?”용강한은 소영아가 무슨 말을 하든 개의치 않고, 오직 소우연에게만 물었다.“언니, 으앙…”소영아는 속으로 생각했다.'여주인공은 마음이 제일 약하잖아. 세상에
“그래, 맞아! 소명옥, 소려! 너희 둘도 어서 따라가 보아라. 절대로 연이가 큰일을 벌이게 두어서는 안 된다!”소 대인이 다급히 명했다.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소명옥과 소려는 이미 환영으로 변하여 순식간에 자취를 감추었다.소영아는 말문이 막혀 입을 꾹 다물었다.'이렇게 가볍게 사라져 버리다니. 그럼 나는?'“부인, 집안일은 모두 부인에게 맡길 테니 마음 쓰시오. 나와 명남이는 어서 궁으로 들어가 폐하께 아뢰어야겠소.”소 대인은 소 부인에게 몇마디 남기더니, 곧바로 말을 몰아 달려 나갔다.“영아야, 어서 들어가자꾸나.”소 부인이 소영아에게 말했다.소우연은 장형상선에게 끌려가고, 이 태자마저 장형선산을 향해 쫓아가 버렸으니, 결국 어떤 결말이 날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소영아는 소 부인과 함께 집으로 들어간 뒤, 몰래 노잣돈과 짐 따위를 챙겼다. 그러고는 편지 한 장을 남겨둔 채 슬그머니 가출을 감행했다.*장형선산에는 모두 일곱 개의 봉우리가 있었는데, 봉우리마다 영기가 충만했다.그중 주봉이 바로 용강한이 머무는 천기궁이었다.그는 소우연을 천기궁으로 데려온 후, 그 누구도 본전에 들어와 방해하지 못하게 했다.소우연은 그를 와락 끌어안고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정말 다행이에요. 돌아가시지 않은 데다, 여전히 오라버니 모습 그대로여서…”용강한은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칼을 쓰다듬었다.“그래, 난 여전히 나란다. 이제 우리는 오래오래 함께할 수 있어.”그녀가 고개를 들어 용강한을 바라보았다.“하지만 지금 오라버니 신분이 무척이나 대단한 것 같아요. 대개 작가라면 오라버니에게 이런 높은 신분을 안겨주지 않았을 텐데요.”“이 신분은 당연히 그자가 정해준 것이 아니다. 바로…”소우연이 그를 올려다보았다.“뜸 들이지 말고 어서 말씀해 보세요. 오라버니를 보았을 때 제가 얼마나 기뻤는지, 그제야 얼마나 안도했는지 아시잖아요.”“본래의 장형상선은 다른 자였다. 앞으로 너와 이육진은 이 장형선산으로 찾아와 수련을 쌓을 것이고, 이내 사
이영도 심초운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얼마나 많이 흔들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가끔 이런 짓까지 한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이영의 말에 심초운이 대답했다.“너무한 건 없습니다. 연희와 경장명 그자의 혼약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연희의 참 인연이 형님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 경장명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심초운의 부모님, 그리고 황태후와 태상황에 이어 주익선의 부모님까지, 그들은 전부 일부일처를 고집하여 왔으며 평생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부
이육진을 떠올리자, 소우연의 가슴 한켠이 은근히 저려왔다.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을 받아들이겠노라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이 모든 것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미안함은 여전히 얇은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용강한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보따리를 풀어 수통과 몇 가지 다과를 꺼내 가지런히 늘어놓았다.“이 야명주는 마계를 떠날 때 챙겨온 것이긴 하나, 폐하의 물건은 아니다.”담담한 설명에 소우연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어디서 난 건가요?”“혼돈에게서 얻은 것이란다.”순간 소우연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혼돈이라
“그렇지. 이 모든 것은 공적에 따른 보상이다. 인간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내 직접 그자를 멸하리라.”이육진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기 장로가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마계를 나갈 수만 있다면… 마존께서 품행이 단정한 자들을 인간 세상에 정착하게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계는 줄곧….”“인간과 마족은 본래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이육진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마족은 타고난 힘이 강하고 수련 또한 용이하다. 인간 세상에 나가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누르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생겨
은자유는 그 말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멍하니 굳어 있었다.그 사이 심초운이 담담히 말을 이었다.“옥새국에 있던 그 여황제 말입니다.”그제야 은자유는 그 어린 여자아이를 떠올렸다.이육진을 쏙 빼닮아 그를 아바마마라 부르고, 소우연을 어마마마라 부르던 아이.마계에 수천 년이나 머물러 있던 이육진이 대체 언제 소우연과 아이를 가졌단 말인가?“말도 안 돼…”은자유의 입술이 떨렸다.“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이냐.”“더는 설명할 수도, 설명할 이유도 없습니다.”심초운의 목소리는 단호했다.“이제 그만 떠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