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Author: 주 한잔

제1화

Author: 주 한잔
“안 돼!”

극심한 통증에 소우연은 큰소리로 외치며 눈을 번쩍 떴다.

소우연 앞에 펼쳐진 건 화려하게 꾸며진 방이었으며 향초가 불에 타고 있는 소리가 들렸고 은은한 향도 퍼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괴롭히던 통증도 전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소우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방을 쓱 훑어보았고 단번에 이 방이 신혼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고개를 숙여보니 자신은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

이 혼례복은 소우연이 쌍둥이 여동생 소우희를 위해 3년에 거쳐 직접 만든 혼례복이었는데 결국 소우연이 이 혼례복을 입고 시집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소우연의 결혼 상대는 악명이 자자한 회남왕 이육진이다.

상운국에서 명망 높은 전쟁의 신이었던 이육진은 3년 전 전쟁에서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다. 결국 목숨 걸고 싸워서 위험한 상황을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온몸의 신경들이 전부 잘려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 이육진은 성격이 난폭해지기 시작했으며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노비와 시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기도 했다.

황제가 이육진에게 혼인을 몇 차례나 하사했지만 신부들은 혼사를 치른 이튿날 바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회남왕 관저 밖에 버려졌다.

그러다가 한 달 전, 이육진의 모친 덕빈은 황제 앞에서 난동을 부리며 다시 한번 혼인을 하사해달라고 했고 그 상대가 바로 진원 장군 가문의 둘째 딸 소우희였다.

어렸을 때부터 소우희를 애지중지 키운 소씨 가문에서는 당연히 사랑하는 딸을 이육진에게 보낼 수 없었기에 결국 소우연이 쌍둥이 여동생 대신 이육진과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소우연은 오래 전부터 연모하는 사내가 있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함께 큰 두 사람은 혼인을 약속한 사이이기도 했다.

때문에 소우연은 이육진에게 시집을 가기 싫었고 더군다나 회남왕에 관한 소문이 너무 흉흉한 탓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혼사가 이뤄진 당일 날, 소우연은 소우희의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도망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멀리 도망치기도 전에 다시 잡혀오게 되었다.

크게 노한 덕빈은 소우연의 사지를 부러트린 뒤, 그녀를 소씨 저택 대문 앞에 던져 버렸다.

소우연은 가족들이 자신을 집에 데리고 가서 상처를 치료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바람과 달리 소씨 저택의 대문은 끝까지 굳게 닫혀 있었으며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그렇게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 바람에 온몸에 상처까지 심각했던 소우연은 결국 대문 밖에서 얼어 죽고 말았지만 소씨 가문에서는 그녀가 죽고 나서 시체를 거둬가지도 않았다.

소우연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은 그저 소설 속의 하찮은 조연이고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은 소설 속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때문에 소우연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소씨 가문 사람들은 절대 그녀에게 신경 쓸 리가 없었으며 그녀는 그저 소우희 대신 희생하기 위해 존재한 사람이었다.

한편,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소우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침대에 멍하니 앉아 예전의 기억들을 되돌려보고 있었다.

소설 속 내용에 의하면 이육진은 최대 악역이다. 얼굴이 망가지고 몸 전체가 폐인이 된 탓에 이육진은 성격이 변태적이고 포악했으며 소설 속 남녀 주인공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어있다.

소우연은 이육진을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명성이 자자한 전쟁의 신이 결국 그런 최후를 맞이하다니. 그의 인생도 소우연 못지 않게 불행하고 처참했다.

소우연과 소우희는 모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점쟁이는 소우희가 귀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이고 이와 반대로 소우연은 태어나는 순간 소씨 가문에 불행을 불러올 거라고 했다.

점쟁이가 말한 것처럼 소우연이 태어난 뒤로 소씨 가문에는 사건 사고들이 유난히 많았기에 가문 사람들은 점쟁이 말을 굳게 믿은 채 소우연을 홀시하고 냉대했다.

소우연은 평생 소씨 가문을 위해 희생했지만 결국 대문 앞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했고 심지어 시체 일부가 들개들에게 먹혔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결국 소우연의 시체를 거둔 사람은 이육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 문이 열렸고 휠체어에 탄 남자가 덤덤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혼례복을 입고 있는 이 남자의 얼굴은 절반 이상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화상을 입지 않은 반대쪽 얼굴에는 어마 무시한 칼자국 흉터가 나 있었다.

그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공포스러웠다.

살짝 겁을 먹은 소우연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옷을 꽉 잡은 채 조심스럽게 이육진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 생에는 절대 섣불리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회남왕 관저에서 도망치는 순간, 소우연은 또다시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덕빈은 아들 이육진을 그 누구보다 걱정했기에 아들을 모욕하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소우연은 이제 이육진이 떠도는 소문처럼 성격이 그리 난폭하지 않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낮게 깔린 이육진의 목소리에 뒤에 서있던 호위무사는 소우연을 경계하듯 쳐다보다가 이내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그렇게 방 안에는 이육진과 소우연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소우연은 조금 긴장이 되긴 했지만 사실 이육진이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전생에 그녀의 시체를 거둔 것으로만 봐도 이육진은 소문처럼 그렇게 악마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소인이 시중을 들어도…”

잔뜩 긴장한 소우연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이육진은 소우연의 말을 끊으며 담담하게 물었다.

“내가 무서워?”

“아닙니다. 소인은… 소인은 그저 조금 긴장이 돼서…”

말까지 더듬는 소우연을 보며 이육진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당연히 내가 무섭겠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 무서운 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소우연은 고개를 살짝 들어 이육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얼굴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졌지만 치료가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소우희가 장난을 치다가 화상을 입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가족들은 세상이 무너진 듯 엉엉 울면서 발만 동동 굴렀고 소우연은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밤낮없이 치료제를 연구했었다.

그 결과, 흉터 치료에 효과가 매우 훌륭한 약을 조제해냈고 덕분에 소우희는 몸에 난 화상 흉터가 깔끔하게 없어졌다.

이육진의 흉터가 소우희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그래도 흉터가 꽤 많이 치료될 수는 있을 것이다.

소우연이 침대에서 내려와 이육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손이 휠체어에 닿기도 전에 이육진이 소우연의 손을 툭 밀쳐냈고 화들짝 놀란 소우연은 얼른 해명했다.

“소인에게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 이제 밤도 깊었는데 왕야께서도 이만 쉬셔야 할 것 같아서 도와드리려고 한 것뿐입니다.”

이육진은 말없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우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 눈빛에 소우연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이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씨 가문에서 큰 결심을 했네.”

코웃음을 치던 이육진은 직접 휠체어를 끌고 침대 곁으로 가더니 두 손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툭 쳤다.

다음 순간, 허공 위로 날아오른 이육진은 손바닥을 빠르게 앞으로 뻗었고 그대로 침대 위에 완벽하게 착지했다.

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을 보며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이육진은 완전히 폐인이 된 게 아니었어! 두 다리는 더 이상 쓰지 못하지만 무술 실력은 여전히 대단해! 그럼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던 거야?’

Patuloy na basahin ang aklat na ito nang libre
I-scan ang code upang i-download ang App
Mga Comments (6)
goodnovel comment avatar
강호영
오. 흥미진진하게 나가는데.
goodnovel comment avatar
이영희
계속해서읽고싶어요ㅎ
goodnovel comment avatar
이영희
재미있어요다음엔어떤상황이벌어질까요? 궁금궁금!
Tignan lahat ng Komento

Pinakabagong kabanata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65화

    용강한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소우연이 보지 못한 것은, 그의 눈동자 속에 스쳐 지나간 옅은 자조였다.그가 꽉 움켜쥔 주먹, 그 모든 것이 말해주고 있었다. 이번만큼은 정말 하늘의 섭리를 마주하고 말았다는 것을.아무리 애를 써도, 그는 작가가 붓끝으로 정해놓은 그 결말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다.“분명 방법이 있을 거예요!”소우연이 용강한을 바라보며 단호하게 물었다. “그렇죠?”“연아, 정말 우리가 영원토록 이렇게 얽혀 있기를 바라느냐?”“네.”“하지만…”사랑은 원래 이기적인 법이었다. 그는 자신이 어째서 이육진을 한편으로 여기게 됐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것 역시 분명 소우연 때문일 것이었다. 그녀 때문에, 그는 이육진에게 이토록 관대해질 수 있었다.그렇다면 이육진은 어떨까?그 역시, 어쩌면 소우연 때문에, 그녀가 그를 여러 번 구해주었기 때문에, 그렇게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줄곧 그녀 곁에 있었다는 사실도 받아들여 줄 수 있는 것일까?“하지만은 없어요!”소우연이 그를 끌어안았다. “만약 방법이 있다면 저한테 말해주세요. 우리 함께 해요. 어차피 하늘의 뜻을 거스르며 운명을 바꿔본 게 한두 번도 아니잖아요!”“그래.”그날 밤, 잠들지 못한 것은 소우연과 용강한 두 사람뿐이 아니었다.이육진도 마찬가지였다.그는 허름한 초가지붕을 올려다보며, 용강한이 소우연과 대체 무슨 이야기를 나눴을지 도무지 짐작이 가지 않았다. 그리고 용강한이 전에 자신에게 했던 그 이야기들… 그 이야기들은 정말로 맞설 방법이 없단 말인가?정말로 맞설 수 없다면, 대체 어찌해야 한단 말인가?동틀 무렵, 가랑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했다.소우연도 동틀 무렵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부슬부슬 내리는 빗소리를 들으며, 그녀는 마치 텅 빈 허공의 세계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허공에 글자들이 마치 장막처럼 그녀의 앞에 펼쳐졌다. 그 광경은 예전에 그녀가 죽음을 맞이했다가 다시 살아나기 전에 보았던 장면과 놀라울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64화

    오늘 밤, 달빛이 흐릿했다.초가집 안에서 소우연은 더워지면 용강한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지만, 그렇게 오래 붙어 있으면 다시 얼음처럼 한기가 느껴졌다.그렇게 덥고 춥기를 반복하니, 그녀는 도무지 잠들 수가 없었다.용강한이 옷감을 사이에 두고 그녀의 손을 잡았다. “연아, 스스로를 힘들게 하지 말아라.”“저는…”“네 마음속에 내 자리가 있다는 걸 아니, 그것만으로도 충분하다.”소우연은 마음이 괴로우면서도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저를 위해 그러실 필요 없어요. 저도 제가 뭘 하는지 알고 있어요. 오라버니는 한 번도 저를 포기하거나 버린 적 없으니, 저도 오라버니를 버리지 않을 거예요.”“네 그 한마디가 나를 참으로 감동시키는구나.”소우연이 살짝 웃었다. “저는 진심을 말한 거예요.”“나도 진심으로 감동했다.”“그럼 얼른 주무세요.”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손을 잡고 싶었지만, 소우연의 몸을 생각해서라도 손을 놓아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소우연이 살짝 미소를 지으며 몸을 일으켜, 용강한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쉬세요.”“그래.”한참이 지나서야 소우연은 용강한이 잠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그녀는 그의 곁에 기대어 이불을 잘 덮어준 뒤, 이불 너머로 그를 끌어안았다.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조금이라도 더 따뜻하게 해주고 싶었다.이미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알 수 없었다.소우연도 점점 졸음이 밀려왔고, 막 잠이 들려던 그 순간, 갑자기 용강한이 악몽에 시달리는 소리가 들려왔다.“나는 네가 우리 운명을 이렇게 멋대로 뒤바꾸는 걸 용납하지 않는다! 나는 용강한이지, 이육진이 아니다!”“강한 오라버니, 강한 오라버니…”소우연이 긴장한 채 벌떡 몸을 일으켰다. 그 목소리에 용강한도 악몽에서 깨어났다.정신을 차린 순간, 용강한은 소우연을 품에 꼭 끌어안았다. 맑으면서도 어딘가 쉰 목소리가 떨렸다.“또… 또 그 여자가 꿈에 나타났다.”“그 여자가 뭐라고 하던가요?”“내게 그러더군. 내가 폐하와 한 몸이라는 사실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63화

    “그 여자는 나와 폐하를 하나로 합치려는 것 같았다. 심지어는 나한테…”용강한의 생각은 꿈속에서 벌어졌던 그 기이한 장면들로 흘러갔다. 얼굴이 뚜렷이 보이지 않던 그 여자가 그에게 참으로 많은 말을 했었다.소우연은 그저 조용히 용강한을 바라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용강한이 두 손을 소우연의 양어깨에 얹고, 그녀를 끌어안으며 말했다. “그 여자가 내게 말하길, 자신이 이 이야기 속 세계의 창작을 끝마쳐야만, 나와 너, 그리고 너와 폐하가 진정으로 맺어질 수 있다고 했다.”소우연이 두 눈을 크게 떴다. 실로 충격적이었다.그가 이 세상을 창조한 작가와 맞서기까지 했다니. 만약 용강한과 이육진이 한 사람이라면…아니, 용강한은 용강한이고, 이육진은 이육진이다. 그런데 그 작가는 어째서 용강한을 이육진의 일부로 만들려는 것일까?그렇게 되면 이육진은 여전히 이육진일 수 있을까?용강한, 그는 정말로 이육진의 일부가 되어버리는 것일까?“믿, 믿을 수 없어요.”소우연은 더듬거리며 겨우 이 말을 내뱉었다.용강한이 헛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나도 믿지 않는다. 나는 나며, 내 의지로 너를 사랑할 것이다. 하나의 기억으로 남아 폐하가 되어 널 사랑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소우연의 눈에서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울지 마라, 울지 마라.”용강한이 얼른 흘러내리는 눈물을 닦아주며, 애틋하게 그녀의 얼굴을 감쌌다. “걱정마라 연아, 나는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어째서 그런 짓을 하려는 거죠?”소우연은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어쩜 그렇게 못됐단 말인가!그녀의 눈빛에는 온통 그 작가에 대한 원망이 가득했다.“그 여자는 너를 편애하고 있다. 하지만 그 편애가…”용강한은 순간 어떻게 말을 이어야 할지 알 수 없었다.소우연이 허탈하게 웃으며 용강한을 바라보고 말했다. “하지만 그 편애라는 게, 이 가상 세계 안에서조차 제가 오라버니와 폐하와 함께하는 것조차 허락하지 않는다는 거군요.”그랬다. 그 여자는 끝내 소우연이 이육진과 용강한, 두 사람과 함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62화

    용강한은 손에 힘을 더 주어 품 안의 여인을 더욱 세게 끌어안았다. 마치 그녀를 자신의 몸속에 녹여 넣으려는 듯했다.소우연도 그런 용강한을 보며 미간을 더욱 좁혔다. “그럼 이제,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저한테 말해줄 수 있나요?”용강한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나도 더이상 연이 너에게 아무것도 숨기지 않으마.”“조금도 속이시면 안 돼요.”용강한이 맹세하듯 손을 들어 올렸다. “나 용강한, 오늘 연이에게 하는 말은 모두 진실이며, 조금의 거짓도 없을 것이다.”“좋아요, 그럼 말씀해 보세요.”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우연을 이끌어 옆의 탁자로 가서 앉았다.“이곳이 누추해서…”“그런 말씀 마세요. 저희 예전에는 황량한 산속에서 야생 열매나 따 먹고, 샘물을 길어 마시며 살았잖아요. 나무 몇 그루 엮어 만든 오두막에서 밤을 지새운 적도 있었고요. 그래도 여긴 초가집이라도 있으니 그때보다는 훨씬 낫지요.”“연이 너는 다 기억하고 있구나.”“당연히 기억하죠. 환상 속의 그 모든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꿈처럼 여겨지겠지만, 오라버니와 저에게는 그렇지 않으니까요.”“그렇지.”그가 소우연을 향해 애틋하게 웃어 보였다. “우리에게는 환상이 아니지. 나에게는, 이번 생 최고의 행운이었던 전환점이었단다.”최고의 행운이었던 전환점이라…소우연은 그 말이 무슨 뜻인지 물론 잘 알고 있었다.깊게 숨을 한 번 들이쉰 뒤, 소우연이 용강한에게 말했다. “이제 말씀해 보세요.”용강한은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우연을 바라보며 물었다. “전에 내가 널 찾아갔을 때 했던 말들을 기억하느냐?”“당연히 기억하죠. 기억하고 있었기 때문에, 꿈속에서 오라버니가 저를 부르는 소리를 들었을 때 저는 정말 두려웠어요.”그녀의 목소리에는 희미한 울먹임이 배어 있었다. 그토록 걱정되고 두려웠기에 이육진을 문산으로 보내 용강한을 찾아보게 했고, 그의 소식이 궁금해 견딜 수 없었던 것이다.“그저께였다. 그날, 마치 이 악몽에서 영영 깨어나지 못할 것 같은 느낌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61화

    “그럴 리 없어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요? 잠시 헷갈리신 게 분명해요.”소우연이 용강한의 손을 꽉 붙잡았다. 그녀는 믿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이육진은 원래 허튼소리를 하는 사람이 아니었다.게다가 용강한도 분명 이육진의 말을 묵인하지 않았던가.용강한이 위로하듯 웃으며 말했다. “그럴지도 모르지.”그럴지도 모른다, 그럴지도 모른다라…소우연의 손이 자기도 모르게 용강한의 손목으로 향했다. 그의 맥박은 분명 예전만 못했다. 못 본 지 얼마나 됐다고 몸이 이렇게까지 쇠약해졌단 말인가.문산의 처소는 무척 소박했다. 줄지어 늘어선 것이라곤 죄다 허름한 초가집뿐이었다. 그 모습을 보니 소우연은 문득 환상 속에서 용강한이 그녀를 데리고 온갖 산수를 누비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 그들은 나무와 나뭇잎, 짚으로 얼기설기 지은 피신처에서 잠시 숙박을 하곤 했었다.그 시절 그는 환상 속 세계에서 오선 중 한 명으로 손꼽히던 존재였다.이육진이 문득 소우연을 끌어안는 바람에, 소우연과 용강한이 맞잡고 있던 손이 떨어졌다.“대인, 연이에게 제대로 설명해 주십시오. 이곳까지 오느라 피곤했을 겁니다. 이만 돌아가 쉬는 게 좋겠습니다.”이육진이 소우연의 등을 토닥이며, 그녀 뒤에 선 용강한에게 말했다.두 남자는 서로의 눈빛을 마주하면서도 조금의 긴장감조차 보이지 않았다. 마치 오래전부터 서로의 뜻을 헤아리고 있었던 사람들처럼 자연스러웠다.용강한이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이육진은 소우연의 손을 놓으며 물었다.“그럼 저는 어디서 자면 되겠습니까?”용강한이 손짓으로 가리킨 곳은 자신의 거처에서 가장 멀리 떨어진 초가집이었다.이육진이 성큼성큼 초가집을 향해 걸어가자, 인기척을 들은 소 대장이 문밖으로 나왔다. 그러다 이육진과 마주치는 순간, 그는 화들짝 놀라 눈을 크게 떴다.“태, 태상황 폐하!”이육진은 그를 한번 흘낏 보더니 그대로 성큼성큼 초가집으로 걸어 들어갔다.소 대장은 머리를 긁적였다. 태상황께서 어찌 이곳까지 오셨을까 싶다가도, 이내 상운국의 태상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60화

    밤이 깊어지자 횃불을 밝힌 탓인지 날벌레들이 사방에서 사람들 주위로 몰려들었다. 불빛을 향해 달려든 벌레들은 그대로 횃불에 닿아 지글지글 타들어 갔다.사람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벌레들은 끊임없이 불빛을 향해 날아들었고, 그렇게 제 목숨을 불 속에 내던지는 모습이 밤새 이어졌다.화랑과 령이는 횃불을 들고 앞장서서 길을 밝혔다.소우연과 용강한, 이육진 세 사람은 그 뒤를 따라 걸었다.소우연은 곁에 있는 용강한을 곁눈질하다가 그의 안색이 유난히 창백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마치 이십 년 전, 이육진을 구하기 위해 공력을 모조리 소진하고 처참한 몰골이 되었던 그때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소우연의 가슴속에 점점 불안이 차올랐다.그녀는 용강한의 손을 덥석 잡아끌었다.손끝에 닿은 그의 몸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어쩐지 아까부터 옷을 유난히 두툼하게 껴입었다 싶더라니… 설마 또 부작용을 당한 것일까?하지만 요즘 들어 그가 천리에 어긋날 만큼 무리하게 공력을 소모한 적은 없었다. 그런데 어째서 또 이런 부작용이 나타난단 말인가?용강한은 이육진이 곁에 있는 자리에서 소우연이 제 손을 잡아줄 줄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순간 몸이 굳은 그는 걸음을 멈추고 소우연을 바라보았다.그와 동시에 소우연과 이육진도 걸음을 멈췄다.세 사람의 시선이 서로에게 향했다.화랑과 령이 부부는 세 사람이 멈춰 선 것을 알아차렸지만 굳이 돌아보지 않았다. 그저 조금 앞서 걸으며 횃불을 높이 들어 어두운 산길을 비춰주었다.횃불 빛 아래.소우연은 용강한의 부드러운 눈동자를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늘 물처럼 온화하던 눈빛에 서리가 내려앉은 듯했다. 입가에는 미소를 띠고 있었지만, 그 깊은 곳에는 얼어붙은 무언가가 고스란히 비쳐 보였다.“나는 괜찮다.”용강한은 제 손을 잡고 있는 소우연의 손을 내려다보며 말했다.“손이 어쩜 이렇게 차가우세요?”“문산의 밤은 원래 서늘하단다.”“아니요. 지금은 초봄인데, 어떻게 여름밤보다 더 차가울 수 있어요?”“여름밤에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537화

    이영도 심초운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얼마나 많이 흔들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가끔 이런 짓까지 한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이영의 말에 심초운이 대답했다.“너무한 건 없습니다. 연희와 경장명 그자의 혼약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연희의 참 인연이 형님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 경장명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심초운의 부모님, 그리고 황태후와 태상황에 이어 주익선의 부모님까지, 그들은 전부 일부일처를 고집하여 왔으며 평생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179화

    이튿날, 경문과 이천은 말을 달려 운불사에 당도하였다.달리는 내내, 이천의 가슴 속엔 설명할 길 없는 불길한 예감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큰일이 아니고서야, 사부님께서 경문을 보내어 자신을 부를 리 없었다.“사부님.”이천은 용강한의 얼굴을 보자 안절부절못한 채 입을 열었다.“이영 누님은 사부님께서 누님 때문에 경성을 떠나셨다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용강한은 조용히 응하였다.“그 일은 이미 심초운에게 부탁하였다. 그 아이가 영이를 잘 달랠 것이다.”“경성을 떠나신 것이 누님 때문이 아니라면…”이천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17화

    이육진을 떠올리자, 소우연의 가슴 한켠이 은근히 저려왔다.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을 받아들이겠노라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이 모든 것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미안함은 여전히 얇은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용강한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보따리를 풀어 수통과 몇 가지 다과를 꺼내 가지런히 늘어놓았다.“이 야명주는 마계를 떠날 때 챙겨온 것이긴 하나, 폐하의 물건은 아니다.”담담한 설명에 소우연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어디서 난 건가요?”“혼돈에게서 얻은 것이란다.”순간 소우연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혼돈이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37화

    “그렇지. 이 모든 것은 공적에 따른 보상이다. 인간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내 직접 그자를 멸하리라.”이육진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기 장로가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마계를 나갈 수만 있다면… 마존께서 품행이 단정한 자들을 인간 세상에 정착하게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계는 줄곧….”“인간과 마족은 본래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이육진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마족은 타고난 힘이 강하고 수련 또한 용이하다. 인간 세상에 나가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누르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생겨

Higit pang Kabanata
Galugarin at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Libreng basahin ang magagandang nobela sa GoodNovel app. I-download ang mga librong gusto mo at basahin kahit saan at anumang oras.
Libreng basahin ang mga aklat sa app
I-scan ang code para mabasa sa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