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Author: 주 한잔

제1화

Author: 주 한잔
“안 돼!”

극심한 통증에 소우연은 큰소리로 외치며 눈을 번쩍 떴다.

소우연 앞에 펼쳐진 건 화려하게 꾸며진 방이었으며 향초가 불에 타고 있는 소리가 들렸고 은은한 향도 퍼지고 있었다.

조금 전까지 온몸을 괴롭히던 통증도 전부 사라진 것만 같았다.

소우연은 어안이 벙벙한 표정으로 방을 쓱 훑어보았고 단번에 이 방이 신혼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으며 고개를 숙여보니 자신은 혼례복을 입고 있었다.

이 혼례복은 소우연이 쌍둥이 여동생 소우희를 위해 3년에 거쳐 직접 만든 혼례복이었는데 결국 소우연이 이 혼례복을 입고 시집가게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그리고 소우연의 결혼 상대는 악명이 자자한 회남왕 이육진이다.

상운국에서 명망 높은 전쟁의 신이었던 이육진은 3년 전 전쟁에서 부하에게 배신을 당해 위험한 상황에 처했었다. 결국 목숨 걸고 싸워서 위험한 상황을 벗어났지만 그 과정에서 온몸의 신경들이 전부 잘려 폐인이 되고 말았다.

그 뒤로 이육진은 성격이 난폭해지기 시작했으며 곁에서 시중을 들고 있는 노비와 시녀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기도 했다.

황제가 이육진에게 혼인을 몇 차례나 하사했지만 신부들은 혼사를 치른 이튿날 바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회남왕 관저 밖에 버려졌다.

그러다가 한 달 전, 이육진의 모친 덕빈은 황제 앞에서 난동을 부리며 다시 한번 혼인을 하사해달라고 했고 그 상대가 바로 진원 장군 가문의 둘째 딸 소우희였다.

어렸을 때부터 소우희를 애지중지 키운 소씨 가문에서는 당연히 사랑하는 딸을 이육진에게 보낼 수 없었기에 결국 소우연이 쌍둥이 여동생 대신 이육진과 혼인을 하게 된 것이다.

사실 소우연은 오래 전부터 연모하는 사내가 있었으며 어렸을 때부터 함께 큰 두 사람은 혼인을 약속한 사이이기도 했다.

때문에 소우연은 이육진에게 시집을 가기 싫었고 더군다나 회남왕에 관한 소문이 너무 흉흉한 탓에 겁이 나기도 했다.

그러다가 혼사가 이뤄진 당일 날, 소우연은 소우희의 꼬드김에 넘어가 결국 도망을 결심하게 되었는데 멀리 도망치기도 전에 다시 잡혀오게 되었다.

크게 노한 덕빈은 소우연의 사지를 부러트린 뒤, 그녀를 소씨 저택 대문 앞에 던져 버렸다.

소우연은 가족들이 자신을 집에 데리고 가서 상처를 치료해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녀의 바람과 달리 소씨 저택의 대문은 끝까지 굳게 닫혀 있었으며 아무도 나와보지 않았다.

그렇게 살을 에이는 듯한 겨울 바람에 온몸에 상처까지 심각했던 소우연은 결국 대문 밖에서 얼어 죽고 말았지만 소씨 가문에서는 그녀가 죽고 나서 시체를 거둬가지도 않았다.

소우연은 죽는 순간이 되어서야 자신은 그저 소설 속의 하찮은 조연이고 자신의 쌍둥이 여동생은 소설 속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여자 주인공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때문에 소우연은 아무리 노력하고 발버둥쳐도 소씨 가문 사람들은 절대 그녀에게 신경 쓸 리가 없었으며 그녀는 그저 소우희 대신 희생하기 위해 존재한 사람이었다.

한편,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소우연은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침대에 멍하니 앉아 예전의 기억들을 되돌려보고 있었다.

소설 속 내용에 의하면 이육진은 최대 악역이다. 얼굴이 망가지고 몸 전체가 폐인이 된 탓에 이육진은 성격이 변태적이고 포악했으며 소설 속 남녀 주인공들을 괴롭히다가 결국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되어있다.

소우연은 이육진을 생각하면 조금 안타깝기도 했다. 명성이 자자한 전쟁의 신이 결국 그런 최후를 맞이하다니. 그의 인생도 소우연 못지 않게 불행하고 처참했다.

소우연과 소우희는 모친 뱃속에 있을 때부터 운명이 정해져 있었다. 점쟁이는 소우희가 귀한 운명을 가지고 태어날 아이이고 이와 반대로 소우연은 태어나는 순간 소씨 가문에 불행을 불러올 거라고 했다.

점쟁이가 말한 것처럼 소우연이 태어난 뒤로 소씨 가문에는 사건 사고들이 유난히 많았기에 가문 사람들은 점쟁이 말을 굳게 믿은 채 소우연을 홀시하고 냉대했다.

소우연은 평생 소씨 가문을 위해 희생했지만 결국 대문 앞에서 처참한 죽음을 당했고 심지어 시체 일부가 들개들에게 먹혔다.

하지만 예상 밖으로 결국 소우연의 시체를 거둔 사람은 이육진이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방 문이 열렸고 휠체어에 탄 남자가 덤덤한 표정으로 방 안으로 들어왔다.

혼례복을 입고 있는 이 남자의 얼굴은 절반 이상이 심각한 화상을 입었고 화상을 입지 않은 반대쪽 얼굴에는 어마 무시한 칼자국 흉터가 나 있었다.

그 모습은 더할 나위 없이 공포스러웠다.

살짝 겁을 먹은 소우연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옷을 꽉 잡은 채 조심스럽게 이육진의 눈치를 살폈다.

이번 생에는 절대 섣불리 도망치지 않을 것이다. 회남왕 관저에서 도망치는 순간, 소우연은 또다시 처참한 죽음을 당하게 된다.

덕빈은 아들 이육진을 그 누구보다 걱정했기에 아들을 모욕하는 사람은 절대 가만두지 않았다.

소우연은 이제 이육진이 떠도는 소문처럼 성격이 그리 난폭하지 않기를 빌 수밖에 없었다.

“그만 물러가거라.”

낮게 깔린 이육진의 목소리에 뒤에 서있던 호위무사는 소우연을 경계하듯 쳐다보다가 이내 돌아서서 방을 나섰다.

그렇게 방 안에는 이육진과 소우연 두 사람만 남게 되었다.

소우연은 조금 긴장이 되긴 했지만 사실 이육진이 그리 무섭지는 않았다. 전생에 그녀의 시체를 거둔 것으로만 봐도 이육진은 소문처럼 그렇게 악마 같은 사람은 아닐 것이다.

“소인이 시중을 들어도…”

잔뜩 긴장한 소우연은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그 모습에 이육진은 소우연의 말을 끊으며 담담하게 물었다.

“내가 무서워?”

“아닙니다. 소인은… 소인은 그저 조금 긴장이 돼서…”

말까지 더듬는 소우연을 보며 이육진이 피식 웃음을 보였다.

“당연히 내가 무섭겠지.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데 안 무서운 게 더 이상하지 않겠어?”

소우연은 고개를 살짝 들어 이육진을 힐끗 쳐다보았다.

얼굴이 공포스러울 정도로 심하게 망가졌지만 치료가 안 될 정도는 아니었다.

어렸을 때 소우희가 장난을 치다가 화상을 입게 되었는데 그때 당시 가족들은 세상이 무너진 듯 엉엉 울면서 발만 동동 굴렀고 소우연은 부모님의 걱정을 덜어드리기 위해 밤낮없이 치료제를 연구했었다.

그 결과, 흉터 치료에 효과가 매우 훌륭한 약을 조제해냈고 덕분에 소우희는 몸에 난 화상 흉터가 깔끔하게 없어졌다.

이육진의 흉터가 소우희보다 훨씬 심각하지만 그래도 흉터가 꽤 많이 치료될 수는 있을 것이다.

소우연이 침대에서 내려와 이육진에게 천천히 다가갔다. 하지만 손이 휠체어에 닿기도 전에 이육진이 소우연의 손을 툭 밀쳐냈고 화들짝 놀란 소우연은 얼른 해명했다.

“소인에게 나쁜 의도는 없습니다. 이제 밤도 깊었는데 왕야께서도 이만 쉬셔야 할 것 같아서 도와드리려고 한 것뿐입니다.”

이육진은 말없이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소우연을 뚫어져라 쳐다보았고 그 눈빛에 소우연은 심장이 터질 것만 같아서 이내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소씨 가문에서 큰 결심을 했네.”

코웃음을 치던 이육진은 직접 휠체어를 끌고 침대 곁으로 가더니 두 손으로 휠체어 손잡이를 툭 쳤다.

다음 순간, 허공 위로 날아오른 이육진은 손바닥을 빠르게 앞으로 뻗었고 그대로 침대 위에 완벽하게 착지했다.

소우연은 그런 이육진을 보며 너무 놀라서 입을 떡 벌렸다.

‘이육진은 완전히 폐인이 된 게 아니었어! 두 다리는 더 이상 쓰지 못하지만 무술 실력은 여전히 대단해! 그럼 지금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있었던 거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Comments (6)
goodnovel comment avatar
강호영
오. 흥미진진하게 나가는데.
goodnovel comment avatar
이영희
계속해서읽고싶어요ㅎ
goodnovel comment avatar
이영희
재미있어요다음엔어떤상황이벌어질까요? 궁금궁금!
VIEW ALL COMMENTS

Latest chapter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95화

    이천 등은 서로 눈빛을 주고받다가, 결국 모두 자리에서 일어났다.그들도 어마마마를 어떻게 위로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그들 모두 외삼촌에게 가르침을 받은 이들인 만큼, 외삼촌의 맥만 보고도 모든 답을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이진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어마마마, 저희는 그저 외삼촌이 걱정될 뿐이에요.”소우연이 고개를 돌려 이진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 효심은 안다. 너희 외삼촌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너희가 무릎 꿇는 건 허락 못 한다. 너희 외삼촌은 아무 일 없을 게다!”마치 그들이 상을 치르며 조문이라도 하는 것 같지 않은가!용강한이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연아, 그렇게까지 화낼 것 없다. 내 몸은 내가 잘 안다.”“그런 말씀 하시는 거 허락 못 합니다!”“알았다, 알았어, 말하지 않으마.”용강한은 그녀의 붉어진 눈을, 구슬처럼 뚝뚝 떨어지는 눈물을 바라보았다. 이것이 어찌 연기이겠는가, 분명 그녀는 진심으로 마음 깊이 상처받아 슬퍼하고 있었다!그가 떨리는 두 손을 들어 그녀의 머리를 어루만졌다.“나 때문에 슬퍼하지 마라. 사람이 세상을 살면서 열에 여덟아홉은 뜻대로 되지 않는 법이지. 만약 정말 그날이 온다 해도, 나는 영원히 너를 잊지 않을 것이다.”사람이 정말 죽고 나면, 과연 누가 누구인지 기억이나 할 수 있을까?전생에 죽은 뒤 다시 태어난 모든 것도 결국 그 작가가 조종한 것에 불과했으니, 나머지 사람들이야 의식의 잔재로 무엇을 기억할 수 있겠는가?소우연은 그만두려다가도, 만에 하나 이기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떠올랐다.이천이 먼저 일어섰고, 이영 등도 뒤따라 일어섰다.그들 마음속에도 어딘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외삼촌은 전부터 기력이 미약해 보였고 별조차 쇠약해지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급격히 무너질 정도는 아니었는데 말이다.어마마마가 무릎 꿇지 못하게 하시는 건, 그들이 상을 치르듯 굴고 있다 여기시기 때문이리라…소우연이 고개를 돌려 이천 등을 바라보며 말했다.“너희는 다들 돌아가 쉬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94화

    그날 아침 조회가 끝난 뒤, 령이가 허둥지둥 대전으로 달려와 아뢰었다.“대왕, 어서 용 대인을 좀 살펴봐 주십시오.”“용 대인이 왜?”소우연이 물으며 용부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용 대인께서 피를 토하셨습니다. 박 의원 등이 이미 가서 살펴보았지만 다들 속수무책이었습니다.”소우연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용강한의 병세는 그녀조차 손쓸 방법이 없는데, 박 의원 등이야 당연히 더더욱 도리가 없을 터였다.비록 모든 것이 준비되어 있었지만, 그녀의 마음은 여전히 걱정스러웠다. 이 모든 것은 결코 이육진이 말한 대로 걱정하는 척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그녀는 걱정하는 척을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걱정되어 죽을 지경이었다.“이 대인께는 알렸느냐?”“이 대인께서는 민생을 살피러 지방에 나가 계셔서, 제가 미처 찾아뵙지 못했습니다.”령이가 사실대로 아뢰었다.“알겠다.”소우연의 발걸음이 점점 빨라져, 령이는 도무지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대왕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령이는 생각했다. 예전에는 마님이 여리고 가녀려 보였는데, 지금 보니 분명 무예를 익힌 몸이었구나.소우연이 용부에 도착했을 때, 이천 등은 이미 한발 앞서 와 있었다.그들이 용강한의 침상 앞에 무릎 꿇고 있는 모습을 보자, 소우연은 놀라 하마터면 정신을 잃을 뻔했다.그녀는 스스로에게 되뇌었다. ‘당황하면 안 된다, 당황하면 안 된다.’ 이런 상황은 이육진이 진작 일러준 것이니, 스스로 겁먹어서는 안 된다고.한편으로는 당황하지 말자 되뇌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놀라 쓰러질 듯한 모습을 연기해야 했다.소우연이 달려들며 외쳤다.“오라버니, 오라버니…”연기랄 것도 없이, 그녀의 눈물은 실이 끊어진 구슬처럼 뚝뚝 떨어져 내렸다. 그녀가 바닥에 무릎 꿇은 아이들을 향해 말했다.“다들 일어나거라, 다들 일어나거라. 너희 외삼촌께는 아무 일 없으실 거다, 어째서 무릎을 꿇고 있느냐?”그녀는 소리치면서 동시에 울었다.눈물이 도무지 멈추지 않았다!심장도 누군가에게 꽉 움켜쥐인 듯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93화

    그리하여 화랑이 솜이불을 보내오자, 이천과 이영 등도 먼저 인사를 하고 자리를 떴다.소우연과 이육진은 원래 용강한을 따라 그의 본채로 돌아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생각이었다.그런데 용강한이 이육진에게 물었다.“연이에게는 말씀하셨습니까?”이육진이 고개를 저었다.“아직 말하지 못했습니다.”“이 무더운 여름에도 제 방에는 화롯불이 있어 몹시 덥습니다. 이렇게 춥고 더운 것을 오가다가 혹여 병이라도 나시면 고생이 아니겠습니까? 저를 따라 괜한 고생 하지 마십시오.”“그리 많이 고생하는 것도 아닙니다.”소우연이 말했다.“남국이 막 세워져 몸소 처리해야 할 일들이 많을 텐데, 무리하지 않는 편이 좋겠구나.”용강한이 다시 한번 사양했다.소우연은 입을 열려다 결국 그만두었다.용강한이 이육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방심하지 마십시오.”이육진이 뜻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끄덕였다.“예.”두 사람이 눈짓을 주고받는 모습을 보면서도, 소우연은 그들이 대체 무슨 무언의 대화를 나누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왕궁으로 돌아온 뒤.령이는 이미 뜨거운 물을 준비해두고 있었다.이육진이 직접 욕조에 물을 가득 채워 주고는, 둘이 함께 목욕을 했다.침소에 든 뒤.이육진의 손과 발이 슬슬 짓궂어지기 시작했다.소우연이 말했다.“부군은 조금도 피곤하지 않으신가 봐요.”“이전에 상운국 전체를 다스릴 때도 피곤한 줄 몰랐단다.”그가 웃으며 말했다. “그런데 연이는 겨우 며칠 다스렸다고 벌써 힘든 게냐?”“진짜 힘들다니까요.”그녀가 이육진을 바라보며 말했다.“부군과 오라버니, 두 사람 대체 음…”소우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이육진이 그녀의 입술에 입을 맞춰 더는 말을 잇지 못하게 만들었다.다만 두 사람의 호흡이 서서히 맞아갈 즈음, 이육진이 소우연의 귓가에 나직이 속삭이며 은밀한 이야기를 전했다.처음에 소우연은 그저 옳지 않다고만 여겼다.하지만 그것이 용강한과 이육진이 함께 상의해낸, 유일한 살길이라는 것을 알게 되자 그녀는 하마터면 그 자리에서 멍해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92화

    이진이 웃음을 터뜨렸다. “언니, 이 과육은 하얀 것 같지만 즙이 많고 달다고 해도, 박 의원님이 말씀하시길 이것도 너무 많이 먹으면 열이 난다고 했어요. 남의 땅에 온 것이니 남의 말을 잘 들어야지, 많이 먹을 수는 없습니다.”이영이 손에 들었던 여지를 재빨리 한입에 먹었다. “응, 정말 많이 먹으면 안 되겠구나.”오라버니도 이미 수없이 당부한 일이었다.하지만 이진과 심연희가 계속 껍질을 벗겨 먹는 것을 보자 이영은 자꾸만 침이 고였다.그녀는 차라리 시선을 돌렸다.평생 살면서 못 먹어본 것이 무엇이겠는가. 그런데 요즘 들어 점점 욕심이 많아지는 것 같았다. 먹을 것이라면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다 먹고 싶어졌다.“아, 그냥 저도 안 먹겠습니다.”이진이 손에 들었던 마지막 하나를 먹은 후 손을 헹궜다.심연희도 말했다. “맞아요, 저도 안 먹겠습니다.”이영이 서둘러 말했다. “어머, 그럴 필요 없다. 내가 못 먹는다고 너희까지 못 먹을 까닭이 있겠느냐?”바로 그때 심초운, 이천, 주익선이 들어왔다.“무슨 이야기라도 나누고 있는 것 같은데, 다들 무엇을 하고 계세요?” 이영이 여지를 가리키며 물었다.“음,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었단다. 경성으로 돌아가면 이렇게 맛있는 여지를 또 어디서 먹겠느냐?”심초운은 이영이 진정으로 그리워하는 사람이 아바마마와 어마마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다가가 그녀를 살며시 안아주었다.“아까 형님께서 말씀하셨는데, 태상황 폐하와 태후 마마께서 저희더러 영남에서 며칠 더 머물다 가라고 하셨습니다.”“그게 정말이냐?”이영이 이천을 바라봤다. 아바마마와 어마마마께서 자신들이 오래 머무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으실 줄 알았는데, 생각해 보니 경성에는 아직 어린 이윤만 남아 있으니 자신들을 좀 더 곁에 두고 싶어 하시는 모양이었다.이천이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정말이다.”그러고는 심연희를 바라보았다.“나도 며칠 더 머물다 경성으로 돌아갈 테니, 그때 함께…”“저는 부군과 함께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91화

    심초운과 주익선이 자리에 앉으니 이육진이 절을 했고, 이육진도 답례를 한 후 모두가 자리에 앉았다.용강한이 말했다. “방금 초운이가 말했는데, 너희가 모레 떠날 준비를 한다고?”“그렇습니다. 다만 방금 어마마마와 아바마마를 뵈었는데, 어마마마께서 저희더러 며칠을 더 놀다가 떠나라고 하셨습니다.”이천이 솔직하게 대답했다.심초운이 이육진을 바라봤다. “그럼 저희도 며칠 더 늦춰 가는 게 어떻겠습니까? 폐하께서 지금 회임하신 몸이시니, 이곳을 떠나기가 더욱 아쉬우실 테고요.”이천이 말했다. “영이가 영남에 있고 싶으면 남겨두거라. 경성 쪽은 내가 있으면 충분하니.”“그럼 좋겠군요.”심초운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진과 주익선 부부는 이미 영남에 정착하기로 결정했고, 이영은 그것이 부러워 견딜 수 없었다.이영은 상운국의 황제였으니, 계속 영남에만 머물 수는 없었던 것이다.하지만 이천이 경성으로 돌아가 정사를 맡아 돌본다면, 이영은 영남에서 한두 달 더 머물다 상운국으로 돌아가도 큰 문제는 없었다. 그때쯤이면 아이도 네댓 달이 되어 태중에서도 한결 안정될 터였다.화랑은 이천이 오자 다시 방 안으로 들어가 찻잔과 찻물을 더했다.해가 저물 무렵이 되자 세 사람은 용강한에게 작별 인사를 고하고, 돌아가 이영과 이진, 심연희 세 사람을 데리고 와 함께 저녁을 들겠다고 했다.용강한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너희들은 가거라.”“예.”세 사람이 떠난 후, 화랑이 들어와 얼굴가득 부러움을 띠며 말했다. “몇 분의 귀인께서 그리도 고귀한 신분이신데도 곁의 사람들을 특별히 살뜰히 돌보시니, 참으로 보기 좋습니다. 이것이 귀인과 저희 같은 평민의 다른 점일까요?”용강한의 입가에 옅은 미소가 맺혔다.“사람의 귀천이야 절반일 뿐, 결국은 제 본심에 달려 있는 법이지.”그는 화랑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네 부인을 잘 돌보는 것처럼, 네 부인 역시 마음속으로는 네가 가장 좋은 사람이라 생각할 테니까.”화랑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감사합니다, 대인.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690화

    이천은 조금 의아한 듯 뒤를 돌아 소우연을 바라보았다.“어마마마?”소우연은 가슴이 먹먹해졌다.그녀는 이천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잡았다.“언제 떠날지는 정했느냐?”이천은 고개를 저었다.정하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차마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부친, 그리고 모친과 조금이라도 더 함께 있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소우연은 깊이 숨을 들이마셨다.“그럼 며칠 더 머물다 떠나는 것은 어떻겠느냐?”이천은 눈가에 눈물이 맺힌 소우연을 바라보았다.그러자 알 것 같았다.부친과 모친 역시 자신들을 떠나보내기 아쉬운 것이다. 분명 그러할 터였다.이천은 고개를 끄덕였다.“네.”소우연은 이천의 손을 꼭 잡았다.막상 떠난다고 생각하니, 그녀 역시 그를 보내기가 아쉬웠다.그때 이육진도 자리에서 일어나 이천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다.“이 녀석아, 한 번 응석을 부리더니 도리어 네 어미 마음만 여리게 만들어 속상하게 하는구나.”소우연은 말없이 이육진을 바라보았다.틀린 말은 아니었다.그녀 역시 마음 한구석에 미안한 마음이 있었다.이번 생의 이천은 너무나 고생이 많았다는 생각이 들었다.경성으로 돌아간 뒤에도 가족이 한자리에 모여 제대로 함께 지내지 못했으니 말이다.이육진은 이천을 품에 안았다가 이내 놓으며 말했다.“그럼 연이 말대로 며칠 더 머물다 경성으로 돌아가거라. 앞으로는 우리가 보고 싶거든 언제든 영남으로 찾아오너라.”“네, 소자가 알겠습니다. 소자가…”이천은 무언가 말하려다 입을 열지 못하고 머뭇거렸다.소우연은 이런 이천의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그러자 어릴 적부터 줄곧 타지에서 떠돌며 지내온 아이가 더욱 안쓰럽게 느껴졌다.“천아, 하고 싶은 말이 있느냐?”이천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저는 진이가 부럽습니다. 진이와 익선이는 주 대장군과 정연 아주머니까지 영남으로 모셔 오지 않았습니까. 아마 한 달쯤 지나면 도착할 것입니다.”소우연이 부드럽게 말했다.“우리 천이는 워낙 훌륭하니 그만큼 짊어져야 할 것도 많은 게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537화

    이영도 심초운과 같은 생각이었다. 하지만 마음이 얼마나 많이 흔들렸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다.“가끔 이런 짓까지 한 우리가 너무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는구나.”이영의 말에 심초운이 대답했다.“너무한 건 없습니다. 연희와 경장명 그자의 혼약은 애초부터 잘못된 것입니다. 연희의 참 인연이 형님이 아니라고 해도 절대 경장명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심초운의 부모님, 그리고 황태후와 태상황에 이어 주익선의 부모님까지, 그들은 전부 일부일처를 고집하여 왔으며 평생 다들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이런 모습을 보면서 이제는 부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1179화

    이튿날, 경문과 이천은 말을 달려 운불사에 당도하였다.달리는 내내, 이천의 가슴 속엔 설명할 길 없는 불길한 예감이 깊게 드리워져 있었다.큰일이 아니고서야, 사부님께서 경문을 보내어 자신을 부를 리 없었다.“사부님.”이천은 용강한의 얼굴을 보자 안절부절못한 채 입을 열었다.“이영 누님은 사부님께서 누님 때문에 경성을 떠나셨다 생각하실지도 모릅니다.”용강한은 조용히 응하였다.“그 일은 이미 심초운에게 부탁하였다. 그 아이가 영이를 잘 달랠 것이다.”“경성을 떠나신 것이 누님 때문이 아니라면…”이천은 비로소 안도의 숨을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17화

    이육진을 떠올리자, 소우연의 가슴 한켠이 은근히 저려왔다. 그가 두 사람의 인연을 받아들이겠노라 말하긴 했지만, 그 말이 모든 것을 지워주지는 못했다. 미안함은 여전히 얇은 그림자처럼 마음속에 남아 있었다.용강한은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보따리를 풀어 수통과 몇 가지 다과를 꺼내 가지런히 늘어놓았다.“이 야명주는 마계를 떠날 때 챙겨온 것이긴 하나, 폐하의 물건은 아니다.”담담한 설명에 소우연이 그를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그럼 어디서 난 건가요?”“혼돈에게서 얻은 것이란다.”순간 소우연의 눈이 가늘게 떨렸다. 혼돈이라

  • 난 이 소설의 주인공이 아니었다   제2237화

    “그렇지. 이 모든 것은 공적에 따른 보상이다. 인간 세상에서 문제를 일으키는 자가 있다면, 내 직접 그자를 멸하리라.”이육진의 음성은 서릿발처럼 차가웠다. 기 장로가 숨을 고르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마계를 나갈 수만 있다면… 마존께서 품행이 단정한 자들을 인간 세상에 정착하게 하셔도 되지 않겠습니까? 우리 마계는 줄곧….”“인간과 마족은 본래 양립할 수 없는 존재다.”이육진이 단호히 말을 끊었다.“마족은 타고난 힘이 강하고 수련 또한 용이하다. 인간 세상에 나가면, 자신보다 약한 자를 억누르고자 하는 자가 반드시 생겨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