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are

제21화: 무너진 성채

Author: 6jay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3 07:58:29

혈액 검체를 맡긴 지 한 시간 뒤, 장대비를 가르던 도현의 검은 세단이 성북동 본가 앞에 멈춰 섰다. 흠뻑 젖은 도현이 저택 안으로 들어서자 강 여사는 거실에서 홍차를 마시고 있었다.

"도현아, 이 야심한 시각에 꼴이 그게 뭐니? 체통 없이 비는 왜 맞고 다녀?"

강 여사의 태연한 목소리가 거실에 울렸다. 도현이 젖은 코트 차림으로 가까이 다가오자 강 여사는 찻잔을 내려놓았다.

"어머니."

도현의 목소리가 낮게 가라앉았다.

"5년 전 그날 밤, 왜 서연이 아버지 치료를 끊고 산소호흡기를 떼라고 지시하셨습니까?"

강 여사는 잠깐 굳었다가 곧 코웃음을 쳤다.

"그깟 일로 이 밤중에 찾아와 소란을 피우는 게냐? 어디서 굴러먹던 천박한 고아 사기꾼 년이 감히 선진가 안주인 자리를 넘보길래 싹을 잘라버린 것뿐이다. 아비 목숨줄이라도 끊어놔야 그년이 두 번 다시 네 발목을 안 잡을 테니까!"

강 여사는 치료 중단을 지시한 사실을 숨길 생각조차 없어 보였다. 도현은 이를 악물었다.

"그 사기꾼
Continue to read this book for free
Scan code to download App
Locked Chapter

Latest chapter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42화: 녹아내린 얼음

    선진의료원 권역외상센터 응급 수술실의 붉은 수술등이 켜졌다."환자 혈압 50에 30! 복강 내 과다 출혈과 간 손상이 의심됩니다. 긴급 개복 지혈술을 시작합니다!"수술실 문이 닫히자 서연은 복도 의자에 주저앉았다. 도현이 흘린 피가 하얀 셔츠와 떨리는 손바닥에 말라붙어 있었다."바보같이…… 왜 또 목숨을 걸어요……."우진도 수술실 문 앞에서 작은 주먹을 꼭 쥐었다."아저씨…… 죽으면 안 돼. 나 아직 아빠라고 제대로 안 불러줬단 말이야."수술을 기다리는 6시간 동안 서연은 같은 복도를 수십 번 걸었다. 우진은 정 실장 곁에 앉아 있다가도 문이 열리는 소리만 나면 고개를 들었다."엄마, 아저씨가 죽으면 어떡해?"서연은 쉽게 괜찮다고 말하지 못했다."의사 선생님들이 살리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어. 우리도 여기서 기다리자."우진은 고개를 끄덕이고 도현의 꽃무늬 앞치마를 무릎 위에 올려놓았다. 주머니 안에는 구겨진 채점표가 들어 있었다.서연은 수술 동의서와 경과 설명서를 손에 든 채 의료진의 말을 한 줄씩 되물었다. 두려움 때문에 놓친 내용이 없도록 간 손상 범위와 수혈 가능성, 회복 뒤 위험까지 적었다. 정 실장이 물과 담요를 건넸지만 서연은 수술실 불이 꺼질 때까지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았다.정 실장이 흉기와 휴대폰이 경찰에 인계됐다고 보고하자 서연은 우진 앞에서는 사건 이야기를 멈춰 달라고 했다.우진이 앞치마를 만지작거리며 물었다."나 때문에 아저씨가 다친 거야?"서연은 아이 앞에 무릎을 굽혔다."아니야. 잘못한 어른의 책임이야. 우진이는 아무 잘못 없어.""그럼 아저씨가 깨어나면 오늘만 감점 안 할게."서연이 아이를 안자 참았던 몸의 떨림이 뒤늦게 전해졌다.***6시간에 걸친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41화: 몸을 던진 방패

    경기도 파주 추모공원 납골당 앞 야외 대리석 계단. 쏴아아아-! 세찬 가을 장대비가 쏟아져 내리는 빗속에서, 검은 우비를 뒤집어쓴 괴한이 품속에서 긴 회칼을 꺼내 들었다."강순옥 회장님을 감방에 처넣은 대가다! 네놈 아들 새끼 목부터 따주마!"괴한은 서연의 손을 잡고 계단을 내려오던 우진을 향해 곧장 달려들었다."우진아-!"서연이 우진을 감싸 안으려 몸을 돌렸지만 괴한이 더 가까웠다. 도현은 우진의 어깨를 끌어당기고 서연을 옆으로 밀어내며 두 사람 앞을 몸으로 막았다.푸욱-! 칼날이 도현의 왼쪽 옆구리를 깊게 파고들었다가 괴한의 손과 함께 빠져나왔다."컥……!"도현의 입에서 눌린 신음이 새어 나왔다. 도현은 숨을 제대로 쉬지 못하면서도 상처를 한 손으로 누르고 어깨로 괴한을 밀어냈다. 서연이 우진을 끌어안고 계단 아래로 물러나는 사이, 추모공원 보안요원과 뒤따라온 경호팀이 괴한을 바닥에 제압했다."칼 치워요! 119 불렀습니다!"서연의 외침과 함께 한 요원이 떨어진 흉기를 발로 밀어냈다. 쿵. 도현은 피로 물든 복부를 부여잡은 채 빗물 고인 차가운 바닥에 무릎을 꿇었다. 남자는 시야가 하얗게 탈색되어 가는 극심한 저혈압 쇼크 와중에도, 떨리는 피 묻은 손을 뻗어 우진의 뺨을 더듬었다."우진아…… 우리 아들…… 다친 데는 없니……?"아이의 작은 볼을 어루만진 도현의 고개가 맥없이 꺾이며 빗물 위로 쓰러졌다. 서연은 도현의 옆구리에 접은 천을 대고 두 손으로 압박했다."눈 감지 마요. 구급차 올 때까지 나 봐요."도현은 대답 대신 우진이 있는 쪽으로 눈을 움직였다. 아이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도현의 손가락을 붙잡았다."없어. 그러니까 아저씨도 자면 안 돼."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40화: 아버지의 납골당

    이튿날 오전, 비가 촉촉이 내리는 경기도 파주 추모공원 납골당. 고(故) 한명석 수석 연구원의 영정 사진 앞에 세 사람이 나란히 섰다. 5년 전, 강 여사가 치료비와 전원 지원을 끊은 뒤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숨진 서연의 부친. 서연은 유리관에 손을 얹으며 붉어진 눈으로 속삭였다."아빠…… 서연이 왔어요. 아빠 외손자 우진이도 이렇게 건강하고 씩씩하게 잘 자랐어요."네 살배기 우진이 작은 손으로 사진 속 외할아버지의 얼굴을 쓰다듬었다."할아버지, 안녕? 난 우진이야. 천재라서 한글도 다 뗐어."그 모습을 지켜보던 차도현은 젖은 대리석 바닥 앞에 무릎을 꿇고 두 손을 짚었다. 영정 사진을 올려다본 뒤 깊이 고개를 숙였다."아버님, 제가 서연이의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 제가 확인했어야 할 일을 남에게 맡겼고, 그 오만 때문에 서연이와 우진이를 혼자 버티게 했습니다."남자의 목소리가 여러 번 갈라졌다."제가 저지른 일은 평생 사과해도 없어지지 않는다는 걸 압니다. 도망치지 않고 두 사람 앞에서 책임지겠습니다. 부디 지켜봐 주십시오."도현의 말이 끝나자 서연의 눈에서도 눈물이 흘렀다. 서연은 한동안 말이 없다가 도현의 젖은 어깨에 손수건을 올려주었다."그만 일어나요. 아버지도 다 들으셨을 거예요."서연은 영정 앞에 작은 보온병을 내려놓았다."아빠가 병원에 있을 때 제일 좋아하던 보리차예요. 늦었지만 오늘은 우진이랑 같이 가져왔어요."우진은 주머니에서 접은 종이를 꺼냈다. 자신과 서연, 그리고 구석에서 걸레를 들고 있던 도현을 그린 그림이었다. 전보다 도현의 키가 조금 커져 있었다."할아버지, 이 아저씨는 아직 시험 중이야. 그래도 요즘은 엄마 말 잘 들어."도현은 준비해 온 사과문을 꺼내지 않았다. 종이보다 직접 말하는 편이 맞았다.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39화: 절대적 복종

    새벽 5시 반, 서울 성북동의 한적한 주택가 서연의 집 앞. 새벽안개가 내려앉은 대문 앞에, 단정한 셔츠 차림의 차도현이 보온 도시락 가방을 조심스럽게 내려놓고 있었다.남자는 우진이 퇴원한 이후 지난 2주간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매일 새벽마다 우진의 면역력 강화와 알레르기 예방을 위한 특수 맞춤 영양죽과 정갈한 밑반찬을 직접 조리해 배달하고 있었다. 철컥-! 대문이 열리며 출근 준비를 마친 서연이 마당으로 나왔다. 문 앞에 꼿꼿이 서 있는 도현을 본 서연의 맑고 차가운 눈매가 가늘어졌다."차도현 씨, 지분 신탁 서류까지 들고 왔으면 됐지, 왜 매일 새벽마다 이 미련한 짓이에요?"서연이 핀잔을 주자 도현은 짧게 고개를 숙였다."지분과 용서는 별개라는 거 알아. 너희가 날 받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다만 문밖에서라도 필요한 일을 하게 해줘."그때, 유치원 가방을 멘 네 살배기 우진이 문을 열고 쪼르르 걸어 나왔다."음, 아주 맛있는 냄새!"우진이 보온 도시락 뚜껑을 열고 전복 닭안심죽을 한 숟가락 떠먹더니 고개를 끄덕였다."안 짜고 고기도 부드러워. 복숭아 냄새도 없고. 청소부 다음으로 요리사도 합격이야."우진의 엄격하고 당돌한 팩트 평가에 도현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서연은 두 부자의 모습을 바라보다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들어와요. 밖에서 서 있지 말고 식탁에서 같이 먹어요."5년 만에 처음으로 서연의 집 문턱을 넘는 순간이었다. 우진이 유치원 가방에서 로봇을 꺼내러 방으로 들어간 사이, 서연이 찻잔을 내려놓으며 나직하게 말했다."내일 아버지 기일이에요. 파주 납골당에 갈 거예요."도현의 눈빛이 무겁게 가라앉았다."내가…… 내가 모셔도 될까?"서연은 거절하지 않았다. 대신 찻잔 가장자리를 손끝으로 천천히 돌렸다."아버지 앞에서 무릎 꿇고 머리 찧는 건 하지 마요. 그건 나를 위한 사과가 아니라 당신이 편해지려는 행동일 수 있으니까."도현의 표정이 굳었다."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그냥 사실대로 말해요. 당신이 뭘 믿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38화: 지분 80%의 양도

    다음 날 오전 11시, 도현의 개인 변호사와 독립 신탁 담당 변호사가 서류 가방을 들고 502호 병실로 들어섰다."요청하신 가족신탁 초안을 정리했습니다. 수익자 동의 전에는 효력이 생기지 않습니다."서연의 눈앞에 수십 장의 법적 공증 문서가 펼쳐졌다.[선진그룹 지배구조 지분 가족신탁 설정안]- 증여자: 차도현 (선진그룹 총수)- 수익자 예정: 한서연 (50%), 한우진 (30%)- 신탁 대상: 차도현 개인 보유 선진그룹 지주사 지분 80% (시가 약 4조 5,000억 원 상당)- 조건: 독립 수탁기관 관리, 수익자 동의 전 효력 보류, 차도현의 임의 회수 및 의결권 간섭 금지.서연의 손끝이 작게 떨렸다."차도현 씨, 이걸 왜 아무 말도 없이 가져와요? 돈으로 우리 결정까지 사려는 거라면 당장 치워요."도현은 서류를 서연 쪽으로 밀어붙이지 않고 제 앞에 둔 채 말했다."내가 쥐고 있던 권력과 돈은 5년 전 너와 우진이를 지키지 못했고, 오히려 두 사람을 해치는 데 쓰였어.""용서를 사려는 게 아니야. 내가 쥔 지분이 다시 너희를 위협하는 무기가 되지 못하게 묶어두려는 거야. 네 변호사가 검토하고, 싫으면 서명하지 않아도 돼."서연은 계약서와 도현을 번갈아 봤다. 금액보다 그가 자신의 추천권까지 빼겠다고 한 점이 더 낯설었다. 그때, 침대 위의 우진이 증여 서류를 톡톡 두드리며 턱을 괴었다."돈은 아빠 점수에 안 들어가. 돈 많다고 좋은 아빠 되는 거 아니잖아."우진이 도현의 앞치마에 빨간 색연필로 숫자를 고쳐 썼다."그래도 엄마한테 선택하라고 했으니까 10점. 아직 멀었어, 아저씨."아이의 말에 도현은 무릎을 꿇은 채 고개만 끄덕였다."맞아. 돈은 점수에서 빼자."서연은 계약서를 받아 들지

  • 날 버린 재벌이 지 아들인줄 모르고 입양한댄다   제37화: 불합격 아저씨

    오후 2시, 선진의료원 소아 병동 502호 병실 안. 바닥 청소를 거울처럼 완벽하게 마친 차도현이 조심스럽게 무릎을 꿇은 채 침대 곁에서 아동용 동화책을 펼쳐 들었다."옛날 옛적에 아기 돼지 삼형제가 살았습니다. 첫째 돼지는 볏짚으로 조립식 가설 건축물을 시공하였고, 이는 외풍 및 풍압 하중에 극히 취약한 구조적 결함을 내포하고 있었습니다."도현의 건조하고 차가운 대기업 CEO 실적 프레젠테이션 톤이 병실의 적막을 가득 메웠다. 침대에 누워 있던 네 살배기 우진이 이마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아저씨."도현이 흠칫 놀라며 책을 가슴께로 내렸다."네, 심사위원님.""아기 돼지들이 회사 보고서 쓰는 거야? 늑대가 '후우' 하는 건데 왜 그렇게 딱딱하게 읽어. 하나도 안 무서워."우진이 침대 협탁 위의 빨간 색연필을 들어 도현의 꽃무늬 앞치마에 큼지막한 빨간 동그라미를 좍 그었다."동화 구연 점수: 100점 만점에 0점."도현이 땀을 훔치며 고개를 떨궜다. 잠시 후, 우진이 유치원 제출용 스케치북을 꺼내 크레파스로 가족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스케치북 가운데에는 왕관을 쓴 아름다운 서연이 커다랗게 그려져 있었고, 그 옆에는 멋진 로봇 장난감을 든 우진이 늠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런데 도현의 모습은 침대 밑 구석에 아주 작게 엎드려 걸레를 든 졸라맨으로 그려져 있었다."심사위원님…… 구석에 걸레 든 사람은 누굽니까?""청소부 아저씨잖아. 아직 아빠 자격시험 통과 못 했으니까 침대 밑 바닥에 있는 게 맞지."우진이 새침하게 턱을 치켜들며 엄격하게 채점표를 내밀었다."오늘의 종합 아빠 점수: 0점."도현은 0점이 적힌 채점표를 한동안 내려다봤다. 그래도 책을 덮거나 변명하지는 않았다. 대신 채점표를 곱게 접어 동화책

More Chapters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