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ICIAR SESIÓN채사장이 픽 웃었다.
"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쉽게 대답하다니. 참 겁도 없군. 무모한 건지, 배포가 큰 건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
"그러니 돈을 다 갚아주겠다는 말도 나오는 거겠지. 자네가 갚아준다면야, 유탐정이 빚에 덜 시달리긴 하겠지
엘리베이터 앞, 내려오는 숫자가 왜 이렇게 더딘지.미안했지만, 나는 최익환의 어깨에 몸을 기댈 수밖에 없었다.으윽— 속에서 뭔가 치밀어 올랐다.입을 틀어막고 겨우 참아냈다.머리가 어질어질했고, 구역질이 계속 올라왔다."병원 안 가봐도 되겠어요?"최익환의 물음에, 나는 고개만 끄덕였다.1층 화장실은 이미 만원이었다.감기약을 먹었다는 걸 깜빡하고, 와인을 연거푸 마신 내 잘못이었다.띵—드디어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그런데 발을 들이려는 순간, 누군가 내 손목을 낚아챘다.돌아보니 우석이었다.화가 잔뜩 어린 얼굴로, 그가 내 손을 세게 붙들고 있었다.나도 놀라고, 최익환도 놀랐다.손을 빼내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더 세게 잡아당겼다.그리고 최익환을 향해 다가서며 말했다."술 취한 여성을 데리고, 지금 뭐 하시는 겁니까?""아…아니, 그게 아니라—"땀을 뻘뻘 흘리는 최익환.아니라고, 나도 고개를 저어 보였다.그런데 우석은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 다가섰다.
서울이 이렇게나 좁은 곳이었나.오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전에 소송을 맡았던 무역회사 대표 최익환이, 승소 턱으로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마련한 자리였다.그런데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훤칠한 키에 선글라스, 눌러쓴 모자, 깃을 세운 코트.그렇게 가려놓았는데도, 나는 그가 우석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우석은 나를 봤는지, 못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마치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처럼, 내 옆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가는 뒷모습.아마 스페셜 VIP 룸으로 가는 거겠지.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앙증맞은 키에 하얀 피부, 인형처럼 귀여운 여자가 걸어 들어왔다.직원의 안내를 따라, 역시 우석이 들어간 쪽으로.사귀는 사람인가.우석이 연애한다는 기사는 본 적이 없는데.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맞은편에 앉은 최익환이 손바닥을 눈앞에 흔들었다."송 변호사님? 제 말 듣고 계신 거죠?""네? 아, 네…"최익환이 스테이크를 썰며, 우석이 들어간 쪽을 힐끔 보더니 물었다."혹시 아는 사람입니까?""아… 아니에요."
사무실 안에서 서류를 보고 있는데, 직원 미선이 창밖을 보며 말했다."변호사님, 어머— 눈이에요."그 말에 나는 순간 멈칫했지만, 창밖을 볼 수가 없었다.눈을 보면— 우석이 생각날까 봐.우석.동성 열애설이 났지만, 그는 끝까지 인정도 부인도 하지 않았다.그리고 오히려 전보다 더 많은 작품을 했다.텔레비전을 켜면 어디서든 그가 있었다. 드라마에서, 예능에서.그럴 때마다 심장이 멎을 것 같았다.그래서 어느 순간부터는, 아예 텔레비전을 켤 수가 없었다.나 역시 그 못지않게 정신없이 지냈다.희찬이를 간호하고, 두 번의 수술을 더 거치고.다행히 희찬이는 무사히 퇴원했다.그리고 나는— 작지만, 나만의 변호사 사무실을 열 수 있었다.아주 좋은 자리에, 운 좋게 헐값으로 나온 사무실을 얻었다.직원도 하나 뒀다.그렇게 정말 오랜만에, 내 삶에 안정이라는 게 찾아왔다.그런데 찬바람이 불고 눈이 내리면— 우석이, 사무치게 그리워졌다.뚝—수첩 위로 눈물 한 방울이 떨어졌다.나는 화들짝 놀라 손끝으로 얼른 눈물 자국을 닦아냈다.
채사장이 오라고 해서 오긴 했지만, 어색하기 이를 데 없었다.그래도 낯선 자리, 낯선 경험이니— 어쩌면 연기에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나는 애써 사람들 사이의 대화에 섞이려 노력했다.그런데 오가는 이야기라곤 장바구니 물가 얘기, 낚시 얘기, 마누라한테 혼난 얘기뿐이었다.채사장은 대체 왜 이 자리에 나를 굳이 부른 걸까.슬슬 일어나야겠다는 생각이 들 무렵이었다.레스토랑 문이 열리고, 한 여자가 들어섰다.긴 머리, 눈에 띄는 외모.그 순간, 심장이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 같았다.
카페 창가 자리에 앉아, 나는 김하영이 나오기를 기다렸다.정성회계사무소 정문이 훤히 보이는 자리였다.점심시간이 되자, 근처 사무실에서 쏟아져 나온 젊은 여자들이 카페 안으로 몰려들었다.깔깔거리며 메뉴를 고르고, 셀카를
채사장이 픽 웃었다."남자가 남자를 사랑하느냐는 물음에, 그렇게 쉽게 대답하다니. 참 겁도 없군. 무모한 건지, 배포가 큰 건지."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말을 이었다."그러니 돈을 다 갚아주겠다는 말도 나오는 거겠지. 자네가 갚아준다면야, 유탐정이 빚에 덜 시달리긴 하겠지. 그런데— 유탐정이 그걸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 그게 두 사람 관계에 좋은 일일까?"선뜻 대답할 수가 없었다."유탐정 입장에선, 빚진 상대만 바뀌는 셈이야. 자네도 지금까지 피땀 흘려 번 돈일 텐데, 그걸 다 내어준다? 그러고도 유탐정이라는 친구를, 아무런 부담 없이 순수하게 좋아할 수 있을까?"그 말에 나 역시 두려움이 스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