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서울이 이렇게나 좁은 곳이었나.
오늘 처음으로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전에 소송을 맡았던 무역회사 대표 최익환이, 승소 턱으로 저녁을 대접하겠다며 마련한 자리였다.
그런데 레스토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사람.
훤칠한 키에 선글라스, 눌러쓴 모자, 깃을 세운 코트.
그렇게 가려놓았는데도, 나는 그가 우석이라는 걸 단번에 알아봤다.
우석은 나를 봤는지, 못 봤는지— 알 수가 없었다.
마치 한 번도 마주친 적 없는 사람처럼, 내 옆을 그대로 스쳐 지나갔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안쪽으로 들어가는 뒷모습.
아마 스페셜 VIP
강원도, 오랜만에 다시 찾은 그 폐교 앞.나— 희우는, 남편이 된 우석의 손을 잡고 천천히 걸었다.낡은 나무 옆, 표지판은 여전히 그 자리에 서 있었다."이야, 아직도 있네.""당연하죠. 우리 추억인데."우리는 그 앞에 서서, 오래도록 그 시절을 떠올렸다.청각장애인 행세를 하던 나, 강아지들과 뛰놀던 우석, 뱀에 물렸던 사건, 그리고 절벽 아래 강물.6년 전 그 여름이, 결국 이 모든 이야기의 시작이었다."참, 요즘 변호사 일은 어때?"우석이 물었다."바빠요. 그래도 재밌어요. 요즘은 연기 수업도 병행하고 있고, 그리고—"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 웃으며 말했다."조감독 제안도, 한번 만나보기로 했어요.""진짜? 잘 생각했다.""아직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부딪혀보려고요."우석이 흐뭇한 얼굴로 내 손을 꼭 잡았다.우리는 함께 걸으며, 그동안의 근황들을 이야기했다.정훈과 유희는 딸 하은이와 함께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고, 희찬은 이제 완전히 회복해 정식 레지던트로 근무를 시작했다.채사장은 사무실을 후배에게 넘기고, 요즘은 종종 우리 집에 들러 저녁을 함께 먹곤 했다.미선
어느 주말 오후, 채사장 사무실에 들렀다.요즘은 결혼 전보다 오히려 더 자주 찾아뵙게 됐다."채사장님, 저 왔어요."문을 열고 들어서니, 채사장이 낡은 안경을 쓰고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었다."어, 왔나. 우석이는?""오늘 촬영 있어서, 저 혼자 왔어요.""그래, 앉아."나는 익숙한 소파에 앉으며, 채사장이 끓여주는 차를 받았다."요즘 사업은 어떠세요?""뭐, 그럭저럭. 이제 나도 나이가 있어서, 일을 좀 줄이고 있어."채사장이 담담하게 말했다."사실— 사무실, 후배한테 넘길까 생각 중이야.""정말요?""응. 나도 이제 쉴 때가 됐지. 대신—"채사장이 씩 웃으며 나를 봤다."가끔 놀러 와. 손주 보듯, 얼굴이라도 봐야지."그 말에,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당연하죠. 아, 그리고— 나문희 씨 소식 들으셨어요?"채사장이 고개를 끄덕였다."상담 계속 받고 있다지. 얼마 전엔, 봉사활동도 시작했다고 들었어.""봉사활동이요?""응. 청각장애인 시설에서. 딸 생각이 나서 그런지, 요즘 거기서 아
신혼여행에서 돌아온 뒤, 일상은 빠르게 제자리를 찾아갔다.사무실에 복귀한 첫날, 미선이 책상 가득 서류를 쌓아놓고 기다리고 있었다."변호사님, 신혼 재미 보시는 동안 저 진짜 고생 많았어요!""고마워요, 미선 씨. 다음 달엔 보너스로 갚을게요.""오, 정말요?"미선이 눈을 반짝이며 물었다.농담 반 진담 반이었지만, 나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이후, 나는 변호사 업무와 연기 수업을 병행하는 나름의 균형을 찾아갔다.평일 낮엔 사무실에서 의뢰인을 만나고, 저녁엔 근처 연기 학원에 다녔다.처음엔 체력적으로 힘들었지만, 신기하게도 두 가지 다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오늘 연기 수업은 어땠어?"저녁마다, 우석이 궁금한 얼굴로 물었다."오늘은 발성 연습만 계속했어요. 목이 다 쉬었어요.""그래도 재밌어?""네, 힘든데— 재밌어요."그 대답에, 우석이 흐뭇하게 웃었다.몇 달 뒤, 정훈에게서 반가운 소식이 전해졌다."희우 씨! 저희 아기 태어났어요!"전화기 너머로, 정훈의 들뜬 목소리가 들렸다."정말요? 축하드려요!""딸이에요. 유희 닮아서 그런지, 벌써부터
식이 끝나고, 피로연장으로 자리를 옮겼다.형도가 마이크를 잡고 사회를 보는데, 시작부터 눈물바다였다."신랑 신부님과 저는, 정말 오래전부터 함께해왔습니다. 형이 힘들 때도, 좋을 때도— 늘 곁에서 지켜봤는데요. 오늘처럼 행복해 보이는 모습은 처음입니다."형도의 진심 어린 인사말에, 하객석 곳곳에서 박수와 환호가 터졌다.이어서, 정훈이 마이크를 넘겨받았다."저는 희우 씨한테 정말 큰 빚을 진 사람입니다. 제 여동생 사건, 희우 씨가 아니었으면 아직도 미해결로 남아 있었을 거예요."정훈이 옆에 앉은 유희를 바라보며 웃었다."그리고 저희 부부도, 희우 씨랑 우석 씨 덕분에— 다시 만날 용기를 낼 수 있었습니다. 두 분, 정말 축하드립니다."박수 소리가 이어지는 가운데, 이번엔 노래방 여주인이 조심스레 자리에서 일어났다."저는— 변호사님 덕분에, 9년 만에 처음으로 편히 잠들 수 있었어요. 오늘 이 자리에 초대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여주인의 목소리가 떨렸다.나는 그 말에 결국 다시 눈물이 터졌다.우석이 옆에서 내 손을 꼭 잡아줬다.식사가 시작되고,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며 인사를 나누는데— 이솔이 다가와 반갑게 웃었다."희우 씨, 정말 예뻐요! 축하드려요.""고마워요, 이솔 씨. 감독님이랑은 잘 지내세요?"
이른 아침, 신부 대기실 거울 앞에 앉아 있는데— 손이 떨렸다.메이크업을 받으면서도, 자꾸 눈물이 차올라 애를 먹었다."변호사님, 눈물 참으셔야 해요. 메이크업 번져요!"미선이 울다 웃다 하며 티슈로 눈가를 톡톡 두드려줬다."미안해요, 자꾸 눈물이 나서.""저도 자꾸 눈물 나는데요, 뭐."문이 열리고, 정장을 갖춰 입은 채사장이 들어왔다.평소의 낡은 점퍼 차림이 아니라, 말끔한 슈트를 입은 모습이 낯설면서도— 눈시울이 뜨거워졌다."채사장님...""뭘 그렇게 봐. 나도 이럴 때 입을 옷은 있어."채사장이 무뚝뚝하게 말하며, 내 옆에 다가와 섰다."준비됐나?""...네.""긴장하지 마. 그냥, 네가 살아온 것처럼 당당하게 걸어가."그 말에,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떨리는 숨을 골랐다.식장 입구, 음악이 흐르기 시작했다.문이 열리고, 하객들의 시선이 일제히 이쪽으로 쏠렸다.채사장의 팔짱을 끼고, 나는 한 걸음씩 버진로드를 걸었다.저 멀리, 턱시도를 입은 우석이 서 있었다.그 얼굴을 보는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6년 전 강원도에서 처음 만난
결혼식 날짜가 다음 달 셋째 주 토요일로 정해졌다."너무 급한 거 아니에요?"내가 걱정하자, 우석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더는 못 기다려. 이미 6년이나 기다렸는데."그 말에, 나는 웃으며 더 이상 반박하지 못했다.결혼 준비는 생각보다 정신없이 흘러갔다.드레스를 고르러 간 날, 미선이 함께 따라와 이것저것 골라줬다."이거 어때요, 변호사님? 완전 잘 어울려요!"거울 속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내 모습이, 낯설면서도 눈물이 날 만큼 벅찼다."예쁘다...""그쵸? 우석 씨 보면 완전 반하겠는데요."미선의 장난스러운 말에, 나는 얼굴을 붉혔다.식장을 정하는 날엔, 채사장이 함께 따라나섰다."여기, 이 정원 있는 곳이 낫겠구먼. 야외 결혼식 하기 딱 좋아."채사장이 이곳저곳을 꼼꼼히 살피며 조언해주는 모습이, 정말 아버지 같아서— 나는 자꾸 눈시울이 붉어졌다."채사장님, 저 결혼식 때 정말— 아버지 자리에 서주시는 거죠?"채사장이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돌렸다."…확답은 안 했다.""에이, 벌써 정장까지 새로 맞추셨다면서요. 형도 씨한테 다 들었어요.""그 자식, 입이 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