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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화 생각보다 편한 사람

Autor: Doong_E
last update Data de publicação: 2026-09-08 19:00:26

—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됩니까?"

로비를 감싸던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던져진 질문에, 예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데이트'라는 단어를 자신이 먼저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

하지만 그 단어에 선을 긋거나 서둘러 부정하고 싶은 마음 역시 들지 않았다.

잠시 침묵을 지키던 예원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가볍게 대답했다.

"적어도 업무 미팅은 아니죠."

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절도 아니었다.

그리고 약속된 금요일 저녁.

예원이 고른 레스토랑은 회사에서 차로 이십 분쯤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 골목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지나치게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고, 테이블 간격이 널찍해 대화 나누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예원은 창가 쪽 자리로 안내를 받아 앉았다.

메뉴판을 펼쳐 들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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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음 날 오후, 미온개발 본사.오전 내내 밀려 있던 루센 프로젝트 관련 부서 회의를 마친 예원은 자신의 자리로 돌아와 서류를 정리하고 있었다.모니터 옆에 올려둔 휴대전화의 화면이 밝아지며 진동이 울린 것은 그때였다.[차재헌]어젯밤 통화 이후 하루 만에 다시 뜬 이름이었다.예원은 하던 작업을 멈추고 가만히 화면을 내려다보았다."내 일정 보고할 의무 없어."라고 선을 긋고 끊어냈던 어제의 통화가 떠올랐지만, 마음은 오히려 차분했다.그녀는 일정을 방어했다는 사실에 굳이 큰 의미를 부여하거나 되새기지 않은 채, 무미건조한 손길로 통화 버튼을 눌렀다."어."— "바빠?"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재헌의 목소리는 평소와 다를 바 없었다.화가 났다거나 어제의 통화를 따져 묻기 위해 벼르고 있는 어조가 아니었다."아니, 회의 끝나고 서류 정리하는 중이야."— "어제, 루센 현장에 늦게까지 있었다며."예원의 서류를 넘기던 손끝이 아주 잠시 멈췄다.어제 위치를 묻는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건만, 재헌은 이미 사실의 일부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그걸 어떻게 알았어?"— "어쩌다 루센 쪽 얘기가 나와서 들었어. 어떻게 알았는지가 중요한 건 아니잖아."예원에게는 재헌이 정보의 출처를 대수롭지 않게 뭉뚱그려 넘기려는 것처럼 들렸다.그의 말대로 출처 자체가 중요한 것은 아니었다.예원은 목소리의 높낮이를 바꾸지 않고 담담하게 대답했다."그랬어. 프로젝트 관련해서 현장 확인할 게 있었으니까."사실을 부인하거나 핑계를 댈 이유는 없었다.그러나 예원의 대답이 떨어지자마자, 수화기 너머에서는 아주 짧고 미묘한 뜸 들이는 시간이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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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날카로운 기계음과 둔탁한 파열음이 뒤섞인 루센 프로젝트 시공 현장.임시 가림막 너머로 흩날리는 흙먼지 속에서, 예원은 안전모의 턱끈을 단단히 조이며 발걸음을 옮겼다.며칠 전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채우고 있던 고요하고 따스한 공기는 온데간데없었다.두 사람은 현장에 들어선 순간부터 완벽하게 사적인 온도를 지워내고, 미온개발의 총괄 PM과 아크온의 대표 건축가라는 본연의 자리로 돌아와 있었다.며칠 전의 편안했던 분위기를 핑계로 친밀한 농담을 건네거나 사적인 미소를 짓는 일은 없었다.예원 역시 그를 '며칠 전 저녁을 함께 먹은 남자'가 아니라 현장을 책임지는 파트너로만 상대했다."문 PM님, 2층 메인 라운지 진입 구간 실측 결과입니다."현장 소장이 태블릿 화면을 띄우며 보고를 시작했다."도면상 설계된 대로 진입로 폭 2.5미터 정확하게 확보했습니다. 법적 소방 기준이나 통행 규격에도 전혀 문제없습니다."예원은 소장이 건넨 태블릿의 수치와, 바닥에 임시로 그어진 붉은색 마스킹 테이프의 간격을 번갈아 확인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오차가 없었다. 하지만 마스킹 테이프가 그어진 실제 공간 안에 직접 서서 주변을 둘러보던 예원의 미간이 미세하게 좁혀졌다."소장님. 도면상 폭이 확보됐다는 것과, 실제로 사람이 쾌적하게 움직일 수 있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예? 하지만 기준치에 완벽하게 맞춘 건데……."예원은 현장 바닥의 한 지점을 안전화 끝으로 가리켰다."이곳은 루센의 메인 라운지로 들어가는 핵심 진입로입니다. 주말 피크 시간대 대기 인원의 동선과, 내부 F&B 매장을 오가는 대형 서비스 카트의 동선이 정확히 이곳에서 교차합니다."예원의 시선이 도면 위에서 빠르게 움직였다."게다가 이쪽 벽면에 예정된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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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됩니까?"로비를 감싸던 서늘한 밤공기 속에서 던져진 질문에, 예원은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데이트'라는 단어를 자신이 먼저 입에 올린 적은 없었다.하지만 그 단어에 선을 긋거나 서둘러 부정하고 싶은 마음 역시 들지 않았다.잠시 침묵을 지키던 예원은 시선을 살짝 피하며 가볍게 대답했다."적어도 업무 미팅은 아니죠."그것은 긍정도 부정도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거절도 아니었다.그리고 약속된 금요일 저녁.예원이 고른 레스토랑은 회사에서 차로 이십 분쯤 떨어진, 조용한 주택가 골목의 작은 이탈리안 레스토랑이었다. 지나치게 고급스럽거나 화려하지 않아 부담스럽지 않았고, 테이블 간격이 널찍해 대화 나누기에 적당한 곳이었다.예원은 창가 쪽 자리로 안내를 받아 앉았다.메뉴판을 펼쳐 들었지만, 그녀의 시선은 글자 위를 겉돌 뿐 쉽게 움직이지 않았다. 늘 두 사람 사이에는 도면, 예산안, 루센 프로젝트, 차재헌의 이름, 혹은 7년 전의 과거가 놓여 있었다.그런데 오늘은 아무것도 없었다. 테이블 위에는 정갈하게 놓인 물잔과 메뉴판, 그리고 두 사람의 가벼운 옷차림뿐이었다.'무슨 이야기를 해야 하지.'사회생활에 능숙한 30대 PM으로서 사람을 대하는 일이 어렵지는 않았지만, 권시혁과 사적인 자리에서 마주 앉아 나누어야 할 대화의 결은 낯설었다.하지만 그 어색함은 오래가지 않았다.시혁은 분위기를 억지로 띄우려 들거나 침묵을 어설픈 말로 채우려 애쓰지 않았다.그는 메뉴판을 조용히 훑어보더니, 먼저 담담한 어조로 물었다."여기로 정하신 이유가 있습니까.""조용해서요. 업무 이야기 없이 저녁만 먹기에는 적당할 것 같아서요.""좋은 기준이군요."

  • 남편이 허락한 바람   제21화 데이트라고 생각해도 됩니까?

    "퇴근 후 시간 돼요?"어둠이 짙게 깔린 로비.예원의 단정한 질문이 서늘한 밤공기를 가르고 허공에 흩어졌다.시혁의 시선이 예원에게 잠시 머물렀다.늘 어떤 질문이든 막힘없이 즉답을 내놓던 남자가, 드물게 한 박자 늦게 입을 열었다."됩니다."짧고 명료한 대답.그 한마디가 떨어지는 순간, 예원에게 아주 작지만 분명한 현실감이 밀려왔다.'내가 제안해 볼까'라는 머릿속의 막연한 충동이, '정말 저 사람과 업무 밖에서 만나게 되는구나'라는 뚜렷한 실체로 바뀌는 순간이었다.방금 뱉은 말을 취소하고 싶거나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다.단지 자신이 직접 180일 계약의 모호한 경계를 넘어, 사적인 영역으로 첫발을 내디뎠다는 사실을 피부로 실감했을 뿐이다.시혁은 예원에게 왜 사적으로 만나고 싶은지,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인지 캐묻지 않았다.그는 예원의 제안을 담담히 수용하며 현실적인 질문으로 넘어갔다."언제가 편하십니까." "이번 주 금요일 저녁은 어때요?"예원의 대답에 시혁이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좋습니다. 장소는 문 PM님이 정하시죠."그는 망설임 없이 장소 선택권을 예원에게 넘겼다.예원은 그 순간 아주 짧게 의외라는 기분을 느꼈다.루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겪은 권시혁은 누구보다 판단이 빠르고, 통제력을 잃지 않으며, 자신의 의견을 선명하게 내놓는 사람이었다.업무라면 이미 세 가지 이상의 완벽한 대안과 동선을 내놓았을 사람이었다.그런데 사적인 약속 앞에서는 뒤로 물러나 기다렸다. 예원이 직접 정할 때까지.'어디로 해야 하지.'너무 회사 근처로 잡으면 단순히 야근 후 저녁을 먹는 업무의 연장선처럼 보일 터였다.그렇다고 지나치게 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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