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결혼식 당일, 도희는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납치된다. “파혼 축하해요.” 낯선 남자 강우진은 그녀를 가둔 채, 오래전부터 자신을 알고 있었다는 듯 행동한다. 도희는 그에게서 벗어나려 하지만,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잊고 있던 과거의 흔적과 마주한다. 그는 왜 하필 결혼식 날 그녀를 데려왔을까. 자신을 가둔 남자를 믿어도 되는 걸까. 17년 전 끝내 지키지 못한 약속. 그리고 다시 시작된 구원. 사랑과 집착, 복수와 구원이 뒤엉킨 로맨스 스릴러.
View More도희가 눈을 떴다. 정신을 바로 차릴 수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눈앞이 몇 번이나 흐려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간신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
손과 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낑낑대며 겨우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대자 두려움이 올라왔다.
“누,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
떨리는 목소리로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순간, 방 안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침대와 화장대, 옷장.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
그때였다.
“일어났어요?”
언제부터였을까. 한 남자가 문 앞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의 목소리는 낮고, 아주 차분했다.
“미안해요. 내가 약을 너무 많이 섞었나 봐. 깨어나는 데 오래 걸리더라고. 꼬박 하루를 잤는데, 기억나요?”
꼬박 하루? 도희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라니.
도희가 급하게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두웠다.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
“오늘이 며칠이에요?”
“결혼식 다음 날.”
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
도희의 얼굴이 굳었다.
결혼식.
끊겨 있던 기억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도희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봤다. 구겨지고 군데군데 찢어진 웨딩드레스. 손끝이 떨렸다.
분명 신부대기실에 있었다. 낯선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억지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식이 시작되기만을, 그래서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잠깐 밖으로 나갔다.
왜 나갔더라.
도희는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가방순이를 맡아준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도희야, 밖에 누가 너 찾던데? 꽤 급해 보이던데 들어오진 못하고 있었나 봐. 잘생겼어. 한번 가봐.”
“누군데?”
“모르겠어. 불편하면 같이 가줄까?”
“아니야, 나 혼자 가볼게.”
도희가 신부대기실을 나서고 얼마 안 있어 누군가 천으로 입과 코를 막았다.
도희가 고개를 들었다.
설마.
자신을 결혼식장에서 데리고 온 사람이 이 남자인가.
막연했던 두려움에 형태가 생겼다.
“누, 누구세요? 누구신데 저를….”
“우선 이거라도 마셔요. 긴장한 것 같은데.”
남자가 침대에 걸터앉으며 유리컵을 내밀었다. 도희는 그저 물끄러미 컵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는 도희의 묶인 손을 내려다봤다. 그러곤 화장대에서 무언가를 꺼내 도희에게 다시 다가왔다.
작은 접이식 칼이었다.
남자가 도희에게 다가오며 접이식 칼을 폈다. 금방이라도 달려들 것만 같았다.
도희는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물렸다. 하지만 이미 침대 머리에 등이 닿아 더는 물러날 곳도 없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잠깐, 잠깐만요.”
남자는 멈추지 않았다.
“제발….”
도희가 눈을 질끈 감았다. 차라리 보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졌다.
“가만히 있어요. 다칠 수도 있으니까.”
톡-
소리와 함께 도희의 손이 자유로워졌다. 곧이어 발까지도.
“이제 물 마실 수 있죠?”
남자가 해맑게 웃었다. 칼이 자신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참았던 눈물이 도희의 볼을 타고 내려왔다.
“울어요? 놀랐구나. 맞죠?”
물어오는 남자에게 도희의 대답은 별로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았다. 우는 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그녀가 다 울 때까지 조용히 기다렸다.
“다 울었어요? 그럼 이제 물 마셔요. 조금 이따가 저녁 만들어줄게요.”
그러나 여전히 도희는 컵을 받지 않았다. 그저 긴장하며 남자의 다음 행동을 기다릴 뿐이었다. 불안했다.
도희의 예상과는 다르게 남자는 화장대 위에 컵을 올려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문을 향해 몇 걸음 걸었을 때였다.
“왜….”
도희가 겨우 목소리를 냈다. 남자가 걸음을 멈췄다.
“왜 저를 데려온 거예요?”
도희는 떨리는 손을 그러쥐었다.
“돈 때문이에요? 아니면 원장님한테 무슨 원한이라도….”
“그런 거 아니에요.”
남자가 도희를 돌아보았다. 남자는 질문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사람 같았다. 그의 표정은 이상하리만큼 평온했다.
“결혼하기 싫었잖아요.”
도희의 눈이 커졌다.
“네?”
“그래서 데리고 나온 건데.”
“….”
“내가 잘못 안 건가요?”
도희는 아무런 대답도 할 수 없었다.
어제 그 결혼식에 도희의 의견을 궁금해하는 사람은 없었다. 도희 또한 결혼을 거부할 생각조차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아니, 애초에 살면서 자신이 의견을 피력해본 기억이 거의 없었다.
싫다고 말해봤자 달라지는 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받아들이는 편이 쉬웠다. 어제도 마찬가지였다. 웨딩드레스를 입고 거울 앞에 앉아 있으면서도 도희는 한 번도 도망칠 생각을 하지 않았다.
그런데 처음 보는 이 남자는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 자신이 결혼하기 싫었을 거라 말했다. 자신에 대해 아주 잘 아는 사람처럼.
이상했다.
자신을 이곳에 가둔 사람은 이 남자였다. 그런데 정작 어제 그 결혼식장에서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을 처음으로 알아봐 준 사람도 이 남자였다.
도희는 그 사실이 싫었다. 차라리 남자의 말이 틀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알았지?
도희는 물어보고 싶었지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남자의 말이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아서였다.
남자는 그런 도희를 바라보다 다시 문고리를 잡았다.
“일단 쉬어요. 궁금한 건 저녁 먹으면서 얘기하고.”
문이 열렸다.
“아, 맞다.”
나가기 직전, 남자가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 돌아봤다.
“축하해요. 파혼한 거.”
남자의 입꼬리가 살짝 올라갔다. 웃는 순간, 서늘하기만 하던 인상이 묘하게 부드러워졌다. 창백한 피부와 대비되는 짙은 눈썹, 반듯하게 뻗은 콧날이 새삼 눈에 들어왔다.
“….”
문이 닫혔다. 도희는 그 자리에 꼼짝도 하지 못했다. 문이 닫히던 소리가 이상하게도 선명하게 귓가에 남았다.
화장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물끄러미 보았다. 찢어진 웨딩드레스와 살짝 번진 화장이 마치 납치되었다는 사실을 또 각인시키는 것 같았다.
자신의 의사가 어찌 됐었든 어제까지만 해도 축하받는 신부였다.
“축하해요. 파혼한 거.”
남자가 남기고 간 말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파혼.
그토록 원했던 일이었다.
분명 납치당했다. 무서웠고, 지금 당장이라도 이곳에서 도망쳐야 했다. 그런데 그 사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 하나가 마음 한구석에 자리 잡고 있었다.
안도감이었다.
도희는 그 감정을 깨닫자마자 입술을 꾹 깨물었다.
안도해서는 안 되는 상황이었다. 자신을 데려온 사람이 누구인지도, 왜 이런 짓을 했는지도 알지 못했다. 그런데도 결혼식이 끝났다는 사실만은 자꾸 마음을 놓이게 했다. 도희는 그 생각을 떨쳐내려는 듯 묶였던 손목을 문질렀다.
-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창밖이 완전히 어두워졌을 무렵, 남자가 방문을 열었다.
“밥 먹어요.”
도희는 한참을 망설이다 그를 따라나섰다.
식탁에는 파스타 두 접시가 놓여 있었다.
“혹시 파스타 싫어해요?”
배가 고팠다. 그러나 도희는 이번에도 아무 대답도 할 수 없었다. 남자가 먼저 의자를 빼주었다. 도희가 움직이지 않자 그는 재촉하지 않고 자신의 자리에 앉았다. 결국 그녀도 조심스럽게 맞은편 의자에 앉았다.
도희는 앉자마자 슬쩍 주변을 살폈다. 현관문이 식탁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다. 잠금장치까지 눈에 들어왔다.
저 문만 열면 나갈 수 있을까.
도희의 시선이 현관문에 머물렀다.
“도희 씨.”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남자가 자신을 보고 있었다.
“네?”
“안 먹어요?”
“….”
혹시 자신이 현관문을 보고 있던 것을 눈치챈 걸까. 하지만 남자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포크를 들었다.
“배고플 텐데.”
도희는 접시를 내려다봤다.
먹음직스러운 냄새가 났다. 배도 고팠다. 하지만 쉽사리 손이 가지 않았다.
“먹어요. 음식에는 아무것도 안 들어갔으니까 안심하고.”
그제야 도희는 포크로 파스타를 돌돌 말아 한 입 먹었다.
생각보다 맛있었다.
그게 묘하게 서러웠다. 자신을 납치한 남자가 만든 음식이 맛있다는 것도, 이런 상황에도 배가 고프다는 것도 전부 이상했다. 오늘이 결혼식 다음 날이라는 사실조차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도희가 고개를 숙였다. 눈물이 접시 위로 떨어졌다.
“또 우네.”
남자는 별로 놀라지 않고 휴지 한 장을 뽑아 건넸다. 도희는 휴지를 받아 들고도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생각해보니 이상했다. 남자는 처음부터 자신의 이름을 알고 있었다. 결혼하기 싫었다는 사실까지도. 그런데 정작 자신은 그에 대해 아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근데,”
도희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쪽 이름이 뭐예요?”
“내 이름?”
도희의 물음에 처음으로 놀란 듯이 남자가 그녀를 바라봤다. 도희의 입에서 저도 모르게 나온 질문이었다. 납치범의 이름을 알아서 뭐할까. 도희는 괜한 질문을 했다고 생각했다.
“강우진.”
“….”
“기억 안 나죠?”
도희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기억이라니? 언제 말해준 적이 있던가. 도희가 속으로 생각했다.
남자의 얼굴을 다시 한번 자세히 훑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아무리 기억을 더듬어봐도 그와 닮은 사람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우리 만난 적 있어요?”
도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우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잠시 도희를 바라보다 작게 웃었다.
“글쎄요.”
“….”
“기억 안 나면 됐어요.”
우진은 아무렇지 않게 시선을 접시로 돌렸다.
“먹어요. 불면 맛없어요.”
남자가 포크를 들어 파스타를 먹기 시작했다. 도희도 더는 묻지 않았다.
하지만 조금 전 그의 말은 쉽게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기억 안 나면 됐어요.
마치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듯한 말이었다.
다음 날 아침.도희가 방문을 열었을 때 우진은 거실에 없었다.식탁 위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만 놓여 있었다.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손을 댈 생각은 들지 않았다.잠을 설친 탓인지 머리가 무거웠다. 밤새 몇 번이나 문밖의 인기척에 귀를 기울였지만, 우진은 다시 찾아오지 않았다. 그가 누구를 죽여달라고 했는지, 자신은 언제까지 이곳에 있어야 하는지. 생각할수록 모르는 것만 늘어났다.도희는 의자를 빼려다 말고 식탁 끝을 짚었다. 배가 고프지 않은 건 아니었다. 다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차려진 아침을 보고 있자니, 어젯밤 자신이 느꼈던 공포마저 별일 아닌 것으로 취급받는 기분이었다.도희가 식탁 앞에 서 있던 순간 현관문이 열렸다.우진이었다.두 사람의 눈이 마주쳤다.“….”“….”먼저 눈을 피한 건 우진이었다.“일어났어요?”아무 일도 없었던 사람처럼 평소의 목소리였다.그게 도희의 신경을 더 긁었다.도희는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우진이 신발을 벗고 들어오는 동안에도 그를 지켜봤다. 어젯밤에는 그렇게 다급하게 문 앞까지 찾아왔으면서, 지금은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얼굴이었다.“어젯밤에 누구랑 통화한 거예요?”우진의 걸음이 멈췄다.“선생님이라는 사람이 누구인데요?”“….”“죽여달라는 건 또 누구고요?”“도희 씨.”“그것도 그 계획이라는 거랑 관련 있는….”순간 우진이 빠르게 다가왔다.“읍…!”커다란 손이 도희의 입을 틀어막았다.도희의 눈이 크게 뜨였다.반사적으로 그의 손목을 붙잡았다.어젯밤의 일이 떠올랐다.“쉿…!”우진이 아주 작게 말했다.하지만 이번에는 화가 난 얼굴이 아니었다. 오히려 다급해 보였다.우진의 시선이 천장으로 향했다.도희도 천천히 그 시선을 따라갔다.천장 구석.처음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그러다 작은 검은 점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우진이 입을 막고 있던 손을 조심스레 내렸다.그리고 거의 숨소리에 가까운 목소리로 말했다.“그만 얘기해요.”“저게 뭐예요?”“보지 마요.”도희
“이번에는…?”이상했다.어제부터 몇 번이나 그랬다. 처음 자신의 이름을 물었을 때도 기억이 나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꽃다발을 보여주며 결혼식 전날의 일을 떠올리게 한 것도 그였다. 마치 자신만 모르는 무언가가 둘 사이에 있는 것만 같았다.도희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인지 우진의 표정이 미세하게 떨렸다.도희는 그 작은 변화를 놓치지 않았다.“방금 ‘이번에는 꼭 자유로워질 수 있게’라고 했잖아요.”“….”“이번에는, 이라고….”우진은 장바구니 속 물건들을 괜히 계속 정리했다.“그게 무슨 말이에요?”“….”“우리 전에 만난 적 있죠?”우진의 침묵은 부정이라기보다 인정에 가까웠다. 그것만으로 충분했다. 도희는 확신했다. 자신은 이 남자를 알고 있었다. 기억하지 못할 뿐이었다.도희를 바라보던 그가 낮게 물었다.“정말 하나도 기억 안 나요?”“뭘요?”“아무것도 아니에요.”“강우진 씨!”처음이었다. 도희가 우진의 이름을 똑바로 부른 것은. 우진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 하지만 이내 차분해진 우진은 별것 아니라는 듯이 장바구니에 있는 것들을 마저 정리했다.“오믈렛, 괜찮죠?”우진은 도희와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도희는 더 묻지 않고 우진을 바라봤다. 대답을 피하는 게 오히려 대답처럼 느껴졌다.우진은 냉장고 문을 열어 우유와 달걀을 차례로 넣었다.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움직임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부터 손이 미세하게 빨라져 있었다.“왜 말 안 해줘요?”“뭘요?”“나랑 어디서 만났는지.”냉장고 문이 닫혔다.우진이 한동안 손잡이를 잡은 채 움직이지 않았다.“알아서 좋을 거 없어요.”“그건 제가 판단할게요.”“….”처음으로 우진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완전히 사라졌다.도희는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그때, 식탁 위에 놓여 있던 우진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두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그쪽으로 향했다. 이번에는 전화가 아니었다. 짧은 진동과 함께 화면에 메시지 하나가 떠올랐다.그가 급하게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지만 도희가 한
“급한 대로 옷은 이걸로 갈아입어요. 내일 나가서 편한 옷들 좀 사 올게요.”우진이 곱게 갠 옷가지를 내놓았다. 식사를 마쳤다고 해서 또 도희를 묶진 않았다. 그 사실만으로도 도희는 뭔가가 묘하게 가라앉는 느낌이 들었다.“도망갈 생각은 하지 마요.”문을 나서려던 우진이 아무렇지 않게 덧붙였다.“어차피 창문도, 현관문도 안 열릴 테니까.”우진은 그 말 한마디를 끝으로 방문을 닫고 나갔다.문이 닫히자 도희는 온몸의 힘이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한동안 우진이 나간 문만 쳐다봤다. 다시 들어오지는 않을까 싶어 작은 소리에도 신경이 곤두섰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문밖에서는 인기척이 들리지 않았다.도희가 조심스럽게 자리에서 일어났다.창문 앞으로 다가가 손잡이를 잡았다. 혹시 겁을 주려고 한 말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힘껏 당겨보았다.덜컹-창문이 미세하게 흔들릴 뿐 열리지는 않았다.한 번 더 힘을 주었다. 이번에는 양손으로 손잡이를 붙잡고 온몸의 힘을 실었다.“제발….”소용없었다.도희는 망설이다 방문으로 향했다. 문고리에 손을 올린 채 가만히 귀를 기울였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거실은 고요했다.식사를 하며 봐두었던 현관문이 눈에 들어왔다.도희는 맨발로 소리가 나지 않게 한 걸음씩 현관으로 다가갔다.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우진이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당장이라도 등 뒤에서 자신의 이름을 부를 것만 같았다.현관문 앞에 도착한 도희가 잠금장치를 살폈다.그리고 손잡이를 잡았다.움직이지 않았다.다시 한번.이번에도 마찬가지였다.“….”그제야 우진의 말이 떠올랐다.어차피 창문도, 현관문도 안 열릴 테니까.처음부터 자신이 이렇게 할 것을 알고 있었던 걸까.도희는 손잡이에서 천천히 손을 뗐다.헛웃음이 났다. 절망스러웠다.방으로 돌아온 도희가 침대에 주저앉았다. 자신을 납치한 이유가 무엇일까 생각했다. 대체 자신을 왜 데려온 걸까.돈도, 원장님에 대한 원한도 아니라고 했다.그렇다면 정말 자신
도희가 눈을 떴다. 정신을 바로 차릴 수 없었다. 머리가 깨질 것처럼 어지러웠다. 눈앞이 몇 번이나 흐려졌다가 돌아오기를 반복했다. 간신히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손과 발이 묶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움직이기가 불편했다. 낑낑대며 겨우 침대 머리에 몸을 기대자 두려움이 올라왔다.“누, 누구 없어요? 살려주세요!”떨리는 목소리로 문 쪽을 향해 소리쳤다. 그녀의 목소리가 메아리쳤다. 순간, 방 안이 눈에 들어왔다. 작은 침대와 화장대, 옷장. 뭔가 서늘한 느낌이 들었다.그때였다.“일어났어요?”언제부터였을까. 한 남자가 문 앞에 비스듬히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창백할 정도로 하얀 피부에 헝클어진 머리카락. 그의 목소리는 낮고, 아주 차분했다.“미안해요. 내가 약을 너무 많이 섞었나 봐. 깨어나는 데 오래 걸리더라고. 꼬박 하루를 잤는데, 기억나요?”꼬박 하루? 도희는 남자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하루라니.도희가 급하게 한 번 더 주변을 둘러봤다. 아까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창문 너머로 보이는 하늘은 어두웠다. 지금이 몇 시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오늘이 며칠이에요?”“결혼식 다음 날.”남자가 아무렇지 않게 대답했다.도희의 얼굴이 굳었다.결혼식.끊겨 있던 기억이 조금씩 이어지기 시작했다. 도희는 자신이 입고 있는 옷을 내려다봤다. 구겨지고 군데군데 찢어진 웨딩드레스. 손끝이 떨렸다.분명 신부대기실에 있었다. 낯선 사람들의 축하를 받고 억지로 웃으며 사진을 찍었다. 식이 시작되기만을, 그래서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러다가 잠깐 밖으로 나갔다.왜 나갔더라.도희는 기억을 되짚기 시작했다. 가방순이를 맡아준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도희야, 밖에 누가 너 찾던데? 꽤 급해 보이던데 들어오진 못하고 있었나 봐. 잘생겼어. 한번 가봐.”“누군데?”“모르겠어. 불편하면 같이 가줄까?”“아니야, 나 혼자 가볼게.”도희가 신부대기실을 나서고 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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