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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화. 가지 마

Penulis: 케사르
last update Tanggal publikasi: 2026-10-24 06:05:00

화요일, 해원은 일곱 시가 조금 넘어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

태헌이 먼저 와 있었다.

산책로 안내판 옆이었다. 정장 차림 그대로,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해원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를 알아본 순간, 걸음이 먼저 빨라졌다. 해원은 그걸 느끼고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

가까이 가자 태헌의 얼굴이 보였다. 나흘 만이었다. 눈 밑이 꺼져 있었다. 면도는 했는데 턱 언저리에 베인 자국이 하나 있었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

해원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까 화가 났다.

"왔어?"

"……네."

둘은 잠깐 서 있었다. 무슨 인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

"걸어요."

해원이 먼저 보행로로 들어섰다. 태헌이 옆으로 왔다. 팔이 닿지 않을 만큼, 하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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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29화. 가지 마

    화요일, 해원은 일곱 시가 조금 넘어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태헌이 먼저 와 있었다.산책로 안내판 옆이었다. 정장 차림 그대로,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해원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를 알아본 순간, 걸음이 먼저 빨라졌다. 해원은 그걸 느끼고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가까이 가자 태헌의 얼굴이 보였다. 나흘 만이었다. 눈 밑이 꺼져 있었다. 면도는 했는데 턱 언저리에 베인 자국이 하나 있었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해원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까 화가 났다."왔어?""……네."둘은 잠깐 서 있었다. 무슨 인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걸어요."해원이 먼저 보행로로 들어섰다. 태헌이 옆으로 왔다. 팔이 닿지 않을 만큼, 하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만큼의 거리였다.운동장 쪽에서 아이들 소리가 났다. 자전거가 지나가서 해원이 옆으로 비켰고, 그 바람에 어깨가 태헌의 팔에 스쳤다. 해원은 바로 떨어졌다. 태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몇 걸음을 더 걷고 나서 해원이 말했다."계약 끝내려고 왔어요.""…알았어."태헌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해원은 그게 고마운지 서운한지 알 수 없었다."계약 끝내면……."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다. 해원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말했다."빚은 어떻게 돼요?""없어."해원은 걸음을 멈췄다."무슨 뜻이에요?""어제 정리했어. 전부."태헌도 멈춰 섰다. 해원을 보지 않고, 앞쪽 길을 보고 있었다."제가 말씀드리기도 전인데요.""그게 의미가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28화. 계약부터

    일요일 아침, 해원은 부은 눈으로 일어났다.거울을 보고 찬물로 세수를 두 번 했다. 그래도 눈두덩이 그대로였다. 오늘은 출근을 안 해도 되는 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어제 돌려놓고 잊어버린 빨래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다시 돌렸다. 라면을 끓여 반쯤 먹었을 때 다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내일 아침 미팅 자료 니가 갖고 있지?][응. 내가 들고 갈게.][ㅇㅋ 주말 잘 보내라~]해원은 이모티콘 하나로 대답했다.오후에는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그 한 줄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뒤에 반찬 얘기가 붙었을 것이다. 언제 올 거냐는 말도.[응. 엄마도 잘 먹어.]엄마는 하트 하나를 보냈다.해원은 그 하트를 오래 보고 있었다.엄마는 지금 그 집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둘이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일요일을 보내고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해원이 가지 못하는 그 집에서.어제는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혔다.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울 만큼 운 다음이라 그런지, 머리가 차가웠다.해원은 처음으로 그날을 똑바로 떠올려봤다. 피하지 않고, 처음부터.엄마에게 그날은 앞으로 함께 살 사람의 가족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해원에게는 엄마가 겨우 시작한 결혼을 자기 빚이 망치지 않게 지켜야 하는 자리였다.그리고 태헌에게는 자기가 원하던 그림이 완성되는 자리였다. 가족들 앞에서 해원이 그를 오빠라고 부르고, 문이 닫히면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 그걸 처음으로 눈앞에서 본 날.같은 식탁이었다. 세 사람이 전부 다른 걸 보고 있었다.놀이였다.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해원은 지우고 싶었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27화. 같은 손

    일곱 시쯤, 태헌은 객실 전화기를 들었다."룸서비스요. 파스타 두 개하고……"말하다가 멈췄다. 수화기 너머에서 직원이 기다렸다."하나만 주세요."전화를 끊고 나서도 태헌은 한동안 수화기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저녁은 늘 둘이었다. 해원이 사 오거나, 태헌이 시키거나. 메뉴를 고르는 건 대개 해원이었고, 태헌은 그 옆에서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다.파스타가 왔다. 반쯤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맛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휴대전화를 집었다. 해원과의 대화창은 금요일 낮에서 멈춰 있었다. 오늘 몇 시에 끝나세요, 저녁은 뭐 먹을까요. 그런 말들.태헌은 자판 위에 엄지를 올렸다.[돌아와.]쓰고 나서 그 세 글자를 내려다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은 명령이 될 수 있었다. 해원은 그 명령을 좋아했고, 태헌도 그걸 알았다.그런데 금요일 밤, 해원은 그 관계가 무엇 위에 서 있었는지 알게 됐다.지웠다.[보고 싶어.]그것도 지웠다.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태헌은 알 수 없었다.열한 시가 넘어서 태헌은 차 키를 집었다.어디로 가는지 생각하지 않고 운전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길은 알았다. 몇 번이나 해원을 데려다준 길이었다. 신호를 몇 번 지나 해원의 오피스텔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시동은 끄지 않았다.칠 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창. 불이 켜져 있었다.태헌은 핸들 위에 손을 올린 채 그 창을 올려다봤다.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올라가서 할 말도 없었다. 그냥, 저 불이 켜져 있다는 걸 보고 싶었다. 해원이 저 안에 있다는 걸.얼마 뒤 불이 꺼졌다.태헌은 꺼진 창을 계속 보고 있었다.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26화. 어둠 속.

    토요일 아침, 알람이 두 번째 울렸을 때에야 해원은 눈을 떴다.베개에 마스카라 자국이 번져 있었다. 어젯밤 화장도 지우지 않고 누웠던 모양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것까지는 기억났다.휴대전화를 집었다. 알림이 몇 개 있었다. 업무 단체방, 쇼핑몰 광고.태헌은 없었다.해원은 화면을 끄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러 가다 말고 돌아와 다시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그렇게 확인하는 자기가 한심해서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예식은 열한 시였다. 해원은 지운 화장을 다시 했다. 눈 밑이 부어 있어서 컨실러를 평소보다 두껍게 발랐다.현장은 정신없었다. 신부 대기실 조명이 하나 나가 있었고, 혼주 안내 시간을 후배가 삼십 분 잘못 적어 왔다. 해원은 예식장 담당자에게 알리고, 전화하고, 웃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괜찮았다.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았다. 할 일이 계속 생겨서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신부 입장 십 분 전, 대기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신부 어머니가 딸의 면사포 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미 다 정리된 면사포를 몇 번이고 다시 펴면서, 예쁘다, 우리 딸, 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해원은 문고리를 잡은 채 서 있었다.연한 청색 원피스가 생각났다. 거울 앞에서 어색하게 웃던 엄마. 이거 괜찮니. 해원은 그 사진에 답장도 하지 못했다. 그때 해원 앞에는 계약서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진이 누구에게서 온 건지 알고 있었다."플래너님?"신부가 해원을 보고 있었다."아, 네. 입장 십 분 전이에요. 준비되시면 말씀해 주세요."목소리는 멀쩡하게 나왔다. 해원은 문을 닫고 복도를 걸어 직원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를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25화. 알았기 때문에

    해원은 그날 식탁을 떠올렸다.엄마는 행복해 보였다. 명우도 그랬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자녀가 처음 만나는 자리라고 생각했다.그런데 태헌은 아니었다.처음부터 해원이 그 집에 올 걸 알고 있었다. 자신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해원이 어떤 표정을 지을지도 예상했을 것이다.“그날 제가 얼마나 놀랐는지 보셨죠?”“봤어.”“알면서 처음 뵙겠다고 하신 거네요.”“그래.”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날 태헌은 손을 내밀었다. 해원은 그 손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처음 만나는 사이가 아니라고 말하는 순간 엄마와 명우가 이유를 물을 테니까.태헌은 그것까지 알고 있었을 것이다.“제가 아무 말도 못 할 거라는 것도 아셨겠네요.”태헌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그럴 거라고 생각했어.”해원은 그를 바라봤다.“그날 늦게 내려오신 것도요?”태헌은 잠시 말이 없었다.“바로 내려갈 수 있었어.”해원은 입술을 다물었다.그날 자신은 태헌이 왜 저러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계약한 지 사흘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그 남자가 갑자기 엄마의 결혼 상대의 아들로 나타났다.그런데 태헌에게는 모든 게 예정된 일이었다. 자신이 놀랄 순간까지 기다리고 있었다.“그날 엄마가 오빠라고 부르라고 했잖아요.”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저는 그때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어요. 엄마는 웃고 있고, 아버지도 기다리고 계시고.”해원은 잠깐 말을 멈췄다.그때 자신이 어떤 얼굴로 태헌을 불렀는지까지 기억났다.“태헌…… 오빠.”그렇게 부르자 태헌은 잔을 내려놓았

  • 낮에는 오빠, 밤에는 주인님   124화. 유희의 시작

    “그래.”태헌은 피하지 않고 대답했다.해원은 그를 바라봤다.예상했던 대답이었다. 일 년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는 말을 들었을 때부터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그런데 직접 듣는 건 달랐다.“정말요?”“그때는.”“일 년 지나면 저 없어도 괜찮았다고요?”태헌은 잠시 해원을 봤다.“그 정도면 끝낼 수 있을 줄 알았어.”해원은 그 말을 이해하는 데 시간이 걸렸다.끝낼 수 있을 줄 알았다.태헌은 처음부터 끝을 생각하고 있었다. 계약서에 적힌 삼백육십오 일이 지나면 빚을 없애주고, 해원은 자기 생활로 돌아가면 된다고 생각했던 것이다.해원은 침대 위에 모았던 손을 풀었다.“저는 그때 일 년이 지나면 어떻게 될지 생각도 못 했어요.”태헌은 대답하지 않았다.“당장 빚이 없어질 수 있다는 것만 생각했어요. 엄마한테 들키지 않고 끝낼 수 있으면 된다고.”그날 해원에게 일 년은 버텨야 하는 시간이었다.태헌에게는 달랐다.원하는 만큼 자신을 곁에 두었다가 끝낼 수 있는 기간이었다.“그럼 계약 끝나고 제가 다른 사람 만나도 상관없었겠네요.”“그때는 그랬어.”해원은 입술을 다물었다.태헌이 자신을 좋아한다고 처음 느꼈던 날들이 떠올랐다. 같이 밥을 먹고, 집에서 자고, 서로의 하루를 기다리게 된 시간들이었다.그 모든 것이 전부 거짓이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처음의 태헌은 그곳까지 갈 생각이 없었다.“지금은 달라.”태헌이 말했다.해원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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