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일곱 시쯤, 태헌은 객실 전화기를 들었다.
"룸서비스요. 파스타 두 개하고……"말하다가 멈췄다. 수화기 너머에서 직원이 기다렸다."하나만 주세요."전화를 끊고 나서도 태헌은 한동안 수화기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저녁은 늘 둘이었다. 해원이 사 오거나, 태헌이 시키거나. 메뉴를 고르는 건 대개 해원이었고, 태헌은 그 옆에서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다.파스타가 왔다. 반쯤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맛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휴대전화를 집었다. 해원과의 대화창은 금요일 낮에서 멈춰 있었다. 오늘 몇 시에 끝나세요, 저녁은 뭐 먹을까요. 그런 말들.태헌은 자판 위에 엄지를 올렸다.[돌아와.]쓰고 나서 그 세 글자를 내려다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은 명령이 될 수 있었다. 해원은 그 명령을 좋아했고, 태헌도 그걸토요일 예식은 별일 없이 끝났다. 신랑 쪽 하객이 예상보다 스무 명 많이 와서 연회장 직원과 의자를 나르긴 했지만, 그 정도는 일도 아니었다. 신부는 퇴장하면서 해원에게 손을 흔들었다. 해원도 손을 흔들어줬다. 장비를 정리하고 직원 출입구로 나오니 여섯 시 반이었다. 휴대전화에 엄마의 메시지가 와 있었다. [오늘 저녁 갤러리 전시 오픈해. 시간 되면 들러.] 해원은 그 메시지를 엘리베이터 안에서 두 번 읽었다. 시간 되면, 이라고 썼다. 오라는 말도, 안 와도 된다는 말도 아니었다. 엄마는 요즘 그런 식으로 말했다. 해원이 부담스럽지 않게, 그렇다고 아주 멀어지지도 않게. 그 집이 아니라 갤러리였다. 거기라면 갈 수 있을 것 같았다. 해원은 택시를 잡았다. 온재 갤러리는 골목 안쪽, 낮은 건물 일 층에 있었다. 해원이 대학 다닐 때 엄마가 처음 문을 연 곳이었다. 그때는 손님보다 엄마가 직접 만든 그릇이 더 많았다. 오늘은 달랐다. 골목 입구부터 사람들이 서 있었다. 유리문 안쪽이 노랗게 환했고, 와인잔을 든 사람들이 작품 사이를 천천히 걷고 있었다. 해원은 맞은편 담벼락 아래에서 걸음을 멈췄다. 엄마가 보였다. 사람들 사이에서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화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도 평소와 달리 단정하게 올려 묶었다. 해원이 본 적 없는 짙은 남색 원피스였다. 엄마는 웃고 있었다. 손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그런데 손님이 다른 작품 쪽으로 돌아서자 그 웃음이 바로 내려앉았다. 엄마는 잠깐 아무것도 없는 벽을 보고 서 있다가, 다음 손님이 다가오자 다시 웃었다. 해원은 그 얼굴을 알았다. 엄마가 아버지와 이혼하던 해에 손님들 앞에서 짓던 얼굴이었다. 명우는 갤러리 반대편 끝에 있었다. 양복이 아니라 니트 차림이었다. 누군가와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말은 대부분 상대가 하고 있었다. 명우는 고개만 끄덕였다. 엄마와 명우 사이에는 작품 진열대 두 개만큼의 거리가 있었다. 손님 하나가 엄마에게 무언가를 묻는 게 보였다. 엄마가 명우
수요일 오후 다섯 시 오십 분, 다연이 의자를 굴려 해원 자리까지 왔다. "너 오늘은 약속 없어?" 해원은 모니터에서 눈을 떼지 않았다. 다음 주 예식의 피로연 좌석표를 세 번째 고치는 중이었다. 신랑 쪽 큰아버지와 작은아버지를 한 테이블에 앉히면 안 된다는 연락이 방금 왔다. "응." "진짜? 오." 다연이 해원의 의자 등받이를 붙잡고 흔들었다. "잘됐다. 너 맨날 바쁘다고 제일 먼저 튀었잖아. 오늘 팀 회식인데 같이 가." "나 이거 끝내야 돼." "큰아버지 작은아버지?" "어떻게 알았어." "아까 전화 다 들렸어. 그냥 큰아버지를 신부 쪽 테이블 끝에 박아. 거기 사람들 아무도 큰아버지 몰라." 해원은 웃음이 터졌다. 말도 안 되는 소리였다. 그래도 덕분에 머리가 조금 풀렸다. 좌석표를 다시 보니 신랑 쪽 다른 테이블에 빈자리가 보였다. "……천재네." "알아. 그러니까 가자." 회식은 회사 근처 고깃집이었다. 팀원 여섯이 테이블 두 개를 붙여 앉았다. 해원은 집게를 잡았다가 막내에게 뺏겼다. "선배님은 오늘 드시기만 하세요. 맨날 일만 하시잖아요." "내가 언제." "지난달 신부님 부케 사고 났을 때 선배님 꽃집까지 뛰어가셨잖아요. 힐 신고." "그땐 택시 탔어." "택시에서 내려서 뛰셨잖아요." 다들 웃었다. 해원도 웃었다. 맞는 말이라 반박할 말이 없었다. 고기가 익는 동안 팀장이 지난주 예식에서 사회자가 신랑 이름을 두 번이나 틀린 얘기를 꺼냈다. 두 번째에는 축가 제목을 틀리게 불렀다고 했다. 해원은 그 예식에 없었는데도 장면이 그려져서 숟가락을 내려놓고 웃었다. 다연이 맥주를 따르다 넘쳐서 테이블이 젖었고, 막내가 휴지를 뽑다가 통째로 쏟았다. "이 팀은 진짜 예식장 밖에서는 아무것도 못 하는구나." 해원이 말하자 다연이 해원의 어깨를 쳤다. "너도 포함이야." "나는 안 쏟았는데." "아직 까진 그렇지." 십 분 뒤 해원은 된장찌개 국자를 놓치고
화요일, 해원은 일곱 시가 조금 넘어 공원 입구에 도착했다.태헌이 먼저 와 있었다.산책로 안내판 옆이었다. 정장 차림 그대로, 두 손을 코트 주머니에 넣고 서 있었다. 해원이 횡단보도 건너편에서 그를 알아본 순간, 걸음이 먼저 빨라졌다. 해원은 그걸 느끼고 일부러 걸음을 늦췄다.가까이 가자 태헌의 얼굴이 보였다. 나흘 만이었다. 눈 밑이 꺼져 있었다. 면도는 했는데 턱 언저리에 베인 자국이 하나 있었다. 잠을 못 잔 얼굴이었다.해원은 그 얼굴을 보는 순간 목 안쪽이 뜨거워졌다. 보고 싶었다. 너무 보고 싶었는데, 막상 보니까 화가 났다."왔어?""……네."둘은 잠깐 서 있었다. 무슨 인사를 해야 할지 몰랐다."걸어요."해원이 먼저 보행로로 들어섰다. 태헌이 옆으로 왔다. 팔이 닿지 않을 만큼, 하지만 조금만 움직이면 닿을 만큼의 거리였다.운동장 쪽에서 아이들 소리가 났다. 자전거가 지나가서 해원이 옆으로 비켰고, 그 바람에 어깨가 태헌의 팔에 스쳤다. 해원은 바로 떨어졌다. 태헌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몇 걸음을 더 걷고 나서 해원이 말했다."계약 끝내려고 왔어요.""…알았어."태헌은 이유를 묻지 않았다. 해원은 그게 고마운지 서운한지 알 수 없었다."계약 끝내면……."목소리가 생각보다 떨렸다. 해원은 숨을 한 번 고르고 다시 말했다."빚은 어떻게 돼요?""없어."해원은 걸음을 멈췄다."무슨 뜻이에요?""어제 정리했어. 전부."태헌도 멈춰 섰다. 해원을 보지 않고, 앞쪽 길을 보고 있었다."제가 말씀드리기도 전인데요.""그게 의미가
일요일 아침, 해원은 부은 눈으로 일어났다.거울을 보고 찬물로 세수를 두 번 했다. 그래도 눈두덩이 그대로였다. 오늘은 출근을 안 해도 되는 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했다.어제 돌려놓고 잊어버린 빨래에서 눅눅한 냄새가 났다. 다시 돌렸다. 라면을 끓여 반쯤 먹었을 때 다연에게서 메시지가 왔다.[내일 아침 미팅 자료 니가 갖고 있지?][응. 내가 들고 갈게.][ㅇㅋ 주말 잘 보내라~]해원은 이모티콘 하나로 대답했다.오후에는 엄마에게서 연락이 왔다.[밥은 잘 챙겨 먹고 있니?]그 한 줄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뒤에 반찬 얘기가 붙었을 것이다. 언제 올 거냐는 말도.[응. 엄마도 잘 먹어.]엄마는 하트 하나를 보냈다.해원은 그 하트를 오래 보고 있었다.엄마는 지금 그 집에 있을 것이다. 아버지와 둘이서 일요일 오후를 보내고 있을 것이다. 어떤 일요일을 보내고 있을지 상상할 수도 없었다. 해원이 가지 못하는 그 집에서.어제는 그 생각만 하면 숨이 막혔다. 오늘은 이상하게 조용했다. 울 만큼 운 다음이라 그런지, 머리가 차가웠다.해원은 처음으로 그날을 똑바로 떠올려봤다. 피하지 않고, 처음부터.엄마에게 그날은 앞으로 함께 살 사람의 가족을 처음 만나는 자리였다. 해원에게는 엄마가 겨우 시작한 결혼을 자기 빚이 망치지 않게 지켜야 하는 자리였다.그리고 태헌에게는 자기가 원하던 그림이 완성되는 자리였다. 가족들 앞에서 해원이 그를 오빠라고 부르고, 문이 닫히면 주인님이라고 부르는 것. 그걸 처음으로 눈앞에서 본 날.같은 식탁이었다. 세 사람이 전부 다른 걸 보고 있었다.놀이였다.그 단어가 떠오르자마자 해원은 지우고 싶었
일곱 시쯤, 태헌은 객실 전화기를 들었다."룸서비스요. 파스타 두 개하고……"말하다가 멈췄다. 수화기 너머에서 직원이 기다렸다."하나만 주세요."전화를 끊고 나서도 태헌은 한동안 수화기에 손을 올려두고 있었다. 일주일 동안 저녁은 늘 둘이었다. 해원이 사 오거나, 태헌이 시키거나. 메뉴를 고르는 건 대개 해원이었고, 태헌은 그 옆에서 아무거나 괜찮다고 했다.파스타가 왔다. 반쯤 먹고 포크를 내려놓았다. 맛이 없었던 건 아니었다.휴대전화를 집었다. 해원과의 대화창은 금요일 낮에서 멈춰 있었다. 오늘 몇 시에 끝나세요, 저녁은 뭐 먹을까요. 그런 말들.태헌은 자판 위에 엄지를 올렸다.[돌아와.]쓰고 나서 그 세 글자를 내려다봤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 말은 명령이 될 수 있었다. 해원은 그 명령을 좋아했고, 태헌도 그걸 알았다.그런데 금요일 밤, 해원은 그 관계가 무엇 위에 서 있었는지 알게 됐다.지웠다.[보고 싶어.]그것도 지웠다. 그 말을 할 자격이 있는지 태헌은 알 수 없었다.열한 시가 넘어서 태헌은 차 키를 집었다.어디로 가는지 생각하지 않고 운전했다. 생각하지 않아도 길은 알았다. 몇 번이나 해원을 데려다준 길이었다. 신호를 몇 번 지나 해원의 오피스텔 건너편에 차를 세웠다.시동은 끄지 않았다.칠 층, 오른쪽에서 세 번째 창. 불이 켜져 있었다.태헌은 핸들 위에 손을 올린 채 그 창을 올려다봤다. 올라갈 생각은 없었다. 올라가서 할 말도 없었다. 그냥, 저 불이 켜져 있다는 걸 보고 싶었다. 해원이 저 안에 있다는 걸.얼마 뒤 불이 꺼졌다.태헌은 꺼진 창을 계속 보고 있었다.
토요일 아침, 알람이 두 번째 울렸을 때에야 해원은 눈을 떴다.베개에 마스카라 자국이 번져 있었다. 어젯밤 화장도 지우지 않고 누웠던 모양이었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았다. 천장을 보고 누워 있던 것까지는 기억났다.휴대전화를 집었다. 알림이 몇 개 있었다. 업무 단체방, 쇼핑몰 광고.태헌은 없었다.해원은 화면을 끄고 일어났다. 세수를 하러 가다 말고 돌아와 다시 확인했다. 그대로였다. 그렇게 확인하는 자기가 한심해서 휴대전화를 침대 위에 던지듯 내려놓았다.예식은 열한 시였다. 해원은 지운 화장을 다시 했다. 눈 밑이 부어 있어서 컨실러를 평소보다 두껍게 발랐다.현장은 정신없었다. 신부 대기실 조명이 하나 나가 있었고, 혼주 안내 시간을 후배가 삼십 분 잘못 적어 왔다. 해원은 예식장 담당자에게 알리고, 전화하고, 웃었다. 일하는 동안에는 괜찮았다. 괜찮은 척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괜찮았다. 할 일이 계속 생겨서 다른 걸 생각할 틈이 없었다.신부 입장 십 분 전, 대기실 문을 열었을 때였다.신부 어머니가 딸의 면사포 끝을 매만지고 있었다. 이미 다 정리된 면사포를 몇 번이고 다시 펴면서, 예쁘다, 우리 딸, 하고 혼잣말처럼 말했다.해원은 문고리를 잡은 채 서 있었다.연한 청색 원피스가 생각났다. 거울 앞에서 어색하게 웃던 엄마. 이거 괜찮니. 해원은 그 사진에 답장도 하지 못했다. 그때 해원 앞에는 계약서가 있었고, 맞은편에는 그 사람이 앉아 있었다. 그 사람은 그 사진이 누구에게서 온 건지 알고 있었다."플래너님?"신부가 해원을 보고 있었다."아, 네. 입장 십 분 전이에요. 준비되시면 말씀해 주세요."목소리는 멀쩡하게 나왔다. 해원은 문을 닫고 복도를 걸어 직원 화장실로 들어갔다. 세면대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