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진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했다.“맞아, 소현이 넌 역시 우리보다 생각이 앞선다니까. 예정아, 앞으로 소현이만 믿고 따라다녀.”하예진 자매는 진취적이고 야심이 있지만 투자 방면에서는 아직 성소현보다 못하다. 성소현은 사업가 집안 출신이라 어릴 때부터 보고 들은 게 있으니까.그녀는 얼굴을 살짝 붉히며 가볍게 웃었다.“언니, 저도 언니네 고향으로 내려가 봤으니 황무지가 많은 걸 알게 됐고 그 황무지를 임대해서 화초도 심고 야채랑 과일을 심을 생각도 하게 됐어요. 큰오빠한테 여쭤봤는데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우리가 무슨 아이템에 투자하든 돈만 벌 수 있으면 다 좋은 아이템이라면서 한번 시도해 보라고 추천하데요.”성소현이 호탕하게 말했다.“그럼 한번 시도해 봐요. 돈 벌면 좋고 못 벌어도 경험 쌓는 거잖아요. 어차피 내겐 큰 액수도 아니에요. 예정아, 너 저녁에 태윤 씨한테 말해봐 봐. 태윤 씨도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면 우리 과감하게 시도해 보자. 태윤 씨는 투자에 대한 안목이 있는 분이잖아.”전태윤이 전씨 그룹을 전수한 이후로 투자한 프로젝트마다 어마어마한 수익을 창출한다.성기현은 집에 올 때마다 전태윤의 성과를 얘기했지만 성소현이 그를 짝사랑한다는 걸 알게 된 이후로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좋아.”하예정도 통쾌하게 대답했다.사실 몇몇 남자들은 귀를 쫑긋 세우고 그녀들이 하씨네 마을의 논밭을 임대하여 화초와 야채 및 과일을 심으려 한다는 걸 줄곧 듣고 있었다. 그들은 비록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지만 전태윤이든 소정남이든 모두 성소현의 안목을 인정했다.그녀 말대로 지금은 각 분야가 포화상태라 입문자는 성공하기 매우 어렵다.그녀들이라 해도 투자 경쟁력이 매우 클 테지만 성소현과 하예정의 신분이 동종업자들보다 우세를 차지하여 협상하고 판로를 찾는 건 다른 사람들보다 조금 쉬울 것이다.도저히 안 되겠다 싶으면 제 집안 호텔에 공급하면 그만이다.하여 몇몇 대표님들도 성소현의 아이디어가 괜찮다고 생각했다.전태윤은 도와주지 않기로 했다. 하예정
“난 안 먹은 음식만 동명 삼촌한테 드렸어요.”어린 녀석이 한마디 더 보탰다.뭇사람들도 문제 될 게 없다고 생각했다.“휴식도 할 겸 자유 활동 어때?”그는 사랑하는 아내와 단둘이 리조트를 둘러보고 싶었다.다들 이해한다는 듯이 웃었다.잠시 휴식한 후 전태윤은 하예정을 데리고 바비큐장을 떠났다.“나랑 함께 화원으로 꽃구경하러 가. 지금 한창 꽃필 때야.”하예정은 거절하지 않았다. 그녀는 이곳이 낯설다 보니 어디가 경치 좋은지 몰라 전태윤만 따라다녔다.싱그러운 봄바람이 불어오자 그녀는 두 눈을 스르륵 감고 봄 내음을 만끽했다.“도시보다 공기가 더 좋아요.”전태윤이 가볍게 웃었다.“당연하지. 여긴 아주 한적해. 내일 처형 가게만 오픈하지 않았어도 우리 여기서 며칠 더 지낼 수 있을 텐데. 너도 이젠 제집 환경에 익숙해져야지.”“평생 지낼 내 집이니까 익숙해질 시간은 얼마든지 있어요. 조급할 필요 없으니 우선 언니 가게부터 안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줘요 우리.”전태윤은 그녀의 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여긴 그녀의 집이고 둘만의 집이라 앞으로 평생 지낼 곳이다.“그런데 리조트가 너무 커서 태윤 씨 없이 홀로 둘러보라고 하면 나 진짜 길 잃을 것 같아요.”“환경이 익숙지 않으면 길 잃어버리기에 십상이야. 리조트를 명인의 구상대로 배치해서 살짝 미로 같긴 해. 처음 온 사람은 아무도 데리고 다니지 않으면 이 안에서 사흘 동안이나 헤맬 수 있어.”하예정은 입이 쩍 벌어졌다.“대단하네요. 다행히 난 태윤 씨가 있어서 사흘 동안 헤맬 필요는 없겠네요. 진짜 벗어나지 못하면 얼마나 창피하겠어요.”전태윤이 웃으며 말했다.“어떻게 너 혼자 내버려 두겠어. 내가 무조건 함께 다니면서 환경을 익숙하게 해줘야지. 여자 데리고 우리 집 리조트를 돌아다니는 건 나도 이번이 처음이야.”“영광이네요.”“이런 기회를 줘서 내가 더 영광이야.”부부는 서로 마주 보며 활짝 웃었다.전태윤은 참지 못하고 걸음을 멈추더니 사랑하는 아내를 끌어안고 목소리를 내리깔
“왜 그래?”그녀가 몇몇 화분을 뚫어지라 쳐다보자 전태윤이 자상하게 물었다.“마음에 들면 몇 개 집에 가져가서 베란다에 키우자.”“태윤 씨.”하예정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그에게 물었다.“내가 애초에 꽃가게 가서 꽃 사 오라고 했을 때 진짜 꽃가게에 갔어요 아니면 이분들한테 보내오라고 시켰어요?”이젠 더는 숨길 이유가 없어 전태윤도 솔직하게 대답했다.“양씨 아저씨한테 전화해서 아저씨가 사람을 시켜서 이 화분들을 가져왔어. 네가 꽃잎이 크게 활짝 피고 또 무성한 잎사귀를 좋아하다 보니 내가 일부러 그런 꽃들로 보내오라고 했어.”“어쩐지 그 뒤로 태윤 씨가 사 온 꽃이 내가 산 꽃들보다 더 예쁘다 했어요. 태윤 씨네 리조트 장인이 정성껏 키운 품종이었군요.”꽃가게에서 산 것보다 퀄리티가 훨씬 더 좋았다.“여보, 화내는 거 아니지?”“뭐 이런 거로 화내겠어요. 제일 화났던 순간은 이미 다 지나갔어요.”전태윤은 꽃을 다루는 장인들이 보는 앞에서 그녀 어깨에 손을 올리고 부드럽게 감싸 안은 채 화방에서 나왔다. 그는 장인들이 들을까 봐 목소리를 한껏 내리깔았다.“그땐 널 잃을까 봐 엄청 두려웠어.”하예정은 그의 볼을 살짝 꼬집고는 바로 놓아줬다.“애초에 가전제품 사 오라고 할 때도 양씨 아저씨한테 시킨 거겠죠?”“가전제품은 박씨 아저씨가 보내왔어. 들킬까 봐 일부러 너 없을 때 보내온 거야.”하예정은 실소를 터트렸다.“나 속이느라 고생 많았네요.”“앞으론 두 번 다시 널 속이지 않아. 거짓말하는 거 진짜 너무 힘들어. 거짓말로 또 다른 거짓말을 덮어야 하잖아. 그렇게 굴리다 보면 마치 눈 덩어리처럼 점점 더 커져.”“난 태윤 씨가 제법 능청스럽게 거짓말하는 줄 알았어요.”전태윤은 머리 숙이고 가볍게 웃었다. 나중에 그는 정말 능청스럽게 거짓말을 둘러댔으니까.서원 리조트가 너무 크다 보니 시간상의 관계로 전씨 일가 큰 사모님 하예정은 처음 리조트에 돌아왔지만 전부 둘러보지 못했다.하예진은 토스트 가게가 내일 오픈이라 사돈의 만류에도
그가 집에 머물면서 손은경과 친해질 기회를 만들어 주고 싶은 것이다.노동명은 손은경에 대한 인상이 나쁘지는 않았지만, 그녀에게 호감을 느낄 정도는 아니었다.“뭐가 불편할 게 있어? 어차피 운전해서 출근할 텐데, 그리고 네가 조금 늦게 도착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 하겠어? 지급 집에 손님도 있고 그런데, 너 요 며칠은 꼭 집에 와 있어!”“엄마, 나 지금 조금 지쳤어요. 그리고 지금 운전해서 더 이상 얘기하기 어려우니 이만 끊을게요.”그는 어머니의 요청을 바로 거절하지 않고 핑계를 대고 전화를 끊었다.전화기 너머에 있던 노씨 사모님은 아들이 전화를 끊자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남편에게 말했다.“당신의 작은 아들은 아마도 평생을 독신으로 살 것 같아요. 은경이처럼 좋은 여자애를 보고도 말 한마디를 아까워하니 말이에요. 은경이는 동명이의 얼굴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는데, 우리 동명이는 한곳에 있을 생각도 없는 거예요.”이에 남편은 담담하게 말했다.“당신이 너무 조급해했어, 목적도 너무 뻔하고 말이야. 동명이는 이미 당신이 주선한 소개팅을 여러 번 갔어. 차수가 많아지니 싫증 나기도 하겠지, 우리에게 조종당하고 싶지 않은 거야. 그냥 이대로 놔둬. 만약 평생 독신일 운명이라면, 당신이 하루에 소개팀을 800번 시켜도 소용없어. 만약 누구와 인연이 있다면, 당신이 이렇게 계획하지 않아도 서로 자연스럽게 알게 될 거야. 인연이 있든 없든 다 하늘에 맡기는 거야.”노씨 사모님은 화가 나서 남편의 팔을 세게 꼬집었다.“당신 같은 아버지가 있으니 당신 아들이 36살이 다 되어도 노총각인 거예요!”남편은 욕을 먹어도 화를 내지 않았다.“다 제 갈 길이 있는데 내가 왜 이 나이에도 애들을 걱정해야 하겠어? 그러니 아무 생각 말고, 각자의 운명에 따르도록 놔두는 거야.”말을 마친 그는 이불을 당겨 머리까지 덮었다. 아내가 또 자신을 꼬집을까 걱정된 것이다.하룻밤이 조용히 지나갔다.다음날은 토스트 가게가 오프닝 하는 날이다.하예정과 숙희 아주머니는
“노 대표님은 우리 가게의 첫 손님인데, 무료로 해드릴게요. 무얼 드시겠어요?”“그럴 필요 없어. 첫날에는 돈이 들어오는 걸 봐야지, 누가 오든 당신은 돈을 제대로 계산해.”전태윤도 한마디 덧붙였다.“처형, 동명이는 아침 식사 계산할 돈이 충분히 있으니, 할인도 하지 말고 그냥 가격표에 적힌 대로 돈을 받아요.”“그럼 나도 노 대표님과 사양하지 않을게요.”전태윤은 마음속으로 중얼거렸다.‘사양하고 말고 할 게 뭐 있어요? 어쩌면 앞으로 계속 동명이에게 밑지며 살지도 모르는데.’노동명이 온 후, 곧 손님들이 아침을 먹으러 가게에 들어왔고, 덕분에 하예진도 바빠지기 시작했다.새 가게는 사람을 끌어들이기 가장 쉽다.하예진의 이 가게는 한동안 인테리어를 했고, 근처 회사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매일 지나가며 이 가게를 유의한 지 오라다.그들은 가게의 심플하고도 온화한 인테리어가 마음에 들었다.오늘 드디어 오프닝 하는 것을 보고 모두 새 가게 주인의 솜씨를 맛보러 찾아왔다.하예진은 열다섯 살 때부터 홀로 동생을 데리고 살았는데, 그녀의 요리 솜씨는 이때부터 갈고닦아졌다.음식을 맛본 사람들은 한결같이 맛이 좋다고 칭찬했다.한동안 바삐 돌아치고 나서야 하예진은 비로소 숨을 돌릴 시간이 생겼다.그녀는 힘들었지만 뿌듯했다.물론 전 시어머니와 전남편이 가게에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면 그녀의 미소는 저녁까지 이어졌을 것이다.주형인은 꽃바구니를 안고 들어왔는데, 가게에 전태윤 부부와 숙희 아주머니 말고는 아무도 없는 걸 보고 눈살을 찌푸리며 듣기 싫은 말을 했다.“왜 손님이 한 명도 없어?”김은희는 문 앞에 세워져 있는 꽃바구니들을 관찰했다. 전태윤 부부와 심효진, 그리고 성소현이 보낸 것이었다.그중에는 노동명이 보낸 꽃바구니도 여러 개 있었는데, 김은희는 그걸 보고 표정이 좋지 않았다.자기 아들은 꽃바구니를 겨우 하나 샀는데, 노동명은 여러 개나 산 걸 보고 둘이 비교된다고 느껴졌다.그녀는 아들이 가게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얼른 따라 들어갔다.마
“꽃바구니가 왜 그렇게 많아? 누가 보낸 건데?”주형인은 질투가 좀 났다.자신이 버린 여자가, 자신이 준 돈으로 작은 아침 식사 가게를 열었을 뿐인데, 오프닝 할 때 문 앞에 꽃바구니가 줄을 지어 세워져 있는 것을 보고 마음이 불편했다.“뭐, 놓을 곳이 없으면 이건 가서 반품...”주형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김은희는 아들의 말을 끊고 그의 손에서 꽃바구니를 받아 들더니 매섭게 노려보았다. 김은희는 다시 미소를 띠며 하예진에게 말했다.“빼곡히 놓으면 놓을 수 있을 거야.”그녀는 꽃바구니를 들고 문 쪽으로 다가가 노동명이 보낸 꽃바구니를 뒤로 밀어넣고 자기 것을 세워놓았다. 만약 상대하기 어려운 전태윤 부부가 가게에 없었더라면, 김은희는 노동명이 보낸 꽃바구니를 부수고 쓰레기통에 버렸을지도 모른다.하예진은 오프닝 첫날에 전남편과 전 시어머니와 갈등을 빚고 싶지 않아 이 모자가 하는 행동을 되도록 눈감아줬다.“예진 언니, 나 왔어.”성소현은 항상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말소리부터 먼저 도착한다.아침 일찍 일어난 적이 거의 없는 그녀에게 지금은 매우 이른 시각이다.“이 두 인간 왜 여기 있어?”가게에 들어서자마자 주형인 모자를 발견한 성소현은 눈살을 찌푸리며 바로 주씨네 모자에게 경고했다.“둘이 뭐 하러 왔어? 여기는 당신들을 환영하지 않으니 당장 나가. 아님 내가 사람을 불러 밖으로 내보내 줄까?”“성... 소현씨, 우리도 예진이를 응원하러 온 거지, 다른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에요. 정말이에요, 우리가 어떻게 감히 다른 일을 할 수 있겠어요?”성소현의 성격에 대해 들어본 적이 있는 주형인은 그녀가 무서웠다.“다른 짓을 하러 온 게 아니라고? 그럼, 밥 먹으러 온 거겠네? 그런 거면 어서 돈 내고 나가!”성소현은 좀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하예진이 오프닝 하는 첫날에는 사람들과 싸우면 좋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에 지금 성격을 애써 누르는 중이다.“네네, 이미 다 먹었어요. 지금 바로 계산하고 떠나려던 참이었어요.”주형인은 어
주씨네 가족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는 하예정은 언니의 새 가게 오프닝 날에 그들이 와서 행패를 부릴까 봐 걱정되었다. 그리고 고향의 쓰레기 친척들도 찾아올까 봐 걱정되었다. 누가 가게를 열던, 오프닝 첫날에 누군가가 찾아와서 소란을 피우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것이다.걱정이 되었던 하예정은 남편에게 도움을 청하였다. 사람을 시켜 부근에서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고, 만약 누군가가 가게에 들어와 소란을 피우면, 언니를 도와서 처리해 달라고 했다.독립적인 성격에 남편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을 꺼리는 하예정이 어쩌다가 전태윤에게 먼저 도움을 청하니, 그는 마음이 들떴고, 마누라가 드디어 자신을 가족으로 생각한다고 느꼈다.전태윤은 두말없이 응했다.사실 그녀가 먼저 부탁하지 않았더라도 꼼꼼한 전태윤은 주씨네와 와이프의 고향 친척들을 대비하여 사람들을 배치해 놓을 생각이었다.서현주는 전 씨의 경호원들과 노동명이 부른 경비원들이 따라 들어오는 것을 보고 정신을 차렸다. 가게를 둘러보니 하예정 부부와 성소현도 있었다.처음 만나 인사했을 때 오만한 태도로 자신을 완전히 무시하던 성소현의 모습을 서현주는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그녀의 마음속엔 성소현에 대한 두려움이 남아있다.“형... 형인 오빠 여기 없어?”서현주는 말을 더듬으며 하예진에게 물었다.“눈이 먼 것도 아니고, 있는지 없는지 안 보여?”사촌 여동생이 주문한 국수를 끓이고 있던 하예진은 서현주를 한 번 쳐다보더니 계속하여 요리하는 데 집중했다.서현주는 감히 뭐라 하지 못하고 작은 소리로 말했다.“오늘 나에게 새 가게 오프닝을 축하하러 간다고 말하면서 집을 나섰는데, 여기 없으면 어디로 간 거야?”하예진은 담담하게 말했다.“너도 모르는 제 남편의 행방을 나야 더더욱 모르지.”서현주는 그만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전씨의 경호원들과 노동명이 부른 경비원들을 보며 멋쩍게 웃었다.“저는 단지 사람을 찾으러 온 거지, 소란을 피우러 온 게 아니요. 제 남편이 여기 없는 것 같으니 그럼 이만 가볼게
하예진은 김이 모락모락 나는 국수를 성소현의 앞에 놓으며 왜 이 거리에 순찰하는 경비원이 있는지 설명했다.노동명의 가게를 임대한 하예진은 경비원들이 거리의 절반에서만 순찰하고 나미지 절반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는다는 것을 진작 눈치챘다. 하지만 경비원 몇 명이 여기저기 순찰하며 돌아다니니 온 거리의 안전 레벨이 한 단계 높아졌다.하예정은 눈을 깜빡이며 이게 모두 노동명이 언니를 위해 안배한 것으로 추측했다. 하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한 언니의 모습을 보며 하예정도 뭐라 할 수 없었다. 노동명이 언니를 위한 것인지, 아니면 정말로 모든 세입자의 안전을 위한 것인지 누가 알랴?언니가 노동명의 가게를 임대하였으니, 매일 출퇴근할 때마다 이곳을 지나가는 노동명이 전태윤을 봐서라도 언니를 돌봐줄 것이다.노동명이 먼저 언니에 대한 감정을 고백하기 전에는 하예정도 가만히 지켜보기만 할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성소현은 먼저 국수를 한입 맛보았는데 맛이 괜찮았다. 그녀는 국물이 잘 끓여졌다고 생각하여 한 그릇 모두 뚝딱했다.새 가게의 오프닝 첫날, 아침 장사를 마친 하예진은 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그녀는 전씨 할머니의 강력한 요구하에 친척과 친구들을 관성 호텔에 초대하기로 했다. 주형인에게서 많은 돈을 나눠 가져 손이 넉넉했던 하예진은 충분히 밥값을 치를 수 있었다.결혼 후 친구를 사귈 기회가 별로 없었던 하예진이 초대할 사람이라곤 성씨네 친척들, 심씨네와 전씨네 가족, 그리고 소정남과 노동명뿐이다. 성씨네 가족은 모두 왔고, 심씨네는 심효진 남매가 왔다. 심효진 남매의 부모님은 일이 있어 직접 오지 못하고 심효진에게 부탁하여 하예진에게 돈 봉투를 보내왔다.전씨네의 도련님들은 평소 주로 자기 집 호텔에서 식사했기 때문에 아직 학교에 다니는 아홉째를 제외하고는 다 참석했다. 그리고 할머니와 전현림 부부도 찾아왔다.전씨네의 다른 가족들은 일이 있어 직접 오지는 못하지만, 모두 장소민에게 부탁하여 축하 선물을 보내와 하예진의 체면을 세워주었다.하예정은 감동에 마
전씨 할머니는 한 손에 꽃다발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갓 구운 생선을 집어 전이혁에게 건넸다.“이런 작은 생선은 막 구웠을 때 먹는 게 맛있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따뜻할 때 먹어.”“고마워요, 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가 건넨 생선을 받아 주저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먹던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우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전이혁은 전우와 나이도 비슷하고, 어릴 때부턴 전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형제 중에서 전우와 가장 친했다. 그러니 그는 자랑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전우를 찾았다.전이혁의 사진을 보자마자 전우는 가족 단톡방에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할머니, 낚시 가셨어요? 직접 구워 드시기까지 하네요. 많이 잡으셨어요? 저도 먹을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이혁은 일부러 약 올리듯 답장했다.“이젠 없어. 할머니께서 나 주려고 특별히 남겨둔 거야. 그러니 네 몫은 없어. 그리고 너 진짜 생선 한 조각 먹으러 올 거야? 손해가 클 텐데?”“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할머니표 생선구이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할머니는 워낙 자유로워서 오전엔 리조트에 있다가도 오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었으니, 큰 손자인 전태윤도 못 말릴 정도였다.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할머니의 손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 것밖에 없을 뿐, 감히 할머니를 간섭할 수 없었다. 그나마 큰 손자인 전태윤이 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할머니는 그야말로 나이 든 개구쟁이였다. 할머니는 지금은 리조트에 있지만 다섯째 손자인 전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늘은 많이 잡지 못했어. 넷째한테 줄 몇 꼬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먹었어. 먹고 싶으면 설 연휴 때 와서 직접 낚시해서 구워 먹어. 그래야 더 맛있지.”전우는 아쉬움으로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는 고개만 돌려 살짝 보더니 다시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왔어요.”멀리서 전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이혁은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는 정말 좋았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 이런 날씨에는 바비큐가 최고죠.”관성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할머니들은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온이 확 올라와 정오 무렵에는 햇빛까지 쨍쨍하게 비추더니 약간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관성의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이렇게 바비큐를 해 먹긴 하지만 보통은 휴일이 되어야 준비해서 해먹을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생각만 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전이혁은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들이 성장하면 당장 사업을 넘겨주고, 자신은 조기 은퇴해 할머니처럼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것은 신선놀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넷째 도련님.”양씨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안부를 물었다.전씨 할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던 여러 할머니도 전이혁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전씨 할머니가 무려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막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손자는 이미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로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막내 두 명은 비록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적이 우수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었다.전씨 가문은 자손들이 하나같이 훌륭했고 가업도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니,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그들은 가끔 함께 수다를 떨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그들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때부터 이미 가문에서 주름잡는 존재였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전씨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아이를 불렀다.“소령이, 이리 와봐.”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어르신, 닭 다리 다 구워졌어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자신에게 닭 다리를 주려고 부른 줄 알았다.전씨 할머니는 여자아이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아직 다 안 구워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 거야.”“그런데 왜 양씨 아저씨의 자리를 잇고 싶다고 했지?”전씨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예뻐한다는 건 리조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전씨 가문은 몇 대째 아들만 태어났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을 가지길 원했었고, 그것이 안 되자 손녀를 기대해 보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할머니는 이제 증손녀를 기대해 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종종 직원들에게 집에 여자아이가 있으면 관성으로 데려와 학교도 보내고 같이 생활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리조트에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여자아이들이 리조트에 놀러 오게 되면 손주며느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한테 증손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양씨 아저씨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양씨 아저씨가 사는 집도 아주 예뻐요. 저도 양씨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그 여자아이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말도 잘해서 가끔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부모도 가르친 적이 없는 말을 스스로 내뱉곤 했었다.우빈이도 가끔 서원 리조트에 올 때마다 리조트에서 내려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곤 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여자아이가 리조트에 올라와 우빈이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아까 양씨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지? 네가 컸을 때는 양씨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야 네 차례가 오게 돼. 그보
할머니는 함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날씨가 좀 쌀쌀하네. 우리 따뜻하게 몸도 데울 겸 한 잔씩 할까?”“어르신.”전씨 할머니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양씨 아저씨는 바로 할머니를 제지했다.“어르신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 또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저를 혼내실 거예요.”“양 집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태윤이는 점점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온갖 걸 다 간섭하려 들어.”할머니는 손자인 전태윤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며 투덜거렸다.그러자 함께 있는 몇몇 할머니들이 웃기 시작했다.“큰 도련님께서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저희 나이에는 술도 적게 마시는 게 좋잖아요.”“과일주는 괜찮아. 양 집사, 가서 과일주 두 병 가져와. 바비큐에는 술이 있어야 제맛이지.”양씨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리조트에 전화해서 과일주 몇 병을 가져오도록 했다.그들이 직접 잡은 생선 외에도 양씨 아저씨는 몇몇 어르신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용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어르신들 옆에는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양씨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과일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분 좋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생활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내년엔 첫 증손주가 태어나니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할머니는 자신이 구운 소시지 한 꼬치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고 그 아이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소령이 갈수록 예뻐지네. 반짝이는 눈 좀 봐. 네 엄마가 너를 ‘소령이’라고 부르는 게 딱 맞아.”그 여자아이는 소시지를 건네받으며 귀엽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전씨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또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구워줄게.”“닭 다리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씨 할머니에게 닭 다리를 구워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