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전이진에게 전화를 걸었고 상대방이 전화를 받은 후 입을 열었다.“도련님, 운초 씨가 전화번호를 바꾸었더라고요. 오늘 오전에 두 번이나 가게에 갔는데 만나지 못했어요. 도련님은 만났어요?”전이진은 대답했다.“전 지금 소희 카페에서 운초가 꽃을 가져다주기를 기다리고 있어요.”전이진도 여운초의 새 전화번호를 몰랐다. 가게 점원도 알려주지 않으니 그는 어쩔 수 없이 꽃필무렵의 가게 번호를 기억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소희 카페 점장에게 도움을 청해 꽃필무렵에 전화를 걸어서 꽃을 배달해 달라고 부탁했다.이렇게 해야만 그녀를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운초 씨가 혼자 갔나요?”“다른 점원 한 명이 오토바이로 데려다주었어요. 형수님, 고마워요.”형수님은 비록 여운초를 만나지 못해 그에 관한 좋은 말을 해주지 못했지만, 그의 일로 오전에 두 번이나 꽃필무렵에 갔으니 형수님이 그의 일을 중시하는 것 같아 엄청 감동되었다. “한 집안 사람들끼리 그렇게 서먹하게 굴지 마요. 나중에 운초 씨를 만나면 절대 놀라게 하지 말고요.”“형수님, 전 지금 너무 후회돼 미칠 것 같습니다. 그러니 절대 그런 실수 반복하지 않을 거예요.”여운초의 마음을 얻지 못한 상황에서 그녀에게 입을 맞추는 무례한 짓을 저질렀으니 그녀가 놀라 도망갈만했다.전이진은 자신을 듬직하지 못한 놈이라고 여러 번 욕했다.하예정은 드디어 마음을 놓고 전화를 끊은 후, 운전하여 서점에 돌아갔다.다른 이야기.어르신은 전유하와 함께 먼저 공씨 일가에 가서 초대장을 건넨 후, 그 길로 성씨 일가에 갔다. 두 집안이 멀리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편리했다.어르신이 성씨 집안에 갔을 때 예준하는 마침 새 이웃의 신분으로 성씨 집안에 방문을 했었다. 모양새를 보니 남아서 밥이라도 먹을 기세였다.어르신과 전유하가 왔다는 소리를 듣자 성씨네 부부는 친히 마중을 나왔다.“어르신께서 오시면서 왜 미리 알리지 않으셨어요. 그랬다면 모시러 갔을 텐데요.”어르신이 차에서 내리자, 성씨네 사모님은 얼른 다가가
하필 딸애가 예준하와 사이가 좋아 마음이 혼란스러웠다.태윤에게 예준하를 설득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별로 소용이 없는 것 같았다.예준하가 하필 이웃의 신분으로 자주 찾아오고, 또 하필 밥을 먹을 시간에만 찾아왔는데 그건 분명 얻어먹으려는 속셈이었다.모두가 방에 들어간 후, 성소현은 직접 어르신에게 물을 따라주었다.그리고 예준하는 과일과 과자를 가져왔다.어르신은 예준하가 성씨 집안의 모든 것에 이미 익숙해졌다는 것을 발견했다.‘교활한 녀석. 성씨 집안 사모님도 어쩔 수 없게 만들었구나.’어쨌든 그는 아직 성소현에게 고백하지 않았고, 단지 이웃으로 왔을 뿐이었다. 하지만 많이 와봤으니 성씨 집안의 모든 것을 잘 아는 것도 정상이었다.게다가 예준하는 낯이 아주 두꺼워서 성소현 어머니가 딸애 몰래 눈치 주는 것도 보지 못한 척 행동했고, 성소현 아버지가 노려보는 것도 무시했다. 어쨌든, 성소현이 그와 함께 지내기를 원한다면 그는 뻔뻔스럽게 그 집안에 발을 들여놓았다.성소현에 대한 예준하의 마음은 오직 유청하 한 명만 지지했다.그녀는 예준하와 시누이가 아주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쿵 짝이 잘 맞아 나눌 화제가 많았다는 점이 지지하는 데서 아주 큰 비중을 차지했다.예전에 성소현이 전태윤을 좋아했을 때 그녀의 마음은 우울했고 소극적인 감정으로 가득했다. 조금의 응답도 얻지 못했으나 또 포기하기도 어려웠기 때문에 용기를 내어 고백하고 대담하게 사랑했지만 결국 모두 수포가 되고 말았다.하지만 예준하와 함께 지낼 때 유청하는 시누이의 웃음소리를 자주 들었고, 얼굴 또한 활짝 피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그래서 유청하는 남편에게 예준하가 성소현을 좋아하는 것을 막지 말라고 설득했다. 성소현이 예준하와 함께 있을 때 진심으로 기뻐하기 때문이었다.새언니로서 시누이를 멀리 시집보내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저 성소현이 행복하기만을 기원할 뿐이다. 만약 시누이가 마음속으로부터 기뻐한다면 예준하와 결혼하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았다.예준하는 특
“청하 씨는 아직도 토하나요? 임신 3개월이죠?”어르신이 관심을 가지고 물었다.멀지 않은 곳에 앉아 있던 유청하가 답했다.“네, 이제 3개월이 지났는데도 가끔 토하고 있어요. 보통은 식사하고 나서 30분 정도 후부터 토하기 시작하는데, 토하고 나서야 속이 편한걸요. 어머니께서 그러는데 제가 아마도 출산할 때까지 토할 것 같다고 하셨어요.”임신 반응이 심한 유청하는 매우 힘들었지만, 배 속의 아이에 대한 사랑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았다.시간이 좀 지나면 태동을 느낄 수 있게 된다.만 3개월이 되었을 때 산부인과에 가서 초음파 검사를 한 번 했는데 컨디션이 양호하다고 나왔다.다만 아직 태동이 미세해서 느낄 수 없을 뿐이다.관련 책의 내용에 따르면 16주가 지나야 태동이 뚜렷하게 느껴지고 태아가 자랄수록 태동이 점점 더 뚜렷해진다고 했다.애당초 아내가 아까워 아이를 지우려고 했던 성기현도 초음파 사진을 손에 들었을 때 그 사진을 보고 또 보면서 손에서 놓기를 아쉬워했다.유청하는 남편이 아이를 고대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다만 임신 반응이 심한 아내를 보는게 마음이 아파 아이를 지우려 했을 뿐이다.다행히 모두의 설득 끝에, 성기현은 아이를 지우겠다던 결심을 접었다.그는 매번 아내가 죽을 듯이 토하는 것을 볼 때마다, 옆에서 안쓰럽게 쳐다보며 아내 배 속의 아이를 욕하곤 한다.“요 녀석, 이제 엄마 배에서 나오기만 해봐라, 엉덩이를 때려줄 테니. 너 때문에 엄마가 얼마나 괴로워하는지 봐봐.”유청하는 생각하며 배를 어루만지기 시작했다.이때 어르신이 말했다.“임신 반응은 정말 속수무책이에요. 어떤 사람들은 정말로 출산할 때까지 토하기도 하죠. 예전에 소민이가 셋째를 임신했을 때도 심하게 토하고, 낳을 때까지 토했던 게 기억이 나네요. 첫째랑 둘째를 임신했을 때는 아무 반응도 없었다가 셋째를 임신하자 아주 심하게 토했답니다. 반응이 달라 셋째가 딸인 줄 알았더니 고 녀석도 아들일 줄이야.”어르신의 말을 듣고 유청하는 웃으며 말했다.“그럼
“나중에 틈만 나면 어르신을 찾아가 마작을 할게요.”이경혜는 어르신의 말이 옳다고 생각했다.과거에 관계가 어떠하였든 간에, 지금 두 집은 친척 사이이니 친척끼리 많이 왕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하예정의 친정 친척으로서 조카의 든든한 뒷받침이 되어줄 겸, 사돈인 전씨 일가와도 왕래해야 친정 식구들과 시댁 식구들이 잘 맞지 않는다는 소문이 떠돌지 않게 된다.“그래 주면야 고맙죠.”어르신은 싱글벙글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 일단 식사나 할까요?”이경혜가 다시 제안하자 어르신은 응하고 대답하며 그녀를 따라 일어섰다.어르신과 가장 가까운 곳에 앉아 있던 성소현이 다가가 부축했다.어르신은 성소현의 몸에 살짝만 기대고는 말했다.“나는 아직 지팡이를 쓰지 않고도 힘차게 걸을 수 있답니다.”비록 어르신은 지팡이를 가지고는 있지만 보통 누군가를 때릴 때만 사용하곤 했다. 무술을 연마한 몸이 틀림없었다.게다가 젊은 시절의 특별한 신분 때문인지 몸이 매우 정정하다.등산을 가도 며느리들이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였다.“어르신은 10년 뒤에도 지팡이가 필요 없을 것 같은데요?”성소현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이제 예정이가 아이를 낳아 아이가 이리저리 뛰어다니면 아마도 지팡이로 장난꾸러기들을 쫓아다녀야 할지도 몰라요.”어르신은 자신이 지팡이를 짚고 증손자들을 뒤쫓는 장면을 상상하자 함박웃음을 지으며 성소현의 손등을 툭툭 두드렸다.성소현이 자신을 쳐다보자, 어르신은 입을 열었다.“이 세상엔 좋은 남자가 아주 많죠. 그러니 차분하게 느껴봐요. 아마도 자기한테 가장 잘 어울리는 사람이 바로 옆에 있을지도 모른답니다.”어르신은 이 말을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도록 몰래 했고, 말을 마친 후 예준하 쪽을 힐금 보았다.이경혜는 예준하를 따로 초대하지 않았지만, 이미 밥을 얻어먹는 것에 익숙해진 예준하는 초대를 받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성씨 일가와 함께 식사 룸에 들어갔다.도우미들은 마지못해 그릇과 젓가락을 준비해 주었다.성소현이 있는 자리에서 이경혜는 절대 예준하에
식사를 한 후 어르신은 이경혜와 잠시 일상적인 대화를 나누다가 전윤하를 데리고 성씨 일가를 떠났다.모두가 떠나가는 어르신과 전윤하를 직접 집 밖으로 배웅했다. 전윤하가 할머니를 모시고 떠나는 걸 지켜본 후, 몸을 돌린 이경혜는 뒤에 서 있는 예준하를 보고는 결국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유청하는 식사 후에 휴식하는 습관이 있어 방으로 들어갔고, 성문철은 아내를 따라 들어갔다.곧 마당에는 성소현과 예준하만 남았다.“같이 좀 산책하지 않을래?”성소현이 먼저 예준하에게 물었다.그에 예준하는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좋아. 식후에 걸으면 아흔아홉까지 살 수 있다던데.”성소현은 예준하의 웃는 얼굴을 보며 생각했다. 예준하는 언제나 미소를 지으며 온화한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 그의 미소는 마치 3월의 봄바람처럼 부드럽고 따뜻했다.두 사람은 함께 성씨 집을 나섰다.2층의 한 룸에서 밖을 내다보고 있던 이경혜는 보배 딸이 예준하와 함께 밖으로 나가는 것을 보았다.그녀는 정색하며 남편에게 말했다.“준하 그 녀석이 또 우리 소현이를 달래서 산책하러 갔어요.”그 말에 성문철이 다가와 밖을 내다보았는데, 과연 딸이 예준하와 나란히 걷고 있는 것을 보았다.두 사람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걸으면서 웃고 있었다.성문철은 시선을 돌려 아내의 굳은 얼굴을 보고는 웃으며 말했다.“둘이 왕래하는 게 그렇게 싫으면 직접 말하지 그래. 이렇게 내 앞에서만 굳은 얼굴을 하고 있으면, 소현이든 예준하든 누가 볼 수 있겠어.”“분명히 눈이 먼 거예요. 늘 밥때가 되면 찾아오는데, 아무리 눈치를 줘도 못 본척한다고요. 그리고 소현이가 말이 잘 통하는 보통 친구 사이라는데, 소현이 앞에서 내가 뭐라 할 수 있겠어요.”젊었을 때 남편과 함께 상업계를 주름잡았던 이경혜도, 딸에게 접근하고 있는 예준하에 대해 속수무책이었다.또한 성소현은 예준하를 보통 친구로만 생각하고 있다.성소현을 바라보는 예준하의 온화하고 열정적인 눈빛을 보면 깊이 좋아하고 있
성소현은 가족들이 그녀가 예준하에게 속아서 울까 봐 걱정하고 있다는 것도 모른 채 별장을 나온 후 콘크리트 도로를 따라 천천히 걸었다.평소 차를 몰고 다녔기에 주위의 풍경을 감상할 틈이 없었는데 이렇게 산책하니 기분이 좋았다.“여기서 산 지도 오래되었는데, 이제야 이곳의 풍경이 매우 아름답고, 녹화가 잘 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됐어. 길가에 피곤할 때 쉴 수 있는 벤치도 있고, 드문드문 정자도 있고.”빌라 구역에 들어서면 작은 공원이 있는데, 공원에는 녹음이 우거져 있고, 어른들을 위한 신체 단련 시설도 있고, 어린이 놀이터도 있다.성씨네 별장은 작은 별장 몇 채를 사서 하나의 큰 별장으로 만든 것으로, 자신만의 운동 시설과 놀이기구를 갖추고 있다.그래서 성소현은 빌라 구역의 작은 공원에 발을 들여놓은 적이 거의 없었다. 그녀의 말에 의하면, 평소 차를 몰고 드나들면서 창밖의 경치를 힐금 보는 것이 다란다.“나도 여기 환경이 좋은 걸 보고 너희 옆집이 팔린다고 할 때 서둘러 손에 넣은 거야. 이곳은 환경도 좋고 안전하기도 하고, 또 면적도 넓어 비록 중고 집이라고는 해도 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예준하는 걸으며 마치 자기가 중고 별장을 사들인 게 보물을 건지기라도 했다는 듯 자랑했다.다만 그의 마음을 이해할 수도 있다.처음부터 그의 목표는 성소현이었으니까.“응, 우리 집 옆에 있는 별장을 산 것은 보물을 주운 것과 다름없어. 그 별장은 면적이 넓어서 우리 집에서도 사려고 했는데, 네가 너무 빨리 손을 써서 빼앗겼지 뭐야.”성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그때 형도 이 일을 알고 누가 그렇게 빨리 손을 썼나 궁금해했거든. 그게 너일 줄이야. 너 안목 있는데? 정말이야, 그 별장은 손에 넣어도 손해 볼 일이 없거든. 그리고 또 사람을 불러 풍수도 봤겠다, 이제 이사해서 살면 일이 더욱 순조롭게 진행될 거야. 어쩌면 여기에다 예진 그룹의 지사를 크게 설립할 수 있을지도 몰라. 그리고 네가 사랑하는 사람도 분명 네가 특별히 준비한 이
성소현은 벤치에 앉은 후 말했다.“그럼 됐어. 나 요즘 커플이나 부부가 내 앞에서 알콩달콩하는 걸 보면 배가 아프단 말이야. 예진이와 효진이를 볼 때마다 너무 부러워.”“부러워할 것 없어. 너도 앞으로 그렇게 행복할 거니까.”“앞으로의 일을 누가 알겠어? 만약 결혼해서 행복하지 않으면 난 절대 참지 않을 거야. 내 미래의 남편이 나에게 잘해주지 않으면 아예 이혼하고 친정에 돌아가 살려고. 어쨌든 오빠들은 날 평생 먹여 살리겠다고 했거든.”좋은 친청은 든든한 뒷배가 되어줄 수 있다.성소현은 본인이 아주 훌륭한 친정 식구를 두었다고 생각하고 있다.“그럴 일 없어. 네 시댁 식구들은 분명 너한테 잘 대해줄 거야.”예준하는 자기 집 어른들은 모두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시집온 며느리에게 눈치를 줄 사람은 아무도 없다.“내 얘기는 그만하고, 너 대체 누구를 좋아하는 거야? 관성 사람이지? 네가 이곳에 집을 산 것도 그 여자를 위해서지?”예준하는 고개를 끄덕이며 솔직히 인정했다. “맞어. 나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서, 자주 보며 얘기라도 많이 하고 싶어서 여기에다 집을 산 거야. 이 별장의 리모델링 방안도 좋아하는 사람이랑 함께 논의해서 짠 거고.”“...준하야, 너 지금 그게 나라는 거야?”예준하는 진지한 표정으로 성소현을 바라보며 말했다.“그래, 소현아. 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바로 너야. 이 별장을 산 이유는 너희 집과 가장 가깝기 때문이야. 이렇게 우리가 이웃이 되면, 나도 너를 가까이에서 볼 수 있잖아. 만약 우리 둘이 사귀게 된다면 이 별장에 살면서 넌 아무때든 친정에 가볼수 있어.”“...”비록 의외였지만, 너무 놀랍지는 않았다.아까 식사할 때 전씨네 할머니가 귀띔을 해주셨고, 처음 들었을 땐 꽤 놀랐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할머니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예준하는 비록 여태 고백하지는 않았지만, 곳곳에서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보였었다.그가 직접 고백하지 않았기에 성소현도 감히 그의 마음을 추측하지 못했다. 자신이
“준하야, 나 한번 생각해 보고.”성소현은 거절하지도, 받아들이지도 않고 그저 한번 생각해 보겠다고 했다.“그래 알았어. 천천히 생각해 봐. 급하지 않으니까. 당장은 내 마음을 받아줄 생각이 없다고 해도 괜찮아. 네가 날 받아줄 날을 기다릴 테니까.”성소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냥 좀 갑작스러워서 그래.”“미안. 갑자기 이런 말 해서.”예준하는 미안하다는 듯이 말했다.그는 주위의 사람들이 모두 그가 성소현을 좋아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챘다고 생각하여, 더 이상 고백을 미루는 것도 좋지 않다고 생각했다.그러다 마침 성소현이 묻자 바로 고백했다.사랑하는 성소현에게 자신의 뜨거운 마음을 알리고 싶었다.어떤 사람들은 감정에 아주 무뎌 주동적으로 감정을 드러내 보여주지 않으면 죽어도 눈치채지 못한다.두 사람 사이에 갑자기 침묵이 흘렀다.잠시 앉아 있다가 성소현이 먼저 일어섰다.“이제 그만 돌아갈까?”“그래, 그러자.”산책하러 나갈 때, 두 사람은 웃고 떠들었지만 돌아갈 때 두 사람은 별로 말하지 않았다. 주요하게는 성소현이 말을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성씨 집에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예준하는 인사를 하고 아직 인테리어 중인 옆 별장으로 돌아갔다.그리고 5분도 안 되어 성소현이 스포츠카를 몰고 집을 나서 곧장 관성 중학교로 향했다.두 친구를 찾아간 것이다.성소현이 서점에 도착했을 때, 가게에는 심효진의 모습만 보였고 하예정은 어데 갔는지 없었다.“예정이는 어데 갔나요?”성소현이 가게에 들어서며 심효진에게 물었다.“꽃필무렵에 갔는데 곧 돌아올 거예요. 예정이를 찾아온 거예요? ”심효진은 배즙을 짜며 말을 이었다. “배즙 짜고 있는데 한잔할래요? 짜는 김에 같이 짜면 돼요.”“그럼 한 잔 줘요. 올 때마다 밍밍한 물이어서 맛없었거든요.”“물이야 원래 아무 맛도 없죠. 맹물이 싫다면 진작에 말하지 그랬어요, 설탕이라도 좀 넣어드리게요. 단맛이 나고 좋잖아요. 여기는 서점이라 책 말고는 문구밖에 없거든요.”성소현은
전씨 할머니는 한 손에 꽃다발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갓 구운 생선을 집어 전이혁에게 건넸다.“이런 작은 생선은 막 구웠을 때 먹는 게 맛있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따뜻할 때 먹어.”“고마워요, 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가 건넨 생선을 받아 주저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먹던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우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전이혁은 전우와 나이도 비슷하고, 어릴 때부턴 전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형제 중에서 전우와 가장 친했다. 그러니 그는 자랑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전우를 찾았다.전이혁의 사진을 보자마자 전우는 가족 단톡방에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할머니, 낚시 가셨어요? 직접 구워 드시기까지 하네요. 많이 잡으셨어요? 저도 먹을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이혁은 일부러 약 올리듯 답장했다.“이젠 없어. 할머니께서 나 주려고 특별히 남겨둔 거야. 그러니 네 몫은 없어. 그리고 너 진짜 생선 한 조각 먹으러 올 거야? 손해가 클 텐데?”“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할머니표 생선구이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할머니는 워낙 자유로워서 오전엔 리조트에 있다가도 오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었으니, 큰 손자인 전태윤도 못 말릴 정도였다.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할머니의 손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 것밖에 없을 뿐, 감히 할머니를 간섭할 수 없었다. 그나마 큰 손자인 전태윤이 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할머니는 그야말로 나이 든 개구쟁이였다. 할머니는 지금은 리조트에 있지만 다섯째 손자인 전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늘은 많이 잡지 못했어. 넷째한테 줄 몇 꼬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먹었어. 먹고 싶으면 설 연휴 때 와서 직접 낚시해서 구워 먹어. 그래야 더 맛있지.”전우는 아쉬움으로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는 고개만 돌려 살짝 보더니 다시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왔어요.”멀리서 전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이혁은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는 정말 좋았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 이런 날씨에는 바비큐가 최고죠.”관성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할머니들은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온이 확 올라와 정오 무렵에는 햇빛까지 쨍쨍하게 비추더니 약간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관성의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이렇게 바비큐를 해 먹긴 하지만 보통은 휴일이 되어야 준비해서 해먹을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생각만 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전이혁은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들이 성장하면 당장 사업을 넘겨주고, 자신은 조기 은퇴해 할머니처럼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것은 신선놀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넷째 도련님.”양씨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안부를 물었다.전씨 할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던 여러 할머니도 전이혁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전씨 할머니가 무려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막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손자는 이미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로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막내 두 명은 비록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적이 우수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었다.전씨 가문은 자손들이 하나같이 훌륭했고 가업도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니,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그들은 가끔 함께 수다를 떨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그들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때부터 이미 가문에서 주름잡는 존재였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전씨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아이를 불렀다.“소령이, 이리 와봐.”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어르신, 닭 다리 다 구워졌어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자신에게 닭 다리를 주려고 부른 줄 알았다.전씨 할머니는 여자아이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아직 다 안 구워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 거야.”“그런데 왜 양씨 아저씨의 자리를 잇고 싶다고 했지?”전씨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예뻐한다는 건 리조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전씨 가문은 몇 대째 아들만 태어났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을 가지길 원했었고, 그것이 안 되자 손녀를 기대해 보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할머니는 이제 증손녀를 기대해 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종종 직원들에게 집에 여자아이가 있으면 관성으로 데려와 학교도 보내고 같이 생활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리조트에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여자아이들이 리조트에 놀러 오게 되면 손주며느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한테 증손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양씨 아저씨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양씨 아저씨가 사는 집도 아주 예뻐요. 저도 양씨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그 여자아이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말도 잘해서 가끔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부모도 가르친 적이 없는 말을 스스로 내뱉곤 했었다.우빈이도 가끔 서원 리조트에 올 때마다 리조트에서 내려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곤 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여자아이가 리조트에 올라와 우빈이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아까 양씨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지? 네가 컸을 때는 양씨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야 네 차례가 오게 돼. 그보
할머니는 함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날씨가 좀 쌀쌀하네. 우리 따뜻하게 몸도 데울 겸 한 잔씩 할까?”“어르신.”전씨 할머니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양씨 아저씨는 바로 할머니를 제지했다.“어르신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 또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저를 혼내실 거예요.”“양 집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태윤이는 점점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온갖 걸 다 간섭하려 들어.”할머니는 손자인 전태윤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며 투덜거렸다.그러자 함께 있는 몇몇 할머니들이 웃기 시작했다.“큰 도련님께서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저희 나이에는 술도 적게 마시는 게 좋잖아요.”“과일주는 괜찮아. 양 집사, 가서 과일주 두 병 가져와. 바비큐에는 술이 있어야 제맛이지.”양씨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리조트에 전화해서 과일주 몇 병을 가져오도록 했다.그들이 직접 잡은 생선 외에도 양씨 아저씨는 몇몇 어르신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용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어르신들 옆에는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양씨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과일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분 좋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생활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내년엔 첫 증손주가 태어나니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할머니는 자신이 구운 소시지 한 꼬치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고 그 아이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소령이 갈수록 예뻐지네. 반짝이는 눈 좀 봐. 네 엄마가 너를 ‘소령이’라고 부르는 게 딱 맞아.”그 여자아이는 소시지를 건네받으며 귀엽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전씨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또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구워줄게.”“닭 다리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씨 할머니에게 닭 다리를 구워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