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니가 그렇게 생각한다니 나도 안심이네. 노 대표가 언니한테 뭐라고 하던, 어떻게 성질을 부리던, 그건 다 진심이 아니니까 마음에 담아두지 마.”하예정이 병원에 갔을 때 노진규가 그들 부부한테 모든 것을 얘기해줬다.그녀는 노동명이 한 말은 진심이 아니라 그저 자신이 불구가 되어 평생 휠체어를 타게 될까 봐, 다른 사람들이 그를 연민하는 눈길로 바라볼까 봐 신경이 예민해져서 그랬다고 생각했다.잠자코 있던 하예진이 입을 열었다.“동명 씨가 자포자기 안 했으면 좋겠어. 퇴원하고 나서도 꾸준히 재활해서 빨리 회복하길 바라.”“그럴 거야.”하예정은 하예진을 지그시 쳐다보고 있었다.“나랑 뭐 더 할 말 있어?”“노 대표 사고 난 거, 관성 실시간 검색어에 떴는데 사람들이 함부로 추측하면서 언니 이름까지 거론됐어.”하예정은 잠깐 멈칫하더니 얼른 휴대전화를 꺼내 현지 뉴스를 열어 확인했다. 노씨 그룹 대표이사가 교통사고가 났다는 뉴스가 실검에 뜨긴 했지만 순위는 높지 않았다.그녀는 기사를 열어보았다.“태윤 씨가 실검 순위를 하위로 내렸어. 금방 실검에서 볼 수 없을 거야.”하예정은 확인하고 나서 말했다.“난 괜찮은데 이 일이 노씨 그룹에 영향을 끼칠까 봐 걱정이야.”노씨 그룹은 노동명 개인에 속하는 기업이라 회사의 모든 결정권은 그 혼자한테만 있다. 노진 그룹처럼 노씨 집안의 가족 사업체가 아니기 때문에 대표가 일이 생겨도 대표직을 이어받을 사람이 없다.그한테 지금 변고가 생겼으므로 잠시는 회사 임원들이 잘 알아서 운영하겠지만 시간이 오래 갈수록 회사 분위기가 뒤숭숭해질 것이고 그 틈을 타 딴마음을 먹는 이들이 생겨날 수도 있다.“그건 걱정 안 해도 돼. 태윤 씨가 지켜보고 있으니까. 그리고 노씨 집안에서도 노 대표 둘째 형을 회사로 보낼 거야.”노동명의 큰 형은 노진 그룹의 대표로서 노씨 그룹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그리하여 둘째 형을 보내 회사의 안정을 유지하도록 했다. 노씨 집안 사람이 자리를 지키고 있고 또 전씨 그룹에서도 같이 챙기고
어르신은 눈을 크게 부릅뜨며 나무라는 투로 얘기했다.“왜? 지금 여기 누워있는다고 벌써 자신감이 사라져서 예진이를 남한테 떠미는 거야?”그리고 노동명이 뭐라 대답하기도 전에 또 말을 이었다.“너 예진이를 뭐로 생각해, 대체? 걔 인생을 네가 결정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냐? 남한테 떠밀기 전에 먼저 네 사람이 되는 게 우선 아니야? 네 사람도 아닌데 무슨 자격으로 남한테 떠밀어? 네 이놈, 예진이 손도 못 잡아봤지? 너흰 시작도 안 했는데 주제넘게 예진이한테 남자를 소개해 줘라 말아라 하는 거야?”“여기 아프냐?”노동명의 다친 다리를 약간 힘을 줘 누르며 어르신이 물었다.“아... 어르신, 아파요, 아파요!”다리로부터 전해져 오는 통증은 노동명으로 하여금 이마에 식은 탐이 송골송골 맺히게하였지만 그는 줄곧 꾹 참으며 한 번도 앓는 소리를 내지 않았다. 하지만 어르신 앞에서는 체면을 차릴 필요가 없어 어리광 부리듯이 솔직하게 아픔을 호소했다.“아픈 줄 아는 건 좋은 일이야. 감각이 있다는 거잖아. 감각이 있으면 불구 될 일 없어. 물론 근육이나 뼈가 다치면 회복하는 데 시간이 걸리겠지. 퇴원하고 나서 재활센터를 찾아 열심히 재활 하도록 해. 네가 옛날처럼 씽씽 날아다니는 모습을 꼭 다시 볼 수 있을 거라 난 믿는다.”노동명은 괴롭고 슬픈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어르신, 난 두려워요. 평생 휠체어에 앉아 다녀야 할까 봐서요.”“지금 의사도 네가 꼭 휠체어 신세가 될 거라고 단정 못 짓는데 왜 섣불리 그런 걱정을 해. 너 불구가 돼서 예진이 고생시킬까 봐 걔를 안 보려고 하는 거구나. 그래서 태윤이까지 병실에 들이지 않고 또 예진이한테 그딴 맘에도 없는 말을 하고. 예진이랑 원래부터 사귀는 사이도 아닌데 그런 형편없는 소리로 걔 마음에 상처 주기까지 하다니. 너 진짜 이대로 예진이 포기할 셈이냐?”“내가 전에 우리 집안의 그 불효막심한 손주 놈들 때문에 며느릿감을 알아보고 있었는데 물색하면서 젊고 괜찮은 놈 몇몇 눈여겨 본 게 있다. 내가 손녀
어르신은 일어나 그를 잠시 바라보다가 한숨을 쉬고는 병실을 나갔다....주씨 집안.서현주는 소파에 가로누워 즐거운 표정으로 휴대전화를 보고 있었다.그때 집 문이 열리고 김은희와 주서인이 밖에서 들어왔다.주서인을 본 서현주는 똥 씹은 표정을 지었다.‘저 염치없는 여자가 또 왔네.’주서인도 서현주와 똑같은 얼굴이었다.서현주와 주형인은 신혼집으로 다시 이사왔다. 물론 인테리어도 새로 했다. 원래 인테리어는 하예진이 사람을 데리고 와 다 망가뜨렸기 때문이다.비록 이젠 셋집살이가 아니지만 여전히 매일 소란스러웠다.주서인은 전혀 눈치라는 걸 보지 않고 그들의 신혼집을 제집 드나들듯 드나들었다. 그뿐만 아니라 빈손으로 와서는 갈 때 냉장고를 열어 안에 있는 것들을 싹 다 털어가곤 했다.낯짝에 철판을 깐 게 아닌지 심히 의심되었다.그 때문에 서현주는 주형인과 몇 번 싸웠는지 모른다.그녀는 임신한 후로 시집에서 보배처럼 떠받들려 살 줄 알았다. 하지만 착각이었다.시어머니는 그나마 조금 수그러들었지만 주서인은 전혀 변화가 없이 제멋대로였다. 서현주는 주서인 때문에 자꾸 열받으면 유산할지도 모른다고 주형인한테 불만을 토로했다.아이가 유산되면 그녀는 다시 감옥에 들어가 채 받지 못한 형을 마저 받아야 한다.“현주야, 휴대폰 좀 그만 봐. 아이한테 안 좋아.”집안에 들어오자마자 소파에 누워 휴대폰을 보고 있는 서현주를 보게 된 김은희는 참지 못해 한마디 핀잔을 줬다.하마터면 하예진 모자를 죽일 뻔한 눈꼴 사나운 여자지만 하필 감옥에 들어간 후 주씨 집안 핏줄을 잉태한 것으로 드러났다.주형인이 형 집행 정지를 신청하여 서현주를 데리고 나왔을 때 김은희는 분에 겨워 화병이 날 것 같았지만 결국 그녀의 배 속에 주씨 집안 손주가 있으므로 참았다.“뉴스 보고 있었어요.”서현주는 일어나 앉으며 주서인을 힐끔 보고는 말했다.“형님 또 오셨어요? 어머니, 형님 시집가지 않았나요? 왜 쩍하면 친정집에 들락날락해요?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혼하여 시집에서 쫓겨난
주서인은 서현주를 삿대질하며 욕설을 퍼부었다.“네가 우리 집안의 애를 임신하지만 않았더라면 난 벌써 네 뺨을 때리고도 남았을 거야. 내가 볼 때 예진이가 팔자 사나운 게 아니라 네가 사나워, 네가! 이런 독한 년! 그따위로 네 남편 되는 사람을 저주해? 네가 형인이 아니었으면 아직도 감옥에 처박혀있었어, 알아? 걔가 널 형 집행 정지로 꺼내줬는데 지금 차 사고 나라고 저주나 퍼붓고 말이야.”“그 노 대표인가 뭔가 하는 인간이 사고 났는데 예진이랑 무슨 상관있다고? 예진이는 그 남자랑 사귀지도 않는데. 제가 찾아가다가 엄마가 뒤쫓는 바람에 사고 난 걸 왜 예진이 한테 덤터기 씌워? 그건 언론에서 헛소리하면서 주작질 한 거라고. 눈길 좀 끌어보려고 예진이를 같이 엮어서. 그것들은 완전 양심 없는 쓰레기 언론사야.”주서인은 따발총처럼 욕설을 내뱉었다. 서현주는 반박할 틈을 찾지 못했다. 목청도 여간 높은 게 아니라서 아마 위아래층 할 것 없이 다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주씨 집안이 이 동네의 사람들이 심심할 때마다 한 번씩 씹어대는 안줏거리로 전락한 것은 하루 이틀이 아니다.하예진이 사람을 데리고 와 이 집의 인테리어를 깨부술 때부터 주씨 집안 명성은 아파트단지에 자자하게 퍼졌다. 그 후 주형인과 하예진이 이혼하고 내연녀가 안주인이 된 것도, 또 내연녀가 시댁과 자주 불화가 일고 범죄까지 저질러 임신하지만 않았다면 감옥에 있어야 한다는 것도 동네 사람들은 다 알고 있다.평소 서현주가 동네에서 산책을 할 때 이웃들은 그녀를 꺼림칙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그녀와 말을 거는 사람이 한 명도 없었다. 아이가 있는 집은 더더욱 서현주를 보면 애를 데리고 피해 도망가며, 그녀가 인신매매범과 비슷한 사람이라고 애한테 보게 되면 멀찌감치 떨어져 있으라고 재삼 일러주기까지 했다.“네가 형인이와 예진이 사이에 끼어든 다음부터 형인이는 하는 일마다 재수가 없어. 그건 다 네 팔자가 사나워 그런 거야. 넌 진짜 재수 옴 붙은 년이야. 주제에 예진이를 들먹이긴, 네가 그럴 자
방금 서현주가 그녀의 두 외손자를 악독한 말로 저주한 데 대해 김은희도 매우 화가났지만 서현주가 배를 끌어안고 아프다고 소리치자 얼른 다가가서 부축하며 잔뜩 긴장한 채 말했다.“어서 앉아. 아니면 방에 들어가서 누워있던가.”“엄마, 쟤 그냥 꾀병이야. 쩍하면 배 아픈 척하는 게 어디 한두 번이야?”서현주의 배 아프다는 말을 주서인은 아예 믿지도 않았다.“서인아...”김은희는 딸한테 그만하라고 눈치 주며 서현주를 부축해 방으로 들어가서 침대에 눕혔다. 주서인한테 맞은 뺨이 벌겋게 퉁퉁 부어오른 걸 보고 그녀는 아들이 집에 돌아와서 딸과 싸울까 봐 걱정됐다.“현주야, 네 얼굴에 찜질하게 내가 가서 얼음 좀 가져올게.”서현주는 얼굴을 만져보더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김은희는 얼음을 가지러 갔다.침대에 누운 서현주는 지금 살고 있는 꼴을 한심하게 생각하며 서러운 눈물을 흘렸다.그러나 어찌 됐든 이건 그녀의 선택이었다.주형인과 하예진, 둘 사이에 끼어든 것도 누가 부추긴 것이 그녀가 원해서 한 짓이니원망할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지금은 친정에 갈 수도 없고 시댁에서 맨날 괴로운 나날을 보내야 한다. 못된 시누이에 시누이 편만 하는 시부모... 그녀는 미쳐버릴 것만 같았다.배 안에 아이라도 있지 않았으면 아마 견디지 못했을 거다.이 아이가 있기에 그나마 감옥에서 잠시 해방되어 편안히 집에서 지낼 수 있었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 아이를 꽤 중요시하게 생각하여 주서인으로 인해 유산되는 일이 없게 잘 보호해 왔다.불현듯 서현주는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 화장실이 가고 싶었다.이때 김은희가 얼음주머니를 갖고 들어왔다.“현주야, 어딜 가려고?”그녀가 물어보자 서현주가 대답했다.“화장실에요.”서현주는 휴대폰을 들고 화장실로 들어갔고 김은희는 침대에 앉아 그녀를 기다렸다.서현주는 화장실에 들어가자마자 주형인한테 문자를 보내 시누이의 ‘악행’을 일러바쳤다.하지만 주형인은 오더를 받아 손님을 공항으로 모셔야 한다며 알겠다고 한 마디 딸랑 보내놓고
김은희는 시름을 놓으며 서현주를 부축해 침대에 눕혔다.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서현주는 안색이 변하며 그녀의 손을 덥석 잡고는 겁에 질린 눈빛으로 말했다.“어머니, 저 배 아파요.”그 말을 들은 김은희는 즉시 밖에 있는 주서인을 향해 소리쳤다.“서인아, 얼른 119 불러. 현주가 배 아프대.”거실에 있는 주서인은 김은희의 다급한 외침을 듣고도 건들건들 걸어가서 방 문틀에 기대어 손에 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엄마, 쟤 하루에도 백 번, 천 번은 배 아프다는 소리를 해요. 믿지 말아요. 119는 무슨, 거짓 신고하면 의료 자원 낭비인 거 몰라요? 더 필요한 사람들한테 양보하자고요.”“현주가 방금 자빠졌어!”김은희는 매섭게 소리 지르며 주서인을 재촉했다.“빨리 구급차 불러, 빨리!”서현주가 침대에 누워 배를 끌어안고 고통스러워하는 걸 보자 주서인은 그제야 진짜라 믿고 구급차를 불렀다....오후 4시, 따스한 햇볕이 가게 안으로 들이치고 있었다.점심때면 가게 문을 닫았던 예전과는 달리 오늘, 하루 토스트는 하루 내내 문을 활짝 열었다.하예진은 우빈과 함께 가게 안에서 애니메이션을 보고 있었다.두 점원은 이미 퇴근했고, 가끔 손님이 들어오게 되면 하예진은 그들을 맞아 음식을 만들었다.이 시각, 가게에는 손님이 없었다. 우빈은 애니메이션에 한창 정신이 팔려있고 하예진은 그 옆에 앉아 만두를 빚고 있었다.유리문이 열렸다.고개를 돌아보니 아주 한동안 그녀 앞에 나타난 적이 없던 전 시누이, 주서인이었다.“고모!”우빈이 보고 그녀를 불렀다. 주서인은 빙그레 웃으며 가까이 걸어와 우빈을 품에 안았다.“우빈이 애니메이션 보고 있었구나.”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주서인은 안고 있던 아이를 내려놓고 사 온 과일 꾸러미를 하예진한테 건넸다.그걸 받으며 하예진이 말했다.“그냥 오면 되는데 뭘 또 사 들고 오세요.”“조카 보러 오는데 맨손으로 올 수 있나. 먹을 거라도 사 와야지.”주서인은 하예진이 과일을 테이블에 올려놓고 다시 자리
물론 주서인은 절대 그 일이 자신과 관련 있다고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서현주 그 악독한 년이 하예진이 남편 잡아먹을 팔자라고 했을 뿐만 아니라 주형인을저주하고 자신의 두 아들까지 저주했기 때문에 인과응보를 당한 거라 생각했다.서현주의 배 안에 아이는 남아였다. 유산되고 나서 알게 되었는데, 김은희와 서현주는 숨이 넘어가게 울어 젖혔다. 주서인도 마음이 좋지 않긴 하였지만 그것도 아주 잠깐뿐이었다.그 찢어놓고 싶은 입으로 그녀의 두 아들이 무사하게 자라지 못할 것이라며, 다 커서도 변고가 생길지 모른다며 씨불이더니 결국 말이 씨가 돼버린 것이다. 그것도 저 자신한테로.주서인은 이런 게 바로 업보라고 굳게 믿었다.“예진아, 넌 모를 거야, 그년이 얼마나 악독한지. 노 대표가 사고 났다는 뉴스에 그 양심 없는 언론 기자들이 너를 맘대로 갖다 붙이면서 추측성 기사를 낸 걸 그년이 보고서는 널 팔자가 사나워서 남자를 잡아먹는다고 하더라. 노 대표가 널 좋아했기 때문에 사고 난 거라고.”“그리고 우리 집에서 너랑 형인이가 재결합하길 바란다는 걸 비아냥거리면서, 그렇게 되면 형인이도 너 때문에 차 사고 날 거라고 하는 거야. 형인이가 지금 콜택시를 하고 있는데 사고 나기 딱 좋다고 하면서. 네가 말해 봐. 그거 미친년 아니야?”주서인은 서현주가 자기 두 아들을 저주한 말을 그대로 흉내 내면서 들려주었다.“애가 유산된 건 나도 막 깨 고소할 정도까진 아니지만, 진짜 그년이 인과응보 당했다는 생각이 들어. 그년 너무 악독해. 예전엔 몰랐어, 그 정도로 악독한 줄은. 그 동네에 서현주랑 말 섞는 사람 찾아볼 수가 없어. 애들도 보면 멀리 찍 피해 다녀, 그 여자한테 해코지당할까 봐.”“예진아, 기사에서 떠드는 내용은 맘에 담아둘 거 없어. 네가 진짜 남자 잡아먹을 사주면 형인이가 저대로 잘 살아있겠어? 형인이가 너랑 같이 살 땐 사업도 잘 나가고 했는데 서현주 그년과 같이 있으면서 하락세를 맞게 된 거야. 분명 그년이 팔자가 사납고 남자를 잡아먹는 관상인 게
주서인은 멋쩍게 웃으며 우빈이를 두어 번 쳐다보고는 말했다.“우빈이도 아빠가 필요하지 않겠어?”“우빈이는 지금도 아빠가 있어요. 나랑 형인 씨가 어떤 사이가 됐던 그 사람은 우빈이 아빠예요. 평생 변하지 않아요, 그건.”“아니, 내 말은 그게 아니라, 예진아. 난 우빈이가 아빠가 있는 건전한 가정에서 자라야 더 즐겁게 성장할 수 있지 않겠나 하는 뜻이야.”“제 생각에 우빈이는 지금 매우 즐거워요. 언제나 그랬어요. 예전에도 형인 씨는 매일 일하느라 바쁘고 다른 여자랑 놀아나느라 바빠서 아이랑 놀아준 적이 별로 없어요. 지금도 그저 가끔 와서 보고 가는데, 예전이랑 다를 게 뭐에요? 우빈이는 아빠가 곁에 없는 것에 이미 습관 됐어요. 저랑 예정이가 아이한테 부족하지 않게 잘 챙겨주고 있어서 저희 우빈이는 걱정이나 고민 없이 충분히 즐겁게 잘 성장하고 있어요.”주서인은 할 말이 없었다. 우빈이를 핑계 삼는 건 통하지 않았다.주씨 집안 사람들은 줄곧 실낱같은 희망을 품고 있었다. 하예진을 수도 없이 설득했지만 결과는 늘 똑같았다.주형인도 속으로 후회하고 있지만 하예진의 성향을 잘 알기 때문에 그가 마음을 바꿔먹고 그녀를 쫓아다녀도 받아주지 않을 거란 걸 알고 있었다.“정말로 형인 씨 위하는 거면 친정집 일을 그만 간섭하세요. 부모님 앞에서도 올케 욕을 그만하시고 그만 이간질 하세요. 그래야 형인 씨도 잘 살 수 있어요. 그게 아니면 올케 백 명을 바꾼다 해도 다 똑같을 거예요.”“난 언니가 대체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어요. 동생이라곤 한 명뿐인데, 나중에 부모님이 연세 드셔서 돌아가시게 되면 친정에서 반겨줄 사람은 형인 씨와 형인 씨 와이프뿐이잖아요. 그렇게 자꾸 올케를 못살게 굴고 올케와 척을 지면 부모님 돌아가시고 난 후에 동생 내외랑 어떻게 지내려고 그러세요? 다 큰 동생네 부부 사이 일에 그렇게 왈가왈부하지 마세요. 부모님까지 부추겨서 며느리 못 잡아먹어서 안달 나 하는 거 삼가시라고요. 이미 동생을 한 번 이혼하게 했잖아요. 그래서 속이 후련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
그러나 전창빈은 사업을 확장하거나 삶을 즐길 생각은 하지 않고 먼 길을 떠나 여기까지 와서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로 지원했다.선우민아는 그 이유를 알고 싶었다.전창빈은 솔직하게 대답했다.“도전하려고 왔습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요리를 좋아했고 스승을 모셔 요리 실력을 키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우리나라 여러 구역의 다양한 요리를 연구하며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창업으로 작은 성공을 거두었지만 산 밖에 산이 있고 사람 위에 사람이 있는 법이라고 여기기에 계속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손님들의 입맛이 바로 저를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니까요.”전창빈은 자신의 요리가 손님들이 맛있다고 생각해야만 요리 실력이 검증된 것으로 생각했다.손님들이 그 요리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그것을 개선해 더 높은 수준의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선우민아처럼 까다로운 손님을 만났을 때 그녀의 평가는 전창빈을 더욱 발전하게 할 것이다.선우민아는 그가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 자리에 도전하고 싶어서 온 것임을 직감하고는 잠시 침묵하다가 입을 열었다.“자신이 갑이 되는 것과 남의 밑에서 일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에요. 전이혁 씨는 제대로 고려해보셨나요? 만약 우리 가문에서 요리사로 일한다면 우리 가문만의 가정 요리사가 되어 전국의 다양한 손님을 상대할 기회가 없어요. 아마 전이혁 씨에게 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죠.”전창빈은 빙그레 웃으며 선우정아와 시선을 마주치며 대답했다.“아마 큰아가씨님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몇 명 없을 겁니다. 제가 여기서 일하면 전국의 손님을 상대할 수는 없겠지만 큰아가씨께서 싫증 내지 않을 정도로 1년 정도 일할 수 있다면 제 요리 실력도 크게 향상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워 앞으로 관성으로 돌아가면 제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도 손님이 떼구름처럼 몰려들겠죠.”전창빈은 자신의 요리사들을 이끌어 더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전국의 손님들이 고향의 전통 요리와 관성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도록 노
강진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제 경험상으로 보면 전창빈 씨는 합격일 겁니다. 어서 큰아가씨를 뵈러 가세요. 긴장할 필요 없어요. 큰아가씨는 표정이 좀 진지하지만 사실은 매우 좋은 분이십니다.”“감사합니다. 지금 바로 가보겠습니다.”전창빈은 엄격한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선우민아가 아무리 엄격해도 그의 큰형 전태윤보다는 못할 것이다.엄격한 전태윤의 얼굴에 익숙해진 전이혁은 이미 엄격한 사람들에게 면역력이 생겼다.전창빈은 강진을 따라 주방을 나섰다.강진은 전창빈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주방을 나선 후에도 전창빈은 여기저기 둘러보지 않았고 또 선우씨 가문 저택의 호화로움에 놀라지도 않았다.다른 지원자들은 늘 선우씨 저택의 사치스러움에 압도되어 주변을 둘러보지 않을 수 없었던 모양과는 달랐다.강진은 전창빈이 분명 세상 물정을 다 겪어본 사람이거나 굉장한 침착성을 가진 사람일 거로 생각했다.어쨌든 강진은 눈앞의 이 젊은 요리사에게 좋은 인상을 받았다. 아마 내일이면 동료가 될 것 같았다.강진은 전창빈을 데리고 선우민아가 앉은 자리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 멈추어 섰다. 그는 전창빈에게 잠시 기다리라는 신호를 보낸 후 먼저 나아가 공손히 말했다.“큰아가씨, 전창빈 씨께서 오셨습니다.”선우씨 가족 중 전창빈을 본 적이 있는 사람은 오직 선우정아뿐이었다.다른 사람들은 그때 집에 없어 전창빈을 직접 보지 못했다. 그리고 지금 다들 그를 보더니 모두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한경주가 남편 선우진혁에게 소곤거렸다.“정말 젊어 보이네요. 우리 민아랑 비슷한 나이 같아요.”선우진혁도 고개를 끄덕였다.“젊네. 보아하니 매우 침착해 보이고. 조금도 긴장하거나 두려워하는 기색이 없구먼.”“이 요리사분이 매우 잘생겼다는 생각 안 들어요?”선우씨 가문의 둘째 부인, 즉 선우정아의 어머니가 작은 목소리로 시누이에게 말했다.한경주가 웃으며 대답했다.“정말 잘생겼네요.”선우정아도 말을 이었다.“제 말 이제 믿으시죠? 제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가 매우 젊고 잘
선우민기는 입을 삐죽 내밀며 불만이 가득한 표정을 지었다.“민기야, 오늘 저녁 요리 맛있었어?”선우민아가 동생에게 물었다.“맛있어요. 엄청 맛있었어요.”사촌 동생도 따라 말했다.“정말 정말 맛있었어요. 누나, 저 앞으로 매일 누나 집에 와서 밥 먹어도 돼요?”선우민아가 웃으며 대답했다.“오고 싶으면 오렴. 하지만 너랑 민기는 밥 잘 먹어야 해. 놀기만 하면 안 된다?”두 꼬마가 함께 모이면 말 그대로 손오공이 천궁을 뒤집어 놓는 수준이었다.가문의 후손에 남자아이가 둘뿐이라 모두가 그들을 귀여워했다. 선우씨 가문의 누나들이 집에 없을 때면 두 꼬마는 진짜로 지붕조차 뒤집을 기세였다.어르신들이 말릴 거라는 기대는 하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 만약 두 꼬마가 지붕을 뜯으려 하면 오히려 사다리를 대줄 정도니까.“알았어요. 저희 꼭 말을 잘 들을게요.”“그래, 너희 둘 밖에 나갈 땐 외투 꼭 입고 나가야 해. 밖이 너무 추워.”두 꼬마는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집에서 뛰쳐나갔다.동생들이 모두 놀러 나가자 선우민아가 집사에게 지시했다.“아저씨, 전창빈 씨를 만나게 해줘요.”강진이 공손하게 대답했다.“네. 바로 전창빈 씨를 불러오겠습니다.”선우민아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고 자리를 떠났다. 그녀가 이동하자 가족들도 모두 따라 일어나 거실 소파에 앉았다.선우민아가 오늘의 최종 면접자를 만나고 싶다고 하자 선우씨 가족들은 바로 그 지원자가 채용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을 직감했다.확실히 오늘의 저녁 식사는 온 가족을 만족시켰다.선우민아의 입맛이 까다로워 선우씨 가문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다. 그들은 선우민아 덕분에 항상 최고의 요리사가 준비한 음식을 먹을 수 있었다.비록 그녀만큼 입맛이 까다롭지는 않았지만 요리의 품질을 가리는 안목은 그래도 꽤 좋은 편이다.강진이 미소를 머금으며 주방으로 들어갔고 전창빈이 의자에 앉아 휴대전화를 보고 있는 모습을 보자 그쪽으로 다가갔다.발소리를 들은 전창빈은 휴대전화에서 시선을 떼었고 고개를 들어
원림성 A시.전창빈은 모든 요리를 다 하고는 주방 한구석에 자리를 잡고 휴대전화를 꺼내 뉴스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그는 결과를 기다려야 했다. 온종일을 바쁘게 보냈다.정확히 말하면 오늘 아침 일찍 일어나서 지금까지 준비한 모든 것이 전부 오늘 저녁 식사를 마련하기 위함이었다.그리고 저녁이 되어서야 주인공이 돌아왔다.잠시 기다린 후, 전이진이 오후 내내 준비한 요리들이 하나둘씩 하인들에 의해 운반되어 나갔다. 물론 그는 나갈 필요가 없었다.선우민아가 그의 요리를 맛본 후 만족스럽다면 전창빈을 불러낼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통보도 없이 주방에 머물다가 선우씨 가족들이 모두 식사를 마치고 떠나면 집으로 돌아야 한다.비록 전창빈은 자신의 요리 실력에 대한 확신이 있지만 밖이 완전히 어두워졌는데도 선우민아의 면담 요청이 없었다. 그는 겉으로는 여전히 뉴스를 보며 담담해 보였으나 속으로는 조금 긴장감을 느끼고 있었다.그는 송일우처럼 세 번이나 도전하는 상황은 원치 않았다. 송일우는 몇 년이나 도전했지만 여전히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지 못했다. 그리고 이번에 실패한 뒤로는 다시 오지 않겠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잃었을 뿐만 아니라 나이도 점점 들어가고 있었던 모양이다.한편 선우씨 가족들이 이미 식사를 마치고 있었다.선우민아도 냅킨으로 입가를 닦고 있었다. 그리고 옆에 앉아 있던 선우민아의 어머니 한경주가 관심 있게 물었다.“민아야, 이번 지원자가 만든 음식은 어때?”선우민아가 대답하기도 전에 한경주는 계속해서 말했다.“엄마 생각엔 괜찮은 것 같은데 그냥 채용하는 게 어때?”선우민아의 남동생 선우민기는 의자에 털썩 앉아 배를 만지며 말했다.“누나, 나 너무 많이 먹은 것 같아. 이번 요리는 정말 맛있었어. 오랜만에 이렇게 배불리 먹었어.”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선우민기의 배를 가볍게 톡 치며 눈가에 미소를 띠면서 말했다.“너는 굶은 적도 없으면서 왜 이렇게까지 많이 먹었어? 이번만 먹고 다음 끼니는 못 먹을 거로 생각한 건 아니지? 좀 앉아 이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