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예씨 가문의 어른들은 이 여자아이를 매우 아끼고 중히 여겼다.예준하가 보기에는 예지연이 예지호보다 더욱 더 뛰어난 것 같다고 여겼다.어쩌면 훗날 집안을 이끄는 사람은 예지연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성소현이 말했다.“나 벌써 지연이가 보고 싶어. 요즘은 왜 그런지 모르겠는데 아기들만 보면 괜히 더 예뻐 보여. 나이 들수록 모성애가 생기나 봐.”예준하가 바로 받아쳤다.“넌 아직 어리거든. 나보다도 어린데 내 앞에서 나이 많다는 말은 하지 마.”그는 성소현이 스스로 늙었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그녀가 늙었다면 자신은 더 늙은 셈이 되지 않는가.예준하는 자신이 아직 아내도 맞이하지 못한 한창 좋을때라고 여겼다.“나 예정이보다 나이가 많은데 예정이는 벌써 임신까지 했어. 두 달만 있으면 아이도 태어나는데. 자기야, 아까 우리 엄마 말이야. 나보고 자기한테 밥해 달라고 시킨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자기가 힘들까 봐 또 걱정하시더라. 그러면서 우리도 이제 슬슬 임신 준비해도 된다고 하시는 거 있지. 가을에 결혼식 올리면 겹경사라나 뭐라나.”예준하는 그녀를 돌아보았다. 눈빛이 한순간 뜨거워지더니 이내 고개를 돌렸다.그리고 깨끗이 씻어 둔 접시를 가져와 팬에 있던 요리를 옮겨 보기 좋게 담아냈다.웬만한 전문 요리사 못지않은 솜씨였다.“우리도 이제 준비해야지. 그 전에 몸부터 잘 챙겨야 해. 몸이 좋아야 아이도 건강하지. 요즘 나 웬만한 자리에서는 술도 안 마시고 담배도 안 피워. 먹는 것도 많이 신경 쓰고 있고. 자기도 마찬가지야. 밖에서 술 마시지 말고 밤늦게까지 버티지도 마. 매일 기분 좋게 지내면서 끼니도 거르지 마. 우리 결혼하고 신혼여행 다녀오면 그때 아이 가지면 되잖아.”임신 준비한다는 의미는 당장 아이를 가지겠다는 뜻은 아니었다.먼저 몸을 잘 조리하고 반년이든 일 년이든 시간을 들여 차분히 준비한 뒤 아이를 갖는 편이 가장 좋았다.성소현은 빙그레 웃으며 역시 예준하답다고 생각했다. 그는 이런 문제에서
“전씨 할머니께서 늘 하시는 말처럼 요리할 줄 아는 것은 아내를 맞이할 때 점수를 따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기 위장을 챙기기 위한 거야.”하지만 예준하의 할머니는 그런 식으로 말한 적이 없었다. 할머니가 영원한 것은 없다고 강조하셨다.지금 예씨 가문이 한창 잘나가고 돈이 넘쳐난다 해도 세상일은 한 치 앞을 모르는 법이다.어느 대에서 갑자기 집안이 기울지 누가 알겠느냐는 말이었다.하여 기술은 많을수록 짐이 되지 않으니 하나라도 더 익혀 두라면서, 혹시 집안이 어려워지는 날이 오더라도 최소한 제 손으로 먹고살 힘은 있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집안 어른들은 그들을 다재다능한 쪽으로 키우려 했고 모든 것을 완벽하게 해내지는 못하더라도 적어도 이것저것 두루 알게는 했다.사실 예전의 예준하 요리 실력은 정말 평범했다. 그런데 성소현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로 성소현이 한때 마음에 두었던 전태윤이 요리를 할 줄 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전태윤에게 밀리기 싫어서 남몰래 요리를 혹독하게 연습했다.그렇게 성소현과 연인 관계가 확실해졌을 때 예준하의 실력은 이미 눈에 띄게 좋아져 반찬을 만들고 밥을 짓는 것은 물론 간단한 디저트까지도 어렵지 않게 해낼 수 있었다.예준하는 성소현이 전태윤과 하예정이 부부라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전태윤에 대한 마음을 완전히 접고 더는 미련을 두거나 매달리지 않았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성소현은 당당하게 말했었다. 성씨 가문의 딸로서 돈도 있고 외모와 학력도 뛰어난데 굳이 한 남자를 두고 남과 다툴 필요가 있느냐고.전태윤을 오랫동안 마음에 두었던 만큼 포기하는 일이 몹시 힘들었을 텐데도 그녀는 스스로 미련을 끊어 냈다. 그 단호한 태도와 바른 생각이야말로 예준하가 가장 먼저 끌린 지점이었다.그녀를 좋아하게 된 뒤로 예준하는 전태윤을 기준 삼아 스스로를 끊임없이 갈고닦았다.그가 바랐던 것은 단순했다. 전태윤에게 뒤지지 않는 자신이야말로 성소현에게 가장 어울리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는 것.그리고 바깥의 시선이 그녀를 함부로 평가하
안쪽에서 큰손자가 우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경혜는 더는 딸에게 매달릴 겨를이 없었다.담장 너머로 목소리부터 높였다.“그래, 그러면 알아서 해. 난 손자 보러 가야겠다! 너랑 준하도 이제 슬슬 임신 준비해. 나중에 결혼식 할 때 겹경사면 얼마나 좋아.”남의 집 딸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들으니 이경혜도 외손주 생각이 나는 모양이었다.손주가 생기면 외손주도 보고 싶어지는 것이 아들딸 다 둔 어른들의 마음이기도 했다.성소현은 대꾸를 못 했다.담 너머로 급히 들어가는 발소리가 들렸고 문턱을 넘기도 전에 먼저 외치는 소리가 따라왔다.“아가야, 울지 마. 할머니가 왔어.”성소현은 투덜거렸다.“손주가 생기니까 난 바로 밀려나네. 나중에 외손주까지 생기면 내 자리는 아예 없을 것 같은데.”성소현과 예준하는 아이를 가질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 당장은 아니었다.조금 더 여유를 두고 싶었다. 결혼식은 올해 가을로 잡혀 있었다.하예정은 상반기에 아이를 낳고 하반기에 성소현이 결혼식을 올리면 하예정도 심효진도 그녀의 결혼식에 참석할 수 있었다.친구들이 결혼할 때는 성소현도 빠짐없이 자리했고 두 사람 곁에서 들러리까지 섰다. 하여 자신의 결혼식도 그들이 함께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여겼다.성소현은 몸을 돌려 집안으로 걸음을 옮겼다.정원에는 늦게 피는 동백꽃의 여러 품종이 자리해 있었고 달빛 아래에서 고운 자태로 어우러져 있었다.그녀는 기분이 괜히 좋아졌다. 하여 정원 조명을 빌어 휴대전화를 꺼내 꽃 사진을 몇 장 찍었다.그리고 고요한 정원을 한 번 더 둘러봤다. 이 정원은 예준하가 하나하나 그녀의 의견을 물어 가며 그녀의 취향에 맞춰 꾸민 곳이었다.넓고, 예쁘고, 무엇보다 조용했다.정원에 앉아 밤바람을 맞으며 달을 바라볼 수 있겠다는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먼저 느긋해졌다.집 안으로 돌아오자 성소현은 곧장 주방으로 들어갔다.예준하는 앞치마를 두르고 요리하고 있었다. 뒤에서 보니 손놀림이 익숙했는데 밖에서 일하는 요리사들과 견줘도 전혀 뒤지지
“준하야, 준하야!”밖에서 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경혜의 목소리였다.예준하를 진심으로 사위로 받아들이면서 이경혜는 자연스럽게 그를 아들처럼 대하며 편하게 말을 놓았다.그는 앞치마를 두른 채 주방에서 나왔다.“일 봐. 내가 나갔다 올게. 우리 집에 불 켜진 거 보고 네가 돌아온 줄 아신 것 같아. 식사하시다 부르신 걸 거야.”이 시간쯤이면 이경혜는 집에서 이미 식사가 한창일 터였다.성소현은 리모컨을 내려놓고 과자 봉지를 하나 집어 든 채로, 밖으로 나갔다.“엄마!”성소현이 담장 너머로 불렀다.“소현이니? 너도 왔어? 왔으면 집에 와서 밥을 먹어야지. 우리 지금 먹고 있는데 얼른 준하도 같이 불러서 함께 와. 아까 할아버지도 그러시더라. 준하가 며칠째 얼굴이 안 보인다고.”요즘 예준하는 바삐 돌아치며 손님들과 밖에서 식사하는 날이 많았다. 그러다 보니 장모 집에 들러 밥을 얻어먹을 여유도 자연스레 줄어들었다.성소현이 대답했다.“엄마, 오늘은 준하가 해 준 밥 먹으려고요. 집에 안 갈 거예요. 엄마랑 다들 맛있게 드세요.”“이 시간에 또 준하를 요리하게 해? 하루 종일 밖에서 고생했을 텐데 집에 와서 쉬지도 못하고 왜 밥까지 하게 만들어!”이경혜는 딸을 몇 마디 나무라며 사위를 걱정하고 있었다.그 예비 사위는 딸에게 영락없이 꼼짝 못 하는 사람이었다.늘 딸을 누구보다 소중히 여기며 아껴 왔다.성소현은 담장 너머의 어머니를 향해 장난스럽게 혀를 살짝 내밀었다.물론 이경혜가 그 모습을 볼 리는 없었다.“엄마, 좋은 소식이 하나 있어요.”“무슨 소식? 효진이가 애 낳은 거? 엄마도 이미 들었어. 산모랑 아기 둘 다 무사하대.”심씨 가문은 대단한 집안은 아니었지만 소씨 가문은 관성에서 손꼽히는 집안이었다.소정남의 아버지와 소지훈의 아버지는 친형제였고 따라서 소정남과 소지훈은 사촌 사이였다.소정남은 또 전씨 그룹에서 오래 일해 온 사람이라 관성의 상류층에서는 모르는 이가 없었다.하여 소정남의 아내가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이 오래
성소현이 말했다.“사촌 형제들도 친형제처럼 지낼 수는 있지. 그래도 하나는 더 낳아야 해. 우리가 계속 자기 집 근처에서 사는 것도 아니고 아이가 크면 사촌들이랑 함께 지낼 시간도 없을 테니까. 그러다 보면 정을 쌓을 기회도 적어질 거고. 난 오빠가 둘이잖아. 셋이 함께 자라면서 늘 서로 챙기며 지냈어. 무슨 일이 있어도 혼자 고민할 필요가 없었고 오빠들이 늘 내 편이었지. 오빠들이 결혼하고 나서도 달라진 건 없었어. 새언니들까지 다 나를 아껴 주시거든. 난 그런 게 익숙해. 집이 늘 북적이고 무슨 일이 생기면 같이 논의할 사람이 있는 거. 혼자서 버티지 않아도 되는 게 좋아. 그래서 내 아이도 너무 혼자라고 느끼지는 않았으면 해. 사실 가장 큰 이유는 내가 아이를 좋아해서야. 자기가 애를 낳을 수 있다면 내가 임신으로 그렇게 힘들지 않아도 된다면 셋도 낳고 싶어. 근데 남자들은 그게 안 되잖아. 내가 직접 낳는 건 둘까지만. 아들 하나, 딸 하나면 가장 좋고 그렇게 안 되면 딸 둘도 괜찮아. 아들 둘이어도 받아들일 수 있어. 우리 두 사람 아이면 돼. 우리는 전씨 가문처럼 온 집안이 딸을 기다릴 이유도 없어. 난 아들이든 딸이든 상관없어.”예준하가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건 나도 마찬가지야. 나도 아들, 딸 가릴 생각 없어. 다 우리 아이잖아. 내가 자기 대신 임신하고 아기를 낳을 수 있으면 좋겠어. 자기가 겪을 임신 고생도, 아이 낳는 아픔도 내가 다 대신하고.”성소현은 고개를 기울여 그를 바라봤다. 그 눈빛은 한결 부드러워졌다.“자기야, 자기는 정말 너무 잘생겼어. 옆모습도 장난 아니야.”“너도 그래. 앞모습이든 옆모습이든, 뒷모습까지 다 예뻐.””성소현은 피식 웃었다.그가 운전 중이지만 않았다면 그대로 그의 얼굴을 붙잡고 몇 번이고 입을 맞췄을 것이다.집에 도착하자 예준하는 곧바로 주방으로 들어가 저녁 준비를 시작했다.성소현은 혼자 간식을 챙겨 들고 소파에 앉아 TV를 켰다.그녀는 간식을 먹으며 화면을 보다가도 괜히 주방 쪽을 한 번
심효진은 웃으며 말했다.“아직 너무 작아서 잘 모르겠어요. 안아 보라고 하면 괜히 겁부터 나요. 혹시 다치게 할까 봐 걱정되고 품에서 미끄러질까 봐 더 조심스러워진다니까요.”그녀는 첫아이를 낳은 초보 엄마였다. 경험이라고는 전혀 없었고 하예정처럼 아이를 돌본 적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반면 소정남은 전태윤과 함께 몰래 육아 수업까지 들으러 다니며 미리 배워 두었기 때문에 아이를 안는 모습만 보면 오히려 그가 훨씬 능숙해 보였다.“조금씩 하다 보면 금방 익숙해져. 나도 예전에는 조카 안는 게 무서웠거든. 괜히 아프게 할까 봐 손도 잘 못 댔는데 지금은 제법 잘해.”성소현은 말하며 다시 한번 아기의 얼굴을 가볍게 만졌다.눈앞의 이 아기가 정말 너무 귀여워서 어쩔 줄을 몰랐다.“분유는 먹였어?”나은서가 답했다.“한 시간쯤 전에 먹었어요.”먹는 양도 좋은 편이었다.아기가 분유를 잘 먹는 걸 보고서야 모두가 비로소 안심했다.의사는 며칠 뒤 황달이 올라올 수 있는데 빨리 나온 만큼 조금 더 유심히 살펴보라고 했다.황달은 시간이 지나며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오는 과정이 있으니 병적인 경우가 아니라면 너무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이런 이야기는 심효진에게 아직 낯설기만 했다.오히려 집에 어린 조카가 하나 있는 성소현이 더 잘 알고 있었다.성소현은 병원에 해 질 때까지 머물다 아쉬움을 안고 밖으로 나왔다.병원을 나서며 예준하에게 말을 꺼냈다.“오늘은 호텔 말고 너의 집에 가서 밥해 먹을까?.”어차피 두 사람의 집은 매우 가까워 예준하의 집에서 식사를 마친 뒤 천천히 산책하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돌아가도 늦을 걱정은 없었다.이미 약혼한 사이였으니 성소현이 그의 집에 잠시 머문다고 해도 다들 수군대지도 않을 것이다.그러나 아직 결혼 전이라 성소현은 한 번도 예준하의 집에서 밤을 보낸 적이 없었다.가장 소중한 순간만큼은 신혼 첫날까지 남겨 두고 싶었다.예준하는 그런 그녀의 마음을 늘 존중해 주었다.그녀를 향한 사랑은 깊었지만 선을 지키며 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