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예정은 가만히 앉아 있지 않고 가방을 내려놓은 후 바로 시어머니를 따라 부엌으로 들어갔다.전태윤도 아버지에게 인사한 후, 영양제를 몇 상자 꺼내어 탁자 위에 놓으며 말했다.“아버지, 이건 예정이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산 거예요.”그렇게 말하면서 아버지 옆에 앉아 신문을 몇 장 훑어보고 아버지에게 물었다.“아버지, 무슨 뉴스를 보고 계셨나요?”“그냥 심심풀이로 보고 있어. 왜 우빈이를 데려오지 않았어? 우빈이가 오면 나도 덜 지루할 텐데.”비록 아이를 돌보는 건 힘들고 지치지만 전현림은 좋아했다.우빈이가 오면 전현림은 곁에서 우빈을 돌보는 것을 좋아했다.“우빈의 아빠가 깨어났어요. 누나가 내일 우빈을 병원에 데려가서 우빈의 아빠를 보게 할 거예요.”전현림이 반응하며 말했다.“그렇구나, 그 주씨가 깨어났어?”주형인이 예전에 해령을 어떻게 대했는지 알기 때문에 모두 주형인이 당한 것이 자업자득이라고 생각했다.독한 사람들은 심지어 주형인이 깨어나지 않기를 바랐다.“네, 깨어났어요. 이제 음식을 먹을 수 있어요.”전태윤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운이 좋은 사람이에요.”서현주에게 그렇게 여러 번 찔리고 많은 피를 흘렸지만 의사도 그가 살아남을지 확신하지 못했는데 결국 살아남았다.전현림은 신문을 덮고 원래 자리로 돌려놓으며 말했다.“결국 우빈의 친아빠잖아, 그가 살아 있는 한 우빈은 아빠가 있는 거야.”전태윤은 잠시 침묵하다가 맞다고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여 반응했다.전이진이 여운초의 손을 잡고 들어왔다.“큰아버지.”전이진은 웃으며 큰아버지에게 인사했다.“돌아왔구나.”전현림은 젊은 세대에게 항상 온화하게 대했다. 그는 조카며느리가 맹인이라서 주로 듣는 데 의존한다는 것을 알고 있어서 조카의 인사에 응답했다.여운초는 큰아버지의 목소리를 듣고 큰아버지를 향해 인사했다.전이진은 그녀를 손잡고 일인용 소파에 나란히 앉았다. 다행히 소파는 충분히 커서 두 사람이 앉기에 딱 맞았다.“큰어머니 어디 가셨어요?”전이진이 무심코 물었다
전현림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큰일 났어!아들이 약 처방전을 발견했으니 이제 아내를 위해 어떻게 수습해야 할까?“누가 탁자 밑에 이 종이를 넣었어요?”전태윤은 중얼거렸다.그는 그 종이를 들고 쓰레기통에 바로 버리려다가 글자가 적혀 있는 것을 보고 호기심에 그 종이를 펼쳐 보았다.마침 그때 장소민과 하예정이 부엌에서 나왔다.장소민은 아들이 종이를 펼쳐 보고 있는 것을 보았고 탁자가 움직인 것을 눈치챘다. 장소민의 얼굴이 순간 창백해졌다.끝났다! 끝났어!어떻게 들켰을까?장소민은 약 처방전을 탁자 밑에 숨겨놨는데 아들이 그것을 발견하다니.남편이 아들에게 말한 걸까?그럴 리 없다.남편이 자신을 배신하지는 않을 것이다.장소민은 자신을 진정시키며 당황하지 말자고, 모른 척하면 된다고 다짐했다. 전태윤은 종이를 펼쳐 보니 한약 처방전이었다. 약에 대해 잘 몰라서 이 처방전이 어떤 병을 위한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나 탁자 밑에 숨겨져 있었으니 분명 가족의 약 처방전일 것이다.부모님이 편찮으신 걸까? 아니면 할머니가 편찮으신 걸까?할머니는 지금도 밖에서 건강하게 돌아다니시니 아프실 리가 없다.그렇다면 부모님인가?전태윤은 처방전을 다 읽고 나서 아버지를 바라보며 어머니도 멀지 않은 곳에서 조금 긴장한 표정을 짓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래서 그는 부모님의 건강에 문제가 있다는 확신이 들었다.“아버지, 이 처방전은 누가 탁자 밑에 숨겨놨어요? 아버지께서 편찮으신가요, 아니면 어머니께서 편찮으신가요?”전태윤은 그냥 넘어가지 않았다.그는 아버지에게 물었다.전현림은 모르는 척하며 말했다.“나와 네 엄마는 아무 문제 없다. 무슨 처방전이야? 어디 보자.”전현림은 아들 손에서 처방전을 받아들고 보았다.사업가로서 경험이 많아 눈치가 빠른 전이진은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를 번갈아 보니 그들의 표정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당연히 큰형도 그것을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는 걱정스럽게 물었다.“큰아버지, 어디 편찮으신가요? 숨기지 말고
어머니의 일깨움이 필요 없었다. 전태윤은 즉시 집안 주치의에게 전화했다. 전화가 연결되자, 그는 물었다.“우리 할머님이나 부모님 중에 최근 몸이 안 좋으신 분이 계세요?”“아니요, 노부인과 어르신 두 분 모두 건강하신데요. 도련님, 왜 그런 질문을 하세요? 혹시 노부인께 무슨 일이 생긴 건가요?”주치의는 노부인이 연세가 많아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다. 전씨 가문 사람들의 건강 검진을 자신이 직접 담당하지는 않지만 병원에서 일하는 동료들에게 물어보면 결과를 알 수 있었다. 전씨 가문 사람들은 큰 문제 없이 모두 건강하다고 들었다. 전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건강 관리에 신경 쓰고 개개인이 다들 건강했다.이 가족은 우월한 조건을 갖추고 있어 정말 운이 좋았다.젊은 세대는 모두 인재들이고 은퇴한 세대는 건강을 잘 유지하고 있었다.건강이야말로 가장 큰 재산이지만 전씨 가문 사람들은 실질적인 재산도 가지고 있었다. 재산 순위 1위라는 타이틀은 결코 허명이 아니었다.“할머니께서는 지금 관성에 계시지 않아요. 여기저기 돌아다니시니 별문제 없을 거예요. 저는 부모님이 걱정돼요. 방금 탁자 밑에서 약 처방전을 발견했어요. 사진을 보내드릴 테니, 무슨 약인지 알려주세요.”“네, 도련님. 처방전을 보내주세요.”“태윤아, 우리 말했잖아, 나와 네 아버지는 아무 문제 없어. 이 약 처방전이 누가 탁자 밑에 넣은 건지 모르겠지만, 그냥 버리면 돼.”장소민은 그 처방전을 버리려고 했지만 전태윤이 막았다.“어머니, 두 분 아무 문제 없으시면 왜 그렇게 당황하세요? 그냥 약 처방전일 뿐이니까 어떤 병을 위한 건지 확인하고 우리 가족 중에 아픈 사람이 없다면 그때 버려도 늦지 않아요.”전이진도 그 약 처방전을 가져와서 보았다. 여운초는 보이지 않아 귀를 기울였다.조금 당황한 시부모의 모습을 보고 하예정은 처방전이 시부모가 탁자 밑에 숨긴 것일거라고 추측했다.“아버지, 어머니, 그냥 의사에게 이 처방전이 무슨 약인지 확인해 보라고 해주세요. 우리 가족이 편찮으신 것
전태윤은 아버지의 말을 믿지 않았다.전태윤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 있던 두 쌍의 젊은 부부들도 모두 믿지 않았다.하예정이 남편의 손에서 약 처방전을 다시 가져오려 했지만, 전태윤은 즉시 찢어버렸다.전태윤은 처방전을 산산이 찢어 화장실로 가져가서 찢어진 조각들을 변기에 버리고 물을 내렸다.화장실에서 나오는 전태윤의 얼굴은 여전히 어두웠다.“태윤아, 아버지가 말한 건 다 사실이야. 이 약 처방전은 정말 예정이를 위한 게 아니야. 예전에 너희 엄마를 위한 약 처방전이 맞아.”전현림은 어쩔 수 없이 거짓말을 계속했다.전태윤은 아버지의 거짓말을 참지 못하고 바로 지적했다.“제가 기억하기로는 할머니께서 아버지와 어머니가 결혼하고 나서 3개월 만에 임신했다고 했어요. 그런데 아버지꼐서는 오래도록 임신하지 못했다고 하네요. 할머니께서 잘못 기억하고 계신 건가요? 아니면 아버지께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건가요? 어머니께서도 빨리 임신했다고 말씀하신 기억이 있어요.”전현림은 할 말이 없었다.“어머니, 이 약 처방전은 외할머니께서 저와 예정이가 아이가 없다고 걱정해서 어머니에게 주신 거 맞죠? 어머니께서는 예정이에게 이 약을 먹으라고 하실 건가요? 우리가 돌아온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약 처방전을 탁자 밑에 숨긴 거죠?”전태윤은 자신의 부모를 잘 알고 있었다.분명히 추측한 대로였다.“제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지만, 저와 하예정은 둘만의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서 당장 아이를 갖고 싶지 않아요. 지난번 하예정과 건강 검진 문제로 싸운 이후로, 저는 항상 피임을 철저히 하고 있어요. 이렇게 하는데 어떻게 하예정이 임신할 수 있겠어요?”전현림과 장소민은 말문이 막혔다.전이진과 여운초는 듣고만 있었고 말을 꺼내지 못했다.큰형이 지금 화가 나서 폭발하기 직전이었다.전태윤의 말이 끝나자 하예정은 속으로 아버지가 거짓말했지만 전태윤도 거짓말하고 있다는 생각을 했다.그들은 피임한 적이 없었다.하예정이 예진 리조트에서 돌아온 이후로 전태윤은 그녀에게 매달려 있었다.“어
하예정도 시댁 식구들이 자신이 임신하기를 얼마나 바라는지 잘 알고 있었다. 시댁 식구들뿐만 아니라 그녀의 친언니와 이모도 그녀가 빨리 임신하기를 바라고 있었다.“모든 약에는 어느 정도의 독이 있어요. 함부로 약을 먹으면 몸을 낫게 하기보다는 해칠 수 있어요. 한마디로 말하면 의사의 진단 없이 약을 함부로 먹어서는 안 돼요.”전현림은 어색하게 웃으며 말했다.“태윤아, 너희 어머니와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어. 나도 너희 어머니에게 약을 함부로 먹으면 안 된다고 말했어. 너희 어머니도 예정이에게 약 처방전을 주고 약을 먹으라고 하려던 건 아니야. 단지 너희 외할머니께서 너희 어머니에게 주신 거라, 외할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 없어서 가지고 온 거야.”장소민은 아들이 외할머니에게 화를 낼까 봐 걱정되어 서둘러 말했다.“태윤아, 우리도 너희가 그런 상황인지 몰랐어. 외할머니를 탓하지 말아라. 외할머니께서는 항상 여러 가지 걱정을 하시는 분이야.”“너는 외할머니께서 가장 아끼는 외손자잖아. 그래서 증손자를 원한다는 말씀을 자주 하셔.”장소민은 또 며느리에게 말했다.“예정아, 어머니는 정말로 너희에게 아이를 재촉하려는 뜻은 없어. 어머니는 너희가 언제 아이를 갖든 상관없다고 했잖아. 너희는 아직 젊고 결혼한 지 이제 겨우 1년이야. 지금은 너희 결혼식을 준비하는 데 집중하자.”“어머니, 저도 알아요.”하예정이 대답했다.장소민은 전태윤이 부모님을 혼내는 모습을 보고 있는 하예정에게 눈짓하며 전태윤을 달래라는 신호를 보냈다.하예정은 시어머니의 의도를 알아차리고 전태윤의 팔을 살짝 잡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부모님이 약을 정말로 나에게 주려던 게 아니니까 당신 화 풀어요. 외할머니와 다른 어른들도 다들 이런저런 걱정을 많이 하시잖아요.”“이제 화 풀어요. 이진과 운초도 여기 있잖아요. 당신이 이렇게 화를 내면 운초가 놀랄 거예요.”여운초는 미소를 지으며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제 화를 푸세요. 식사 시간이 다 됐네요. 우리 식사하러 가요.”장소
“다행히 예정이가 이런 일로 화를 내지 않아서 태윤도 진정할 수 있었지. 그렇지 않았으면 태윤이가 얼마나 오래 훈계했을지 모르겠어. 아버지로서 아들한테 손자처럼 훈계를 듣는 게 정말 창피한 일이야.”장소민은 남편의 팔을 끼며 웃었다.“잠시 후에 식사할 때 좋아하는 반찬을 많이 드시고 몸보신하세요. 당신은 저 대신 태윤의 화를 받아줬잖아요.”처방전은 장소민이 친정에서 가져온 것이며 그녀가 탁자 밑에 숨긴 것이었다.그녀의 실수로 남편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함께 훈계를 듣게 된 것이었다.“가세요, 식사하러 가세요.”이때 소정남이 심효진을 데리고 들어왔다.“아저씨, 아주머니.”부부는 다정하게 인사했다.장소민 부부는 그들을 따뜻하게 맞이하며 함께 식사하러 갔다.소정남과 심효진은 주말을 서원 리조트에서 보내기 위해 왔으며 리조트의 단골 손님으로서 거리낌 없이 장소민 부부를 따라 식당으로 들어갔다.전태윤은 불쾌했지만 친구 부부가 있었고 아내가 계속해서 음식을 챙겨주자 조용히 식사하고 더는 화를 내지 않았다.식사 후 30분 정도 앉아 있다가 전태윤은 아내를 데리고 산책하러 나갔다.소정남과 심효진은 전태윤의 불쾌감을 눈치챘다. 그래서 바로 따라 나가지 않고 집안에 남아 전현림 부부와 이야기를 나누며 상황을 파악하고 있었다.전이진은 여운초를 데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전이진의 부모와 동생들이 집에 없었고 집사는 전이진이 여운초와 함께 온 것을 보고 서둘러 그의 부모에게 알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전이진의 부모가 급히 돌아왔다.부모가 돌아오자마자 전이진은 어머니에게 밀려 구석으로 가게 되었다. 어머니는 여운초에게 너무나 잘해 주었다. 마치 여운초가 친딸인 듯하고 전이진이 사은품처럼 느껴졌다.“운초야, 이번에 집에 며칠 더 있어. 엄마랑 같이 시간을 보내자.”명해은은 여운초의 손을 잡고 놓지 않으며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부드러워서 눈물이 날 것 같았다.명해은은 아들을 꾸짖으며 말했다.“오면서 미리 알려주지도 않고 내가 부엌에 운초가 좋아
분위기든 사람이든 정말 좋았다.시부모님은 여운초가 맹인이라는 사실을 알고도 전혀 꺼리지 않고 친딸처럼 대해주었다. 결혼하지 않았지만 약혼한 후, 여운초는 전현민 부부에게 점차 시부모님이라 부르게 되었다.시어머니는 예비 둘째 며느리가 돈만 쓸 줄 알면 되고 그 외의 일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행동으로 증명했다.친엄마 곁에서는 모성애를 느끼지 못했지만 예비 시어머니와 함께 있을 때는 그것을 느낄 수 있었다.엄마가 사랑하고 아껴줘서 정말 행복했다!“맞아, 양심적으로 행동해야 해. 딸이 더 마음이 쓰이니까.”명해은은 운초의 손을 잡고 따뜻하게 챙겨주었다.영운초가 위험에 처했던 일은 부모님께 알리지 않았다. 괜한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아서였다.“엄마, 저 운초랑 나가서 산책 좀 하고 올게요. 소화도 시킬 겸, 많이 걸으면 빨리 배고파져서 엄마가 아끼는 며느리에게 맛있는 걸 해주실 기회가 생길 거예요.”전이진이 일어나서 운초의 손을 잡았다.명해은은 며느리와 산책하고 싶었지만 아들이 이미 운초의 손을 잡고 있어 결국 그녀의 손을 놓으며 당부했다.“운초를 잘 돌봐야 해. 운초가 머리카락 한 올이라도 빠지면 돌아와서 너 혼날 줄 알아.”전이진은 즉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그럼 틀림없이 혼나겠네요. 여자애들은 누구나 머리카락이 좀 빠지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머리를 빗기만 해도 몇 가닥은 빠지는데요.”명해은은 아들을 째려보며 말했다.“혼나기 싫으면 집에서 아빠랑 TV나 봐. 내가 운초랑 산책하러 나갈 테니. 우리 둘이 얘기 좀 하자. 평소에 바빠서 운초를 자주 데려오지 않잖아. 이번에 온 김에 운초는 이틀 동안 내 거야.”전이진은 즉시 허리를 숙여 운초를 허리께로 안아 들고는 재빨리 집 밖으로 나섰다.운초는 줄곧 말했다.“이진아, 내려줘. 나 혼자 걸을 수 있어.”“널 안고 가면 더 빨리 갈 수 있어. 빨리 가자.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널 빼앗아 갈 거야. 난 아빠랑 TV 보고 싶지 않거든. 아빠는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속 물어
“진정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달콤한 말을 하게 되어 있어요.”명해은은 남편의 말에 동의하며 미소를 지었다.“셋째는 강성에서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요? 셋째가 결혼하고 넷째와 다섯째도 시작해야죠. 형제들이 한꺼번에 결혼하면 우리 가문은 정말 축하할 일이 많겠어요.”전현민은 웃으며 말했다.“그렇게 생각하는 건 좋지만 현실은 그렇게 아름답지 않아요. 막내는 아직 학교에 다니고 있잖아요.”막내가 집에 있을 때는 몇몇 형수들에게 애교를 부렸다.형수들에게 애교를 부리면 시험지 문제를 덜 푸게 된다. 형들이 주는 선물은 모두 시험지라, 문제를 풀다 보면 머리가 어지럽기 때문이다.“맞아요, 막내는 아무리 빨라도 최소한 10년은 더 기다려야 해요. 큰형처럼 되려면 10년 이상 걸릴 거예요.”전씨 할머니의 연세를 생각하며 명해은은 조용히 말했다.“어머니께서 막내에게 좋은 아내를 골라주실 거예요.”“어머니께서 아홉 손자에게 두루 공평하게 대해주시니까요. 당연히 손자며느리도 친히 선택하실 거예요.”막내는 이제 겨우 십 대이기 때문에 형들 나이에 결혼할 나이에 이르려면 아직 십 년은 더 걸릴 것이다. 전씨 할머니의 연세가 많으시지만 부부는 할머니가 십 년, 이십 년 더 건강하게 사시기를 바라며 손자가 성인이 되는 모습을 보기를 바라고 있다.집안의 노부부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든, 집 밖의 젊은 연인들은 알지 못했다.여운초는 전이진에게 이끌려 리조트 안을 거닐면서 저녁 식사 전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조용히 물었다.“우리가 결혼 후 바로 임신하지 않으면 시부모님도 큰아버지 부부처럼 하실까?”“아니야, 우리는 서두르지 않아. 네 눈이 나으면 내가 너를 여행에 데리고 다니면서 실컷 놀게 해 줄 거야. 네가 놓친 10년의 세월을 보상해 주고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경치를 함께 즐기자.”“우리가 함께 일출과 일몰을 보고 등산하며 바다를 즐기면서 몇 년을 놀다가 아이를 가지자.”“걱정하지 마. 우리 부모님은 개방적이셔. 사실 큰아버지와 큰어머니도 개방적이지만 친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