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군호가 짜낸 웃음은 더 이상 굳을 수 없을 정도로 굳어지고 말았다.강명훈은 과거의 정군호 아니었던가.정군호가 능력이 좀만 있어도 이씨 가문의 데릴사위로 시집오지도 않았고 이씨 가문의 노예로 되지도 않았을 것이다.다행히도 이 가주는 정군호의 가족에게 나름 좋게 대해 주었다. 적어도 그의 희생으로 인해 그의 부모 형제들이 모두 어느 정도 이익을 챙길 수 있었다.하지만 정군호는 자유가 없었다. 특히 돈에 관해서.아내는 정군호가 밖에서 바람을 피우는 것을 경계하며 매일 그에게 주는 용돈은 10만 원을 넘지 않았다.바람을 피우려고 해도 마음만 있을 뿐 담력이 없었다.오랜 세월 동안 수많은 미녀가 정군호의 품에 안겼지만 정군호는 받아들이지 못했고 심지어 미녀들과 몇 마디도 나누지 못했다.그는 자신의 아내가 얼마나 악랄하고 악독한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마누라를 화나게 하면 정군호뿐만 아니라 그의 가족들도 고통을 받게 될 것이 뻔했다.특히 딸 이윤정을 낳은 뒤에야 이 가주는 마음을 다잡았고 심지어 부부생활까지 많이 뜸해졌다.정군호는 자신이 쓸모가 없어지고 아내에게 버림받을까 봐 감히 바람을 피우지도 못했다.말하자면 정군호는 이씨 가문에 들어온 이후로 수십 년 동안 매우 억울하게 지냈다고 할 수 있다.능력이 없는 게 죄일지도 모른다.강명훈을 보면 과거의 자신을 보는 것만 같았다.“게다가 이렇게 큰일을 마음대로 결정하면 안 되잖아요. 저는 명훈 씨한테 아무런 느낌도 없어요. 자꾸 밀어붙이시면 저도 너무 난처해져요.”“어머니, 제가 나중에 결혼하더라도 제가 직접 선택한 남자와 결혼하고 싶어요. 적어도 제 근심을 덜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나고 싶은걸요. 아버지처럼 겉만 번지르르한 남자는 싫어요.”정군호의 얼굴은 이내 어두워졌다.“윤미야. 무슨 말을 그렇게 해? 어쨌든 난 너의 친아버지야! 여보, 윤미 좀 보세요. 저의 체면을 전혀 고려하지 않아요. 제가 어디가 어때서? 애초에 제가 안 좋은 사람이라면 네 엄마가 날 고르지도 않으셨을걸.”“네네.
고현은 이윤정을 똑바로 보지도 않으면서 시골뜨기 이윤미에게는 무척 친절하게 대해주었다.“엄마, 내일 제가 언니랑 함께 갈게요.”이윤정은 이윤미가 고현에게 음식을 대접한다는 말을 듣고 양어머니에게 부탁드렸다.이 가주는 담담하게 대답했다.“넌 가지 않는 게 좋겠어. 고 대표님이 너에게 어떤 태도인지 알면서. 네가 어떻게 고 대표님에게 구애했는지 난 상관하지 않아. 난 결과만 보니까.”“하지만 윤미가 고 대표님께 음식 대접하는 것은 우리 두 그룹의 비즈니스 거래에도 많은 도움이 될 거야. 네가 절대로 망쳐놓으면 안 돼.”“윤미야, 네가 고 대표님과 함께 식사하는 것은 내가 반대하지 않겠어. 오늘 네가 큰 건을 해결했으니 엄마도 무척 기뻐. 내일 너에게 새 차를 한 대 뽑아줄게. 네가 직접 가서 새 차를 골라봐. 예산은 10억 원이야.”그 말을 들은 이윤정은 부럽고 질투하는 마음으로 말했다.“엄마, 제 차도 그렇게 비싸지 않은데...”이때 이윤미가 톡 쏘아붙였다.“넌 어머니의 수양딸이고 난 어머니의 친딸이야. 너는 어떻게 너를 나와 비교해? 아무리 뻔뻔해도 유분수지. 어떻게 이런 말을 해?”이윤정은 말문이 막혔다.이윤정은 가여운 눈빛으로 양어머니를 보고 있었다.이 가주는 못 본 척하며 그녀의 편을 들지 않았다.이윤정은 양어머니가 이윤미를 아무리 엄격하게 다스리고, 심하게 욕을 해도 두 사람이 여전히 친 모녀라는 것을 깨달았다.이윤정은 정말 갈수록 이윤미와 비교가 안 되었다.양어머니가 입으로만 그녀를 응석받이로 키운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여보.”이 가주가 남편에게 말했다.“윤미가 아직 결혼 생각이 없다고 하잖아. 이 일은 일단 제쳐두고 지켜보자. 딸이 컸으니 자기 생각과 주관이 생기는 것도 정상이야. 결혼은 평생의 큰일이니 윤미가 좋아하는 남자를 찾는 것이 좋겠어.”“윤미의 결혼에 관한 일은 우리가 부모로서 제안만 해주면 돼. 윤미 대신 결정지어줄 필요 없으니 윤미가 스스로 선택하도록 하는 것이 좋겠어. 아직 서른도 안 되었고 사업
아내가 그의 가족에게 혜택을 준건 사실이지만 그의 가족은 아내의 위엄 때문에 밖에서는 꼬리를 내리고 조용하게 지냈다. 아내 앞에서는 더욱 비굴하게 행동하며 하인보다 더 하인처럼 보였다.이런 것들이 정군호의 마음속에서 불만을 키웠다. 그는 오로지 모든 희망을 딸에게 걸었다.“윤정아, 네 엄마가 한 말을 아빠가 바꿀 수 없다. 네가 엄마에게 말해봐라. 아빠는 정말 방법이 없어. 이윤미가 말한 걸 못 들었니? 나는 네 엄마가 데려온 남자일 뿐이야. 데려온 남자가 집안에서 무슨 지위가 있겠니.”“아빠.”정군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윤정아, 아빠는 정말 방법이 없다. 아빠가 집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지 너도 알잖아.”이윤정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아버지의 말이 사실임을 알고 있었다.이씨 가문에서 그녀의 양아버지는 발언권이 없었다.한편 2층 서재, 이가주는 이미 책상 앞에 앉아 이윤미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문 닫고 잠가.”이윤미는 그녀의 말대로 했다.“차가 고장 난 건 무슨 일이지?”이가주가 물었다.“누군가 손을 썼어요.”이가주는 의자에 기댄 채 딸에게 물었다.“의심되는 사람이라도 있어?”“아빠랑 오빠들, 그리고 엄마가 가장 아끼시는 윤정을 제외하면 다른 사람은 생각나지 않아요.”이가주는 딸의 대답에 의외로 화 내지 않고 잠시 침묵하더니 입을 열었다.“엄마는 윤정에 대해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지만 우리 이씨 가문의 규칙은 변하지 않는다.”이 말은 이윤미에게 안심하라는 의미였다. 그녀가 은퇴하면 이가주 자리는 반드시 이윤미의 것이 될 것이다.“엄마는 윤정을 자기 집으로 돌려보내세요.”이가주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윤미아, 친딸이 아닌 사람은 결국 친딸이 아니야. 그래도 조금은 쓸모가 있으니, 적어도 네가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도구로는 쓸 만해. 당분간은 남겨둬.”가끔은 화가 나서 윤정에게 심한 말을 하기도 했지만 결국 윤정을 남겨두었다.친딸이라도 순조롭게 성장하게 할 수 없다. 그래야만 가업을 지키는 주인이 될 수 있다.그
고현이 만약 그녀의 사위가 될 수 있다면 그녀는 꿈에서도 웃으며 깨어날 것이다.“엄마, 저랑 고현은 그냥 친구예요. 고현이 직접 저한테 말했어요. 자기를 좋아하지 말라고, 절대로 받아주지 않을 거라고 했어요. 만약 제가 이윤정처럼 좋아한다면 결국 상처받는 사람은 저일 거라 했어요.”“친구로 지내는 게 더 오래 갈 수 있겠지.”이윤미는 한때 고현에 대한 감정을 품었었지만 그것은 뛰어난 사람을 마주했을 때 본능적으로 생기는 호감이었다.고현이 속말음을 털어놓은 후 이윤미는 그에 대해 순수한 감상만 남았다.이가주는 잠시 침묵하다가 결국 말했다.“고현은 우리 집과 맞지 않는다. 친구로 지내는 것이 좋겠어.”고현과 친구가 되는 것만으로도 이윤미에게는 이득이 될 것이다.“그럼 좋아하는 사람이 있니? 집에 돌아오기 전에 누군가를 좋아한 적 있어? ”이가주 역시 딸의 혼인을 걱정하며 말했다.“만약 좋아하는 사람이 있다면 엄마에게 말해봐. 데리고 와서 엄마한테 보여줘. 사람 됨됨이가 괜찮으면 엄마도 반대하지 않을 거야. 집안이 너무 좋은 사람은 데릴 사위가 될 리 없고 반면 너무 못한 사람이면 결혼할 때 많은 혼수를 주고 관계를 끊으면 된다. 그럼 뱀파이어처럼 달라붙을까 봐 걱정할 필요 없어.”“너희 할아버지 할머니 집안이 너무 형편없어서 그동안 엄마도 그들을 많이 도와줬다.”“우리 이씨 가문은 돈이 많지만 그들이 착취하는 것은 참을 수 없다. 그러니 앞으로 네가 남편을 고를 때 너무 뛰어난 사람도 안 되고 너무 못한 사람도 안 돼. 중간쯤 되는 사람을 선택하는 게 좋겠어.”이윤미는 웃으며 말했다.“전 아직 좋아하는 사람이 없어요. 유일하게 감탄한 사람은 고현 도려님인데 그분하고 절대 이루어질 수 없으니.”“천천히 찾아봐. 우리 집안은 확실히 선택하기 어려워.”이가주는 말하고 나서 한숨을 쉬었다.그러나 곧바로 책상에서 서류케이스를 꺼내 이윤미 앞에 던졌다.“엄마, 이게 뭐예요? ”“네가 직접 열어봐.”이가주의 표정은 이내 엄숙해졌다. 이윤미의
이가주의 얼굴이 많이 누그러졌다.그녀가 말했다.“남들이 뭐라고 하든 신경 쓰지 마. 그들은 네가 출세하는 걸 원하지 않고 더군다나 이윤정이 출세하는 건 절대 바라지 않을 거야.”“우리 이씨 가문은 백 년 넘게 이어져 왔다. 가난할 때도 부유할 때도 있었고 온갖 일들이다 일어났지 않느냐?”“우리 직계가 방계를 그렇게 오랫동안 눌러왔으니 그들이 당연히 마음에 한이 맺혔겠지. 기회를 잡기만 하면 출세하려 한다. 그 소문들도 아마 그들이 퍼뜨린 것일 거다.”이가주는 딸에게 자신의 손으로 자매들을 모두 죽였다는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이 사실을 아는 사람은 모두 죽었고 증거도 말끔히 없앴다. 아마도 빠져나간 사람은 없을 것이다.일이 일어난 지 몇 십 년이나 지났으니 확실한 증거가 나오기 전까지는 그녀도 절대인정하지 않을 것이다.두 조카딸이 당시 나이가 어리다 보니 약간의 기억이 남아있다고 해도 희미할 수 있어 되찾기 어려웠다.어쨌든 그녀는 수십 년 동안 두 조카딸의 소식을 계속 주의했지만 아무런 소식도 들려오지 않았다. 관성은 그렇게 큰 도시인데 두 조카딸이 정말 그곳에 있다고 하더라도 쉽게 찾을 수 있겠는가?설령 찾는다 해도 그녀는 두렵지 않았다.이씨 가문의 뒷받침 없이 그 두 조카딸이 살아남기조차 힘들었을 테니 운이 좋다면 평범한 가정에서 자랐겠지. 상업 전쟁에 대해 접할 기회도 없었을 텐데 어떻게 그녀의 딸과 맞설 수 있겠는가?게다가 조카딸들도 나이가 적지 않다. 반면 그녀의 딸은 한창 젊으니 나이로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윤미아, 우리 가문은 다른 가문과는 다르지만 내부 싸움이 적을 수는 없다. 네 생활비서 외에는 아무도 믿지 마라”이윤미는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엄마, 저도 알아요.”“알면 됐다. 이제 돌아가 쉬어라. 내일은 새 차를 한 대 선물해줄게.”“감사합니다. 엄마.”“엄마도 일찍 쉬세요.”이윤미는 말을 마치고 서류케이스를 들고 돌아섰다.그녀가 나간 지 몇 분도 지나지 않아 정군호가 문을 두드리고 들어왔다.“이아,
이은화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 “애가 우리랑 닮지 않은 건 사실이야. 하지만 여러 번 DNA 검사를 해본 결과, 윤미가 우리 딸이라는 건 틀림없는 사실이었어. 외모는 닮았는데 하는 행동은 너무 틀려. 지나치게 물렁물렁해. 이씨 가문의 피를 이어받고 왜 저렇게 나약한지 모르겠어. 나는 해가 갈수록 늙어가는데 도대체 언제쯤 대를 이어줄지 모르겠구나. 나도 빨리 물러나서 손주 보며 여유롭게 살고 싶어. 근데 며느리들이 협조하지 않는 걸 어째. 첫 손주는 이왕이면 손녀였으면 좋겠는데, 손녀가 생기면 마음이 놓일 거야. 만약 윤미가 가문을 이어받지 못한다면 10~20년 더 살면서 손녀 후계자로 키울 수 있을 테니까.”이은화의 말을 듣고 정군호는 속으로 여러 가지를 계산했다.딸이 가문의 주인이 되는 것이 손녀가 주인이 되는 것보다 낫긴 하지만 딸은 곁에서 키우지 않아 정이 없었다.이윤미가 가문의 주인이 된다면 그는 눈치를 보며 살아야 할 것이다.반면 손녀가 가문을 이끌면 그는 할아버지로서 존경받을 것이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지도 몰랐다.이씨 가문은 딸이 대를 잇고 아들을 선호하지 않았지만, 딸을 낳는 것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들 부부도 아들 몇을 낳고 나서야 겨우 딸 하나를 얻었으니 말이다.전 세대 가주는 운이 좋아서 딸을 연달아 둘이나 낳았다. 그 전 세대도 딸을 쉽게 낳았는데 유독 그들 부부만 아들 몇을 낳고 나서야 딸을 얻었다.과연 아들들이 한 번에 딸을 낳을 수 있을까?노부부는 계단을 내려와 본채를 나서며 마당을 거닐었다.정군호는 다시 아까 그 주제로 돌아갔다.“아직 윤미가 뭘 했는지 말하지 않았잖아요. 왜 윤미랑 얘기하고 나서 그 좋던 기분이 나빠졌어요? 혹시 윤미가 제가 결혼을 강요한 걸 원망이라도 했어요?”“그건 아니야. 나 모르게 무슨 짓을 벌인 것 같아서 그래. 근데 그걸 증명할 증거를 찾지 못했어. 그래서 좀 답답했을 뿐이야.”이은화는 친딸이 진실을 알아낼까 봐 걱정했다. 모녀의 관계가 깨질까 두려운 것이다.이윤미는 겉으
이윤미는 부모가 무슨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지 몰랐다.자신의 방으로 돌아온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방윤림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광성에 간 사실을 어머니가 알았다는 내용이었다.방윤림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죄송합니다. 제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했습니다.]이윤미가 답했다.[엄마 곁에 있는 생활 비서가 움직였으니 알아챈 건 당연한 일이야. 자책할 필요 없어. 내가 광성에서 쓴 영수증 몇 장만 나온 거니까 양호한 거야.]하지만 방윤림은 여전히 자책하며 말했다.[그래도 제 실수입니다. 이번 달 월급과 보너스를 전부 차감해 주십시오.]방윤림의 성격을 잘 아는 이윤미는 답장을 보냈다.[이번 달 보너스는 전부 차감하고 월급은 그냥 둬. 너도 살아야지. 내가 널 먹여 살릴 순 없잖아?]방윤림은 이윤미의 메시지를 오랫동안 응시하다가 마침내 답장을 보냈다.[감사합니다, 아가씨.]그는 이윤미에게 기대고 싶지 않았다. 그는 그녀에게 가장 든든한 버팀목이 되고 싶었다.이번 일을 통해 방윤림은 자신이 그동안 너무 자신감에 차 있었음을 깨달았다. 가주의 수하에 비해 그는 확실히 부족한 부분이 많았다.그렇게 밤이 지나갔다.다음 날, 관성의 산꼭대기 별장에서.전태윤은 옷을 정리하며 계단을 내려가고 있었다.“형.”전이혁이 소파에서 일어나 그가 내려오는 것을 보며 얼굴에 웃음을 띠었다.“형수님은 아직 안 일어나셨어?”“아직 일러, 좀 더 자게 놔둬. 예정이는 잠이 많아.”잠이 많은 게 구토보다는 나았다.똑같이 임신했지만, 심효진은 임신 초기 증상이 거의 없었고 티도 나지 않았다.반면 하예정은 매일 아침 일어나자마자 신물이 나올 때까지 구토했다. 식사 후에도 가끔씩 토할 때가 있었다.하예정은 식욕이 좋고 잘 먹었지만 토하는 횟수가 많아지자 점점 음식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그래서 최근 며칠 먹는 양이 확 줄어들었다.전태윤은 그녀가 먹은 것이 없어서 항상 걱정되었다.매일 아침, 하예정의 식사는 그가 직접 준비했다. 먹고 싶은 게 있어서 전날 미리 말하
전씨 할머니께서 말씀하신대로 큰형이 만든 음식을 먹을 기회가 가장 적었다. 할머니는 어르신이기 때문에 감히 큰형에게 요리하라고 강요할 수 있었지만, 그들은 큰형에게 요리해달라고 할 만큼 배짱이 없었다.형수님이 나타나면서부터 큰형은 주방에 있는 시간이 길어졌고 이 또한 형수님 덕분이었다.만약 모두가 서원 리조트로 간다면, 하예정이 먹고 싶은 것을 말하기만 하면 큰형이 요리를 준비하여 형수님을 만족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다.형님이 형수님을 모든 여자의 선망 대상으로 살게 하고 싶다고 했고 결국 그 약속을 지켰다.전태윤이 부엌으로 들어갔다.전이혁은 자리에 서서 몇 분 동안 묵묵히 서있다가 밖으로 나왔다.전이혁은 뒷마당에서 할머니를 찾았다.할머니는 뒤 정원에서 무술을 연습하는 것이 아니라 스피커를 틀어놓고 혼자 춤을 추고 계셨다.전이혁은 할 말을 잃었다.전이혁은 사람들이 스피커로 노래를 틀어놓고 춤추는 것을 매우 싫어했다.성인이 된 후고 전이혁은 대학을 졸업하고 나와 자신의 능력으로 번 돈으로 아파트를 샀다. 그 아파트는 회사와 거리가 가까워서 출퇴근이 편리했다.하지만 아파트 아주머니들이 아침저녁으로 동네에서 춤추고 있었고 그 노랫소리가 천지를 진동하듯 매우 시끄러웠다.아파트 주민들도 그 아줌마들한테 도리를 따지려고 했지만 아무런 소용도 없었다.심지어 극단적인 방법으로, 예를 들어 갑자기 그 아주머니들한테 물을 퍼붓는다든지 달걀을 뿌린다든지 온갖 짓들을 다 시도해 봤지만 서로 욕 싸움만 일어났을 뿐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다.춤을 추는 아주머니들은 심지어 농구장을 점령하여 학생들과 자리를 빼앗기도 했다.그 뒤로 전이혁은 그런 소란스러움을 견디지 못하고 끝내 그 집을 팔아 별장을 샀다.억지를 부리는 아주머니들을 멀리하고 나서야 전이혁의 귓가는 비로소 조용해 졌다.지금 그가 사는 별장은 아주 잘 관리되고 있었다.하여 존경하는 할머니께서도 지금 그 춤을 추시는 장면을 목격하더니 전이혁은 어이없는 표정을 지었다.다행히 할머니는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