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서원 리조트에는 손님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고 모두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했다.전씨 가문은 리조트에서 연회를 거의 진행하지 않았다. 연회를 열더라도 관성 호텔에서 진행했다.돌아가신 전씨 할아버지께서 아내를 위해 서원 리조트를 건축한 뒤로 전태윤의 부모가 결혼했을 때에만 서원 리조트에서 결혼식을 열었다.그 외 행사는 모두 관성 호텔에서 진행했다.곧 전태윤의 결혼식이 치러지자 전씨 할머니는 장손의 결혼식은 서원 리조트에서 진행해야 한다고 하셨다.오늘 관성 호텔은 영업하지 않았지만, 회사 직원들을 초대하여 관성 호텔에 가서 축하주를 마시게끔 했다.그가 결혼하는 것은 전씨 그룹 전체가 경사를 맞이하는 것과 다름없다.정윤하는 현장의 사람들과 안면이 없었기에 소지훈은 지인에게 부탁하여 정윤하를 돌봐달라고 했다. 물론, 정윤하가 소지훈이 소씨 가문의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게 해서는 안 되었다.소지훈은 미리 모두에게 그를 보면 소 대표라고 불러 달라고 당부했다.아무도 감히 소지훈의 당부를 거절하지 못할 것이다.정윤하는 서원 리조트에 처음 온 것은 아니지만 다시금 서원 리조트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정윤하는 다른 사람의 보살핌을 받을 필요 없었다. 소지훈이 전태윤을 따라 신부를 데리러 갈 때 그녀는 혼자 리조트를 거닐었다. 전태윤의 결혼식이었기에 서원 리조트도 결혼식 분위기로 아름답게 꾸며졌다.정윤하는 이 모든 것을 휴대전화로 찍어 놓았다.여기까지 온 것이 헛되지 않았다고 감탄했다.전태윤은 신부를 맞이하기 위해 집을 나섰을 때 긴 웨딩카 행렬을 보더니 무척 놀라워했고 또 마냥 부럽기만 했다.그녀는 자라면서 수많은 결혼식에 참석해 봤지만, 처음으로 신부를 맞이하는 웨딩카가 100여 대나 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연성에서는 신부를 맞이하는 웨딩카가 10대 정도 되면 꽤 많은 편에 속했다.역시 관성의 갑부는 남달랐다.이는 전씨 가문과 전태윤이 하예정에 대한 진지한 태도의 표현이었다.정윤하는 하예정이 소설 속 신데렐라 여주인공처럼 느껴졌다. 부모도 없
“고 대표님.”정윤하는 소지훈의 소개로 고현이 강성 고씨 그룹의 대표이지 고씨 가문의 큰 도련님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 스캔들 남자 친구이기도 했다.전호영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에 정윤하도 무척 놀랐다.정윤하는 전호영이 게이일 줄은 생각도 못 했고 전씨 가문의 어르신들이 전호영이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두 사람 사이를 갈라놓지 않는 모습에 더욱 놀랐다.그러나 정말이지, 고 대표님은 정말 멋있다.하지만 전씨 가문의 셋째 도련님의 신분과 지위로 놓고 보면 그가 만난 미남과 미녀가 정말 많을 텐데...아마도 고 대표님의 도도한 분위기가 전호영을 사로잡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정윤하는 고현을 위아래로 여러 번 훑어보며 마음속으로 전호영이 고현을 사랑하게 된 이유를 찾으려 노력했다.“윤하 씨.”고현은 정윤하보다 나이가 많았고 또 여러 해 동안 업계에서 지내다 보니 사람 보는 눈빛이 날카로웠다.정윤하가 고현을 훑어보며 무슨 생각을 하는지 고현은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었다.그러나 그녀는 해명하지 않았다.고현은 단지 고 대표의 신분으로 전태윤의 결혼식에 참석하러 왔을 뿐 전호영의 여자 친구 신분으로 온 것이 아니었다.지금 그녀가 대표하는 것은 고씨 가문이었다.게다가 고현은 여성 옷을 입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사실 정윤하만이 그녀를 그런 눈빛으로 보는 것이 아니다.전씨 가문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 모두 고현이 어떤 매력으로 전호영의 마음을 사로잡았는지, 전호영이 수많은 여자를 제쳐두고 어찌 고현을 사랑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어 했다.“혼자세요?”“윤하 씨도 혼자 오셨군요.”정윤하는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지훈 씨가 전 대표님 따라 신부를 맞이하러 갔어요. 저는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서 혼자 리조트를 구경하고 있었고요. 모두 낯선 사람들이라 어색할 필요도 없고, 이렇게 산책도 하니 너무 좋네요.”세상 물정을 보고 싶은 마음이 없었더라면 정윤하는 소지훈을 따라오지도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매우 값졌다.적어도 이렇게
고현은 입술을 오므리다가 입을 열었다.“내년 일은 내년에야 알겠지만, 계획은 종종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이죠.”정윤하가 웃으며 말했다.“내일 일은 아무도 모르죠. 계획된 일에도 예상치 못한 변화가 나타날 수 있으니 우리도 계획을 바꿀 수밖에 없어요. 고 대표님, 같이 구경해도 괜찮을까요?”고현은 생각 끝에 정윤하의 호의를 정중히 거절했다.그녀는 직설적으로 말했다.“다들 제가 전호영 씨의 스캔들 남자 친구라고 생각해요. 윤하 씨는 소 대표님께서 초대하신 귀한 손님인데 저와 함께 걸어 다니면 윤하 씨에게도 다소 영향을 줄 수 있어요.”정윤하는 고현이 이렇게 말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럼 저도 더는 강요하지 않을게요. 고 대표님, 참으로 의외네요.”“제가 전호영 씨와의 열애설을 인정한 것 같지 않죠?”정윤하는 고개를 끄덕였다.“네.”고현도 보기 드문 웃음을 지었다.“호영 씨가 공개적으로 저에게 구애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저와 호영 씨는 서로 묶일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호영 씨가 모두 지켜보는 가운데서 저한테 구애했기에 다들 아는 사실이잖아요. 저도 이제 태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어요.”“고 대표님... 호영 도련님 마음을 받아들인 거예요?”정윤하는 오지랖 넓게 물어보았다.고현이 피하지도, 화내지도 않고 현실을 직시한 태도를 보고 정윤하가 대담하게 물어본 것이다.고현은 정윤하와 시선을 맞추지 않고 앞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 동안 침묵하더니 그제야 입을 열었다.“저도 제가 마음이 움직였다는 사실을 인정해요.”정윤하가 말을 이었다.“하지만... 이런 상황을 사람들이 받아들이기 어려울 거예요.”“우리 생활은 우리 두 사람이 살아가는 것이기에 우리가 행복하게 살기만 하면 되는 거예요. 다른 사람들 시선이 두렵지 않아요.”게다가 고현은 진짜 남자도 아니었다.전호영의 말을 빌려 쓰자면 고현이 20년 동안 남자로 가장해 살아왔다고 해도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바꿀 수는 없었다.“맞아요. 두 사람만 행복하게 지내
고현은 고빈을 노려보며 경고했다.“그딴 생각을 하지 마. 저분은 소지훈 씨 여자야. 정윤하라고 하는데 연성의 정합 도장 사장님 딸이야. 어려서부터 무술을 익혔고 지금은 정합 도장의 코치로 일하고 있어.”“시원한 성격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사람도 순수하고 바람기도 없는 분이셔. 이렇게 순수한 사람을 본지도 너무 오랜만이야.”어린아이들을 제외하고 고현이 만나 본 사람들은 모두 꾀가 많은 사람이었다. 어린아이들조차도 속셈이 꽤 있었다.아마 이 바닥의 사람들은 원래부터 가면을 쓴 사람일지도 모른다.소지훈이 정윤하를 데리고 왔을 때 고빈이 현장에 없었기에 그는 정윤하가 소지훈의 사람이라는 것을 몰랐다.누나의 말을 들은 고빈은 아쉬운 표정으로 말했다.“소지훈 씨 여자였군. 정말 건드리면 안 되는 존재였어. 마음에 무척 들었는데. 소지훈 씨 몸에 병이 있다고 하지 않았어? 여자를 가까이 할 수 없는 병이라고 들었는데. 여자한테도 마음이 없고 남자한테도 관심이 없다고 하던데. 좋게 말하면 감정이 없는 병이라고들 하지만 나쁘게 말하면 못 쓰는 거지.”고빈은 이 말을 고현 앞에서나 말 할 수 있었지 감히 밖에 나가서 말할 수 없었다.소지훈은 만만한 사람이 아니었다.누가 허구한 날 할 일 없이 소지훈을 건드릴 수 있겠는가! 죽고 싶은 것도 아니고.고현은 또 동생을 노려보며 차갑게 말했다.“치료할 수 있는 병이야. 못 쓰는 거랑 다른 얘기지. 지훈 씨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여자를 만난다면 지훈 씨도 정상인과 다를 바 없어. 윤하 씨는 행운을 만난 거지. 평생 지훈 씨가 딴마음을 품을 걱정을 할 필요가 없잖아.”“전 대표도 딴마음을 품지는 않을 거야.”고빈은 미래의 형부를 대신해 한마디 했다.고현이 말을 잇지 않았다.전호영의 조부 벌부터 바람을 피우는 사람이 없었다. 전호영 나이 또래 형제들도 모두 젊은 미혼 남자들이었다. 미래에 마음이 변할지 누가 알겠는가.미래의 세상은 그 누구도 모르는 법이다.“정윤하 씨가 바로 지훈 씨를 치료할 수 있는
고빈은 혼자 중얼거렸다.“누나는 이미 시집갈 준비를 한 거야? 누나가 시집가도 여전히 고씨 그룹을 경영할 수 있잖아. 우리 부모님도 우리 두 자식밖에 없기 때문에 재산도 우리 두 사람이 나누어서 가져야 할걸. 고씨 그룹의 절반은 누나 재산인데 난 현재 우리 두 사람의 직위가 바뀌지 않았으면 좋겠어.”고현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나도 오랫동안 힘들게 일했는데 좀 물러나서 쉬면 안 돼? 넌 남자잖아. 한 집안의 기둥답게 책임을 짊어져야지.”“회사를 이어받는 게 내 책임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누나도 상속권이 있어서 우리 두 사람한테 다 책임이 있어. 누나는 언제 시집가려고? 누나가 신혼 여행하러 갈 때와 나에게 조카를 낳아줄 때 내가 회사를 책임질게.”“아니다. 호영 씨가 책임져야 해. 누나를 데려갔으니 호영 씨가 고씨 그룹을 책임져야 해.”말이 끝나기 무섭게 고빈은 또 누나에게 한 대 얻어맞았다.“호영 씨는 너한테 빚진 거 없어. 핑계 대지 말고 엄마 아빠 곁으로 돌아가. 업계 큰 인물들과 말을 나누지 않아도 한 번이라도 만나보는 것도 좋아. 그리고 네가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는지나 좀 봐. 네 나이도 적지 않은데 장가갈 때도 됐잖아.”“난 오히려 정윤하 씨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누나의 노려보는 눈빛에 고빈은 더는 말을 잇지 못하고 웃기만 했다.고빈은 정윤하에게 첫눈에 반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다른 스타일의 미녀를 만나보니 본능적으로 감상하고 싶었고 접근하고 싶을 뿐 다른 생각은 없었다.“너의 여성 지인들은 이미 너무 많아. 정윤하 씨가 없어도 돼. 물론 지훈 씨 폭격을 견딜 수 있다면 정윤하 씨를 접근해도 돼. 그러다가 일이라도 생기면 나한테 도움 청할 궁리하지 말고. 난 너 대신 수습해 주지 않을 거야. 지훈 씨가 널 죽이지 않는 한 난 절대로 나서지 않을 거니까.”“너무 지독한 거 아니야? 내 목숨을 위해서라도 정윤하 씨를 멀리해야겠군.”고빈의 여성 지인이 한 무더기라 굳이 정윤하와 가까이 지낼 필요는 없었다.소지훈의 여
“네. 돌아왔어요. 비가 그칠 때 형수님이 들어오셨거든요. 조금 전에 비가 한바탕 내렸는데 어르신들이 형수님이 평소에 국물을 좋아하셔서 시집가는 날 비가 왔대요.”고현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그런 말도 있었나요? 저도 평소에 국물을 즐겨 마시는데.”‘나중에 내가 시집갈 때도 비가 올까?’“어르신께서 그렇게 말씀하셨어요. 제 생각에는 공교롭게도 비가 와서 그렇다고 생각해요. 날씨가 변덕스러운 것은 정상이니까요.”전호영은 웃으며 그 꽃다발을 고현에게 건넸다.“신부의 꽃다발을 제가 빼앗았어요. 신부 꽃다발을 뺏은 사람이 바로 다음 결혼할 사람이라고 하던데 그게 진짜였으면 좋겠어요.”“이 꽃을 고현 씨에게 드릴게요. 우리 형 결혼식 덕분에 고현 씨도 복이 가득했으면 좋겠어요.”고현은 잠시 망설이다가 전호영이 건넨 꽃다발을 받으면서 말했다.“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호영 씨가 게이로 보였을 텐데 호영 씨가 이 부케를 받아서 저한테 주면 우리 두 사람 동성 연애가 또 한참 동안 화제가 되겠네요.”“사람들이 저를 어떻게 생각하든지 상관없어요. 고현 씨만 제가 정상적인 남자라는 것만 알면 되니까요.”고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호영 씨가 정상인지 아닌지 제가 어떻게 알아요? 호영 씨도 지훈 씨처럼 그럴지 누가 알겠어요.”“제가 언제든지 협조해 드릴 수 있어요. 제가 정상인지 아닌지를 확인하셔야 저와 남은 인생을 잘 살 수 있을 거 아니에요.”고현은 아무 말도 잇지 못했다.말실수한 것이 틀림없다.다행히 전호영은 고현이 부끄러워 할까 봐 이 주제에 관해 더는 말하지 않았다.“왜 여기 혼자 있어요?”“남들과 어울리는 게 싫어서 리조트를 혼자 구경하다 보니 여기 앉아 있게 됐네요.”고씨 가문의 식구 네 명 모두 전씨 가문에 와서 결혼식에 참석하게 되었는데 이번에 고현은 그녀의 경호원을 데리고 있지 않았다. 전호영과 함께했기 때문에 그가 자신을 잘 보호할 것이라고 믿었다.전씨 가문의 땅에서 전씨 가문은 모든 손님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처음엔
고현은 전호영을 보며 물었다.“큰형의 결혼식이 끝난 후에도 강성으로 갈 거예요?”“고현 씨가 강성으로 가는데 저도 당연히 강성에 가야죠. 고현 씨가 저를 따라 관성으로 돌아가지 않는 한 저도 고현 씨 따라서 거예요.”고현이 바로 말을 이었다.“정말 한가군요.”“대학 졸업 후 제가 큰형을 도와 그룹을 운영했거든요. 제가 입맛이 까다롭고 요리도 잘했기에 큰형이 저한테 요식업을 이어받으라고 권했어요. 관성 호텔 음식이 제 입맛에 안 맞으면 손님들의 입맛도 사로잡을 수 없다면서요.”“제가 전씨 그룹의 요식업을 운영한 지 거의 10년이 되었어요. 저도 제 자리에서 일을 잘하거든요. 제가 관성에 없다 해도 다른 호텔들도 정상적으로 운영될 수 있어요. 하물며 제가 호텔과 총지배인 그리고 몇몇 부사장님들을 관리하고 있기에 중요한 일이 있을 때만 제가 나서서 처리해요.”“제가 강성에 아무리 오래 있어도 제 사업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어요. 저로서는 올해 안에 집에 쇨 수 있는지, 할머니께 쫓겨나지 않는지가 가장 중요해요.”고현은 전호영이 자신의 마음을 움직이지 못하면 올해 설날에 전씨 할머니에게 쫓겨날 것이라고 들었다.“할머니께서 정말 호영 씨를 쫓아내고 설을 쇠지 못하게 한다고 생각해요? 전씨 할머니는 참 좋으신 분이라 아마도 호영 씨를 위협하려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호영 씨 형제들 모두 효도심이 많은 사람이라서 할머니 말을 잘 들으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아요.”“호영 씨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제 생각에는 전씨 할머니께서 호영 씨 형제들의 인생 큰일을 이렇게 계획하시는 건 좀 횡포한 것 같아요. 결혼은 억지로 할 수 없는 건데 할머니가 호영 씨 형제들 대신 아내를 골라주시잖아요. 그 여인들은 호영 씨 형제분들이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모르는 여인들이잖아요.”“호영 씨 형제들이 상대방을 좋아하지 않는데도 할머니께 효도하려고 그 여인과 결혼하여 평생 행복하게 살지 못하는 것을 걱정하시지도 않으시던가요?”전호영은 화를 내지 않았다.“할
전씨 할머니 손주들의 인생사에 관여하는 일에 관해 고현은 이해하지 못했다.전호영이 처음으로 그녀에게 설명해 준 것은 아니지만, 그녀는 알아들을 수 있다고 해도 여전히 공감하지 못했다.아마도 고현이 전씨 가문의 사람이 아니고 전씨 가문에서 자라지 않은 탓일 수도 있다.고현도 전호영 형제들의 부모가 아들의 혼사를 걱정하지 않고 전부 전씨 할머니께 맡기는 모습을 발견했다.전씨 할머니가 골라준 며느리의 생김새가 어떻든, 집안 배경이 어떻든 전씨 집안 형제들의 부모는 모두 그대로 받아들였다.부모로서 무책임해서인지는 몰라도 이 모든 일은 전씨 할머니가 나서서 손주들의 인생 대사를 도맡았다.“저희 할머니의 명성과 인맥은 관성에서 최고예요. 예전에 우리 전씨 그룹과 성씨 그룹이 서로 적수로 싸웠을 때 우리 할머니가 나서기만 하면 성씨 가문도 어느 정도 체면을 세워줬을 거예요.”전호영은 자랑스러운 얼굴로 계속해서 말했다.“할머니가 오래오래 사시고 우리 아홉 형제가 가정을 꾸리고 증손자들이 태어나는 것을 보셨으면 좋겠어요.”“할머니께서는 늘 할아버지에 관해 말씀하시며 영감이 보고 싶다고 하셨어요. 할아버지가 계시지 않으니, 자손들은 할머니 손에 맡기게 된 셈이죠. 할머니도 할아버지가 무책임하다며 욕해요. 자손들이 이렇게 많은데 영감이 혼자 다리를 뻗고 하늘나라로 행복을 누리러 가셨다면서요.”“할아버지와 할머니 사이도 매우 좋아요.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실 때 자손들을 걱정하셨기에 할아버지가 저승에서 편히 쉬실 수 있도록 할머니께서도 이 세상에서 손주들의 혼사에 대해 많이 신경 쓰고 계세요.”“서원 리조트도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위해 만든 집이에요.”고현은 전호영의 손을 맞잡았다.전호영이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언급할때 그의 얼굴에는 뚜렷한 변화가 있었다.그 모습을 본 고현은 전호영 형제들이 할아버지에 대한 감정이 매우 깊을 것으로 추측했다.할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오래 되였지만 아직도 할아버지를 언급할 때마다 그들은 모두 슬퍼했다.가장 괴로운 사람은 전씨 할머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