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전화를 내려놓은 이은화가 말했다.“꽤 독하다니까...”그녀는 친딸이 후계자를 하기에 딱 맞는 성격을 가졌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이윤미는 무자비함과 독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이은화는 이씨 가문이 그녀 손에 넘어가도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이경혜는 하예진을 가주로 삼고 싶어 했지만 하예진이 과연 이윤미랑 비교할 수 있겠는가...게다가 하예진은 싱글맘인 데다가 식당을 두 곳이나 여는 바람에 평소에도 바빠서 장성까지 가서 이윤미와 가주 자리를 다툴 여력이 없을 것이었다.이렇게 생각하자 이은화는 조금 마음이 놓였다.하지만 하예진 뿐이 아니었다. 이은화는 다른 사람들도 막아야 했다. 큰 언니의 딸과 외손녀만 처리하면 이은화의 자리는 이윤미에게 넘겨질 것이었다.어려운 일이었지만 그녀는 어떻게든 그들을 제거할 생각이었다.한편, 이윤미는 이은화가 전화를 끊자 휴대폰을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그리고는 검은색 회전의자에 기대어 의자를 이리저리 돌리고 있었다.그때, 이윤미의 휴대폰이 또 울렸다. 비서인 방윤림에게서 온 메시지였다.방윤림은 그녀에게 이런 메시지를 보냈다.[공 비서가 관성에 간 건 사실이지만 그날로 비행기를 타고 강성으로 돌아갔대.]그리고 또 이은화가 내일 아니면 모레 돌아올 거라고 전했다.그녀 예상대로 이은화가 계획했던 일들은 그렇게 순조롭게 진행되지 않았던 것이다. 이은화는 이경혜도 만난 듯했지만 안 좋게 헤어진 것 같았다.이윤미는 방윤림이 보내온 메시지를 받고 한참 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다가 알겠다고 답장했다.그러자 방윤림이 곧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기분 안 좋아 보이는데...][이윤정이 엄마한테 고자질해서 방금 한바탕 꾸중을 들었거든. 기분이 좋진 않지.]그러자 방윤림이 다시 그녀에게 물었다.[내가 지금 데리러 갈까? 바람이나 쐬러 가자.]이윤미는 망설이지 않고 알겠다고 답장했다.이윤미는 돌아온 지 겨우 2년밖에 되지 않았기에 항상 그녀 편에 서주는 사람조차 별로 없었다.하지만 그런 그녀가 가장 믿는 사
이윤미는 알겠다고 하며 방윤림에게 말했다.[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오는 길에 길가에 있는 상점에 가서 아이스크림 있는지 봐봐. 브랜드 상관없이 컵에 담긴 거면 돼.]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이면 여기저기 안 흘릴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윤미는 아이스크림을 먹을 때 컵에 담긴 아이스크림을 좋아했다.평소 같았으면 방윤림은 그녀에게 찬 음식을 적게 먹으라고 권했을 것이지만 오늘은 그녀의 기분이 안 좋은 것을 생각해 따뜻한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이윤미는 그의 대답을 듣고서야 휴대폰을 내려 놓았다.휴대폰을 책상 위에 놓고 이윤미는 일어서서 창가로 걸어갔다.이씨 그룹 사옥은 고씨 그룹 사옥만큼 높지는 않지만 주변에 있는 다른 사옥보다는 몇 층 높았다.이윤미의 사무실은 옥상보다 한층 낮았기에 창가에 서서 밖을 내다보면 주변 건물들이 한눈에 들어왔다.강성은 번화한 도시였다.밤에는 곳곳에서 불빛이 눈 부시고 보이는 거리마다 차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시끌벅적해 보였다.다른 사람들은 이 밤을 즐기고 있었는데 그녀는 여전히 사무실에서 야근을 하고 있었다.비록 이은화가 회사에 없으면 그녀가 회사에서 최고 결정권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왕관을 쓴 자는 그 무게를 견뎌야 한다는 말이 괜히 있는 말은 아니었다. 공적인 일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방해했다. 특히 세 명의 친오빠는 이윤미를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그들은 다른 사람들과 협력하며 그녀의 일에 협조해 주지 않았다.그녀는 고의로 약한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친오빠들이 괴롭힐 때마다 그 자리에서 울음을 터뜨리고는 울면서 달아났다. 그리고는 다른 사람을 시켜 오빠들을 제압했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될 수 있도록 했다. 이윤미는 오빠들이 자기에게 아무 권력도 없다고 착각하게끔 했다.오빠들이 그녀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는 만큼, 그녀도 마찬가지로 오빠들을 편하게 내버려두지 않았다.그들이 밖에서 다른 여자를 만나고 내연녀가 생기면서 결혼에 충실하지 않자 이윤미는 그들이 바람을 피웠다는 사실을 형수님들에게 알렸다. 그래서
이윤미가 퇴근시킨 것이었다. 그녀가 야근을 하는 건 자기 회사 일이기 때문이었다. 이씨 그룹에 있는 비서는 도울 수 없는 일이었다.밖은 쥐 죽은 듯이 고요했다.일부 부서는 야근을 하고 있었는데 이윤미의 사무실이 있는 층에는 없었다.그녀는 사무실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입구로 향했다.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하자 어떤 남자가 꽃다발을 안고 엘리베이터 입구에 기대어 있는 것이었다.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윤미와 한 번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이었다.바로 정군호가 그녀와 엮으려던 강씨 가문 도련님인 강명훈이었다.정군호가 두 사람을 엮어주려 할 때, 그녀는 방윤림에게 부탁해서 강명훈을 조사하라고 했었다. 그래서 그가 어떤 사람인지 똑똑히 알게 되었다.술을 마시며 놀러 다니는 걸 좋아하는 데다가 여자들이랑 놀기만 하는 도련님을 소개시켜주다니...이은화도 이윤미의 편을 들면서 선을 보지 말라고 거절했지만 그녀를 친딸로 보지 않던 정군호는 끝까지 강명훈과의 만남을 주선했다.“윤미 씨.”강명훈은 똑바로 서더니 꽃다발을 안고 이윤미 쪽으로 걸어왔다. 그리고는 웃으며 꽃다발을 그녀에게 건넸다.“퇴근했어요? 윤미 씨가 회사에서 야근하고 있다는 거 알고 일부러 꽃다발을 사서 퇴근할 때까지 기다렸어요. 제가 밥 사드릴게요.”이윤미는 그가 건넨 꽃다발을 한 손으로 밀치며 차가운 표정으로 거절했다.“감사합니다만 오늘은 약속이 있어서요.”그렇게 말하며 그녀는 강명훈의 곁을 지나갔다.“윤미 씨.”강명훈은 이윤미에게 손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피해버렸다. 그러자 그는 다시 이윤미 앞으로 달려가서는 두 팔을 벌려 그녀 앞을 막는 것이었다.그의 시선은 이윤미의 얼굴로부터 점점 아래를 향했다.정군호는 강명훈에게 그가 아주 마음에 든다면서 그에게 이윤미를 꼬시라고 했었다. 그렇게 되면 그는 이씨 가문의 사위로 될 수 있다면서 말이다.이씨 가문 여자들은 시집을 가는 게 아니라 데릴사위를 들이는 편이었다. 데릴사위라고 하면 많은 남자들이 수치스
“윤미 씨, 그러지 말고요. 저 윤미 씨한테 첫눈에 반했거든요. 잠깐 얘기 정도는 나눌 수 있잖아요.”강명훈의 시선은 이윤미의 슈트 넥라인에 떨어졌다.‘시골에서 자랐어도 예쁘네... 몸매도 괜찮고. 역시 이씨 가문의 친자식이야. 역시 이런 귀한 기질은 타고난 거라니까. 자란 환경에 영향받지 않았어.’그녀의 좋은 몸매를 보고 있자니 강명훈은 마음이 근질근질해져서 침을 흘렸다. 그는 당장 이윤미에게 달려들고 싶었고 그녀와 몇 번이고 침대에서 구르고 싶었다. 그렇게 되면 이윤미도 그를 사랑하게 될 것이니 말이다.이렇게 생각한 강명훈은 사양하지 않고 손을 뻗어 그녀의 얼굴을 만지려고 했다.이윤미는 그의 건방진 손을 덥석 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강명훈은 똑바로 서지 못하고 앞으로 넘어지려 했지만 내친김에 두 팔을 벌려 그녀를 꼭 껴안으려 했다.그러자 이윤미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치는 것이었다.연약해 보이는 이윤미가 그를 바닥에 내동댕이쳐 버렸다.땅바닥에 심하게 넘어지자 강명훈은 허리가 부러지는 것 같았고 팔이 아픈 데다가 머리도 어지러워서 방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몰랐다.땅에 넘어뜨렸을 뿐만 아니라 이윤미는 발을 들고 그를 걷어차 버렸다. 그녀는 하이힐을 신었기에 뾰족한 굽으로 몸을 걷어차니 그는 아파 죽을 지경이었다.강명훈은 반항하고 싶었지만 아쉽게도 그 기회를 놓쳤고 일어나기도 전에 이윤미에게 심하게 걷어차였던 것이다. 그녀는 계속해서 그를 세게 걷어찼고 강명훈은 아파서 울부짖을 수밖에 없었다.얼굴, 입, 손, 그리고 발까지 이윤미에게 안 맞은 곳이 없었다.그녀는 강명훈의 손등을 짓밟았고 그는 너무 아픈 나머지 비명을 질렀다.“때리지 마요, 때리지 마요... 윤미 씨, 제가 잘못했어요... 그러니까 제발 때리지 마세요...”강명훈은 끊임없이 용서를 빌었다.‘어르신이 나를 속이신 건가? 분명 윤미 씨는 연약하고 만만하다고 하셨는데... 억지로 들이대면 넘어올 거라고, 나랑 잠자리만 가지면 결혼하게 될 거라고 했었는데...’‘이 여자가
앞으로 강명훈은 여기에 한 걸음도 발을 들여놓지 않을 것이었다.비록 이씨 가문의 부귀영화는 매우 매력적이었지만 그는 그것을 누릴 용기가 없었다.‘이씨 가문의 딸들은 역시 다들 무서운 여자들이야...’방윤림은 강명훈이 도망치듯 뛰쳐나오는 것을 보고 안에 무슨 일이 생겼다고 짐작했다. 그는 걱정이 돼서 이윤미에게 전화를 하려 했지만 그녀가 천천히 안에서 걸어 나오는 것을 보게 되었다.방윤림이 이윤미를 데리러 왔기 때문에 이윤미는 운전을 하지 않았다.“이 대표님.”당직인 경비원이 이윤미가 나오는 것을 보고 공손히 인사를 했다.그녀는 갑자기 멈춰 서서 당직을 서고 있는 경비원 몇 명을 오랫동안 쳐다보았다.그러자 그중 한 경비원이 대담하게 물었다.“이 대표님, 저희가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아까 뛰쳐나온 그 남자, 보셨어요?”그들은 서로 마주 보더니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경비원이 다시 입을 열었다.“강명훈 씨는 정군호 어르신께서 데리고 들어오신 분입니다. 어르신께서 친구라고 하시면서 회사 구경을 시켜주신다고 하더라고요.”“다만 어르신은 물건을 사러 가신다며 먼저 회사를 떠나셨고 아직도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그러자 이윤미가 차가운 눈빛으로 엄숙하게 말했다.“앞으로 제 동의 없이 강명훈 씨를 회사에 들여보내지 마세요. 누가 데리고 오든 회사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게 하세요. 또 이런 일이 있으면 제가 어떻게 나올지 저조차도 모르거든요.”‘역시 아빠가 회사에 데려온 거였네. 참 아빠 한 명 잘 뒀어. 친 딸한테도 이렇게 대하다니... 윤정이를 편애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정군호는 친 딸이 아닌 이윤정한테는 고현에게 시집가서 편하게 살라고 하면서 친 딸인 이윤미는 강명훈 같은 놈과 엮어줬던 것이었다.경비원들은 또 몇 번이나 서로 마주 보다가 이윤미의 말이 정군호의 말보다 무게가 있다고 생각해서 얼른 고개를 끄덕여 승낙했다.이윤미는 그제야 회사를 나왔다.“윤미 씨, 무슨 일이야? 방금 그 남자 강명훈인 것 같던데...”정군호가 이윤미
방윤림은 그녀랑 같이 바람을 쐬러 온 것이었는데 이윤미한테 어디로 가고 싶은지 물어보지도 않았다.그저 운전대가 향하는 곳으로 갔다.아이스크림을 다 먹은 후에야 이윤미는 입을 열었다.“우리 아빠가 나한테 변태 놈을 주선해 줬는데 말이야. 오늘 엘리베이터 입구에서 그놈을 만났어. 내가 가려는 길을 막으면서 나에게 손을 대려고 하더라고. 네가 가르쳐준 대로 그놈을 쓰러뜨리고 세게 걷어찼지만 말이야.”“다시 찾아오진 않을 것 같아.”방윤림은 무엇이든 잘하는 사람이었기에 무술 실력도 뛰어났다.이윤미도 싸울 줄은 알았지만 그저 많이 싸워서 알게 된 것이지 실제로 무술을 배운 적은 없었다.그녀에게 잘해주지도 않는 양부모가 돈을 써서 무술을 배우게 했을 리 없었으니 말이다.이윤미 곁으로 온 방윤림이 그녀가 힘이 세다는 것을 발견하고 몇 번 무술을 가르쳐 준 것이었다. 그 덕분에 그녀는 강명훈을 땅에 내동댕이칠 수 있었고 그를 제압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방윤림은 눈빛을 흐리며 차갑게 말했다.“윤미 씨, 진작에 말했어야 했어. 그랬다면 내가 그놈 손을 부러뜨릴 건데...”‘감히 윤미 씨를 갖고 놀다니... 죽고 싶어서 환장했나...’“정군호 어르신도 너무했네...”정군호는 이씨 집안에서 아무런 지위도 없었지만 이윤미의 친아버지라는 건 사실이었다.“윤미 씨, 내가 어르신을 찾아가서 따질까?”방윤림이 지켜야 하는 사람은 이윤미뿐이었고 이은화마저도 그를 좌지우지할 수 없었다.정군호 같은 이씨 집안에서 권세가 없는 사람은 더 말할 것도 없고 말이다.그러자 이윤미가 담담하게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 혼자 처리할 수 있거든... 엄마가 며칠 후에 돌아올 거니까.”“몸매는 화끈하지만 생긴 건 천사처럼 착해 보이는 여자 좀 찾아봐. 유흥업소 같은 곳에 틀어박혀서 사는 사람 말이야. 배경도 좋으면 더 좋고. 아버지한테 큰 선물을 해줄 생각이거든.”‘감히 나를 이렇게 대한다고? 똑같은 방식으로 돌려주고 말겠어...’‘배경이 있는 여자를 찾으면 엄마가 돌
그 말을 들은 방윤림이 웃으면서 말했다.“난 윤미 씨를 위해서 존재하니까.”그는 이윤미의 성격을 매우 좋아했다. 연약해 보이지만 누구보다 독했고 바른 성격을 지녔기 때문이었다.“가주님께서는 관성에서 별로 큰 활약을 펼치지 못했대.”방윤림이 말했다.이윤미가 두어 번 냉소하면서 말했다.“관성은 강성이랑 다르니까. 강성에서도 하고 싶은 대로 할 수 없는데 그 명문 세가들이 있는 관성에서는 더 말할 것도 없지. 강성의 고씨 가문이랑도 비교할 수 없잖아.”지금의 강성은 이은화가 가주 자리에 오를 때의 강성이 아니었다.이씨 가문도 예전의 그 이씨 가문이 아니었고 말이다.이윤미는 이은화가 독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비즈니스 쪽으로는 그렇게 뛰어나지 못했다.이씨 그룹이 내리막길로 가는 게 빤히 보이는데 이은화는 속수무책이었으니 말이다. 사내 관리에서도 미흡했다.나이가 들고 에너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 수도 있었고 오빠들이 회사의 권력을 분열시킨 것 때문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은화는 모자간의 정을 생각해서 아들들을 혼내지 않았다.그녀는 자신의 큰언니한테 손을 댈 수 있었고 동생에게도 똑같이 손을 댈 수 있었지만 자신이 10개월 동안 임신을 해서 낳은 혈육에 대해서는 마음이 약한 것 같았다.“전씨 가문 아가씨께서 임신 중이라던데 내가 직접 가기가 곤란해서 말이야. 선물을 좀 후하게 준비해 줘.”이윤미와 성소현은 동년배였고 하예정은 그녀의 사촌 조카딸이었다. 사촌이라는 단어를 붙이지 않고 외조카라고 하는 게 좀 더 친밀해 보이는 듯하지만 말이다.그래서 하예진이 하루 토스트 가게를 열었을 때도 그녀는 방윤림한테 직접 강성에 가서 축하 선물을 주라고 했었다.이번에는 하예정이 임신했으니 당연히 선물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었다.“알겠어.”이윤미는 차창 밖을 잠시 바라보다가 그들이 이미 번화한 시내 중심을 벗어났다는 것을 알았다.“우리 어디 가?”그러자 방윤림이 대답했다.“나도 어디로 가는지 몰라. 그냥 길이 있는 대로 간 거야. 윤미 씨를 데리고 바
“임신하고 아이를 낳을 수 있어?”이윤미가 재치 있게 말했다.“그... 그건 진짜 못하는데...”그 말을 들은 이윤미가 깔깔 웃었다.방윤림도 웃으면서 귀를 살짝 빨갛게 물들였다.한편 이씨 가문 본가에서.이윤정이 긴장한 표정으로 정군호에게 물었다.“아빠, 그 강명훈이라는 사람 말이에요. 믿을 만한 사람 맞아요?”“이윤미를 상대하기에는 충분한 것 같아. 방윤림도 곁에 없으니까 걱정하지 마.”정군호가 자신만만하게 말했다.“네 어머니가 곧 돌아오실 거야. 강명훈이 성공하게 되면 이윤미의 혼사를 준비할 수 있어. 이윤미가 쓸모없는 남자한테 시집가면 너보다 못 하니까 너도 노력해서 고현을 놓치지 않도록 해.”“아빠, 제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용없어요. 전호영이 있는 한, 저한테 기회는 없어요. 엄마가 신신당부했거든요. 전호영을 건드리지 말라고 말이에요. 우리는 전씨 가문의 미움을 살 수 없거든요.”이윤정이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다른 사람으로 바꿀까요?”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강성에 있는 사람들 중에서 이윤정이 반한 사람은 고현이었으니 말이다. 그녀는 오직 고현만이 자기와 어울린다고 생각했다.정군호는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다.“그건 그렇네. 전호영은 너무 까다로운 데다가 고현도 접근하기 쉽지 않은데... 그럼 새로운 타깃이라도 생긴 거야?”“아직 못 골랐어요. 고현 씨에게 뒤처지지 않는 사람을 고르고 싶어요. 하지만 몇몇 명문 세가만 보면 말이에요. 기혼이거나 너무 어리거나 둘 중 하나더라고요. 그렇다고 능력이 없는 사람은 눈에 안 들어와요.”정군호는 그녀를 위로해 주면서 말했다.“천천히 골라. 언젠가는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겠지. 너 엄마한테 일러바쳤다고 하지 않았어? 뭐라고 하시던?”이 일을 언급하자 이윤정이 불쾌하게 말했다.“아빠, 엄마 말이에요. 겉으로는 나를 예뻐해 주시는 것 같지만 사실은 언니를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제가 친 딸이 아니라는 건 저도 알아요. 친 딸을 편애하시는 것도 정상이고요.”“엄마가 절 싫어한다면
전씨 할머니는 한 손에 꽃다발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갓 구운 생선을 집어 전이혁에게 건넸다.“이런 작은 생선은 막 구웠을 때 먹는 게 맛있어. 식으면 맛이 없으니 따뜻할 때 먹어.”“고마워요, 할머니.”전이혁은 할머니가 건넨 생선을 받아 주저 없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그는 먹던 중에 핸드폰을 꺼내 전우에게 사진을 한 장 찍어 보냈다.전이혁은 전우와 나이도 비슷하고, 어릴 때부턴 전우와 함께 노는 것을 좋아했다. 그리고 지금도 여전히 형제 중에서 전우와 가장 친했다. 그러니 그는 자랑하고 싶을 때는 무조건 전우를 찾았다.전이혁의 사진을 보자마자 전우는 가족 단톡방에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할머니, 낚시 가셨어요? 직접 구워 드시기까지 하네요. 많이 잡으셨어요? 저도 먹을래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이혁은 일부러 약 올리듯 답장했다.“이젠 없어. 할머니께서 나 주려고 특별히 남겨둔 거야. 그러니 네 몫은 없어. 그리고 너 진짜 생선 한 조각 먹으러 올 거야? 손해가 클 텐데?”“돈은 언제든 벌 수 있지만 할머니표 생선구이는 언제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니잖아.”할머니는 워낙 자유로워서 오전엔 리조트에 있다가도 오후에는 어디론가 훌쩍 떠나곤 했었으니, 큰 손자인 전태윤도 못 말릴 정도였다.부모 세대는 더 말할 것도 없었다. 그들은 수십 년간 할머니의 손에서 할머니의 기세에 눌려 살아왔기 때문에 할머니에게 잘 해드리는 것밖에 없을 뿐, 감히 할머니를 간섭할 수 없었다. 그나마 큰 손자인 전태윤이 할머니를 말릴 수 있는 사람인데 그마저도 성공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할머니는 그야말로 나이 든 개구쟁이였다. 할머니는 지금은 리조트에 있지만 다섯째 손자인 전우가 도착할 즈음이면 이미 어디론가 사라졌을지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웃으며 음성 메시지를 보냈다.“오늘은 많이 잡지 못했어. 넷째한테 줄 몇 꼬치만 남겨 놓고, 나머지는 다 먹었어. 먹고 싶으면 설 연휴 때 와서 직접 낚시해서 구워 먹어. 그래야 더 맛있지.”전우는 아쉬움으로
잠시 후, 차 소리가 들려왔다. 여자아이는 고개만 돌려 살짝 보더니 다시 바비큐를 먹기 시작했다.“할머니, 저 왔어요.”멀리서 전이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전이혁은 꽃다발을 안고 차에서 내린 후, 할머니가 있는 곳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가는 길에 풍겨오는 바비큐 냄새는 정말 좋았다.“와, 냄새 진짜 좋네요. 이런 날씨에는 바비큐가 최고죠.”관성의 겨울 날씨는 정말 변덕스러웠다. 어제는 몸이 움츠러들 정도로 추워서 할머니들은 밖에 나갈 생각도 하지 않았었다. 그러나 오늘은 기온이 확 올라와 정오 무렵에는 햇빛까지 쨍쨍하게 비추더니 약간 더운 느낌마저 들었다.관성의 사람들은 겨울에 가끔 이렇게 바비큐를 해 먹긴 하지만 보통은 휴일이 되어야 준비해서 해먹을 여유가 있었다.하지만 할머니는 달랐다. 할머니는 생각만 나면 언제든 자유롭게 바비큐를 즐길 수 있었다.그런 할머니의 모습을 보며 전이혁은 자신이 나중에 결혼하고 아들이 성장하면 당장 사업을 넘겨주고, 자신은 조기 은퇴해 할머니처럼 여유로운 노후를 즐길 계획이었다. 그것은 신선놀음보다 더 행복한 삶이었다.“넷째 도련님.”양씨 아저씨가 미소를 지으며 전이혁에게 안부를 물었다.전씨 할머니와 함께 수다를 떨고 있던 여러 할머니도 전이혁에게 다정하게 인사를 건넸다.그들은 전씨 할머니가 무려 아홉 명의 손자를 두고 있다는 사실을 무척 부러워했다. 아직 사회에 나오지 않은 막내 두 명을 제외한 다른 일곱 명의 손자는 이미 뛰어나고 유능한 인물들로 소문나 있었다. 게다가 막내 두 명은 비록 사회에 나오지 않았지만, 그들은 성적이 우수했고 앞날도 창창했다. 그뿐만 아니라, 할머니에 대한 효심도 지극했었다.전씨 가문은 자손들이 하나같이 훌륭했고 가업도 재산도 어마어마했으니, 그야말로 할머니들의 부러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었다.그들은 가끔 함께 수다를 떨며 힘들었던 시절을 회상하곤 했었다. 하지만 전씨 할머니는 그 시절에도 그들보다 훨씬 잘 살았고, 그때부터 이미 가문에서 주름잡는 존재였다. 결국 훌륭한 어른이
여자아이의 말을 듣고 있던 전씨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그 여자아이를 불렀다.“소령이, 이리 와봐.”여자아이는 깡충깡충 뛰어갔다.“어르신, 닭 다리 다 구워졌어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자신에게 닭 다리를 주려고 부른 줄 알았다.전씨 할머니는 여자아이를 안아 올리며 웃었다.“아직 다 안 구워졌어. 조금만 기다리면 먹을 수 있을 거야.”“그런데 왜 양씨 아저씨의 자리를 잇고 싶다고 했지?”전씨 할머니가 여자아이를 예뻐한다는 건 리조트에 있는 모든 사람이 다 아는 사실이었다. 전씨 가문은 몇 대째 아들만 태어났었다. 그러나 할머니는 딸을 가지길 원했었고, 그것이 안 되자 손녀를 기대해 보았지만, 매번 실망으로 마무리되었다.할머니는 이제 증손녀를 기대해 보기로 생각했다. 하지만 할머니가 증손녀를 안을 수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할머니는 종종 직원들에게 집에 여자아이가 있으면 관성으로 데려와 학교도 보내고 같이 생활하라고 말했었다. 그리고 시간이 되면 리조트에 있는 놀이공원에 놀러 오라고도 했었다. 그것은 할머니가 여자아이들이 리조트에 놀러 오게 되면 손주며느리들이 그 모습을 보고 할머니한테 증손녀를 안겨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양씨 아저씨는 참 멋있는 사람이에요. 많은 사람들을 관리하고 돈도 많이 벌잖아요. 양씨 아저씨가 사는 집도 아주 예뻐요. 저도 양씨 아저씨처럼 되고 싶어요.”그 여자아이는 겨우 세 살밖에 안 됐지만 머리가 총명하고 말도 잘해서 가끔 그 여자아이가 하는 말을 들으면 어른들이 놀랄 정도였다. 게다가 여자아이는 부모도 가르친 적이 없는 말을 스스로 내뱉곤 했었다.우빈이도 가끔 서원 리조트에 올 때마다 리조트에서 내려와 그 여자아이와 함께 신나게 놀곤 했었다. 그렇지 않을 때는 여자아이가 리조트에 올라와 우빈이와 함께 놀기도 했었다.“아까 양씨 아저씨가 한 말 잘 들었지? 네가 컸을 때는 양씨 아저씨는 이미 은퇴하고 다른 사람이 저 자리에 있을 거야. 그 사람이 은퇴한 다음에야 네 차례가 오게 돼. 그보
할머니는 함께 있는 몇몇 친구들에게 말했다.“날씨가 좀 쌀쌀하네. 우리 따뜻하게 몸도 데울 겸 한 잔씩 할까?”“어르신.”전씨 할머니가 술을 마시자고 하자 양씨 아저씨는 바로 할머니를 제지했다.“어르신 술 마시면 안 됩니다. 큰 도련님께서 아시면 또 어르신을 제대로 모시지 못한다며 저를 혼내실 거예요.”“양 집사가 말하지 않으면 누가 알겠어?”“태윤이는 점점 자기 할아버지를 닮아가는 것 같아. 온갖 걸 다 간섭하려 들어.”할머니는 손자인 전태윤이 자신을 간섭하려 든다며 투덜거렸다.그러자 함께 있는 몇몇 할머니들이 웃기 시작했다.“큰 도련님께서 어르신 건강이 걱정돼서 그러는 거죠. 저희 나이에는 술도 적게 마시는 게 좋잖아요.”“과일주는 괜찮아. 양 집사, 가서 과일주 두 병 가져와. 바비큐에는 술이 있어야 제맛이지.”양씨 아저씨는 더 이상 아무 반박도 하지 못하고 리조트에 전화해서 과일주 몇 병을 가져오도록 했다.그들이 직접 잡은 생선 외에도 양씨 아저씨는 몇몇 어르신들이 충분히 즐길 수 있도록 바비큐용 식재료를 다양하게 준비했다. 어르신들 옆에는 아직 유치원에 들어가지 않은 어린아이들도 있었고, 양씨 아저씨는 그들을 위해 과일 주스를 준비해 두었다. 덕분에 그들은 기분 좋은 만찬을 즐기고 있었다.전씨 할머니는 이렇게 노인과 아이들이 함께 있는 따뜻한 분위기의 생활을 참 좋아했다. 게다가 내년엔 첫 증손주가 태어나니 할머니는 생각만 해도 마음이 따뜻해졌다.할머니는 자신이 구운 소시지 한 꼬치를 여자아이에게 건네주고 그 아이의 높게 올려 묶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우리 소령이 갈수록 예뻐지네. 반짝이는 눈 좀 봐. 네 엄마가 너를 ‘소령이’라고 부르는 게 딱 맞아.”그 여자아이는 소시지를 건네받으며 귀엽게 인사했다.“감사합니다, 어르신.”전씨 할머니는 인자한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또 뭐 먹고 싶어? 할머니가 구워줄게.”“닭 다리요.”여자아이는 전씨 할머니가 익숙한 듯 조금도 망설이지 않고 전씨 할머니에게 닭 다리를 구워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