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가고 있었다.어두움은 사람들 몰래 하늘을 덮어버렸다.아침 해가 동쪽에서 떠오르고 또 새로운 날이 다가왔다.관성, 서원 리조트.하예정이 위층에서 내려왔다.“언니.”언니가 왔다는 말에 하예정은 서둘러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장소민은 하예진과 함께 수다를 떨고 있었다.하예정의 목소리에 두 사람은 걸어 내려오고 있는 하예정을 바라보았다.하예정이 다가가더니 장소민에게 인사하고는 하예진의 곁에 앉았다.“언니, 어떻게 왔어? 오늘 쉬는 날이야?”하예진은 손가락으로 하예정의 이마를 콕 찔렀다.“내가 널 보러 왔는데, 왜? 싫어?”하예정은 바로 하예진의 한쪽 팔을 껴안고 웃으며 대답했다.“좋아. 너무 좋아. 언니가 최근에 너무 바빠서 날 보러 올 시간이 없었잖아. 내가 언니 레스토랑으로 찾아가고 싶다고 하는 데도 언니는 늘 가게에 손님이 너무 많아서 누가 실수로 나를 다치게 할까 봐 오래 머물지 못하게 하잖아.”“네가 걱정돼서 그러는 거야.”“언니, 우빈이는? 데리고 오지 않았어?”어제 오후에 하예정은 전태윤과 함께 우빈을 유치원에서 데려와 주형인의 집으로 데려갔다. 그러나 주형인은 우빈이를 기어코 주씨 집안에 남아 밥을 먹으라고 고집하는 바람에 우빈은 결국 주씨 집안에서 밥을 먹게 되었다.주형인은 하예정 부부에게 우빈에게 밥을 먹이고 직접 하예진한테 데려다주겠다고 말했다.“돌아왔어. 어젯밤 늦게 형인 씨가 우리 레스토랑으로 우빈을 데려다줬거든. 가게 안으로 들어오지 않고 우빈이를 가게 문 앞까지 데려다주고 갔어. 우빈이는 지금 밖에서 나가 놀고 있어. 조용할 때가 없다니까.”하예정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어린애들은 다 그렇지 뭐. 난 또 우빈이가 형인 씨 집에서 주말을 보내는 줄 알았어.”“하룻밤 묵으면 묵었지, 우빈이는 그 집에서 절대로 이틀을 묵으려 하지 않을 거야.”우빈은 태어날 때부터 하예정과 하예진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기에 주씨 집안의 식구들에 대한 애정이 깊지 않았다.장소민은 자리를 떠나 간식 몇 가지를 가져오며
다이어트에 성공하고 자신의 사업을 차리게 된 하예진은 자신감도 되찾게 되었다.하예진은 예전처럼 많이 먹고 뚱뚱해지기 싫었다.잃는 것이 너무 많았기 때문이다.“언니는 이제 살이 좀 빠져서 고기를 좀 먹어야 해.”하예진이 웃으며 말했다.“난 살이 하나도 안 빠졌어. 예정아, 나 너한테 할 말이 있어.”“응. 뭔데?”“나 오늘 오후 3시 비행기로 강성에 갈 거야.”하예정은 어리둥절해 하며 다시 물었다.“그렇게 급한 일이야?”하예정은 하예진이 최근에 강성에 갈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급하게 갈 줄은 몰랐다.“이씨 가문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이씨 가문이 어떻든 간에 난 자주 강성을 다녀와야 해. 윤미 씨와 가주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것을 막론하고 우리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의 죽음에 대해서 후손인 우리가 반드시 진실을 밝혀야 한다고 생각해. 이대로 억울하게 돌아가시게 해서는 안 돼.”하예정은 고개를 끄덕였다.“이모 생각이야? 아니면 언니 생각이야?”“내가 결정한 거야. 이씨 가문이 요즘 난리가 났다고 하더라고. 내가 가서 좀 살펴보려고. 그리고 그쪽 업계에 가서 우리 사업을 발전시키는 것도 좀 조사해 볼 겸, 겸사겸사 가보는 거야. 그러면 강성에 오래 있다고 해도 내가 돈을 버는 데 영향도 주지도 않을 거야. 이모가 이미 이씨 가문의 관련 업종을 리스트로 나한테 작성해 주셨어. 난 먼저 그들의 사업에 손을 댈 거야.”하예정은 마음이 근질근질하여 하예진과 함께 가고 싶었다. 하지만 가족들은 모두 동의하지 않을 것이다.하예정의 뱃속에는 작은 전태윤이 들어있기 때문이다.“우빈이는? 알아? 왜 월요일에 가지 않고 벌써 가? 월요일에 가면 언니가 멀리 가는 것을 모르고 울고불고하지 않을 텐데...”하예진이 말을 이었다.“우빈한테도 다 말했어. 우빈이를 너한테 맡기겠다고 말이야. 나보고 빨리 오래. 내가 몰래 강성으로 가면 우빈이가 우울해할걸.”우빈은 비록 세 살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 지날수록 장난이 심해지는 어린이지만
“가끔은 꼭 어린애 같다니깐.”하예진이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교통사고로 인한 불구는 노동명에게 큰 타격을 주었다.그가 하예진을 깊이 사랑하지 않았다면 정말로 자포자기한 상태에 처하여 다시는 일어서기 어려웠을 것이었다.“언니, 이따가 태윤 씨한테 동명 오빠 보러 가자고 할게.”“갈 때 우빈이를 데리고 갈 거야. 동명 오빠는 우빈이를 제일 이뻐하니 우빈이를 보면 언니가 동명 오빠를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될 거야.”“동명 씨도 내가 원망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고 있어. 단지 오랫동안 재활을 해왔는데도 정상인처럼 걸어 다닐 수 없으니 자신이 무능하다고 자책할 뿐이야. 때로는 손으로 다리를 마구 두드리기도 해.”“사실 동명 씨의 다리 재활 효과는 아주 뚜렷해. 일부 사람들은 그와 같은 상태에서 반년은 퍽 넘어야 일어설 수 있었지만, 동명 씨는 진작 일어설 수 있었어. 지금은 몇 발자국씩 걷기도 해.”노동명은 당초에 다리를 심하게 다쳤다. 비록 재활을 꾸준히 견지해왔지만 금방 나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의사 선생님은 그가 재활에 대한 의지만 확고하다면 정상인처럼 걸을 기회가 있다고 말했다.“언니, 걱정하지 마. 우리가 동명 오빠를 많이 위로해 줄게. 언니는 강성에 가서 다른 건 몰라도 안전만은 특별히 주의해야 해. 정현숙은 마음이 모질 뿐만 아니라 수단도 악랄해. 언니에게 공개적으로는 어쩌지는 못해도 암암리에서는 뭔들 못 해내겠어?”그녀는 핸드폰을 꺼내어 전호영과 고현의 연락처를 문자로 하예진에게 보내주면서 말했다.“언니, 방금 호영 도련님과 고현 씨의 연락처를 보냈으니 잘 저장해둬. 무슨 일이 있으면 바로 이 두 사람한테 연락해서 도와달라고 하면 돼.”“고현 씨는 강성 본토 출신이고 또한 고씨 가문은 강성에서 손꼽히는 명문이니 언니한테 큰 도움이 될 거야.”“내가 임신만 하지 않았어도 언니와 함께 다녀올 텐데.”하예진은 전호영과 고현의 연락처를 핸드폰에 저장하면서 말했다.“걱정하지 마. 난 아무 일도 없을 거야. 난 단지 그쪽에 가
“언니, 알았어. 알았다니깐. 내가 언니의 제부를 잘 아낄 테니 근심 붙들어 매고 언니의 큰일이나 잘 처리하고 돌아와.”언니가 길 떠나기 전에 계속 잔소리하는 것이 두려운 하예정은 얼른 두 손을 들고 항복하면서 화제를 돌렸다.“언니, 언제 돌아올 예정인데?”“가끔 우빈이와 나보러 돌아와. 보고 싶을 거란 말이야.” “글쎄, 지금은 딱히 뭐라고 얘기 못 해주겠어. 시간이 되면 자연적으로 돌아오겠지. 내 집이 관성에 있고 친척과 친구들이 다 관성에 있는데 설마 내가 강성에 갔다가 안 돌아올까 봐 걱정이니?”하예진은 우습다는 듯이 식지로 동생의 앞이마를 살며시 밀었다.“그만 안아. 다 큰 어른이 아직도 응석을 부리다니. 우빈이가 보면 널 놀리겠어.”“내가 백 살이 된다 해도 언니 앞에서는 여전히 동생이야.”이쪽에서는 하예진이 동생에게 이런저런 당부를 하고 있는데 노씨 저택이 있는 노동명은 온종일 자기를 방안에 가둔 채 나오지 않았다.방문까지 안에서 잠그고 윤미라를 비롯한 사람들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어주지 않았다.노동명은 이경혜가 강성 이씨 그룹의 전임 가주의 친딸인 사실을 알게 된 후, 이경혜가 반드시 당초에 발생한 사건의 진상을 밝혀낼 것이며 설사 밝혀내지 못할지라도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다시 빼앗아 올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하지만 이경혜의 딸은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를 감당하지 못할 수도 있었다.하예정이 그 자리에 오를 가능성은 더더욱 없었다. 그녀는 전씨 가문의 사모님일 뿐만 아니라 지금은 임신까지 한 상태였다. 앞으로 전씨 가문의 집일도 처리해야 할 뿐만 아니라 자기 회사까지 경영해야 하니 눈코 뜰 새 없을 것이었다.그들에 비해 하예진이 그나마 제일 합당했다. 그녀는 비록 두 음식점을 경영하고 있었지만, 상대적으로 제일 홀가분했다. 그리고 사촌 자매 셋 중에서 하예진이 또한 제일 컸다. 만일 이씨 가문의 가주 자리가 다시 전임 가주의 후대의 손으로 넘어온다고 하면 하예진이 제일 적합한 후임자일 것이었다.하지만 노동명은 이날
밖에서 들려오는 노크 소리는 멈췄다가 다시 울렸으며 잠시 후에 또 멈췄다.노동명은 안에서 줄곧 아무런 응답도 주지 않았다. 문은 더더욱 열어주지 않았다.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는 모르겠지만 또다시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그와 동시에 우빈이의 애티 나는 목소리가 함께 들려왔다.“아저씨, 안에 있어요? 아저씨는 지금 자는 거예요? 아니면 일어난 거예요? 저한테 문 좀 열어줄래요? 우빈이는 쟁반이 너무 무거워서 팔이 다 시큰해요. 아저씨가 나와서 좀 도와주세요.”“아저씨, 엄마가 출장 갔는데 절 안 데리고 갔어요. 저더러 이모와 이모부랑 같이 집에 있으라고 했어요. 엄마가 절 데려가 주지 않아서 속상해서 울고 싶어요. 아저씨가 우빈이를 좀 안아주면 안 돼요? 아저씨 다리 위에 앉아서 울고 싶어요.”말을 마친 우빈이는 진짜로 큰 소리로 엉엉 울었다.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하예정은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이 녀석이 언제 연기를 배웠대? 정말 연기를 신통하게 잘하네.’노동명은 우빈이가 밖에서 부르는 소리를 들었다. 2분도 채 안 지나서 또 우빈이의 통곡 소리까지 들려왔다. 그는 우빈이가 진짜 우는 거로 여기고 얼른 움직이기 시작했다.침대 위에 누워있던 노동명은 일어나서 휠체어를 타려고 했지만 지금 휠체어는 침실 밖에 넘어져 있었다.아까 외곬으로 생각하다가 욱하고 치미는 홧김에 휠체어를 밀어서 뒤집어 버리고 말았다.침대에서 휠체어까지의 거리는 불과 4m밖에 되지 않았다.이만큼한 거리는 정상인에 대해 말하면 몇 발자국 내지 열 몇 발자국 밖에 되지 않지만, 노동명에 대해 말하면 그렇지 않았다. 그는 몇 발자국 걷고는 멈춰서 휴식하다가 또 몇 발자국을 걷다가 또 다시 멈추고 휴식해야만 했다.이러다 나니 걸린 시간이 좀 길어졌다.그는 우빈이를 무척 아꼈다. 우빈이가 우는 것이 너무 안타까왔다.더욱이나 우빈이가 큰 소리로 통곡을 하니 시간이 길어지면 우빈이의 목이 쉬게 될 까봐 걱정 되었다.그는 현재 상태로는 하예진과 함께 강성에 가서 그녀를 도와
그와 동시에 하예정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동명 오빠.”하예정이 노동명을 보면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인사했다.이어서 그녀의 곁에 서 있던 전태윤은 노동명의 손에서 쟁반을 받아 들고 방으로 들어가면서 친구를 핀잔했다.“마흔 살이 다 돼가는 사람이 어쩜 아직도 어린애 같아? 게다가 어린애의 지원까지 받아가면서 널 달래야 해. 동명아, 넌 창피하지도 않아? 너 대신 내가 다 창피해.”노동명이 시무룩해서 대꾸했다.“내가 창피하다고 생각하면 오지나 말 거지. 내가 와달라고 빌었어?”전태윤은 고개를 돌려 노동명을 째려보면서 말했다.“잔소리는 듣기 싫은가 보네. 나는 그래도 네가 내 친구고 또 앞으로 내 동서가 될 사람이니깐 신경을 쓰는 거야. 그렇지 않으면 내가 괜히 밥 먹고 할 짓 없어서 이러고 있겠어?”그는 쟁반을 식탁 위에 내려놓고 노동명을 보면서 말했다.“안 오고 뭐 해? 어서 와서 밥이나 먹어.”하지만 노동명은 시쁘둥해서 침묵만 지키고 있었다.그러자 노동명의 다리 위에 앉아 있던 우빈이가 애티 나는 얼굴을 위로 쳐들고 머루알 같은 까만 눈동자로 그를 쳐다보면서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말했다.“아저씨, 제가 할머니와 약속했어요. 제가 꼭 아저씨를 밥을 먹게 할 수 있다고 말했거든요. 아저씨가 밥을 먹지 않으면 할머니는 저를 허풍을 떠는 나쁜 애로 생각할 거예요.”노동명은 머리를 숙여 이마를 우빈이의 이마에 맞대고 힘을 주어 우빈이를 껴안았다.“아저씨가 우리 우빈이 말을 듣고 우빈이를 허풍쟁이로 만들지 않을 거야. 우리 우빈이는 참으로 기특한 애야. 착하고 똑똑하며 철까지 들었어. 아저씨는 우리 우빈이가 제일 좋아.”우빈이의 잘생긴 얼굴에는 즐거워하는 표정이 어려 있었다.어린애니 역시 칭찬하는 말을 듣기 좋아했다.우빈이는 노동명의 다리에서 미끄러져 내려와 등 뒤에 서서 말했다.“아저씨, 제가 아저씨를 밀어줄게요.”“아저씨 혼자로도 할 수 있어.” “엄마가 집을 떠나기 전에 나, 이모, 이모부에게 신신당부했어요. 아저씨를 꼭 잘 보살펴
우빈이는 노동명을 부축해주고 싶었지만, 힘이 약한 어린애로서 휠체어는 그나마 밀어줄 수 있어도 노동명을 부축해서 걷는다는 것은 어림도 없었다.이모와 이모부가 옆에서 손 놓고 보기만 하는 것을 본 우빈이는 노동명이 소파에 앉자마자 박수를 보내면서 칭찬을 해줬다.“아저씨, 짱 멋있어요. 아저씨도 이제는 혼자서 걸을 수 있어요. 아저씨 정말 최고예요!”유치원 선생님이 잘한 사람은 칭찬해줘야 하고 잘못한 사람은 비평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아저씨가 잘했으니 당연히 칭찬해줘야 한다고 생각했다.세 어른은 우빈이의 느닷없는 거동에 웃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동명아, 식기 전에 얼른 밥부터 먹고 얘기 좀 해.”전태윤이 말했다.“맞아요, 아저씨. 밥부터 먹어야 해요. 제가 할머니와 약속했어요. 아저씨를 잘 달래서 문도 열고 밥도 먹게 하겠다고요. 아저씨가 밥을 먹지 않으면 제가 약속을 어기는 것으로 될 거잖아요.”우빈이는 소파에 앉아 있는 노동명의 곁에 다가와서 나란히 앉았다.노동명의 울적한 마음은 삽시에 훈훈해졌다. 그는 우빈이의 작은 몸체를 덥석 껴안고 양쪽 볼에 쪽 하고 뽀뽀를 하고 나서 말했다.“아저씨가 널 이뻐한 보람이 있구나.”“아저씨, 먹어요, 어서요.”노동명이 온종일 방에 갇혀서 문도 안 열고 밥도 안 먹고 물도 한 모금 안 마셨기에 그를 관심하는 사람들을 걱정케 했다.노동명은 밥그릇을 들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동시에 우빈이 보고 먹겠냐고 물었더니 꼬맹이는 배를 만지면서 말했다.“아저씨, 우빈이 배 좀 보세요. 제가 이모네 집에서 너무 배불리 먹어서 배 뚱뚱이가 되었어요. 진짜 배불러서 못 먹겠으니 아저씨 혼자 먹어요.”노동명이 꼬맹이의 배를 보니 확실히 볼록하게 나와 있었다.하여 웃으면서 말했다.“그래, 알았어. 더 먹으면 배 터질라.”“알아요, 전 배 터지게 안 먹어요. 이모부가 나와 이모가 지나치게 배불리 못 먹게 단속해요. 한꺼번에 너무 많이 먹으면 탈 난다고요. 이모는 이모부가 있는 자리에서는 마음껏 못 먹으니 이모부가
“그냥 해본 말이라고? 내가 너와 하루 이틀 알고 지낸 사이고 아니고. 언제든 과식하면 안 돼. 예전에는 우리가 부부 아니어서 내가 상관하지 못했지만 지금 넌 내 아내야. 나랑 백발이 되어서까지 살아야 한단 말이야. 이제 네가 건강하게 지내도록 내가 최선을 다해야겠어.”전태윤이 하예정의 건강을 관리해 준다고 해도 병들지 않고 오래 살 수 있는 것도 아닌데도 전태윤은 그녀를 위해 노력하려고 했다.건강을 잘 관리하지 않으면 병이 들기 쉬웠다.역시나 건강 관리가 가장 중요하다.하예정은 아무 소리 없이 전태윤의 잔소리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노동명은 식사를 다 한 뒤로 밥그릇과 젓가락을 내려놓았다.우빈은 노동명에게 자상하게 휴지를 건네주었다.노동명은 우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는 우빈이 녀석을 진심으로 좋아하고 사랑했다.“우빈아, 네 엄마... 출장 가기 전에 내 얘기 한 적 있어?”우빈은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엄마는 저랑 이모부에게 아저씨를 잘 지켜보라고 부탁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가 길을 못 걷는 것을 싫어한 적이 없고 아저씨가 우리 엄마를 힘들게 한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고 말씀하셨어요.”하예진의 이 말은 전태윤 부부에게 한 말인데 우빈이가 곁에서 듣고 있었다 하여 녀석은 지금 노동명에게 한 글자도 틀림없이 그대로 노동명에게 읊어주었다.“넌 네 엄마를 공항까지 바래다주었어?”그러자 우빈은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우리 엄마와 이모는 저를 공항까지 가지 못하게 하셨어요. 우리 엄마는 아저씨들이랑 같이 차 타고 가셨거든요.”우빈은 늘 하예정을 따라다녔다. 하예진이 먼 길을 떠날 때마다 우빈을 데려가지 않는 일에 대해 우빈은 늘 섭섭했다.하예진은 중요한 일 보러 가야 했기에 우빈이를 데리고 가기가 불편하여 녀석을 하예정에게 맡겼다.하예정은 우빈과 겨울방학이 되면 우빈을 데리고 눈 구경을 하고 눈싸움도 하며 눈사람을 만들겠다고 약속까지 했다.가장 중요한 것은 모연정 집으로 놀러 가 용정과 놀게 하겠다고 약속도 했다.하예진의 노력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