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젯밤, 예정은 태윤이 밤늦게 집에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토요일 아침에 함께 시장에 가서 장을 보기로 약속했다,.그리고 할머니와 통화를 하였는데, 오늘 올 시댁 식구들이 아마 두세 테이블 정도는 될거라고 했다. 태윤의 그 많은 남동생들도 모두 오니....할머니는 그녀와 태윤이 이미 혼인 신고를 하였으니 이제는 그들 전씨 가문의 며느리로서 전씨 가문의 어른을 만나는 것 외에, 남편 밑에 있는 동생들도 그녀라는 큰형수와 만나도록 하는 것이 좋을 것이라고 한다.오늘 사야 할 식재료가 많아, 그녀 혼자 가면, 아마 들고 오기 힘들 것 같아 태윤을 불러 차를 몰고 가기로 했다.그날처럼 태윤은 새벽 6시에 예정의 음성 전화에 잠을 깼다.잠에서 깬 태윤은 치밀어 오르는 짜증을 참고 또 참아 가까스로 자기 아내에게 화를 내지 않았다."태윤씨."예정의 맑고 깨끗한 소리가 듣기 좋게 들려왔다."10분 뒤에 나갈게.""좋아요, 제가 제육볶음을 하였으니 이따가 나오면 먹어봐요, 다 먹고 나서 같이 장 보러 가요.""당신…. 몇 시에 일어났어?"이제 새벽 6시에 불과한데 그녀는 이미 아침 식사를 다 차렸다."5시 넘어서 일어났어요."한 사람이 두세 테이블의 식사를 준비하려면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다. 예정는 일찍 일어나야만 했다.태윤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고 묵묵히 통화를 끊는다.그녀가 자기 가족을 중시하고 있는 것이 보인다. 그녀의 이러한 태도에 태윤은 만족을 느낀다.10분 후,태윤은 일상복 차림으로 주방에 모습을 드러냈다.예정은 혼자 아침을 먹고 있다가 그를 향해 웃었다. "내가 볶은 제육볶음 한번 먹어봐요, 언니가 내가 볶은 제육볶음이 가장 맛있데요."태윤은 접시를 한 번 쳐다보았는데, 비주얼도 괜찮았고, 식욕도 좋아 보였다. 그는 한 접시의 제육볶음을 다 먹었는데, 확실히 맛있었다. 그녀의 요리 솜씨는 매우 좋은 것 같다. 그녀가 직접 만든 아침을 먹는 것이 밖에서 사온 아침을 먹는 것보다 훨씬 마음이
그들은 마트에서 두 시간 동안 쇼핑하며 돌아다니다가 집으로 돌아왔다.고급차로 외출하는 것이 습관이 된 태윤은 평소에도 몸을 단련하고 킥복싱도 하는 사람이지만, 예정과 함께 2시간 동안 마트를 돌고 음식도 챙겨 드는데 피곤함을 느낀다.그는 이것이 회사에서 서류 처리하고, 회의를 하는 것보다 더 힘들다고 생각했다.집에 도착하여 차를 세운 뒤, 예정은 차에서 내리기도 전에 전씨 할머니로부터 전화를 받았다."예정아, 집에 있어? 우린 지금 아래층에 왔는데....""할머니, 저희 금방 마트에 갔다 오는 길이에요, 거기서 조금만 기다리시면 금방 갈 거예요.""태윤이랑 마트 갔다 왔니?"할머니는 흐뭇하게 들으셨다. 차갑고 도도한 큰손자가, 뜻밖에도 자기 아내와 함께 마트에 장 보러 가다니....가난한 척 하겠다더니.... 그래 이참에 보통 사람답게 살아보라지 뭐."네, 가서 장 좀 보고 왔어요.""태윤이는 평소에 일이 바빠서, 여태 마트에 가본 적이 없으니 데리고 가 구경하는 것도 좋지. 예정아, 힘이 센 태윤에게 물건을 들어 달라 해, 너 자신을 힘들게 하지 말고, 알았지?"’할머니, 대체 누가 친손자예요?’차에서 내린 예정은 한 손에 휴대폰을 들고 전화를 받으며 한 손으론 뒷좌석 문을 열고 안에서 접을 수 있는 카트 한 대를 꺼냈다."할머니, 걱정 마세요”카트 사이즈가 작아 그녀가 산 야채와 과일을 모두 놓을 수 없었다. 남은 것은 태윤이 모두 들었는데....그녀는 처음부터 끝까지 조금도 피곤함을 느끼지 않았다."할머니, 지금 바로 갈게요.”"그래, 이따 봐."예정은 통화가 끊기자 휴대폰을 바지 주머니에 넣고 카트를 끌고 양손에 바구니를 들어 손이 자유롭지 못한 태윤에게 말했다. "태윤씨, 어서 가요. 할머니께서 벌써 아래층에 도착하셔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신대요."곧 그들은 젊은 부부가 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예정은 카트를 밀고 있었는데, 그 카트 안에는 그녀가 산 야채, 음료수, 과일 등이 가득
"예정은 아직 모르고 있으니 다들 명심하고 정체를 드러내면 안 되는 거야, 알았지? 첫째 너희 부부는 퇴직금이 없어서 집에서 채소나 좀 심고 꽃 좀 기르고 하며 겨우 생활비 좀 벌 수 있다고 하는거 잊지 말고."“올 때 약속했던 것을 모두 잊지 마, 들통났다 태윤이한테 야단맞으면 나도 어쩌는 수가 없다.”할머니는 지금 큰손자가 돈 많이 못 버는 아주 평범한 남편으로 가장하고 있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하여, 큰손자를 극구 도울 생각이었다.비록 할머니는 예정이가 절대 돈을 탐내지 않는 좋은 여자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지만 말이다. "알았어요!!!"모두가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그들은 하예정이 낯설지 않았다, 할머니를 구해준 사람이고, 또 처음에 그녀에게 감사를 표한 사람은 할머니의 아들들과 며느리들이었다.태윤의 엄마는 큰아들이 예정을 아내로 맞아들인 것에 대하여 별로 찬성하지는 않았지만, 시어머니가 이미 그녀의 그 도도한 큰아들을 설득하여 결혼하게 하였으니, 그녀도 달리 막을 방법이 없었다. 예정이가 할머니를 구해준 것은 사실이고, 태윤 엄마도 그녀에게 감사할 따름이었다. 그들 가족도 이미 예정에게 고맙다고 인사를 했고, 그녀에게 보답하겠다고 말했었다. 예정은 그들의 보답을 완곡히 거절하였는데, 이는 뜻밖에도 할머니의 마음을 사게 하였다. 할머니는 그녀가 매우 훌륭한 인품을 가진 소녀라고 생각했다.그리고 힘껏 태윤과 예정의 관계를 맺으려고 노력했는데, 이제 소원 성취하신 것이다.다행히도 태윤과 예정은 조용히 혼인 신고만 했다. 태윤은 한동안 지켜보면서 그녀가 정말 할머니의 말처럼 좋은 사람이라 확신되야만 결혼식을 치르겠다고 했다.태윤 엄마는 마지막에 큰아들과 예정이가 조용히 헤어지길 원한다. 두 사람은 모든 면에서 정말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물론 할머니를 생각해서라도 예정에게 아무 짓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냥 내버려 둘 생각이었다.”할머니.”젊은 부부가 다가왔다.예정은 미소를 지으면서 할머니와 인사를
사교성이 좋은 지율은 가장 빨리 예정과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전혁은 큰형수가 형님을 짐꾼으로 만든 모습을 목격한 후, 큰형수를 자기의 든든한 지원자로 보았다.예진은 남편과 아들 우빈을 데리고 전씨 가족들보다 조금 늦게 도착했다.아내가 다른 사람의 고급차를 긁어 적지 않은 수리비를 보상하여야 하였는데, 태윤이 차주와 아는 사이여서 비로소 2백만 원만 배상하게 되었다. 주형인은 아직 만난 적이 없는 태윤을 정중히 보게 됐다.원래 오늘 두 집 식구의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형인은 마음가짐이 바뀌게 되었는데, 직접 태윤을 만난 후, 그의 카리스마에 또 한 번 놀라게 되었다. 큰 그룹 회장 같은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안녕하세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예정의 형부입니다. "형인은 웃음이 가득한 표정으로 태윤을 향해 오른손을 내밀었다.태윤은 형인과 악수하며 담담하게 형님이라고 불렀고 예진한테 처형라고 인사를 했다.예진은 제부의 잘 생긴 얼굴을 보면서 사진에서 본 것보다 더 엄숙하고, 차갑고, 말이 없는 사람으로 보이지만 그래도 여전히 만족했다."우빈아, 이모부께 인사드려."우빈은 씩씩한 생김새에, 눈은 엄마 예진을 닮아 맑고 새까만 눈망울을 가지고 있었다. 눈에 항상 정기가 돌고 있는 것 같아 보는 사람의 귀여움을 자아냈다.태윤은 저도 모르게 귀여운 우빈에게 시선이 끌렸다. "처형, 우빈이 안아봐도 돼요?"”그럼요"예진은 동생에게 아들을 건네주었고 예정은 조카를 받아 안아 다시 태윤에게 건네주었다.예진의 이 동작은 태윤을 하여금 처형은 세심한 사람이란걸 느끼도록 했다. 그가 직접 아이를 받아 안으면 두 사람이 부딪칠까 봐 아이를 먼저 동생에게 넘긴것이다. 그와 예정은 부부이기에 이 정도의 스킨십은 괜찮은 것이다.우빈이는 태윤의 품에 안겨 계단을 올라갔다. 우빈은 아직 말을 잘 못하지만, 사람을 부를 줄은 안다. 보통 아이들은 태윤처럼 차가운 사람을 두려워 하기 마련이다. 전씨 가문의
태윤은 형님과 교류하고 싶지 않았다. 형인은 그가 가장 싫어하는 부류일 뿐만 아니라 또한 예진에 대한 형인의 태도 때문이다.우빈이가 목이 말라 물을 찾고 있을 때, 물이 들어있는 젖병이 자기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놓여있었는데도 불구하고, 형인은 굳이 예진을 불러 아들에게 물을 가져다주라고 하는 것이다.비록 오늘 처음 만났지만, 태윤의 예리한 느낌으로 봤을 때, 형인은 집에서 살림만 하는 아내를 안중에 두지도 않고, 아내가 집에서 아이를 데리고 있는 것이 매우 홀가분한 일이라고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전씨 가문의 가풍과 가훈을 지키며 자라온 태윤은 아내를 존중하지 않는 그런 남자를 싫어했다. 그는 하예정과 초고속 결혼을 하였고, 둘 사이에 아무런 감정도 없었지만, 여전히 예정에게 아내로서 마땅히 받아야 할 존중을 해줬다.예정은 태윤이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웃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그만두세요.""말을 잘하는 셋째가 형님과 얘기하면 형님이 심심함을 느끼진 않을 거야."전씨 집 셋째는 늘 웃는 얼굴로 누구와도 대화가 잘 통하고, 웃으면서 놀리기도 곧잘 한다."그럼 당신은 나 좀 도와줘요."태윤이가 주방에 들어온 것은 예정을 도와주기 위해서였다.젊은 부부가 주방에서 바쁘게 돌자 양가 가장들은 모두 흡족해했다.예진은 제부가 여동생을 배려할 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어느덧 요리가 끝나고 점심때가 되었다.점심 식사 때 예정의 요리 솜씨를 맛본 양가 가족은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특히 전씨 가족들은 평소 산해진미에 익숙해져서 그런지 예정이 만든 집밥을 먹어보니 너무 맛있었다. 하루 종일 떠들썩하게 놀다가 저녁 식사까지 마치고 나서야 양가 가족 모두 잇따라 떠나기 시작했다. 그제야 집은 안정을 되찾았다.인사를 끝낸 예정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소파에 몸을 던지며 뒤에서 따라 들어오는 남편을 향해 말한다."허리가 끊어질 지경이예요."태윤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예정도 그냥 그렇게 말을 던졌을 뿐, 그가
“태윤씨, 내가 할게요.”예정은 말하면서 싱크대에 다가왔다. 태윤은 자리를 내주며 예정에게 다정스럽게 앞치마를 매주었다.”음.... 다음에는 그냥 밖에서 먹어.”"그렇게 해요."예정도 그렇게 생각했다.오늘은 양가가 만나는 날이고 상견례 의미로 뭘 좀 잘해보고 싶어서 집에서 요리하게 된것이었다. 예정은 좋은 인상을 남겨주고 싶었을 뿐이다."아까 할머니가 뭐라고 하셨어?"태윤이 갑자기 묻는다.예정은 손을 멈추고 태윤을 바라봤다. 태윤도 예정을 쳐다보고 있었는데, 둘의 눈이 마주치자 예정은 장난기가 어린 말투로 말했다. “우리가 방 나눠서 자냐고 물어보셨어요. 우리는 이미 혼인신고도 한 사이니, 나보고 더 대담하게 행동하라고 하셨어요. 태윤씨 옷 벗겨서 함께 자라고 하시던데요?""…."역시 할머니께서 하실 말씀이었다.“그리고 할머니께서 내년에 증손녀를 꼭 안아보고 싶다고 하시며 우리가 혹시 딸을 못 낳으면 딸을 낳을 때까지 노력하라 하셨어요. 그리고 만약에 딸을 낳으면 평생 모은 재산까지 모두 저한테 주시겠다고 하시더라고요.”"…."할머니가 평생 저축한 돈이 수천억이나 되는데…. 할머니는 정말로 장손 며느리를 중시하고 계시는구나!"할아버지 세대에 여자애 없었나요?""증조할아버지 세대에 여자애 하나 있었어, 바로 증조할아버지의 여동생이었는데 어렸을 때 다섯 살도 안 돼 일찍 돌아가셨어.... 그 후론 계속 여자애가 태어나지 않았단 말이야, 이상하게도...."태윤은 남자 형제만 아홉이었다."어쩐지 할머니께서 평생 모은 돈을 다 주신다고 하시더라구요, 딸을 낳는 게 하늘의 별 따는 듯 어려운 일이었네요."예정의 말에서 태윤은 뭔가 그녀가 여우 꼬리를 드러내기라도 한 듯, 혹시 할머니의 재산을 탐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하며 꼭 그녀의 목적을 찾아내겠다고 생각했다.’어쩐지 할머니에게 잘 대해준다고 했어, 그래서 할머니는 내 생각도 무시한 채 이 결혼시켰고....’남편이 답이 없자 예정은 고개를 돌려
예정은 속으로 미안하지만 아직 서로 달래고 그럴 관계까지 되지 않았다고 생각했다. 어찌 되었든 둘은 앞으로 같이 살아가야 하고 태윤이가 어떻게 화를 내든 간에 자기를 쫓아내지 않는 한 다 상관없다고 생각했다.예정은 설거지를 마치고 다시 주방을 깨끗이 치운 뒤 방도 한 번 쭉 닦았다. 그리고서 베란다에 있는 그네 의자에 가서 앉았다. 밤바람이 서서히 불어오며 그네 의자를 흔들어주자 그처럼 한가하고 기분 좋은 일이 없었다.지금의 베란다는 마치 작은 정원처럼 식물로 가득 차 있다. 피어나는 꽃들을 바라보며 예정은 자기도 모르게 다시 한번 태윤의 효율적인 행동에 감탄했다.차분한 발걸음 소리가 들려오더니 차차 베란다를 향해 다가왔다. 곧 베란다에 나타난 태윤은 예정이 그네 의자에 앉아 편안하게 보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얼굴이 더욱 굳어졌다.태윤은 종이 두 장을 예정에게 건네준다."뭐에요?"태윤은 아무 답도 하지 않았다. 마치, 보면 알게 될 텐데 굳이 물어볼 필요가 없다고 하는 것 같았다. 예정이 종이를 건네받고 내용을 읽어보니 합의서였다. 태윤이 협의서를 두 장 인쇄한 것도 의미가 분명했다. 한 사람당 하나씩 가지고 있자는 뜻이었다. 심지어 태윤은 이미 서명도 했고 개인 도장까지 찍었다.'어머, 엄청 진지하네....'예정은 발끝으로 땅을 디디며 그네 의자를 밀어 다시 흔들었고, 의자에 기대어 태윤이 써놓은 합의서를 꼼꼼히 읽어보았다. 합의서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었다. 합의서를 읽어보니 중점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아직 감정적 기초가 없는 상황이니 명목상의 부부관계만 유지하면 되는 것이고, 예정은 태윤의 몸에 집착하지 말고 거리를 두자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만약 반년 안에 둘 사이에 여전히 감정이 나타나지 않아 결국 이혼하게 된다면, 태윤은 지금 살고 있는 이 집을 예정에게 양도하고 지금 운전하고 있는 자동차도 함께 예정에게 양도할 것이라는 내용도 적혀있었다. 합의서에 특별히 강조한 것은 예정이가 할머니의 재산에 손을 대면
예정은 펜을 받아 합의서에 이름을 사인했다. 태윤은 인주를 가져와 손가락 지문을 누르게 했다. 사인 된 합의서는 둘이 각각 하나씩 보유하기로 했다.예정은 합의서를 아무렇게나 바지 주머니에 쑤셔 넣었다. 태윤은 예정의 이런 제멋대로인 모습을 보고 갑자기 마음이 좀 불편했지만, 뭐라 말을 하기가 그랬다. 결과적으로 그가 작성한 합의서이고, 합의서의 조건은 대부분 예정을 겨냥하여 짠 내용이었는데 예정은 합의서에 조건을 하나도 추가하지 않았다."오늘도 하루 종일 피곤했으니 일찍 쉬어.""태윤씨도요. 전 여기 잠깐 앉아서 꽃구경 좀 할게요. 작은 정원 같은 큰 베란다를 갖는 게 꿈이었는데 이제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정말 기분이 좋은 일이네요.”그녀는 합의서에 대하여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 '그녀가 자신과 결혼을 한 것은 정말 아무런 의도가 없었던 것인가? 모든 게 다 나의 의심일 뿐이고? 그렇지 않으면 어떻게 이렇게 화를 내지 않고 빙그레 웃을 수 있는 거지?'태윤은 예정을 잠시 바라보다가 돌아섰다. 그러고는 곧 차 키를 들고 집을 나섰다."태윤씨, 어디로 가는 거예요?""음, 그럴 일이 있어. 기다릴 필요 없으니 문만 좀 열어두면 돼.""제가 태윤씨를 왜 기다려요?”태윤은 그 말에 목이 메였다. 예정의 대답은 마치 태윤의 뺨을 때리는 것 같았다.'예정에게 한 방 맞은 것 같아.'태윤은 술을 마시러 이동명을 찾아갔다. 이 합의서는 분명히 예정을 난처하게 할 생각이었는데 예정은 전혀 관심이 없었고 오히려 태윤의 마음만 답답해졌다. 아마 처음으로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런 느낌을 받아서인 것 같다.예정은 태윤의 합의서가 어떻게 쓰였어도 상관이 없는 것으로 보였다. 이 말인즉 자기가 이렇게 잘 생겼어도 그녀는 사랑할 생각을 하지 않았고 몸매도 이렇게 좋은데 그녀는 자려고 생각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아니.... 태윤이 넌 도대체 뭘 불평하고 있는 거야? 예정이 그렇게 눈치를 잘 보니 기뻐해야 할 일이잖아, 적어도 그렇게 뻔뻔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