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윤미가 당시 유언장을 작성할 때 정군호는 확실히 현장에 있었다.그리고 그 당시 그는 어떤 반대 의견도 내놓지 못했다.이은화의 유언장에는 만약 그녀가 정군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날 경우, 그녀의 개인 재산 절반은 이윤미에게 주도록 명시되어 있었다. 이윤미가 그녀의 친딸이고 이후 가족 사업을 물려받아야 하기 때문이었다.나머지 절반은 그들의 세 아들이 균일하게 나누어 가지게 되어 있었다.이윤정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지만 이윤정이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라는 사실을 모르는 동안 받았던 것들은 이윤정이 돌려주지 않아도 되며 계속 사용해도 된다고만 명시되어 있었다.그러나 이은화의 남편이라는 사람은 아무것도 받지 못했다.그리고 유언장에는 정군호의 노후는 세 아들이 책임지며 세 아들이 그에게 용돈을 얼마나 줄지는 아들들 마음에 달렸기에 이은화가 관여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한동안 말이 없던 정군호가 입을 열었다.“네 엄마 유언장대로 나눈다 해도 너도 내 자식인데 윤미 너는 나를 책임질 필요가 없다는 거냐?”“아버지를 모시지 않겠다는 말은 안 했어요. 만약 세 오빠가 정말 아버지를 모실 형편이 안 된다면 제가 매월 생활비를 드릴 거예요. 아버지를 굶겨 죽게 두지는 않을 거예요.”아버지가 죽지 않고 살아남았기에 이윤미는 아버지의 노후 문제를 외면하지는 않았다.하지만 이것은 그녀가 이씨 가문을 맡는 것과는 관련이 없는 일이다.“하지만 이건 제가 이씨 가문을 이을지, 말지 와는 상관없는 일이에요. 이씨 가문을 이어받지 않더라도 저는 아버지의 생활비 정도는 드릴 수 있거든요. 아버지에게는 자식이 넷인데 네 자식이 노인 한 명을 모시지 못할까 봐 걱정하시는 거예요?”정군호는 문득 멍하니 앉아있었다.그리고 곧이어 말을 이었다.“너희들이 한 달에 수십만 원 생활비만 준다고 해서 되는 일이 아니야. 나는 큰 별장에 살고 드나들 때는 고급 차량으로 이동하고 또 몇몇 도우미들이 시중들어줘야 해. 나이 들어서 생활하는 데 불편한 점이 많단 말이다. 만약 나를 돌봐줄 사람이
하예진이 아직 익숙하지 않아 도움이 필요하다면 이윤미는 보조를 해주는 것도 마다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하예진이 가주 자리에 확실히 자리를 잡을 때까지 강성에 머물다 떠나면 되니까.어쨌든 이씨 가문의 어떤 것도 이윤미는 원하지 않았다. 그녀에게는 자신만의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이씨 가문을 떠난다고 해서 살아가지 못하는 것도 아니었다.정군호는 그 말을 듣자마자 황급히 말을 건넸다.“윤미야, 너 어떻게 네 엄마가 힘들여 얻어낸 모든 것을 도로 내줄 수가 있어? 그럼 네 엄마가 괜히 죽은 거잖아? 윗대 어른들 일은 윗대 어른들 일이야. 네 엄마가 돌아가셨으면 그걸로 끝난 거지. 하지만 가주 자리는 네 엄마의 자리였잖아. 네 엄마에게는 딸 너 하나 뿐이기에 네가 후계자야. 지금 네 엄마가 돌아가셨는데 당연히 네가 모든 것을 이어받아야지. 바보처럼 그걸 도로 내줘서는 안 되는 거야.”이윤미는 무덤덤했다.“아버지, 그건 본래 제 것이 아니에요. 저는 받지 않을 거예요. 우리 가족 모두 사촌 언니에게 미안해야 하잖아요.”정군호는 여전히 이윤미를 설득했다.“우리가 무슨 일을 한 것도 아니잖아. 네 큰이모를 해친 건 네 엄마야. 네 엄마는 이미 목숨으로 갚았는데 그들이 더 바랄 게 뭐가 있어? 아빠 말 들어. 절대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도로 내주지 마. 내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네 오빠들은 살길이 없잖아.”“아버지, 이런 일들은 신경 쓰지 마세요. 제가 예전부터 말씀드렸잖아요. 만약 큰이모가 정말 우리 엄마 때문에 돌아가셨다면 이씨 그룹과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부 사촌 언니에게 돌려주겠다고 했잖아요. 원래 그 사람들 재산이에요.”이윤미는 흔들리지 않았다.그녀는 이씨 가문을 좋아하지 않았다.만약 이윤미의 몸에 이씨 가문의 피가 흐르지 않고 이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었다면 이런 진흙탕 속에 발을 들여놓을 일도 없었을 것이다.정군호는 격분하여 말했다.“내가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내가 상관 안 할 리가 있겠냐? 그건 내 노후 문제와 관계되는 일
이윤미는 마음속으로 생각했다.‘엄마와 큰이모의 감정이 좋았다고 해도 무슨 소용이 있는지...’여전히 이은화의 그 무자비한 마음을 부드럽게 할 수는 없었고 이은숙은 결국 이은화의 계략 속에 목숨을 잃었다.그리고 이은경도 마찬가지였다. 그녀 또한 무슨 잘못이 있었던 건가?그녀도 큰언니를 잃은 상황에서 자신의 목숨마저 잃었다.이은경은 아마도 자신이 둘째 언니의 손에 죽었다는 것조차 모르고 떠났을 것이다.그리고 당시 조금이라도 의심을 하거나 이은화의 일을 도왔던 관련자들, 그들 역시 살해당했다. 어떤 이들은 한집안 식구들 전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수십 년 전 그 비극이 발생한 후고 얼마나 많은 무고한 사람들이 휘말렸는지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이은화는 정말 죽어도 마땅한 죄인이었다.다만 이윤미는 그녀의 친딸이었기에 그런 말은 할 수 없었다.“네 엄마는 자식들을 매우 차별했어. 예전에는 너와 윤정이가 바뀐 줄도 모르고 윤정을 가장 귀여워했지. 가끔 내가 은화를 화나게 하면 윤정에게 부탁해서 네 엄마를 달래야 할 정도였거든.”이윤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녀가 친가족 곁으로 막 돌아왔을 때 친척들과 가족들은 이윤정이라는 가짜 귀한 딸을 얼마나 지극정성으로 사랑하는지를 직접 목격했다.“윤정의 이야기는 더 하지 말자...”정군호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이윤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부축해 주었고 베개를 등 뒤에 받쳐 편안하게 앉도록 했다.“윤미야, 물 한 잔 따라줘. 아빠가 말을 많이 해서 목이 마르는구나.”이윤미는 그의 말대로 따뜻한 물 한 잔을 따라왔다.정군호가 그 물을 다 마시자 이윤미는 컵을 받아 침대 옆 탁자에 내려놓았다. 그리고 과일이 있는 것을 보고는 그에게 먹고 싶은지 물었다.“먹고 싶지 않아. 이따가 네가 가져가서 먹거나 집사들에게 맡겨. 네 엄마가 세상을 떠나니 맛있는 음식을 봐도 싫구나.”이윤미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이씨 그룹과 가문은 어떻게 할 작정이냐?”정군호는 가장
정군호가 이윤미에게 물었다. 이윤미가 대답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자신을 비웃듯 웃음을 터뜨렸다.“사랑하지 않았을 거야. 처음부터 날 사랑한 적 없었어. 데릴사위로 들어오려는 사람이 없었는데 내가 들어오려고 하니까 마지못해 동의한 것 뿐이야. 네 엄마는 한 비서란 사람을 사랑했지만 그 사랑을 이루지 못했어. 게다가 후계자도 필요했고. 그래서 어쩔 수 없이 나랑 살기로 한 거지.”이윤미는 침묵했다. 어머니 마음속에 아버지가 있었는지 그녀는 알 수 없었다.아마 있었을 수도, 없었을 수도 있다.하지만 있든 없든, 지금 와서 무슨 의미가 있으랴.이은화는 이미 한 줌의 흙이 되어버렸다.“내가 수십 년의 시간을 들여도 그녀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줄 수 없었어. 윤미야, 아빠는 남자로서 너무 못난 것 같아. 네 엄마가 나를 조금이라도 사랑해줬더라면 나도 밖에 나가서 여자를 찾아 바람을 피우지는 않았을 거야. 내가 그런 일들을 한 건 은화에 대한 복수심이 더 컸거든.”아내에 대한 원망 때문인지 정군호는 돌아간 아내를 ‘은화 씨'라 부르지 않고 본명을 불렀다.이윤미는 입술을 깨물다가 말을 이었다.“엄마도 아버지에게 마음이 조금은 있었을 거로 생각해요. 전혀 관심이 없었다면 아버지와 자식을 네 명이나 낳지도 않았을 테고 아버지가 바람피웠을 때 엄마가 그렇게 화내지도 않았을 거예요.”정군호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연신 물었다.“정말 그렇게 생각해? 네 엄마가 날 사랑한 적 있었다고?”이내 그는 피식 웃었다. 그러나 그 웃음소리는 곧 흐느낌으로 변해 갔다.“윤미야, 날 위로해 주려고 하지 마. 아빠도 알아. 네 엄마는 처음부터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빠를 사랑한 적이 없어. 나와 아이를 낳은 건 그냥 후계자가 필요했을 뿐이야. 그 당시 만약 시험관 아기 시술로 결혼 안 하고도 아이를 가질 수 있었다면 절대 나와 결혼하지 않았을 거다. 내가 바람을 피운 것에 화낸 것은 나를 아껴서가 아니라 내가 그런 짓을 한 게 네 엄마의 체면을 구겼기 때문이야. 내 배신
“식사는 잘 챙겨 드시던가요?”이윤미가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드시기는 합니다만 많이 드시지는 않아요. 대부분 시간은 넋 놓으면서 보내시고 가끔 혼잣말도 하십니다. 하지만 뭐라고 하시는지 잘 들리지 않아요.”이윤미가 잠시 말없이 있다가 입을 열었다.“알았어요. 잠시 밖에 나가 계세요. 제가 아버지와 얘기 좀 나누고 싶어요.”도우미는 공손히 대답한 뒤 병실을 빠져나갔다.이제 병실에는 오로지 부녀만이 남게 되었다.이윤미는 침대 옆으로 의자를 끌어와 앉아 한동안 정군호를 바라보았다.“아버지, 어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돌아가신 이를 다시 부르는 것은 불가능하잖아요. 우리 현실을 받아들여요. 엄마는 너무도 많은 잘못을 저지르셨어요...”이윤미는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큰 불효를 무릅쓰고 말하자면 죽음은 그녀의 어머니에게 오히려 쉬운 길이었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은화 때문에 생을 마감했는가.정군호가 고개를 돌리더니 드디어 얼굴에 생기가 조금 돋았다. 그는 한참을 이윤미를 바라보더니 말을 이었다.“윤미야, 난 네 엄마가 죽으면 마음이 후련한 줄 알았어. 그런데 막상 그 소식을 접하니 기쁘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이 텅 빈 것만 같더구나. 사실 나는 네 엄마를 사랑했어. 사랑하지 않았다면 결코 사위로 들어오지도 않았을 거야. 물론 우리 정씨 집안이 예전에 어려움을 겪었을 때 이익을 위해서라는 사심이 없지는 않았어. 하지만 네 엄마에게 대한 감정도 진심이었어. 하지만 네 엄마는 너무 엄격하게 날 통제를 하기 시작했지. 지난 수십 년 동안 내 주머니에는 10만 원을 넘는 용돈이 들어본 적이 없어. 네 오빠들 어릴 때의 용돈조차 나보다 더 많았거든. 나는 항상 네 어머니 몰래 그들을 꼬드겨서 나에게 돈을 좀 건네주게 하곤 했었지. 나도 내가 바람기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 젊고 예쁜 여자들을 보면 늘 마음이 움직였고 몰래 함께 시간을 보내고 싶다는 생각도 했거든. 하지만 네 엄마에게 한 번 걸리고 난 후로는 다시는 그럴 용기를 내지 못했어. 내가 바람
모연정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아버님께는 말씀드려야 하지 않을까요?”“괜찮아. 내가 어디를 가든 네 아빠는 막지 않으실 거야. 기껏해야 따로 차를 타고 따라오시겠지.”“그럼 이제 출발해요.”모연정은 한 손으로 예지연을 안고 다른 한 손으로 용정의 손을 잡고 나섰고 예애정은 예지호를 안고 뒤를 따랐다.하예정은 우빈의 손을 잡고 집을 나섰다.“은진 씨네 아이들은요?”모연정 문득 두 조카가 생각나 물었다.“이미 잠들었어. 보모가 데려갔거든. 그 두 아이는 너무 개구쟁이라서 데려가지 말자. 데려가면 단 1초도 편할 날이 없을걸. 게다가 애 엄마도 안 가는데 혹시 다치기라도 하면 안 되잖아.”예진 리조트에서 두 조카 손자를 돌봐달라고 하면 예애정은 집안에 애들이 많아 흥도 나고 기쁘게 지낼 수 있어 기꺼이 도와줄 수 있었다.하지만 외출할 때면 데려가지 않았다.물론 모연정도 여은진 부부 중 한 사람이 동행하지 않는 이상 허락하지 않았다.다른 사람의 자식을 돌보는 것은 책임이 너무 컸다.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으면 다행이지만 뜻밖의 일이 생겨 아이가 다치기라도 한다면 아이의 부모에게 면목이 서지 않을 터였다.모연정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렇다면 다행이고요. 보모가 잘 돌볼 거예요.”시어머니가 일깨워 주지 않아도 모연정은 이 점을 잘 알고 있었다.관계가 아무리 가깝더라도 아이의 부모가 함께하지 않으면 그 말썽꾸러기들을 데리고 외출하는 것은 너무 버거운 일이었다.그들은 몇 대의 차를 타고 모연정의 처갓집으로 떠났다.한편, 강성의 병원.이윤미는 드디어 시간을 짜내 병원에 와서 그녀의 어머니 총에 맞은 아버지를 보러 왔다.정군호는 침대에 누워 여전히 멍하니 있었고 예전보다 수십 년은 더 늙어 보였다. 사실 그는 70세 정도였지만 잘 관리한 덕에 무척 젊어 보였던 사람이다.지금은 한성근만큼이나 나이 들어 보였다.“아가씨.”병원에서 정군호를 돌보던 도우미가 이윤미가 들어오는 것을 보더니 공손하게 인사하고는 곧장 한쪽으로 물러났다.이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