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 예능 악역 메기 역할인데 다들 내가 좋단다. 뭐 어쩌라고?

연애 예능 악역 메기 역할인데 다들 내가 좋단다. 뭐 어쩌라고?

last updateปรับปรุงล่าสุด : 2026-09-30
โดย:  6jayอัปเดตเมื่อครู่นี้
ภาษา: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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빚과 동생 치료비 때문에 연애 예능의 ‘악역 메기’로 투입된 무명 배우 한서령. 판만 흔들고 나오려 했는데 톱배우, 스타트업 대표, 격투기 챔피언까지 모두 그녀에게 진심이 된다. 대본대로 시작된 예능은 어느새 진짜 사랑과 배우로서의 재도약으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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บทที่ 1

제001화. 악역 메기의 강림

“빚 5억이 사라진다고는 못 해.”

김진호 PD는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강남의 작은 지하 카페. 한서령은 맞은편에 놓인 계약서보다 김진호의 얼굴을 먼저 봤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

“대신 당장 숨은 쉬게 해줄 수 있어. 출연료 1억 2천. 계약과 동시에 8천 선지급. 네 전 소속사 채무 건은 제작사 제휴 로펌에서 무료로 붙어주고.”

서령의 손끝이 멈췄다.

전 소속사 대표가 보증을 세운 뒤 잠적하면서 남은 채무가 5억 2천만 원이었다. 법적으로 다투고 있었지만, 판결이 날 때까지 독촉은 멈추지 않았다. 더 급한 건 서울 병원에 입원 중인 열 살 동생 서우였다. 확장성 심근병증. 이식 대기 명단에 오른 뒤부터 매달 들어가는 비용만으로도 숨이 막혔다.

김진호가 계약서 옆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밀었다. 공식 계약서가 아니었다.

[캐릭터 운영 가이드]

“네 역할은 메기야. 들어가서 판 흔들고, 기존 여자 출연자들 긁어. 남자 셋한테도 적극적으로 붙고.”

“어디까지가 연출이에요?”

“법적으로 문제될 건 안 시켜.”

“그 말 말고요.”

서령이 종이를 집었다.

“제가 싫다고 한 행동까지 해야 하는지, 편집으로 없는 말을 만든다든지, 가족 얘기를 꺼낸다든지.”

김진호의 입꼬리가 잠깐 굳었다. 서령은 그 짧은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5년 동안 단역을 하며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카메라보다 사람 얼굴을 먼저 읽는 법이었다.

“계약서에 없는 건 안 합니다.”

“한서령.”

“돈이 급한 거지, 제 인생을 넘기는 건 아니에요.”

몇 초 뒤 김진호가 혀를 찼다.

“그래.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대신 재미없으면 분량도 없는 거 알지?”

서령은 서명란을 내려다봤다.

1억 2천.

평생을 바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서우의 병원비와 밀린 이자를 몇 달은 막을 수 있었다. 그 몇 달이면 전 소속사 소송도 결론이 날지 몰랐다. 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

“한 가지 더요.”

“뭐.”

“선지급금 오늘 들어오는 거 맞죠?”

김진호가 피식 웃었다.

“입금 확인하고 비행기 타. 독하긴 하네.”

***

촬영지는 남태평양이 아니었다.

제주 남쪽 해상, 본섬에서 전세선으로 40분가량 떨어진 민간 리조트 섬 ‘파라다이스 아일랜드’. 해외 리조트 같은 풍경을 만들기 위해 야자수까지 옮겨 심은 곳이었다.

선지급금 입금 알림은 섬으로 들어가는 배 안에서 왔다.

[80,000,000원 입금]

서령은 화면을 오래 보지 않았다. 바로 병원비 계좌와 연체 이자를 나눠 이체했다. 남은 돈은 예상보다 적었다.

그래도 적어도 오늘 밤 채권추심 전화 때문에 서우 병실 복도에서 숨어 울 일은 없었다. 그녀는 휴대폰을 잠갔다.

김진호에게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첫날부터 너무 빼지 마. 네가 살아야 방송도 산다.]

서령은 답하지 않았다. 대신 메모장에 한 줄을 적었다.

[돈을 받았다. 그렇다고 다 내준 건 아니다.]

섬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촬영 첫날 오후.

서령은 스태프가 건넨 무선 마이크를 직접 확인한 뒤 드레스 허리 안쪽에 고정했다.

“대기하다가 큐 사인 나면 정원으로 들어가시면 돼요.”

막내 작가가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

“카메라는 어디까지 돌아가요?”

“공용 공간은 거의 전부요. 객실이랑 탈의 공간은 제외고요. 촬영 중단 요청하시면 손으로 엑스 표시해 주세요.”

서령은 그제야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 쪽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먼저 입도한 출연자들이었다. 대산리테일 오너 일가로 유명한 인플루언서 진채린. 은퇴를 선언한 뒤 작품을 고르지 않고 있던 배우 강태욱. 데이터 플랫폼 회사를 창업해 투자업까지 넓힌 서도현. 그리고 세계 타이틀전을 앞둔 종합격투기 선수 차민혁.

라인업이 공개된 순간부터 화제가 된 사람들이었다. 그들 사이에 무명 배우 한서령을 집어넣는다.

김진호가 원하는 그림이 뭔지는 뻔했다.

“한서령 씨, 들어가실게요.”

서령이 계단을 내려갔다. 바닷바람이 와인색 드레스 자락을 밀었다. 정원에 있던 대화가 잠깐 끊겼다.

진채린이 먼저 웃었다.

“아, 새 출연자분?”

서령은 준비한 인사만 했다.

“안녕하세요. 한서령입니다.”

강태욱은 잔을 들던 손을 멈췄다. 서도현은 태블릿을 내려놓았고, 차민혁은 의자 등받이에서 몸을 일으켰다.

세 사람 모두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보고 있었다. 강태욱은 얼굴이 아니라 표정을 읽는 사람처럼.

서도현은 예상 밖의 변수가 생겼을 때처럼. 차민혁은 어디서 본 사람인지 기억을 더듬듯.

대본에는 없던 반응이었다. 서령이 웰컴 테이블에서 물잔을 집으려는데 강태욱이 먼저 가까이 왔다. 그가 손을 뻗다가, 서령의 시선이 손끝으로 떨어지는 걸 보고 멈췄다.

“악수해도 괜찮아요?”

뜻밖의 질문이었다. 서령이 잠깐 그를 봤다.

“네.”

손이 맞닿았다. 강태욱은 짧게 잡았다 놓았다. 그러고는 서령의 손바닥 굳은살을 한번 내려다봤다.

“배우죠?”

서령의 눈이 가늘어졌다.

“프로필 보셨어요?”

“아니요.”

강태욱이 미소를 아주 조금 보였다.

“카메라 들어오는데 시선부터 찾더군요.”

첫날부터 대본이 어긋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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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1화. 악역 메기의 강림
“빚 5억이 사라진다고는 못 해.”김진호 PD는 처음부터 선을 그었다. 강남의 작은 지하 카페. 한서령은 맞은편에 놓인 계약서보다 김진호의 얼굴을 먼저 봤다. 웃고 있었지만 눈은 웃지 않았다.“대신 당장 숨은 쉬게 해줄 수 있어. 출연료 1억 2천. 계약과 동시에 8천 선지급. 네 전 소속사 채무 건은 제작사 제휴 로펌에서 무료로 붙어주고.”서령의 손끝이 멈췄다.전 소속사 대표가 보증을 세운 뒤 잠적하면서 남은 채무가 5억 2천만 원이었다. 법적으로 다투고 있었지만, 판결이 날 때까지 독촉은 멈추지 않았다. 더 급한 건 서울 병원에 입원 중인 열 살 동생 서우였다. 확장성 심근병증. 이식 대기 명단에 오른 뒤부터 매달 들어가는 비용만으로도 숨이 막혔다.김진호가 계약서 옆에 얇은 종이 한 장을 밀었다. 공식 계약서가 아니었다.[캐릭터 운영 가이드]“네 역할은 메기야. 들어가서 판 흔들고, 기존 여자 출연자들 긁어. 남자 셋한테도 적극적으로 붙고.”“어디까지가 연출이에요?”“법적으로 문제될 건 안 시켜.”“그 말 말고요.”서령이 종이를 집었다.“제가 싫다고 한 행동까지 해야 하는지, 편집으로 없는 말을 만든다든지, 가족 얘기를 꺼낸다든지.”김진호의 입꼬리가 잠깐 굳었다. 서령은 그 짧은 표정을 놓치지 않았다. 5년 동안 단역을 하며 배운 게 하나 있다면, 카메라보다 사람 얼굴을 먼저 읽는 법이었다.“계약서에 없는 건 안 합니다.”“한서령.”“돈이 급한 거지, 제 인생을 넘기는 건 아니에요.”몇 초 뒤 김진호가 혀를 찼다.“그래. 네가 할 수 있는 데까지만 해. 대신 재미없으면 분량도 없는 거 알지?”서령은 서명란을 내려다봤다.1억 2천.평생을 바꿀 돈은 아니었다. 그래도 서우의 병원비와 밀린 이자를 몇 달은 막을 수 있었다. 그 몇 달이면 전 소속사 소송도 결론이 날지 몰랐다. 펜 끝이 종이에 닿았다.“한 가지 더요.”“뭐.”“선지급금 오늘 들어오는 거 맞죠?”김진호가 피식 웃었다.“입금 확인하고 비행기 타. 독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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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2화. 균열의 시작과 심야의 카바나
“배우라서 카메라부터 찾았다?”진채린이 웃으며 물었다. 말은 부드러웠지만 시선은 한서령의 드레스와 구두를 빠르게 훑었다. 브랜드를 확인하는 눈이었다.서령은 샴페인 대신 탄산수를 골랐다.“촬영장이니까요.”“저는 그냥 긴장해서 아무것도 안 보이던데.”“사람마다 다르죠.”짧은 대답에 진채린의 미소가 얇아졌다. 강태욱은 건너편에서 두 사람을 보고 있었다. 서령이 진채린의 말에 발끈하지도, 과하게 웃지도 않는 게 흥미로운 듯했다.저녁 식사가 시작된 뒤 김진호가 원하는 장면은 금세 왔다. 진채린이 포크를 내려놓았다.“서령 씨는 단역을 오래 하셨다고 들었어요. 이런 프로그램은 보통 어느 정도 이름 있는 분들이 나오잖아요. 섭외 연락 받고 좀 놀라셨겠어요.”테이블 아래에서 서령의 손가락이 천천히 펴졌다. 이어폰 너머로 작가의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받아쳐 주세요. 조금 세게.계약 전에 봤던 캐릭터 가이드가 떠올랐다. 서령은 카메라 위치를 한번 보고 진채린에게 시선을 돌렸다.“많이 놀랐죠.”예상보다 담백한 대답에 진채린이 눈썹을 들었다.“그래서 더 궁금했어요. 이름값을 보는 프로그램인지, 사람을 보는 프로그램인지.”누군가 숨을 삼켰다. 진채린이 웃었다.“그럼 제가 이름값으로 들어왔다고 생각하세요?”“제가 그렇게 말했나요?”서령도 웃었다.“채린 씨가 먼저 그렇게 들으신 것 같은데.”강태욱이 잔으로 입가를 가렸다. 웃음을 숨기는 게 보였다. 진채린의 표정이 굳으려는 순간 서도현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입을 열었다.“회사나 집안 얘기는 여기선 안 하는 게 좋겠습니다.”진채린이 그를 봤다.“대표님이 먼저 불편하신가 봐요?”“방송에서 이해관계 있는 회사 이름을 꺼내면 제 쪽도 귀찮아집니다.”서도현은 감정 없이 말했다.“그리고 사람 경력으로 급을 나누기 시작하면 이 프로그램이 연애 예능인지 채용 면접인지 애매해지고요.”누군가 작게 웃었다. 진채린은 더 말하지 못했다.서령은 서도현을 한번 봤다. 자신을 편든 것 같으면서도 정확히는 아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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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3화. 카바나의 렌즈와 계약서
카바나 뒤 조경수에 숨어 있던 건 제작진 카메라가 아니었다. 차민혁이 가까이 가지 못하게 팔을 뻗었다.“여기 있어.”“왜요?”“누가 달았는지 모르잖아.”“그럼 더 확인해야죠.”서령이 휴대폰부터 꺼냈다. 멀리서 줌을 당겨 사진을 찍었다. 렌즈 아래로 작은 검은 배터리팩이 보였다.“촬영팀 장비 아니에요.”이어폰에서 그제야 작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두 분 거기서 움직이지 마세요. 보안팀 보낼게요.3분 뒤 현장 매니저와 보안 담당자가 뛰어왔다. 기기는 손대지 않은 채 위치부터 촬영했고, 제작진은 공용 카메라 영상을 보존하기로 했다. 차민혁이 서령을 봤다.“아까 질문 답은 됐냐?”“뭐요?”“싸움 안 하고 문제 푸는 법.”서령이 피식 웃었다.“아직 판단 보류요.”“깐깐하네.”“방송이잖아요.”“그래서 더 깐깐해야지.”그 한마디는 의외로 마음에 남았다.***새벽 1시.객실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서령은 문 앞에 서 있는 서도현을 보고 걸음을 늦췄다. 그는 복도 소파에 앉아 노트북을 보고 있었다.“왜 여기 계세요?”“기다렸습니다.”“제 방 앞에서요?”“복도는 공용 구역입니다.”“말장난 잘하시네요.”서도현은 노트북을 닫았다.“카바나에서 비인가 카메라가 발견됐다고 들었습니다.”소식이 빠르다. 서령이 카드키를 쥔 채 물었다.“그것 때문에요?”“절반은.”“나머지 절반은요?”서도현이 작은 서류 한 장을 내밀었다.“이 프로그램 출연 계약서 부속합의서.”서령의 눈이 멈췄다.“그걸 왜 대표님이 갖고 있죠?”“모든 출연자에게 같은 양식이 제공됐습니다. 그런데 당신 것만 다르다고 느꼈습니다.”그는 자기 계약서의 한 문단을 가리켰다.[출연자의 신체적 안전과 명예를 중대하게 침해할 우려가 있는 제작 지시는 거부할 수 있다.]“오늘 저녁 당신 이어폰으로 별도 지시가 계속 들어왔죠.”“그걸 어떻게 알아요?”“당신이 대답하기 전에 매번 오른쪽 귀를 한번 만졌으니까.”서령은 말문이 막혔다. 서도현은 사람을 숫자로만 보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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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4화. 뒤집힌 첫 선택
다음 날 오전, 첫 공식 데이트 선택을 앞두고 제작진 회의가 길어졌다.이유는 단순했다. 남성 출연자 3명이 모두 같은 이름을 적었다.한서령.“이런 경우는 룰에 없는데요?”막내 작가가 속삭이자 김진호 PD의 얼굴이 굳었다. 원래 계획대로라면 강태욱은 진채린을 선택하고, 서령은 남겨진 뒤 질투 장면을 만들어야 했다. 김진호가 무전기를 잡았다.“강태욱 씨부터 다시 확인해. 방송 흐름상 채린 씨가 낫다고 설명하고.”잠시 뒤 강태욱이 제작진 텐트로 직접 들어왔다.“제 선택을 바꾸라는 겁니까?”“바꾸라는 게 아니라, 전체 그림을 보자는 거죠.”“출연 계약에 선택 개입 조항이 있어요?”김진호가 입을 다물었다. 강태욱은 대본을 오래 받은 배우였다. 연출과 조작의 경계를 누구보다 잘 알았다.“설정은 받을 수 있어요. 선택까지 대신해 주는 건 다른 얘기죠.”그가 돌아서기 전에 한마디를 덧붙였다.“그리고 어제 비인가 카메라 발견된 건, 오늘 출연자들한테 설명하셔야 합니다.”***오전 11시.요트 클럽 데크에 출연자들이 모였다. 진채린은 이미 강태욱이 자신을 고를 거라 믿는 얼굴이었다.“첫 번째 선택, 강태욱 씨.”진행 작가의 목소리가 울렸다. 강태욱은 망설이지 않았다.“한서령 씨.”주변에서 작은 탄성이 터졌다. 진채린의 표정이 굳었다.“두 번째, 서도현 씨.”“저도 한서령 씨입니다.”이번에는 스태프 쪽에서 더 큰 술렁임이 났다.“차민혁 씨?”차민혁이 팔짱을 낀 채 말했다.“나도.”김진호가 결국 촬영을 잠깐 끊었다. 세 남자가 한 사람을 고른 상황은 자극적이었지만, 제작진이 준비한 데이트 코스는 1대1 기준이었다.15분 뒤 수정된 룰이 공지됐다.“동일인을 복수 선택한 경우, 선택받은 출연자가 한 명을 고를 수 있어요. 선택하지 않을 경우 이번 데이트는 단체 일정으로 전환합니다.”진채린이 바로 서령에게 말했다.“한 명 고르시죠. 설마 셋 다 데리고 다니려고요?”서령은 제작진이 내민 선택 카드를 받지 않았다.“단체로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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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5화. 네 사람의 첫 데이트
요트 데이트가 시작된 지 30분 만에 김진호 PD의 무전이 들어왔다.― 분위기가 너무 조용합니다. 조금만 적극적으로 가죠.서령은 이어폰을 만지지 않았다. 강태욱이 먼저 물었다.“또 주문 들어왔습니까?”“표정만 보고도 알아요?”“감독이 배우한테 원하는 게 있을 때 현장 공기가 똑같아져요.”그는 카메라 쪽을 보지도 않았다.“말이 줄고, 스태프 눈이 바빠지죠.”차민혁이 코웃음을 쳤다.“그럼 그냥 시키는 대로 안 하면 되는 거 아냐?”“당신은 경기 들어가서 코치 말 무시해요?”서령이 묻자 차민혁이 입을 다물었다.“상황은 비슷해요. 제작진이 적은 아니에요. 다만 제가 어디까지 맞춰줄 건지는 제가 정해야죠.”서도현이 물었다.“그 선을 계약서에 적어뒀습니까?”“어제까지는 제대로 못 봤어요.”“그럼 오늘 밤 확인하시죠.”“대표님이랑요?”“싫으면 혼자 하셔도 돼요.”즉답이었다. 서령은 조금 웃었다.“그렇게 말하면 또 할 말이 없네요.”***점심 촬영 뒤 제작진은 ‘10분 자유 질문’ 미션을 줬다. 질문 카드는 각자 하나씩.강태욱이 먼저 카드를 읽었다.“지금 가장 숨기고 싶은 것.”그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잠을 잘 못 잡니다.”서령이 눈을 들었다.“얼마나요?”“심할 때는 이틀.”“병원은요?”“다녀봤죠. 약도 먹고.”강태욱은 담담하게 말했다.“사람들이 나를 볼 때 뭘 기대하는지 너무 잘 알아서, 카메라가 꺼져도 계속 연기하는 기분이 듭니다.”그 말은 대본에 없었다. 다음은 서도현이었다.카드에는 [사랑 때문에 손해 볼 수 있는 범위]라고 적혀 있었다.“질문 자체가 계산적이네요.”서령이 말하자 그가 카드 모서리를 두드렸다.“저한테 맞춰준 것 같습니다.”“답은요?”“아직 잘 모르겠어요.”“손해 싫어할 것 같은데.”“싫어합니다.”서도현은 잠깐 서령을 봤다.“그런데 계산이 안 되는 손해도 있다는 건 최근 알았습니다.”강태욱이 웃었다.“최근이라.”서도현은 무시했다. 차민혁의 질문은 [가장 무서운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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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6화. 카메라가 꺼진 요트
촬영이 중단되자 오히려 말하기가 어려워졌다. 카메라가 있을 때는 역할이 있었다.한서령은 악역 메기, 강태욱은 톱배우, 서도현은 냉정한 사업가, 차민혁은 거친 챔피언. 붉은 촬영등이 꺼진 지금은 그냥 네 사람이었다.“멀미해요?”강태욱이 물었다.“조금요.”그가 테이블 위 멀미봉투를 밀어줬다.“참지 말아요. 참다가 카메라 켜지면 더 티 납니다.”“경험담이에요?”“배 멀미 말고 숙취 연기하다 토한 적은 있죠.”서령이 웃음을 터뜨렸다. 강태욱도 따라 웃었다.그가 카메라 앞에서 보이던 느긋한 표정과 조금 달랐다. 잘 보이려고 만든 표정이 아니라 피곤한 사람이 잠깐 풀린 얼굴이었다. 서도현은 선내 와이파이에 접속해 기상 상황을 확인했다.“20분 정도면 바람이 가장 셉니다. 그 뒤부터 잦아든다고 합니다.”차민혁이 물었다.“그걸 왜 보고 있어?”“모르면 더 불안한 사람이 있어서요.”그의 시선이 서령에게 한번 닿았다가 돌아갔다. 서령이 말했다.“저요?”“아까부터 선체 기울 때마다 시계를 봤습니다.”“다들 사람을 너무 자세히 보네요.”강태욱이 바로 받았다.“직업병입니다.”서도현도 말했다.“저도.”차민혁은 어깨를 으쓱했다.“난 그냥 보고 싶어서 보는데.”순간 조용해졌다. 차민혁 본인만 왜 조용해졌는지 모르는 얼굴이었다.서령이 먼저 시선을 돌렸다.“그 말 방송 켜져 있을 때도 해봐요.”“왜?”“반응 좋을 것 같아서.”“내가 시청률용이냐?”“저도 그렇잖아요.”차민혁의 표정이 잠깐 굳었다. 그는 대꾸하지 않았다.***요트가 방향을 바꾼 뒤 선체 흔들림은 조금씩 줄었다. 제작진이 촬영 재개 여부를 물었지만 선장은 입항까지 안전상 이동 촬영을 하지 말라고 했다. 결국 남은 시간은 통째로 비방송 구간이 됐다.서령은 오히려 그 틈에 서도현에게 계약서 얘기를 꺼냈다.“어제 말한 조항, 다시 보여줄 수 있어요?”“물론입니다.”서도현은 태블릿에서 자기 계약서를 열었다. 서령도 휴대폰에 저장해 둔 계약서 사진을 꺼냈다.둘은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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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7화. 붉은 비상등과 꺼진 카메라
저녁 촬영은 전면 취소됐다. 제작진은 카바나 주변을 통제했고, 리조트 보안팀이 비인가 카메라를 회수했다. 저장 장치가 붙어 있는 독립형 장비였다.“오늘 안에 결론 못 냅니다.”안전담당 PD가 출연자들 앞에서 말했다.“장비 출처 확인하고, 외주 인력 출입 기록이랑 CCTV 대조하겠습니다. 필요하면 현지 경찰에도 신고할 거고요.”김진호 PD가 불편한 표정으로 끼어들었다.“너무 크게 만들 필요 있습니까? 설치하다 남은 테스트 장비일 수도 있잖아요.”서령이 바로 물었다.“테스트 장비면 왜 조경수 안쪽에 숨겨져 있었죠?”김진호가 그녀를 봤다.“가능성을 말하는 겁니다.”“그 가능성도 기록에 남겨주세요.”서령은 휴대폰 녹음 화면을 켜지 않았다. 대신 공개된 회의 자리에서 안전담당 PD에게 확인했다.“오늘 촬영 중 발견된 비인가 카메라가 제작팀 공식 장비가 아니라는 건 맞죠?”“현재까지는 그렇습니다.”“그럼 그 답변 메일로 부탁드릴게요.”강태욱이 옆에서 입꼬리를 올렸다.“잘하네.”서령이 돌아보자 그가 말했다.“현장에서는 말보다 기록이 오래 갑니다.”서도현은 이미 출연계약서에 적힌 안전 조항을 찾아 제작진에게 전달하고 있었다. 차민혁은 가장 말이 없었다. 대신 카바나 쪽 통제선 근처를 서성이는 외주 스태프들의 얼굴을 하나씩 보고 있었다.서령이 가까이 갔다.“사람 잡아먹을 것처럼 보지 마요.”“안 잡아먹어.”“표정은 그런데요.”“아까 네가 그 렌즈 못 봤으면 어떻게 됐을까 생각하는 중이야.”“봤잖아요.”“다음엔 못 볼 수도 있잖아.”서령이 잠시 그를 봤다.“그래도 사람 치면 안 돼요.”차민혁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내가 아직 아무도 안 쳤거든?”“미리 말하는 거예요.”“나를 뭘로 보냐.”“경기에서 사람 때리는 사람?”“합법적으로.”둘 사이에 웃음이 났다.그때 리조트 전체 조명이 한번 꺼졌다. 붉은 비상등이 켜졌다.직원들이 곧바로 안내했다.“발전기 점검 중입니다. 객실로 이동해 주세요.”카바나 장비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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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8화. 계약서의 빈칸
다음 날 오전, 제작진은 안전회의 결과를 공지했다.비인가 카메라는 외주 조경업체 직원 명의로 반입된 물건이었다. 실제 설치자가 누군지는 추가 확인이 필요했고, 방송사는 장비와 출입기록을 보존해 경찰에 상담하기로 했다. 촬영은 오후까지 중단됐다.서령에게는 처음 생긴 빈 시간이었다. 그녀는 객실 책상에 앉아 출연계약서를 처음부터 다시 읽었다.선지급 조항, 중도 하차 위약금, 초상권, 편집권. 읽으면 읽을수록 처음 서명할 때 보지 못했던 문장들이 보였다.노크 소리가 났다. 문을 열자 서도현이 서 있었다.“들어가도 됩니까?”“무슨 일인데요?”그가 태블릿을 들어 보였다.“어제 계약서 보겠다고 하셨잖아요.”서령은 잠깐 망설인 뒤 문을 더 열었다.“문은 열어둘게요.”“좋습니다.”서도현은 안으로 들어오되 출입문 가까운 테이블에 앉았다. 둘은 계약서를 한 항목씩 비교했다.“중도 하차 위약금이 잔여 출연료의 3배네요.”서령이 말했다.“일반적인가요?”“예능 출연 계약이 전부 같지는 않습니다. 다만 안전 문제나 제작진 귀책까지 동일하게 위약금을 적용하는 문구라면 다툴 여지가 있습니다.”“대표님 회사 법무팀 부르면 바로 해결돼요?”“아니요.”서도현이 바로 답했다.“제가 법무팀을 부르면 이해충돌부터 생깁니다. 저는 같은 프로그램 출연자니까요.”서령이 눈을 들었다.“그럼요?”“독립된 변호사에게 계약 검토를 받는 게 낫습니다. 원하시면 명단은 드릴 수 있습니다. 비용은 본인이 내고요.”“돈까지 제가 내야 해요?”“그래야 제 도움이 빚이 안 됩니다.”그 말에 서령이 웃었다.“이상하게 친절하네요.”“정확한 겁니다.”서도현은 한 문장을 가리켰다.“그리고 이 별첨 지시는 따로 보관하십시오. 제작진이 방송 재미를 위해 역할을 제안하는 것과, 특정 출연자에게 모욕이나 충돌을 유도하는 건 다른 문제니까.”서령은 휴대폰 사진을 클라우드에 백업했다.“대표님은 왜 이렇게까지 확인해 줘요?”“처음에는 프로그램 리스크 때문에 봤습니다.”“지금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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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9화. 비밀 샤워실의 렌즈
자유 대화 미션이 끝난 뒤 서령에게 주어진 건 1시간의 휴식이었다. 그녀는 리조트 최상층에 있는 여성 전용 스파로 올라갔다.입구에는 여성 스태프가 상주했고, 탈의실과 샤워실은 촬영 제외 구역이라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어제 비인가 카메라 사건 뒤 새로 붙은 문구였다.서령은 한참 만에 어깨 힘을 풀었다. 따뜻한 물을 틀고 머리를 적셨다.촬영 이틀째. 겨우 이틀인데 몇 주를 버틴 기분이었다.강태욱의 손수건, 서도현과 읽은 계약서, 차민혁이 먼저 발견했던 수상한 렌즈. 세 남자는 예상했던 타입과 전부 조금씩 달랐다.문제는 그 사실을 자신이 자꾸 기억한다는 거였다. ‘정신 차려.’서령은 눈을 감고 물을 얼굴에 끼얹었다. 지금 중요한 건 남자가 아니었다.서우.채무 소송. 그리고 이 방송을 끝까지 버텨 받을 출연료.그때 탈의실 쪽에서 작은 소리가 났다.찰칵. 서령의 눈이 떠졌다.샤워기 물을 잠갔다.다시. 아주 작은 전자음.서령은 수건을 몸에 두르고 샤워칸 밖으로 나왔다. 천장 쪽이 아니라, 세면대 아래 청소도구함 틈에서 휴대폰 카메라 렌즈가 보였다.누군가 청소용 수건 사이에 스마트폰을 세워두고 녹화를 켜놓은 상태였다. 서령의 손끝이 차가워졌다.어제와 같은 장비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훨씬 단순하고 노골적이었다.그녀는 직접 만지지 않았다. 벽에 붙은 비상호출 버튼을 눌렀다.“보안팀 불러주세요. 촬영 제외 구역에 휴대폰이 있습니다.”문밖에 있던 여성 스태프가 즉시 들어왔다. 10분 뒤 스파는 폐쇄됐다.***문제의 휴대폰 주인은 빠르게 확인됐다. 리조트 하우스키핑 외주 직원.본인은 잃어버린 휴대폰이라고 주장했지만, 기기에는 촬영 직전 스파 출입문을 찍은 영상이 남아 있었다. 리조트 측은 경찰 신고를 결정했다.촬영팀도 해당 직원을 현장에서 분리했다. 그 과정에서 소식을 들은 차민혁이 스파 앞까지 뛰어왔다.“서령아.”그가 문 안으로 들어오려 하자 여성 스태프가 막았다.“여기는 여성 전용 구역입니다.”차민혁이 그대로 멈췄다.“한서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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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10화. 걸려온 전화
“수술이 확정된 건 아니라고요?”서령은 같은 말을 두 번 물었다. 이식 코디네이터의 목소리는 차분했다.― 네. 현재는 최종 적합성 검사 중입니다. 결과가 맞으면 서우 군이 이식 대상이 될 수 있습니다.“제가 지금 서울이 아니에요.”― 알고 있습니다. 보호자께서 당장 병원에 도착하지 못하셔도 수술 진행 자체가 지연되지는 않습니다. 동의 절차는 본인 확인 후 비대면으로 우선 진행할 수 있고, 병원에 등록된 가족 연락망도 확인돼 있습니다.그 말을 듣고서야 서령은 숨을 내쉬었다. ‘내가 못 가면 수술도 못 한다.’순간적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그동안 모든 걸 혼자 처리해왔기 때문이다.― 다만 상태 변화가 있을 수 있어서 연락은 계속 가능하게 해주세요.“네. 무조건요.”통화가 끝나자 다리에 힘이 풀렸다. 복도 벤치에 앉은 서령을 가장 먼저 본 사람은 강태욱이었다.“무슨 일입니까?”서령이 대답하려다가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서우한테…… 기증 심장이 나왔대요.”강태욱의 얼굴에서 장난기가 사라졌다.“수술은?”“검사 중이에요. 맞으면 바로 준비한대요.”차민혁과 서도현도 뒤늦게 다가왔다. 차민혁이 바로 말했다.“그럼 서울 가자.”서령이 고개를 저었다.“지금 섬 나가는 배가 중단됐어요. 바람 때문에.”“헬기는?”서도현이 끼어들었다.“기상 때문에 선박이 중단된 상황이면 헬기도 먼저 확인해야 합니다. 무리해서 움직일 이유 없습니다.”차민혁이 그를 노려봤다.“가족 수술인데 가만히 있으라고?”“수술은 보호자가 현장에 없어도 진행된다고 방금 들었잖습니까.”서도현의 목소리는 평소보다 낮았다.“지금 필요한 건 서령 씨가 연락 가능한 상태를 유지하고, 병원 안내를 정확히 받는 겁니다.”서령이 고개를 숙였다. 맞는 말이었다.그래서 더 괴로웠다. 자신은 지금 여기 있고, 열 살짜리 동생은 수백 킬로미터 떨어진 병원에서 혼자 검사를 받고 있었다.강태욱이 앞에 쪼그려 앉았다.“병원에 다시 전화해서 담당자 이름, 지금 단계, 다음 연락 시점을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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