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현주는 그가 접대하러 가면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는 것을 알고 전화를 걸어와 그에게 운전 조심하라고 당부하기는 하였지만 음주운전을 하지 말라고 일깨워 주지는 않았다.이렇게 둘을 비교해 보니 주형인은 마음이 편치 않았다.현주는 아직 어려서 남을 배려할 줄 모르는 것이니 이제 차츰 좋아질 것으로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주형인은 하예진이 세를 들어 사는 건물을 한참 더 쳐다보고는 차를 몰고 떠났다. 그는 일부러 꽃집에 들러 꽃다발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그가 집으로 돌아와 문을 열자 분노한 표정으로 소파에 앉아 있는 어머니가 보였고 아버지와 서현주는 거실에 없었다.그의 누나의 가족들은 아이들이 개학한 후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들 부부는 모두 실직한 상태라 그에게 일자리를 찾아달라고 부탁했었다.하지만 주형인 자신도 지금 일자리를 지키기 어려운 상황인데 어떻게 그들 부부의 일자리를 구해줄 수 있을까? 누나는 그가 서현주와 같이 있은 후로부터 재수가 옴 붙었다고 말하며, 누구든 서현주와 엮이기만 하면 재수 없게 변한다고 불평했다.그러고는 하예진에 대해 좋은 말을 하기 시작했다. 하예진은 뚱뚱하고 좀 못생겼긴 했지만, 남편의 기운을 좋게 해준다고 말했다. 주형인이 그녀와 결혼하고나서부터 그의 사업도 점점 잘 되고 운도 좋아져 오늘날과 같은 재산을 갖추게 된 것이라고 잔소리를 해댔다.주서인이 그에게 불평할 때면 목소리가 아주 컸는데, 서현주가 들을까 봐 두려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다. 서현주는 그것에 화가 나서 주서인과 한바탕 크게 싸운 후 주서인네 가족을 집에서 쫓아냈다.서현주는 주서인네 가족이 떠나지 않으면 집세의 절반과 식비 등을 더치페이해야 한다고 말하며 주서인을 화나게 했다.주형인은 누나와 서현주가 싸웠던 그날 밤을 떠올렸다. 그는 그날 혼신의 힘을 다해 중간에서 말렸고, 누나에게 돈을 주고 나서야 겨우 달래 남편과 아이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가게 했다.그는 서현주를 달래야 했을 뿐만 아니라 서씨 집안과 예물 문제로 계속 흥정해야 했다.서씨 집안
“넌 와이프 생각만 하고 이 어미는 까마득히 잊은 거야? 예전에 넌 이렇지 않았어, 넌 그 여우에게 홀리워서 이 엄마를 버리려 하는 거야. 아이고, 내 팔자야. 어떻게 이런 아들을 낳았을까, 어떻게 이런 여우를 며느리로 데려왔을까. 예진아, 참 후회되는구나, 이 시어미가 잘못했어. 그래도 네가 더 나아, 요리도 할 줄 알고, 집안일도 할 줄 알고, 나한테도 잘해주고 남편 운도 돋구어주고... 네가 있을 때 형인이의 일이 잘되고 재운도 좋아서 우리 가족 모두 행복하게 잘 살았었는데.”김은희는 진심으로 후회하고 있었다.“네가 떠난 후부터 형인이는 일도 잘 안되고 수입도 안 좋고 서인이네도 실직당하고, 나 같은 노인네는 매일 괴롭힘을 당해... 아이고, 얼마나 후회스러운지 몰라.”김은희는 통곡하면서 아들의 불효를 비난하며 하예진이 있을 때 잘 지냈던 가족생활을 그리워했다.김은희뿐만 아니라 주서인도 후회하고 있었다.비교가 없으면 상처받을 일도 없다고, 예전에는 그저 하예진이 쓸모없다고만 생각되어 주형인과 갈라지기만 고대했는데, 주형인이 서현주와 함께하고 난 후로부터 서현주는 결코 호락호락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주형인의 도발에도 서현주는 호되게 반박하곤 했다.심지어 김은희가 주서인 편에 서서 말을 할 때면 서현주는 김은희에게 앞으로 딸의 꽁무니만 따라다니며 노후를 보내라고 소리치곤 했다.‘힘이 있을 때는 자기 딸만 거들어 주고, 정작 자기 며느리는 상관하지도 않고, 심지어 집에 좋은 것이 있으면 딸에게 보태주더니... 이젠 힘이 없으니, 아들과 며느리가 자신의 노후를 돌보게 하려 하다니, 꿈도 꾸지 마!'만약 시부모가 계속 이렇게 자신을 대접해주지 않고 딸만 도와준다면, 서현주는 주형인이 자기 부모를 어떻게 대하든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자기는 시부모가 낳은 친자식이 아니니 그들의 뒷바라지를 할 의무는 없다고 말하였다.주경진과 김은희는 이 말을 들은 그 순간 너무 화가 나서 쓰러질 뻔했다.“엄마, 그만 해. 밖에서 일하는 것
“엄마도 예진이한테 가서 자꾸 하소연하지 마. 집안 허물은 밖에 소문내지 않는 거야. 엄만 이 연세 먹고도 몰라? 그러면 예진이가 엄마를 불쌍해한다고 생각해? 오히려 깨고소할 뿐이지.”주형인은 마음속 불만을 단숨에 털어놓았다.김은희는 얼굴이 새파랗게 질려 한 마디도 대꾸하지 못했다.“엄마, 잘 생각해 봐.”주형인은 말을 마치고 돌아섰다.“너 어디 가는데?”아들이 나가려는 것을 보고 김은희가 물었다.“엄마는 내가 와이프에게 줄 꽃을 밟아 망가뜨렸잖아, 나가 하나 더 사오려고.”“...”주형인은 고개도 돌리지 않고 떠났다.다시 돌아온 후 엄마가 여전히 소파에 앉아 흐느끼는 것을 보고, 짜증이 난 주형인은 더 이상 상대하기 귀찮아서 새로 사 온 꽃다발을 들고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서현주는 한창 침대에 누워 휴대폰으로 동영상을 보면서 간간이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그가 꽃다발을 안고 들어오는 것을 보고 서현주는 휴대폰을 놓고 침대에서 뛰어내려 맨발로 주형인을 맞이했다.“여보, 오셨어요?”서현주는 사실 방금 방문 앞에서 주형인이 거실에서 시어머니를 비난하는 말을 엿들었다.남편이 자기편인 것이 기뻤다.“여보, 이 꽃다발은 당신한테 주는 거야, 오늘은 우리 신혼 첫날이잖아.”그는 또 장신구 함을 꺼내더니 그 안에서 금반지를 꺼냈다.“이건 내가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야.”서현주는 꽃다발을 받아 들고는 손을 내밀며 주형인더러 자기 손가락에 금반지를 끼워달라고 부탁하면서 애교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우리 신혼집도 꾸며야 할 텐데 돈 좀 아껴 써요, 우리 엄마 아빠한텐... 우린 뷔페 값만 드리면 돼요. 예물은 그저 성의로 조금만 드리면 되고요.”서현주는 마음을 재빨리 바꾸었다.주형인의 말대로, 부모님께 드리는 예물은 두 오빠한테로 돌아갈 것이다.주형인과 혼인신고를 하지 않았을 때는 부모님이 얼마나 많은 예물을 요구하던지, 모두 승낙하라고 주형인을 설득했었다.하지만 혼인 신고서를 받고 부부가 되고 나니 주형인의 모든 것이 다 자기 것이라고
서현주의 말에 주형인은 그녀를 끌어안고 키스했다.“여보, 이해해 줘서 고마워.”“우린 부부잖아요. 난 당신이 나와 함께 있을 때가 하예진과 지낼 때보다 더 행복하길 바라요.”하예진의 이름을 듣는 순간 주형인은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현주를 안고 침실로 들어갔다.한편, 산 정상의 별장.하예정은 밖에서 발이 부르틀 정도로 돌아다니다가 지쳐서야 집으로 돌아왔다.전태윤은 그저 묵묵히 그녀 뒤를 따랐다.그가 그녀와 얘기하려고 할 때마다, 그녀는 한마디만 했다.“사기꾼, 나한테서 떨어져요, 지금 당신이랑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떳떳하지 못한 전태윤은 묵묵히 그녀를 따라다닐 수밖에 없었다.집에 돌아왔을 때 하예정의 휴대폰은 이미 충전되어 있었다.충전기를 뽑고 휴대전화를 집어 들자 부재중 전화와 카톡 메시지, 문자 메시지가 쏟아졌다.“사기꾼, 충전기는 여기 둘 테니 와서 가져가요.”하예정은 차갑게 한마디 던지고는 테이블 위에 충전기를 올려놓고 휴대폰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갔다.“예정아...”전태윤은 가련한 목소리로 나지막하게 그녀의 이름을 부르며 뒤따라 올라갔다.하지만 하예정은 들은 척도 하지 않았다.하예정은 그들 부부의 방으로 돌아가지 않고 객실로 들어가 문을 잠갔다.“예정아, 아직도 화가 풀리지 않았어? 내가 어떻게 해야 화가 풀리겠어?”전태윤은 문을 두드리며 부드럽게 물었다.그는 그녀의 냉담함과 소외감을 견딜 수 없었고, 그녀가 입만 열면 자기를 사기꾼이라고 부르며 저항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전태윤은 정말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소정남에게 도움을 청했지만, 좋은 방법이 떠오르면 그때 다시 알려주겠다고 한다.하예정은 그 말에 답하지 않고 소파에 앉아 부재중전화를 확인했는데, 심효진 외에도 전씨 가문에서 온 전화가 있었다.카톡 메시지에도 전씨 가문에서 보낸 메시지가 가득했는데 안 봐도 전태윤을 위해 좋은 말을 하는 것이 뻔했다.‘무슨 할 말이 있다고, 온 가족이 날 속이고선...’
그녀는 전태윤뿐만 아니라 전 씨 일가족 모두에게 화가 나 있다.하예정은 먼저 언니에게 메시지를 보낸 후, 심효진에게 전화를 걸었다.“예정아.”심효진은 바로 그녀의 전화를 받았다.“너 지금 어때? 낮에 휴대폰이 계속 꺼져있던데... 내가 수백 번 전화를 걸었지만, 계속 꺼져있었어. 저녁에 겨우 전화가 걸리던데 전화를 안 받고...”하예정은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내 휴대폰 배터리가 나가서 자동으로 꺼졌어, 그래서 전화도 할 수가 없었고. 나중에 사기꾼의 충전기를 빌려서 배터리를 충전했어.”사기꾼...그녀의 말 속의 분노를 느낀 심효진은 그녀가 아직 화가 풀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당연히 화가 나겠지, 남편에게 그렇게 오래 속히웠으니...“아, 그랬구나, 놀랐잖아! 넌 괜찮아?”하예정은 잠시 침묵을 지키고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내가 괜찮다고 하면, 그건 거짓말이지. 괜찮지 않아, 나 너무 힘들어, 효진아. 지금 난 자유를 잃었어, 그 사기꾼이 날 별장에서 한 발짝도 떠나지 못하게 해. 언니가 나를 데리고 돌아가려고 해도 허락하지 않아.”“...그 사람 너무하긴 해, 글쎄 널 기절시켰다고 소 이사님한테 전화하더라.”이 일을 언급하자 하예정은 화가 치밀었다.“분명히 그 사람 잘못인데 내가 화를 내면 안 돼? 날 기절시키다니, 목이 부러지는 것 같았어! 내가 왜 이런 남자랑 결혼했지? 다 할머니 때문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날 속이고 계셨어. 만약 먼저 신분을 밝혔다면, 나는 차라리 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해 언니 앞에서 연기를 하면 했지, 절대 그 사람이랑 초고속 결혼을 하지 않았을 거야.”하예정은 분노에 차서 말을 이었다.“그들 가족 모두가 거짓말쟁이이야. 나는 당분간 그 사람을 용서할 생각이 없어! 그리고... 집안 차이도 너무 커 이혼하고 싶어, 그의 재산 한 푼도 안 가지겠다고 이혼 합의서도 이미 다 작성했어! 하지만 그는 동의하지 않고, 이혼 합의서까지 다 찢어버렸어.”하예정이 이혼 합의서를 쓴 이유는, 하나는 속히
“소와 돼지는 시골에 가야 살 수 있어, 너무 머니 일단 사지 말고 닭과 오리만 큰 거로 사. 새벽에 우는 수탉을 많이 사, 시끄러워 죽게!”“알았어, 이 일은 나한테 맡겨!”전태윤의 별장을 동물원으로 만들어 버리면 그는 어떻게 나올지...“근데 예정아, 태윤 씨가... 아니, 그 사기꾼이 타협할까? 게다가 다른 별장도 많이 가지고 있을 텐데 널 다른 별장으로 옮길지도 모르잖아.”하예정은 침묵을 지키다 말했다.“그건 나도 잘 모르겠어, 하여튼 날 괴롭히면, 나도 똑같이 괴롭힐 거야.”“너희 둘 지금 원수 같아 보여.”하예정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소 이사님께 전태윤 씨를 말리라고 말했더니, 오히려 나보고 너를 설득하라는 거야, 전태윤 씨가 너를 속인 건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는 거라고. 혹시 네가 갑부 전씨 가문의 재산을 탐내는 여자는 아닐지 걱정되어 신분을 숨기고 너의 인품을 관찰하려 했대. 이사님은 전태윤 씨 쪽 사람이니 당연히 그를 위해 좋은 말을 하겠지... 하지만 난 네 절친이잖아, 네가 어떤 결정을 내리던 무조건 네 편이야!”잠자코 있던 하예정이 입을 열었다.“처음에 그가 신분을 속인 건 이해할 수 있어. 하지만 우리 둘의 감정이 깊어진 후에도 날 속인 건 정말 참을 수 없어. 심지어 그 사람이 정말 날 사랑하는지도 의심스러워, 이것도 날 속이는 건지 누가 알아? 그 사람은 하는 말마다 전부 다 거짓말이야. 그리고 소현 언니와의 일도 그래, 소현 언니가 우리 둘이 부부인 걸 알면 어떻게 생각하겠어...”“이건 네 탓이 아니지, 네가 그 사람 신분을 알고 그런 것도 아니잖아. 소현 언니도 우리 앞에서 전씨 그룹 큰 도련님이라고만 했지, 전태윤 씨라고 한 적이 없잖아. 누가 그 도련님이 네 남편인 줄 알았겠어?”그녀는 한숨을 내쉬었다.“소현 언니가 돌아와 이 모든 것을 알게 되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다행히 너희들 이제 사촌 자매가 되었으니, 좀 괜찮아지겠지?”하예정은 친형제도 반목할 수 있는데, 사촌 자매가 뭐 대수라고
“여보.”문을 여니, 조심스러운 미소를 짓고 있는 전태윤의 잘생긴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평소 늘 엄숙한 얼굴을 하고 있던 그가 갑자기 억지웃음을 지으니 가식적으로 보였다.“여보, 갈아입을 옷을 가져왔어.”전태윤은 두 손으로 옷을 받쳐서 들고 있었는데, 한 벌은 잠옷이고, 또 한 벌은 내일 입을 옷이었다.“내가 방안까지 가져다줄까?”하예정은 옷을 받아 들고 두 걸음 뒤로 물러서더니 방문을 쾅 닫아버렸다. 그를 들여놓을 생각이 조금도 없었다.“...”전태윤은 떠나지 않고 문어구에 서서 속으로 시간을 계산하며, 그녀가 다시 문을 열 거로 생각했다.과연, 2분도 안 되어,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그는 허리를 펴고 잘생긴 얼굴에 다시 미소를 지으며 그녀가 문을 여는 순간, 부드럽게 말했다.“여보, 뭐 더 필요한 거 없어? 편하게 말해, 오늘은 내가 다 서비스해 줄 테니.”“옷 서너 벌과 다른 생활용품도 더 가져다줘요.”“알았어, 조금만 기다려, 금방 가져다줄게.”빠른 걸음으로 돌아서 간 전태윤은 조금 지나 물건들을 가지고 다시 돌아왔다.“여보, 뭐가 빠졌는지 한번 확인해 봐, 내가 바로 가져다줄 테니.”얼추 살펴본 하예정은 다시 뒤로 물러서며 문을 닫으려고 했다.“여보”전태윤은 한쪽 다리를 문 안에 들여놓고 몸으로 그녀가 문을 닫지 못하도록 막으며 손을 비비며 애원했다.“여보, 비록 봄이라지만 요 며칠 날씨가 추워. 이 방에 보일러도 없는데, 당신 혼자 자면 추울 거야. 내가 당신의 보일러가 돼줄까? 절대 허튼짓하지 않을게.”하예정은 뻔뻔한 전태윤의 말에 어이없어 웃음을 지었다.이 사기꾼한테 이런 모습도 있다니...“여보, 제발 나란 보일러를 들여보내 줘. 봐, 방이 이렇게 큰데 당신이 창문을 닫아도 몹시 추울 거야. 지금 바로 이 보일러가 필요할 때잖아.”“필요 없어요! 당신 그 다리 치워요! 안 그러면 내가 닫는 문에 다리가 부러져도 상관 못 해요. 그럼 나도 당신을 버릴 이유가 생겨서 좋네요.”“여보!”“여보라고
전태윤의 낯빛이 어두워졌다.“예정아, 나도 모든 걸 속인 건 아니야. 어떤 말은 진심이었어. 널 사랑한다는 말은 무조건 진심이야.”“그래요, 사랑하겠죠. 날 속이는 걸 사랑할 뿐이죠. 비켜요! 안 비키면 다리를 확 부러트릴라!”하예정이 싸늘하게 말을 내뱉은 후 문을 확 닫았다.전태윤은 감히 고육지책을 쓰지 못하고 얌전히 발을 거두어들였다. 그는 하예정이 방문을 안으로 잠그는 걸 덩그러니 지켜보았다.그는 한참 후에야 제방으로 돌아가 샤워를 마치고는 싱글 소파를 들고 다시 하예정의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이어서 이불까지 챙겨와 소파에 앉아서 문을 막고 자려고 했다.그가 잠든 후에 하예정이 몰래 빠져나가서 담벼락을 뛰어넘을까 봐 불안했던 것이다.아니나 다를까 하예정은 진짜 그럴 생각이 있었다.밤이 깊어지자 그녀는 몰래 문 쪽에 다가와 가볍게 문을 열었는데 전태윤이 글쎄 소파에 앉아 이불을 덮고 자고 있었다. 화들짝 놀란 그녀는 곧장 문을 닫았다.“사기꾼! 이 사기꾼아, 어떻게 문까지 막을 수 있어.”하예정은 그를 수만 번도 더 욕했지만 결국 아무 가망 없이 순순히 침대로 돌아갔다.기분이 상한 탓인지 그녀는 줄곧 악몽만 꿨다. 꿈에서 밤새도록 전태윤과 싸웠는데 다음날 깨났을 때 그녀조차 꿈인지 생시인지 헷갈렸다.눈가가 촉촉이 젖어있어 손으로 쓱 만져보았더니 눈물이 흥건했다.밤새 다투는 꿈을 꾸다 보니 아마도 꼬박 운 듯싶었다.그녀는 침대에 누워 멍하니 천장을 바라봤다.밤새 문 앞을 막고 있던 전태윤도 깨나서 방문을 두드렸지만 하예정이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그는 문 앞에 한동안 서 있다가 결국 소파를 들고 제 방으로 돌아갔다.“띠리링...”전태윤의 휴대폰이 울렸다.그는 액정을 힐긋 보더니 재빨리 전화를 받았다.“정남아, 좋은 방법 생각해놨어? 얼른 말해봐. 내가 어떻게 해야 예정이가 용서해줄까? 인제 그만 냉전 하고 싶단 말이야.”소정남이 물었다.“나 지금 전화 끊어도 돼?”전태윤의 낯빛이 확 어두워졌다.“태윤아, 너희 부부 지
“할머니, 제가 뭐가 똑똑해요, 전 진짜 멍청해요. 할머니야말로 대단하신 분이죠.”전이혁은 할머니께 아부하는 멘트를 던졌다.하지만 그것이 단순히 아부라고 할 수 없는 게, 할머니는 정말 대단한 인물이었다. 남들이 보기엔 전씨 가문 자손들은 이미 충분히 뛰어난 사람이었지만 그래도 할머니의 손바닥 안에서 벗어날 수는 없었다. 할머니는 마치 삼장법사였고 자손들은 손오공 같은 존재로 손오공이 아무리 강해도 삼장법사 앞에선 어쩔 수 없는 것이었다.“할머니, 저 진짜 꼼수 같은 거 부리지 않아요.”“그건 네 사정이고. 어떻게 하든 네 마음대로 해. 할머니는 이미 너에게 신붓감을 골라줬고, 대시하든 포기하든 그것 역시 너에게 달린 일이야. 1년이면 충분히 생각할 시간을 줬다고 생각한다.”“하지만 한 가지 경고할게. 지금까지 우리 전씨 가문에는 일편단심인 남자만 있었을 뿐 양다리를 걸치는 남자는 없었어. 네가 전씨 가문의 가풍을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전이혁은 최대한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알겠어요, 할머니. 저 이제 운전해야 해요. 도착해서 또 이야기 나눠요.”“그래, 운전 조심하고.”할머니는 전이혁에게 안전을 당부하고 전화를 끊었다.전화를 끊은 뒤, 할머니는 곧장 양씨 아저씨에게 전화를 걸었다.“양 집사, 내 생선은?”할머니는 자신이 잡은 생선을 혹시 다른 사람이 먹을까 봐 걱정하고 있었다.양씨 아저씨는 웃으며 대답했다.“어르신께서 구운 생선은 냄새가 정말 좋아요. 아무도 어르신의 생선을 뺏어 먹으려 하지 않으니 안심하세요.”그들 몇몇 자식들 따라 직원 숙소에서 지내는 할머니들은 전씨 할머니가 좋은 분인 걸 알고 함께 수다도 떨고 낚시도 하지만 전씨 가문의 중심인 전씨 할머니의 권위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러니 그들은 전씨 할머니의 물건을 건드리는 일은 없었다. 혹시나 건드렸다가 이곳에서 일하는 자식들에게 피해를 줄 수도 있었으니까.서원 리조트의 모든 직원은 훌륭한 대우와 복지를 받고 있었다. 산기슭에 지어진 숙소는 혼자인
두 사람은 함께 아침을 먹은 후, 방을 나섰다.그러자 집사는 전태윤이 다음에 올 때 묵을 수 있도록 스위트룸을 원래 상태로 정리하기 시작했다.도아영은 자신의 방으로 돌아가서 다시 잠을 청했다.전이혁은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고, 할머니가 전화를 받자 물었다.“할머니, 지금 어디 계세요?”“리조트에 있어. 무슨 일이야? 할머니 보고 싶어? 그렇다면 와서 할머니랑 같이 밥 한 끼 먹자.”그러더니 할머니는 한 마디 덧붙였다.“지금 생선이 막 익었어. 냄새 진짜 좋다.”전이혁은 의아해하며 물었다.“아침부터 생선 구워 드세요?”“너한테 말한 거 아니야. 친구들이랑 얘기 중이었어. 아침부터 생선 구우면 안 돼? 그리고 지금 아침도 아니잖아. 아홉 시도 넘었네, 해가 중천에 뜨려고 하고 있어.”“오늘 날씨도 풀렸고, 할머니는 친구들이랑 낚시 갔다가 지금은 잡은 생선 구워 먹고 있어. 소풍하는 느낌이라 꽤 괜찮아.”전이혁은 그 모습이 쉽게 그려졌다. 산 아래에는 맑은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고 물 아래에는 물고기와 새우들이 헤엄치고 있었다.할머니는 가끔 몇몇 직원들의 어머니들과 함께 낚시하곤 했었다. 냇가에는 큰 나무 한 그루 있었는데 그 아래에는 돌로 된 테이블이 몇 개 있어 할머니의 한마디면 집사는 바비큐 그릴을 가져와 그들이 직접 구워 먹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할머니가 말하길, 그들은 먹는 것보다는 굽는 과정을 더 즐겼다. 비록 직원이 구워줄 수도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사람이 구워주는 건 맛이 없다며 투덜대기도 했었다. 그리고 그들은 다 먹지 못할 때면 남은 건 직원들에게 나눠주기도 했었다.서원 리조트의 직원들은 모두 알고 있었다. 할머니는 권위를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막 대하지 않고 옆집 할머니처럼 따뜻하게 대해준다는 사실을.“할머니, 생선 더 잡아서 구워주세요. 저 지금 갈게요.”전이혁은 결심한 듯 할머니에게 진실을 털어놓으러 갈 생각이었다.“네가 와서 직접 잡아. 손질까지 하면 할머니가 구워줄게.”그러더니 할머니는 전이혁에게 물었다.“
“여긴 호텔 맞고, 당연히 아영 씨가 묵던 방일 수가 없죠. 어제 아영 씨가 취해서 방에 데려다줬는데 눕자마자 토하더라고요. 침대랑 바닥까지 모두 엉망이 돼서 어쩔 수 없이 다른 방으로 옮겼어요.”전이혁은 다시 자리에 앉더니 도아영에게 말했다.“아영 씨 술 취하면 정말 감당하기 힘들어요. 앞으로 술 좀 줄이는 게 좋을 것 같네요.”도아영은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입을 뗐다.“제가 전이혁 씨랑 함께 많이 마신 건 알겠는데 그 뒤로는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요. 그런데 그 술 진짜 맛있었어요. 제가 해주시로 돌아갈 때 한 박스만 챙겨줘요. 기분 안 좋을 때 집에서 한두 잔 마시려고요.”“아영 씨가 그 정도로 술이 부족하진 않을 텐데요?”전이혁은 도아영의 집에 좋은 술이 부족할 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니 그는 도아영의 말이 전혀 믿기지 않았다.“맞아요. 술이 부족한 건 아니에요. 하지만 전이혁 씨가 준 술은 부족하죠.”전이혁은 잠시 말문이 막혔다.“그래요. 아영 씨가 돌아갈 때 한 박스 챙겨줄게요. 그리고 관성 특산물도 좀 챙길 테니 같이 가져가요. 어찌 되었든 먼 길 왔는데 헛걸음하게 하면 안 되니까요.”도아영은 웃으며 대답했다.“맞아요. 헛걸음하게 만들면 안 되죠.”그러더니 그녀는 전이혁의 옆으로 다가가 소파에 기대어 앉았다.“전이혁 씨, 여기 꿀 있어요? 머리가 아파서 그러는데 저 꿀물 좀 타 주면 안 돼요?”“아까는 참을 만하다면서요?”전이혁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자리에서 일어났다.“일단 세수 좀 하고요. 그리고 타 줄게요. 아영 씨도 세수해요.”“목욕할 거면 아영 씨 방에 가서 해요. 여긴 우리 형이 자주 묵는 스위트룸인데, 아영 씨니까 형이 허락한 거지, 다른 사람이었으면 형수님이 부탁해도 절대 안 된다고 했을 거예요.”전이혁의 큰형과 형수님은 도아영이 할머니께서 정해준 자신의 신붓감이라는 걸 알고,이미 도아영을 가족이나 다름없이 생각하고 있었다.어젯밤, 전이혁이 그런 말을 했을 때 도아영은 살짝 기분이 상했었다. 하지만
전이혁은 얼른 도아영을 부축하더니 살짝 귀찮다는 듯이 물었다.“아영 씨, 또 왜 그래요?”“저... 화장실... ”도아영은 눈이 풀린 채 말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화장실 가고 싶어요?”도아영은 비틀거리며 제대로 걷기도 힘든 상태였고 전이혁의 표정은 점점 굳어지기 시작했다. 도아영을 혼자 화장실에 가게 둘 수도 없고 그렇다고 남자인 자신이 부축해서 데려가는 것도 난감한 일이었다.도아영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비틀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전이혁은 급히 그녀를 부축하며 다시 한번 물었다.“혼자 괜찮겠어요?”도아영은 묵묵부답이었다. 그녀는 이미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를 정도로 심하게 취해 있었다.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전이혁은 어쩔 수 없이 그녀를 부축해 화장실로 데려가야 했다. 전이혁은 가면서도 입으로는 끊임없이 투덜거렸다.그는 도아영을 화장실로 들여보내고 도망치듯 밖으로 뛰어나왔다.전이혁은 도아영이 나올 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10분이 넘도록 나오지 않았고, 노크를 해도 아무 반응이 없었다. 결국, 전이혁은 걱정된 마음에 문을 살짝 열어 안을 들여다봤지만 무슨 일인지 도아영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어? 어디 간 거야?’전이혁은 의심스러운 마음에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보았다. 그 결과, 도아영은 화장실 문 옆 벽에 기대어 앉아 있었다. 그러니 문틈 사이로 도아영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이 여자 진짜!”도아영의 모습을 보자, 전이혁은 앞으로 절대 그녀에게 술을 많이 마시게 하지 않으리라고 결심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전이혁은 앞으로 자신이 도아영과 함께 밥을 먹게 된다면 그녀에게 술을 마시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자신 말고는 도아영이 다른 누구와 함께 얼마나 마시든, 그건 전이혁이 상관할 바가 아니었다.전이혁은 안으로 들어가 도아영을 안고 나온 뒤, 그녀를 침대에 눕혔다.그는 원래 방으로 돌아가 쉴 예정이었지만, 도아영의 상태를 보아하니 도저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그날 저녁,
한편 호텔에서 도아영을 돌보던 전이혁은 전창빈의 메시지를 확인하더니 단독으로 그에게 음성 메시지로 물었다.[너 그 먼 곳까지 가서 가정 요리사를 하려고?]전창빈은 소파에 앉아 답장을 보냈다.[안 될 건 없지? 선우씨 가문의 가정 요리사 자리는 도전적이잖아. 내가 합격할 수 있을지 시험해 보고 싶었어. 다행히도 형 동생이 모든 경쟁자를 물리쳤지 뭐야. 난관을 하나둘씩 돌파했어.]전이혁이 회답했다.[요리사 하나 뽑는 걸 대통령 선거처럼 하는구먼. 얼마나 있을 계획이야? 설날도 얼마 안 남았는데 명절에는 안 오려고?]전창빈이 답장했다.[설날에는 아마 못 갈 것 같아. 여기 주인이 날 해고하면 그때나 갈 수는 있겠는지.]전이혁이 피식 웃었다.[네 실력으로는 해고당할 리가 없잖아. 네가 주인을 해고하는 게 더 말이 되겠다. 이해가 안 가. 왜 그 먼 곳까지 가려고 한 거야? 넌 사업도 있는데... 어디서 요리하든 다 마찬가지일 텐데 굳이 몇천 리나 떨어진 곳까지 갈 필요가 있나? 거기 추울 텐데 너 괜찮겠어?]전창빈이 대답했다.[우리 추위를 못 타본 것도 아니고. 형도 할머니에 의해 눈이 수북이 쌓인 산으로 버려지지 않았어? 내 얘긴 그만하고... 형은 어때? 우리 미래의 형수님께 구애하기 시작했어?]‘난 벌써 움직이고 있는데 형이 아직도 움직이지 않는다면... 내가 나중에 민아 씨와 함께 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러 갈 때 형은 대체 어쩌려고?’전창빈은 속으로 생각했다.전씨 할머니의 지팡이가 전창빈의 등짝을 때리지 않는다면 해가 서쪽에 뜨는 거나 다름없을 것이다.[말도 마라. 정말 귀찮아. 큰형수님이 오늘 저녁에 우리한테 밥 사주셨어.]전창빈이 웃으며 회답했다.[하하! 괴로웠겠네.][내 말이. 할머니께서 나에게 정해주신 그 여자분이 큰형수님을 찾아가 하소연했더니 큰형수님이 우리 두 사람에게 밥을 사주신 거 있지.][형이 우리 형수님한테 무슨 짓이라도 했어?][아직 너의 형수님이 아니거든!]전이혁은 전창빈의 호칭을 정정했다. 그는 도아영과
“저는 앞으로 큰아가씨의 평가에 근거해서 요리 방법을 조정해 나갈 거예요. 그렇게 해야만 실력을 키울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만드는 모든 요리를 큰아가씨께서 만족해하시면 제가 여기에서 졸업할 수 있겠네요.”강진은 웃으며 대답했다.“그렇게 되면 큰아가씨께서 당신을 놓아주지 않을걸요.”‘평생 선우민아 씨를 위해 요리해 드리는 건 기쁜 일이지.'이 말을 입 밖으로 내뱉고 싶었지만 전창빈은 꾹 참았다. 이런 말은 입 밖에 내지 않는 게 좋을 것이다.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내면 오해를 살 수 있으니까. 설령 전창빈이 선우민아에게 애정 공세를 하는 것이 두 번째 목표라고 해도 이런 생각을 드러내서는 절대로 안 된다.선우민아가 가업을 운영한다는 건 그녀가 매우 유능한 인물이라는 증거다. 이렇게 강한 강한 여성은 쉽게 넘볼 수 없는 상대이다.전호영도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는 너무 힘들어서 하예정의 도움을 받은 끝에야 지름길을 택할 수 있었고 고현의 마음을 얻었다.강진은 그 말이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걸 깨닫고는 서둘러 화제를 돌렸다.“전창빈 씨, 오늘 오후 내내 바쁘셨는데 일찍 쉬세요. 내일 아침 큰아가씨를 위해 아침식사를 준비해야 합니다. 가장 일찍 아침을 드시는 분은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입니다. 민기 도련님은 학교에 가야 해서 일찍 식사하시고 큰아가씨는 매일 민기 도련님을 학교에 데려다주신 후 회사에 가시니까 두 분은 늘 함께 식사하시는 편이에요. 하여 아침 7시쯤이면 큰아가씨와 민기 도련님의 아침을 준비하시면 됩니다. 다른 분들의 아침은 9시 이후에 준비하시면 돼요.”전창빈이 말을 건넸다.“그 시간대면 아침과 점심을 함께 드시는 거네요.”“어르신과 사모님은 그렇죠. 점심 무렵에 일어나셨다가 식사 후에는 외출하셔서 저녁에야 돌아오세요. 때로는 안 오시기도 하는데, 그럴 땐 제가 미리 알려드릴게요. 안 오시는 날은 창빈 씨가 쉬는 거나 마찬가지죠. 그냥 자신의 배만 채우시면 돼요.”여기에서는 사실상 선우민아 자매만 아침을 먹는 셈이다.“큰아
동생 선우정아가 어이없어하는 모습을 보며 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었다.“알았어. 지금은 네가 전창빈 씨를 좋아하지 않는다 치더라도 앞으로 어떻게 될진 모르는 일이니까. 앞으로 매일 여기 와서 식사해. 전창빈 씨와 접촉할 기회도 많아져야 그에 대해 더 잘 알게 될 거 아니야. 만약 그가 정말 괜찮은 사람이라면 거리가 멀어도 너희 부모님께서도 어쩔 수 없이 동의하실 거야. 혹은 전창빈 씨에게 우리 지역에서 사업을 하게 하고 여기서 집을 사도록 하든가.”선우정아는 또 벙어리가 되어버렸다.선우민아가 이렇게 말하는 걸 보니 선우정아는 앞으로는 감히 그 집에 밥 먹으러 가기도 어려울 것 같다고 여겼다.선우민아가 자꾸 자신이 전창빈을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지 않는가.전창빈은 미래의 아내는 지금 미래 처제가 자기를 좋아한다고 오해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다.전이혁은 강진을 따라 숙소로 돌아갔다. 강진은 웃으며 축하의 말을 전했다.“전창빈 씨, 이제 우리는 동료가 되었군요. 오래 함께 일했으면 좋겠습니다.”선우씨 가문의 여러 집안이 같은 대저택 안에서 함께 살고 있었지만 집안마다 독립된 공간이 있었다.선우민아의 요리사는 자주 교체되는 편이었기에 강진 역시 1년 정도는 함께 일할 사람을 원했다.요리사와 친해지기도 전에 퇴직하는 경우가 너무 많았다.전창빈도 웃으며 말을 이었다.“저도 집사님과 오래 함께 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제가 요리들을 더 연구해서 큰아가씨께서 제 요리만 먹고 싶어 하도록 해야겠네요.”“큰아가씨께서 창빈 씨 요리만 고집하게 만들면 정말 대단한 거예요. 요리 대회에 나가면 ‘요리의 신'이라는 칭호를 받을 수 있을 만큼요.”선우민아의 입맛을 사로잡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전창빈은 웃으며 말했다.“‘요리의 신' 같은 건 관심 없어요. 저는 단지 제 요리 실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손님들을 만족시키고 싶을 뿐이죠.”전창빈은 그가 고용한 요리사들에게는 항상 조언을 해주곤 한다. 본인이 잘 배워야 현재 이끌고 있는 요리사들도
선우민아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저런 사업을 가진 사람을 네가 정말 좋아한다면 작은아버지와 숙모도 반대하지 않으실 거야. 다만 전창빈 씨가 관성 사람이라 우리랑 거리가 너무 멀어. 작은아버지와 숙모는 네가 먼 곳으로 시집가는 걸 아쉬워할 수도 있을 거야.”선우정아는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언니! 제가 몇 번을 말해야 알아들어요? 저는 정말 그런 마음 없단 말이에요. 오히려 저는 그분이 언니랑 잘 어울린다고 생각해요. 우리 자매 일곱 명 중 언니가 맏이라 당연히 언니가 먼저 시집가야죠. 제가 언니를 앞지를 순 없잖아요.”착각인지 정말 본 건지, 선우정아는 전창빈이 선우민아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특별한 시선이 느껴졌다.그리고 전창빈은 사실 정말로 선우민아를 위해 온 거였다.아니, 정확히는 선우민아의 까다로운 입맛을 만족시켜주기 위해 온 것이다. 그녀를 만족시킬 수 있다면 다른 손님들도 분명히 만족시킬 수 있을 테니까.선우정아는 생각했다. 선우민아처럼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은 많지 않을 거라고.선우민아는 손을 뻗어 동생의 볼을 살짝 꼬집으며 말했다.“우리 나이 차이도 얼마 안 나잖아. 게다가 사촌 자매이기도 하기 때문에 네가 나보다 먼저 시집간다고 해도 전혀 문제가 안 되거든. 나는 당분간 시집갈 생각 없어. 만약 고려한다 해도 이 지역의 사람일 거야. 생각해봐, 민기와 민수는 아직 몇 살밖에 안 됐는데 애들이 커서 사업을 이어받을 수 있을 때까지 적어도 20년은 더 기다려야 되잖아. 이 20년 동안 우리 자매는 계속 회사를 떠받쳐야 해. 만약 우리가 먼 곳으로 시집가면, 누가 회사를 이끌겠어? 셋째와 넷째에게 그런 능력이 있는지 지켜봐야 할 거야 아니야.”셋째 동생과 넷째 동생도 이제 성인이 되어 사업을 배우기 시작했지만 아직은 거대한 가업을 떠받칠 능력이 되지 못했다.하여 선우민아는 자연스레 먼 곳으로 시집갈 생각이 없었다. 시집을 간다 해도 A시의 남자에게 시집갈 것이다. 그래야 시집가서도 친정 회사를 계속 관리할 수 있으니까.앞으로 선우민기
전창빈이 말했다.“행동으로 보여드리죠.”선우정아는 눈썹을 치켜들며 웃었다.“전이혁 씨는 정말 자신만만하신가 봐요.”선우민아는 선우정아를 한 번 흘겨보더니 전창빈에게 물었다.“그럼 언제부터 출근 가능하세요?”“이 자리를 위해 온 만큼 언제든지 가능합니다.”선우민아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그럼 내일부터 정식으로 출근하세요. 강 집사님께서 이미 숙소를 준비해 뒀을 테고 월급은 내일부터 계산됩니다. 한 달의 수습 기간이 있고 수습 기간 중 급여는 일당으로 지급됩니다. 공짜로 일을 시키진 않을 거예요.“누구든 마찬가지로 하루 일하면 하루 급여를 계산해 주었다.“집사님께서 어제 이미 숙소를 준비해 주셨습니다. 급여는 어떻게 계산되든 상관없습니다. 전 도전을 위해 온 거지 월급을 위해 온 게 아니니까요.”전이혁은 돈이 부족한 게 아니었다. 아내만 부족할 뿐...“좋아요. 지금은 숙소로 가서 쉬세요. 우리 집에서의 하루 세끼 준비 시간은 집사님께서 알려주실 거예요. 아침을 제외한 점심과 저녁 식사 준비 시간은 변함없어요.”선우씨 가문의 사람들 아침 식사는 각자 일어나는 시간이 다르기 때문에 딱히 정해진 시간이 없었다.전창빈이 대답했다.“알겠습니다. 집사님께 여쭤보겠습니다.”그는 다시 모두에게 고개를 끄덕인 뒤 자리를 떠났다.전창빈이 떠나자 선우민아도 일어서서 가족들에게 말했다.“저는 아직 처리할 일이 있어서 나가봐야 할 것 같아요. 민기한테는 주말에 데리고 나가주겠다고 전해주세요.”선우민기는 그녀보다 스무 살이나 어렸기 때문에 남동생을 아들처럼 키웠다.선우민기는 선우민아를 무서워하면서도 잘 따랐다.선우정아도 그녀의 언니를 따라 일어섰다.“저도 일 보러 갈게요.”한경주가 딸에게 당부했다.“접대할 때 술 너무 많이 마시지 마. 몸에 해로워.”“엄마, 걱정하지 마세요. 저는 5년 전의 제가 아닌걸요.”선우민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다.회사를 막 이어받았을 때 그녀는 많은 사람에게 괴롭힘을 당했다. 그땐 위엄도, 경험도 없었고 회사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