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일범이 이윤미를 욕했다.“윤미야, 넌 우리를 생각해 준 적이라도 있어? 우리는 네 친오빠잖아. 우리가 전에는 너에게 잘해주지 못했지만 너에게 뭘 잘못한 것도 없어. 형제애를 좀 생각해 주면 안 돼? 너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다 내놓으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 우리는 회사에 발 디딜 곳도 없어. 하예진이 가주가 된다면 우리에게 살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그 여자는 칼도 들 필요 없이 그냥 우리를 회사에서 쫓아내면 돼. 그리고 소문을 퍼뜨리면 누가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겠어? 우리와 사업을 협력하는 사람은 모두 그 여자의 적이 되는 건데. 하예진의 배후에는 관성의 세 재벌가가 있고 강성의 고씨 가문과도 사이가 아주 좋아. 그런데 나중에 누가 감히 우리에게 일자리를 주겠어? 너는 능력이 있어서 스스로 먹고살 수 있겠지만 우리에게는 큰 능력이 없어. 먹여 살려야 할 가족도 있고 네 조카들도 학교에 다녀야 하고. 정말 돈이 많이 들어간단 말이야. 조카들이 커서 결혼하려면 집도 사줘야 하는데. 너는 너의 명성만 생각하고 우린 안중에도 없다 이거지? 좋은 명성이 너에게 뭘 가져다주겠어? 밥이 되는 것도 아니고.”이윤미는 커피잔을 들고 걸어가 그들의 맞은편에 앉았다.여전히 담담한 태도였다.그녀가 드디어 입을 열었다.“더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다 말해. 나는 그냥 듣기만 하면 되니까.”하지만 이윤미는 오빠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이은화가 살아 있을 때도 그녀의 결정을 좌우하지 못했다.친부모 중에서 이은화만 진심으로 이윤미를 대해주었고 그녀를 진정으로 생각해 주는 사람이었다.이윤미는 그런 어머니의 말도 듣지 않았는데 아버지와 오빠들의 말은 더더욱 듣지 않으려 했다. 그녀는 이은화가 살아 있을 때 은근히 자신에게 세 오빠를 혼내라고 말씀하셨다는 사실을 오빠들에게 알려주지 않았다.어쨌든 이은화는 그들을 낳고 길러주신 어머니였기에 직접 낳은 아들들에게 결코 독하게 대할 수 없었다.이윤미 역시 잔인한 사람은 아니었다. 오빠들이 너무 지나치게 행동하지 않는다
방윤림이 이윤미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애정이 가득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감출 수 없었다.방윤림은 매우 훌륭했다. 정일범 형제들은 방윤림을 볼 때 예의를 갖추었지만 속으로는 방윤림을 깔보았다.그는 도혁찬과는 전혀 달랐다. 도혁찬은 이은화의 오른팔이자 그들이 자라는 것을 지켜봐 온 어른이었기에 그들은 도혁찬을 깔볼 수 없었고 오히려 존경했다.그러나 방윤림은 그들과 같은 세대였고 심지어 나이도 그들보다 어렸다.정일범은 방윤림을 경멸했다.방윤림이 이윤미의 비서가 되는 것은 괜찮았다. 그것은 기지에서 보내준 사람이고 그들이 막을 자격이나 권한은 없었지만 여동생이 방윤림과 연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은 정말 못마땅해했다.그들은 방윤림이 동생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그들 남매가 아무리 친하지 않아도 어쨌든 같은 부모를 둔 친남매였다.정일범은 당연히 동생이 권세 있는 남자와 결혼하여 미래에 든든한 매부에게 의지하기를 바랐다.이윤미는 오빠들의 맞은편에 앉았다.정일범의 말을 들은 그녀는 눈썹을 치켜들고 되물었다.“방 비서가 어때서? 방 비서는 오빠들보다 더 훌륭해. 부모도 없는 고아이긴 하지만 그가 원한다면 자신의 능력으로 사업을 시작해서 성공할 수도 있거든. 난 방 비서가 좋은데. 왜 그래? 방 비서는 엄마도 만족하는 사람이야. 엄마가 방 비서를 찾아와서 나를 방윤림에게 부탁했어. 오빠들은 내 안목을 믿지 못할지라도 엄마의 안목도 믿지 못하겠어? 게다가 이건 내 개인적인 일이야. 내가 결정해야 할 일이야. 그리고 방 비서는 내가 찜해 놓은 남자야. 난 그 사람 아니면 안 돼.”이은화가 살아생전에도 이윤미를 통제할 수 없었는데 하물며 그녀가 세상을 뜬 지금 그들 형제가 어찌 이윤미의 일에 간섭할 수 있겠는가.이윤미는 자신의 결혼에 대해 아주 단호하게 생각했고 누구도 그녀의 결혼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그래, 엄마도 인정하셨으니 나도 할 말은 없어. 나는 그저 오빠로서 너에게 더 나은 남자를 만날 수 있는데 굳이 방윤림을 선택할 필요
“그래, 윤미를 찾아가자. 지금 바로 가자. 오늘 회사로 갔을 거야.”두 동생은 정일범의 말에 동의했다.저택에 들어가지 못한 삼 형제는 결국 씁쓸하게 떠났다.그들은 기세등등하게 회사로 돌아가는데 이씨 그룹 입구에서 하예진의 차가 회사에서 나오는 것을 보았다.하예진이 또 이윤미를 찾아갔다.정일범은 하예진이 이가 갈릴 정도로 증오했고 그녀의 차를 들이받고 싶었다.하지만 하예진의 안전을 지키는 두 대의 경호원 차와 이제 노동명까지 왔으니 그들 형제는 화가 나도 감히 하예진에게 손을 대지 못했다.이은화가 살아 있을 때도 처음에는 하예진에게 손을 쓰기 어려웠다.훗날 이은화가 살의를 품은 계기는 다름 아닌 한성근이 살아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부터였다.안타깝게도 이은화는 실패했고 그녀와 도혁찬은 모두 죽었다. 그들 대가족은 이은화의 죽음과 함께 결국 흩어졌다.정군호는 권세가 없고 무능하여 아버지의 신분을 내세워도 이윤미를 누를 힘이 없었다.이윤미는 정군호의 체면을 신경도 쓰지 않았다.차에 타고 있던 하예진도 정군호 형제들을 보았다.묻지 않아도 그들이 이씨 가문의 저택 쪽에서 왔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하예진은 차를 멈추지도, 창문을 열어 인사하지도 않았다.이은화의 네 자녀 중 하예진은 이윤미만을 존중해주었다.정군호와 그의 세 아들에 대해 그녀는 마음에 담아두지도 않았다.강성으로 오기 전에 전태윤과 이경혜는 이은화의 자녀들을 철저히 조사했고 이윤미에 대한 일부 사실을 제외하고는 다른 자료들은 전부 하예진의 손에 전달되었다.그녀가 강성에 올 때 미리 상황을 익숙해지게 하려는 의도였다.정일범 형제는 회사 입구에 차를 세워 두고 하예진의 차가 완전히 사라진 뒤에야 비로소 회사 안으로 들어갔다.십 분 후.이윤미가 사무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그녀는 회의 일정이 있었다.순간 사무실 문이 거칠게 열렸고 그녀의 비서가 세 사람을 막으려 했지만 막지 못했다.막 나오려던 하예진을 본 비서는 미안한 듯 말했다.“대표님, 정 사장님께서 꼭 대표님을
비록 이경희가 두 딸을 남겨두었지만 두 아이 모두 현재 아주 잘 지내고 있었다.이경희의 일찍 죽음은 한성근에게 여전히 큰 죄책감을 안겨주었다.“집 안으로 들어갑시다. 강성의 겨울은 너무 춥네요. 잠시 산책하고 나니 몸이 덜덜 떨려요.”성문철이 웃으며 말했다.“나이가 들어서 그래요. 추위를 견딜 수가 없는 걸 보면요.”젊었을 때는 성문철은 스키를 타러 다니며 추위를 견딜 수 있었지만 나이가 들면서부터 추운 곳으로 가는 것을 좋아하지 않게 되었다.그는 관성에서 겨울을 보내기를 좋아했다. 영하를 오가는 다른 지역과 달리 관성의 겨울은 영상으로 넘나드는 온난한 날씨가 이어졌다.“네. 집 안으로 들어가요.”한성근은 이경혜 부부가 자신을 부축하여 본채 쪽으로 걸어가는 것을 허락했다.날씨가 추워서인지 아니면 그의 소원이 이루어져 기력이 약해져서인지 그는 몸이 좀 허약해진 것을 느끼며 걷기 위해서는 누군가의 부축이 필요했다.정겨울은 매일 와서 그의 맥을 짚어주었다.한성근은 몰래 정겨울에게 부탁했다. 새로운 가주가 확정되고 자리를 잡을 때까지만 살게 해달라고.그래야 안심하고 이은숙을 만날 수 있다고 생각했다.정겨울은 한성근을 꾸짖고 싶었지만 그녀는 의학을 배우는 사람이라 그의 상황을 잘 알고 있었다.그의 부탁을 듣자 정겨울은 결국 한숨을 쉬며 그에게 이경혜와 하예진 자매를 생각해서라도 오래 살아야 한다고 타일렀다. 그녀들은 전부 이은숙의 후손이었다.하예정이 임신 중인데 그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보고 싶지 않을 리 있겠는가.이경희의 딸들이 모두 엄마가 되었고 아주 행복하다는 것을 알았으니 한성근은 이은숙을 만나러 가도 죄책감을 조금이나마 덜 수 있을 것이다. 또한 하예진이 곧 노동명과 결혼하게 된다. 한성근은 어른으로서 그들의 결혼식에 분명 참석하고 싶을 터였다.그러나 한성근은 웃으며 그러고 싶긴 하지만 오히려 가주를 더 만나고 싶다고 말했다.그는 이은숙의 원수를 갚고 그녀의 딸 이경혜도 찾았다. 그런데 이경혜의 지나친 정성이 도리어 그에게 버리
“아저씨, 밖이 추운데 우리 집 안으로 들어가요.”이경혜가 한성근에게 말했다.한성근은 정원을 둘러보더니 결국 정씨 집안 형제들에게 시선이 머물렀다. 잠시 후 그는 이경혜에게 말을 건넸다.“아가씨, 이틀 뒤에 우리도 돌아가요. 이곳에 추억이 많긴 하지만 우리 가주님께서 살아나지 못하잖아요.”그는 여기서 며칠 머물며 추억을 되새기고 싶었다.그러나 오래 머물 생각은 없었다.이씨 가문의 저택은 이씨 가문의 가주와 그 가족들이 사는 곳이다.역대 가주들은 딸들이 대대로 가문을 이어받았기에 그녀들은 줄곧 이곳에 살아왔다.이은화는 자매를 죽이고 가주가 되었기에 이씨 가문의 가법을 깨뜨렸다. 하여 모든 것이 정상 궤도로 돌아갈 때 이윤미가 가주로 되지 않는 한 이은화의 가족들은 이사 가야 했다.비록 이윤미가 가주로 된다고 해도 그 저택에서 미래를 이어갈 사람은 그녀의 자녀들이지 결코 그녀의 형제들은 아니었다.따라서 정일범 일행은 이씨 가문의 저택에서 이사해야 하고 마음대로 이씨 가문의 저택을 출입할 수 없는 것도 마땅했다.게다가 그들이 지금 온 이유는 저택에서 값진 물건들을 훔쳐 가고 돈을 챙겨 도망가려 하는 것이 아닌가.그들은 이윤미의 결정을 미리 예측했던 것이다.이은화의 아들들은 그녀의 원한을 이어받은 듯했다.그렇다고 해서 무엇인들 달라지랴! 그들 형제가 아무리 불만이 가득해도 이은화는 이미 패배했고 이씨 가문의 인심조차 모두 잃은 신세가 되고 말았는데...그들은 이은화가 연회를 열었던 날 밤, 저택에 불을 질러 함께 죽으려 했음을 알기에 더는 이은화를 지지할 마음이 없었고 또 그로 인해 이윤미도 지지할 수 없게 되었다.그들의 눈에는 이윤미는 여전히 이은화의 친딸이었다.이경혜 일행은 유능하고 인맥도 좋지만 여전히 이윤미를 경계하고 있었다.정일범 형제들은 이경혜 일행과 비교도 되지 않았고 강성에 오래 살았기에 이윤미를 더욱 경계해야 했다. 만약 이윤미가 가주가 된다면 그들은 이윤미가 계속해서 그들에게 해를 입힐까 봐 걱정해야 할 터였다.이윤
이은화의 마음속에서는 그 소장품들을 반드시 차기 가주에게 물려주어야 한다는 생각이 여전히 자리하고 있었다.정일범 형제들이 아무리 소란을 피워도 이씨 가문의 저택 대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정일범은 이경혜 부부가 한성근과 함께 정원에서 산책하는 것을 보았지만 세 사람은 그들 형제를 무시했다.이제 정일범 형제도 어머니를 잃는 아픔을 겪게 되었다.이은화가 살아 있었을 때 그들은 이씨 가문의 도련님이었다. 성이 이씨가 아니었어도 부모님을 따라 이씨 가문의 저택에 살며 풍요로운 생활을 누렸다.이 큰 저택은 그들이 자유롭게 출입하는 곳이었다.정일범은 이곳이 바로 자신의 집이라고 생각했다. 여기서 태어나고 자랐는데 왜 그의 집이 아니겠는가.결혼 후에도 이은화가 그들에게 모두 신혼집을 사주었지만 형제들은 여전히 이곳에 사는 것을 좋아했다. 그들의 작은 별장은 이씨 가문의 저택에 비할 수도 없었으니까.그들은 이곳에서 평생을 살 수 있을 거라고 착각했다.이은화가 세상을 뜨면 이윤미가 뒤를 이어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친동생이 가주이고 이씨 가문의 저택에 살 자격이 있다면 그들도 당연히 이곳에 살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그러나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이윤미 그 계집애가 이씨 가문의 모든 것을 이어받지 않고 이경혜 일행이 이씨 가문의 저택에 들어오도록 내버려 두었다는 것을.그 결과 그들은 이제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불가능해졌다.이씨 가문의 저택에는 수많은 소장품과 귀중한 보물이 있었고 아무거나 몇 개를 훔쳐 팔면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정군호는 그들에게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어떻게든 더 많은 것을 챙기라고 제안했다.이윤미가 가주가 되든 하예진이 가주가 되든 그들 형제는 이씨 가문의 재산을 나누어 받지 못할 것이고 이은화의 개인 재산은 그녀의 유언에 따라 분배되어야 할 것이며 대부분 이윤미에게 돌아갈 것이다.그들 형제는 별로 얻는 것이 없어 불만이 가득했다.하여 정군호는 아들들에게 저택으로 돌아가 물건을 훔쳐 돈으로 바꾸라고 제안했다.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