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금요일 오전 8시 20분.은소예는 식탁에 앉아 작은 메모지 5장을 펼쳐놓고 있었다.신시안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여보, 아침부터 무슨 시험 공부해?”“사인 문구 고민 중이야.”“어제 서점에서 부탁받았다는 거?”“응. 책마다 다른 문장을 써달라는데, 받는 사람이 누군지도 모르잖아.”시안은 메모지를 살펴봤다.“그럼 누구에게나 어울리는 문장을 쓰면 되지.”“그게 제일 어렵거든?”“왜?”“너무 평범하면 성의 없어 보이고, 너무 특별하면 상대방한테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시안은 의자를 끌어와 앉았다.“그럼 받는 사람에 대해 물어봐.”소예가 고개를 들었다.“아.”“왜 그렇게 봐?”“당신 오늘 똑똑하다?”“평소에는?”“가끔 똑똑해.”시안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소예는 곧바로 서점 운영자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책을 선물받으실 분들에 대해 간단히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개인적인 정보까지는 필요 없고, 어떤 마음으로 선물하시는지만 알고 싶습니다.오후 12시 40분.서점에서 답장이 도착했다.책을 주문한 사람은 5명의 친구에게 선물할 예정이라고 했다.오랫동안 함께 지낸 친구들이지만 최근에는 각자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다고 했다.한 사람은 새로운 직장을 시작했고, 다른 사람은 오래 운영하던 가게를 정리했다.또 다른 친구는 새로운 취미를 배우기 시작했으며, 나머지 2명에게는 특별한 이유 없이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소예는 내용을 읽고 미소 지었다.“이 정도면 충분하겠네.”그녀는 메모지에 문장을 하나씩 적기 시작했다.새로운 곳에서도 당신다운 하루를 만들어가기를.오래 지켜온 시간을 내려놓는 일도 용기라고 생각합니다.처음 배우는 즐거움을 오래 간직하시길.마지막 2장은 조금 더 고민했다.소예는 한참 후 펜을 움직였다.함께한 시간이 길어질수록 고마운 마음을 더 자주 전하고 싶습니다.특별한 날이 아니어도 당신을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는 걸 기억해 주세요.그녀는 문장들을 다시 읽었다.이번에는 마음에 들었다.토
일요일 오전 10시 40분.은소예는 거실 소파에 앉아 전날 출간 기념 모임에서 적었던 노트를 펼쳤다.《책에 없는 이야기》제목 아래에는 아직 3문장밖에 없었다.소예는 펜을 들었다가 내려놓았다.“이상하네.”주방에서 과일을 깎던 신시안이 물었다.“뭐가?”“어제는 쓰고 싶은 게 엄청 많았는데, 막상 쓰려고 하니까 잘 안 써져.”“어제 많이 이야기해서 그런 거 아니야?”“그럴 수도 있고.”시안은 접시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았다.“그럼 오늘은 쉬어.”“당신은 내가 조금만 고민하면 쉬라고 하더라?”“일요일이니까.”소예는 사과 한 조각을 집어 들었다.“그럼 오늘은 책 얘기 안 할게.”“좋아. 대신 오후에 나랑 나가자.”“어디?”“가구 보러.”소예가 눈썹을 올렸다.“당신 또 의자 사려고?”“이번에는 조명.”“집에 조명 많잖아.”“작업실에 놓을 거야.”소예는 웃었다.“그럼 나도 구경할래.”오후 2시 20분.두 사람은 오래된 가구와 조명을 취급하는 매장에 도착했다.시안은 황동 소재의 작은 스탠드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이거 괜찮지 않아?”소예는 가격표를 확인했다.“괜찮긴 한데 가격도 상당히 괜찮네.”“오래 쓸 수 있잖아.”“그 말은 비싼 물건 살 때마다 하는 거 아니야?”시안이 웃었다.“당신도 가방 살 때 그러잖아.”“내 가방은 건드리지 마.”소예는 다른 쪽으로 걸어가다가 작은 유리 화병을 발견했다.연한 녹색 유리에 불규칙한 기포가 들어 있었다.“여보, 이것 좀 봐.”시안이 다가왔다.“예쁘네.”“SOYE'S ROOM 책장 위에 놓으면 좋겠다.”“그럼 사.”“당신은 왜 이렇게 쉽게 사라고 해?”“마음에 든다면서.”소예는 화병을 손에 들고 한참 살펴봤다.“오늘은 구경만 하려고 했는데.”결국 두 사람은 조명 하나와 화병 하나를 들고 매장을 나왔다.월요일 오후 1시 10분.NEXT ONE 구내식당.공차연이 소예의 맞은편에 앉았다.“본부장님, 출간 행사 잘 끝나셨어요?”“네. 생각보다 재미
금요일 오후 6시 20분.은소예는 퇴근하자마자 SOYE'S ROOM으로 들어갔다.책상 위에는 출간 기념 모임에 사용할 질문 카드와 자신의 책 《은소예의 작은 문장들》이 놓여 있었다.내일 오후 3시.독립서점에서 첫 출간 기념 모임이 열린다.소예는 참석자 명단을 다시 확인했다.신청자는 8명.그중 한 사람이 남긴 질문이 여전히 마음에 걸렸다.책에 등장하는 남편은 실제 신시안 대표님인가요?소예는 노트에 적어둔 답변을 읽었다.“이 책은 남편에 관한 책이 아니라, 제가 살아온 시간에 관한 책입니다.”입 밖으로 소리 내어 읽자 어딘가 딱딱했다.“이건 너무 기자회견 같잖아.”그때 문이 열렸다.“무슨 기자회견?”신시안이었다.소예는 노트를 덮었다.“내일 질문받을 거 연습하고 있었어.”“그 질문 때문에?”“응. 당신이랑 재혼한 건 이미 알려져 있으니까 숨길 생각은 없는데, 내 책보다 그쪽으로 관심이 쏠리는 건 싫어.”시안은 책상에 기대섰다.“그럼 책에 쓴 만큼만 대답해.”“그렇게 간단해?”“당신이 공개하고 싶은 만큼만 이야기하면 되는 거잖아.”소예는 잠시 그를 바라봤다.“당신 말이 맞네.”“가끔은 맞는 말도 해.”“가끔?”“자주 한다고 하면 당신이 싫어하잖아.”소예가 웃음을 터뜨렸다.토요일 오후 2시 40분.독립서점 안쪽에는 둥글게 의자 8개가 놓여 있었다.소예는 테이블에 책과 작은 카드를 정리했다.서점 운영자가 다가왔다.“작가님, 신청하신 분들 거의 다 오셨어요.”“네. 준비 끝났습니다.”“오늘은 제가 간단히 소개만 하고 진행은 작가님께 맡길게요.”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그때 시안이 서점 문을 열고 들어왔다.그는 책 진열대로 향하더니 소예의 책 한 권을 집었다.소예가 다가갔다.“여보, 또 사려고?”“응.”“집에 이미 있잖아.”“이건 서점에서 사는 거야.”“그게 그거지.”시안은 계산대로 향했다.“오늘은 관객이니까.”소예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정말 못 말린다니까.”오후 3시.출간
수요일 오전 8시 20분.은소예는 식탁에 앉아 출간 기념 행사 기획서를 살펴보고 있었다.신시안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여보, 어제 말한 행사 준비하는 거야?”“응. 그런데 제목부터 너무 거창하게 지었나 싶어.”“《한 권의 책, 서른 개의 이야기》?”“응. 책은 30권인데 이야기도 꼭 30개여야 하나 싶어서.”시안은 맞은편에 앉았다.“꼭 그럴 필요는 없지 않아?”“그렇긴 한데 제목 때문에 사람들이 30명이나 모여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잖아.”“그럼 제목을 바꾸면 되지.”소예는 잠시 고민하다가 기획서 제목을 수정했다.《한 권의 책, 당신의 한 문장》“이건 어때?”“좋은데. 참여하기도 편해 보이고.”“나도 이게 더 마음에 들어.”소예는 기획서를 저장했다.목요일 오후 12시 40분.NEXT ONE 사내 휴게실.공차연이 소예의 맞은편에 앉았다.“본부장님, 책은 언제 나와요?”“다음 주쯤이요.”“출간 행사도 하신다면서요?”소예가 웃었다.“소문이 벌써 났어요?”“도윤 씨한테 들었어요. 본부장님 책 나오면 사겠다고 하던데요.”“아직 가격도 안 정했는데.”공차연은 샌드위치를 내려놓았다.“저도 살 거예요. 그런데 회사 사람들이 다 사겠다고 하면 어떻게 하실 거예요?”“그건 좀 곤란하죠.”“왜요?”“직원들이 본부장 눈치 보고 사는 건 싫거든요.”공차연이 웃었다.“저는 진짜 읽고 싶어서 사는 건데요?”“차연 씨는 믿을게요.”“그럼 사인도 해주세요.”소예는 웃음을 터뜨렸다.“책부터 나오고요.”금요일 오후 6시 30분.소예는 독립서점 운영자와 출간 기념 모임을 의논했다.“저는 책을 설명하는 시간보다 참석자들이 자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으면 좋겠어요.”운영자가 고개를 끄덕였다.“좋네요. 어떤 방식으로 생각하세요?”“책에서 마음에 드는 문장을 하나 고르거나, 최근 자신에게 있었던 작은 일을 이야기하는 거예요.”“참여 인원은요?”“8명 정도면 충분할 것 같아요.”“그럼 예약제로 진행하면 되겠네
월요일 오전 8시 10분.은소예는 식탁에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었다.신시안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여보, 아침부터 뭐 해?”“책 만들려고.”“벌써 결정했어?”“응. 일단 소량으로 만들어보려고.”시안은 맞은편에 앉았다.“몇 권?”“30권 정도 생각 중이야.”“생각보다 적네.”“처음부터 많이 만들 필요는 없잖아. 실제로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도 모르고.”소예는 독립출판 제작 안내서를 펼쳤다.“그리고 이번에는 내 돈으로 만드는 거야. 판매가 안 되더라도 감당할 수 있는 만큼만.”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은데.”“대신 당신한테는 한 권 줄게.”“돈 내고 살게.”소예가 눈썹을 올렸다.“남편한테까지 돈을 받아?”“첫 번째 고객이 되고 싶은데.”“그럼 정가로 받아야겠다.”“할인은 없어?”“없어. 작가님 책은 정찰제입니다.”두 사람은 웃음을 터뜨렸다.화요일 오전 11시.NEXT ONE 본부장실.소예는 지역 기록 사업의 인터뷰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다.김도윤이 말했다.“본부장님, 첫 번째 참여 업체에서 원고 수정을 요청했습니다.”“어떤 부분이요?”“가게가 어려웠던 시기에 관한 내용은 빼고 싶다고 하십니다.”소예는 해당 부분을 확인했다.“그럼 삭제해야죠.”“그런데 그 부분이 이야기의 중심이라서요.”“중심이라고 해서 당사자가 공개하고 싶지 않은 이야기를 넣을 수는 없잖아요.”김도윤은 고개를 끄덕였다.“다른 방향으로 수정하겠습니다.”소예는 자료를 덮었다.“그분이 지금 가게를 어떻게 운영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춰도 충분할 거예요.”수요일 오후 7시.소예는 독립서점을 다시 방문했다.서점 운영자는 인쇄 견본을 보여줬다.“이건 무선제본이고, 이쪽은 중철제본입니다.”소예는 두 권을 번갈아 펼쳤다.“얇은 책이면 중철제본이 더 나을까요?”“페이지 수에 따라 달라요. 지금 생각하시는 분량이라면 가능할 것 같습니다.”“종이는요?”“글 위주라면 지나치게 두꺼운 종이보다 읽기 편한 종이를 추
금요일 오전 8시 30분.은소예는 식탁에 앉아 독립서점에서 보내온 행사 안내문을 읽고 있었다.신시안이 커피를 내려놓으며 물었다.“낭독회 연락 왔어?”“응. 다음 주 토요일 오후 3시래.”“참여할 거야?”“아직 고민 중이야.”소예는 안내문을 넘겼다.참가자는 3명. 각자 자신의 글을 10분 정도 낭독하고 관객들과 짧은 대화를 나누는 방식이었다.“전시는 사람들이 알아서 글을 읽잖아. 그런데 이번에는 내가 직접 읽어야 하니까.”“글쓰기 모임에서도 읽어봤잖아.”“그때는 서로 아는 사람들이었지.”시안이 웃었다.“회사에서 발표할 때는 그렇게 당당하면서.”“회사 발표랑 내 이야기를 읽는 건 다르거든.”소예는 잠시 생각하다가 신청서를 열었다.“그래도 해볼래.”“결정했어?”“응. 해보지도 않고 걱정할 필요는 없잖아.”토요일 오후 2시.소예는 개인 작업실에서 낭독할 글을 고르고 있었다.처음에는 《아무도 나를 모르는 바다》를 선택했다.하지만 10분 동안 읽기에는 분량이 짧았다.그녀는 새로운 문장을 덧붙여 보다가 지웠다.“억지로 늘리니까 이상하네.”그때 시안이 작업실 문을 두드렸다.“여보, 아직도 원고 보고 있어?”“응. 글이 너무 짧아.”시안은 옆에 앉았다.“그럼 두 편 읽으면 되지 않아?”“두 편?”“응. 꼭 한 편만 읽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잖아.”소예는 안내문을 다시 확인했다.실제로 작품 수에 관한 제한은 없었다.“그러네.”그녀는 오래된 집 열쇠에 관한 글을 꺼냈다.“그럼 이걸 같이 읽어볼까?”시안은 원고를 살펴봤다.“두 글이 잘 어울리네.”“왜?”“하나는 혼자 여행했던 이야기고, 하나는 혼자 살던 이야기잖아.”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둘 다 나 혼자 보냈던 시간이네.”월요일 오후 4시 40분.NEXT ONE 본부장실.소예는 지역 기록 사업의 인터뷰 원고를 검토하고 있었다.김도윤이 말했다.“본부장님, 참여 업체에서 수정 요청이 들어왔습니다.”“어떤 부분이요?”“가게가 어려웠던 시기에 관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