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매주 목요일 새벽 여섯 시 십 분, 김밥 꼬다리만 사 가던 단골이 청혼했다. 그런데 그 남자의 할아버지가 해강그룹 회장이란다.
View More솔내시장에서 제일 먼저 불이 켜지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시장 사람 열에 아홉은 순옥이네 김밥이라고 답한다.
나머지 한 명은 떡집 할머니다. 할머니는 새벽 두 시에 떡을 찌니까, 사실 그 말이 맞다. 하지만 떡집은 셔터를 열한 시에 올리니 아무도 쳐주지 않는다.
아무튼 새벽 네 시 반.
입구에서 세 번째 가게, 순옥이네 김밥의 셔터가 반쯤 올라갔다. 그 밑으로 스물여덟 살 윤보리가 허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빨간 머리끈을 한 번 더 조이면서.
"자, 오늘도 백이십 줄."
혼잣말이지만 이 말을 안 하면 하루가 시작되지 않는다. 보리 나름의 출근 도장이다. 도장은 하나 더 있는데, 노란 앞치마 가슴께에 수놓인 «순옥이네» 글자를 손바닥으로 한 번 쓸어 주는 것이다.
밥솥 두 개가 칙칙 소리를 냈다. 보리는 큰 양푼에 밥을 퍼서 펼쳤다.
들기름 한 방울. 깨소금 한 줌. 소금 조금.
주걱은 세워서 자르듯이. 비비면 밥알이 운다. 이건 열두 살 때 엄마한테 주걱으로 손등을 맞아 가며 배운 것이다.
"밥을 비비지 말고 달래라, 달래!"
엄마 목소리가 머릿속에서 자동 재생됐다. 십육 년째 재생 중이다.
시금치, 당근, 달걀지단, 어묵, 햄. 그리고 우엉 두 줄.
다른 집은 단무지 넣는 자리에 순옥이네는 우엉을 두 줄 넣는다. 씹을수록 달아서, 단골들은 이걸 알고 온다. 모르고 온 손님도 두 번째부터는 안다.
김 한 장, 밥 한 주걱, 재료 가지런히.
말고, 누르고, 참기름 붓질.
한 줄에 사십 초. 시장에서 보리보다 빠른 손은 딱 하나, 보리 엄마 손뿐이다.
여섯 줄쯤 쌓였을 때 맞은편 셔터가 드르륵 올라갔다.
"보리 사장! 벌써 나왔나!"
곽씨네 반찬 곽 사장이다. 상인회장이고, 이 시장에서 목소리가 제일 크다. 경상도 사람이라 반가울 때도 싸우는 것처럼 들린다.
"사장님, 오늘 우엉 조림 있어요?"
"있다. 근데 오늘은 좀 비싸다."
"어제보다요?"
"어제보다 천 원."
"그럼 어제 거 주세요."
"어제 건 없다. 다 팔렸다."
"그럼 내일 거 미리 주세요. 내일은 천 원 싸게 하실 거잖아요."
"하이고, 저 주둥이. 순옥 씨 딸 아니랄까 봐!"
곽 사장은 결국 우엉 조림을 한 통 가득 담아 가게 문턱에 올려 두고 갔다. 계산은 월말에 몰아서. 솔내시장은 그렇게 돌아간다.
―
다섯 시 반부터 손님이 들었다.
첫 손님은 늘 청소 일 하는 박 씨 아주머니다.
"참치 둘이제?"
"응. 우리 영감 거 하나, 내 거 하나."
"아저씨 허리는 좀 괜찮으세요?"
"아이고, 그걸 어떻게 기억해 쌌노."
보리는 대답 대신 김밥 두 줄을 은박지에 쌌다. 기억하는 건 어렵지 않다. 사람 얼굴을 보면 그 사람 김밥이 먼저 떠오른다. 박 씨 아주머니는 참치 둘. 건너편 버스 기사님은 기본 셋에 단무지 따로. 학원 가는 쌍둥이는 햄 빼고.
여기서 잠깐, 보리에게는 김밥으로 외우는 손님이 한 명 더 있다.
여섯 시가 되면 보리는 스테인리스 쟁반 하나를 조리대 앞쪽으로 당겨 놓는다. 김밥 썰고 남은 양 끝, 꼬다리를 모아 둔 쟁반이다. 재료가 삐죽삐죽 튀어나와 못생겼지만 속은 제일 꽉 찬 부분.
원래는 식구들 점심이거나 시장 할머니들 간식이었다. 삼 년 전까지는.
여섯 시 칠 분. 보리가 은박 봉지를 꺼냈다.
여섯 시 구 분. 꼬다리를 한 줌 담았다.
여섯 시 십 분.
"안녕하세요."
딱 그 시각에 그 목소리가 들렸다.
권태오. 서른한 살. 남색 코트, 단정하게 넘긴 머리, 늘 조금 피곤해 보이는 눈. 삼 년째 매주 목요일 여섯 시 십 분에 나타나 꼬다리만 사 가는 남자다.
"오늘도 꼬다리요?"
"오늘도 꼬다리요."
태오는 봉지를 받고 천 원짜리 한 장을 계산대 동전통 밑에 끼웠다.
처음에 보리는 이 돈을 안 받았다. 꼬다리는 파는 물건이 아니니까. 그런데 이 남자가 석 달 내내 천 원을 몰래 끼워 두고 갔다. 결국 보리가 졌다. 그렇게 순옥이네 메뉴판에 없는 메뉴가 하나 생겼다. 꼬다리 한 봉지, 천 원.
그리고 일 년 전부터, 이 남자는 보리의 남자친구였다.
이 사실을 시장에서 모르는 사람은 없다. 모르는 척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오늘은 일 분 늦으셨네요."
"시계 보고 있었어?"
"아니요. 김밥이 알려 줬어요."
태오가 웃었다. 이 남자는 입보다 눈이 먼저 웃는다.
"보리야, 오늘 가게 몇 시에 닫아?"
"목요일이니까 두 시요. 왜요?"
"그럼 두 시에 다시 올게. 반차 냈어."
보리 손이 멈췄다. 연애 일 년 동안 이 남자가 반차를 쓴 적은 없었다. 데이트는 늘 밤 아홉 시 넘어서였다. 회사원은 원래 다 그런 줄 알았다.
"무슨 일 있어요?"
"두 시에 말할게."
태오는 목례를 하고 가다가 돌아섰다.
"보리야. 오늘 머리끈 새로 샀어?"
"아니요. 원래 이거예요."
"그래? 오늘따라 더 빨개 보여서."
그 말만 남기고 갔다.
보리는 김 한 장을 찢어 입에 넣었다.
"저 사람 오늘 이상하다."
그렇다. 이상했다. 그리고 그 이상함은 오후 두 시에 폭발한다.
―
같은 시각, 시장 입구 대로변.
태오가 검은 승용차 뒷좌석에 타자 운전석의 비서 정우진이 백미러로 힐끔 봤다.
"본부장님, 또 그거 드십니까."
"응."
태오는 꼬다리 하나를 입에 넣었다. 우엉이 씹혔다. 달았다.
"오늘 두 시 일정 비워 놨습니다. 그리고 이거."
우진이 조수석 서랍에서 남색 벨벳 상자를 꺼냈다.
"금은방 사장님이 두 번 물어보셨습니다. 정말 이 글자가 맞느냐고."
상자 안에는 장식 하나 없는 은반지가 있었다. 안쪽에 작은 글씨.
«목요일 6:10»
"맞아."
"다이아몬드도 아니고 금도 아니고 새긴 글자가 그거라니까, 사장님이 걱정하시더군요."
"그 사람은 다이아몬드 끼고 김밥 못 말아."
우진은 더 묻지 않았다. 삼 년 동안 목요일마다 시장 입구에 차를 대 온 사람의 지혜였다.
―
아홉 시가 넘자 엄마 양순옥이 가게에 나왔다. 가게 간판의 그 순옥이다. 전라도 해남 출신이라 말끝이 살짝 올라간다.
"백이십 줄 다 쌌냐?"
"백십사 줄이요. 밥이 모자라서요."
"밥을 넉넉히 하라니께. 너는 꼭 딱 맞게 하드라."
"딱 맞아야 안 남죠."
"안 남으면 뭐 한다냐. 모자라서 못 판 손님은 어쩌고."
잔소리를 하면서 엄마는 벌써 쌀을 씻고 있었다. 엄마의 걱정은 늘 잔소리 모양으로 나온다.
뒤따라 아빠 윤만복이 들어와 계산대 앞에 앉았다. 개인택시 이십 년을 하다 허리 때문에 그만둔 뒤로, 배달과 계산이 아빠 몫이다.
"보리야, 목요일 청년 왔다 갔냐?"
"왔다 갔어요."
"천 원 두고 갔냐?"
"두고 갔어요."
"그 청년은 천 원을 참 성실하게 두고 가."
아빠는 동전통 밑에서 천 원을 꺼내 서랍 속 봉투에 넣었다. 봉투 겉에 아빠 글씨로 «목요일». 삼 년 치 천 원이 거기 다 들어 있다.
"아빠, 그거 아직도 모아요?"
"모아야제. 나중에 돌려줄지 축의금으로 줄지 봐서."
"아빠!"
"농담이다, 농담."
농담이라는데 얼굴은 진지했다. 아빠 농담은 원래 그렇다. 웃기려고 하는 건지 아닌지 본인도 모른다.
열 시쯤 떡집 배 할머니가 쟁반을 들고 왔다.
"순옥아, 꽃송편 남은 거여. 보리도 하나 먹어 봐."
매화 모양 누름틀로 찍은 송편이다. 솔내시장에서 배가네 떡방 꽃송편을 모르면 간첩이다.
"할머니, 오늘은 왜 이렇게 많이 남았어요?"
"손이 자꾸 많이 가더라구. 서울 사는 우리 딸 생각하면서 빚으니께."
할머니는 늘 그렇게 말한다. 서울 가서 잘 사는 우리 딸. 그런데 그 딸을 본 사람이 시장에 아무도 없다. 이 이야기가 한참 뒤에 어디로 흘러갈지, 이때는 할머니도 몰랐다.
―
오후 두 시. 셔터를 반쯤 내린 가게.
엄마 아빠는 은행에 갔다. 태오가 빈손으로 들어왔다.
"점심 먹었어요? 남은 거 있는데."
"보리야, 잠깐 앉아 봐."
둘은 조리대를 사이에 두고 앉았다. 보리가 매일 새벽 백이십 줄을 마는 자리다. 태오가 왼쪽 귀를 만졌다. 곤란할 때 나오는 버릇이다.
"삼 년 전 비 오던 날 기억나?"
"그럼요. 오빠 비 쫄딱 맞고 우리 가게 차양 밑에 앉아 있었잖아요. 무슨 조사 나왔다면서."
"네가 우산 줬잖아. 검은 장우산."
"손잡이에 순옥이네라고 써 놓은 거요. 그거 아직도 안 돌려줬죠."
"안 돌려줄 거야."
태오가 주머니에서 남색 상자를 꺼냈다.
보리의 검지가 허공에 작은 동그라미를 그렸다. 긴장하면 저절로 나오는 버릇이다. 김 마는 손동작이다.
"그날 김밥도 한 줄 줬잖아. 그거 먹고 생각했어. 이 사람 옆에서 아침을 먹고 싶다고. 그래서 삼 년 동안 목요일마다 왔어. 이제 목요일 말고 매일 오고 싶어."
상자가 열렸다. 은반지.
"안쪽 봐 봐."
«목요일 6:10»
"결혼해 줄래?"
가게 밖으로 오토바이가 지나갔다. 멀리서 떡집 할머니가 외쳤다. "꽃송편 떨이요오!"
분위기는 없었다. 하지만 보리한테는 이게 분위기였다.
반지를 끼워 봤다. 딱 맞았다. 김밥 마는 손이라 마디가 굵은데도.
"사이즈는 어떻게 알았어요?"
"네가 고무장갑 벗어 놓을 때마다 봤어."
보리가 웃음을 터뜨렸다. 웃다가 코끝이 시큰해졌다.
"해요. 결혼."
태오가 숨을 크게 내쉬었다. 삼 년 치 숨이었다.
자, 여기까지는 아주 훌륭한 청혼이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근데 보리야. 하나 말 안 한 게 있어."
태오가 다시 왼쪽 귀를 만졌다. 아까보다 오래. 귀가 빨개질 만큼.
"나 회사원 맞아. 해강유통 다니는 것도 맞고."
"알아요. 본부장이라면서요. 승진 빨리 했다고."
"그게, 빨리 한 이유가 있어."
보리는 반지 낀 손을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기다렸다. 김밥집 딸은 기다리는 데 익숙하다. 밥이 뜸 드는 동안은 뚜껑을 열면 안 되니까.
태오가 드디어 뚜껑을 열었다.
"우리 할아버지가 해강그룹 회장이야."
솔내시장에서 제일 먼저 불이 켜지는 집이 어디냐고 물으면, 요즘 시장 사람들은 대답하다 싸운다.순옥이네 김밥이라는 사람. 새벽 네 시 반.배가네 떡방이라는 사람. 새벽 두 시. 요즘은 할머니 대신 딸이 불을 켠다. 일주일에 사흘. 서림동에서 첫차보다 먼저 기사 차를 타고 온다. 진주 귀걸이는 떡집 서랍에 넣어 두고.태민 반찬이라는 사람. 새벽 세 시 반. 계란말이는 새벽에 부쳐야 결이 곱다고, 새로 온 반찬 가게 사장이 우긴다.그래서 요즘 솔내시장의 새벽은 세 번 켜진다. 두 시, 세 시 반, 네 시 반. 떡, 계란, 김밥. 시장 사람들은 그걸 "솔내 새벽 삼 교대"라고 부른다. 태식이가 지었다.―목요일 새벽 네 시 반. 결혼하고 딱 일 년이 되는 주.보리가 셔터 밑으로 허리를 숙이고 들어갔다. 조금 천천히. 배가 아직 티는 안 났지만 몸이 먼저 조심했다. 빨간 머리끈을 한 번 더 조였다."자, 오늘도 백이십 줄."노란 앞치마를 두르고 «순옥이네» 글자를 손바닥으로 쓸었다. 출근 도장.엄마가 조리대 옆에 서 있었다. 원래는 아홉 시에 나오는 엄마가, 요즘은 네 시 반에 같이 나온다. 딸이 새벽에 혼자 김밥 싸는 걸 못 보겠다고."오늘은 네가 싸라. 참기름 냄새 괜찮냐?""괜찮아요, 엄마. 입덧 끝났어요. 오늘은 제가 쌀게요.""그래. 오늘은 니가 싸야제. 목요일이잖여."엄마는 알고 있었다. 오늘이 무슨 목요일인지. 순옥 여사는 모르는 척을 잘하지만, 아는 척도 딱 필요한 만큼 한다.밥솥 두 개가 칙칙 소리를 냈다. 보리가 밥을 펼쳤다.들기름 한 방울. 깨소금 한 줌. 소금 조금.주걱은 세워서 자르듯이. 밥을 비비지 말고 달래라.시금치, 당근, 지단, 어묵, 햄. 그리고 우엉 두 줄.김 한 장, 밥 한 주걱, 재료 가지런히. 말고, 누르고, 참기름 붓질.사십 초.일 년 전 봄과 똑같은 손이었다. 조금 달라진 게 있다면, 이제 조리대 서랍 안에 공책이 두 권 더 있다는 것. 온도 기록장 옆에 단골 장부 백사십 줄. 그리고 새
오월 셋째 주 토요일. 솔내시장 봄장터.시장 입구에 새 간판이 걸렸다. 나무 간판. 글씨는 민 여사가 골랐다. 붓글씨로.«솔내시장»그 아래 작은 글씨로 한 줄. 곽 사장이 우겼다.«since 양말 좌판»영어였다. 곽 사장이 아는 유일한 영어였다. 딸한테 물어봐서 썼다고. 회장이 간판을 보고 이번에도 "두라" 했다.시장 지붕 공사는 다음 달부터였다. 해강건설 견적대로. 태민 이름이 올라간 견적서대로. 그 전에 봄장터를 열자고 한 건 곽 사장이었다. 공사 시작하면 한동안 어수선할 테니, 그 전에 한번 잔치를 하자고. 시장은 잔치를 좋아한다. 떨이보다 조금 더.―아침 여덟 시. 시장 골목에 가게마다 좌판이 하나씩 더 나왔다. 가게 앞에 작은 상. 봄장터 특별 상.곽씨네 반찬 앞엔 «우엉 조림 — 새벽상 재주문 3등»이라는 종이가 붙었다. 곽 사장이 이사회에서 들은 걸 기억하고 있었다.태식이네 생선가게 앞엔 물고기 도장이 찍힌 종이. «이사회 통과 도장».민그릇 앞엔 결 좌판이 나왔다. 태희가 «시장» 종지를 팔았다. 네 가지 색 유약이 조각조각 입혀진 작은 종지. 한 개에 삼천오백 원. 김밥 한 줄 값이었다. 태희가 그렇게 정했다."형님, 너무 싸요.""김밥이랑 같은 값이면 시장 사람들이 사 가잖아. 비싸게 받으면 서울 사람만 사 가."시장 사람들이 사 갔다. 박 씨 아주머니는 아저씨 약 싸는 손수건으로 쓰겠다고 두 장을 샀다.그리고 순대 골목 초입, 작년까지 비어 있던 작은 가게. 새 간판이 붙어 있었다.«태민 반찬»해강건설 상무 권태민. 오월 말 퇴사 예정인데, 이미 가게를 계약해 버렸다. 새벽상에 계란말이를 올리던 사람이 이제 솔내시장 상인이 됐다. 연명부 백사십일 번째 줄.가게 안에서 태민이 계란말이를 부치고 있었다. 흰 조리복. 옆에서 예나가 계란을 깨고 있었다. 예나는 반찬 가게 사모님이 되기로 했다. 틀려도 되는 곳에서.정훈이 가게 앞에 서 있었다. 양복 차림으로. 가게 안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들어가지는 않고."아
엄마 양순옥이 딸 얼굴을 봤다. 딱 삼 초.그리고 행주를 내려놨다. 순옥 여사가 행주를 내려놓는 건 큰일이 났다는 뜻이다."찬아!"골목 저쪽에서 하율이랑 오토바이 소리 흉내를 내던 찬이가 뛰어왔다."왜, 엄마!""약국 가.""뭐 사 와?"엄마가 찬이 귀에 대고 뭐라고 속삭였다. 찬이 눈이 동그래졌다. 입이 벌어졌다. 누나를 봤다. 다시 엄마를 봤다."……진짜?""가, 이놈아! 오토바이로!"찬이가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시동이 걸렸다. 잔칫상 사이로 부르릉 빠져나갔다. 하율이 그 뒤를 보며 박수를 쳤다. 삼촌 진짜 오토바이 소리라고.보리는 조리대를 붙잡은 채 서 있었다."엄마, 뭐 사 오라고 했어요?"엄마가 대답 대신 보리 등을 쓸었다. 그리고 참기름 병 뚜껑을 닫았다. 꼭."오늘은 김밥 그만 싸. 남은 스무 줄은 내가 싼다."―오후 세 시 이십 분. 순옥이네 가게 뒤 창고.김 상자들 사이. 보리가 서 있었다. 손에 작은 막대 하나. 약국 봉투는 찬이가 가게 앞에 던져 놓고 도망치듯 잔칫상으로 돌아갔다. 스물세 살 남동생에게는 감당이 안 되는 심부름이었다.보리가 막대를 봤다. 창 하나에 선이 떴다. 한 줄.그리고 옆에 또 한 줄. 천천히 진해졌다.두 줄.보리가 김 상자에 등을 기댔다. 그대로 미끄러져 바닥에 앉았다. 곽 사장네 형님 도매에서 들어온 김 상자. 나무 받침대 위. 바닥에서 한 뼘.보리는 두 줄을 한참 봤다. 김밥에 우엉이 두 줄 들어간다. 이십팔 년 동안 두 줄은 늘 우엉이었다. 오늘은 우엉 말고 다른 두 줄이었다.창고 문이 열렸다. 엄마였다."……몇 줄이여."보리가 막대를 들어 보였다. 엄마가 봤다. 엄마 손이 입으로 갔다. 그리고 창고 바닥에 털썩 앉았다. 보리 옆에. 김 상자 사이에."아이고. 아이고, 우리 딸."엄마가 보리를 끌어안았다. 앞치마에서 참기름 냄새가 났다. 보리 속이 또 울렁거렸다. 보리가 엄마를 살짝 밀었다."엄마, 앞치마……. 냄새가…….""아이고, 그려, 그려."엄마가 앞
사월 첫째 주 토요일. 권영철 회장 여든세 번째 생신.해강그룹 창립 이래 회장 생신 잔치는 늘 해강호텔 그랜드볼룸에서 열렸다. 하객 오백 명. 샴페인 탑. 현악 사중주.올해는 솔내시장 골목에서 열렸다. 하객 이백 명. 막걸리 통. 곽 사장네 라디오.시장 입구에 현수막이 걸렸다. 찬이가 인쇄소에 맡긴 것이었다. 흰 바탕에 빨간 글씨.«권영철 회장님 생신 축하 — 솔내시장 일동 (양말 좌판 출신 환영)»괄호 안 문구는 곽 사장 아이디어였다. 회장이 현수막을 올려다보고 한참 서 있었다. 비서실장이 "문구를 바꿀까요" 하고 물었다. 회장은 "두라" 했다. 그리고 현수막 사진을 휴대폰으로 찍었다. 회장이 휴대폰으로 사진을 찍는 걸 본 사람은 처음이었다.―잔치 음식은 시장이 맡았다. 해강호텔 총주방장이 돕겠다고 왔다가 순옥 여사 옆에서 지단을 부쳤다. 상견례 때 대추 물을 맞힌 그 사돈 옆에서. 총주방장은 영광이라고 했다.곽씨네 반찬은 나물 아홉 가지. 정육점은 수육. 태식이네는 생선전. 순대 골목은 순대. 분식집은 떡볶이. 민그릇은 음식 대신 그릇을 댔다. 잔칫상 사발과 접시가 전부 민그릇 것이었다. 골목 위에는 풍경 줄이 걸렸다. 쪽빛, 옥색, 연분홍, 먹색 작은 도자기 풍경이 바람에 흔들리며 딸랑거렸다. 결 대표 태희가 공방 가마에서 구워 밤새 줄에 꿴 것이었다.순옥이네 김밥은 백이십 줄. 우엉 두 줄.그리고 한쪽 조리대에 태민이 서 있었다. 흰 조리복. 가슴에 «권태민». 이름표 아래 «한식조리 야간반»은 떼어 냈다. 야간반을 수료했기 때문이다. 지난주에. 해강건설에는 사표를 냈다. 오월 말까지 인수인계.태민이 계란말이를 부쳤다. 새벽상 계란말이. 이번엔 이름을 붙였다. 조리대 앞 종이에 매직으로.«권태민 계란말이 두 줄»예나가 옆에서 계란을 깼다. 껍질이 안 들어갔다. 팔 년 차 완벽주의자의 손이었다. 하율이 조리대 밑에서 올려다봤다."아빠, 오늘은 진짜 요리사야?""응. 오늘부터 진짜."하율이 박수를 쳤다. 계란 껍질을 하나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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