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토요일 오후 한 시.은소예는 신시안과 함께 오래된 골목에 들어섰다.“여기 맞아?”“응. 이 골목 끝.”“생각보다 조용하네.”“예전에도 그랬어.”시안은 주변을 둘러봤다.십여 년 전과 달라진 가게들이 눈에 들어왔다. 분식집이 있던 자리에는 꽃집이 생겼고, 작은 문구점은 카페로 바뀌어 있었다.그런데 골목 끝의 서점만큼은 그대로였다.낡은 나무문.짙은 녹색 간판.유리창에 붙은 손글씨 안내문.소예가 발걸음을 멈췄다.“와. 사진이랑 똑같아.”“그러네.”시안도 잠시 서점을 바라봤다.“없어졌을 줄 알았는데.”“들어가자.”소예가 먼저 문을 열었다.딸랑.작은 종소리가 울렸다.오래된 종이 냄새가 은은하게 퍼졌다.서점 안에는 높은 책장이 빼곡했고, 창가에는 두 사람이 앉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이 놓여 있었다.“어서 오세요.”계산대에 앉아 있던 중년 여성이 인사했다.시안이 고개를 숙였다.“안녕하세요.”여성이 시안을 바라보다가 눈을 가늘게 떴다.“어머.”시안이 멈췄다.“혹시…….”“신시안 학생 아니에요?”소예가 놀라서 돌아봤다.“학생?”시안도 웃음을 터뜨렸다.“사장님, 오랜만입니다.”“세상에! 정말 시안 학생이네!”여성은 자리에서 일어났다.“몇 년 만이에요? 십 년은 훨씬 넘었겠네.”“그 정도 됐습니다.”“이렇게 멀끔해져서 나타나면 내가 어떻게 알아봐.”소예가 웃었다.“안녕하세요. 아내 은소예입니다.”“어머, 결혼했어요?”“네.”시안이 소예의 손을 잡았다.“제 아내입니다.”여성은 반갑게 웃었다.“아이고, 잘됐네. 예전에는 여자친구 이야기 한번 안 하던 학생이었는데.”소예가 시안을 쳐다봤다.“그랬어요?”“그럼요. 늘 혼자 와서 책만 읽었어요.”시안이 머쓱하게 웃었다.“그때는 공부할 게 많아서요.”“공부는 무슨. 소설책도 많이 읽었으면서.”소예가 웃음을 참지 못했다.두 사람은 서점 안쪽으로 들어갔다.소예는 책장을 천천히 둘러봤다.“여기 진짜 좋다.”“마음에 들어?”“응. 책이 많아
일요일 오전 열한 시.은소예는 주방에서 토스트를 굽고 있었다.신시안은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휴대폰을 확인하고 있었다.그러다 화면을 보고 웃었다.“왜 웃어?”소예가 물었다.“현욱이.”“강현욱 씨?”“응. 사진 보냈어.”“무슨 사진?”시안이 휴대폰을 돌려 보여줬다.사진 속에는 대학생 시절의 신시안이 있었다.검은색 티셔츠에 청바지.지금보다 조금 긴 머리.그리고 손에는 커다란 곰 인형이 들려 있었다.소예가 토스트를 내려놓았다.“잠깐만.”“왜?”“이거 당신이야?”“응.”소예는 화면을 확대했다.“곰 인형은 뭐야?”“축제 때 뽑은 거.”“당신이?”“응.”소예는 다시 사진을 봤다.평소의 시안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무엇보다 사진 속 시안은 곰 인형을 품에 안고 활짝 웃고 있었다.“이런 사진이 있었어?”“나도 잊고 있었는데.”그때 휴대폰이 울렸다.강현욱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시안이 스피커폰으로 받았다.“왜?”—사진 봤냐?“봤어.”—오랜만에 찾았는데 반갑지 않냐?“어디서 났어?”—예전 노트북 정리하다가.소예가 옆에서 말했다.“안녕하세요, 현욱 씨.”—어? 형수님도 계세요?“네. 사진 같이 보고 있어요.”전화기 너머에서 현욱이 웃음을 터뜨렸다.—아, 그럼 제대로 보셨네.시안이 미간을 좁혔다.“뭘 제대로 봐?”—그날 네가 얼마나 신났는지.소예가 의자를 당겨 앉았다.“무슨 날이었는데요?”—대학교 축제요. 시안이가 인형 뽑기 부스에서 저 곰을 뽑겠다고 난리를 쳤거든요.“내가 언제 난리를 쳤어?”—세 번 실패하고 네 번째 성공했잖아.소예가 웃었다.“네 번이나 했어요?”—그것도 제가 마지막에 동전 빌려줬습니다.시안이 한숨을 쉬었다.“그건 기억 안 나는데.”—나는 기억나지. 내 돈이었으니까.소예는 웃음을 참지 못했다.“그 곰은 어디 갔어요?”—그게 더 웃긴데요.시안이 바로 끼어들었다.“현욱아.”—왜? 사실이잖아.“뭔데요?”소예가 재촉했다.현욱이 말했다.—그 곰
“우리 도자기 만들러 갈까?”은소예의 말에 신시안이 젓가락을 멈췄다.“도자기?”“응.”“갑자기?”“전에 지나가다가 봤거든. 직접 컵 만드는 곳.”시안이 잠시 생각했다.“해본 적 있어?”“없어.”“그럼 오늘 처음이네.”“당신은?”“나도.”소예가 웃었다.“잘됐다.”“뭐가?”“둘 다 못하겠네.”시안이 헛웃음을 흘렸다.“시작도 안 했는데?”“처음이니까.”“당신이 더 잘할 수도 있잖아.”“그럼 내가 당신 것도 만들어줄게.”“그건 직접 만들어야 의미 있는 거 아니야?”소예가 계란말이를 한 조각 더 집었다.“그럼 서로 만들어주자.”“컵을?”“응. 당신은 내 거, 나는 당신 거.”시안이 고개를 끄덕였다.“좋아.”소예는 휴대폰을 가지러 침실로 향했다.그러다 문 앞에서 멈췄다.“아.”시안이 물었다.“왜?”“우리 오늘 휴대폰 안 보기로 했잖아.”“아침에만.”“그랬나?”“일어나자마자 시간 확인하지 말자고 했지.”소예가 웃었다.“맞다.”휴대폰을 가져와 근처 도자기 공방을 찾아봤다.다행히 오후 두 시에 두 명이 참여할 수 있는 수업이 있었다.소예는 화면을 시안에게 보여줬다.“여기 어때?”“괜찮네.”“예약할까?”“응.”예약을 마친 소예가 휴대폰을 내려놓았다.“됐다.”“그럼 점심 먹고 나가면 되겠네.”“오늘은 컵 두 개 만들어 오는 거야.”시안이 안내문을 가리켰다.“바로 못 가져오는데?”“뭐?”“건조하고 굽는 데 시간이 걸린대.”소예가 화면을 다시 확인했다.완성품은 몇 주 뒤 수령하는 방식이었다.“아쉽다.”“오늘 만들고 나중에 받으면 되지.”“그럼 기다리는 재미도 있겠다.”오후 한 시 45분.두 사람은 작은 도자기 공방 앞에 도착했다.유리문 너머로 선반에 놓인 컵과 접시들이 보였다.소예가 문을 열었다.“안녕하세요.”“어서 오세요. 두 분 예약하셨죠?”“네.”직원이 앞치마 두 개를 건넸다.“오늘은 손으로 형태를 만드는 핸드빌딩 수업이에요. 처음이셔도 충분히 하실 수 있어
금요일 오전 여덟 시 42분.은소예는 회사 로비에서 신시안과 헤어지려다가 그의 손에 들린 가방을 발견했다.“그거 뭐야?”“도시락.”“도시락?”시안이 검은색 보냉 가방을 들어 보였다.“응.”“누가 싸줬는데?”“내가.”소예가 걸음을 멈췄다.“당신이?”“왜 그렇게 놀라?”“아니, 오늘 아침에 일찍 일어난 건 알았는데.”“주방에 있었잖아.”“나는 커피 내리는 줄 알았지.”시안이 웃었다.“점심에 먹으려고.”“뭐 넣었는데?”“볶음밥.”“어제 남은 밥?”“응. 계란이랑 채소 넣어서.”소예가 가방을 내려다봤다.“내 건?”시안이 그녀를 봤다.“당신 오늘 점심 약속 있잖아.”“아.”소예는 그제야 기억했다.NEXT ONE 직원들과 점심을 먹기로 했었다.“맞다.”“그러니까 내 것만.”“그럼 나도 다음에 싸줘.”“뭘?”“도시락.”“좋아.”소예가 웃었다.“계란말이는 빼고.”시안이 잠시 그녀를 바라봤다.“그 얘기 아직도 해?”“한동안은.”“이제 잘할 수 있는데.”“그럼 다음에 보여줘.”“알았어.”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둘은 각자 다른 층으로 향했다.점심시간.NEXT ONE 직원들은 회사 근처 식당에 모였다.차연이 메뉴판을 펼쳤다.“본부장님, 오늘은 뭐 드실래요?”“나는 제육.”“저도요.”주문을 마친 뒤 직원들이 주말 이야기를 시작했다.“저 이번 주말에 집들이 가요.”“누구 집?”“친구요. 결혼하고 처음 초대하는 거라는데 뭘 사 가야 할지 모르겠어요.”차연이 말했다.“휴지?”“너무 평범하지 않아요?”“실용적이잖아요.”소예가 물컵을 내려놓았다.“친구가 뭐 좋아하는데?”“커피요.”“그럼 원두나 드립백도 괜찮겠다.”“오, 그거 좋네요.”직원이 휴대폰에 메모했다.그러다 차연이 소예를 봤다.“본부장님은 집들이 자주 하세요?”“아니.”“대표님이랑 집에 손님 초대한 적은요?”“있지.”“요즘은요?”소예가 생각했다.최근에는 둘이 집에서 퍼즐을 맞추거나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았다.
목요일 오후 여섯 시 7분.은소예가 노트북을 닫았다.오늘은 오랜만에 퇴근 후 일정이 있었다.거창한 건 아니었다.며칠 전 읽기 시작한 신시안의 책을 거의 다 읽었고, 오늘 저녁이면 마지막 장까지 갈 수 있을 것 같았다.그리고 약속 아닌 약속을 하나 해뒀다.다 읽으면 어디가 제일 좋았는지 말해주기.“본부장님.”공차연이 자리에서 일어나며 불렀다.“네?”“오늘 일찍 가시네요.”“여섯 시 넘었는데?”“본부장님 기준으로요.”소예가 시계를 확인했다.“그런가?”“요즘은 그래도 전보다 빨리 가세요.”소예는 가방을 들었다.“할 일 끝났으면 가야지.”“좋은 변화네요.”“차연이도 가.”“저도 이것만 보내고요.”소예는 고개를 끄덕이다가 차연의 책상 한쪽에 놓인 작은 종이가방을 발견했다.“그건 뭐야?”“마들렌이요. 점심에 샀어요.”“맛있어?”“네. 근처에 새로 생긴 곳인데 괜찮아요.”소예가 가게 이름을 확인했다.회사에서 걸어서 5분 정도였다.“몇 시까지 하지?”“여덟 시요.”소예가 휴대폰으로 시간을 봤다.충분했다.“왜요? 가시게요?”“응. 집에 가면서.”“대표님이랑 드시려고요?”소예가 자연스럽게 대답했다.“아마?”예전 같으면 회사에서 이런 질문을 받는 것 자체가 어색했을 것이다.지금은 아니었다.누구도 특별하게 받아들이지 않았고, 소예 역시 굳이 의식하지 않았다.그게 오히려 편했다.가게에는 마들렌이 여섯 종류 있었다.플레인.초콜릿.레몬.얼그레이.말차.솔티캐러멜.소예는 진열장을 한참 바라봤다.“어떤 걸로 드릴까요?”직원이 물었다.“잠시만요.”자신이 좋아하는 건 레몬이었다.시안은?소예는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함께 먹은 음식은 많았다.좋아하는 메뉴도 알고 있었다.그런데 마들렌 취향까지 물어본 적은 없었다.소예는 휴대폰을 꺼냈다.[마들렌 뭐 좋아해?]답장은 1분도 안 돼 왔다.[갑자기?][가게 왔어.][얼그레이.]소예는 바로 주문했다.“얼그레이 두 개랑 레몬 두 개 주세요.”
수요일 저녁.은소예가 집에 들어오자 거실 소파에 신시안이 앉아 있었다.손에는 며칠 전 소예가 건넨 책이 들려 있었다.소예가 가방을 내려놓으며 물었다.“벌써 왔어?”“20분쯤 됐어.”“밥은?”“기다렸지.”소예는 재킷을 벗다가 시안의 손에 든 책을 봤다.책갈피가 거의 마지막 부분에 꽂혀 있었다.“다 읽었어?”“아직.”“몇 장 남았는데?”시안이 책을 펼쳐 확인했다.“열두 장.”소예가 웃었다.“그 정도면 다 읽고 기다리지.”“같이 밥 먹으려고.”“책이랑 밥이 무슨 상관이야?”“읽기 시작하면 끝까지 읽을 것 같아서.”소예는 그 말이 조금 의외였다.“재밌었나 보네.”“응.”“어디가?”“다 읽으면 얘기해.”소예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빨리 먹고 읽어.”“왜 당신이 더 급해?”“내가 추천했으니까.”“평가 기다리는 거야?”“조금.”저녁은 배달로 해결했다.소예가 메뉴를 고르려 휴대폰을 들었다.“뭐 먹을래?”“당신 먹고 싶은 거.”“또 그렇게 말한다.”“나는 다 괜찮아.”“그게 제일 고르기 어려워.”시안이 휴대폰 화면을 같이 봤다.“그럼 세 개만 골라.”“초밥, 족발, 파스타.”“초밥.”“바로?”“응.”소예가 주문 버튼을 눌렀다.“이렇게 고르면 되잖아.”“처음부터 세 개를 말하면 되지.”“다음부터.”“기억해.”“알았어.”음식이 도착할 때까지 둘은 소파에 앉았다.시안은 책을 다시 펼쳤다.소예는 옆에서 휴대폰을 보다가 힐끗 책을 봤다.한 페이지.두 페이지.시안의 손가락이 페이지 오른쪽 아래로 갔다.슥.소예의 입꼬리가 올라갔다.시안이 바로 말했다.“봤지?”“응.”“책 봐.”“나는 책 안 보고 있는데.”“그럼 휴대폰 봐.”소예는 웃으며 화면으로 시선을 돌렸다.몇 분 뒤.시안이 마지막 페이지를 넘겼다.책을 덮었다.소예가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어땠어?”“재밌었어.”“끝?”“뭐가 더 필요해?”“어디가 좋았는데?”시안이 책 표지를 손가락으로 두드렸다.“중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