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짜 상속녀의 진짜 웨딩

가짜 상속녀의 진짜 웨딩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10-08
By:  지그프리드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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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어머니의 수술비가 절실했던 무명 연극배우 이하늬. 그녀에게 어느 날 대한민국 서열 5위 성진그룹의 조 실장이 은밀한 제안을 건네온다. 외국에서 사랑을 찾아 도망친 상속녀 강서연의 대역이 되어 달라는 것. 서연과 도플갱어처럼 닮은 하늬는 엄마를 살리기 위해 화려한 재벌가의 왕관을 머리에 쓴다.하지만 그녀 앞에 나타난 정략결혼 상대 한승준은 만만치 않다. 차가운 이성과 날카로운 직관을 가진 그는 어딘지 모르게 변해버린 약혼녀의 모습에 의구심을 품는다. 가짜의 삶이 깊어질수록 하늬는 승준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승준 역시 가짜인 그녀의 영혼에 빠져들며 괴로워한다. 마침내 모든 진실이 밝혀지기로 결심한 결혼식 당일, 하늬는 화려한 웨딩드레스 차림으로 승준에게 마지막 고백을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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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1

제1화. 이름 없는 대역

제1화 이름 없는 대역

프랑스 니스의 아침은 잔인할 만큼 눈부셨다.

지중해의 푸른 바다가 창틀 너머로 넘실거렸지만,

그 화려한 풍경이 무색하게 '성진 그룹'의 전용 별장은 유령이 지나간 듯 고요했다.

강 회장의 특명을 받고 급파된 조 실장이 서연의 방 문을 열었을 때, 그를 맞이한 건 사람의 온기 대신 서늘한 바닷바람뿐이었다.

화장대 위에는 수억 원을 호가하는 다이아몬드 약혼반지가 아무렇게나 굴러다니고 있었다.

그 옆에 놓인 구겨진 메모 한 장.

[찾지 마세요. 저는 이제 '강서연'이 아니라 그 사람의 여자로 살기로 했어요.]

​

조 실장의 눈등이 파르르 떨렸다.

대한민국 재벌 순위 5위권의 성진그룹과 1위 한주그룹의 합병이 달린 정략결혼이었다.

일주일 뒤면 양가 상견례가, 한 달 뒤면 세기의 결혼식이 예정되어 있었다.

신부가 사랑을 찾아 도망쳤다는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성진 그룹의 주가는 폭락할 것이고 강 회장의 분노는 대지를 태울 듯 거세질 터였다.

조 실장은 떨리는 손으로 한국에 있는 강 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강 회장의 목소리는 예상보다 낮고 차가웠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채워 넣어. 그 자리가 비어 있으면 성진의 미래도 없다.

서연이가 아니어도 좋아. 아니, 서연이어야만 해."

"회장님, 그게 무슨 말씀이신지···."

"서연이를 닮은 아이를 찾아. 최대한 닮아야 한다. 조 실장"

"네. 알겠습니다. 회장님."

대학로의 막다른 골목, 낡은 소극장의 조명은 언제나 그렇듯 위태롭게 깜빡거렸다.

무대 위에서 하늬는 화려한 중세풍 드레스를 입고 있었지만,

사실 그것은 곳곳이 해지고 실밥이 터진 가짜였다.

“공주님, 이제 떠나야 할 시간입니다.”

상대 배우의 대사에 하늬는 눈물 어린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관객이라곤 고작 다섯 명뿐인 소규모 연극이었지만,

하늬는 이 순간만큼은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고귀한 여인이라 믿었다.

하지만 막이 내리고 조명이 꺼지는 순간, 그녀는 다시 차가운 현실로 내동댕이쳐졌다.

분장실로 돌아온 하늬를 기다리는 건 박수가 아닌 빚 독촉장이었다.

“이하늬 씨, 벌써 석 달째예요. 이번 주까지 대관료 안 빠지면 극단 짐 다 뺍니다.”

극단이 근근히 운영되어 온 건 하늬가 공연장주에게 계속 읍소해와서 버텼으나,

그 마저도 지금 한계에 이른 것 같았다.

공연장주의 매정한 외침 뒤로 휴대전화가 진동했다.

이번엔 병원이었다.

​

[이하늬 님, 어머니 이영순 님의 수술 대기 순번이 돌아왔으나 미납된 입원비로 인해 취소될 예정입니다.]

하늬는 떨리는 손으로 마른세수를 했다.

연극 배우라는 꿈은 사치였다.

그녀에게 남은 건 밀린 월세와 엄마의 가파른 숨소리, 그리고 굶주린 현실뿐이었다.

그녀는 지워지지 않은 무대 화장을 한 채 터벅터벅 골목을 빠져나왔다.

그때였다. 좁은 골목을 가득 메운 검은색 세단 석 대가 하늬의 앞을 가로막았다.

차 문이 열리고, 한눈에 봐도 이질적인 고급 정장 차림의 사내가 내렸다. 조 실장이었다.

“이하늬 씨, 연기력이 훌륭하시더군요. 방금 무대에서의 모습, 인상 깊었습니다.”

하늬는 경계 어린 눈초리로 그를 바라보았다.

“누구시죠? 전 부를 사람 없는데요.”

조 실장은 대답 대신 태블릿 PC 하나를 건넸다.

화면 속 여자를 본 순간, 하늬는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이게··· 저라고요?”

“아니요. 강서연 상무입니다. 성진그룹의 막내딸이죠.”

화면 속 여자는 하늬와 똑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눈빛은 오만했고 걸친 옷차림은 하늬의 평생 수입보다 비싸 보였다.

“서연 상무가 현재 도주 중입니다.

상견례와 결혼식을 앞두고 말이죠.

당신이 한 달만, 아니 딱 세 달만 강서연이 되어주었으면 합니다.”

“미쳤군요. 이런 연극은 안 합니다.”

하늬가 돌아서려 할 때, 조 실장의 낮은 목소리가 발길을 잡았다.

“어머니의 수술, 저희 회장님께서 직접 주관하시는 병원에서 진행될 겁니다.

입원비는 물론, 퇴원 후 요양까지 성진이 책임지죠.

배우에게 이보다 더 큰 무대와 출연료가 있을까요?”

"뭐라구요? 그걸 다 해준다구요?"​

하늬의 발이 멈췄다.

그녀는 고개를 들어 밤하늘을 보았다.

별 하나 보이지 않는 검은 하늘 아래서, 그녀는 자신의 영혼을 팔기로 결심했다.

다음 날, 하늬는 안개 낀 산속에 자리한 성진 그룹 강 회장의 본가로 향했다.

거대한 성벽 같은 저택 안으로 들어선 하늬는 숨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다.

서재 안쪽, 깊은 어둠 속에 앉아 있던 강 회장이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강 회장은 하늬의 얼굴을 보는 순간, 들고 있던 찻잔을 미세하게 떨었다.

“똑같구나. 그 아이와···.”

그의 목소리엔 분노보다는 기이한 그리움이 서려 있었다.

하늬는 그가 말하는 ‘그 아이’가 서연인지, 아니면 자신의 엄마인지 알 수 없었지만 본능적으로 직감했다.

이 남자가 단순히 딸의 대역을 찾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오늘부터 네 이름은 강서연이다. 사소한 습관 하나까지 그 아이가 되어야 해. 특히···.”

강 회장이 하늬의 왼손을 가리켰다.

“서연이는 어릴 적 사고로 쇄골 아래 작은 상처가 있었다.

넌 그게 없으니 남들 앞에서는 절대로 몸을 보이지 마라.

그리고 피아노. 서연이는 사고 이후 피아노를 증오했다.

절대 건반 앞에 앉지 마.”

"...네?...네"

하늬는 자신의 깨끗한 살결과 엄마에게 배운 피아노 실력을 떠올렸다.

강 회장이 금지한 것들이 사실은 하늬 자신이 가장 잘하는 것들이라는 사실이 아이러니했다.

“연극은 시작됐다. 무대에서 내려오는 날, 넌 세상에서 가장 풍족한 사람이 될 것이다.

하지만 들키는 날엔··· 무대 밑바닥으로 떨어지게 되겠지.”

강 회장의 서늘한 경고를 들으며 하늬는 거울 속 자신을 바라보았다.

화려한 보석과 명품 드레스로 덧칠된 자신의 모습은 더 이상 이하늬가 아니었다.

‘엄마만 살릴 수 있다면, 악마의 딸이라도 되겠어.’

하늬는 서연 특유의 차가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성진 그룹 재벌가 저택의 거대한 철문이 하늬의 뒤로 쾅 닫히는 소리와 함께 끝났다.

이제 그녀에게 돌아갈 길은 없었다.

가짜 강서연으로 사는 수 밖에. 최대한 들키지 않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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