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눈을 떠보니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있었다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10-24
Por:  루니Atualizado agora
Idioma: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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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을 뜨자 낯선 남자가 내 이마에 입을 맞췄다. “아이고, 우리 애기 일어났어요?” “누구세요?!” “당신 남편.” 😱 분명 야근하던 회사원 한이서. 그런데 기억 속 1년이 사라진 사이 재벌가 안주인이 되어 버렸다! 하주그룹의 냉혈 대표 강도진은 집에서 애교 폭발하는 ‘아내 바보’! 결혼사진 속 나는 먼저 이 남자에게 키스까지 했다! 💋 “남편 반품되나요?” “환불 불가. 애프터서비스는 평생입니다.” 기억에도 없는 결혼, 낯설기만 한 남편. 그런데 왜 자꾸 설레지? 🔥 이미 결혼한 두 사람의 아찔하고 유치찬란한 첫 연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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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pítulo 1

1화. 내 침대의 남자

“아이고, 우리 애기 일어났어요? 세상에, 눈 뜨자마자 이렇게 예쁘면 남편은 무슨 죄야?”

한이서는 눈을 뜨자마자 자기 얼굴 위로 다가오는 남자의 입술을 봤다. 놀라서 몸을 뒤로 빼자 따뜻한 숨결이 이마 바로 앞에서 멎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한 손에 물컵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분홍색 토끼가 달린 작은 머리끈이 걸려 있었다.

“……누구세요?”

“우리 여보, 아직 잠이 덜 깼구나. 나는 당신 남편. 직업은 대표, 특기는 아내 예뻐 죽기.”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서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남자와 침대 끝을 번갈아 봤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오전 햇빛이 크림색 벽을 비추고, 발치의 두꺼운 융단에는 커튼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베개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고시원만 한 원룸에서 살던 사람에게 침대 하나가 거실만 한 방은 현실감이 없었다.

더 현실감 없는 건 남자의 얼굴이었다. 경제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주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강도진. 기자들 앞에서는 웃지도 않던 남자가 지금은 토끼 머리끈을 흔들며 자신에게 눈을 맞추고 있었다.

“강도진 대표님이 왜 여기 계세요?”

“어? 여보가 내 이름 불러 주니까 좋긴 한데, 좀 섭섭하네. 어제까진 자기야, 우리 잘생긴 왕자님, 그렇게 불러 놓고.”

“제가요? 대표님을 왕자님이라고요?”

“응. 난 당신을 여왕 폐하라고 부르다가 쫓겨났고.”

이서는 비명을 삼켰다. 도진은 그제야 그녀가 장난을 받아 주지 못할 만큼 겁먹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물컵을 탁자에 내려놓는 손길이 조심스러워졌다. 그가 의자를 침대에서 멀찍이 끌어다 앉았다. 구두 끝이 융단에 닿을 때까지도 시선은 이서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

“미안.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깨웠거든. 싫으면 안 할게. 우선 숨부터 편하게 쉬어.”

이서는 그제야 이 방에서 낯선 사람은 오히려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리맡에는 반쯤 읽은 책이 엎어져 있었고, 탁자 위 머그잔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강도진은 한이서 것’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옆에는 자신의 휴대전화가 놓여 있었다. 화면 속 날짜는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날보다 정확히 1년 뒤였다.

“저 어젯밤까지 회사에서 야근했는데요.”

“알아. 지금 네 기억은 거기서 멈춘 거야.”

도진의 말에 이서는 손바닥으로 이마를 짚었다. 머리카락 사이로 작은 상처가 만져졌다. 사고 뒤 치료를 받았고 최근 1년의 기억에 공백이 생겼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그 설명조차 처음 듣는 것 같았다. 도진은 담당 의료진과 다시 이야기할 수 있게 하겠다며, 그녀가 묻는 순서대로 답하겠다고 했다.

이서는 자기 잠옷의 소매를 매만졌다. 부드러운 천에 수놓인 조그만 하트가 낯설었다. 도진의 손목에는 시계가 채워져 있었지만, 그는 시간을 확인하지 않았다. 대답을 재촉하는 대신 그녀가 말문을 열 때마다 몸을 조금 앞으로 기울였다. 이서가 물컵을 들다 손을 떨자 반사적으로 일어났다가, 가까이 와도 되겠느냐는 듯 멈춰 섰다. 고개를 끄덕이자 그는 컵 바닥만 받쳐 주었다. 손끝조차 스치지 않았는데 심장이 엉뚱하게 빨라졌다. 너무 잘생긴 얼굴이 가까이 오면 이럴 수도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저는 지금 스물여섯이에요?”

“응. 여전히 나보다 네 살 어려. 그래서 내가 평생 업어 주기로 했고.”

“네 살이면 업어 주는 게 법이에요?”

“우리 집에서는 그래. 한이서 보호법 제1조.”

웃음이 터질 뻔했지만 이서는 재빨리 입술을 다물었다. 이 상황에서 웃으면 정말 저 남자에게 말려드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반지를 발견하고 왼손을 들어 올렸다. 얇은 테두리에 반짝이는 보석이 박혀 있었다. 도진도 똑같은 반지를 낀 손을 보여 주었다.

“설마…… 우리가 결혼했어요?”

“응. 작년에. 결혼식 때 내가 당신 보다가 서약 순서도 틀렸어.”

“그런 사람이 재벌 회사를 운영해요?”

“회사에서는 안 틀려. 당신 앞에서만 머리가 좀 녹아.”

이서가 어이없다는 얼굴로 바라보자 그는 제 손가락을 매만지며 웃었다. 금방이라도 장난을 하나 더 칠 것 같다가도, 그녀가 움찔하면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익숙한 애정과 낯선 조심성이 한 얼굴에 번갈아 지나갔다.

“불편하면 다른 방 써도 돼. 당연히 네가 정해. 난 당분간 손끝 하나 안 건드릴게.”

“원래는…… 같이 잤어요?”

도진이 침대 위 두 개의 베개를 보았다. 그중 하나에는 귀가 접힌 작은 토끼 인형이 놓여 있었다.

“응. 근데 당신 잠버릇이 좀 무서워.”

“제가 코 골아요?”

“아니. 내가 먼저 일어나면 잠결에도 내 셔츠를 붙잡고 ‘어디 가, 내 남편?’ 이랬어. 출근할 때마다 가슴이 찢어졌지.”

그가 제 가슴을 손바닥으로 누르며 엄살을 부렸다. 이서는 기어이 웃고 말았다. 도진은 그 웃음이 사라질까 봐 더 떠들지 않고, 침대 옆 서랍에서 두꺼운 앨범을 꺼냈다.

“믿기 힘들지. 천천히 봐. 이건 우리가 같이 고른 사진들이야.”

그가 앨범을 펼쳐 놓고 물러나자 이서는 조심스럽게 첫 장을 넘겼다. 새하얀 드레스를 입은 자신과 검은 예복을 입은 도진이 꽃으로 장식된 길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은 환하게 웃고 있었고, 도진은 그런 자신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음 장을 펼친 순간 이서의 손끝이 멈췄다.

수많은 하객 앞에서 신부 한이서가 두 손으로 강도진의 뺨을 붙잡고 먼저 입을 맞추고 있었다. 심지어 사진 아래에는 분명 자기 필체로 이런 말까지 적혀 있었다.

‘남편 너무 귀여워서 내가 먼저 잡아먹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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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화. 내 침대의 남자
“아이고, 우리 애기 일어났어요? 세상에, 눈 뜨자마자 이렇게 예쁘면 남편은 무슨 죄야?”한이서는 눈을 뜨자마자 자기 얼굴 위로 다가오는 남자의 입술을 봤다. 놀라서 몸을 뒤로 빼자 따뜻한 숨결이 이마 바로 앞에서 멎었다. 침대에 걸터앉은 남자는 한 손에 물컵을 들고 있었고, 다른 손에는 분홍색 토끼가 달린 작은 머리끈이 걸려 있었다.“……누구세요?”“우리 여보, 아직 잠이 덜 깼구나. 나는 당신 남편. 직업은 대표, 특기는 아내 예뻐 죽기.”정신이 번쩍 들었다. 이서는 이불을 목까지 끌어올리며 남자와 침대 끝을 번갈아 봤다. 천장에서 쏟아지는 오전 햇빛이 크림색 벽을 비추고, 발치의 두꺼운 융단에는 커튼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었다. 베개에서는 은은한 꽃향기가 났다. 고시원만 한 원룸에서 살던 사람에게 침대 하나가 거실만 한 방은 현실감이 없었다.더 현실감 없는 건 남자의 얼굴이었다. 경제 뉴스에서 본 적이 있었다. 하주그룹의 유일한 후계자, 강도진. 기자들 앞에서는 웃지도 않던 남자가 지금은 토끼 머리끈을 흔들며 자신에게 눈을 맞추고 있었다.“강도진 대표님이 왜 여기 계세요?”“어? 여보가 내 이름 불러 주니까 좋긴 한데, 좀 섭섭하네. 어제까진 자기야, 우리 잘생긴 왕자님, 그렇게 불러 놓고.”“제가요? 대표님을 왕자님이라고요?”“응. 난 당신을 여왕 폐하라고 부르다가 쫓겨났고.”이서는 비명을 삼켰다. 도진은 그제야 그녀가 장난을 받아 주지 못할 만큼 겁먹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입가에서 웃음이 사라지고, 물컵을 탁자에 내려놓는 손길이 조심스러워졌다. 그가 의자를 침대에서 멀찍이 끌어다 앉았다. 구두 끝이 융단에 닿을 때까지도 시선은 이서의 표정을 살피고 있었다.“미안. 내가 아침마다 이렇게 깨웠거든. 싫으면 안 할게. 우선 숨부터 편하게 쉬어.”이서는 그제야 이 방에서 낯선 사람은 오히려 자신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리맡에는 반쯤 읽은 책이 엎어져 있었고, 탁자 위 머그잔에는 삐뚤빼뚤한 글씨로 ‘강도진은 한이서 것’이라고 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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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남편 반품 문의
“남편을 잡아먹었다고? 제가요? 그것도 하객들 앞에서?”이서는 사진첩을 얼굴 가까이 끌어당겼다. 새하얀 드레스 차림의 여자가 강도진의 양 볼을 붙잡고 입을 맞추고 있었다. 발끝까지 내려온 면사포가 바람에 들렸고, 뒤편에서는 꽃잎을 뿌리던 하객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제 얼굴인데도 기억에 없는 표정이었다. 사진 밑에 적힌 ‘남편 너무 귀여워서 내가 먼저 잡아먹음♡’이라는 문장은 더 가관이었다.“잡아먹을 만큼 좋았나 보네, 내가.”침대 옆에 떨어져 앉은 도진이 입꼬리를 올렸다. 이서는 사진을 뒤집었다. 도진이 보고 있다는 생각만으로 귀까지 뜨거웠다.“대표님, 그렇게 잘생긴 얼굴로 아무 말이나 하시면 법에 걸려요.”“무슨 법?”“사람 정신 못 차리게 하는 법이요.”“그럼 우리 여보가 체포해 줘. 나 평생 당신한테만 잡혀 있을게.”그가 양 손목을 나란히 내밀자 이서는 베개를 껴안았다. 경제지 표지에서 사람을 얼어붙게 만들던 남자가 자기 앞에서는 체포 놀이를 하고 있었다. 무슨 얼굴로 회사에 출근한다는 건지 알 수 없었다.하지만 웃음은 잠깐이었다. 사진은 웃고, 반지는 반짝이고, 남자는 자신을 사랑한다는 얼굴로 앉아 있었지만 이서에게 지난 1년은 통째로 비어 있었다. 그녀는 다시 앨범을 덮었다. 얇은 종이가 맞부딪치는 소리에 도진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우리 진짜 결혼한 거예요? 사진 말고 확인할 방법 없어요?”“있지. 당신이 직접 확인할 수 있게 해 줄게.”도진은 곧장 전화를 걸었다. 비서실장에게 혼인관계증명서와 신고서 사본을 부탁하는 그의 말투는 간결했고, 조금 전의 애교는 흔적도 없었다. 통화를 마친 그가 돌아보자 기다렸다는 듯 눈이 다시 휘었다.“아이고, 우리 신부님. 서류까지 확인하는 꼼꼼함에 남편 또 반했네.”“반하실 시간에 물 좀 주세요.”“네, 공주님. 미지근한 물로 모시겠습니다. 오늘의 사랑도 적정 온도로.”이서는 이불 속에 발가락을 말아 넣었다. 비싼 침구의 매끄러운 촉감도, 창가에서 풍겨 오는 꽃향기도 도진의 말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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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사라진 1년
“제가 밤마다 이런 쪽지를 썼다고요? 야근하던 한이서가 언제 이렇게 사랑에 미쳤어요?”이서는 종이를 뒤집었다가 다시 폈다. 접힌 자리가 하얗게 닳아 있었고, 끝에는 하트가 세 개나 그려져 있었다. 마지막 획이 오른쪽으로 치솟는 버릇까지 제 글씨였다. 강도진의 손을 잡지 않으면 잠들지 못했다는 여자가 지난 1년의 자신이라니, 남의 연애편지를 훔쳐 읽는 기분이었다.“그때도 나한테 그런 말 했어. 사랑에 미쳤냐고.”도진이 눈앞에서 손을 펼쳐 보였다.“그래서 내가 그랬지. 병명은 한이서, 치료는 평생 같이 살기.”“대표님, 직원들한테도 그렇게 말씀하세요?”“아니. 직원들한테 여보라고 했다간 인사팀이 난리 나지.”이서는 그럴듯한 대꾸를 찾지 못한 채 쪽지를 무릎에 내려놓았다. 침실에는 햇빛이 깊이 들어와 있었고, 유리창 너머 정원사가 물을 뿌리는 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저렇게 평화로운 아침에 자기 인생에서 가장 커다란 1년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침대 옆 탁자에는 자신이 쓰던 립밤과 잔뜩 구겨진 영수증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영수증 뒤편에는 ‘여보 딸기 사 오기’라는 메모가 있었다. 이런 소소한 흔적까지 남아 있는데, 왜 하필 기억만 없는 걸까. 이서는 영수증을 집어 들었다가 한 번 더 도진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잠시 후 담당 의사가 다시 찾아왔다. 이서는 침대에서 내려와 창가의 긴 소파에 앉았다. 도진이 쿠션을 가져다 놓자 고맙다고 말하면서도 곁에 앉으라는 손짓은 하지 않았다. 그는 마주 보는 의자에 자리를 잡고 이서가 준비한 질문을 묵묵히 들었다.사고를 당한 날짜, 치료받은 기간, 기억이 이어지는 마지막 시점. 의사는 확인된 기록을 차례로 보여 주면서 앞으로의 경과를 단정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서는 날짜를 수첩에 적다가 펜을 멈췄다.“그럼 전 결혼한 날도, 남편을 좋아하게 된 날도 기억이 없는 거예요?”말을 끝내자 목 안쪽이 따끔거렸다. 어느 순간 좋아하게 됐을 저 남자는 그 모든 날을 혼자 기억하고 있었다. 이서는 도진을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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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안주인 사용법
“잠깐만요! 제가 남편이랑 침대 쟁탈전까지 했다고요?”휴대전화에서 흘러나온 자신의 목소리에 이서는 화면을 꺼 버렸다. 영상 속 여자는 케이크보다 남편을 더 좋아하는 얼굴이었다. 도진은 침대 맞은편 의자에 앉아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웃음을 삼키려 입술을 깨물었다.“지금 웃었죠?”“아니. 우리 여보가 일주일 만에 나랑 침대 반씩 쓰는 협정 깼던 날이 생각나서.”“제가 먼저요?”“응. 내가 베개로 경계선 만들어 놨더니 그 베개 안고 내 쪽으로 굴러왔어. 침략자가 너무 귀여워서 항복했지.”이서는 휴대전화를 뒤집어 탁자에 놓았다. 오후 햇살이 침대 끝에 내려앉아 있었고, 아직 낯선 방의 시계만 아무렇지 않게 시간을 세고 있었다. 이 집에 자신이 살았다는 증거는 자꾸 나타나는데, 정작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조차 몰랐다. 아무래도 직접 둘러봐야 할 것 같았다. 다만 이 집을 구경하자는 말조차 방문객처럼 들려 속이 쓰렸다. 지금까지 자신이 살아온 방에서는 어디에 앉아야 편한지, 서랍에 뭐가 있는지 손이 먼저 알고 있었으니까. 이 방에서는 침대 옆 스위치도 찾지 못했다.“저 집 좀 구경할래요. 여기서 제가 뭘 하면서 살았는지 알아야겠어요.”도진은 곧바로 일어섰다가 이서가 맨발인 것을 보고 다시 멈췄다. 침대 밑에서 토끼 얼굴이 달린 슬리퍼를 꺼내 그녀 발 앞에 놓았다. 분홍 귀 한쪽이 오래 신은 것처럼 약간 접혀 있었다.“안내원 강도진, 준비됐습니다. 손님 한 분 모실게요. 참고로 내가 제일 좋아하는 관광지는 우리 여보 얼굴.”“안내원 교체 안 돼요?”“평생 계약이라 어려우신데, 잘생김은 무료입니다.”방문을 나서자 길게 뻗은 복도 끝에 계단이 나타났다. 벽마다 걸린 그림 아래 작은 조명이 켜져 있었고, 아래층에서는 갓 구운 빵 냄새가 올라왔다. 계단 중간 사진 속 이서는 도진의 코에 밀가루를 묻히고 있었다. 액자 밑에는 ‘주방 첫 합작품, 먹을 수는 없음’이라고 쓰여 있었다. 계단 난간은 손바닥에 닿자 서늘했다. 이서는 높은 천장과 쉴 새 없이 갈라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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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코코 3초
“뭐요? 라면을 발견한 사람이 남편한테 안겨야 한다고요?”이서는 장롱 앞에 쪼그려 앉은 채 쪽지를 다시 읽었다. ‘코코 3초 선불 지급.’ 글씨는 틀림없이 자신의 것이었다. 봉지라면 열두 개를 쌓아 둔 칸에서는 매콤한 스프 냄새가 희미하게 올라왔고, 등 뒤에는 강도진이 웃음을 참고 서 있었다.“이 집은 라면에도 이용약관이 있어요?”“그 약관 만든 사람이 여보야. 난 매번 충실히 이행한 우수 회원이고.”“코코가 대체 뭔데요?”도진은 잠깐 입술을 다물더니 양팔을 벌렸다. 정장을 입은 훤칠한 남자가 주방 한복판에서 사람 하나 들어갈 자리를 만들어 놓고 서 있는 모습이 우스꽝스러웠다.“우리끼리 쓰는 말이야. 꼬옥 안아 주기의 줄임말. 아침마다 3초씩.”“그걸 누가 줄였어요?”“당신. 내가 출근할 때마다 오래 안고 있으면 지각한다고.”“대표님이 지각하면 대표님이 혼내잖아요.”“맞아. 그런데 우리 집 사모님은 안아 주지도 않고 가면 더 무섭게 혼내.”복례가 찬장 안쪽에서 접시를 꺼내다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웃음을 들키지 않으려는 눈치였다. 이서는 쪽지를 반으로 접어 바지 주머니에 밀어 넣었다. 어차피 기억도 나지 않는 약속이었다. 도진은 팔을 내리고 한 발 물러났다.“오늘은 안 해도 돼. 그 종이는 옛날 우리끼리 장난친 거니까.”장난을 거두는 말투가 뜻밖에 다정해서 이서는 잠시 그의 셔츠 소매를 바라봤다. 분홍 실로 꿰맨 하트가 살짝 튀어나와 있었다. 누군가에게 저렇게 사랑받았다는 사실이 아직은 낯설었지만, 그가 자신을 기다려 준다는 것만큼은 알 것 같았다.장롱 문 안쪽에는 ‘야식은 둘이 먹어야 더 맛있음’이라는 스티커까지 붙어 있었다. 도진은 자신이 라면 물을 너무 많이 잡아 세 번이나 혼났다고 털어놓았다. 이서가 웃자 그는 기다렸다는 듯 물었다.“우리 애기, 남편 놀리는 재미가 벌써 돌아왔어?”이서는 대답 대신 라면 봉지로 그의 팔을 툭 쳤다.그날 밤 이서는 주방에서 가져온 라면 한 봉지를 침대 곁에 놓아 두었다. 낯선 드레스룸과 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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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남편 옷 압수
“잠깐. 여보, 그 5초 예약 오늘로 당길 수는 없어?”닫히던 엘리베이터 문이 다시 열렸다. 도진은 한쪽 발을 문밖에 걸친 채 이서를 바라보고 있었다. 방금까지 대표의 얼굴로 서류를 넘기던 남자가 고작 포옹 2초를 더 받겠다고 저런 표정을 짓다니. 이서는 현석과 눈이 마주치자 그만 웃음을 터뜨렸다.“안 됩니다. 예약 변경 수수료가 비싸거든요.”“얼마인데?”“내일 지각 안 하기.”“그건 우리 아기한테 잘 보이기 위한 최소 조건이지.”현석이 헛기침하며 시계를 가리켰다. 도진은 못내 아쉬운 듯 손끝을 흔들다가 문이 완전히 닫히기 직전 손가락으로 제 입술을 톡 두드렸다. 이서가 얼른 돌아서자 등 뒤로 웃음소리가 따라왔다. 문에 비친 이서의 얼굴도 발갛게 달아올랐다. 남편은 어떻게 저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까. 더 어처구니없는 건 자신도 내일 아침을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이었다.혼자 남은 복도는 이상하게 조용했다. 좀 전까지 등에 닿았던 손바닥의 무게가 셔츠 너머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이서는 제 어깨를 감쌌다가 손을 내렸다. 3초짜리 포옹에 이러다니, 사진 속 자신을 비웃을 처지도 아니었다.방으로 돌아가려던 이서는 계단 앞에서 멈췄다. 잠옷 차림으로 내려왔다는 사실을 이제야 깨달았다. 복례에게 옷을 갈아입고 싶다고 말하자, 그녀는 이서를 2층 안쪽의 넓은 문 앞으로 안내했다.문 안에는 조명 켜진 옷장이 이어졌다. 색깔별로 정리된 원피스와 재킷, 유리장 아래 가지런한 구두, 벨벳 상자 속 반짝이는 장신구까지. 화장대에는 쓰던 브러시가 놓였고, 손잡이에 걸린 고무줄은 회사에 다닐 때 즐겨 쓰던 색이었다. 구두 한 켤레의 밑창도 닳아 있었다. 자신이 직접 고르고 신고 다녔던 흔적이었다. 이서는 처음 백화점 매장에 잘못 들어왔을 때처럼 문턱에서 발을 떼지 못했다. 거울에는 분홍 토끼 슬리퍼를 신은 여자가 멍하니 서 있었다.“이게 전부 제 거예요?”“네. 이서 씨가 직접 고르신 것도 많습니다.”“세탁비는 누가 내요? 아, 아니, 이 옷 하나 팔면 제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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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애칭 금지령
‘남편한테 돌려주지 말 것. 이 옷만 입으면 강도진이 또 안아 달라고 조르니까.’이서는 후드티 주머니에서 나온 쪽지를 한참 내려다봤다. 종이 끝은 여러 번 접었다 편 듯 부드러워져 있었고, 글자 옆에는 펜으로 찍은 점 세 개가 남아 있었다. 도진이 방금 보낸 ‘사진 한 장만 더’라는 메시지와 쪽지를 번갈아 보니, 지난 1년 동안 자신이 무슨 일을 저질렀는지 조금 짐작이 갔다. 이 남자는 분명 온종일 자기를 귀여워했고, 예전의 자신은 그걸 즐기며 더 놀렸을 것이다.그런데 지금은 달랐다. 잠든 사이 잃어버린 1년을 한꺼번에 돌려받은 것도 아닌데 ‘아기’, ‘공주님’, ‘말랑복숭아’ 소리를 들을 때마다 얼굴부터 뜨거워졌다. 이서는 거울 앞에서 후드티 소매를 걷어 올렸다. 어깨선이 팔뚝까지 흘러내리고, 주머니에는 양손을 함께 넣어도 자리가 남았다. 그 안에 남아 있던 종이 한 장이 누군가의 사랑을 오래 붙잡아 둔 것 같았다.휴대전화가 다시 진동했다.‘우리 애기, 밥 먹고 낮잠도 자. 남편이 퇴근하면 이마 열부터 검사할 거야.’“이 양반은 회사에서 대체 뭘 하는 거야.”혼잣말을 하며 답장을 쓰던 이서는 지우고 다시 적었다.‘오늘부터 호칭에 규정이 생겼습니다. 퇴근 후 공지 예정.’몇 초 뒤 답이 왔다.‘대표가 직접 찾아가서 이의 신청해도 됩니까?’‘근무시간 중 방문 금지.’‘네, 한이서 심사위원님. 퇴근하자마자 달려가겠습니다.’이서는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한동안 웃었다. 생판 모르는 남자가 남편이라는 사실은 여전히 낯설었지만, 메시지를 보내는 손가락만큼은 점점 망설임이 줄었다. 저녁을 기다린다는 마음이 들자 갑자기 민망해져 휴대전화를 뒤집어 놓았다. 그런데 몇 분이 지나도 화면을 보지 않고는 못 배겼다. 알림은 없었고, 그게 서운하다는 사실이 더 황당했다. 자신은 그를 아직 남편이라고 부르지도 못하는데, 벌써 퇴근 시각을 궁금해하고 있었다. 창가에 옷을 말리던 바람이 후드티 소매를 흔들었다. 이서는 한쪽 소매로 입가를 가리며 혼자 웃었다.오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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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재벌의 앞치마
“여보를 하루에 몇 번 부를 수 있냐고요? 한 번 더 물으면 내일 아침밥 직접 차리세요.”이서가 숟가락을 내려놓자 도진은 식탁 모서리에 부딪힌 허벅지를 문지르던 손을 멈췄다. 유리가 물을 마시다 사레들렸고, 복례는 웃음이 새어 나올까 봐 빈 접시를 챙기는 데 열중했다. 도진은 잠깐 생각하는 척하다가 저녁 식탁을 향해 몸을 숙였다.“여보.”“방금 경고했는데요?”“내일 아침은 내가 차릴게. 그러니까 이건 선결제.”거액의 계약을 다루는 남자가 부엌일 한 번 해 보겠다고 저렇게 해맑았다. 도진은 이서가 말을 바꾸기 전에 복례에게 내일 아침 주방을 빌리겠다고 부탁했다. 유리는 오빠에게 달걀을 깨 본 적이나 있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당당하게 대답했다.“내 아내 먹일 달걀인데 설마 날 거절하겠어?”다음 날 아침, 이서를 깨운 건 새소리가 아니라 주방 쪽에서 들려오는 우당탕 소리였다. 창가 커튼 사이로 들어온 햇볕이 침대 발치를 비추고 있었다. 토끼 슬리퍼를 끌고 복도로 나오자 구운 빵 냄새에 섞여 어딘가 탄 듯한 냄새가 났다. 계단을 내려갈수록 작게 다투는 두 남자의 목소리도 또렷해졌다. 어젯밤엔 정말 아침을 차릴까 싶었는데, 도진은 장난처럼 던진 말을 약속으로 만들어 놓았다. 이서는 부엌에서 혼자 서툴게 움직이는 남자를 상상하다가 계단 끝에서 걸음을 늦췄다.“대표님, 불부터 줄이셔야 합니다.”“서 선생, 이 노른자는 왜 자꾸 도망가죠?”“달걀은 사람을 피해 다니지 않습니다.”이서는 주방 입구에 기대섰다. 도진은 셔츠 소매를 팔꿈치까지 걷어붙이고 있었다. 그 위에는 연분홍 앞치마가 묶여 있었는데, 가슴팍에 커다란 토끼가 웃고 있었다. 서만복은 팬 앞에 선 그를 지켜보며 젓가락을 쥔 손까지 조심스럽게 안내하고 있었다. 도마 위에는 흰자와 노른자가 섞인 그릇 세 개가 놓여 있었고, 달걀 껍데기는 접시 위에 산처럼 쌓여 있었다. 토끼 그림 아래에는 ‘우리 여보 전담 요리사’라는 글자가 삐뚤게 붙어 있었다. 이서가 그것을 가리키자 서만복은 새벽부터 대표가 직
last updateÚltima atualização : 2026-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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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손잡기 계약
“저만 알아야죠”라는 말에 강도진이 그만 빵을 떨어뜨렸다.이서는 사진을 확인하느라 고개를 숙이고 있었지만, 식탁 건너편에서 일어난 소동은 놓치지 않았다. 도진은 탄 토스트 조각이 앞치마에 떨어진 줄도 모르고 그녀만 바라봤다. 입가에 묻은 잼조차 닦지 못한 채였다.“방금 나한테 독점 선언한 거야?”“못생긴 사진 유출하지 않겠다는 뜻이거든요.”“그럼 얼굴 말고 나머지도 보관해 줘. 웃기는 재주는 없지만, 손도 따뜻하고 어깨도 넓어.”이서는 그가 내민 손을 보다가 웃음을 터뜨렸다. 서만복은 새 토스트를 접시에 올려놓고는 두 사람 사이에 놓인 검게 탄 빵을 슬그머니 치웠다. 도진은 그제야 앞치마를 벗었고, 이서는 토끼 귀가 달린 매듭을 풀어 주려다 문득 그의 뒷목과 가까워진 거리에 손을 멈췄다. 옷깃 사이로 갓 씻은 피부의 향이 났다. 모르는 남자라는 사실은 그대로였는데, 이 사람이 웃으면 자꾸 자신도 웃었다. 휴대전화 화면에는 방금 찍은 사진이 남아 있었다. 도진의 뺨에는 잼이 묻어 있었고, 웃느라 눈이 반쯤 감겼다. 뉴스에 나오는 냉정한 대표보다는 아침을 망치고도 아내 칭찬 한마디에 기뻐하는 평범한 남편에 가까웠다.“나 회의 들어가기 전에 정원 한 바퀴만 걸을래?”“대표님, 오늘 회사는 안 가세요?”“가야지. 근데 오늘 아침 당신이 나 귀엽다고 했잖아. 그 말 오래 간직하려면 산책이 좀 필요해.”그 억지가 웃겨서 결국 따라나섰다. 현관의 긴 유리문을 밀자 아침에 내린 물이 아직 마르지 않은 돌길에서 흙냄새가 올라왔다. 낮은 나무 울타리 너머로 흰 꽃이 피어 있었고, 연못 쪽에서는 물 흐르는 소리가 났다. 침실 창으로 내려다봤을 때는 그림처럼 정돈된 정원이었는데, 막상 걸어 보니 화단 한편에 작은 삽과 닳은 장갑이 놓여 있었다. 사람이 살고 손을 보태는 집이라는 느낌이 처음 들었다.도진은 앞서 걷지 않았다. 굽이 낮은 슬리퍼를 신은 이서가 젖은 돌을 살필 때마다 걸음을 맞췄다. 연못으로 가는 길목은 돌 사이가 조금씩 벌어져 있었고, 이서는 물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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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신랑 탈출 실패
“써. 주머니는 공짜고, 안에 든 남편은 평생 네 거야.”도진은 이서가 제 코트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올려다보자 웃음을 감추지도 못했다. 연못에서 현관까지 이어진 자갈길에는 아침 볕이 내려앉았고, 젖은 화단에서는 흙냄새가 올라왔다. 이서는 주머니 안에서 손가락을 살짝 꼼지락거렸다. 그러자 도진이 어깨를 움찔했다.“손이 차가워서 넣은 거거든요.”“알아. 근데 여보 손이 들어오니까 내 주머니가 출세한 기분이네.”“주머니한테 물어봤어요?”“응. 지금 아주 행복하대.”이서는 기가 막혀 웃었다. 조금 전까지 낯선 사람이라고 생각했던 남자와 한 주머니에 손을 넣고 있다는 사실이 민망해졌다. 도진은 손을 꽉 쥐지도, 그녀가 빼려는 기색을 보이면 붙잡지도 않았다. 정작 놓기 아쉬운 사람은 이서 자신이었다. 현관 앞에 서자 도진의 휴대전화가 울렸고, 그는 화면을 확인한 뒤 아쉬운 얼굴로 차 쪽을 바라봤다.“이제 진짜 출근해요. 또 늦으면 비서실장님이 저 미워하겠어요.”“현석이는 당신 못 미워해. 내가 당신 얘기만 하면 회의자료부터 덮거든.”“그건 대표님이 일을 안 해서잖아요!”도진이 손등에 입을 맞추려다가 멈췄다. 이서는 그 망설임을 보고 괜히 목덜미가 뜨거워졌다. 그가 입 대신 그녀의 소매를 한 번 정리해 준 뒤 물러나자, 그제야 주머니에서 손을 빼냈다. 비어 있는 손바닥이 조금 허전했다. 승용차가 정원 끝을 돌아 사라진 뒤에도 이서는 현관에 서 있었다. 코트 주머니 안에서 느꼈던 손의 온도가 손가락 사이에 남아 있었다. 아직 사랑한다는 말은 못 하겠는데, 그가 출근하는 모습은 벌써 두 번이나 돌아보게 됐다.도진이 떠난 뒤 이서는 2층 침실로 돌아갔다. 아침의 소란이 사라진 방에는 정원에서 들어오는 햇볕만 길게 누워 있었다. 창가의 작은 탁자 위에는 사진첩이 펼쳐진 채 놓여 있었다. 처음 깨어난 날 결혼사진을 보고 놀라 덮어 버린 그 앨범이었다. 이서는 한 장씩 천천히 넘겼다.사진마다 도진은 같은 사람인데 표정이 달랐다. 회사 기사 속 그에게서 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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