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금요일 오후 5시 40분.NEXT ONE 대표실.신시안은 마지막 결재 서류에 서명한 뒤 노트북을 닫았다.그때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똑똑.“들어오세요.”문을 열고 들어온 사람은 은소예였다.그런데 평소와 달리 손에 작은 봉투를 들고 있었다.“대표님, 오늘 저녁 일정 있으십니까?”시안이 고개를 들었다.“공식 일정은 없습니다.”“그럼 퇴근 후 2시간 정도 시간을 내주시겠습니까?”시안은 그녀의 표정을 살폈다.“무슨 일입니까?”소예는 봉투를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초대장입니다.”시안은 봉투를 열었다.안에는 검은색 카드가 들어 있었다.오늘의 특별 초대참석자: 신시안동행인: 은소예장소: 비공개복장: 편안한 옷준비물: 호기심시안은 카드를 읽다가 웃었다.“은 본부장님.”“네, 대표님.”“이거 혹시 납치 예고입니까?”소예는 태연하게 대답했다.“합법적인 데이트 신청입니다.”“목적지는요?”“비밀입니다.”시안은 웃으며 초대장을 다시 봉투에 넣었다.“알겠습니다. 참석하겠습니다.”오후 7시 10분.서울의 한 실내 양궁장.시안은 입구 간판을 바라보다가 소예에게 고개를 돌렸다.“양궁?”소예가 활짝 웃었다.“응. 오늘은 활 쏘러 왔어.”“갑자기?”“당신이 전에 집중력 필요한 운동 해보고 싶다고 했잖아.”시안은 잠시 생각했다.“그랬지.”“그래서 찾아봤어. 초보자도 강사한테 배울 수 있는 곳으로.”시안은 웃으며 안으로 들어갔다.“재미있겠는데?”접수를 마친 두 사람은 안전교육을 받았다.강사는 활을 다루는 방법과 사대에서 지켜야 할 규칙을 설명했다.“화살은 반드시 사대에서만 장전하시고, 사격 중에는 절대 앞으로 나가시면 안 됩니다.”소예와 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팔 보호대와 손가락 보호 장비를 착용한 뒤 각자 지정된 사대에 섰다.소예는 활을 들어보더니 눈을 동그랗게 떴다.“여보, 생각보다 무겁다.”시안도 활을 잡았다.“그러네.”강사가 자세를 잡아주었다.“어깨에 힘을 너무 많이 주지 마세요.
월요일 오전 9시 15분.NEXT ONE 본부장실.은소예는 오전 회의 자료를 확인하다가 공차연의 말을 듣고 고개를 들었다.“대표님이 안 계신다고요?”“네. 비서실에서도 오늘 오전 외부 일정이라고만 전달받았대요.”“외부 일정이면 일정표에 있어야 하는데.”소예는 사내 일정표를 확인했다.신시안의 오전 일정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대표님께 직접 연락해보셨어요?”“네. 그런데 통화가 안 돼요.”소예는 휴대폰을 꺼냈다.여보, 어디야? 오전 회의는?메시지를 보냈지만 답장은 오지 않았다.차연이 조심스럽게 물었다.“본부장님도 모르셨어요?”“네. 아침에는 평소처럼 출근했는데.”소예는 잠시 생각하다가 회의 자료를 덮었다.“일단 회의는 예정대로 진행하죠. 대표님 결재가 필요한 안건은 따로 정리하고요.”“알겠습니다.”차연이 나간 뒤 소예는 다시 휴대폰을 바라봤다.읽음 표시조차 뜨지 않았다.“신시안, 대체 어디 간 거야?”오전 10시 30분.회의실.소예는 부서별 보고를 듣고 있었다.“신규 협력사 계약 검토는 어디까지 진행됐나요?”운영팀장이 대답했다.“법무 검토는 끝났고, 최종 조건 조율만 남았습니다.”“그럼 조건 변경 사항을 정리해서 오후까지 전달해 주세요.”그때 회의실 문이 열렸다.차연이 조용히 들어와 소예에게 메모를 건넸다.대표님 연락 왔습니다. 오후 12시 30분 복귀 예정입니다.소예는 메모를 읽고 고개를 끄덕였다.회의를 마친 뒤 휴대폰을 확인하자 시안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여보, 오전에 급하게 확인할 일이 생겼어. 점심 전에 돌아갈게.소예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무슨 일인데?잠시 후 답장이 왔다.돌아가서 이야기할게.소예는 화면을 바라보다가 한숨을 내쉬었다.“말을 해줘야 알지.”오후 12시 25분.대표실 앞.소예는 복도를 지나가다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시안을 발견했다.그런데 그의 모습이 평소와 조금 달랐다.정장 재킷 대신 짙은 남색 셔츠를 입고 있었고, 한 손에는 커다란 종이봉투를 들고
일요일 오전 7시 30분.은소예는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처음에는 빗소리인 줄 알았다.하지만 커튼을 걷자 창밖으로 보이는 것은 빗방울이 아니라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였다.“여보.”침대에서 일어난 소예가 신시안을 불렀다.“응…….”“밖에 바람이 좀 부는데?”시안은 눈을 뜨고 창밖을 바라봤다.“그러네.”“오늘 능동자갈마당 가기로 했잖아.”시안은 휴대폰으로 기상 정보를 확인했다.“오전에는 바람이 조금 강하대. 해변 상황 보고 결정하자.”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무리해서 갈 필요는 없으니까.”그때 시안이 휴대폰을 내려놓으며 물었다.“그런데 지금 몇 시야?”“7시 30분.”“……우리 9시에 일어나기로 하지 않았어?”소예는 웃었다.“여행 와서 늦잠 자면 아깝잖아.”시안은 다시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그럼 나는 30분만 더.”“신시안.”“응.”“아침 먹으러 가야지.”시안은 눈도 뜨지 않은 채 대답했다.“대표이사 연차 신청합니다.”소예는 이불을 살짝 잡아당겼다.“반려합니다.”오전 9시 15분.두 사람은 숙소에서 아침을 먹은 뒤 차량을 이용해 능동자갈마당으로 향했다.이동하는 동안 소예는 창밖을 살폈다.도로 양옆으로 숲이 이어졌고, 멀리 바다가 보였다.“여보, 섬 안에도 이렇게 숲이 많네.”“그러게. 어제 본 해변이랑 분위기가 완전히 다르다.”“오늘은 사진보다 소리를 많이 듣고 싶어.”“자갈 부딪히는 소리?”“응. 진짜 특별한 소리가 나는지 궁금해.”시안은 미소 지었다.“그럼 오늘은 귀가 바쁘겠네.”잠시 후 목적지 인근에 도착했다.바람은 아침보다 조금 잦아들었지만, 해변 쪽에서는 파도가 제법 크게 밀려오고 있었다.소예는 안내판을 확인했다.“여보, 아래쪽은 파도가 높네.”시안도 바다를 살폈다.“가까이 내려가지 말고 안전한 관찰 구역에서 보자.”“응.”두 사람은 난간이 설치된 곳으로 이동했다.그때였다.촤르르륵.파도가 밀려왔다가 빠져나가자 독특한 소리가 들렸다.수많은 자갈이 서
금요일 오후 6시 15분.NEXT ONE 지하 주차장.은소예는 조수석에 앉자마자 신시안을 바라봤다.“여보, 이제는 알려줄 때 되지 않았어?”시안은 안전벨트를 매며 웃었다.“뭘?”“배 타러 간다는 거.”“내일 아침이면 알게 되잖아.”“그게 문제야. 뭘 준비해야 하는지도 모르겠어.”시안은 뒷좌석에 놓인 가방을 가리켰다.“편한 옷이랑 운동화. 그리고 얇은 겉옷 하나.”“수영복은?”“필요 없어.”“여권은?”“그것도 필요 없고.”소예는 눈을 가늘게 떴다.“혹시 무인도에 내려놓고 오는 건 아니지?”시안이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왜 당신을 무인도에 내려놔.”“요즘 당신이 자꾸 비밀로 하니까 그렇지.”“걱정하지 마. 돌아오는 표까지 예약했어.”소예는 그 말을 듣고 잠시 멈췄다.“……돌아오는 표?”“응.”“여보, 우리 어디까지 가는 거야?”시안은 대답 대신 차를 출발시켰다.토요일 오전 9시 20분.인천항 연안여객터미널.소예는 출발 안내 전광판을 올려다봤다.“여보, 설마 덕적도?”시안이 휴대폰 승선권을 보여줬다.“정답.”“진짜 섬에 가는 거야?”“응. 1박 2일.”소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잠깐. 나 내일 저녁 약속 없긴 한데…….”“확인하고 예약했어.”“언제?”“지난주에 당신이 다음 여행은 나보고 계획하라고 했을 때.”소예는 웃었다.“실행력 하나는 정말 대단하다.”시안은 승선권을 확인했다.“신분증 챙겼지?”“응.”“멀미약은?”“아까 먹었어.”“좋아. 그럼 들어가자.”소예는 터미널 유리창 너머에 정박한 여객선을 바라봤다.“근데 여보.”“응?”“배에서 자는 거 아니라고는 끝까지 안 했잖아.”시안이 미소 지었다.“배에는 객실이 있으니까.”소예의 걸음이 멈췄다.“뭐?”오전 10시 5분.두 사람은 승선을 마치고 선내 안내도를 살펴봤다.소예는 시안이 가리킨 곳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여보! 이거 일반 객실이잖아!”“응. 좌석 있는 객실.”“나는 무슨 크루즈 객실 예약한 줄 알
토요일 오전 8시 40분.“여보, 출발 준비됐어?”은소예는 현관에서 운동화 끈을 묶으며 물었다.신시안은 작은 여행 가방을 들고 나왔다.“응. 그런데 정말 목적지까지 비밀이야?”“당연하지. 이번 여행은 내가 계획했으니까.”“기차역 보러 가는 건 알잖아.”“어느 역인지는 모르잖아.”시안은 웃으며 차 키를 내려놓았다.“그런데 왜 차 키는 두고 가?”소예는 가방에서 승차권 2장을 꺼냈다.“오늘은 기차 타고 갈 거거든.”“기차?”“응. 기차역을 보러 가는데 기차를 타야지.”시안은 승차권을 받아 들었다.“강릉?”소예가 웃었다.“정답!”오전 10시 15분.서울역에서 출발한 열차가 동쪽으로 달리고 있었다.시안은 창밖을 바라보다가 소예에게 물었다.“그런데 경매장에서 산 기차표는 어디 역 거였어?”“정동진역.”“아.”“예전 승차권에 적힌 날짜가 1988년이더라. 그때는 지금처럼 관광지로 유명하지도 않았을 텐데.”시안은 고개를 끄덕였다.“그렇겠네.”소예는 휴대폰에서 오래된 승차권 사진을 보여줬다.빛바랜 종이에는 출발역과 도착역, 날짜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이거 보니까 궁금해졌어. 저 표를 가지고 기차를 탔던 사람은 어떤 여행을 했을까?”“우리처럼 갑자기 떠났을 수도 있지.”“그럴까?”“응. 누군가 만나러 갔을 수도 있고.”소예는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그럼 우리도 오늘은 그 사람이 봤을 바다를 보러 가는 거네.”오후 12시 5분.강릉에 도착한 두 사람은 정동진으로 이동했다.역에 가까워질수록 바다 냄새가 느껴졌다.소예는 걸음을 재촉했다.“여보, 빨리 와!”시안이 웃었다.“천천히 가도 바다는 안 도망가.”“알아. 그런데 빨리 보고 싶어.”잠시 후 두 사람 앞에 바다가 펼쳐졌다.철길 가까이로 푸른 물결이 이어지고 있었다.소예는 난간 앞에 멈춰 섰다.“와…….”시안도 옆에 섰다.“좋네.”“기차역 바로 옆에 바다가 있으니까 신기하다.”소예는 휴대폰을 꺼내 사진을 찍었다.그리고 시안에게 손을
토요일 오전 10시 40분.“여보, 오늘은 어디 가는 거야?”은소예는 조수석에 앉아 신시안을 바라봤다.시안은 내비게이션을 확인하며 대답했다.“경매장.”“경매장?”“응.”“부동산 경매?”“아니. 빈티지 소품 경매.”소예의 눈이 커졌다.“그런 것도 직접 가서 할 수 있어?”“응. 일반인도 참여할 수 있는 작은 경매 행사래.”“뭘 사려고?”“딱히 정해놓은 건 없어. 구경만 해도 된대.”소예는 흥미로운 표정으로 창밖을 바라봤다.“재미있겠다.”시안이 웃었다.“대신 오늘은 충동구매 금지.”“당신한테 하는 말이지?”“우리 둘 다.”“알았어. 예산은?”“최대 10만 원.”소예는 고개를 끄덕였다.“좋아. 그 이상은 절대 안 쓰기.”오전 11시 15분.두 사람이 도착한 곳은 오래된 건물을 개조한 작은 경매장이었다.벽에는 오래된 영화 포스터와 흑백사진이 걸려 있었고, 중앙 진열대에는 시계와 찻잔, 장식품들이 놓여 있었다.소예는 입구에서 참가 번호표를 받았다.참가번호 27번.시안은 28번이었다.소예가 번호표를 흔들었다.“여보, 이거 들면 진짜 낙찰되는 거야?”“응. 진행자가 우리 번호를 확인하면.”“괜히 떨리는데?”시안은 웃었다.“마음에 드는 물건이 있을 때만 들어.”소예는 진열장을 둘러보다가 작은 물건 앞에서 멈췄다.“어?”유리 진열장 안에는 오래된 금속 종이 놓여 있었다.손잡이는 짙은 갈색 나무로 되어 있었고, 종 표면에는 작은 꽃무늬가 새겨져 있었다.소예가 설명 카드를 읽었다.“1970년대 제작 추정. 황동 손종.”시안이 다가왔다.“마음에 들어?”“응. 예쁘다.”“어디에 쓰려고?”“그냥 책상 위에 올려놔도 좋을 것 같아서.”시안은 가격표를 확인했다.“시작가 2만 원이네.”소예는 웃었다.“이 정도면 괜찮겠다.”그런데 시안은 다른 진열장을 바라보고 있었다.그곳에는 오래된 나무 상자 하나가 놓여 있었다.“여보, 당신은 저게 마음에 들어?”“조금.”“뭔데?”“옛날에 쓰던 휴대용 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