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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보리들
“진작 이렇게 철이 들었으면 아버지 속을 덜 끓였을 텐데.”

오빠는 내가 맞받아치지 않자 놀란 기색을 보이다가 곧 조금 안도한 표정을 지었다.

“앞으로는 말 좀 들어. 매번 대들지 말고. 나랑 아버지는 네 가장 가까운 가족이야. 우리가 하는 건 다 너 잘되라고 하는 거야.”

나는 이를 악물고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앞으로라니. 이제 나한테 무슨 미래가 남았다고.’

고민재가 생일 케이크 한 조각을 들고 다가왔다.

“기분 풀어. 생일 축하해.”

담담한 눈빛과 진심 어린 말이었다.

“고마워...”

속에 담아 두었던 억울함이 한꺼번에 올라와 흩어졌다.

내가 5년 동안 좋아한 사람이었다.

고민재는 내가 가족에게 숨이 막힐 때마다, 수없이 많은 어두운 밤 속에서 나를 구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고민재의 얼굴에 작은 기쁨이 떠올랐다. 이어 말을 꺼냈다.

“정말 고마우면, 마침 나도 너한테 할 말이 있어.”

“지아가 졸업 여행을 가려고 해. 여자 혼자 가는 데다 어릴 때부터 너보다 몸이 약했잖아. 걱정돼서 내가 같이 가려고. 우리 약혼식은 조금 미루자. 여행 다녀와서 다시 일정 잡으면 돼.”

“지연이 너도 가고 싶으면 같이 가자. 내일 아침 일찍 출발할 거야.”

고민재의 말은 벼락처럼 나를 내려쳤다. 몸이 아프고 저려서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나는 고민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거의 들리지 않았다. 그저 고민재의 입이 열리고 닫히는 모습만 멍하니 바라볼 뿐이었다.

천지아가 두어 번 기침하고 말했다.

“지연이는 여행 싫어하잖아. 이번 여행은 트레킹도 있고 배 타고 고래 보러 나가는 일정도 있다던데 너무 힘들 거야. 지연이는 집에서 쉬는 게 낫겠다.”

나를 생각해 주는 척했지만, 속내는 뻔했다.

내가 정말 따라가서 자신과 고민재의 둘만의 여행을 방해할지 두려운 것이었다.

나는 더 일찍 알아차려야 했다.

내가 처음 고민재를 집으로 데려왔을 때부터 천지아는 고민재에게 유난히 살갑게 대했다.

심지어 고민재 앞에서 일부러 나를 곤란하게 하기도 했다.

처음에 고민재는 천지아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늘 단단하게 내 옆에 서 있는 사람이었다.

나는 언제부터 고민재의 마음속 저울이 천지아 쪽으로 기울었는지 알지 못했다.

어릴 때부터 천지아는 내가 잘되는 꼴을 보지 못했다.

내가 어떤 장난감을 좋아하는지 알고 나면 다음 날 그 장난감은 사라지거나 짓밟혀 망가졌다.

무용 선생님이 나를 칭찬한 다음 수업이면 내 무용화 안에 가는 바늘이 들어 있었다.

나와 친하게 지내던 친구는 천지아가 쉬는 시간에 따로 불러낸 뒤 다시는 나에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하물며 주변 사람들이 잘생기고 똑똑하다고 칭찬하는 내 남자친구라면, 천지아가 어떻게 가만히 있을 수 있었겠는가.

나는 진작 알아야 했다.

고민재의 마음이 정말 변한 것인지, 다른 사정이 있는 것인지...

나에게는 고민재의 마음이 어느 쪽인지가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대답 좀 해. 약혼식을 조금 미루자는 거지, 안 하겠다는 것도 아니잖아.”

고민재가 내 어깨를 가볍게 밀었다. 미간에는 짜증이 배어 있었다.

“그래.”

나는 고민재의 말을 끊고, 떨리는 목소리를 억지로 붙잡았다.

“나는 졸업 여행 안 갈게. 약혼식도 미룰 필요 없어.”

“고민재, 우리 헤어지자.”

고민재는 멍해졌다가 곧 다급해졌다.

“나는 지아랑 여행을 같이 가겠다는 것뿐이야. 너도 같이 가면 되잖아! 우리가 몇 년을 만났는데, 약혼식이 열흘에서 보름 늦어지는 게 그렇게 큰일이야?”

아버지도 식탁을 내려치며 일어났다.

“방금 칭찬 좀 해 줬더니 바로 기어오르는구나! 다 가족끼리 하는 일인데 넌 왜 이렇게 이기적이고 배려가 없냐?”

“민재가 지아 여행을 좀 돕겠다는데 그걸로 성질부리고 헤어지자며 협박해? 민재처럼 괜찮은 애는 네가 감당할 사람이 아니야!”

나는 몸을 돌려 나가려 했다. 오빠가 뒤에서 붙잡듯 말했다.

“지아는 혼자 멀리 나가 본 적이 없어. 민재는 해외에 아는 사람도 많으니까 좋은 마음으로 도와주겠다는 거잖아. 너는 어떻게 지아 생각을 하나도 안 하냐?”

고민재의 다급한 목소리도 이어졌다.

“왜 이렇게 고집이 세? 너 때문에 내가 네 가족에게 이렇게 하는 거잖아.”

나는 거칠게 돌아섰다. 제각기 다른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네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모두 나에게 실망하고 화가 난 얼굴이었다.

더는 참을 수 없었다.

다음 호흡에 눈물이 터져 나왔고, 나는 식탁을 뒤엎었다.

“그럼 가라! 고민재, 너랑 천지아, 아주 행복해라. 죽어도 둘이 같이 죽어!”

나는 앞뒤 가리지 않고 밖으로 뛰쳐나가려 했다. 그저 저 사람들에게서 최대한 멀어지고 싶었다.

하지만 두 걸음도 못 가 오빠에게 붙잡혔다. 곧 날카로운 손바닥 소리가 울렸다.

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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