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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선택은 내가 아니었다

그의 선택은 내가 아니었다

作家:  아령完了
言語: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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概要

소꿉친구

편애/이기적인

후회남

불륜녀/불륜남

후회

진수지는 남편 유한빈의 오랜 소꿉친구 원가영과 같은 날 납치됐다. 낡은 창고 안은 밤새 비명과 신음이 뒤엉켰고, 한 달 뒤 두 사람은 동시에 임신 사실을 알게 된다. 유한빈은 원가영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망설임 없이 나섰다. 원가영 뱃속의 아이가 자신의 아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진수지의 아이는 달랐다. 납치범에게 짓밟힌 뒤 생긴, 아비조차 알 수 없는 아이가 되어버렸다. 진수지는 눈앞에 잡히는 모든 것을 깨뜨리며 완전히 무너진 목소리로 소리쳤다. “왜? 당신도 알잖아. 이 아이는 납치되기 전에 생긴 아이야. 납치범은 내 몸에 손끝 하나 대지 않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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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チャプター
제1화
유한빈의 눈빛에는 고통과 미안함이 엉켜 있었다.“여보, 조금만 참아 줘. 가영이는 어릴 때부터 곱게만 자랐어.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걸... 가영이는 못 견뎌.”진수지는 멍하니 유한빈을 바라보다가 웃었다. 웃음이 터졌는데, 눈물이 먼저 흘러내렸다.“그럼... 나는 견딜 수 있고?”그때 진수지는 온몸이 다 닳아 버린 듯 지쳤다.더는 유한빈을 사랑할 힘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법무법인 상담실에서 진수지는 준비된 서류에 차례로 이름을 적었다. 남편 서명란만 비어 있었다.진수지는 담당 변호사를 바라보며 물었다.“남편 이름은 제가 대신 써도 되나요?”변호사는 난처한 표정으로 안경을 밀어 올렸다.“본인 동의가 있어야 합니다. 그게 없으면 법적 효력이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잠시 침묵한 뒤 진수지는 유한빈에게 전화를 걸었다. 수화기 너머에서는 원가영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먼저 들렸다.[오빠, 나 서오동 그 디저트 먹고 싶어...]진수지의 가슴을 날카롭게 ‘쿡’ 찌르는 듯했다. 그래도 목소리는 최대한 차분하게 억제했다.“상의할 일이 있어.”곧 유한빈의 나지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일인데? 지금 좀 바빠. 웬만한 일은 당신이 결정해도 돼.]진수지는 다시 확인했다.“무슨 일이든 내가 대신 결정해도 돼?”유한빈은 가볍게 웃었다. 다정한 목소리였다.[당연하지. 결혼하고 집안일 중에 당신 손 안 거친 게 뭐가 있어?]“알았어. 그럼 이번 일도 내가 결정할게.”통화를 끊은 진수지는 고개를 숙였다. 빈칸 위에 유한빈의 이름을 한 획씩 또박또박 적었다.서류를 챙겨 주던 변호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협의 이혼은 한 달 뒤 확정됩니다. 그 전에 마음이 바뀌시면 이혼 신청을 철회할 수 있습니다.”진수지는 희미하게 웃었다.“그럴 일 없어요. 저는 후회하지 않습니다.”‘이 결혼은 반드시 끝낼 거야.’...상담실을 나온 진수지는 곧바로 택시를 잡아 병원으로 향했다.“임신중절을 하려고 왔어요.”의사는 검사지를 훑어보다가 고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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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나는...”진수지는 비웃음 섞인 웃음을 흘렸다. 병원에 아이를 지우러 왔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원가영이 빠르게 다가오더니 친근하게 진수지의 팔짱을 끼었다.“수지 언니도 임신했잖아요. 당연히 산전 검사 받으러 온 거죠!”원가영은 달콤하게 웃더니, 곧 미안한 표정을 지어 보였다.“미안해요, 언니. 요즘 제가 한빈 오빠를 너무 많이 붙잡고 있었죠. 그런데 저는 그런 일을 겪고 나서 마음이 엉망이 됐어요.” “사람들이 제 뱃속의 아이가 납치범의 아이라는 걸 알게 되면 저는 정말 무너질 것 같아요.”원가영의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그래서 한빈 오빠가 아빠 역할을 해 줄 수밖에 없었어요. 언니, 제가 미우면 차라리 저를 때려요.”진수지가 입을 열기도 전에 유한빈이 안쓰럽다는 듯 말을 잘랐다.“그런 말 하지 마. 내가 이미 네 언니를 설득했어. 소문은 잠깐이야. 네 언니도 마음이 넓어서 신경 쓰지 않을 거야.”진수지는 눈을 감았다.‘그래, 나는 마음이 넓지.’‘이혼까지 해서 유한빈을 원가영에게 넘겨주고, 저 ‘세 가족’이 제대로 모이게 해 줄 만큼 마음이 넓지.’“맞아. 나도 별로 신경 안 써.” 진수지는 유한빈의 말에 맞장구를 치면서 평온하게 대답했다.원가영은 그제야 눈물을 거두고 웃었다.“다행이네요. 아니면 제가 너무 죄책감이 들었을 거예요.”이어 원가영은 다시 진수지의 팔을 붙잡았다.“이렇게 만난 김에 같이 밥 먹어요.”진수지는 거절하려고 했지만 막 수술을 마친 몸은 이미 기운이 쭉 빠져 있었다. 원가영에게 반쯤 끌려가듯 식당으로 향했다.식당에서도 원가영은 계속 소란을 만들었다.“오빠, 이 냄새 이상해. 토할 것 같아.”“나 신 게 먹고 싶은데, 이건 너무 매워.”유한빈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정했다. 물을 건네고 등을 토닥이며 원가영의 표정을 살폈다.진수지는 조용히 바라보았다. 손끝부터 발끝까지 숨이 막힐 만큼 아팠다.수술 뒤의 통증인지, 눈앞의 다정함이 심장에 박힌 탓인지 알 수 없었다.식사가 절반쯤 지났을 때, 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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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화
상처를 꿰매고 나가려던 진수지는 수술실 앞에서 유한빈과 마주쳤다.간호사가 급히 뛰어나왔다.“유한빈 씨, 환자분이 대량 출혈 중입니다. RH 음성 혈액형이라 확보가 어렵습니다. 헌혈이 가능한 가족이나 지인이 있습니까?”유한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주위를 둘러보던 유한빈의 시선이 진수지에게 닿더니 눈빛이 확 밝아졌다. 유한빈은 빠르게 다가와 진수지의 손목을 움켜쥐었다.“여보, 당신도 RH 음성이잖아. 가영이는 나를 구하다 다쳤어. 제발 가영이 좀 살려줘.”진수지의 몸이 차갑게 식었다.유한빈은 진수지가 빈혈이 심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작년에 진수지가 빈혈로 쓰러졌을 때, 유한빈은 병원을 뒤집을 정도로 난리를 쳤다.그런 유한빈이 지금은 빈혈이 심한 아내에게 다른 여자를 살리기 위해 피를 뽑으라고 요구하고 있었다.“조금만 뽑으면 돼.” 유한빈의 말이 빨라졌고 손아귀의 힘은 더 세졌다. “가영이는 기다릴 수 없어!”진수지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은 채, 유한빈은 진수지를 헌혈실로 밀어 넣었다.바늘이 혈관에 들어올 때 진수지는 눈을 감았다.피 600cc가 빠르게 빠져나갔다. 진수지의 입술은 점점 하얗게 질렸다.유한빈은 옆에 서 있었지만 시선은 수술실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진수지 쪽은 한 번도 제대로 보지 않았다.헌혈이 끝나자 진수지는 다리에 힘이 풀려서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그제야 유한빈이 정신을 차리고 진수지를 붙잡았다.“미안해, 여보... 아이 때문에 걱정되는 거 알아. 걱정하지 마. 간호사도 알아서 조절했을 거야. 불안하면 내가 지금 의사에게 검사해 달라고 할게.”유한빈은 진수지의 의사를 묻지도 않고 검사실로 데려갔다.곧 의사가 검사지를 들고 나오자 유한빈은 다급하게 물었다.“아이는요? 괜찮습니까?”의사는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아이요? 아이는 없...”“선생님!” 간호사가 갑자기 뛰어왔다. “원가영 씨가 수술 중에 계속 보호자분 이름을 부릅니다. 보호자분이 들어가서 곁에 있어 주시면 환자에게 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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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화
진수지의 안색이 하얗게 질리면서 손톱이 손바닥 깊이 파고들었다.이토록 말도 안 되는 소문이 퍼져 있을 줄은 몰랐다. 이야기 속 진수지는 상상도 못 할 만큼 더러운 사람이 되어 있었다.진수지가 돌아서 나가려고 하자, 몇몇 재벌가 딸들이 길을 막았다.“사모님, 어디 가세요? 잔치는 이제 시작인데.”“우리랑 같이 놀아요.”논다는 건 말뿐이었다. 누군가는 진수지의 치마에 와인을 쏟았고, 누군가는 실수인 척 어깨를 밀쳤다. 마지막에는 누군가 대놓고 진수지를 수영장으로 밀어 넣었다.풍덩!찬물이 진수지를 통째로 삼켰다. 코로 물이 들어오는 고통에 본능적으로 몸부림쳤다. 손가락으로 수영장 벽을 긁으며 올라가려고 했다.손끝이 벽 가장자리에 닿으려 할 때, 붉은 매니큐어를 칠한 손이 진수지의 머리를 눌렀다.“살려... 살려줘...”“살려 달라니? 아무도 널 구하러 안 와. 유한빈 대표가 이 바닥에서 얼마나 많은 여자들의 꿈인지 알아?”“유 대표는 널 목숨보다 귀하게 여겼는데, 네가 먼저 배신했잖아. 그렇게 더럽게 굴었으니 여기서 죽어도 싸!”물이 코와 입으로 밀려들었다. 숨이 막히며 시야가 어두워졌다.그러나 진수지를 더 숨 막히게 만든 건 저 사람들의 말이었다.‘내가 더럽다고? 내가 천박하다고?’‘유한빈이 나를 목숨처럼 사랑한다고?’‘웃기네. 세상에서 제일 웃기는 농담이야.’“지금 뭐 하는 짓이야!”거친 고함이 들렸고, 머리를 누르던 힘이 사라졌다.흐릿한 시야 속에서 진수지는 유한빈이 미친 듯 달려오는 모습을 보았다.진수지는 웃고 싶었다. ‘이 사람이... 왜 당황해? 이 모든 건... 다 본인이 만든 일인데...’유한빈은 진수지를 물 밖으로 끌어올리고 사람들에게 소리를 질렀다.“다들 미쳤어? 내 아내를 건드려?”“유 대표님, 저희는 대표님이 배신당한 게 안타까워서...”“그만!” 유한빈은 진실을 설명하지 않았다. 그저 차가운 목소리로 못을 박았다. “수지 뱃속의 아이가 납치범의 아이라 해도, 나는 수지만 사랑해. 그건 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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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화
짐 싸는 장면을 들켰지만, 진수지는 전혀 당황하지 않았다.손에 든 옷을 차분히 접으며 담담하게 말했다.“임신하면 못 입을 옷들이잖아. 기부하려고.”잔뜩 굳어졌던 유한빈의 표정이 비로소 풀렸다. 그리고 스스로 예민했다고 생각했다.‘수지는 나를 그렇게 사랑하는데, 날 떠날 리가 없지.’‘설령 수지가 떠나려 해도, 나도 허락할 생각이 없어.’‘이혼 서류에 서명할 생각은 더더욱 없지.’“전부 새로 사.” 유한빈은 블랙카드를 내밀며 다정하게 말했다. “얼마든지 사도 돼.”“응.”진수지는 짧게 답하고 카드를 받았다. 손끝이 닿자마자 더러운 것을 건드린 듯 재빨리 손을 거두었다.유한빈은 그 이상한 움직임을 눈치채지 못한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말했다.“가영이 요즘 입덧이 심해서 곁에 사람이 필요해... 며칠 가영이 집에 가 있을 생각이야.”유한빈은 말을 멈췄다가, 방금 떠올랐다는 듯 덧붙였다.“당신은 요즘 입덧도 별로 없는 것 같으니까 가영이 좀 이해해 줘. 괜찮지?”진수지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렸다.‘내가 입덧이 없는 이유는 이미 아이가 없기 때문이야.’진수지는 입꼬리를 억지로 올렸지만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 뒤로 진수지는 거의 매일 뉴스에서 유한빈이 원가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보았다.‘유성그룹 대표, 한 여인을 위한 통 큰 선물’, ‘유한빈, 한밤중 임신한 원가영 위해 매실장아찌까지 공수’, ‘진짜 사랑은 이런 것’ 같은 제목의 기사들이 포털을 뒤덮었다.댓글창에서는 진수지를 끌어내 반복해서 짓밟았다.[진수지 저 여자는 어떻게 아직도 얼굴 들고 살지?][납치범들이 밤새 가지고 놀았다던데. 진짜 더럽다.][유 대표님 너무 불쌍해. 바람난 아내를 감싸느라 대인배 흉내까지 내야 하다니.][...]댓글 하나하나가 날카로운 비수처럼 심장에 박혔다.진수지는 핸드폰을 껐다.‘곧 끝날 거야. 얼마 남지 않았어.’짐을 모두 정리한 뒤 진수지는 가까운 친구들과 작별 식사를 잡았다.속사정을 전부 다 알고 있던 친구들은, 진수지의 얼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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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화
구경꾼은 갈수록 많아졌고, 사람들은 손에 잡히는 대로 아무거나 던지며 진수지를 몰아붙였다. 피할 틈이 없었다.진수지는 결국 기사와 함께 원가영의 부모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보냈다.두 사람이 응급실로 들어가자마자 원가영이 달려와 진수지의 뺨을 때렸다.“언니는 절 안 미워한다고 하더니 뒤로는 우리 부모님을 죽이려고 했어요?” 원가영은 눈물을 쏟았다. “어떻게 이렇게 악할 수가 있어요!”진수지가 입을 열려던 때, 시야 끝에 익숙한 사람이 들어왔다.유한빈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와 비틀거리는 원가영을 붙잡았다.“가영아, 화내지 마. 아이한테 안 좋아.”유한빈은 원가영을 부축한 채 진수지를 바라보았다.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눈에는 실망의 기색을 감추지 않았다.그 시선에 진수지의 몸이 얼어붙었다.‘유한빈, 온몸이 엉망이 된 내가 안 보여?’‘당신마저 나를 안 믿어?’“당신... 정말 나를...”‘실망시켰다’는 말이 나오기 전, 진수지가 먼저 웃었다. 그리고 온몸이 떨릴 만큼 웃었다. 입가의 상처로 눈물이 흘러들어 따가웠다.유한빈은 한마디 변명도 들을 생각 없이 이미 판결을 내렸다.“그래! 내가 악하고, 내가 헤프고, 내가 지독하지! 내가 천하에 몹쓸 인간이라 죽어야 속이 시원하지!”진수지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렸다.“이제 됐어?”유한빈의 눈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여보, 나는...”“오빠!” 원가영이 힘없이 유한빈의 품으로 쓰러졌다. “나... 어지러워...”유한빈은 본능적으로 원가영을 받아 안았다. 다시 고개를 들었을 때, 유한빈의 눈에 들어온 건 진수지의 단호한 뒷모습뿐이었다.진수지는 빠르게 걸었다. 흰 트렌치코트 자락이 공중에 날리는 모습이 마치 날개가 부러진 나비 같았다.유한빈의 가슴이 불안하게 뛰었다. 쫓아가려던 유한빈의 품에서 원가영이 다시 고통스러운 소리를 냈다.“가지 마... 아이가... 우리 아이가...”진수지는 뒤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들었지만 돌아보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진수지는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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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화
이후 진수지는 자기 집에서 투명인간처럼 지냈다.유한빈이 매일 다른 방법으로 원가영의 기분을 맞춰 주는 것을 보았다. 손수 보양식을 끓여 주고, 원가영을 웃게 하려고 회사 회의까지 미루는 모습도 보았다.그날 원가영은 유한빈이 없을 때 진수지를 가로막고 자랑했다.“언니가 한빈 오빠랑 결혼했으면 뭐 해요? 오빠가 약속했어요. 이 아이는 오빠 성을 쓰고 유성그룹의 유일한 후계자가 될 거라고요.” “언니 뱃속에 있는 건 그냥 아비도 모르는 애잖아요.”진수지는 물을 마시러 내려가던 길이었다. 그 말을 듣고도 눈길 하나 주지 않은 채 옆으로 비켜 지나가려 했다.그 태도가 원가영을 완전히 자극했다.“그리고 이렇게 바닥까지 떨어졌으면서 아직도 고상한 척이에요?”원가영은 갑자기 달려와 진수지를 밀었다.방심한 진수지는 그대로 뒤로 넘어졌다. 세상이 뒤집히는 가운데 뒤통수가 계단 난간에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가 들렸다.곧 모든 것이 검게 꺼졌다....다시 눈을 떴을 때, 진수지는 또 병원에 있었다.침대 앞에 선 유한빈의 첫마디는 차갑고 날카로운 추궁이었다.“가영이 부모님을 다치게 한 것도 모자라 왜 가영이를 계단에서 밀었어? 가영이 임신 중이라는 걸 몰라?”글자 하나하나가 심장에 비수처럼 박혔다.진수지는 그저 웃었다. 몸이 떨리도록 웃기만 했다.“유한빈.” 진수지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물었다. “내가 바보처럼 보여?”“무슨 뜻이야?”“내가 원가영을 해치려 했다면...” 진수지는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왜 지금 병원 침대에 누워 있는 건 나야?”“가영이를 밀고 무서워져서 당신이 계단에서 굴렀겠지. 동정을 사려는 수작이잖아.” 유한빈의 눈에는 실망이 가득했다. “갈수록 당신이 낯설어. 가영이가 집에 들어오는 것도 받아들였으면서 왜 이런 지저분한 짓까지 해?”유한빈은 문으로 향했다.“당분간 보러 오지 않을 거야. 혼자 잘 생각해.”말을 마친 유한빈은 돌아섰다. 병실 문이 거칠게 닫혔다.진수지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눈물이 말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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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화
유한빈이 원가영을 좋아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었다. 하지만 유한빈이 원가영을 이 정도까지 떠받들 줄은 아무도 몰랐다.작은 생일 파티일 뿐인데, 유한빈은 원가영이 좋아한다는 해외 유명 가수를 초대해 노래를 부르게 했다. 각계각층의 유명 인사들도 줄지어 참석했다.연회장은 유난히 화려하게 꾸며졌다.크리스털과 다이아몬드 장식이 곳곳을 채웠고, 해외에서 공수한 장미에도 작은 보석이 박혀 있었다.파티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 원가영은 개인 맞춤으로 제작한 파란색 드레스를 입고 계단을 천천히 내려왔다. 독특한 재단은 임신한 배를 자연스럽게 가리면서도 몸매를 돋보이게 했다. 원가영이 나타나자 모든 시선이 쏠렸다.그녀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유한빈이 내민 손을 잡았다.그리고 마지막 계단을 밟으려는 때, 노란 조끼를 입은 사람이 급히 연회장으로 뛰어 들어왔다.“저, 실례합니다. 유한빈 씨 맞으십니까? 배송할 물품이 있습니다.”지나치게 뛰어온 탓에 퀵서비스 기사는 숨을 몰아쉬며 말을 서둘렀다.유한빈은 앞에 선 기사를 보고 미간을 찌푸렸지만 이내 차분하게 말했다.“죄송하지만 지금은 시간이 없습니다.”“용건이 있으면 나중에 다시 오세요.”유한빈은 손을 들어 옆의 집사에게 기사를 데려가라는 신호를 보냈다.“그런데 유한빈 씨, 이건 진수지 씨가 직접 전해 달라고 부탁한 물건입니다. 꼭 이 자리에서 유한빈 씨가 직접 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진수지라는 이름이 나오자 유한빈의 손이 허공에서 멈췄다.유한빈은 아침의 통화를 떠올렸다.그때 진수지의 목소리를 들었을 때, 유한빈은 진수지가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도 부부로 산 지 5년이었다. 유한빈은 진수지의 그런 담담한 어조가 관심 없다는 뜻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예전이라면 오래 달래고 기분을 풀어줬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진수지는 원가영에게 많은 상처를 줬다고 유한빈은 믿고 있었다.정말 전화에서처럼 원가영에게 사과할 선물을 들고 온다면, 유한빈은 원가영을 봐서라도 더는 크게 따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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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화
생각할수록 원가영의 가슴은 잔뜩 들떠 있었다. 하지만 겉으로는 유한빈을 배려하는 얼굴을 유지했다.이번에는 유한빈이 원가영의 말을 따르지 않았다. 대신 원가영의 손등을 가볍게 두드리며 달랬다.“괜찮아. 작은 선물일 뿐이야.”“기억하지? 내가 그날 수지한테 네게 사과할 선물을 가져오라고 했잖아.” “네 마음에 안 들면 네가 만족할 때까지 내가 수지를 더 차갑게 대하겠다고도 했고. 자, 이 선물이 마음에 드는지 같이 보자.”그 말을 듣자 무대 아래 손님들도 호기심으로 고개를 들었다.이 좁은 상류층에서는 평판이 좋지 않은 아내를 둔 남자들도 있었다. 그래도 밖에서는 대체로 아내 체면을 지켜 주었다. 집안 망신은 밖으로 흘리지 않는 법이니까.그래서 유한빈이 아내가 다른 여자에게 사과하려고 보낸 선물을 사람들 앞에서 뜯는 일은 모두에게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눈치 빠른 촬영 담당자가 곧바로 카메라를 유한빈 손의 상자에 맞췄다.상자가 천천히 열리자, 사람들의 숨도 덩달아 조용해졌다.마침내 상자가 완전히 열렸다. 구청 접수인이 찍힌 이혼신고서 사본이 카메라에 잡혀 대형 스크린에 그대로 비쳤다.연회장 전체가 술렁였다.유한빈의 손은 허공에서 굳어졌다. 얼굴에 걸려 있던 미소도 그대로 얼어붙었다.이혼신고서.게다가 구청 접수인까지 선명하게 찍혀 있었다. 이미 법적으로 두 사람은 남남이 된 뒤였다.진수지가 유한빈과 이혼했다.무대 아래 몇몇 친구들은 대형 화면의 서류를 보고 흥분해 무대 위로 뛰어올라왔다. 유한빈을 둘러싸고 축하를 쏟아냈다.“잘됐다! 이제 완전히 지옥에서 빠져나왔네!”“맞아. 드디어 그 여자랑 끝났구나!”“나중에 가영이랑 결혼하면 내가 꼭 들러리 선다!”“...”사람들은 들뜬 채 유한빈을 밀치며 상자 안의 나머지 서류를 집어 들었다.“어? 산부인과 진료확인서도 있네!”“그래도 그 여자가 자기 주제는 알았나 보네. 애를 지웠다잖아. 덕분에 한빈이가 아비도 모를 애한테 돈 쓸 일은 없겠네.”“하하하!”“...”사람들의 기쁨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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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유한빈의 이상한 반응을 주변 사람들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저 그가 너무 감격한 줄로만 여겼다.마지막으로 누군가 상자 바닥에 놓인 녹음펜을 집어 들고 재생 버튼을 눌렀다.그 행동은 판도라의 상자를 연 것과 같았다. 모든 것이 통제를 벗어났다.그 녹음펜은 사실 녹화 기능이 달린 소형 투사 장치에 가까웠다.마침 펜을 쥔 사람이 렌즈를 대형 화면 쪽으로 향하게 했다.흰 잡음이 지나간 뒤, 화면이 천천히 나타났다.몰래 촬영한 듯 화면은 조금 흔들렸다.곧 렌즈가 방 안으로 밀려 들어갔다.화면이 가까워질수록 뒤엉킨 두 사람의 실루엣이 뚜렷해졌다.마침내 익숙한 얼굴이 사람들 앞에 드러났다. 바로 오늘 생일 파티의 주인공 원가영이었다.원가영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는 남자는 낯설고 음습한 얼굴의 남자였다.마른 하늘에 벼락이 떨어진 듯 연회장은 충격에 휩싸였다.초대받은 기자 수십 명은 특종 냄새를 맡고 대형 화면을 향해 카메라 셔터를 미친 듯 눌렀다.“세상에!! 그냥 생일 파티인 줄 알았는데 이런 대형 사건을 보게 될 줄이야!”“이거 터뜨리면 무조건 대박 난다!”“말하지 말고 찍어. 곧 꺼질 수도 있어!”“...”무대 위에서 기뻐하던 사람들도 뻣뻣하게 굳었다. 어색한 눈으로 이번 파티의 남녀 주인공을 바라보았다.유한빈과 원가영도 그 자리에서 완전히 굳어졌다.유한빈은 믿을 수가 없어서, 원가영은 거대한 공포에 몸이 굳어서였다.화면은 계속 재생되고 있었다.방 안에서 원가영이 숨이 찰 때까지 입을 맞춘 뒤, 납치범은 음흉하게 웃으며 몸을 떼었다.“내가 왜 못 와? 어쨌든 네 뱃속 애 아빠가 나잖아.”“우리 자기 진짜 대단하다. 거짓말 한 번으로 부부 사이를 갈라놓고, 그 남자가 우리 아들을 기꺼이 키우게 만들다니.”“나중에 우리 아들이 후계자가 되면, 그 남자만 치워 버리면 되겠네. 흐흐...”그때 갑자기 도자기 병이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두 사람의 희롱을 끊었다. 누군가 매섭게 외치는 소리와 함께 화면은 검게 꺼졌다.녹음펜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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