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깊었다.
윤하늘이 휴대전화 불빛을 아래로 비추었다.
좁은 계단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
분명 누군가 있었다.
은빛새가 하늘의 팔을 붙잡았다.
“잠깐만요.”
“왜요?”
“아까 소리 들었잖아요.”
빛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
“누가 아래에 있는 거면 어떡해요?”
강단태가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
“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
하늘은 대답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
“하늘 씨.”
“여기까지 왔는데 위에서 기다리라고 하지 마요.”
단태가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더는 말리지 않았다.
계단 끝에는 작은 철문이 있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
단태가 손끝으로 밀었다.
끼익.
낡은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
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
옷가게 아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
벽에는 철제 선반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오래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
빛새가 멍하니 안을 바라봤다.
“나 진짜 몰랐어요.”
하늘이 그녀를 돌아봤다.
“이 가게에서 2년이나 있었잖아요.”
“알아요.”
빛새가 답답한 듯 말했다.
“근데 재욱 씨가 창고 한쪽은 자기가 쓰겠다고 했어요. 재고 정리한다고.”
“그걸 그냥 믿었어요?”
“남편이었으니까요.”
그 말에 둘 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남편.
하늘에게도 남편이었다.
하지만 조금 전 확인한 기록상 빛새는 법적으로 재욱의 아내가 아니었다.
빛새도 그 사실을 떠올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
“……남편인 줄 알았으니까.”
이번에는 하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
단태가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
“이상합니다.”
“뭐가요?”
“먼지.”
책상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
그런데 가운데만 깨끗했다.
사각형 모양.
무언가 놓여 있다가 최근 사라진 흔적이었다.
하늘이 물었다.
“재욱 씨가 가져간 걸까요?”
단태는 바닥을 살폈다.
“아닐 가능성이 큽니다.”
바닥에 선명한 신발 자국이 있었다.
하나.
둘.
그리고 책상에서 철제 선반으로 이어졌다.
빛새가 굳었다.
“우리 내려오기 전에 누가 있었던 거예요?”
바로 그때였다.
쿵.
안쪽에서 소리가 났다.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선반 뒤.
또 다른 문이 있었다.
단태가 빠르게 다가갔다.
문을 열었다.
비어 있었다.
대신 작은 통로가 보였다.
그리고 통로 끝.
바깥으로 연결되는 철문 하나가 흔들리고 있었다.
누군가 방금 나간 것처럼.
“여기로 나갔어요.”
단태가 밖으로 나갔다.
하늘도 뒤따랐다.
건물 뒤편 골목이었다.
멀리 자동차 한 대가 움직였다.
검은색 세단.
단태가 번호판을 보려고 했지만 이미 골목을 빠져나간 뒤였다.
빛새가 숨을 몰아쉬며 말했다.
“누구예요?”
“모릅니다.”
단태가 짧게 대답했다.
“하지만 우리가 오기 전에 이 지하실을 뒤지고 있었습니다.”
하늘의 등골이 서늘해졌다.
재욱이 죽었다.
그런데 누군가는 재욱이 숨긴 것을 찾고 있었다.
그것도 지금.
하늘이 다시 지하실로 들어갔다.
“뭐가 없어졌는지 찾아봐요.”
이번에는 단태가 말리지 않았다.
세 사람은 공간을 나눠 확인했다.
빛새가 철제 선반을 살피다 멈췄다.
“하늘 씨.”
“왜요?”
“이거.”
선반 아래쪽에 서류철 하나가 끼어 있었다.
겉면에는 아무것도 적혀 있지 않았다.
하늘이 펼쳤다.
첫 장.
건물 임대계약 관련 자료.
두 번째.
빛새의 옷가게 인테리어 비용.
세 번째.
하늘의 손이 멈췄다.
**윤하늘.**
자신의 이름이었다.
“왜 내 이름이 여기 있어?”
단태가 서류를 받아 확인했다.
계좌번호.
날짜.
금액.
하늘은 처음 보는 계좌였다.
“제 거 아니에요.”
“명의는 윤하늘 씨로 돼 있습니다.”
“그러니까 난 만든 적 없다고요.”
거래 내역은 더 이상했다.
큰돈이 들어왔다가 이틀 뒤 빠져나갔다.
하늘이 금액을 확인했다.
“이게…….”
단태의 표정이 굳었다.
“43억과 연결된 계좌 같습니다.”
빛새가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씨 이름으로?”
하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재욱이 숨긴 돈.
자신도 모르는 계좌.
그리고 자신의 이름.
그 순간 빛새가 다른 종이를 발견했다.
“잠깐.”
옷가게 사진이었다.
재욱과 빛새.
이미 장례식장에서 본 것과 비슷했다.
하지만 사진 뒤에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빛새가 읽었다.
“1차 이동 확인.”
다음 사진.
호텔 앞.
**2차 전달.**
또 다른 사진.
검은 차량.
**최종 수령자 미확인.**
단태의 눈빛이 달라졌다.
“이건 단순한 사진이 아닙니다.”
“그럼요?”
“이동 기록입니다.”
하늘은 서류와 사진을 번갈아 바라봤다.
자신에게는 돈의 기록.
빛새에게는 장소와 이동의 기록.
마치 재욱이 처음부터 둘에게 서로 다른 조각을 남겨놓은 것처럼.
하지만 하늘은 곧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잠깐.”
“왜요?”
“아까 누군가 여기 있었잖아요.”
“네.”
“그 사람이 자료 찾으러 온 거라면.”
하늘이 텅 빈 책상 중앙을 바라봤다.
“왜 이건 안 가져갔어요?”
단태의 표정이 굳었다.
맞았다.
누군가는 분명 지하실을 뒤졌다.
그런데 가장 눈에 띄는 서류는 그대로 남아 있었다.
빛새가 작게 말했다.
“못 찾은 거 아닐까요?”
하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
책상 위 먼지 자국.
무언가 분명 사라졌다.
“찾으러 온 게 따로 있었던 거예요.”
단태가 책상 서랍을 하나씩 열었다.
첫 번째.
비어 있었다.
두 번째.
영수증 몇 장.
세 번째.
잠겨 있었다.
빛새가 말했다.
“열쇠 없는데.”
하늘은 책상 아래를 살폈다.
그리고 작은 자석 하나를 발견했다.
그 뒤에 열쇠가 붙어 있었다.
철컥.
서랍이 열렸다.
안에는 노트 한 권이 있었다.
첫 장.
**43억 반환 계획.**
하늘이 숨을 삼켰다.
“반환?”
단태가 빠르게 페이지를 넘겼다.
**회수 완료.**
**원소유주 확인.**
**반환 전 이동 필요.**
빛새가 물었다.
“그럼 재욱 씨가 돈을 훔친 게 아니었던 거예요?”
단태는 고개를 저었다.
“아직 모릅니다.”
“반환이라고 써 있잖아요.”
“처음에 어떤 의도로 돈에 손댔는지와 나중에 돌려놓으려 했는지는 다른 문제입니다.”
하늘은 그 말이 오히려 마음에 들었다.
재욱을 좋은 사람으로 만들 필요는 없었다.
그가 무슨 짓을 했는지.
왜 돌려놓으려 했는지.
그걸 알아야 했다.
하늘이 마지막 장을 펼쳤다.
한 문장.
**처음은 계획이었다.**
그 아래.
**하지만 그다음부터는 아니었다.**
빛새의 표정이 굳었다.
하늘도 그 문장을 바라봤다.
누구에게 하는 말인지 알 수 없었다.
자신?
빛새?
돈?
결혼?
단태가 노트를 받아 자세히 살폈다.
“한 장이 뜯겨 있습니다.”
하늘이 고개를 들었다.
“어디요?”
마지막 장 바로 앞.
종이를 찢어낸 흔적.
아직 가장자리가 깨끗했다.
오래전에 뜯은 것이 아니었다.
단태가 책상 위 사각형 먼지 자국을 다시 바라봤다.
“아까 여기 있던 사람이 가져간 것 같습니다.”
빛새가 물었다.
“뭐가 적혀 있었을까요?”
그때 하늘의 시선이 바닥에 멈췄다.
책상 다리 아래.
아주 작은 종이 조각 하나가 끼어 있었다.
누군가 급하게 종이를 뜯다가 떨어뜨린 듯했다.
하늘이 집어 들었다.
문장의 일부만 남아 있었다.
**……빛새에게 먼저 말하지 말 것.**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빛새도 읽었다.
“왜 나한테?”
다른 조각.
단태가 선반 밑에서 발견했다.
그 위에는 더 짧은 문장이 있었다.
**윤하늘과 함께 있을 때만……**
하늘과 빛새의 시선이 마주쳤다.
재욱은 둘이 만나게 될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처음부터 만나게 만들려고 했다.
그 순간 단태가 갑자기 말했다.
“두 분, 여기서 나갑시다.”
“왜요?”
단태는 대답하지 않았다.
시선이 천장에 고정돼 있었다.
하늘도 위를 올려다봤다.
구석.
작은 붉은 불빛 하나가 깜빡였다.
카메라였다.
빛새의 얼굴이 굳었다.
“저거…… 원래 없었어요.”
단태가 의자를 끌어와 카메라를 확인했다.
그리고 낮게 말했다.
“녹화용만 아닙니다.”
“그럼?”
“외부 전송 장치가 붙어 있습니다.”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누군가 지금 보고 있다는 거예요?”
단태가 대답하기도 전이었다.
빛새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향했다.
빛새가 화면을 확인했다.
모르는 번호.
문자 한 통.
**[지하실에서 당장 나와.]**
빛새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곧바로 두 번째 문자가 도착했다.
**[윤하늘이랑 같이.]**
하늘의 심장이 뛰었다.
그리고 세 번째.
**[강단태는 두고.]**
세 사람 사이에 정적이 내려앉았다.
하늘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단태를 바라봤다.
누군가는 지금 이곳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사람은.
강단태와 두 여자를 분리하려 하고 있었다.
토요일 오후.윤하늘은 은빛새의 가게에 들렀다.약속이 있어서가 아니었다.근처에 볼일이 있었고, 점심이나 같이 먹을 생각이었다.매장 안에서는 정다은이 손님을 응대하고 있었다.“이 상품은 지금 세일 적용돼서 이 가격이에요.”빛새는 조금 떨어진 곳에서 새로 들어온 옷을 정리하고 있었다.하늘이 다가가 작게 말했다.“바빠요?”“조금. 이것만 끝내고 밥 먹어요.”그때 계산대 쪽에서 정다은의 목소리가 들렸다.“어…… 잠시만요.”빛새가 고개를 들었다.다은이 가격표와 포스 화면을 번갈아 보고 있었다.“사장님.”빛새가 다가갔다.“왜요?”“이거 가격이 달라요.”매장에 붙은 할인표에는 20% 할인이라고 적혀 있었지만, 전산에는 정상가가 표시되고 있었다.손님이 말했다.“아까 직원분이 할인된다고 하셔서 가져온 건데요.”다은의 얼굴이 굳었다.“죄송합니다. 제가 확인을 제대로 못 했어요.”빛새는 먼저 가격표를 확인했다.지난주 행사가 끝난 상품이었다.할인표를 떼지 않은 것이 문제였다.“저희 쪽 실수예요.”빛새가 손님에게 말했다.“표시된 가격대로 처리해드릴게요.”“괜찮아요?”“네. 혼란 드려서 죄송합니다.”계산이 끝나고 손님이 나갔다.다은이 바로 말했다.“사장님, 죄송해요.”“잠깐 뒤에서 얘기해요.”목소리는 차분했다.하늘은 끼어들지 않았다.잠시 후 빛새와 다은은 매장 안쪽으로 들어갔다.하늘은 밖에서 옷을 구경하며 기다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두 사람이 다시 나왔다.다은의 표정은 여전히 미안해 보였지만 울거나 위축된 모습은 아니었다.다은이 오래된 할인표를 하나씩 확인하기 시작했다.빛새도 반대쪽 행거를 확인했다.하늘이 물었다.“괜찮아요?”빛새가 고개를 끄덕였다.“응.”“뭐라고 했어요?”“왜 그렇게 됐는지 먼저 물어봤어요.”다은은 전날 새 상품을 정리하면서 기존 할인표까지 확인해야 한다는 걸 놓쳤다고 했다.빛새는 한숨을 작게 쉬었다.“사실 내가 처음에 제대로 알려주지 않은 것도 있어요.”“그래서?”“다음부
월요일 저녁.윤하늘은 식탁 위에 놓인 영수증들을 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이게 다 뭐예요?”강단태가 맞은편에 앉았다.“이번 달 공동생활비.”“갑자기 결산?”“한 번 볼 때 됐습니다.”둘이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생활비는 정한 비율대로 공동계좌에서 사용하고 있었다.장보기.공과금.생활용품.둘이 함께 먹는 외식비.하지만 몇 달 살아보니 애매한 것들도 생겼다.하늘이 영수증 하나를 들었다.“이건 왜 있어요?”“수납함.”“이거 내 낚시 장비 넣으려고 산 건데?”“거실에 두니까 공동생활용품인 줄 알았습니다.”“그건 내 돈으로 해야지.”단태가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빼겠습니다.”하늘은 다른 항목을 봤다.“미니어처 선반.”이번에는 단태가 바로 말했다.“그건 제 겁니다.”“근데 공동계좌로 결제했네?”단태가 멈췄다.“……잘못 눌렀습니다.”하늘이 웃었다.“나만 그런 줄 알았더니.”“돌려놓겠습니다.”“응.”문제는 그다음이었다.하늘이 화면을 내리다가 물었다.“외식비가 왜 이렇게 많아요?”단태도 확인했다.“그러네요.”“우리 요리 꽤 했는데.”“빛새 씨랑 먹은 것도 있고.”“수족관 갔을 때도 먹었고.”“낚시 갈 때 휴게소도.”하늘이 잠시 생각했다.“근데 낚시 갈 때 밥은 공동생활비예요? 내 취미 비용이에요?”단태가 되물었다.“저도 같이 갔잖습니까.”“단태도 낚시 좋아하잖아요.”“그럼 공동 취미?”둘은 동시에 조용해졌다.하늘이 웃었다.“이거 생각보다 어렵네.”단태도 웃었다.“항목을 너무 정확하게 나누려고 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그럼?”“기준만 정하죠.”둘이 함께 먹고 사용하는 것은 공동.각자 취미를 위해 혼자 사는 것은 개인.상대에게 주는 선물도 개인.하늘이 말했다.“그리고 애매하면 결제 전에 물어보기.”“좋습니다.”“금액 큰 것도.”“얼마부터?”둘은 잠시 의논한 끝에 공동계좌에서 일정 금액 이상을 사용할 때는 서로 먼저 말하기로 했다.허락을 받기 위해서가 아니었다.둘의 돈
일요일 오후.윤하늘은 냉장고 문을 열었다가 한참 서 있었다.강단태가 뒤에서 물었다.“뭐 찾습니까?”“저녁거리.”“많잖아요.”“재료는 많은데 먹고 싶은 게 없어.”냉장고에는 계란, 두부, 채소, 고기까지 있었다.단태가 옆으로 와서 안을 들여다봤다.“밖에서 먹을까요?”“그럴까?”“백 번째니까.”하늘이 고개를 돌렸다.“뭐가 백 번째예요?”단태가 잠시 멈췄다.“그냥.”“뭔데요?”“하늘 씨가 아까 달력 보면서 오늘이 백 번째라고 했잖습니까.”하늘이 눈을 깜빡였다.그러다 웃었다.“그거 소설.”“소설?”“읽던 소설이 오늘 백 화까지 올라왔다고.”단태가 입을 다물었다.하늘은 결국 냉장고 문을 닫고 웃음을 터뜨렸다.“뭐라고 생각했어요?”“우리 백 일인 줄 알았습니다.”“우리 백 일 지났잖아요.”“그러니까 이상했습니다.”“그런데도 말 안 했네?”“제가 날짜를 잘못 기억한 줄 알았죠.”하늘은 한참 웃다가 단태의 팔을 잡았다.“그래도 나가요.”“왜요?”“백 일은 아니어도 외식은 할 수 있잖아.”“그건 맞습니다.”둘이 집을 나서려던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하늘이 화면을 확인했다.“빛새 씨?”문을 열자 은빛새가 종이봉투를 들고 서 있었다.“나 잠깐만.”“무슨 일이에요?”“가게 근처 빵집에서 샀는데 너무 많아서.”빛새가 봉투를 내밀었다.“나눠 먹으려고 가져왔어요.”단태가 뒤에서 말했다.“저희 지금 저녁 먹으러 나가려던 참입니다.”빛새가 바로 한 걸음 물러났다.“그럼 나 갈게요.”하늘이 붙잡았다.“같이 가요.”“둘이 데이트하는 거 아니에요?”“그냥 밥 먹으러 가는 건데.”빛새가 단태를 봤다.단태가 말했다.“저는 괜찮습니다.”빛새가 하늘을 다시 봤다.“진짜?”“응. 대신 빵도 같이 먹어요.”“저녁 먹고 빵까지?”“사 온 사람이 책임져야죠.”“괜히 왔네.”세 사람은 집 근처 식당으로 갔다.메뉴판을 펼치자 빛새가 물었다.“뭐 먹을까요?”하늘이 말했다.“오늘은 각자 먹고 싶은 거
은빛새의 초대는 생각보다 빨리 왔다.토요일 오전.윤하늘과 강단태는 각자 가방 하나씩을 들고 빛새의 집 앞에 섰다.하늘의 가방에는 책과 태블릿이 들어 있었고, 단태의 가방에는 새 미니어처 상자가 들어 있었다.초인종을 누르자 빛새가 문을 열었다.“진짜 각자 할 거 가져왔네요?”하늘이 가방을 들어 보였다.“빛새 씨가 그러라면서요.”빛새는 단태의 가방을 봤다.“또 미니어처예요?”“이번에는 작은 온실입니다.”하늘이 처음 듣는다는 얼굴로 돌아봤다.“온실?”“네.”“왜 나한테는 말 안 했어요?”단태가 태연하게 대답했다.“지금 알았잖아요.”“같이 사는 사람보다 빛새 씨 집에서 먼저 공개하네.”빛새가 웃었다.“들어오기나 해요.”빛새의 집은 가게와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매장에서는 옷 하나의 방향까지 반듯하게 맞추는 사람이었지만, 집 소파에는 담요가 아무렇게나 놓여 있었다.테이블에는 읽다 만 책 두 권.컵 하나.머리끈까지 있었다.하늘이 말했다.“의외다.”“뭐가요?”“집은 평범하네.”빛새가 눈을 가늘게 떴다.“그럼 내가 집에서도 옷 색깔별로 정리하고 살 줄 알았어요?”단태가 조용히 말했다.“조금.”“강단태 씨.”“죄송합니다.”하늘이 웃음을 터뜨렸다.세 사람은 정말 각자 자리를 잡았다.하늘은 소파 한쪽에서 책을 읽었다.빛새는 반대쪽에서 지난번부터 읽던 책을 펼쳤다.단태는 식탁 위에 미니어처 부품을 늘어놓았다.한동안 집 안에는 아무 말도 없었다.사각.책장이 넘어가고.달칵.작은 부품이 맞춰지는 소리가 났다.그러다 빛새가 책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물었다.“우리 지금 왜 모인 거예요?”하늘도 그대로 대답했다.“각자 놀려고.”“그럴 거면 각자 집에 있으면 되잖아요.”“그거랑 다르죠.”“뭐가 다른데요?”이번에는 단태가 대답했다.“혼자 있는 것과 같이 있으면서 각자 있는 건 다르니까요.”빛새가 책을 내렸다.“두 사람 같이 살더니 이상한 걸 배웠네.”하늘이 웃었다.“해보니까 좋잖아요.”빛새는
토요일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윤하늘은 거실 창문 앞에 서서 유리창을 타고 흐르는 빗물을 바라봤다.원래 오늘은 아무 계획도 없었다.낚시도.외출도.누군가를 만나기로 한 약속도 없었다.그런데 막상 비까지 오자 집 안이 평소보다 더 조용하게 느껴졌다.하늘은 소파에 앉아 휴대전화를 확인했다.오전 아홉 시 십이 분.강단태는 아직 자기 방에 있었다.하늘은 잠시 고민하다가 메시지를 보냈다.안 일어나요?몇 초 뒤.방문이 열렸다.단태가 거실로 나왔다.“같은 집에서 메시지를 보내는 이유가 뭡니까?”하늘이 웃었다.“지난번에 단태도 그랬잖아요.”“그건 사진 보내려고.”“나는 사람 부르려고.”단태가 창밖을 봤다.“비 많이 오네요.”“응.”“오늘 나갈 겁니까?”“싫어요.”“저도.”둘의 결정은 빨랐다.오늘은 집에 있기로 했다.아침을 먹은 뒤.단태는 자기 방에서 미니어처 상자를 하나 더 가져왔다.하늘의 눈이 커졌다.“또 샀어요?”“네.”“언제?”“지난번 완성하고.”“취미 제대로 생겼네.”이번에는 작은 주방을 만드는 세트였다.싱크대.식탁.작은 냄비와 그릇.심지어 냉장고까지 있었다.하늘이 상자를 들여다봤다.“이거 더 어려워 보이는데.”“지난번보다 부품이 많습니다.”“몇 시간?”“설명에는 여덟 시간.”하늘이 바로 말했다.“단태는 열두 시간.”“왜 또 늘어납니까?”“접착제 변수.”단태가 하늘을 쳐다봤다.“이번에는 장갑 있습니다.”“그럼 열 시간.”“계속 늘리네요.”하늘이 웃었다.“완성하면 보여줘요.”단태가 물었다.“하늘 씨는 뭐 할 겁니까?”하늘은 잠시 생각했다.“책.”“지난번에 꺼낸 거?”“응.”“몇 페이지 읽었습니까?”“……열두 페이지.”단태가 웃었다.“빛새 씨 첫 휴일보다 많이 읽었네요.”“비교하지 마요.”단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하늘은 거실 소파에 누워 책을 펼쳤다.처음에는 잘 읽혔다.열세 페이지.열네 페이지.열다섯 페이지.그런데 어느 순간 빗소리가 더 크
일요일 오전.윤하늘은 거실 바닥에 앉아 낚시 장비 상자를 열어놓고 있었다.낚싯줄.작은 소품통.장갑.수건.그리고 갈치낚시 때 사용했던 채비까지.하늘은 하나씩 꺼내 상태를 확인했다.그 모습을 지나가던 강단태가 멈춰 섰다.“오늘 낚시 갑니까?”“아니.”“그런데 왜 다 꺼냈어요?”“정리하려고.”단태가 바닥을 봤다.“정리 전보다 더 어지러워진 것 같은데요.”하늘이 고개를 들었다.“정리는 원래 한 번 어질러야 돼요.”“그렇습니까?”“응.”“그럼 저는 피하겠습니다.”“어디 가게요?”단태가 자기 방을 가리켰다.“할 게 있습니다.”하늘의 눈이 가늘어졌다.“뭔데요?”“나중에 보여드리겠습니다.”“왜 지금은 안 보여줘요?”“아직 시작도 안 했으니까요.”단태는 자기 방으로 들어갔다.문이 닫혔다.하늘은 잠시 그쪽을 바라보다가 다시 낚싯줄을 감았다.“뭐지.”궁금했다.하지만 따라가지는 않았다.그 방은 단태의 공간이었다.보여주고 싶을 때 보여주면 됐다.한 시간 뒤.하늘은 낚시 장비를 전부 정리했다.갈치 사진도 다시 봤다.낚시 도감은 여전히 열다섯 번째에서 끝나 있었다.15. 갈치.하늘은 새 칸을 만들지 않았다.대신 수족관에서 찍은 사진을 열었다.그냥 같이 간 곳.가오리.상어.대형 수조.단태의 뒷모습.유리에 비친 둘.하늘은 그중 한 장을 골라 배경화면으로 설정했다.그때 단태의 방문이 열렸다.하늘이 바로 고개를 돌렸다.“다 했어요?”“아직.”“뭘 하는데.”“점심 먹고 보여드릴게요.”“비밀이에요?”“비밀까지는 아닙니다.”단태의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하늘이 눈을 가늘게 떴다.“그거 뭐예요?”단태가 상자를 등 뒤로 숨겼다.“점심부터.”“수상한데.”“사건 아닙니다.”하늘이 순간 웃었다.“누가 사건이래요?”“하늘 씨 표정이 그랬습니다.”“아니거든요.”점심은 남은 재료를 처리하기로 했다.양배추는 전날 대부분 먹었고.조금 남은 당근과 양파가 있었다.단태가 냉장고를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