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남편의 장례식에 다른 아내가 나타났다: Chapter 1 - Chapter 10

185 Chapters

<1화: 장례식에 온 여자>

사람이 죽으면 시간이 멈출 줄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의 시계는 너무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초침이 한 칸씩 앞으로 갈 때마다 윤하늘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빈소에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 몇 명은 구석에 앉아 졸고 있었고,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 돌아간 뒤였다.하늘은 영정사진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사진 속 남자는 웃고 있었다.도재욱.하늘의 남편.결혼한 지 네 해.그리고 사흘 전, 죽었다.“……왜 하필 그 사진이야.”하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사진 속 재욱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작년 여름이었다.하늘이 새 휴대전화를 사고 처음으로 찍어준 사진.재욱은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그날도 카메라를 들이밀자 인상을 찌푸렸었다.‘찍지 마.’‘한 장만.’‘싫어.’‘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게.’장난처럼 던졌던 말이었다.재욱은 그 말을 듣고 하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그런 소리 하지 마.’결국 억지로 한 장 찍었다.그 사진이 정말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울음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병원에서 흰 천 아래 누워 있는 재욱을 확인했을 때도.경찰이 교통사고라고 설명했을 때도.장례식장으로 옮겨졌을 때도.그저 모든 일이 현실 같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였다.금방이라도 재욱에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하늘아. 뭐 먹고 싶어?늘 퇴근 직전에 걸려오던 전화.재욱은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했다.‘아무거나.’하늘이 그렇게 대답하면 꼭 짜증을 냈다.‘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니까.’그런 남자가 이제 없었다.하늘은 영정사진 아래 놓인 국화 한 송이를 바라봤다.그때였다.빈소 바깥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또각.또각.이 시간에 찾아올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하늘이 고개를 돌렸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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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화: 죽은 사람의 두 번째 휴대전화>

“도재욱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습니다.”강단태의 말이 복도에 낮게 가라앉았다.윤하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장례식장 특유의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향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알고 있던 남편은 단순했다.아침이면 넥타이를 고르지 못해 자신에게 물었고, 퇴근하면 저녁 메뉴를 고민했고, 주말에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사람.그런데 지금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나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무슨 뜻이에요?”하늘이 다시 물었다.“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니.”단태는 주변을 한 번 살폈다.“여기서 이야기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지금 제 남편 장례식이에요.”하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오늘 처음 보는 여자는 자기도 제 남편 아내라고 하고, 죽은 남편은 죽은 다음 날까지 메시지를 보내고, 이번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와서 제가 남편 직업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하네요.”단태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그러니까 여기서 말하세요.”은빛새 역시 한 발 앞으로 나왔다.“저도 들어야겠어요.”단태의 시선이 빛새에게 향했다.“은빛새 씨.”빛새의 얼굴이 굳었다.“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도재욱 씨에게 들었습니다.”“언제요?”“죽기 전에.”빛새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럼 저를 알고 있었네요.”“알고 있었습니다.”“저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도요?”빛새가 윤하늘을 가리켰다.단태가 잠시 침묵했다.그 짧은 침묵만으로 하늘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알고 있었군요.”하늘이 말했다.“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이름 정도는.”“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제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하늘이 허탈하게 웃었다.“남의 남편이 아내를 둘 두고 사는데요?”“그때는 저도 정확히 몰랐습니다.”“뭘요?”“누가 진짜 아내인지.”복도에 정적이 흘렀다.빛새가 먼저 반응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단태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도재욱 씨가 저에게 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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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죽은 남편이 남긴 예약 메시지>

[하늘아.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윤하늘의 손끝이 얼어붙었다.휴대전화 화면 위로 떠 있는 짧은 문장.그 한 줄이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말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을 찔렀다.“……이게 뭐야.”하늘의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은빛새가 옆으로 다가왔다.“뭐라고 써 있어요?”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화면을 꺼버리고 싶었다.아니.차라리 처음부터 이 휴대전화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러면 적어도 도재욱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였다고 믿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강단태가 하늘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바라봤다.“예약 메시지라고 했죠?”하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오전 아홉 시.”“아직 발송 전이고요?”“네.”단태가 시간을 확인했다.새벽 세 시 십칠 분.앞으로 다섯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빛새가 말했다.“그럼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하늘이 그녀를 바라봤다.“뭘 기다려요?”“메시지요.”“저 문장이 끝일 수도 있잖아요.”“아니면 더 있을 수도 있고요.”빛새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던 두 여자 사이에 이상한 공통점이 생겼다.둘 다 도재욱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늘은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잠금화면.예약 메시지 알림.그리고 그 아래, 조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표시가 있었다.첨부파일 1개.“파일이 있어요.”하늘이 말했다.단태의 눈빛이 달라졌다.“열 수 있습니까?”하늘이 알림을 눌렀다.비밀번호 입력창이 나타났다.숫자 여섯 자리.빛새가 말했다.“결혼기념일?”하늘은 곧바로 0721을 입력하려다 멈췄다.여섯 자리였다.“생일은요?”단태가 물었다.“제 생일?”“도재욱 씨가 비밀번호로 자주 쓰던 숫자.”하늘은 잠시 생각했다.“재욱 씨 생일은 11월 3일.”1103.네 자리.역시 아니었다.빛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우리 결혼기념일은 4월 18일이에요.”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빛새도 곧 입을 다물었다.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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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지하실에 있던 사람>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은 생각보다 깊었다.윤하늘이 휴대전화 불빛을 아래로 비추었다.좁은 계단 끝에 희미한 불빛이 보였다.분명 누군가 있었다.은빛새가 하늘의 팔을 붙잡았다.“잠깐만요.”“왜요?”“아까 소리 들었잖아요.”빛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누가 아래에 있는 거면 어떡해요?”강단태가 두 사람 앞으로 나섰다.“제가 먼저 내려가겠습니다.”하늘은 대답하지 않고 그의 뒤를 따라갔다.“하늘 씨.”“여기까지 왔는데 위에서 기다리라고 하지 마요.”단태가 잠시 하늘을 바라보다 더는 말리지 않았다.계단 끝에는 작은 철문이 있었다.그런데 이상했다.문이 완전히 닫혀 있지 않았다.단태가 손끝으로 밀었다.끼익.낡은 마찰음과 함께 문이 열렸다.안쪽은 생각보다 넓었다.옷가게 아래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믿기지 않았다.벽에는 철제 선반이 있었고 가운데에는 오래된 책상 하나가 놓여 있었다.빛새가 멍하니 안을 바라봤다.“나 진짜 몰랐어요.”하늘이 그녀를 돌아봤다.“이 가게에서 2년이나 있었잖아요.”“알아요.”빛새가 답답한 듯 말했다.“근데 재욱 씨가 창고 한쪽은 자기가 쓰겠다고 했어요. 재고 정리한다고.”“그걸 그냥 믿었어요?”“남편이었으니까요.”그 말에 둘 다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남편.하늘에게도 남편이었다.하지만 조금 전 확인한 기록상 빛새는 법적으로 재욱의 아내가 아니었다.빛새도 그 사실을 떠올린 듯 입술을 깨물었다.“……남편인 줄 알았으니까.”이번에는 하늘도 아무 말 하지 않았다.단태가 책상 쪽으로 다가갔다.“이상합니다.”“뭐가요?”“먼지.”책상 위에는 먼지가 쌓여 있었다.그런데 가운데만 깨끗했다.사각형 모양.무언가 놓여 있다가 최근 사라진 흔적이었다.하늘이 물었다.“재욱 씨가 가져간 걸까요?”단태는 바닥을 살폈다.“아닐 가능성이 큽니다.”바닥에 선명한 신발 자국이 있었다.하나.둘.그리고 책상에서 철제 선반으로 이어졌다.빛새가 굳었다.“우리 내려오기 전에 누가 있었던 거예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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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은빛새가 장례식에 온 이유>

“강단태는 두고.”은빛새가 마지막 문장을 읽은 채 굳어 있었다.윤하늘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천장 구석의 작은 카메라.붉은 불빛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누군가 보고 있었다.그리고 자신들이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강단태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답장하지 마세요.”빛새가 물었다.“왜요?”“반응을 기다리는 겁니다.”하늘은 카메라를 바라봤다.“그럼 기다리게 두죠.”단태가 그녀를 봤다.“하늘 씨.”“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계속 끌려다녀요.”빛새도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그 순간.또 문자가 왔다.**[시간 없어.]**이어진 두 번째 문자.**[은빛새.]**빛새의 표정이 굳었다.**[네가 왜 장례식에 갔는지 윤하늘한테 말해.]**이번에는 하늘이 빛새를 바라봤다.“무슨 뜻이에요?”빛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빛새 씨.”“…….”“나한테 아직 말 안 한 거 있어요?”단태가 천장을 한번 보고 말했다.“여기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하늘은 동의했다.“나가요.”세 사람은 지하실을 빠져나왔다.가게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하늘은 곧장 차에 타지 않았다.“여기서 말해요.”빛새가 주변을 둘러봤다.“밖에서요?”“적어도 카메라 앞은 아니잖아요.”단태가 근처에 세워진 차량들을 확인했다.“짧게 하죠.”하늘은 빛새에게 다시 물었다.“왜 장례식에 왔어요?”빛새의 손이 천천히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재욱 씨가 오라고 했어요.”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뭐라고요?”“정확히는.”빛새가 휴대전화 하나를 꺼냈다.“하늘 씨를 찾아가라고 했어요.”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언제.”“사고 일주일 전.”빛새가 녹음 파일 하나를 열었다.재생.잠시 잡음이 흐른 뒤.도재욱의 목소리가 들렸다.“빛새야.”하늘의 손끝이 굳었다.분명 재욱이었다.“내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어.”빛새는 입술을 깨물었다.녹음은 계속됐다.“만약 일주일이 지나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짧은 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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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화: 두 사람에게 나눠둔 비밀>

개인 보관실 B-17.윤하늘은 카드 뒷면에 적힌 주소를 한참 바라봤다.“지금 갈 거예요.”강단태가 말했다.“조금 쉬었다 가는 게 좋습니다.”“싫어요.”“하늘 씨.”“오늘 남편 장례식장에서 다른 아내를 만났고, 남편이 숨긴 지하실까지 찾았어요.”하늘이 단태를 똑바로 바라봤다.“이 상태로 집에 가서 잠이 올 것 같아요?”단태는 더 말리지 않았다.은빛새도 자신의 카드를 가방에 넣었다.“나도 갈게요.”하늘이 그녀를 바라봤다.빛새는 씁쓸하게 웃었다.“어차피 혼자서는 못 연다면서요.”맞았다.재욱은 그렇게 만들어놨다.둘이 같이 있어야만 열 수 있도록.하늘은 그 사실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하지만 지금은 재욱의 의도를 따지는 것보다.그가 뭘 숨겼는지 확인하는 게 먼저였다.---성동구까지 가는 동안 차 안은 조용했다.운전은 단태가 맡았다.하늘은 뒷좌석에서 창밖만 바라봤다.빛새는 반대편 창가에 앉아 있었다.한참 뒤.빛새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늘 씨.”“네.”“아까 한 말.”“뭐요.”“재욱 씨가 나한테 하늘 씨를 찾아가라고 한 이유.”빛새가 손끝으로 안전벨트를 만지작거렸다.“나 계속 생각해봤어요.”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재욱 씨가 나를 아내로 생각하지 않았던 거라면.”빛새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처음부터 나한테도 다른 목적이 있었던 거겠죠?”하늘은 바로 위로하지 않았다.그럴 수도 있었다.아니.지금까지 나온 정황을 보면 그럴 가능성이 컸다.“확인해봐야죠.”빛새가 웃었다.“하늘 씨는 되게 냉정하네요.”“안 그러면 못 버틸 것 같아서요.”빛새는 더 묻지 않았다.앞좌석에서 듣고 있던 단태가 입을 열었다.“한 가지는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하늘이 그를 바라봤다.“뭔데요?”“재욱 씨는 두 분을 같은 이유로 만난 건 아닙니다.”빛새의 표정이 굳었다.“그걸 어떻게 알아요?”“재욱 씨한테 들은 게 있으니까요.”“그럼 말해요.”단태는 잠시 침묵했다.하늘이 차갑게 물었다.“또 아직은 못 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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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강단태가 장례식에 온 이유>

“전부 없애버릴지.”강단태의 말이 끝난 뒤.B-17 안에는 묘한 정적이 내려앉았다.윤하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그러다 천천히 물었다.“그걸 당신이 결정한다고요?”“재욱 씨가 그렇게 부탁했습니다.”“왜요?”“두 분이 전부 알게 된 뒤에는.”단태가 잠시 말을 고르듯 멈췄다.“진실을 공개하는 게 오히려 더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요.”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또 보호예요?”“하늘 씨.”“죽은 남편도 나 몰래 결정하고.”그녀의 목소리가 낮아졌다.“당신도 내가 알게 될지 말지를 결정하고.”“그런 뜻이 아닙니다.”“그럼 뭔데요.”단태는 대답하지 못했다.하늘이 사진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았다.“처음부터 말해요.”“뭘.”“왜 장례식에 왔는지.”단태가 하늘을 바라봤다.“재욱 씨가 찾아가라고 했기 때문입니다.”“그건 들었어요.”“…….”“그 전에요.”하늘은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당신이 도재욱을 왜 알고 있었는지.”은빛새도 조용히 단태를 바라봤다.이번에는 단태도 피하지 않았다.“처음에는.”그가 말했다.“도재욱을 의심했습니다.”하늘의 눈빛이 달라졌다.“뭘요?”“돈.”“43억?”“처음부터 43억은 아니었습니다.”단태는 B-17 안의 서류를 한번 바라봤다.“제가 관여한 투자 건 몇 개에서 돈이 조금씩 빠져나갔습니다.”“얼마나.”“처음 확인한 건 8억 정도.”빛새가 물었다.“그 돈을 재욱 씨가 가져갔다고 생각한 거예요?”“네.”“그래서 따라다닌 거고?”“처음에는.”단태가 고개를 끄덕였다.“도재욱 계좌를 본 건 아닙니다. 다만 돈이 사라진 뒤마다 그 사람이 연결된 회사가 나왔고.”“그래서 범인이라고 생각했다?”“맞습니다.”하늘이 물었다.“근데 아니었어요?”“완전히 아니라고도 못 합니다.”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단태가 말했다.“재욱 씨도 그 돈을 이용했습니다.”빛새가 눈을 크게 떴다.“이용했다니요?”“처음에는 자기 목적도 있었습니다.”“무슨 목적.”“그건 정확히 모릅니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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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화: 사고 세 시간 전>

“도재욱을 살아 있는 상태로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강단태가 윤하늘을 똑바로 바라봤다.“저입니다.”윤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은빛새가 먼저 입을 열었다.“사고 세 시간 전이라고 했죠?”“네.”“어디서요?”“성수동.”단태의 대답은 짧았다.“재욱 씨가 따로 쓰던 창고가 있었습니다.”하늘이 물었다.“당신은 왜 거기 갔어요?”단태는 잠시 침묵했다.“재욱 씨가 불렀습니다.”그 순간 하늘의 휴대전화가 울렸다.모르는 번호.또 문자였다.**[단태가 왜 거기 있었는지도 물어봐.]**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빛새도 화면을 봤다.“이거.”“누가 보내는지부터 알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하늘은 화면을 끄지 않았다.대신 단태를 바라봤다.“왜 거기 있었어요.”단태는 피하지 않았다.“돈 때문입니다.”“43억?”“네.”하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말해요.”단태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사고 당일 밤.오후 9시가 조금 넘은 시간.성수동의 오래된 창고.강단태가 도착했을 때 문은 이미 열려 있었다.안에는 도재욱 혼자였다.재욱은 평소 모습과 달랐다.셔츠 소매는 걷어 올린 채였고.책상 위에는 서류 뭉치.노트북 두 대.휴대전화 세 개.그리고 검은색 USB 하나가 놓여 있었다.단태가 들어서자 재욱이 물었다.“혼자 왔지?”“그래.”“따라온 차 없었고?”“없어.”재욱은 그제야 문을 닫았다.단태가 책상 위를 바라봤다.“뭐야, 이게.”“마지막 정리.”“무슨 소리야.”재욱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계좌 흐름.회사 이름.금액.단태의 표정이 굳었다.“43억?”“그보다 더 있어.”“또 그 얘기냐.”“이번에는 끝내려고.”단태가 재욱을 바라봤다.“어떻게.”“돌려놓을 거야.”“누구한테.”“원래 가져간 사람들한테.”“그 사람들이 누군데.”재욱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대신 책상 위 검은 USB를 집었다.“이거.”단태가 받으려 하자 재욱이 손을 거뒀다.“지금은 안 돼.”“뭐?”“내가 사고 나거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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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화: 처음 본 척한 이유>

“사고 난 날부터.”윤하늘의 시선이 강단태와 은빛새 사이를 오갔다.“둘이 이미 알고 있었던 거예요?”빛새가 먼저 고개를 숙였다.“네.”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단태도 부정하지 않았다.“사고 나기 한 시간쯤 전에 처음 만났습니다.”“어디서요?”빛새가 대답했다.“내 가게요.”하늘은 헛웃음을 흘렸다.“근데 장례식장에서는 처음 보는 사람처럼 굴었고.”“맞아요.”“왜.”빛새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때는 하늘 씨를 믿을 수가 없었으니까.”“또 그 말이에요?”“이번에는 진짜 이유가 있어요.”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빛새가 천천히 말을 이었다.“사고 난 날 밤 10시 반쯤.”“…….”“재욱 씨한테 전화가 왔어요.”---밤 10시 34분.은빛새는 가게 셔터를 절반쯤 내리고 있었다.도재욱에게서 전화가 왔다.평소 같으면 바로 받았을 전화였다.하지만 그날은 이상했다.재욱의 목소리가 너무 낮았다.“빛새야.”“왜?”“지금 가게야?”“응.”“문 잠가.”빛새가 손을 멈췄다.“왜?”“그냥 잠가.”“재욱 씨.”“오늘 밤 누가 찾아와도 열지 마.”빛새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일인데.”“설명할 시간 없어.”“사고 친 거야?”재욱이 잠깐 침묵했다.그리고 말했다.“미안하다.”빛새는 오히려 더 불안해졌다.“왜 갑자기 미안하대.”“…….”“재욱 씨.”“가게 정리하라고 했던 거 기억하지?”“응.”“내가 연락 없으면 금고부터 확인해.”빛새는 웃지도 못했다.“왜 무섭게 말해.”재욱은 또 한 번 말했다.“미안해.”두 번째였다.그리고 전화가 끊겼다.---현재.빛새가 말했다.“그게 마지막 통화였어요.”하늘이 물었다.“그리고 단태 씨가 왔고?”단태가 대답했다.“재욱 씨가 저한테 가게 주소를 보냈습니다.”“왜.”“사고 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연락한 사람 중 하나가 빛새 씨라고 했습니다.”빛새가 고개를 끄덕였다.“문은 안 열어주려고 했어요.”“근데 열었고.”“강단태라고 하니까.”빛새가 단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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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화: 0714의 열쇠>

0714.윤하늘은 열쇠에 달린 숫자를 몇 번이나 다시 봤다.생일도 아니었다.결혼기념일도 아니었다.도재욱과 처음 만난 날은 0614.0714는 아무 의미가 없었다.적어도 자신에게는.은빛새가 물었다.“한 달 뒤 날짜 같은데요.”하늘이 고개를 저었다.“재욱 씨랑 처음 만난 다음 달이긴 한데, 특별한 건 없어요.”강단태가 말했다.“재욱 씨가 일부러 숫자를 남겼다면 장소나 기록일 가능성이 큽니다.”하늘은 열쇠를 손바닥에 올려놓았다.“또 찾으러 다녀야 하는 거네요.”그 말에는 피곤함이 섞여 있었다.단태도 알아차린 듯 잠시 침묵했다.“무작정 돌아다니진 않겠습니다.”“그럼요?”“이미 가지고 있는 자료 안에서 먼저 찾죠.”그 말이 그나마 나았다.하늘은 B-17 안에 펼쳐진 서류를 바라봤다.새로운 장소를 하나 더 찾아가는 대신.이미 손에 들어온 자료에서 답을 찾기로 했다.빛새도 자신의 상자에서 사진과 영수증을 다시 꺼냈다.“날짜만 보면 되는 거죠?”“0714.”하늘이 말했다.“연도는 모르고.”세 사람은 말없이 자료를 나눴다.이번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다.빛새가 호텔 영수증 한 장을 집어 들었다.“있어요.”하늘과 단태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영수증 날짜.**2024.07.14**장소는 서울의 한 비즈니스 호텔.빛새가 다른 종이를 찾았다.같은 날 주차 영수증.그리고 손글씨.**B1-14**단태의 표정이 굳었다.“0714가 날짜고.”하늘이 말했다.“B1-14가 장소.”빛새가 주차 영수증을 뒤집었다.뒷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14번 확인.**하늘은 열쇠를 내려다봤다.“가죠.”이번에는 누구도 말리지 않았다.---호텔에 도착했을 때는 아침 8시가 조금 넘은 시간이었다.투숙객들이 하나둘 체크아웃하던 시간.하늘은 로비에 들어가지 않았다.바로 지하주차장으로 향했다.B1.14번.주차면 자체는 평범했다.하늘이 주변을 둘러봤다.“아무것도 없는데.”단태가 벽 쪽을 살폈다.“잠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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