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의 장례식에 다른 아내가 나타났다

남편의 장례식에 다른 아내가 나타났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5
By:  에이르Updated just now
Language: Korean
goodnovel12goodnovel
Not enough ratings
19Chapters
70views
Read
Add to library

Share:  

Report
Overview
Catalog
SCAN CODE TO READ ON APP

윤하늘은 결혼 4년 만에 남편 도재욱을 사고로 잃는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나타난 은빛새가 자신도 도재욱의 아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죽은 재욱에게서 의문의 메시지까지 도착한다. 하늘은 재욱의 죽음을 의심하는 강단태와 함께 남편의 숨겨진 삶을 추적한다. 두 명의 아내와 하나의 죽음.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View More

Chapter 1

<1화: 장례식에 온 여자>

사람이 죽으면 시간이 멈출 줄 알았다.

하지만 장례식장의 시계는 너무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초침이 한 칸씩 앞으로 갈 때마다 윤하늘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빈소에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 몇 명은 구석에 앉아 졸고 있었고,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 돌아간 뒤였다.

하늘은 영정사진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웃고 있었다.

도재욱.

하늘의 남편.

결혼한 지 네 해.

그리고 사흘 전, 죽었다.

“……왜 하필 그 사진이야.”

하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진 속 재욱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하늘이 새 휴대전화를 사고 처음으로 찍어준 사진.

재욱은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그날도 카메라를 들이밀자 인상을 찌푸렸었다.

‘찍지 마.’

‘한 장만.’

‘싫어.’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게.’

장난처럼 던졌던 말이었다.

재욱은 그 말을 듣고 하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결국 억지로 한 장 찍었다.

그 사진이 정말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병원에서 흰 천 아래 누워 있는 재욱을 확인했을 때도.

경찰이 교통사고라고 설명했을 때도.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을 때도.

그저 모든 일이 현실 같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재욱에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 하늘아. 뭐 먹고 싶어?

늘 퇴근 직전에 걸려오던 전화.

재욱은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했다.

‘아무거나.’

하늘이 그렇게 대답하면 꼭 짜증을 냈다.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니까.’

그런 남자가 이제 없었다.

하늘은 영정사진 아래 놓인 국화 한 송이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빈소 바깥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이 시간에 찾아올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하늘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빈소 입구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

서른 안팎으로 보였다.

조문객이라기에는 이상했다.

보통 빈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도재욱의 얼굴을.

여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조용한 빈소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늘이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영정사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바라봤다.

하늘은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문객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것을 확인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저기요.”

하늘이 다시 불렀다.

그제야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도재욱.”

하늘의 몸이 굳었다.

낯선 여자의 입에서 남편 이름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재욱 씨가…… 왜 여기 있어요?”

하늘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시는 분이세요?”

여자는 오히려 하늘을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봤다.

“네?”

“제 남편 아시는 분이냐고요.”

순간 여자의 표정이 멈췄다.

“남편이요?”

“네.”

“누구 남편이요?”

질문이 이상했다.

하늘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제 남편이요.”

여자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빈소 안쪽에서 잠들어 있던 친척 한 사람이 몸을 뒤척였다.

하늘은 목소리를 낮췄다.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간이 늦어서요. 조문 오신 거라면―”

“잠깐만요.”

여자가 하늘의 말을 잘랐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늘은 당황했지만 대답했다.

“윤하늘이요.”

여자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윤…… 하늘.”

마치 처음 듣는 이름처럼 되뇌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지갑.

화장품.

휴대전화.

작은 수첩.

손이 떨려 물건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늘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지갑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진이었다.

“이 사람 맞아요?”

하늘은 사진을 받아들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도재욱이었다.

영정사진 속 남자와 같은 얼굴.

하지만 사진 속 재욱은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니트.

그리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옷가게 안이었다.

뒤편으로 가지런히 걸린 옷들이 보였고, 한쪽에는 전신거울과 피팅룸이 있었다.

재욱의 옆에는 지금 하늘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거울 앞에 다정하게 붙어 있었다.

재욱의 한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은 여자의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연인처럼.

아니.

누가 봐도 부부처럼.

하늘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언제 찍은 거예요?”

여자가 되물었다.

“제가 묻고 싶어요.”

“뭐를요?”

“당신은 도재욱 씨랑 무슨 관계예요?”

하늘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방금 말했잖아요.”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다.

“제 남편이라고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켰다.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하늘 앞으로 내밀었다.

웨딩사진이었다.

하늘은 숨을 쉬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도재욱이 웃고 있었다.

옆에는 그 여자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호텔 예식장.

손을 맞잡은 두 사람.

키스하는 사진까지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하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저도 묻고 싶네요.”

“합성이에요?”

“아니요.”

“그럼 언제 찍은 건데요?”

“2년 전이요.”

하늘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요.”

2년 전.

그때 하늘은 이미 재욱과 결혼한 상태였다.

매일 같은 집에서 살았다.

아침마다 같이 출근했고,

저녁이면 같이 밥을 먹었다.

주말이면 장을 봤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2년 전이면 재욱 씨는 이미 저랑 결혼한 상태였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여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저도 그때 이미 결혼했으니까.”

하늘이 여자를 바라봤다.

“누구랑요?”

여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랑요.”

빈소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하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자는 천천히 말했다.

“제 이름은 은빛새예요.”

하늘은 처음 듣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은빛새.

“도재욱 씨랑 결혼한 지 2년 됐어요.”

“그만하세요.”

“저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그만하라고요.”

하늘의 목소리가 커졌다.

구석에서 잠들어 있던 친척 몇 명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곧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제 남편 장례식이에요.”

“제 남편 장례식이기도 해요.”

하늘의 눈이 번쩍 들렸다.

빛새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여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누구도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늘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슬픔보다 먼저 분노가 올라왔다.

“당장 나가주세요.”

“못 나가요.”

“경찰 부를까요?”

“부르세요.”

빛새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저도 확인해야 하니까.”

“뭘요?”

“이 남자가 왜 여기 누워 있는지.”

하늘이 비웃듯 말했다.

“죽었으니까요.”

“그게 아니에요.”

빛새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사흘 전에 재욱 씨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어제까지도 연락했어요.”

하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구랑요?”

“재욱 씨랑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빛새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메신저 화면.

하늘은 날짜를 확인했다.

어제.

오후 6시 14분.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발신자는.

도재욱.

하늘은 손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이건…….”

“재욱 씨 사고 난 게 언제라고요?”

빛새가 물었다.

하늘이 천천히 대답했다.

“사흘 전…… 밤.”

“그럼 설명해봐요.”

빛새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어제 저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죠?”

하늘은 화면을 바라봤다.

도재욱의 이름.

도재욱의 프로필 사진.

하지만 하늘이 알고 있는 재욱의 계정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계정이었다.

“전화번호 보여주세요.”

빛새가 번호를 보여줬다.

하늘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번호도 처음 보는 번호였다.

남편에게 휴대전화가 하나 더 있었다.

적어도 하나.

그 사실조차 몰랐다.

하늘은 갑자기 숨이 막혔다.

빈소를 빠져나왔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 벽을 짚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가슴이 답답했다.

“윤하늘 씨.”

뒤에서 빛새가 따라왔다.

“따라오지 마세요.”

“저도 알고 싶어요.”

“뭘요?”

하늘이 돌아섰다.

“우리 남편이 바람피웠다는 거요? 당신이 불륜 상대였다는 거요?”

빛새의 표정이 굳었다.

“제가 아니라 당신일 수도 있죠.”

찰싹.

하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빛새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늘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본인도 놀랐다.

“……미안해요.”

그러나 빛새는 하늘을 노려보지도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바로 했다.

“저라도 때렸을 거예요.”

그 말에 오히려 하늘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새가 말했다.

“그런데 하나는 분명해요.”

“뭐가요.”

“우리 둘 중 한 사람만 속은 게 아니에요.”

하늘의 눈썹이 움직였다.

“무슨 뜻이에요?”

“저 사람.”

빛새가 빈소 안쪽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우리 둘 다 속였어요.”

그 순간.

“아닙니다.”

낮고 차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

검은 넥타이.

큰 키에 단정하게 넘긴 머리.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빛새가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세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윤하늘을 바라봤다.

정확하게 얼굴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윤하늘 씨죠?”

“맞는데요.”

“강단태입니다.”

“저를 아세요?”

강단태는 잠시 영정사진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하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재욱 씨 때문에 왔습니다.”

하늘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회사 분이세요?”

“아닙니다.”

“그럼요?”

단태가 말했다.

“도재욱 씨와 사업적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하늘은 미간을 찌푸렸다.

재욱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적어도 하늘이 알기로는 그랬다.

“무슨 사업이요?”

단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은빛새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화면에는 아직 재욱이 보냈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단태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 메시지.”

빛새가 휴대전화를 몸 쪽으로 당겼다.

“왜요?”

“언제 받았습니까?”

“어제요.”

단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늘이 물었다.

“뭐가요?”

단태가 천천히 말했다.

“도재욱 씨 휴대전화는 사고 현장에서 제가 직접 확인했으니까요.”

“……뭐라고요?”

“그리고.”

단태가 하늘을 바라봤다.

“윤하늘 씨도 한 가지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가슴이 다시 내려앉았다.

“무슨 착각이요?”

단태의 시선이 영정사진을 향했다.

“도재욱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그가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사고도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닙니다.”

윤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다른 아내가 나타났다.

죽은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는 말했다.

남편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고.

하늘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도재욱이라는 남자와 네 해를 살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지도 모른다.

Expand
Next Chapter
Download

Latest chapter

More Chapters

To Readers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No Comments
19 Chapters
<1화: 장례식에 온 여자>
사람이 죽으면 시간이 멈출 줄 알았다.하지만 장례식장의 시계는 너무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초침이 한 칸씩 앞으로 갈 때마다 윤하늘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빈소에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 몇 명은 구석에 앉아 졸고 있었고,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 돌아간 뒤였다.하늘은 영정사진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사진 속 남자는 웃고 있었다.도재욱.하늘의 남편.결혼한 지 네 해.그리고 사흘 전, 죽었다.“……왜 하필 그 사진이야.”하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사진 속 재욱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작년 여름이었다.하늘이 새 휴대전화를 사고 처음으로 찍어준 사진.재욱은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그날도 카메라를 들이밀자 인상을 찌푸렸었다.‘찍지 마.’‘한 장만.’‘싫어.’‘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게.’장난처럼 던졌던 말이었다.재욱은 그 말을 듣고 하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그런 소리 하지 마.’결국 억지로 한 장 찍었다.그 사진이 정말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울음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병원에서 흰 천 아래 누워 있는 재욱을 확인했을 때도.경찰이 교통사고라고 설명했을 때도.장례식장으로 옮겨졌을 때도.그저 모든 일이 현실 같지 않았다.지금도 마찬가지였다.금방이라도 재욱에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하늘아. 뭐 먹고 싶어?늘 퇴근 직전에 걸려오던 전화.재욱은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했다.‘아무거나.’하늘이 그렇게 대답하면 꼭 짜증을 냈다.‘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니까.’그런 남자가 이제 없었다.하늘은 영정사진 아래 놓인 국화 한 송이를 바라봤다.그때였다.빈소 바깥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또각.또각.이 시간에 찾아올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하늘이 고개를 돌렸다.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2화: 죽은 사람의 두 번째 휴대전화>
“도재욱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습니다.”강단태의 말이 복도에 낮게 가라앉았다.윤하늘은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장례식장 특유의 희미한 소독약 냄새와 향 냄새가 뒤섞여 코끝을 찔렀다. 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그녀가 알고 있던 남편은 단순했다.아침이면 넥타이를 고르지 못해 자신에게 물었고, 퇴근하면 저녁 메뉴를 고민했고, 주말에는 소파에 누워 TV를 보던 사람.그런데 지금 처음 보는 남자가 나타나 그 모든 것을 부정하고 있었다.“무슨 뜻이에요?”하늘이 다시 물었다.“평범한 회사원이 아니라니.”단태는 주변을 한 번 살폈다.“여기서 이야기할 내용은 아닌 것 같습니다.”“지금 제 남편 장례식이에요.”하늘의 목소리가 날카로워졌다.“오늘 처음 보는 여자는 자기도 제 남편 아내라고 하고, 죽은 남편은 죽은 다음 날까지 메시지를 보내고, 이번에는 처음 보는 남자가 와서 제가 남편 직업까지 잘못 알고 있었다고 하네요.”단태는 말없이 하늘을 바라봤다.“그러니까 여기서 말하세요.”은빛새 역시 한 발 앞으로 나왔다.“저도 들어야겠어요.”단태의 시선이 빛새에게 향했다.“은빛새 씨.”빛새의 얼굴이 굳었다.“제 이름은 어떻게 아세요?”“도재욱 씨에게 들었습니다.”“언제요?”“죽기 전에.”빛새가 입술을 깨물었다.“그럼 저를 알고 있었네요.”“알고 있었습니다.”“저 사람이 결혼했다는 것도요?”빛새가 윤하늘을 가리켰다.단태가 잠시 침묵했다.그 짧은 침묵만으로 하늘의 가슴이 무겁게 내려앉았다.“알고 있었군요.”하늘이 말했다.“나라는 사람이 있다는 걸.”“이름 정도는.”“그런데 왜 아무 말도 안 했어요?”“제가 끼어들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하늘이 허탈하게 웃었다.“남의 남편이 아내를 둘 두고 사는데요?”“그때는 저도 정확히 몰랐습니다.”“뭘요?”“누가 진짜 아내인지.”복도에 정적이 흘렀다.빛새가 먼저 반응했다.“그게 무슨 뜻이에요?”단태는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도재욱 씨가 저에게 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3화: 죽은 남편이 남긴 예약 메시지>
[하늘아. 네가 이걸 보고 있다면 나는 이미 죽었을 거야.]윤하늘의 손끝이 얼어붙었다.휴대전화 화면 위로 떠 있는 짧은 문장.그 한 줄이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말보다 더 선명하게 가슴을 찔렀다.“……이게 뭐야.”하늘의 목소리는 거의 나오지 않았다.은빛새가 옆으로 다가왔다.“뭐라고 써 있어요?”하늘은 대답하지 않았다.화면을 꺼버리고 싶었다.아니.차라리 처음부터 이 휴대전화를 발견하지 않았으면 했다.그러면 적어도 도재욱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였다고 믿을 수 있었을지도 몰랐다.강단태가 하늘의 손에 들린 휴대전화를 바라봤다.“예약 메시지라고 했죠?”하늘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오늘 오전 아홉 시.”“아직 발송 전이고요?”“네.”단태가 시간을 확인했다.새벽 세 시 십칠 분.앞으로 다섯 시간 넘게 남아 있었다.빛새가 말했다.“그럼 기다리면 되는 거 아니에요?”하늘이 그녀를 바라봤다.“뭘 기다려요?”“메시지요.”“저 문장이 끝일 수도 있잖아요.”“아니면 더 있을 수도 있고요.”빛새는 화면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조금 전까지 서로를 향해 날을 세우던 두 여자 사이에 이상한 공통점이 생겼다.둘 다 도재욱의 다음 말을 기다리고 있었다.하늘은 다시 휴대전화 화면을 켰다.잠금화면.예약 메시지 알림.그리고 그 아래, 조금 전에는 보지 못했던 작은 표시가 있었다.첨부파일 1개.“파일이 있어요.”하늘이 말했다.단태의 눈빛이 달라졌다.“열 수 있습니까?”하늘이 알림을 눌렀다.비밀번호 입력창이 나타났다.숫자 여섯 자리.빛새가 말했다.“결혼기념일?”하늘은 곧바로 0721을 입력하려다 멈췄다.여섯 자리였다.“생일은요?”단태가 물었다.“제 생일?”“도재욱 씨가 비밀번호로 자주 쓰던 숫자.”하늘은 잠시 생각했다.“재욱 씨 생일은 11월 3일.”1103.네 자리.역시 아니었다.빛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우리 결혼기념일은 4월 18일이에요.”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빛새도 곧 입을 다물었다.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4화: 지하실에 있던 사람>
강단태가 손잡이를 당겼다.끼이익.벽처럼 보였던 문이 천천히 열렸다.그 뒤로 아래를 향해 이어지는 좁은 계단이 모습을 드러냈다.윤하늘은 숨을 죽였다.“여기 이런 곳이 있었어요?”하늘이 묻자 은빛새는 고개를 저었다.“처음 봐요.”빛새의 목소리가 떨렸다.“2년 동안 이 가게를 운영했는데…… 진짜 몰랐어요.”단태가 계단 아래를 내려다봤다.빛은 없었다.바닥이 어디까지 이어지는지도 보이지 않았다.그때 다시 소리가 났다.쿵.이번에는 세 사람 모두 분명하게 들었다.아래쪽이었다.빛새가 하늘의 팔을 붙잡았다.“사람 있는 거 맞죠?”단태가 손가락을 입술에 가져갔다.“조용히 계세요.”그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다.하늘이 뒤따르려 하자 단태가 막았다.“두 분은 위에 계세요.”“싫어요.”“윤하늘 씨.”“재욱 씨가 남긴 곳이에요.”하늘은 물러서지 않았다.“제가 확인할 거예요.”단태의 표정이 굳었다.“아래에 누가 있는지도 모릅니다.”“그래서 당신 혼자 내려가면요?”“적어도 위험한 사람이 세 명이 되는 건 막을 수 있죠.”맞는 말이었다.그런데 하늘은 이상하게 여기서 기다릴 수 없었다.도재욱이 죽었다.다른 아내가 나타났다.자신이 몰랐던 휴대전화가 세 대나 있었다.43억이 사라졌다.그리고 이제 남편이 숨겨놓은 지하 공간까지 발견됐다.더는 남이 가져오는 이야기를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같이 갈게요.”단태가 한동안 하늘을 바라봤다.결국 짧게 말했다.“제 뒤에서 떨어지지 마세요.”“저도 갈래요.”빛새였다.단태가 그녀를 쳐다봤다.“은빛새 씨까지―”“제 가게예요.”빛새가 말했다.“내 가게 밑에 뭘 만들어놨는지 알아야겠어요.”단태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두 분 다 제 뒤로 오세요.”그가 먼저 계단을 내려갔다.하늘이 뒤를 따랐고 빛새가 마지막이었다.한 계단.두 계단.낡은 콘크리트 계단에서는 내려갈 때마다 작은 먼지가 일었다.벽은 차가웠다.열두 계단쯤 내려갔을 때 바닥이 나타났다.생각보다 넓은 공간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5화: 은빛새가 장례식에 온 이유>
지하실 안은 숨소리조차 크게 들릴 만큼 조용했다.윤하늘은 계단 아래를 바라봤다.도재욱이 숨겨놓은 공간.자신도 몰랐고, 이 가게를 2년 동안 운영했다는 은빛새조차 존재를 몰랐던 곳이었다.강단태가 휴대전화 손전등을 켰다.“제 뒤로 오세요.”하늘이 따라 내려가려는 순간이었다.“잠깐만요.”은빛새가 말했다.하늘과 단태가 동시에 그녀를 바라봤다.빛새는 계단 앞에 서서 움직이지 않았다.표정이 이상했다.두려운 것과는 조금 달랐다.마치 오래 숨기고 있던 말을 이제야 꺼내기로 결심한 얼굴이었다.“왜요?”하늘이 물었다.빛새가 한참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저…… 장례식에 그냥 찾아온 거 아니에요.”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무슨 뜻이에요?”“재욱 씨가 하늘 씨를 찾아가라고 했어요.”순간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단태의 시선도 빛새에게 향했다.“도재욱 씨가요?”“네.”빛새는 가방에서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냈다.“죽기 일주일 전이에요.”화면을 몇 번 넘긴 뒤 음성 파일 하나를 찾았다.저장된 날짜는 사고가 나기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빛새가 재생 버튼을 눌렀다.잠시 잡음이 흐른 뒤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도재욱이었다.― 빛새야.하늘의 손끝이 굳었다.불과 사흘 전까지 집에서 듣던 목소리였다.― 내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어.짧은 침묵.그리고.― 만약 일주일이 지나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윤하늘이라는 사람을 찾아가.하늘의 심장이 내려앉았다.자신의 이름이었다.― 윤하늘.재욱이 다시 한번 정확히 말했다.― 그 사람이 나를 모른다고 하면 그냥 돌아가.빛새가 하늘을 바라봤다.음성은 계속됐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안다고 하면…….잠시 뒤 재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 아내라고 하면 절대 혼자 두지 마.파일은 거기서 끝났다.아무도 말을 하지 않았다.하늘은 한동안 꺼진 화면만 바라봤다.“왜…….”목소리가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왜 지금 말해요?”빛새가 입술을 깨물었다.“처음에는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6화: 두 사람에게 나눠둔 비밀>
서울 성동구.개인 보관실 B-17.윤하늘은 금고에서 나온 카드를 다시 한번 내려다봤다.앞면에는 자신의 이름.뒷면에는 주소.그리고 은빛새의 카드에도 같은 주소가 적혀 있었다.강단태가 두 사람을 바라봤다.“지금 바로 가는 게 좋겠습니다.”하늘이 물었다.“괜찮을까요?”“도재욱 씨가 일부러 두 사람을 만나게 한 거라면, 저곳에도 이유가 있을 겁니다.”빛새는 아무 말 없이 자신의 카드를 가방에 넣었다.세 사람은 가게를 나왔다.새벽이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도로에는 차가 조금씩 늘어나기 시작했다.하늘은 뒷좌석 창밖을 바라봤다.불과 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남편의 장례식장에 있었다.그런데 지금은 자신도 몰랐던 남편의 비밀을 찾아다니고 있었다.옆에는 남편의 또 다른 아내라고 믿었던 여자.앞에는 남편과 사업으로 얽혀 있었다는 남자.현실이라고 하기에는 모든 것이 너무 이상했다.빛새가 먼저 입을 열었다.“하늘 씨.”“네.”“아까 내가 한 말.”“무슨 말이요?”“재욱 씨가 나를 아내라서 하늘 씨한테 보낸 게 아닐 수도 있다는 거.”하늘은 잠시 대답하지 않았다.빛새가 창밖을 바라봤다.“생각해보니까 이상하잖아요.”“뭐가요?”“나랑 결혼했다고 하면서 실제 혼인신고는 안 되어 있었고.”빛새의 목소리가 작아졌다.“결혼증명서까지 가짜였고.”하늘은 그녀를 바라봤다.“그런데도 재욱 씨는 나를 하늘 씨한테 보냈어요.”“…….”“왜였을까요?”하늘도 알고 싶었다.자신은 법적으로 도재욱의 아내였다.빛새는 아니었다.그런데 재욱은 죽기 전 두 사람을 굳이 만나게 만들었다.단순히 두 여자에게 사과하고 싶었던 거라면 이런 장치를 만들 필요가 없었다.금고.숫자.카드.보관실.재욱은 분명 무언가를 남기고 싶었던 것이다.그리고 그것을 한 사람에게 전부 주지 않았다.단태가 운전하며 말했다.“곧 알게 되겠죠.”빛새가 앞을 바라봤다.“강단태 씨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단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어디까지를 말하는 겁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7화: 강단태가 장례식에 온 이유>
강단태는 한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윤하늘도 재촉하지 않았다.은빛새 역시 조용히 그를 바라봤다.보관실 안에는 도재욱이 남긴 자료들이 그대로 펼쳐져 있었다.43억.반환 계획.하늘 이름으로 만들어진 계좌.빛새에게 남겨진 거래 장소와 기록.그리고 마지막으로 발견된 사진.**[내가 죽으면 마지막 결정은 강단태에게 맡긴다.]**단태는 사진을 손에 들었다가 천천히 내려놓았다.“처음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하늘이 눈을 떼지 않았다.단태가 말했다.“전 도재욱 씨를 단순한 사업 지인으로 알고 있던 게 아닙니다.”빛새가 물었다.“그럼요?”“처음에는 감시했습니다.”하늘의 표정이 굳었다.“감시요?”“도재욱 씨가 회사 돈을 빼돌리고 있다는 의심이 있었습니다.”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몇 시간 전까지만 해도 자신도 비슷하게 생각했다.43억을 움직인 사람.숨겨진 휴대전화.아내에게조차 말하지 않은 거래.누가 봐도 정상적인 생활은 아니었다.단태는 테이블 위의 거래내역을 가리켰다.“처음 확인한 금액은 8억 정도였습니다. 여러 계좌를 거쳤고, 회사 이름도 계속 바뀌었습니다.”“그래서 재욱 씨를 조사했어요?”“네.”“경찰도 아닌데요?”단태가 하늘을 바라봤다.“제 돈도 들어가 있었으니까요.”하늘의 눈빛이 달라졌다.“당신 돈이요?”“정확히는 제가 투자에 관여한 자금입니다.”빛새가 물었다.“재욱 씨가 그걸 가져갔어요?”“그렇게 생각했습니다.”단태는 잠시 말을 멈췄다.“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습니다.”“뭔데요?”“돈이 재욱 씨에게 남지 않았어요.”하늘이 미간을 좁혔다.단태가 계속 말했다.“자기 돈으로 만들 생각이었다면 결국 자기 쪽으로 가져갔어야 합니다. 그런데 재욱 씨는 돈을 계속 다른 곳으로 옮겼습니다.”빛새가 아까 발견한 수첩을 바라봤다.“반환 계획.”“맞습니다.”단태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처음에는 저 문장을 믿지 않았습니다.”“그럼 언제 믿게 됐어요?”“세 달 전입니다.”단태의 표정이 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8화: 사고 세 시간 전>
“도재욱을 살아 있는 상태로 마지막으로 본 사람은 저입니다.”강단태의 말이 끝난 뒤에도 윤하늘은 한동안 움직이지 못했다.머릿속에서 한 문장만 계속 맴돌았다.마지막으로 본 사람.사고가 나기 세 시간 전.자신보다 먼저 재욱을 만난 사람.그리고 지금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않은 사람.하늘이 천천히 물었다.“어디서 만났어요?”단태는 잠시 시선을 피했다.“성수동 창고에서요.”“무슨 창고요?”“재욱이 임시로 쓰던 곳입니다.”은빛새가 끼어들었다.“그런 데도 있었어요?”“저도 사고 나기 한 달 전쯤 처음 알았습니다.”빛새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도대체 몇 군데를 숨겨놓은 거예요.”하늘은 단태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거기서 무슨 얘기를 했는데요?”단태가 대답하기 전에 하늘의 휴대전화가 다시 울렸다.띠링.새 메시지였다.[단태가 왜 거기 있었는지도 물어봐.]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단태가 화면을 보려고 하자 하늘은 휴대전화를 뒤로 당겼다.“보지 마세요.”단태의 움직임이 멈췄다.“재욱 씨가 보내는 메시지입니까?”“지금은 내가 묻는 것부터 대답해요.”단태는 짧게 숨을 내쉬었다.“재욱이 저를 불렀습니다.”“왜요?”“돈 때문이라고 했습니다.”“43억?”“그것도 포함돼 있었습니다.”하늘은 테이블 위에 놓인 서류들을 바라봤다.자신의 이름으로 만들어진 계좌.43억이 들어왔다 빠져나간 기록.재욱이 남긴 반환 계획.“그래서 둘이 뭘 했어요?”단태는 한동안 대답하지 않았다.빛새가 말했다.“숨길 생각이면 그냥 지금 나가세요.”단태가 그녀를 바라봤다.“숨기려는 게 아닙니다.”“그런 사람이 장례식에서도 말 안 했고, 여기 오기 전까지도 말 안 했어요?”“확실하지 않았으니까요.”하늘이 차갑게 물었다.“뭐가요?”단태는 결국 입을 열었다.“도재욱이 누구를 믿고 있는지.”정적이 흘렀다.“무슨 뜻이에요?”“그날 재욱이 저한테 똑같은 질문을 했습니다.”단태는 사고 당일을 떠올리듯 천천히 말했다.---성수동의 오래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9화: 처음 본 척한 이유>
“그런데 왜 둘 다.”윤하늘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장례식장에서 처음 본 척한 거예요?”은빛새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강단태 역시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하늘은 두 사람을 번갈아 바라봤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자신과 빛새는 같은 입장이라고 생각했다.둘 다 도재욱에게 속았고.둘 다 죽은 뒤에야 진실을 찾고 있다고.그런데 아니었다.두 사람은 이미 사고 당일 만난 적이 있었다.자신만 몰랐다.하늘이 다시 물었다.“언제 만났어요?”빛새가 입술을 깨물었다.“사고 나기 한 시간 전쯤.”“어디서.”“제 가게 앞에서요.”하늘의 눈빛이 달라졌다.그 옷가게.재욱이 2억 가까운 돈을 들여 마련해줬고.지하실까지 숨겨놓았던 곳.“왜 만났는데요?”빛새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단태가 대신 말했다.“제가 찾아갔습니다.”하늘이 그를 바라봤다.“왜요?”“재욱이 연락이 안 됐으니까요.”“그런데 왜 빛새 씨를 찾아가요?”“재욱이 마지막으로 연락했던 사람 중 한 명이 은빛새 씨였습니다.”빛새의 표정이 굳었다.하늘은 그 말을 놓치지 않았다.“마지막으로 연락했다고요?”“네.”“무슨 연락.”빛새가 고개를 숙였다.“그날 저녁에 전화 왔어요.”“재욱 씨한테?”“네.”“뭐라고 했는데요?”빛새는 한동안 말하지 않았다.하늘이 한 걸음 가까이 다가갔다.“이제 숨기지 마요.”빛새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가게 정리하라고 했어요.”하늘은 이미 그 메시지를 본 적이 있었다.[다음 주에는 가게 정리해.]그런데 전화까지 했다는 건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그게 다예요?”빛새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또 뭐라고 했는데.”“오늘 밤 누가 찾아올 수도 있다고.”하늘의 눈이 가늘어졌다.“누가?”“이름은 안 말했어요.”“그런데?”“누가 와도 문 열어주지 말라고 했어요.”빛새의 손끝이 떨렸다.“그리고 자기 연락 없으면 가게 안쪽 금고부터 확인하라고.”하늘은 숨을 삼켰다.재욱은 사고가 나기 전에 이미 가게 금고까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10화: 0714의 열쇠>
낡은 은색 열쇠.작은 번호표.**0714.**그리고 뒷면에 적힌 이름.**윤하늘.**하늘은 한동안 그 열쇠를 바라보기만 했다.“이걸…… 재욱 씨가 줬다고요?”강단태가 고개를 끄덕였다.“사고 현장에서요.”“살아 있을 때?”“네.”은빛새도 열쇠를 바라봤다.“그런데 왜 지금까지 안 보여줬어요?”단태는 잠시 말이 없었다.하늘이 그를 쳐다봤다.“이제 와서 또 확인이 안 돼서라고 할 거예요?”“아닙니다.”“그럼 왜.”단태는 열쇠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았다.“재욱이 이걸 주면서 말했습니다.”하늘의 표정이 굳었다.“뭐라고요?”단태가 천천히 대답했다.“하늘 씨한테 직접 주지 말라고 했습니다.”“……뭐?”“하늘 씨가 먼저 0714가 뭔지 알아낼 때까지.”하늘은 열쇠를 다시 봤다.714.익숙한 숫자는 아니었다.자신의 생일도 아니고.결혼기념일도 아니었다.재욱과 처음 만난 날은 0614.그렇다면 0714는 한 달 뒤였다.“7월 14일.”하늘이 중얼거렸다.빛새가 물었다.“무슨 날인지 알아요?”하늘은 고개를 저었다.“모르겠어요.”단태가 말했다.“재욱도 설명하지 않았습니다.”“그럼 당신은 3일 동안 이걸 가지고만 있었어요?”“네.”“장례식장에서도?”“네.”하늘은 헛웃음이 나왔다.“진짜 끝까지 사람을 시험했네요.”누구를 믿어야 하는지.누가 무엇을 알고 있는지.죽고 나서까지 순서를 정해놓았다.하늘은 손을 내밀었다.“줘요.”단태가 열쇠를 건넸다.손바닥에 닿는 순간 차가운 금속 감촉이 느껴졌다.하늘은 번호표를 다시 뒤집었다.윤하늘.재욱의 글씨였다.확실했다.빛새가 물었다.“0714가 장소 번호 아닐까요?”단태가 고개를 끄덕였다.“저도 그 가능성을 생각했습니다.”“보관함?”“아니면 금고.”하늘이 말했다.“근데 어디 있는지 모르잖아요.”단태가 테이블 위 자료를 바라봤다.“그래서 여기까지 오게 만든 것 같습니다.”세 사람의 시선이 동시에 상자들로 향했다.하늘의 상자.빛새의 상자.
last updateLast Updated : 2026-09-04
Read more
Explore and read good novels for free
Free access to a vast number of good novels on GoodNovel app. Download the books you like and read anywhere & anytime.
Read books for free on the app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