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suk윤하늘은 결혼 4년 만에 남편 도재욱을 사고로 잃는다. 그러나 장례식장에 나타난 은빛새가 자신도 도재욱의 아내라고 주장한다. 더구나 죽은 재욱에게서 의문의 메시지까지 도착한다. 하늘은 재욱의 죽음을 의심하는 강단태와 함께 남편의 숨겨진 삶을 추적한다. 두 명의 아내와 하나의 죽음.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하늘은 자신이 사랑했던 남편의 모든 것이 거짓이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과 마주한다.
Lihat lebih banyak사람이 죽으면 시간이 멈출 줄 알았다.
하지만 장례식장의 시계는 너무도 멀쩡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초침이 한 칸씩 앞으로 갈 때마다 윤하늘은 자신이 아직 살아 있다는 사실을 확인해야 했다.
벽에 걸린 시계는 새벽 두 시를 조금 넘기고 있었다.
빈소에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가까운 친척 몇 명은 구석에 앉아 졸고 있었고, 회사 사람들도 대부분 돌아간 뒤였다.
하늘은 영정사진 앞에 가만히 서 있었다.
사진 속 남자는 웃고 있었다.
도재욱.
하늘의 남편.
결혼한 지 네 해.
그리고 사흘 전, 죽었다.
“……왜 하필 그 사진이야.”
하늘이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사진 속 재욱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던 회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작년 여름이었다.
하늘이 새 휴대전화를 사고 처음으로 찍어준 사진.
재욱은 사진 찍는 걸 싫어했다.
그날도 카메라를 들이밀자 인상을 찌푸렸었다.
‘찍지 마.’
‘한 장만.’
‘싫어.’
‘나중에 영정사진으로 쓰게.’
장난처럼 던졌던 말이었다.
재욱은 그 말을 듣고 하늘의 이마를 손가락으로 툭 쳤다.
‘그런 소리 하지 마.’
결국 억지로 한 장 찍었다.
그 사진이 정말 영정사진이 될 줄은 몰랐다.
하늘은 입술을 깨물었다.
울음은 이상하게 나오지 않았다.
사고 소식을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다.
병원에서 흰 천 아래 누워 있는 재욱을 확인했을 때도.
경찰이 교통사고라고 설명했을 때도.
장례식장으로 옮겨졌을 때도.
그저 모든 일이 현실 같지 않았다.
지금도 마찬가지였다.
금방이라도 재욱에게 전화가 올 것 같았다.
― 하늘아. 뭐 먹고 싶어?
늘 퇴근 직전에 걸려오던 전화.
재욱은 저녁 메뉴를 정하는 일을 세상에서 가장 어려워했다.
‘아무거나.’
하늘이 그렇게 대답하면 꼭 짜증을 냈다.
‘아무거나가 제일 어렵다니까.’
그런 남자가 이제 없었다.
하늘은 영정사진 아래 놓인 국화 한 송이를 바라봤다.
그때였다.
빈소 바깥에서 구두 소리가 들렸다.
또각.
또각.
이 시간에 찾아올 조문객은 거의 없었다.
하늘이 고개를 돌렸다.
검은색 코트를 입은 여자가 빈소 입구에 서 있었다.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긴 머리를 단정하게 묶은 여자.
서른 안팎으로 보였다.
조문객이라기에는 이상했다.
보통 빈소에 들어온 사람들은 가장 먼저 고개를 숙였다.
그런데 여자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영정사진을 바라보고 있었다.
정확하게는,
도재욱의 얼굴을.
여자의 얼굴에서 핏기가 사라졌다.
손에 들고 있던 작은 가방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툭.
조용한 빈소에 유난히 크게 울렸다.
하늘이 다가갔다.
“괜찮으세요?”
여자는 대답하지 않았다.
한 걸음.
또 한 걸음.
영정사진 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아주 가까운 곳에서 사진을 바라봤다.
하늘은 점점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조문객이 아니라,
믿을 수 없는 것을 확인하러 온 사람처럼 보였다.
“저기요.”
하늘이 다시 불렀다.
그제야 여자가 고개를 돌렸다.
눈가가 붉어져 있었다.
“……도재욱.”
하늘의 몸이 굳었다.
낯선 여자의 입에서 남편 이름이 너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다.
“재욱 씨가…… 왜 여기 있어요?”
하늘의 미간이 좁아졌다.
“아시는 분이세요?”
여자는 오히려 하늘을 이상한 사람 보듯 바라봤다.
“네?”
“제 남편 아시는 분이냐고요.”
순간 여자의 표정이 멈췄다.
“남편이요?”
“네.”
“누구 남편이요?”
질문이 이상했다.
하늘은 잠시 대답하지 못했다.
“제 남편이요.”
여자의 얼굴이 완전히 굳었다.
빈소 안쪽에서 잠들어 있던 친척 한 사람이 몸을 뒤척였다.
하늘은 목소리를 낮췄다.
“어떤 관계인지 모르겠지만, 지금 시간이 늦어서요. 조문 오신 거라면―”
“잠깐만요.”
여자가 하늘의 말을 잘랐다.
손끝이 떨리고 있었다.
“성함이 어떻게 되세요?”
하늘은 당황했지만 대답했다.
“윤하늘이요.”
여자의 입술이 천천히 벌어졌다.
“윤…… 하늘.”
마치 처음 듣는 이름처럼 되뇌었다.
그러더니 갑자기 자신의 가방을 열기 시작했다.
지갑.
화장품.
휴대전화.
작은 수첩.
손이 떨려 물건 몇 개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하늘은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봤다.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
여자가 지갑 속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사진이었다.
“이 사람 맞아요?”
하늘은 사진을 받아들었다.
심장이 멎는 줄 알았다.
도재욱이었다.
영정사진 속 남자와 같은 얼굴.
하지만 사진 속 재욱은 처음 보는 옷을 입고 있었다.
검은 니트.
그리고 두 사람이 서 있는 곳은 옷가게 안이었다.
뒤편으로 가지런히 걸린 옷들이 보였고, 한쪽에는 전신거울과 피팅룸이 있었다.
재욱의 옆에는 지금 하늘 앞에 서 있는 여자가 있었다.
두 사람은 거울 앞에 다정하게 붙어 있었다.
재욱의 한 손에는 쇼핑백이 들려 있었고, 다른 손은 여자의 어깨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가 있었다.
연인처럼.
아니.
누가 봐도 부부처럼.
하늘이 사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게…… 언제 찍은 거예요?”
여자가 되물었다.
“제가 묻고 싶어요.”
“뭐를요?”
“당신은 도재욱 씨랑 무슨 관계예요?”
하늘의 손끝이 차갑게 식었다.
“방금 말했잖아요.”
목소리가 자신도 모르게 날카로워졌다.
“제 남편이라고요.”
여자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대신 사진을 다시 가져갔다.
그리고 휴대전화를 켰다.
화면을 몇 번 넘기더니 하늘 앞으로 내밀었다.
웨딩사진이었다.
하늘은 숨을 쉬지 못했다.
사진 속에서 도재욱이 웃고 있었다.
옆에는 그 여자가 웨딩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호텔 예식장.
손을 맞잡은 두 사람.
키스하는 사진까지 있었다.
“……이게 뭐예요?”
하늘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여자는 잠시 눈을 감았다가 떴다.
“저도 묻고 싶네요.”
“합성이에요?”
“아니요.”
“그럼 언제 찍은 건데요?”
“2년 전이요.”
하늘은 곧바로 고개를 저었다.
“말도 안 돼요.”
2년 전.
그때 하늘은 이미 재욱과 결혼한 상태였다.
매일 같은 집에서 살았다.
아침마다 같이 출근했고,
저녁이면 같이 밥을 먹었다.
주말이면 장을 봤다.
같은 침대에서 잠을 잤다.
“2년 전이면 재욱 씨는 이미 저랑 결혼한 상태였어요.”
“그럴 리가 없어요.”
여자의 목소리도 높아졌다.
“저도 그때 이미 결혼했으니까.”
하늘이 여자를 바라봤다.
“누구랑요?”
여자가 허탈하게 웃었다.
그리고 영정사진을 가리켰다.
“저 사람이랑요.”
빈소의 공기가 한순간에 얼어붙었다.
하늘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머릿속이 하얘졌다.
여자는 천천히 말했다.
“제 이름은 은빛새예요.”
하늘은 처음 듣는 이름을 머릿속에서 반복했다.
은빛새.
“도재욱 씨랑 결혼한 지 2년 됐어요.”
“그만하세요.”
“저도 이게 무슨 상황인지 모르겠어요.”
“그만하라고요.”
하늘의 목소리가 커졌다.
구석에서 잠들어 있던 친척 몇 명이 고개를 들었다.
하늘은 곧바로 목소리를 낮췄다.
“지금 제 남편 장례식이에요.”
“제 남편 장례식이기도 해요.”
하늘의 눈이 번쩍 들렸다.
빛새도 물러서지 않았다.
두 여자가 서로를 바라봤다.
누구도 먼저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하늘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
슬픔보다 먼저 분노가 올라왔다.
“당장 나가주세요.”
“못 나가요.”
“경찰 부를까요?”
“부르세요.”
빛새가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저도 확인해야 하니까.”
“뭘요?”
“이 남자가 왜 여기 누워 있는지.”
하늘이 비웃듯 말했다.
“죽었으니까요.”
“그게 아니에요.”
빛새가 고개를 저었다.
“저는 사흘 전에 재욱 씨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은 적이 없어요.”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그게 무슨―”
“어제까지도 연락했어요.”
하늘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
“누구랑요?”
“재욱 씨랑요.”
“거짓말하지 마세요.”
빛새는 대답 대신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메신저 화면.
하늘은 날짜를 확인했다.
어제.
오후 6시 14분.
메시지가 하나 와 있었다.
[조금만 기다려.]
발신자는.
도재욱.
하늘은 손에서 힘이 빠지는 걸 느꼈다.
“이건…….”
“재욱 씨 사고 난 게 언제라고요?”
빛새가 물었다.
하늘이 천천히 대답했다.
“사흘 전…… 밤.”
“그럼 설명해봐요.”
빛새의 목소리가 떨렸다.
“죽은 사람이 어떻게 어제 저한테 메시지를 보낸 거죠?”
하늘은 화면을 바라봤다.
도재욱의 이름.
도재욱의 프로필 사진.
하지만 하늘이 알고 있는 재욱의 계정이 아니었다.
처음 보는 계정이었다.
“전화번호 보여주세요.”
빛새가 번호를 보여줬다.
하늘은 완전히 얼어붙었다.
번호도 처음 보는 번호였다.
남편에게 휴대전화가 하나 더 있었다.
적어도 하나.
그 사실조차 몰랐다.
하늘은 갑자기 숨이 막혔다.
빈소를 빠져나왔다.
복도 끝까지 걸어가 벽을 짚었다.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그래도 가슴이 답답했다.
“윤하늘 씨.”
뒤에서 빛새가 따라왔다.
“따라오지 마세요.”
“저도 알고 싶어요.”
“뭘요?”
하늘이 돌아섰다.
“우리 남편이 바람피웠다는 거요? 당신이 불륜 상대였다는 거요?”
빛새의 표정이 굳었다.
“제가 아니라 당신일 수도 있죠.”
찰싹.
하늘의 손이 먼저 움직였다.
빛새의 얼굴이 옆으로 돌아갔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하늘은 자신의 손을 내려다봤다.
본인도 놀랐다.
“……미안해요.”
그러나 빛새는 하늘을 노려보지도 않았다.
천천히 고개를 바로 했다.
“저라도 때렸을 거예요.”
그 말에 오히려 하늘이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새가 말했다.
“그런데 하나는 분명해요.”
“뭐가요.”
“우리 둘 중 한 사람만 속은 게 아니에요.”
하늘의 눈썹이 움직였다.
“무슨 뜻이에요?”
“저 사람.”
빛새가 빈소 안쪽의 영정사진을 바라봤다.
“우리 둘 다 속였어요.”
그 순간.
“아닙니다.”
낮고 차분한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
복도 끝에 한 남자가 서 있었다.
검은 정장.
검은 넥타이.
큰 키에 단정하게 넘긴 머리.
처음 보는 얼굴이었다.
남자는 천천히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빛새가 경계하며 물었다.
“누구세요?”
남자는 대답하지 않고 윤하늘을 바라봤다.
정확하게 얼굴을 확인하려는 것처럼.
“윤하늘 씨죠?”
“맞는데요.”
“강단태입니다.”
“저를 아세요?”
강단태는 잠시 영정사진 쪽을 바라봤다.
그리고 다시 하늘에게 시선을 돌렸다.
“도재욱 씨 때문에 왔습니다.”
하늘이 굳은 목소리로 물었다.
“회사 분이세요?”
“아닙니다.”
“그럼요?”
단태가 말했다.
“도재욱 씨와 사업적으로 얽혀 있었습니다.”
하늘은 미간을 찌푸렸다.
재욱은 평범한 회사원이었다.
적어도 하늘이 알기로는 그랬다.
“무슨 사업이요?”
단태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은빛새가 들고 있는 휴대전화를 바라봤다.
화면에는 아직 재욱이 보냈다는 메시지가 떠 있었다.
단태의 표정이 아주 미세하게 달라졌다.
“그 메시지.”
빛새가 휴대전화를 몸 쪽으로 당겼다.
“왜요?”
“언제 받았습니까?”
“어제요.”
단태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그럴 리가 없는데.”
하늘이 물었다.
“뭐가요?”
단태가 천천히 말했다.
“도재욱 씨 휴대전화는 사고 현장에서 제가 직접 확인했으니까요.”
“……뭐라고요?”
“그리고.”
단태가 하늘을 바라봤다.
“윤하늘 씨도 한 가지 착각하고 있습니다.”
하늘의 가슴이 다시 내려앉았다.
“무슨 착각이요?”
단태의 시선이 영정사진을 향했다.
“도재욱 씨는 평범한 회사원이 아니었습니다.”
잠시 후,
그가 낮게 덧붙였다.
“그리고 그 사고도 단순한 교통사고가 아닙니다.”
윤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남편의 장례식에서 다른 아내가 나타났다.
죽은 남편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남자는 말했다.
남편의 죽음은 사고가 아니라고.
하늘은 그제야 깨달았다.
자신은 도재욱이라는 남자와 네 해를 살았다.
하지만 어쩌면,
그 남자에 대해 아무것도 몰랐는지도 모른다.
목요일 오전 11시 25분. “사장님, 이거 환불하고 싶은데요.” 은빛새는 계산대 앞에 놓인 쇼핑백을 바라봤다. 어제 판매한 벽돌색 겉옷이었다. 손님은 3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 “혹시 어떤 점이 불편하셨어요?” “집에서 다시 입어보니까 생각보다 색이 진하더라고요.” 빛새는 옷을 꺼내 상태를 확인했다. 택은 그대로 붙어 있었고, 착용 흔적도 없었다. “구매하신 지 2일 되셨네요. 환불 도와드릴게요.” 손님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냥 해주시는 거예요?” “네. 상품 상태도 괜찮고 환불 가능 기간 안이니까요.” 손님은 안도했다. “다른 가게에서는 환불할 때 이것저것 물어보던데요.” 빛새는 웃었다. “색이 마음에 안 드실 수도 있죠.” 정다은이 환불 처리를 도왔다. 손님이 돌아간 뒤, 다은이 물었다. “사장님, 저분은 교환 권유 안 하셨어요?” “응.” “왜요?” 빛새는 겉옷을 옷걸이에 걸며 대답했다. “마음에 안 든다고 분명히 말씀하셨잖아. 억지로 다른 옷을 권할 필요는 없지.” 다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네요.” 오후 1시 40분. 윤하늘은 완성한 상품 사진을 전달하기 위해 가게에 들렀다. “언니!” 빛새가 고개를 들었다. “왔어?” “응. 사진 가져왔어.” 하늘은 노트북을 열어 보정한 사진을 보여줬다. 베이지색 재킷. 올리브색 니트. 짙은 갈색 카디건. 빛새는 화면을 넘기며 감탄했다. “색감 좋다.” “실제 상품 색이랑 최대한 맞췄어.” 다은도 옆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니트는 사진이 더 예뻐 보여요.” 하늘이 웃었다. “그럼 안 되는데?” “왜요?” “실물이랑 너무 다르면 손님이 실망할 수 있잖아.” 빛새가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예쁘게 찍는 것도 중요하지만 정확해야지.” 그때 가게 문이 열렸다. “어서 오세요!” 다은이 인사했다. 들어온 사람은 오전에 환불했던 여성이었다. 빛새가 반갑게 맞았다. “다시 오셨네요.” 여성은 조금 멋쩍게
화요일 오후 1시 20분.“하늘아, 이 재킷은 여기 걸면 어떨까?”은빛새가 베이지색 재킷을 들어 보였다.윤하늘은 카메라를 내려놓고 고개를 저었다.“언니, 거기 걸면 뒤에 있는 니트랑 색이 겹쳐.”“그럼 어디?”“창가 쪽. 자연광 들어오는 자리.”빛새는 재킷을 옮겼다.“이렇게?”“응. 좋아.”하늘은 카메라를 들었다.찰칵.이번 촬영은 빛새의 가을 신상품 8벌을 위한 작업이었다. 두 사람은 미리 촬영 범위와 비용을 정했고, 정다은은 상품 번호와 색상을 확인하며 옷을 준비하고 있었다.“다음은 올리브색 니트예요.”다은이 옷걸이를 건넸다.하늘은 화면을 확인했다.“이건 단추를 하나만 풀어볼까요?”“네!”다은이 단추를 풀자 목선이 자연스럽게 정리됐다.빛새는 옆에서 감탄했다.“역시 사진은 다르네. 그냥 걸어놓을 때랑 느낌이 달라.”하늘이 웃었다.“옷이 예뻐야 사진도 잘 나오지.”“그 말 마음에 든다.”오후 2시 45분.마지막 상품을 촬영하던 중 가게 문이 열렸다.“어서 오세요!”다은이 인사했다.들어온 사람은 5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성이었다.여성은 매장을 천천히 둘러보다 벽에 붙은 공연 포스터 앞에서 멈췄다.“어머, 이 연극.”빛새가 다가갔다.“혹시 보셨어요?”“네. 지난 토요일에요.”하늘은 카메라를 정리하다 고개를 들었다.여성은 포스터를 바라보며 말했다.“여기 배우들이 입었던 옷을 파는 곳인가요?”“맞아요. 저희 가게에서 의상을 협조했어요.”여성은 반가운 듯 웃었다.“그렇군요. 공연 보고 옷이 참 예쁘다고 생각했거든요.”빛새는 진열대로 안내했다.“어떤 옷이 마음에 드셨어요?”“중년 여성 배우가 입었던 벽돌색 겉옷이요.”“아, 그 제품은 이쪽에 있어요.”빛새가 옷을 꺼내자 여성은 손끝으로 원단을 만져봤다.“생각보다 부드럽네요.”“입어보셔도 됩니다.”여성은 고개를 끄덕였다.오후 3시 10분.여성이 피팅룸에서 나왔다.벽돌색 겉옷은 그녀에게 잘 어울렸다.다은이 거울을 가리켰다.“소매를 살
일요일 오전 10시 15분.윤하늘은 식탁에서 아침을 먹다가 휴대전화 알림을 확인했다.김소연에게서 사진 3장이 도착해 있었다.첫 번째는 전날 공연을 마친 배우들의 단체 사진이었다.두 번째는 관객들이 작성한 카드로 가득 찬 상자였다.그리고 세 번째 사진에는 작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김소연: 윤 작가님, 어제 관객 한 분이 사진 촬영하신 분께 전해달라며 편지를 맡기셨어요.하늘은 숟가락을 내려놓았다.“편지?”맞은편에 앉은 강단태가 고개를 들었다.“누가 보냈습니까?”“모르겠어요. 공연 관객이라는데요.”하늘은 메시지를 이어 읽었다.김소연: 봉투는 뜯지 않았어요. 다음에 오실 때 전달해드릴까요?하늘은 잠시 생각하다 답장을 보냈다.윤하늘: 네, 연출님. 감사합니다. 다음에 방문할 때 받을게요.단태가 물었다.“무슨 내용일 것 같습니까?”“글쎄요. 사진이 마음에 드셨다는 이야기일까요?”“그럴 수도 있겠네요.”하늘은 웃으며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조금 궁금하긴 하네요.”월요일 오후 2시.하늘은 촬영 장비를 점검하던 중 은빛새에게 전화를 받았다.“하늘아, 너 오늘 시간 있어?”“오후에는 괜찮아. 왜?”“가게 진열 좀 바꾸려고 하는데 사진 몇 장 찍어줄 수 있어?”하늘은 일정표를 확인했다.“상품 촬영?”“응. 이번에 들어온 가을 재킷이랑 니트.”“그럼 몇 벌인데?”“8벌.”하늘은 웃었다.“언니, 8벌이면 몇 장이 아니잖아.”빛새도 웃음을 터뜨렸다.“들켰네.”“촬영 범위 정해서 보내줘. 일정이랑 비용 확인하고 갈게.”“알았어. 이제 너한테 함부로 부탁도 못 하겠다.”“원래 함부로 부탁하면 안 되거든?”두 사람은 웃으며 통화를 마쳤다.오후 4시 30분.하늘은 소극장 마루에 들렀다.소연은 매표대에서 공연 자료를 정리하고 있었다.“윤 작가님, 오셨어요?”“네. 근처에 볼일이 있어서요.”소연은 서랍에서 흰색 봉투를 꺼냈다.“이거예요.”봉투 앞면에는 단정한 글씨로 적혀 있었다.사진을 찍으신 윤하늘 님께
토요일 오후 5시 40분.소극장 마루 앞에는 공연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하나둘 모여들고 있었다.윤하늘은 강단태와 함께 계단을 내려갔다.“생각보다 사람이 많네요.”“첫 공연이라 그런가 봅니다.”하늘은 입구에 붙은 포스터를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우리 동네 마지막 버스》포스터 아래에는 작은 글씨로 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사진 촬영 | 윤하늘하늘은 그 앞에서 잠시 웃었다.“단태, 이거 봐요.”“하늘 씨 이름이네요.”“실제로 붙어 있는 걸 보니까 기분이 이상해요.”단태가 휴대전화를 꺼냈다.“여기 서보시겠습니까?”“사진 찍어주려고요?”“네.”하늘은 포스터 옆에 섰다.찰칵.단태는 사진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잘 나왔습니다.”하늘이 화면을 보더니 웃었다.“포스터보다 제가 더 크게 나왔는데요?”“오늘의 주인공이니까요.”“오늘 주인공은 배우들이거든요.”오후 6시.로비에 들어선 하늘은 자신이 구성한 사진 전시를 발견했다.단체 사진과 배우 6명의 개인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그 아래에는 하늘이 작성한 소개문이 붙어 있었다.그런데 사진 앞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이 배우가 여행 가방 들고 나오는 사람이래.”“사진 표정 좋다.”“실제로도 이렇게 연기할까?”하늘은 조금 떨어진 곳에서 그들의 대화를 들었다.단태가 작게 물었다.“기분이 어떠십니까?”“좋아요.”하늘은 미소 지었다.“제가 찍은 사진을 사람들이 보고 있잖아요.”그때 김소연이 다가왔다.“윤 작가님!”“연출님, 안녕하세요.”“오셨네요. 전시도 확인하셨어요?”“네. 정말 잘 설치됐어요.”소연은 웃었다.“배우들도 엄청 좋아했어요. 자기 사진 앞에서 서로 놀리느라 정신이 없었거든요.”하늘이 웃음을 터뜨렸다.오후 6시 30분.공연이 시작됐다.무대에는 익숙한 버스정류장이 놓여 있었다.하지만 리허설 때와는 분위기가 달랐다.객석이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이다.대학생 역할의 배우가 무대에 등장했다.“저기요! 막차 아직 안 왔죠?”중년 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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