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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화: 은빛새가 장례식에 온 이유>

Author: 에이르
last update publish date: 2026-09-04 13:50:26

“강단태는 두고.”

은빛새가 마지막 문장을 읽은 채 굳어 있었다.

윤하늘은 곧바로 고개를 들었다.

천장 구석의 작은 카메라.

붉은 불빛은 여전히 깜빡이고 있었다.

누군가 보고 있었다.

그리고 자신들이 누구와 함께 있는지도 알고 있었다.

강단태가 휴대전화를 내밀었다.

“답장하지 마세요.”

빛새가 물었다.

“왜요?”

“반응을 기다리는 겁니다.”

하늘은 카메라를 바라봤다.

“그럼 기다리게 두죠.”

단태가 그녀를 봤다.

“하늘 씨.”

“이번에도 시키는 대로 움직이면 계속 끌려다녀요.”

빛새도 휴대전화를 내려놓았다.

그 순간.

또 문자가 왔다.

**[시간 없어.]**

이어진 두 번째 문자.

**[은빛새.]**

빛새의 표정이 굳었다.

**[네가 왜 장례식에 갔는지 윤하늘한테 말해.]**

이번에는 하늘이 빛새를 바라봤다.

“무슨 뜻이에요?”

빛새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빛새 씨.”

“…….”

“나한테 아직 말 안 한 거 있어요?”

단태가 천장을 한번 보고 말했다.

“여기서 이야기하지 않는 게 좋겠습니다.”

하늘은 동의했다.

“나가요.”

세 사람은 지하실을 빠져나왔다.

가게 밖으로 나온 뒤에도 하늘은 곧장 차에 타지 않았다.

“여기서 말해요.”

빛새가 주변을 둘러봤다.

“밖에서요?”

“적어도 카메라 앞은 아니잖아요.”

단태가 근처에 세워진 차량들을 확인했다.

“짧게 하죠.”

하늘은 빛새에게 다시 물었다.

“왜 장례식에 왔어요?”

빛새의 손이 천천히 가방 안으로 들어갔다.

“재욱 씨가 오라고 했어요.”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뭐라고요?”

“정확히는.”

빛새가 휴대전화 하나를 꺼냈다.

“하늘 씨를 찾아가라고 했어요.”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언제.”

“사고 일주일 전.”

빛새가 녹음 파일 하나를 열었다.

재생.

잠시 잡음이 흐른 뒤.

도재욱의 목소리가 들렸다.

“빛새야.”

하늘의 손끝이 굳었다.

분명 재욱이었다.

“내가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될 수도 있어.”

빛새는 입술을 깨물었다.

녹음은 계속됐다.

“만약 일주일이 지나도 내가 먼저 연락하지 않으면.”

짧은 침묵.

“윤하늘이라는 사람을 찾아가.”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그 사람이 나를 모른다고 하면 그냥 돌아가.”

빛새가 눈을 감았다.

“그런데 그 사람이 나를 안다고 하면.”

재욱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내 아내라고 하면.”

하늘의 숨이 멎는 듯했다.

“절대 혼자 두지 마.”

녹음이 끝났다.

한동안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하늘이 먼저 입을 열었다.

“장례식에서 왜 바로 말 안 했어요?”

빛새는 한참 뒤에야 대답했다.

“못 믿었으니까요.”

“누굴.”

“하늘 씨를.”

하늘의 눈빛이 차가워졌다.

빛새가 바로 말을 이었다.

“나도 미쳤었어요.”

“…….”

“내가 2년 동안 남편이라고 믿었던 사람이 죽었는데.”

목소리가 떨렸다.

“장례식장에 갔더니 다른 여자가 자기 남편이라고 하고.”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재욱 씨가 죽기 전에 그 여자를 찾아가라고 했어요.”

빛새가 하늘을 바라봤다.

“내가 뭘 믿어야 했겠어요.”

“그래서 떠본 거예요?”

“네.”

“내가 진짜 아내인지.”

“네.”

하늘은 씁쓸하게 웃었다.

“그래서 결혼사진 보여주고.”

“……네.”

“내가 불륜 상대일 수도 있다고 한 거고.”

빛새는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요.”

하늘은 바로 용서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화를 내지도 않았다.

조금은 이해됐다.

둘 다 같은 방식으로 속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한 사람은 법적으로 아내였고.

한 사람은 아니었다.

단태가 물었다.

“재욱 씨가 그 녹음만 남겼습니까?”

빛새의 표정이 달라졌다.

“아니요.”

그녀가 가방 안에서 작은 흰 봉투 하나를 꺼냈다.

하늘이 바라봤다.

“그건 뭐예요?”

“재욱 씨가 녹음 보내기 이틀 전에 줬어요.”

“왜 지금까지 안 열었어요?”

“열지 말라고 했으니까.”

“언제까지?”

빛새가 봉투 앞면을 보여줬다.

재욱의 글씨.

**윤하늘을 직접 만난 뒤에 열 것.**

하늘의 눈빛이 굳었다.

“그럼 장례식에서 이미 만났잖아요.”

“맞아요.”

“근데 왜 안 열었어요?”

빛새는 잠시 망설였다.

“무서웠어요.”

“뭐가.”

“열면 진짜 다 끝날 것 같아서.”

그 말은 하늘도 이해했다.

모를 때는 가능성이 남아 있었다.

열어버리면.

진실이 된다.

하늘이 말했다.

“지금 열어요.”

빛새가 봉투를 뜯었다.

안에는 작은 메모지 한 장뿐이었다.

하늘과 단태가 동시에 가까이 다가갔다.

첫 줄.

**윤하늘과 은빛새.**

두 번째.

**둘이 같이 있어야 다음 걸 찾을 수 있다.**

그 아래에는 숫자 두 개가 적혀 있었다.

**0721**

**1119**

빛새가 말했다.

“0721.”

하늘이 바로 알아봤다.

“결혼기념일.”

단태가 하늘을 바라봤다.

“하늘 씨랑 재욱 씨?”

“네.”

빛새는 두 번째 숫자를 바라봤다.

“1119는.”

잠시 멈췄다.

“저랑 재욱 씨가 처음 같이 살기 시작한 날이에요.”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둘의 날짜.

한쪽은 자신.

한쪽은 빛새.

메모 맨 아래.

**한쪽만 알고 있으면 열 수 없다.**

단태가 물었다.

“뭘 연다는 거죠?”

빛새가 갑자기 말했다.

“지하실.”

하늘이 그녀를 봤다.

“뭐가요?”

“아까 전자금고 있었어요.”

“어디.”

“책상 뒤쪽.”

단태의 표정이 바뀌었다.

“왜 아까 말 안 했습니까?”

“잠겨 있었고.”

빛새가 빠르게 말했다.

“숫자키가 이상했어요.”

“어떻게.”

“열두 자리 입력 방식.”

하늘과 단태가 동시에 멈췄다.

721.

722.

여덟 자리.

네 자리가 부족했다.

하늘이 중얼거렸다.

“둘만 가지고는 안 되네.”

단태가 메모를 다시 봤다.

“한쪽만 알고 있으면 열 수 없다.”

하늘이 말했다.

“둘을 합치라는 뜻인 건 맞는 것 같은데.”

빛새가 물었다.

“07211119?”

단태가 고개를 저었다.

“열두 자리라면 네 자리가 더 필요합니다.”

하늘은 잠시 생각했다.

결혼기념일.

동거 시작일.

그렇다면.

둘 사이에 공통으로 연결되는 날짜가 하나 더 있었다.

하늘의 표정이 굳었다.

“사고 날.”

빛새가 하늘을 바라봤다.

“네?”

“재욱 씨가 죽은 날.”

9월 1일.

**0901.**

단태가 말했다.

“0721, 1119, 0901.”

빛새가 숨을 삼켰다.

“열두 자리.”

세 사람은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이번에는 지하실 카메라를 먼저 떼어냈다.

단태가 전송선을 뽑았다.

붉은 불빛이 꺼졌다.

“이제 적어도 실시간으로 보진 못합니다.”

빛새가 책상 뒤 벽을 밀었다.

작은 전자금고가 나타났다.

숫자 열두 자리.

하늘이 먼저 입력했다.

**072111190901**

삑.

빨간 불.

실패.

빛새가 말했다.

“순서가 다른가?”

이번에는.

**111907210901**

삑.

또 실패.

하늘은 화면을 바라봤다.

왜 안 되지.

그 순간.

아까 메모의 첫 줄이 떠올랐다.

윤하늘과 은빛새.

순서.

하늘이 먼저.

빛새가 뒤.

그런데 마지막 날짜.

사고일.

재욱의 죽음.

단태가 조용히 말했다.

“날짜 형식이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형식?”

“월일이 아니라.”

하늘이 바로 이해했다.

사고는 2026년.

하지만 앞 두 날짜는 년도가 없었다.

그런데 금고는 열두 자리.

하늘이 다시 생각했다.

721.

722.

723.

분명 열두 자리.

“아니.”

하늘이 말했다.

“이게 맞아요.”

“그럼 왜.”

하늘의 시선이 금고 아래로 향했다.

숫자키 밑.

작은 홈이 하나 있었다.

카드 인식부.

“숫자만 넣는 게 아니에요.”

빛새가 가방을 뒤졌다.

“카드?”

그러다 멈췄다.

아까 봉투 안쪽에 붙어 있던 얇은 카드 한 장.

빛새가 꺼냈다.

하늘이 바라봤다.

앞면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빛새가 카드를 인식부에 댔다.

삑.

초록불.

하늘이 다시 입력했다.

**072111190901**

철컥.

금고가 열렸다.

빛새가 숨을 삼켰다.

안에는 현금도.

USB도 없었다.

카드 두 장.

한 장에는.

**윤하늘.**

다른 한 장에는.

**은빛새.**

하늘이 자신의 카드를 집었다.

빛새도 자신의 것을 들었다.

뒤집었다.

둘 다 같은 주소.

서울 성동구.

그리고 한 줄.

**개인 보관실 B-17**

단태가 두 카드를 바라봤다.

“재욱 씨가 처음부터 두 분이 같이 움직이도록 만들어놨습니다.”

하늘이 차갑게 말했다.

“왜.”

단태가 대답했다.

“한 사람에게 전부 주면.”

잠시 멈췄다.

“그 사람이 잡히는 순간 끝나니까.”

빛새가 카드 가장자리를 쥐었다.

“그래서 반씩.”

“네.”

단태가 말했다.

“한 사람은 절반.”

하늘의 카드.

“다른 한 사람도 절반.”

빛새의 카드.

“두 사람이 만나야만 완성되도록.”

하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재욱은 자신과 빛새가 만나게 될 것을 예상한 게 아니었다.

만나게 만들었다.

그 사실이 이상하게 더 화가 났다.

죽어서까지.

자신의 삶을 설계한 것 같아서.

빛새가 조용히 말했다.

“하늘 씨.”

“왜요.”

“나 이제 알 것 같아요.”

“뭘.”

빛새의 눈빛이 흔들렸다.

“재욱 씨가 나한테 하늘 씨를 찾아가라고 한 이유.”

잠시 침묵.

“내가 아내라서가 아니었던 것 같아요.”

하늘은 그녀를 바라봤다.

“그럼.”

빛새가 자신의 카드를 내려다봤다.

“하늘 씨한테 내가 필요해서.”

하늘은 순간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빛새도.

자신도.

처음부터 누군가에게 필요해서 선택된 사람들.

그 생각이 스쳤다.

하늘은 자신의 카드 뒷면을 다시 바라봤다.

B-17.

그리고 처음으로 이런 의문이 들었다.

도재욱은 자신을 사랑한 걸까.

아니면.

처음부터 자신이 필요했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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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요일 오후 6시 15분.“하늘 씨, 이 표정은 어떻습니까?”윤하늘은 노트북에서 시선을 떼었다.강단태가 거실 한가운데 서 있었다. 흰색 셔츠에 짙은 회색 바지. 평소와 다르지 않은 복장이었다.문제는 표정이었다.그는 어딘가 부자연스러울 정도로 환하게 웃고 있었다.하늘은 잠시 그를 바라봤다.“……단태.”“네.”“지금 화났어요?”단태의 미소가 사라졌다.“아닙니다.”“그런데 왜 그렇게 웃어요?”“촬영할 때 자연스럽게 웃는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하늘은 의자에서 일어났다.“누가 웃으래요?”“촬영 안내서에 친근한 분위기라고 적혀 있었습니다.”“친근한 분위기랑 계속 웃는 건 다른데요.”단태는 안내서를 다시 확인했다.지역 생활문화센터의 사진 전시 프로젝트.그가 맡은 역할은 혼자 사는 어르신과 같은 건물에 거주하는 이웃이었다.촬영은 다음 달 중순으로 예정되어 있었지만, 오늘 담당자로부터 구체적인 장면 구성이 도착했다.하늘은 안내서를 훑어봤다.“무거운 상자 옮기기, 복도에서 인사하기, 장바구니 들어주기…….”그녀는 마지막 항목에서 멈췄다.이웃 간 따뜻한 교류를 자연스러운 미소로 표현.“아, 이 문장 때문에 그랬구나.”단태가 고개를 끄덕였다.“네.”하늘은 그에게 다가갔다.“단태, 저 좀 봐요.”“네.”“제가 무거운 상자 들고 있는데 단태가 도와주러 왔다고 생각해봐요.”“알겠습니다.”하늘은 빈 상자를 들어 올렸다.“아이고, 이거 무겁네.”단태가 곧바로 다가왔다.“제가 들겠습니다.”그는 상자를 받아 들었다.표정은 평소와 같았다.하늘이 웃었다.“바로 그거예요.”단태는 의아한 얼굴이었다.“무엇이요?”“지금 표정.”“저는 웃지 않았는데요.”“그러니까요. 억지로 웃지 않아도 친절한 사람처럼 보이잖아요.”단태는 잠시 생각했다.“그렇군요.”하늘은 상자를 다시 받아 들었다.“그리고 실제 촬영에서는 상대 배우분이 어떤 방식으로 도움받고 싶은지도 먼저 확인하세요.”“네. 그 부분은 담당자에게 물어보겠습니다

  • 남편의 장례식에 다른 아내가 나타났다   <200화: 윤하늘은 오늘 강단태를 빌려주지 않습니다>

    토요일 오전 10시 23분.윤하늘은 거실에서 이상한 소리를 들었다.드르륵.탁.드르륵.탁.강단태의 작업실 쪽이었다.하늘은 문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단태, 뭐 해요?”“잠깐만요. 거의 끝났습니다.”“뭘 끝내는데요?”“하늘 씨가 보시면 압니다.”잠시 후 문이 열렸다.단태의 손에는 손바닥만 한 나무판이 들려 있었다.판에는 작은 금속 고리가 세 개 달려 있었다.“이게 뭐예요?”“현관 열쇠걸이입니다.”하늘은 판을 받아 들었다.매끈하게 다듬은 나무 표면에 세 개의 고리가 일정한 간격으로 박혀 있었다.그런데 고리 위에 붙은 글씨가 이상했다.윤하늘 / 강단태 / 아무도 없음하늘이 마지막 글씨를 가리켰다.“아무도 없음은 누구예요?”“빈 고리입니다.”“빈 고리에 왜 이름을 붙여요?”“세 번째 고리까지 채워야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도록요.”하늘은 잠시 나무판을 내려다봤다.“……단태.”“네?”“우리 집에 빈자리 좋아하는 사람이 두 명이나 있었네요.”단태는 웃으며 판을 받아 들었다.“현관에 설치해도 되겠습니까?”“좋아요. 벽에 구멍은 내지 말고요.”“탈부착 가능한 방식으로 준비했습니다.”“역시.”하늘은 엄지를 들어 보였다.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은빛새였다.“하늘아, 너 오늘 시간 있어?”“왜?”“우리 가게에 아주 이상한 손님이 왔어.”하늘은 소파에 앉았다.“또 무슨 일이야?”“옷을 사러 온 게 아니라 사람을 빌리러 왔대.”“……사람?”“응. 정확히는 남자친구 역할을 해줄 사람.”하늘은 눈을 깜빡였다.“언니 가게에서 왜 남자친구를 빌려?”“그러니까 나도 모르겠다니까.”빛새는 한숨을 쉬었다.“다은이가 지금 손님이랑 이야기하고 있는데, 설명이 좀 복잡해.”하늘은 웃음을 참았다.“언니, 설마 나한테 단태 빌려달라는 거 아니지?”“아니야! 일단 와서 들어봐.”통화가 끝났다.하늘은 작업실에서 나온 단태를 바라봤다.“단태.”“네?”“오늘 누가 단태를 빌려달래요.”단태의 손이 멈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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