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g-log in죽은 이의 유품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이 겪었던 한순간이 보인다. 타인의 후회를 들여다보는 남자, 도찬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발견된 수상한 거래 기록. 믿었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진실을 파헤칠수록 곁에 있던 사람마저 멀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은 정말 사고였을까? 그리고 그날,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view more“엄마한테 돈 받은 사람부터 찾고 싶어요.”
남자는 검은 넥타이를 풀지도 않은 채 통장을 내밀었다. 현관에는 조문객에게 나눠주고 남은 수건 상자가 있었다. 나는 문턱에서 작업화를 벗었다.
“물건 정리 의뢰로 받았는데요.”
“그 사람이 뭘 팔았는지만 찾아주세요. 영수증이든, 명함이든.”
같은 이름 앞으로 5만 원, 10만 원씩 빠져나간 돈. 마지막 30만 원에는 볼펜 자국이 종이를 뚫을 듯 겹쳐 있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보냈어요.”
설나리가 의뢰서를 펼쳤다. 의뢰인 탁재민. 보관할 물품을 적는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류는 따로 모으겠습니다. 버릴 물건도 나중에 다시 확인해주시고요.”
“다 버려도 돼요.”
나리는 그 말을 적지 않고 펜 뚜껑을 닫았다.
“오늘 다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찬오입니다. 물건 확인은 제가 맡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발밑에 놓고 장갑을 꼈다. 재민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화면이 꺼지기 전, 엄마라고 저장된 이름이 보였다.
나리가 내게 빈 파일을 건넸다. 나는 습관대로 물품 가격표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재민은 그새 부엌 찬장을 열어보고 있었다.
“새로 산 건 하나도 없어요. 옷도, 가전도.”
그가 찬장 문을 세게 닫았다. 안에서 그릇끼리 부딪쳤다. 재민은 곧 문을 다시 열어 금 간 것이 없는지 살폈다. 나리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상자의 바닥부터 접었다.
반미선이라는 이름이 적힌 우편물부터 모았다. 고지서, 시장 쿠폰, 이비인후과 봉투. 봉투는 열지 않고 재민 앞으로 밀었다.
“어머님 병원 서류 같습니다.”
“병원은 다니셨어요.”
그가 봉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돈 보내드렸으니까.”
통장의 동그라미를 짚는 손톱이 짧았다.
“생활비는 제가 드리고, 이건 엄마가 일해서 버신 돈이라는데. 그러면 제가 무슨 말을 해요. 엄마 돈인데.”
“무슨 돈인지 물어보셨습니까?”
“전화하면 자꾸 딴소리해요. 병원 갔냐고 물으면 밥 먹었냐고 하고. 돈 얘기하면 또 물어요. 뭐라고 했느냐고.”
재민은 나를 보지 않았다.
“제가 소리 질렀어요. 못 들은 척하지 말라고.”
현관에서 테이프를 떼던 소리가 멎었다. 나리는 벌려놓은 상자를 접어 벽에 세웠다.
“그다음엔요?”
“문자 보냈죠. 돈 어디 썼는지 적어서 보내달라고.”
재민은 잠금 화면을 두 번 잘못 누르고 나서야 메시지 창을 열었다.
엄마가 만나서 얘기할게.
이번 일요일에 오니.
그 아래에는 짧은 답장이 있었다.
몰라. 회사 봐서.
“일요일에 왔어요. 장례식장으로.”
그는 화면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 여닫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장식장 앞에 앉았다. 유리문 안에 손잡이가 금 간 컵과 사진틀이 있었다.
사진 속 남자가 기타를 들고 있었다. 무릎 옆에 붙어 앉은 아이는 악기 줄보다 남자의 손을 보고 있었다.
“아버님이세요?”
“네.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사진은 따로 담겠습니다.”
“뒤에 종이 있으면 봐주세요. 엄마가 거기다 끼워놔요.”
액자를 당기자 접힌 종이가 떨어졌다. 나는 방문 쪽을 보았다. 재민이 반쯤 접힌 손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영수증 같은 게 있는데요.”
“그 사람 이름 있어요?”
장갑 끝이 액자 뒷고리에 걸렸다. 얇은 면이 찢어지고 검지가 드러났다. 나는 맨손으로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거실이 사라졌다.
넘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릎에는 바닥이 닿지 않았다. 좁은 탁자와 갈색 서류 봉투가 눈앞에 있었다.
건너편 남자가 입을 움직였다. 소리는 젖은 솜을 사이에 둔 것처럼 뭉개졌다.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다 메모지를 끌어왔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시선이 내려갔다.
잔금 30만 원 입금 확인. 수령일 확인.
잔주름이 많은 손이 봉투에서 예약서를 꺼냈다. 엄지 옆의 반창고가 들떠 있었다. 나는 입을 열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났다.
“이제 다 낸 거죠?”
남자가 끄덕였다. 뒤로 돌아 길쭉한 상자를 들어 올렸다. 끝에 파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주름진 손이 그 위에 놓였다.
그 손을 빼고 싶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이 찾으러 올 거예요.”
남자가 메모지에 이름을 적었다.
탁재민.
“찬오 씨!”
상자가 꺼졌다. 나는 장식장 아래를 붙잡고 있었다. 유리문이 팔꿈치에 부딪쳤다. 나리가 내 손목을 잡았다.
“손 펴요. 내가 잡고 있어요.”
그 목소리에 손가락이 풀렸다. 사진틀이 미끄러졌고 재민이 몸을 숙여 받아냈다. 나는 바닥에 앉을 때까지 나리의 손목을 놓지 못했다.
“어머님 손에 상처가 있었습니까?”
내가 묻자 재민의 눈이 좁아졌다.
“반찬 만들다 베셨대요. 왜요?”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봤다. 작은 가게 이름 아래 완납이라고 적혀 있었다. 뒷면을 뒤집자 방금 보았던 이름이 나왔다.
탁재민 님께 인도. 연락 전 보관.
재민이 종이를 받아 금액부터 확인했다. 휴대전화에 영수증의 번호를 눌렀다. 나리가 내 찢어진 장갑을 벗겼다. 손끝은 멀쩡한데 내가 자꾸 내려다보자,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차에서는 내가 운전할게요.”
신호가 끝났다. 재민이 스피커를 켰다.
“반미선 씨한테 돈 받으셨죠.”
“아드님이세요?”
“네. 대체 무슨 돈입니까.”
“어머니랑 같이 오시기로 했는데, 날짜가 바뀌었나요?”
재민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영수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돌아가셨어요.”
전화 너머에서 무언가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언제요?”
“지난주 금요일에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뭘요?”
“어머님이 마지막에 부탁을 바꾸셨어요.”
재민이 휴대전화를 가까이 들었다.
“아드님한테 그냥 주지 말고, 꼭 여기서 한번 쳐보게 해달라고요.”
딸은 약속한 시간보다 먼저 왔다.우리가 서류를 챙겨 나가려던 때 현관 비밀번호 누르는 소리가 들렸다. 여자는 벌써 왔느냐며 일어났다. 딸은 양손에 종이 가방을 들고 서 있었다.“캐리어 없다고 했잖아. 빌려왔어.”여자는 침실 쪽을 가리켰다. 딸은 바닥의 작은 가방을 보고 웃었다.“이걸로 가려고?”“왜. 다 들어가는데.”지퍼는 끝까지 잠기지 않았다. 딸이 옷을 한 장 꺼냈다.“이거 안 입잖아. 두고 가.”“거기 가서 추우면 입을 거야.”“바닷가라고 다 추운 건 아니잖아.”“바람 불면 추울 수 있지.”딸이 한숨을 쉬자 여자가 웃었다.“네가 어릴 때도 내가 그렇게 싸줬지.”“그때는 엄마가 알아서 해주니까 편했는데.”“이제는 내가 나갈 건데 왜 네가 내 옷을 골라.”딸은 꺼낸 옷을 접어 가방 위에 올려놨다.“엄마가 아빠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할까 봐 그랬어.”“엄마도 그렇게 생각한 날이 있었어.”“지금은?&
여자의 집에는 작은 여행 가방이 열려 있었다.현관에서 발을 멈추자 그녀가 들어오라며 웃었다. 꽃다발은 이미 포장이 벗겨져 있었다. 길이가 다른 병 세 개에 꽃이 나뉘어 꽂혀 있었다.“꽃병이 하나뿐이라서요.”그녀는 남편이 늘 마시던 음료수병도 쓸모가 있다고 했다. 병에 붙은 종이를 불려 떼다가 덜 떨어진 부분을 손톱으로 긁었다.나리는 식탁 위에 서류를 펼쳤다. 모임에 돌려줄 자료와 가족이 보관할 자료가 섞여 있는지만 확인하는 방문이었다. 여자는 남편이 쓰던 서랍을 열어 파일 두 개를 꺼냈다.“이름 적힌 건 제 것인지 모임 것인지 모르겠어요.”우리는 의뢰 목록과 파일 표지를 대조했다. 개인 편지처럼 보이는 봉투는 여자 앞으로 밀었다. 그녀는 안을 확인하고 여행 가방 옆으로 옮겼다.“옷이 다 안 들어가네요.”나리가 여행 날짜를 묻자 여자는 주말에 딸하고 하루 자고 올 거라고 했다. 딸이 숙소를 알아보는 중이었다.“아까 전화해서 그러더라고요. 나가고 싶으면 그때 얘기하지 그랬느냐고.”그녀는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자기도 말을 안 해놓고.”휴대전화가 울렸다. 딸이 보내온 숙소 사진이었다. 여자는 안경을 쓰고 사진을 확대했다. 침대가 두 개 있는 방과 하나 있는 방을 번갈아 보다가 답장을 썼다.각자 자는 방. 너 자면서 발로 차.
“그 말씀도 적혀 있습니까?”내가 묻자 주인은 서류를 다시 꺼냈다. 마지막 수정 날짜 옆에 수령인 의사 확인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아래 서명은 앞장의 서명보다 작았다.“제가 적고 확인받은 겁니다. 아까는 꽃 종류 바꾸는 얘기인 줄 알고 그쪽만 설명했네요.”나는 의뢰인에게 전화했다.“남편분이 꽃을 받지 않겠다고 하시면 그 뜻을 따라달라고 요청하셨어요.”수화기 너머가 조용해졌다.“그 말이 서류에 있나요?”“네. 수정한 날짜와 확인 서명이 있습니다.”“그것 좀 사진으로 보내줄래요?”“따님께 보여드리려고요?”입 밖에 내고 나서 질문을 후회했다.“아니요. 제가 보고 싶어서요.”“죄송합니다. 괜한 걸 여쭸어요.”“딸한테 보여줄지는 제가 정할 거예요. 남편이 마지막에 쓴 글씨를 다시 보고 싶어요.”“원본은 가게에 있고, 허락받은 부분만 촬영해 보내드리겠습니다.”“고마워요. 꽃은 안 받고 싶지만 그 사람이 한 말을 버리고 싶은 건 아니거든요.”나는 전화를 끊고 주인에게 사진 촬영 범위를 다시 확인
“받지 않겠다는 건가요, 읽지 않겠다는 건가요?”내가 묻자 나리는 메모를 다시 읽었다.“아직 구분이 안 돼요. 소개한 분한테 확인해야겠어요.”그녀는 봉투를 열지 않고 빈 파일에 넣었다. 어제까지 꽃이 있던 자리에 서류가 쌓여 있었다. 나는 병을 책상 안쪽으로 옮겼다. 나리가 꽃잎을 손으로 받쳐 파일에 눌리지 않게 했다.모임 담당자가 도착한 것은 오후였다. 그는 우리가 분류해놓은 자료를 한 장씩 확인했다. 목록의 수량이 맞자 서명을 하고 자기 가방에 넣었다.“꽃 일은 잘 끝났습니까?”나는 앞으로의 배송은 받지 않기로 했고, 이미 받은 꽃은 의뢰인이 보관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안심한 얼굴로 창가의 꽃을 봤다.“형수님이 주셨나 보네요.”“네.”그는 모임에서 단체 사진을 찍을 때도 그 남편이 늘 농담을 했다고 말했다. 나는 어떤 농담이었는지 물었다.“아내 앞에서는 배에 힘주지 말라고요. 혼자만 멀쩡하게 나오면 나중에 혼난다고.”남자는 자기 배를 두드렸다. 나리가 웃었다. 그는 사진이 창고 어딘가에 있을 거라고 덧붙였다.나는 그 말도 인계 목록 옆에 적었다. 당장 필요한 물건은 아니었다. 남자는 메모를 보고 사진은 가족에게도 나눠줘야겠다고 했다. 우리는 사진을 찾으면 누구 것인지부터 확인하자고 이야기했다.담당자가 봉인된 편지를 가리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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