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당신이 모르는 마지막 거래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1-05
By:  운디네JIn-update ngayon lang
Language: Kore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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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Mga Kabanat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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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이의 유품에 손을 대면, 그 사람이 겪었던 한순간이 보인다. 타인의 후회를 들여다보는 남자, 도찬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아버지의 유품에서 발견된 수상한 거래 기록. 믿었던 사람들은 서로 다른 말을 하고, 진실을 파헤칠수록 곁에 있던 사람마저 멀어진다. 아버지의 죽음은 정말 사고였을까? 그리고 그날, 누가 거짓말을 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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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abanata 1

제001화 — 엄마한테 돈 받은 사람

“엄마한테 돈 받은 사람부터 찾고 싶어요.”

남자는 검은 넥타이를 풀지도 않은 채 통장을 내밀었다. 현관에는 조문객에게 나눠주고 남은 수건 상자가 있었다. 나는 문턱에서 작업화를 벗었다.

“물건 정리 의뢰로 받았는데요.”

“그 사람이 뭘 팔았는지만 찾아주세요. 영수증이든, 명함이든.”

같은 이름 앞으로 5만 원, 10만 원씩 빠져나간 돈. 마지막 30만 원에는 볼펜 자국이 종이를 뚫을 듯 겹쳐 있었다.

“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보냈어요.”

설나리가 의뢰서를 펼쳤다. 의뢰인 탁재민. 보관할 물품을 적는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서류는 따로 모으겠습니다. 버릴 물건도 나중에 다시 확인해주시고요.”

“다 버려도 돼요.”

나리는 그 말을 적지 않고 펜 뚜껑을 닫았다.

“오늘 다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도찬오입니다. 물건 확인은 제가 맡겠습니다.”

나는 가방을 발밑에 놓고 장갑을 꼈다. 재민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화면이 꺼지기 전, 엄마라고 저장된 이름이 보였다.

나리가 내게 빈 파일을 건넸다. 나는 습관대로 물품 가격표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재민은 그새 부엌 찬장을 열어보고 있었다.

“새로 산 건 하나도 없어요. 옷도, 가전도.”

그가 찬장 문을 세게 닫았다. 안에서 그릇끼리 부딪쳤다. 재민은 곧 문을 다시 열어 금 간 것이 없는지 살폈다. 나리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상자의 바닥부터 접었다.

반미선이라는 이름이 적힌 우편물부터 모았다. 고지서, 시장 쿠폰, 이비인후과 봉투. 봉투는 열지 않고 재민 앞으로 밀었다.

“어머님 병원 서류 같습니다.”

“병원은 다니셨어요.”

그가 봉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

“돈 보내드렸으니까.”

통장의 동그라미를 짚는 손톱이 짧았다.

“생활비는 제가 드리고, 이건 엄마가 일해서 버신 돈이라는데. 그러면 제가 무슨 말을 해요. 엄마 돈인데.”

“무슨 돈인지 물어보셨습니까?”

“전화하면 자꾸 딴소리해요. 병원 갔냐고 물으면 밥 먹었냐고 하고. 돈 얘기하면 또 물어요. 뭐라고 했느냐고.”

재민은 나를 보지 않았다.

“제가 소리 질렀어요. 못 들은 척하지 말라고.”

현관에서 테이프를 떼던 소리가 멎었다. 나리는 벌려놓은 상자를 접어 벽에 세웠다.

“그다음엔요?”

“문자 보냈죠. 돈 어디 썼는지 적어서 보내달라고.”

재민은 잠금 화면을 두 번 잘못 누르고 나서야 메시지 창을 열었다.

엄마가 만나서 얘기할게.

이번 일요일에 오니.

그 아래에는 짧은 답장이 있었다.

몰라. 회사 봐서.

“일요일에 왔어요. 장례식장으로.”

그는 화면을 끄고 방으로 들어갔다. 서랍 여닫는 소리가 연달아 났다. 나는 장식장 앞에 앉았다. 유리문 안에 손잡이가 금 간 컵과 사진틀이 있었다.

사진 속 남자가 기타를 들고 있었다. 무릎 옆에 붙어 앉은 아이는 악기 줄보다 남자의 손을 보고 있었다.

“아버님이세요?”

“네. 오래전에 돌아가셨어요.”

“사진은 따로 담겠습니다.”

“뒤에 종이 있으면 봐주세요. 엄마가 거기다 끼워놔요.”

액자를 당기자 접힌 종이가 떨어졌다. 나는 방문 쪽을 보았다. 재민이 반쯤 접힌 손수건을 들고 서 있었다.

“영수증 같은 게 있는데요.”

“그 사람 이름 있어요?”

장갑 끝이 액자 뒷고리에 걸렸다. 얇은 면이 찢어지고 검지가 드러났다. 나는 맨손으로 종이 모서리를 눌렀다.

거실이 사라졌다.

넘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무릎에는 바닥이 닿지 않았다. 좁은 탁자와 갈색 서류 봉투가 눈앞에 있었다.

건너편 남자가 입을 움직였다. 소리는 젖은 솜을 사이에 둔 것처럼 뭉개졌다. 그는 무언가를 기다리다 메모지를 끌어왔다.

내가 움직이지 않았는데 시선이 내려갔다.

잔금 30만 원 입금 확인. 수령일 확인.

잔주름이 많은 손이 봉투에서 예약서를 꺼냈다. 엄지 옆의 반창고가 들떠 있었다. 나는 입을 열지 않았는데 목소리가 났다.

“이제 다 낸 거죠?”

남자가 끄덕였다. 뒤로 돌아 길쭉한 상자를 들어 올렸다. 끝에 파란 테이프가 붙어 있었다. 주름진 손이 그 위에 놓였다.

그 손을 빼고 싶었다. 내 뜻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아들이 찾으러 올 거예요.”

남자가 메모지에 이름을 적었다.

탁재민.

“찬오 씨!”

상자가 꺼졌다. 나는 장식장 아래를 붙잡고 있었다. 유리문이 팔꿈치에 부딪쳤다. 나리가 내 손목을 잡았다.

“손 펴요. 내가 잡고 있어요.”

그 목소리에 손가락이 풀렸다. 사진틀이 미끄러졌고 재민이 몸을 숙여 받아냈다. 나는 바닥에 앉을 때까지 나리의 손목을 놓지 못했다.

“어머님 손에 상처가 있었습니까?”

내가 묻자 재민의 눈이 좁아졌다.

“반찬 만들다 베셨대요. 왜요?”

나는 들고 있던 종이를 봤다. 작은 가게 이름 아래 완납이라고 적혀 있었다. 뒷면을 뒤집자 방금 보았던 이름이 나왔다.

탁재민 님께 인도. 연락 전 보관.

재민이 종이를 받아 금액부터 확인했다. 휴대전화에 영수증의 번호를 눌렀다. 나리가 내 찢어진 장갑을 벗겼다. 손끝은 멀쩡한데 내가 자꾸 내려다보자, 그녀가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차에서는 내가 운전할게요.”

신호가 끝났다. 재민이 스피커를 켰다.

“반미선 씨한테 돈 받으셨죠.”

“아드님이세요?”

“네. 대체 무슨 돈입니까.”

“어머니랑 같이 오시기로 했는데, 날짜가 바뀌었나요?”

재민의 입이 벌어졌다. 그는 영수증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엄마 돌아가셨어요.”

전화 너머에서 무언가 내려놓는 소리가 났다.

“언제요?”

“지난주 금요일에요.”

“그러면 이걸 어떻게 해야 하나.”

“뭘요?”

“어머님이 마지막에 부탁을 바꾸셨어요.”

재민이 휴대전화를 가까이 들었다.

“아드님한테 그냥 주지 말고, 꼭 여기서 한번 쳐보게 해달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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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1화 — 엄마한테 돈 받은 사람
“엄마한테 돈 받은 사람부터 찾고 싶어요.”남자는 검은 넥타이를 풀지도 않은 채 통장을 내밀었다. 현관에는 조문객에게 나눠주고 남은 수건 상자가 있었다. 나는 문턱에서 작업화를 벗었다.“물건 정리 의뢰로 받았는데요.”“그 사람이 뭘 팔았는지만 찾아주세요. 영수증이든, 명함이든.”같은 이름 앞으로 5만 원, 10만 원씩 빠져나간 돈. 마지막 30만 원에는 볼펜 자국이 종이를 뚫을 듯 겹쳐 있었다.“돌아가시기 이틀 전에도 보냈어요.”설나리가 의뢰서를 펼쳤다. 의뢰인 탁재민. 보관할 물품을 적는 칸에는 아무것도 없었다.“서류는 따로 모으겠습니다. 버릴 물건도 나중에 다시 확인해주시고요.”“다 버려도 돼요.”나리는 그 말을 적지 않고 펜 뚜껑을 닫았다.“오늘 다 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도찬오입니다. 물건 확인은 제가 맡겠습니다.”나는 가방을 발밑에 놓고 장갑을 꼈다. 재민은 휴대전화를 뒤집어놓았다. 화면이 꺼지기 전, 엄마라고 저장된 이름이 보였다.나리가 내게 빈 파일을 건넸다. 나는 습관대로 물품 가격표도 꺼냈다가 다시 넣었다. 재민은 그새 부엌 찬장을 열어보고 있었다.“새로 산 건 하나도 없어요. 옷도, 가전도.”그가 찬장 문을 세게 닫았다. 안에서 그릇끼리 부딪쳤다. 재민은 곧 문을 다시 열어 금 간 것이 없는지 살폈다. 나리는 그쪽으로 가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상자의 바닥부터 접었다.반미선이라는 이름이 적힌 우편물부터 모았다. 고지서, 시장 쿠폰, 이비인후과 봉투. 봉투는 열지 않고 재민 앞으로 밀었다.“어머님 병원 서류 같습니다.”“병원은 다니셨어요.”그가 봉투를 손바닥으로 덮었다.“돈 보내드렸으니까.”통장의 동그라미를 짚는 손톱이 짧았다.“생활비는 제가 드리고, 이건 엄마가 일해서 버신 돈이라는데. 그러면 제가 무슨 말을 해요. 엄마 돈인데.”“무슨 돈인지 물어보셨습니까?”“전화하면 자꾸 딴소리해요. 병원 갔냐고 물으면 밥 먹었냐고 하고. 돈 얘기하면 또 물어요. 뭐라고 했느냐고.”재민은 나를 보지 않았다.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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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2화 — 아버지가 팔았던 기타
“뭘 쳐보라는 겁니까.”“기타요. 어머님이 예약하신 기타.”재민은 사진틀을 내려다봤다. 악기점 주인이 주소를 불렀지만, 그는 받아 적지 못하고 같은 건물 이름을 다시 물었다. 나리가 의뢰서 뒷면에 주소를 적어 내게 건넸다.“물건 확인까지 같이 가드릴까요?”재민은 잠깐 망설이다 고개를 끄덕였다.나리는 차 열쇠를 받아 운전석에 앉았다. 나는 조수석에서 안전띠를 거듭 당겼다. 쇠고리가 자꾸 빗나갔다.“거기 말고요.”나리가 내 손등을 눌러 고정하고 버클 위치를 짚었다. 딸깍 소리가 나자 그제야 숨이 길게 나왔다.“병원부터 갈까요?”“지금은 괜찮아요.”“또 어지러우면 바로 말해요.”그녀는 차를 출발시켰다. 나리의 손목에 내가 붙잡았던 자국이 남아 있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뒷좌석을 돌아봤다. 재민은 의료 봉투를 무릎 위에 놓은 채 창밖을 보고 있었다.악기점은 지하에 있었다. 나무 계단을 내려가자 줄을 퉁기는 짧은 소리가 났다. 앞치마를 두른 남자가 일어서다가 재민의 검은 넥타이를 보고 손을 멈췄다.환시에서 입을 움직이던 남자였다.나는 문손잡이를 놓지 못했다. 같은 탁자, 같은 서류 꽂이. 다리 밑에는 수평을 맞추려는 듯 종이가 끼워져 있었다.“전화하신 분이죠.”주인은 신분과 영수증을 확인한 뒤 안쪽 선반에서 상자를 내렸다. 파란 테이프가 붙은 끝을 내가 먼저 보았다. 재민이 뚜껑을 열었다.갈색 기타가 천에 싸여 있었다. 몸통 가장자리의 밝은 선을 손끝으로 따라가던 그가 갑자기 손을 뗐다.“이거 어디서 났어요?”“중고로 들어온 겁니다. 같은 모델 찾아달라고 하셔서.”“우리 아버지 거예요?”주인은 고개를 저었다.“그건 아닐 겁니다. 어머님도 아셨고요.”재민은 몸통 아래를 들여다봤다. 오래된 사진을 휴대전화로 확대했다. 사진 속 기타에는 흰 얼룩이 있었고, 상자 안의 기타에는 없었다.“제가 스티커 붙였다가 떼서. 여기에 자국이 있었어요.”그는 기타를 내려놓았다. 주인이 예약서를 찾아 탁자에 펼쳤다. 사진 두 장이 끼워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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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3화 — 듣지 않은 사람
“녹음해 오셨는지 물어봤어요?”나리가 묻자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잊었어요.”그는 휴대전화를 엎으려다 멈췄다. 주인은 빈 종이컵을 하나 가져왔고, 재민은 컵 가장자리만 눌렀다. 어머니 휴대전화는 집에 있다고 했다.기타는 가게에 두고 돌아왔다. 재민이 현관에 열쇠를 꽂는 동안 나리는 내 팔꿈치에 손을 댔다.“계단 내려갈 때부터 얼굴이 하얘요.”“처음 가본 곳인데 아는 것 같아서요.”나리는 열린 현관 안을 봤다가 내게 시선을 돌렸다.“이 일 끝나고 얘기해요. 혼자 운전해서 가지 말고.”나는 알겠다고 했다. 그녀가 손을 떼자 소매에 눌렸던 자리가 느껴졌다.어머니의 휴대전화는 충전기 옆에 있었다. 재민이 비밀번호를 눌렀다. 화면이 열리자 사진 속 어린 자신을 잠시 들여다봤다. 그는 녹음 목록을 찾았지만 병원에서 한 녹음은 없었다.“파일이 있으면 다 들을 수 있을 줄 알았는데.”재민은 충전선을 다시 꽂았다. 내가 의료 서류를 모으려 하자 그가 손을 내밀었다.“아까 그 종이, 한 번만 더 볼게요.”그는 진료 날짜와 문자 날짜를 맞춰 보았다. 상담은 끝나지 않았고, 추가 검사가 남아 있었다. 봉투에는 어머니가 직접 적은 질문도 들어 있었다. 수술이 필요한지, 필요하다면 일은 언제 다시 할 수 있는지. 답을 적는 자리는 비어 있었다.“수술비 얘기한 적 있어요. 나중에 얼마가 들지 몰라 모아놓겠다고.”재민이 서랍에서 다른 통장을 찾았다. 은행 봉투에 수술비라고 적혀 있었다. 마지막 잔액을 본 그가 장식장 쪽으로 걸어왔다.“이 돈도 없어진 줄 알았어요.”그는 통장 두 권을 나란히 놓았다. 생활비와 병원비를 보내던 계좌에는 적금에서 옮긴 돈이 남아 있었다. 기타 대금을 보낸 계좌에는 반찬 가게에서 받은 급여가 찍혀 있었다.“제가 여기까진 안 봤어요. 같은 이름으로 계속 나간 것만 보고.”숫자를 따라가던 그의 손가락이 떨어졌다.나는 통장을 더 넘기지 않았다. 재민이 펼쳐놓은 두 쪽만 확인한 뒤 그 앞으로 돌려놓았다. 그가 받쳐 들다가 종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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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4화 — 말해줄 수 없는 것
식탁 위 휴대전화 화면이 어두워졌다. 재민은 잠시 화면을 다시 켜 답장이 없는 대화창을 확인하고는 전화기를 엎었다. 누구도 어머니의 전화기에 손대지 않았다.“죄송해요. 정리하시러 왔는데.”“오늘은 여기까지 해도 됩니다.”내가 말하자 재민은 고개를 저었다.“혼자서는 못 하겠어요.”그는 남길 물건을 적는 종이를 가져왔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칸에 사진틀이라고 썼다. 그다음 줄에서는 펜이 멈췄다.우리는 부엌 서랍부터 함께 열었다. 재민은 유통기한을 확인했고, 나는 깨진 용기와 쓸 수 있는 용기를 나눴다. 나리는 뚜껑이 맞는 것을 찾아 끼웠다. 손이 바빠지자 재민이 조금씩 말을 했다.“엄마한테 돈 보내면 제가 얼마나 남는지는 안 물었거든요. 엄마도 안 물었고.”그가 뚜껑 없는 통을 내려놨다.“집에 오면 반찬은 다 싸줬어요. 그런데 반찬 말고 그냥, 이번 달은 괜찮냐고 한 번 물어봤으면 했어요.”나는 통을 받아 들고 고개를 끄덕였다.“기타까지 사놓은 걸 보니까 그런 생각한 것도 미안해요.”재민은 웃는 얼굴을 만들려다 말았다.“계속 좋은 엄마였던 거잖아요. 저만 몰랐고.”“재민 씨가 그때 힘들었던 건 없어지지 않잖아요.”나리가 말했다. 들고 있던 통을 재민에게 보여주며 물었다.“이건 가져가실래요?”재민은 잠깐 통을 보더니 받았다. 뚜껑 가장자리에 자기 이름이 적혀 있었다. 지워진 글씨 위에 어머니가 다시 써놓은 이름이었다.“이거 매번 안 돌려줬는데.”그가 뚜껑을 닫았다. 한쪽이 잘 맞지 않아 두 번 눌러야 했다.우리는 오래된 약봉투를 의료 서류 옆에 따로 놓았다. 주인을 알 수 없는 열쇠는 버리지 않았다. 재민은 처음엔 모두 필요 없다고 하다가, 나리가 물을 때마다 하나씩 대답했다.중간에 악기점에서 전화가 왔다.“예약서 사진이 필요합니다. 원본은 저희도 보관해야 해서요.”재민이 내게 영수증을 내밀었다.“이거만 찍으면 되는 거죠?”“네. 고객님 성함이랑 금액이 보이게요. 다른 서류는 보내지 않으셔도 됩니다.”나리가 휴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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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5화 — 이번에는 네가 골라도 돼
“마음에 안 드시면 바꿔드리려고요.”악기점 주인은 그렇게 말했다.재민은 휴대전화를 귀에서 떼었다가 다시 댔다.“엄마가요?”“옛날에 좋아하던 걸 지금도 좋아할지는 모르겠다고 하셨어요. 직접 쳐보고 다른 걸 고를 수도 있게 해달라고.”“그것 때문에 꼭 와서 쳐보라고 하신 거예요?”“예. 소리가 안 맞을 수도 있으니까요.”재민은 기타를 찾아가겠다고 했다. 전화를 끊은 뒤에도 손에서 놓지는 않았다.“저는 무슨 노래를 정해두셨나 했어요. 아버지가 치던 거.”내가 영수증 파일을 챙기자 재민이 일어났다. 나리는 부엌 수도와 창문을 확인하고 현관으로 왔다. 밖에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악기점 주인은 점심을 먹으려 문을 닫다가 우리를 안으로 들였다.“먼저 식사하세요. 기다릴게요.”나리가 말하자 재민도 고개를 끄덕였다. 주인은 가게 안에서 먹는다며 뒤쪽 커튼을 쳤다. 우리는 진열대 앞의 좁은 의자에 앉았다.재민이 벽의 기타 그림을 보며 말했다.“저는 학원에 가면 늘 늦게 들어갔어요.”그는 문턱의 벗겨진 칠을 내려다봤다.“앞에 악기점이 있었거든요. 들어가보진 못하고 밖에서 구경만 했어요. 엄마한테 들켰을 때 아버지랑 똑같다고 혼났어요.”재민의 웃음은 금방 사라졌다.“아버지가 돌아가신 뒤였는데, 엄마는 제가 음악 하면 밥 못 먹을까 봐 겁났나 봐요. 저는 아버지 흉보는 줄 알았고.”재민은 휴대전화에서 자신이 보냈던 매물 사진을 다시 찾았다. 이번에는 아래에 붙은 자기 말까지 보여줬다.아버지 거랑 똑같지. 나중에 여유 생기면 하나 살까.어머니의 답장은 며칠 뒤에 와 있었다.요즘도 이거 치고 싶니.재민이 자기 답을 손가락으로 가렸다가 비켰다.그냥 해본 말이야.“왜 이렇게 말했는지 모르겠어요.”그가 화면을 끄려는데 나리가 물었다.“정말 그냥 해본 말이었어요?”재민은 기타가 있는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아뇨. 사놓고 안 치면 돈 아까울까 봐. 엄마가 또 뭐라고 할까 봐.”그는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었다. 재민은 무릎을 쓸고 등을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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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6화 — 다시 말할게, 엄마
내가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고 말하자 나리가 내 손을 보았다.“놓친 전화라고 해왔죠?”“네. 그게 덜 비겁하게 들려서요.”“왜 안 받았는지는 나중에 들어도 돼요. 지금은 재민 씨 곁에 있어요.”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재민이 손끝을 줄 위에 얹었다. 첫 소리가 막혔다.“제 손이 아버지 손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아버지 손이 아니어도 되잖아요.” 나리가 말했다.“그걸 엄마 앞에서는 왜 못 했을까요.”줄을 누른 손가락 하나가 옆줄까지 덮고 있었다. 재민은 고개를 숙여 손을 고쳤다. 짧게 퉁겨본 뒤 다시 옮겼다. 어린아이처럼 자기 손등을 내려다봤다.“이게 아닌데.”그의 손이 움직이는 사이, 나는 사진틀을 식탁에 세웠다. 재민이 사진을 보았다.“아버지는 손이 컸어요. 제 손등을 덮고 눌러주면 됐는데.”그가 엄지를 기타 목 뒤로 옮겼다. 이번에는 소리가 났다. 줄마다 조금씩 다른 떨림이 거실에 남았다. 재민은 다음 코드를 잡으려다 멈췄다.부엌에서 냉장고가 낮게 울었다.“엄마는 이 소리 나면 꼭 뭐라고 했어요. 시끄럽다고. 밥 먹을 때는 내려놓으라고.”그는 다시 줄을 쳤다. 같은 소리가 조금 더 짧게 났다.“그러면 아버지가 한 번만 더 한다고 하고.”재민의 오른손이 공중에 멎었다. 피크가 손가락 사이에서 빠져 바닥으로 떨어졌다. 나는 몸을 숙이려다 그가 먼저 손을 내미는 걸 보고 기다렸다.피크를 집지 못한 재민은 미끄러지는 기타를 두 팔로 안았다.“그때는 그렇게 시끄러웠는데.”그가 부엌을 봤다. 싱크대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 재민은 숨을 들이마시려다 목 안에서 소리를 냈다. 턱이 기타 윗면에 닿았다.“엄마.”그 한마디에 목소리가 갈라졌다.재민은 손등으로 눈을 문질렀다. 닦은 자리로 다시 물이 흘렀다. 기타에 떨어지자 급히 소매로 문질렀다. 손이 바빠질수록 숨이 더 엉켰다.“내가 왜 그랬을까.”그는 우리에게 묻고 곧 고개를 저었다.“엄마가 이 기타 소리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그랬는데도 기타를 사주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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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7화 — 남겨둘 것
재민은 끝내 한 곡을 다 치지 못했다.같은 코드를 두 번 더 잡았다. 손끝이 아픈지 손바닥에 손가락을 눌렀다가 다시 줄 위로 가져갔다. 우리는 옆에서 상자를 접었다. 가끔 줄이 울리면 테이프를 뜯는 손을 멈췄다.그가 기타를 내려놨을 때 밖은 어두워져 있었다.“배고프네요.”말한 사람이 멋쩍게 웃었다. 재민은 얼굴을 손바닥으로 쓸었다.“이러고도 배가 고프네.”나리가 휴대전화를 꺼냈다.“저도요. 뭘 시킬까요?”재민은 대답을 고르다 자리에서 일어났다. 냉장고를 열어 반찬통을 꺼냈다. 나리가 정리하던 통과 같은 모양이었다.“먹을 수 있는 건지 모르겠어요.”우리는 날짜를 확인하고 오래된 것은 따로 뺐다. 재민은 밥을 사오겠다며 지갑을 찾았다. 나리가 자신이 다녀오겠다며 일어났고, 내가 따라 나가자 현관 밖에서 나를 봤다.“앉아 있으라니까요.”“이젠 정말 괜찮아요. 혼자 다 들고 올 것도 아니고.”“아까도 괜찮다고 했어요.”나는 걸음을 멈췄다. 나리는 내 얼굴을 살피더니 지갑만 달라고 했다. 내가 꺼내자 카드를 빼서 자기 휴대전화 뒤에 끼웠다.“오늘은 이걸로 받아요. 밥 약속.”“그건 따로 사려고 했는데.”말이 먼저 나왔다. 나리는 계단을 내려가다 돌아봤다.“그럼 따로 먹고요.”그녀가 내려간 뒤에도 나는 현관에 서 있었다. 재민이 뒤에서 문을 조금 더 열었다.“안 들어오세요?”나는 신발을 벗었다. 식탁에는 수저 세 벌이 놓여 있었다. 재민이 컵을 꺼내며 말했다.“아까 이상한 말 했죠. 좋은 엄마였으니까 제가 다 잘못한 것처럼.”그는 컵 하나를 물에 헹궜다.“좋았던 날도 있고 싸운 날도 있었어요. 저는 집에 오는 게 싫을 때도 있었고.”물을 잠근 뒤에도 재민은 싱크대 앞에 서 있었다.“그런데 오늘부터 다 좋았다고 해야 할 것 같아서.”“여기 적으실 때는 그러지 않으셔도 돼요.”나는 남길 물건 목록을 그에게 내밀었다. 재민은 종이를 받아 사진틀 아래에 기타라고 썼다. 잠깐 생각하다 리모컨이라고도 썼다.“이건 왜 적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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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8화 — 열지 못한 상자
재민에게서 다음 날 아침 문자가 왔다.기타는 안 바꿀게요.나는 전화해도 되겠느냐고 답했다. 잠시 뒤 전화기가 울렸다.“혹시 바꾸고 싶은 마음이 다시 들면 어떡하죠?”“기타는 당장 결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판매점에도 보관 조건을 물어볼게요.”“아뇨. 그냥 이걸로 연습하려고요. 첫날부터 마음에 든 건 아니지만.”“손에 안 맞으면 조정할 수도 있답니다. 줄을 바꾸기도 하고요.”“맞춰서 쓸게요. 어머니가 고른 물건이라서가 아니라 제가 이제 이걸 치고 싶어서요.”“그럼 악기점에 그렇게 전하겠습니다.”“그래도 가끔 그만두고 싶으면 안 되는 걸까요?”“그날은 쉬세요. 기타를 갖고 있는 것과 매일 치는 건 다른 일이잖아요.”재민은 그제야 웃었다. 악기점 주인은 필요한 때 줄을 갈러 오라고 했다. 얼마나 잘 치는지는 묻지 않았다.남은 물건을 옮기러 다시 간 날, 재민은 넥타이를 매지 않고 문을 열었다. 현관 수건 상자는 없어져 있었다. 기타 옆에는 인터넷에서 산 받침대가 놓였다.“조립하는 데 더 오래 걸렸어요.”재민이 바닥의 설명서를 주워 접었다. 나리는 가져갈 상자의 끈을 확인했고 나는 차에 실을 순서를 정했다. 재민은 마지막으로 뚜껑을 열어봤다. 한 상자에서 국자를 꺼낸 재민이 서랍 앞에 섰다.“이건 안 가져가실 거예요?” 내가 물었다.“남겨둘게요. 엄마가 매일 쓰던 거라서요.”“목록에 표시하겠습니다.”“아, 나중에 바꾸면 안 될까요?”“그때 다시 정하면 됩니다. 오늘은 집에 두시는 걸로 적을게요.”재민이 국자를 서랍에 넣었다. 나리는 수정한 칸을 보여줬다.일은 생각보다 빨리 끝났다. 빈 자리에 먼지가 길게 남았다. 재민은 걸레를 가져와 장식장이 있던 벽 아래를 닦았다. 나는 사진틀을 식탁 위에 세웠다.“그 사진도 가져가요.”재민이 말하다 손을 멈췄다.“아니, 제가 가져간다는 말이에요.”그가 웃었고 나도 웃었다. 처음처럼 모두 버리라고 하지는 않았다.확인서에 서명을 받은 뒤 나리가 봉투를 건넸다. 영수증과 남긴 물건 목록,
last updateHuling Na-update : 2026-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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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009화 — 죽은 남편의 꽃
“죽은 남편이 보내는 꽃을 그만 받고 싶어요.” 여자는 꽃다발을 내려놓고 젖은 손바닥을 치마에 문질렀다. 포장지 아래로 물이 새고 있었다. 나리가 받침을 가져오는 동안 나는 꽃을 받아 들었다. “꽃집에 말씀은 해보셨습니까?” “했죠. 딸한테도 했고.” 여자는 의자에 앉지 않았다. “둘 다 남편이 얼마나 생각해서 준비한 건데 그러느냐네요.” 문밖에서 남자가 서류 가방을 고쳐 들었다. 어제 전화했던 모임의 반환 담당자였다. 그는 여자에게 앉으시라고 권한 뒤 우리에게 명함을 내밀었다. “제가 먼저 설명을 드렸어야 했는데.” “제 얘기는 제가 할게요.” 여자가 말했다. 남자는 입을 다물고 옆 의자를 당겼다. 꽃에서는 단 냄새가 났다. 나는 새 장갑을 끼고 포장지 끝을 접었다. 나리가 가져온 쟁반에 물이 고였다. 여자는 그걸 보고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냈다. “제가 닦을게요.” “괜찮습니다. 물이에요.” 나리가 행주로 식탁을 훔쳤다. 여자는 손수건을 접지 못하고 들고 있었다. 손수건 귀퉁이에 작은 꽃이 수놓여 있었다. 반환 담당자가 서류를 펼쳤다. 옛 현장에서 함께 일했던 사람들의 모임이라고 했다. 은퇴한 뒤에도 회비를 걷어 병원에 가는 사람을 돕고 물건을 맡아줬는데, 이제 정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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