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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79화

Author: 십일
그 학생 역시 간절히 원했다. 하지만 인성고의 결정은 단호했다.

소진헌이 ‘본교 학생이 아닌 학생에게도 훈련의 기회는 주자’고 요청했지만, 학교는 끝내 허락하지 않았다. 청강조차 불가했다.

결국... 그 학생은 경시대회와 인연을 맺지 못했다. 졸업 후 바로 현장으로 나가 실습을 시작했고, 지금은 작은 자동차 정비소를 직접 운영하고 있었다.

그리고 한가할 땐 늘 손에 펜을 들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그가 대충 종이에 끄적거리는 줄 알았다.

하지만 소진헌이 우연히 한 번 찾아갔을 때, 그 아이가 풀고 있던 건 다름 아닌 물리 경시 문제들이었다.

그 순간, 소진헌의 가슴은 세차게 얻어맞은 듯했다.

‘아... 이렇게 뛰어난 재능이 안타깝게도 꽃피우지 못하는구나...’

너무 아쉬웠던 나머지, 소진헌에게 그것은 곧 집착이 되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며 그 집착은 소진헌의 가슴 속에 하나의 응어리로 굳어졌다.

“경민이 아들도 재능이 있더라구. 다른 과목 성적은 별로라 인성고는 힘들겠지만... 내가 내 선발권으로 뽑아서 물리 경시 준비는 시킬 수 있잖아? 헤헤...”

경민.

바로 그때 소진헌이 아꼈던 그 학생, 유경민이었다.

이제는 경민도 아버지가 되었다.

“맞다, 학교에서 이번에 물리 경시반 예산도 추가로 배정해 줬어!”

소진헌은 말하며 눈빛까지 반짝였다.

이미숙이 놀라 되물었다.

“당신 그동안 예산을 수십 번 신청해도 매번 반려됐다면서요? 근데 갑자기 왜 이렇게 후하대요?”

“들으니까, 어느 동문이 통 크게 기부했대. 학교 재정이 넉넉해지니까 바로 통과시킨 거지 뭐!”

그때 정은이 옆에서 웃으며 한마디 거들었다.

“아빠, 오늘 정말 기분 좋아 보이네요?”

“좋지! 너무너무 좋지!”

소진헌은 한껏 흥에 겨운 목소리였다.

정은의 미소가 더 깊어졌다.

‘아빠가 이렇게 기뻐한다면, 그걸로 충분해...’

‘앞으로 내가 옆에 없어도, 두 분이 오늘처럼 웃으면서 지내시면 좋겠다.’

...

집에서 보내는 마지막 날이었다.

내일이면 정은은 다시 J시로 돌아가야 했다.

아침, 소진헌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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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481화

    열몇 시간을 넘게 날아와, 정은은 마침내 호주 땅을 밟았다. 공항 문을 나서자마자, 익숙한 실루엣이 눈에 들어왔다.그녀는 순간 멈칫했지만 곧 ‘그렇구나’ 하고 수긍했다.출국 전, 정은이는 교통이며 숙소며 호주 생활에 대해 이것저것 현빈에게 물어봤으니, 그가 미리 눈치채고 공항에 마중 나온 것이 이상할 것은 없었다.“오빠, 내가 탄 비행기 편은 어떻게 알았어요?”현빈은 자연스럽게 그녀 손에서 캐리어를 받아 들고 나란히 걸음을 옮겼다.“할아버지, 할머니께 여쭤봤지.”“근데 난 말씀드린 적이 없는데?”현빈은 미소를 지으며 짧게 답했다.“두 분은 다 방법이 있으시잖아.”정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역시 그렇지.’더 묻고 싶었지만, 현빈은 대화를 그쯤에서 끊고 정은이 예약해 둔 호텔까지 데려다주었다.“이것도 알고 있었어요?”“내가 추천해 준 곳 중 하나잖아.”‘추천은 세 군데나 했으면서...’체크인을 마치고 방에 들어서자, 현빈은 짐만 내려놓고는 정은의 방 안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긴 비행에 피곤할 텐데 오늘은 푹 쉬어. 내일 내가 시내 구경 시켜줄게.”“응, 알았어요.”샤워 후, 정은이는 짐 풀 새도 없이 커튼을 닫고 곧장 침대에 누웠다. 시차 때문에 잠이 안 올 거로 생각했는데, 눈만 감았을 뿐인데 금세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그 잠은 아침까지 이어졌다....정은이 눈을 떴지만 방 안은 아직 어둑했다. 그래서 순간 밤인 줄 착각하고 몸을 돌려 다시 눕다가 몸에 닿는 시트와 베개, 낯선 공기의 감촉에, 비로소 실감이 났다.‘아, 내가 이제 한국에 있지 않구나.’더는 잠이 오지 않았다.그리고 자리에서 일어나 커튼을 걷자, 창밖에서 아침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다.발밑까지 닿는 통유리창 앞에 서서, 정은은 호주에서 맞는 첫 일출을 바라봤다.따스하고 부드러운 햇빛이 몸 위로 흘러내리며, 낯섦과 두려움을 조금씩 지워주었다.창을 열고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풋풋한 풀내음이 코끝을 스치자, 마치 고향에서 맡던 새벽 공기 같아 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480화

    “내가 전화해볼게...”민지가 다이얼을 누르기도 전에, 톡 알림이 툭 하고 떴다.동시에 서준의 핸드폰에서도 같은 알림음이 울렸다.연구실 단톡방 ‘무한 팀’.정은: [미안, 직접 인사하면 민지가 크게 울 것 같아서... 대신 편지를 남겨놨어. 실험대 서랍에 있으니까, 시간 나면 읽어봐.]민지가 눈을 크게 뜨기도 전에, 두 번째 메시지가 연이어 도착했다.정은: [잘 있어, 얘들아. 내가 없는 동안 다들 무사히, 그리고 즐겁게 지내길!]마지막에는 귀여운 하트 곰돌이 이모티콘이 붙어 있었다.민지는 곧장 정은의 프로필을 눌러 영상 통화를 걸었다.하지만... 연결되지 않았다.다시 단톡방으로 돌아온 민지는 연달아 메시지를 쏟아냈다.민지: [정은 언니, 이게 무슨 소리예요?]민지: [내가 영상통화 걸었으니까 얼른 받아봐요.]민지: [언니, 혹시 해킹당한 거 아니죠?]민지: [언니, 대답 안 하면... 나 진짜 울 거예요!][...]그러나 정은의 프로필은 끝내 반응이 없었다.그때 진일과 재민이 방 안에서 허겁지겁 뛰쳐나왔다.“무슨 일이야? 정은이 오늘 안 온 거야?!”민지의 울먹이며 간신히 눈물을 참고 있는 얼굴, 그리고 서준의 굳어진 눈빛.모두가 이미 대답을 짐작하고 있었다.재민이 머뭇거리며 말했다.“정은 누나가... 편지를 남겼대요.”그 말에 모두 정신이 번쩍 들어, 다 함께 실험대 서랍을 뒤적였다.서준이 가장 먼저 봉투를 꺼내 들었다.봉투가 열리자, 네 사람은 자연스레 빙 둘러섰다.[사랑하는 내 친구들아.이런 방식으로 인사하게 돼서 미안해.직접 말하기엔 너무 울컥해서 눈물날 것 같고, 톡으로 쓰자니 너무 오글거려서... 흠, 나중에 대화창 다시 볼 때 닭살 돋을까 봐, 그냥 편지로 남긴다.조금 올드하긴 하지만, 나름 낭만적이잖아.]...여기까지 읽은 민지는 이미 웃다가 울다가 정신이 없었다.서준과 진일은 잠시 눈을 마주쳤다. 허탈하면서도 묘하게 가벼워진 공기.‘역시 소정은이지... 이별까지도 이렇게 가볍고 유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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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478화

    그 조건이란 바로, 정은이 내년도 인성고 신입생 모집 홍보 영상에 출연하는 것이었다.올해가 아닌 이유는 간단했다.이미 올해는 입시 철이 이미 지났고, 사실 정은이 예전에 찍어둔 영상으로 한 차례 홍보를 마친 상태였다.그래서 이번엔 내년용이었다.“에... 내년 홍보 영상을 벌써 찍는 건 좀 이른 거 아닌가요?”정은이 난감하게 물었다.“아니야 아니야! 미리 찍어두면 나중에 얼마나 편한데.”교장은 두 손을 내저으며 서둘러 답했다.실은 ‘지금 아니면 다시는 못 잡을 기회일 수도 있다’는 불안감이 컸다.시간이 지나 정은이 더 유명해지면, 학교 홍보 영상 같은 건 쉽게 부탁하기 어려울 거로 생각한 것이다.정은은 잠시 말이 없었다.‘하긴... 모교를 위해서라는데, 거절할 이유는 없지.’결국 정은은 승낙했다. 인성고는 자기 뿌리였다. 가능하다면 더 잘되길 바랐다.촬영을 마치고 나오니, 마침 하교 시간이었다.정은은 곧장 교무실로 발걸음을 옮겼다.[똑똑똑]고개를 들던 소진헌은 눈을 반짝이며 벌떡 일어섰다.“정은이?! 네가 웬일이야?!”“학교 안 온 지 오래돼서... 그냥 한 번 들렀어. 아, 급식 맛도 괜히 그립네.”“그럼 됐지 뭐! 가자!”소진헌은 급히 급식 카드를 집어 들며 말했다.“아빠가 쏜다!”...식당으로 가는 길, 동료 교사들과 학생들을 마주치는 건 피할 수 없었다.“소 선생님, 따님이시구나?”소진헌은 얼굴이 활짝 펴진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네, 맞습니다.”“대단하네요! 서비대학교 박사 과정이라면서요? 앞으로 과학자 되실 건가요?”소진헌은 겸손하게 손을 내저었다.“아니에요, 무슨 과학자씩이나요. 그냥 연구 조금 하고, 실험하고, 논문 쓰고... 가끔 SCI 같은 거 내고요.”‘연구 조금...? 논문 쓰고 SCI 내는 게... 그게 그냥이라고?’겉으론 담담하지만, 한마디 한마디에서 자랑스러움이 묻어났다.“선생님! 저분 정은 선배님 맞죠?!”때마침 점심시간이라 학생들도 몰려나오던 참이었다.시선이 금세 정은에게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477화

    소설의 대강, 드라마 기획안, 방송국에 제출하는 작품 제안서까지...이미숙은 영감이 떠오르면 바로 키보드를 붙잡고 글을 쓰곤 했다.기진맥진할 때까지 쓰고 나서야 손을 멈춰야 직성이 풀렸다.그럴 때면 정리는커녕 저장만 해둔 채로 그대로 손을 놔버렸다.세월이 쌓이니 원고들은 한 폴더에 뒤섞여 있거나, 아예 여러 개의 파일과 외장 하드에 흩어져 버렸다.정리하려면 결국 내용을 일일이 다시 읽어야 했다....밤, 거실.정은은 이미숙 옆에 바짝 붙어 앉아 있었다.TV에서는 요즘 인기라는 연애 예능이 틀어져 있었다.“엄마, 팩하는 거예요?”“그래. 너도 하나 붙일래?”“아니요. 됐어요.”정은은 손사래를 쳤다.“어쩐지, 우리 엄마 점점 더 어려지더라니까...”이미숙은 계획적이고 자기 관리에 철저한 사람이었다. 피부 관리에 쏟는 꾸준함과 집념은 글을 쓰는 집념 못지않았다.가장 단순한 예로, 얼굴에 붙이는 팩만 해도 일주일에 세 번은 반드시 했다. 단 한 번도 빼먹지 않았다.예전에 형편이 넉넉지 않을 때도 이미숙은 오이를 얇게 썰어 얼굴에 붙이고, 랩 씌운 뒤 바셀린을 발랐다.조금 여유가 생기자 그녀는 유명 브랜드 팩으로 바꾸더니, 요즘은 아예 맞춤형 피부 관리 제품까지 쓰고 있었다.결국 돈이 많고 적음의 문제가 아니었다.이미숙을 움직이는 건 ‘하고 싶다, 하기 싫다’는 자기 마음뿐이었다.이 점은 정은도 엄마를 닮았다.“엄마, 원고들 제가 정리했어요. 다섯 개 폴더로 나눴거든요. 소설, 드라마, 영상 자료 이런 식으로요.”“시간 날 때 한 번 살펴보세요. 혹시 문서 찾기 힘들면 바로 나한테 물어보고요.”“그리고, ‘소재’ 폴더엔 최근 5년 동안 전국에서 일어난 미제 사건, 특이 사건들 중심으로 정리해놨어요. 여론화된 케이스도 꽤 많아요.”이미숙은 놀란 눈으로 딸을 바라봤다.“우리 딸, 이런 자료를 왜 모은 거야?”정은이 태연하게 대답했다.“엄마가 요즘 사건 자료 보는 거, 나도 다 봤어요. 드라마에 녹여내려고 하는 거 맞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476화

    그날 밤, 소진헌은 거의 잠을 이루지 못했다. 이리저리 뒤척이며 가끔 한숨을 쉬었다.이미숙은 핸드폰을 내려놓았지만, 평소처럼 바로 불을 끄지 않았다.“여기서 뭐 부침개라도 부쳐요? 자꾸 엎치락뒤치락 움직이게.”소진헌은 잠시 멈추더니, 오히려 더 심하게 뒤척였다.이미숙은 어이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나이도 있는 사람이 딸 때문에 삐쳐서 이래요?”“누가 삐쳤다고 그래? 나 삐친 거 아니거든!”소진헌은 벌떡 일어나 앉았다. 얼굴엔 잠기운이 전혀 남아 있지 않았다.“안 그랬다더니, 얼굴이 벌써 개구리처럼 퉁퉁 부었네...”이미숙은 웃으며 남편을 바라봤다.소진헌은 무심코 손을 들어 자기 볼을 만졌다.‘부었나...? 아니겠지...’“당신은 어떻게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아? 딸이 외국 나가는데! 그것도 호주야, 지구 반대편이라고!”소진헌은 말할수록 점점 우울해졌다. 이번엔 정말 볼이 퉁퉁 부었다.이미숙은 남편을 힐끔 보더니 말했다.“내가 모를 줄 알아요? 정은이가 그렇게 쿨하게 조 교수랑 헤어진 거, 당신은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요?”소진헌은 입을 삐죽 내밀었다.“뭔가 다른 계획이 있겠구나 싶었지, 근데 그게 호주일 줄은 몰랐어.”“오미선 교수님이 호주에서 쓰러졌잖아요. 결국 유골함 하나로 돌아오셨고, 연구랑 성과는 전부 그 섬에 남았죠. 우리 딸애 성격에 그걸 모른 척하고 그냥 지나갈 것 같아요?”이미숙은 다시 한번 설명했다.소진헌은 잠시 침묵했다.“정은이가 그동안 별다른 행동도 없길래, 그냥 다 잊고 넘긴 줄 알았지. 근데...”‘그렇게 큰 한 방을 숨기고 있었구만...’이미숙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그러니까 어차피 갈 거였어요. 지금까지 버티고 또 버틴 거죠. 당신이 못 보내는 거 나도 알아요. 근데, 나라고 쉽겠어요?”이미숙의 마지막 말끝에 목소리가 떨렸다.자식이 집에서 대학만 가도 부모 마음은 허전한데, 이번 길은 아예 국외로, 대륙을 건너, 바다까지 건너가야 했다.“여보, 그러지 마... 아까까지만 해도 괜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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