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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875화

Author: 십일
진욱은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알았지?!’

재석이 이어서 말했다.

“아무 말 안 하는 거 보니까, 내가 맞혔네.”

진욱이 바로 말을 바꿨다.

[근데 휴가는 왜 냈어? 곧 2차 데이터 나와야 하잖아.]

재석의 입가가 살짝 올라갔다.

호수 위에 잔물결이 퍼지듯 자연스러운 미소였다.

다행히 전화 너머라 진욱은 보지 못했다.

봤다면 또 한바탕 놀림이었을 게 뻔했다.

“와이프랑 산전 검진.”

진욱이 더욱더 말문이 막혔다.

재석은 진욱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덧붙였다.

“실험실은 네가 맡아. 오늘 안에 2차 데이터 정리 끝내.”

말을 마치자마자 전화를 끊었다.

한 박자라도 늦으면, 반대편에서 화산이 폭발할 것 같아서였다.

[여보세요?! 여보세요?!]

진욱은 어이가 없어 웃음이 나왔다.

‘이 자식, 진짜 제대로 한 방 먹이네. 정은이 임신이라니...’

‘쳇, 저 인간 지금 속으로 얼마나 신났겠어.’

...

쌍둥이라는 진단이 찍힌 초음파 사진을 보고서야 재석은 정말로 ‘행복해 미칠 것 같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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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92화

    동건은 재킷을 벗어 수민의 어깨에 걸쳐 주었다.“밤바람 세니까 감기 걸리지 마.”수민이 무언가 말하려고 하자, 동건은 두 걸음 뒤로 물러났다.“난 안에 들어가서 손님들 좀 챙길게. 너는 편하게 있어.”그 말을 남기고는 곧장 돌아섰다.도망치듯 빠른 걸음이었다.마치 수민이 재킷을 받지 않겠다고 하면, 바로 벗어서 돌려줄까 봐 겁이라도 난 사람처럼....수민은 정원에 약 20분 정도 머물렀다.안으로 들어가기 전, 어깨에 걸쳐 있던 재킷을 벗어 직원에게 건네며 동건에게 전해 달라고 부탁했다.다시 연회장 안으로 들어갔을 때는 이미 행사가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었다.백지영이 손짓했다.“수민아, 이리 와.”“엄마...”수민은 다가갔다.“이제 우리 갈 건데, 너도 같이 가.”물어보는 말이 아니라 정해진 통보였다.“네.”수민은 고개를 끄덕였다. 애초에 오래 머물 생각도 없었다.‘이럴 바엔 집에 가서 잠이나 더 자는 게 낫지.’‘예복 입고 하이힐 신고, 만나는 사람마다 웃고 있는 것보다야.’동건이 다가왔다.“회장님이랑 사모님, 그리고... 수민이까지 제가 모셔다드리겠습니다.”백지영이 막 거절하려고 할 때, 동건은 이미 한발 앞서 예의를 갖춰 안내했고, 먼저 앞장서 걸어 나갔다.조씨 가문의 차량이 멀어져 가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동건은 그제야 시선을 천천히 거뒀다.그때 고창명이 어느새 곁으로 다가왔다.“아들아, 너 많이 달라졌구나.”최근 들어 동건의 변화에 대해 아버지인 고창명만큼 잘 아는 사람도 없었다.“네가 뭘 겪었는지는 우리도 몰라. 물어봐도 너는 말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안 묻겠다. 다만 한 가지만은 기억해라.”“네 인생을 진지하게 대해서 제대로 살고, 그리고... 남의 인생도 존중해라.”고집은 때로 남을 다치게 할 뿐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상처 입힌다.“알겠습니다.”동건은 그렇게 말하고 안쪽으로 걸음을 옮겼다.“어디 가?”“안에 엄마 계시잖아요. 아버지는 자기 여자를 두고 가시게요?”고창명은 말문이 막혔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91화

    정은은 수민의 눈이 반짝거리고 표정이 살아 있는 모습을 보고, 수민이 정말로 기쁘다는 걸 알았다. 억지로 일하거나 타협한다는 느낌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수민이 말했다.“이 기분이 뭐랄까... 엄청난 연구 과제를 완성해서 그 성과가 인류 사회를 앞으로 십 년은 발전시키는 느낌이야. 그런 느낌 있잖아. 내가 무슨 말인지 알아?”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알아! 네가 좋아하는 일을 찾고, 그걸 끝까지 해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한 거지.”...8시 정각, 연회가 예정대로 시작됐다.사회자가 무대에 올라 고창명의 연설을 소개했고, 이어서 동건이 다시 무대에 올랐다.이 자리는 고씨 가문 두 부자에게 주어진 영광의 시간이었다. 객석을 채운 하객들은 모두 그 장면의 증인이었다.재석은 정은의 곁으로 돌아와 수민과 함께 객석 쪽으로 모여 서서 박수를 보냈다.사회자가 선포했다.“다음 순서로 고 대표님을 모시고 개막 무대를 열겠습니다!”동건은 무대에서 내려와 수민 앞에 멈춰 섰다. 그는 손을 내밀고, 허리를 45도로 숙여 정중하게 고개 숙여 인사했다.수민은 눈썹을 살짝 올렸지만, 이내 사람들의 시선 속에서 남자의 손바닥 위에 자신의 손을 얹었다.음악이 흐르고, 두 사람은 서로를 끌어안은 채 무대로 걸어 들어갔다.이번 성과는 고씨 가문과 조씨 가문이 함께 나누는 명예였다.동건이 수민에게 개막 무대를 청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었고, 그렇게 되는 게 맞다.백지영은 참지 못하고 입술을 비틀었다.“저 녀석한테만 좋은 일이네.”조기동은 가볍게 헛기침하며,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고창명 부부에게 난처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이 정도로 크게 말했는데 못 들을 리가 없었다. 전부 들렸을 터였다.백지영은 코웃음을 쳤다. 애초에 그 부부에게 들으라고 한 말이었다.고창명 부부는 시선을 낮추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화를 내지도, 언짢아하지도 않았다. 잘 익지도, 푹 무르지도 않는 단단한 콩처럼 요지부동이었다.백지영은 속으로 더 화냈다.‘정말 집안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90화

    “난 주호석을 부를 생각 없었어.”동건이 불쑥 그렇게 말했다.수민의 시선이 동건에게로 옮겨 갔다.“그래서?”동건이 말을 이었다.“그 말은 저 사람은 분위기 읽는 데 능하고, 겉으로 번지르르한 거 좋아하고, 말도 듣기 좋은 것만 골라서 한다는 뜻이야. 믿을 수도 없고, 의지할 수도 없고, 선택할 가치도 없어.”수민은 가만히 동건을 바라봤다.마치 동건의 속을 전부 들여다보는 것처럼.“너 또 병 도진 거 아니야?”동건은 갑자기 말문이 막혔다.수민은 더 말하지 않고 몸을 돌려 조기동과 백지영 쪽으로 갔다.“아버지, 엄마...”백지영은 웃으며 다가와 수민의 팔을 끼었다. 다만, 시선이 자연스럽게 조금 떨어진 곳의 동건을 스쳤고 얼굴에 걸린 웃음은 살짝 옅어졌다.“오빠랑 정은이는 저쪽에 있어.”“그럼 나 정은이한테 갈게.”“그래, 다녀와.”동건만 아니면, 백지영은 딸이 누구와 있어도 괜찮았다.사실 조기동이 고씨 가문을 도와주겠다고 했을 때, 백지영은 망설였다.고씨 가문의 아들이 수민에게 어떤 상처를 줬는지, 백지영은 아직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마음속에서 쉽게 넘길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여보, 당신 미친 거 아니야?! 우리 딸이 당한 건 다 잊은 거야? 이제 와서 고씨 가문을 돕겠다고?”“일단 진정하고, 내 말 좀 들어...”“들을 말 없어. 변명도 듣기 싫어.”“...”그날 백지영은 조기동의 말 한마디도 제대로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몰아붙였다.그러다 수민이 집에 돌아와 부모가 다투고 있는 걸 보고 사정을 묻고 나서야 백지영에게 상황을 설명했다.“정리하자면, 저랑 아버지는 고씨 가문을 돕는 것도 아니고, 고동건이라는 사람을 돕는 것도 아니에요. 새로운 판, 새로운 사업을 준비하는 거예요.”백지영은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조금 가라앉았지만, 여전히 입으로는 말했다.“그 뭐냐... 심해 에너지가 그렇게 중요해?”수민은 진지하게 답했다.“앞으로 전 세계 50년 에너지 전략이 다 바다에 있어요. 엄마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89화

    “고맙습니다.”수민은 잔을 받아 들고 향을 맡아보다가 조금 놀랐다.수민이 좋아하는 와이너리의 술이었다.요즘 두 집안이 협업하면서 수민과 동건의 조우가 잦았다.하지만 대화는 늘 일 이야기뿐이었고, 사적인 감정이 끼어들 여지는 없었다.그렇게 지내다 보니 예전처럼 날이 서 있지도 않았고, 겉으로 보기에는 꽤 평온했다.적어도 보기에는 그랬다.동건이 말했다.“조 회장님과 사모님도 다 도착하셨어. 내가 모시고 갈게.”“응.”수민은 오늘 초록색 실크 롱드레스를 입고 있었다.부드러운 소재와 몸에 밀착되는 재단이 수민의 몸매를 또렷하게 드러냈다.동건은 한눈에 알 수 있었다.수민은 티팬티를 입고 있었고, 상의 안에는 어떤 보정도 없다는 걸.느슨하고, 자연스럽고, 위험할 만큼 대담했다.바로 옆을 걸으면서도, 동건은 감히 곁눈질도 하지 못했다.몸 옆에 늘어진 손이 서서히 말려 들어갔다.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 주먹을 쥐었다 풀기를 반복했고, 숨결도 그에 맞춰 들쭉날쭉해졌다.“조 대표님, 또 뵙네요!”젊은 남자가 다가왔다.수민을 바라보는 눈에는 감탄이 숨김없이 담겨 있었다.수민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주 대표님, 정말 우연이네요.”“이렇게 등장하시니까 오늘 다른 여성분들 미모가 빛이 바랜 것 같습니다.”“그 말은 제가 감당하기 힘들어요. 혹시나 맞을까 봐 무섭거든요. 저희 어머니도 계시고, 형님도 계시고, 지인들도 많은데, 괜히 저 곤란하게 하지 마세요.”주호석은 시원하게 웃으며 잔을 들었다.“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제 말이 좀 직설적인 편이라서요. 그냥 제 취향을 말한 것뿐이고 사람마다 보는 눈은 다 다르잖습니까.”수민은 속으로 생각했다.‘이 사람, 꽤 재미있네.’저렇게 받아쳤는데도 말을 자연스럽게 이어 간다.분위기도 어색해지지 않았다.그 옆에서 동건의 기분은 이미 가라앉아 있었다.동건은 주호석을 알고 있었다.인터넷 업계에서 급부상한 인물로, 준수한 외모를 앞세워 마케팅을 능숙하게 활용하는 인물.온라인에서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88화

    GH그룹은 벼랑 끝에서 다시 살아났고, 막다른 골목을 돌아 밝은 길로 나아갔다.마침 창립 30주년을 맞아, 초청장은 곧 여러 집안으로 전달됐다.초청인 란에 적힌 이름은 ‘고동건’.누가 실권을 쥐었는지 분명히 보여 주는 신호였다.정은은 초청장을 덮으며 감탄을 흘렸다.“이럴 때 딱 이런 말이 떠오르네.“어려울 때 두었던 신의 한 수로 원하는 것을 다 얻은 사람같아.”재석이 웃었다.“어렵게 한 판 이겼으니, 당연히 사람들 모아서 이 분위기 살려야지.”“당신도 초청장 받았으면, 작은아버님 댁도 당연히 받았겠네.”“응.” 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고동건이 그분들 빼놓을 리가 없지.”이번 GH그룹의 반격에서 조기동이 해 준 역할은 분명했다.동건이 다른 사람들을 잊더라도 조기동만은 잊지 않았을 것이다.더구나 조기동 부부는 수민의 부모였다.조기동 부부를 부른다는 건, 곧 수민을 부른다는 뜻이기도 했다.“작은아버님... 가신대?”말하고 나서 정은 스스로 웃음이 나왔다.이렇게 좋은 잔치가 벌어졌는데, 한가운데 있던 사람이 빠질 수 있을까?재석이 물었다.“당신은 가고 싶어?”“가야지.”...창립 30주년 연회 당일.조씨 가문의 조기봉 부부와 조기동 부부가 모두 참석했다.세상사에 한발 물러나 있던 조기봉이 모습을 드러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강서원도 자연스럽게 함께 자리했다.조기봉과 조기동 형제가 앞서 걷고, 강서원과 백지영은 한걸음 뒤에서 걷다 보니 나란히 서게 됐다.백지영이 말을 건넸다.“형님, 요즘 건강은 어떠세요?”예전 같았으면, 이런 질문을 듣는 강서원은 속이 불편했을 것이다.마치 살아 있는지 확인하러 왔다는 식으로 느꼈을 테니까.강서원이 차분히 답했다.“약은 계속 먹고 있고, 정기적으로 검사도 받고 있어요. 아직은 괜찮아요.”백지영은 살짝 놀란 눈으로 강서원을 봤다.기억 속에서 두 사람은 이런 자리에서 늘 거리를 두거나, 말끝에 가시가 서 있었다.강서원이 웃으며 말했다.“왜 그렇게 보세요? 제가 예전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887화

    그날 동건을 우연히 마주친 뒤로도 정은은 그 일을 크게 마음에 두지 않았다.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재석에게 그냥 한마디 던졌을 뿐이었다.하지만 그 이후 두 달 동안, 그 이름은 자주 정은의 귀에 들렸다.먼저 동건의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뇌졸중으로 쓰러져 입원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그다음에는 GH그룹의 주가가 연일 하락했고, 며칠 연속 하한가를 기록했다.경제 뉴스가 연이어 나왔고, 금융 시장에 관심이 없는 정은조차도 텔레비전을 몇 번 돌리다 보면 GH그룹이라는 이름을 듣게 될 정도였다.화면 속에서 동건은 GH그룹의 대표 자격으로 인터뷰에 응하고 있었다. 말투는 차분했고 태도도 안정적이었지만, 얼굴에 쌓인 피로와 지친 모습은 숨길 수 없었다.궁지에 몰린 상황이라는 것이 분명히 느껴졌다.수민의 일로 고씨 가문과 큰 갈등을 겪었던 조기동 부부조차, 이 위기 앞에서는 나섰다.백지영은 동건의 어머니와 함께 카메라 앞에 섰고, 조기동은 직접 병원을 찾아 동건의 아버지 고창명을 문병했다.그리고 GH그룹에 60억 원의 현금 유동성을 지원했다.물론 아무런 대가 없이 이뤄진 일은 아니었다.사업가는 언제나 손해를 보지 않는다.그럼에도 이런 생사의 갈림길에서 조기동이 손을 내밀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보답을 바라지 말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이 소식을 들었을 때, 정은은 솔직히 놀랐다.“작은아버님, 작은어머님이 그렇게 고동건을 싫어하셨는데... 고씨 가문을 도와줬다고?”재석은 담담하게 말했다.“이건 감정의 문제가 아니야.”“그럼 뭐야?”“사업상의 계산이자 선택이지.”“수민이도 알아?”“응.” 재석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 수민도 동의한 거야?”재석은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정은을 봤다.“수민이는 너보다 장사 수완이 좋아.”과거의 증오와 엇갈린 감정, 지금의 이해관계와 거래.모순도 아니고, 이상한 일도 아니었다.장사의 세계에서는 이익이 가장 본능적인 기준이니까.정은은 숨을 내쉬었다.“역시 난 장사 체질은 아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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