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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Author: 십일

제1화

Author: 십일
알만한 사람들은 소정은이 강도겸을 미친 듯이 사랑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사랑은 자신의 생활도, 공간도 없이, 하루 24시간 강도겸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매번 이별 후 사흘이 지나지 않아 다시 돌아와 재회를 청했다. 누구나 이별이라는 말을 할 수 있지만, 정은은 절대 그러지 않았다.

도겸이 새로운 연인을 안고 들어올 때, 방안은 오묘한 정적이 5초간 흘렀다. 그러자 정은은 귤을 까던 손을 멈추고 말했다.

“왜 다들 말이 없어? 나를 왜 봐?”

“정은아.”

친구들은 걱정스러운 눈빛을 보냈다. 하지만 도겸은 아무렇지 않게 여자를 안고 소파에 앉았다. 노골적이고도 태연했다.

“생일 축하해, 선우야.”

정은은 자리에서 일어났다. 생일인 선우를 생각하며 상황을 더 악화시키고 싶지 않았다.

“화장실 좀 다녀올게.”

문을 닫을 때, 정은은 안에서 이미 대화가 시작된 것을 들었다.

“형, 정은이 여기 있잖아요. 미리 얘기했는데 왜 여자를 데려왔어요?”

“맞아! 도겸아, 이번에는 너무했어.”

“신경 쓰지 마.”

도겸은 여자의 허리를 매만지며 담배를 피웠다. 흰 연기 속에서 미소 짓는 모습이 마치 세상을 게임처럼 여기는 방탕한 사람 같았다. 남은 대화는 문이 닫혀서 정은은 듣지 못했다.

정은은 침착하게 화장실에서 나와 화장을 고치며 거울 속의 자신을 보았다.

“정말 비참하군.”

비참한 삶. 정은은 깊이 심호흡하며 결심했지만, 방으로 돌아와 문을 열었을 때, 정은은 참을 수 없이 문손잡이를 꽉 쥐었다.

도겸은 여자의 입술에 입을 맞추고 있었고, 타액이 두 사람 사이에서 티슈를 축축하게 적시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은 웃으며 소란을 피웠다.

“역시 도겸이네! 제대로 놀 줄 알아!”

“분위기 끝내주네, 한 번 더!”

정은의 문손잡이를 잡은 손이 떨렸다. 이 사람이 자신이 6년간 사랑한 남자라니. 지금, 이 순간 그저 헛웃음만이 났다.

“야, 그만해.”

누군가가 작게 경고하며 문 쪽을 가리키자, 모두가 일제히 그쪽을 보았다.

“정은, 돌아왔네? 이거 다 장난이야, 신경 쓰지 마.”

하지만 도겸은 말을 끊고 말했다.

“정은아, 오늘 여기서 만난 김에 우리 얘기 좀 하자.”

“그래, 말해.”

“이제 지루해졌어. 우리 끝내자.”

정은은 손가락을 꽉 쥐었고, 손톱이 손바닥에 파고들었다. 그러나 정은은 아픔을 느끼지 못했다. 6년간의 감정이 결국 지루해졌다는 한마디로 끝나버렸다.

“이 사람 좋은 여자야. 그래서 기회를 주고 싶어.”

정은은 무감각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

“우리 헤어졌지만, 여전히 친구야. J시에서 힘든 일 있으면 언제든지 날 찾아.”

“필요 없어.”

정은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다.

“헤어졌으면 깔끔하게 끝내야지. 그래야 그분한테도 공평하지.”

정은의 말에 도겸은 약간 놀란 듯 눈썹을 치켜올렸다.

“선우야.”

정은은 오늘의 주인공 전선우를 바라보며 말했다.

“생일 축하하고 다들 즐겁게 놀아. 나는 먼저 갈게. 저기 있는 귤은 내가 깐 거니까 모두 먹어, 아깝게 버리지 말고.”

도겸은 과일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귤은 예외였다. 하지만 까다로운 도겸은 귤의 흰 껍질을 모두 제거해야만 먹었다.

몇 년 동안, 정은은 도겸에게 매일 비타민을 보충해 주기 위해 귤을 까서 흰 껍질을 모두 제거하고 접시에 담아 그에게 주었다. 도겸이 기분이 좋을 때, 정은을 안고 애정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 여자친구는 너무 착해, 이렇게 현명하다니. 정말 결혼하고 싶게 만들어.”

도겸은 항상 정은이 무엇을 원하는지 알았지만, 결코 줄 생각은 없었다.

“내가 운전기사 보내줄게.”

“필요 없어, 차 불렀어.”

그러자 선우가 말했다.

“정은 누나, 제가 문 앞까지 데려다줄게요.”

하지만 정은은 손을 들어 거절하고, 뒤돌아 떠났다.

“형, 이번엔 정말 화난 것 같아요.”

“그럴 리 없어.”

“맞아, 둘이 얼마나 많이 싸웠는데? 매번 정은은 며칠 뒤에 다시 돌아와, 다음 모임 때는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번엔 5일.”

“나는 6일.”

도겸은 열린 방의 문을 보며 차갑게 웃었다.

“나는 세 시간, 그때 되면 다시 돌아올 거야.”

“형이 이기겠네요. 정은이가 형을 미친 듯이 사랑하는 걸 온 세상이 알잖아요.”

“하, 왜 나는 이렇게 날 사랑해 주는 여자가 없을까?”

“너? 꿈 깨!”

“하하하!”

...

집으로 돌아왔을 때는 이미 새벽이었고 정은은 짐을 싸는 데 30분을 보냈다.

정은은 이곳에 3년을 살았지만, 작은 짐가방 하나에 다 담을 수 있었다. 옷장에 입지 않은 명품 옷들과 착용하지 않은 보석들은 손대지 않았다.

유일하게 아쉬운 것은 벽에 가득한 전문 서적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내용은 이미 머릿속에 있었기에, 책 자체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화장대를 바라보며 정은이 서랍을 열자, 그 안에는 100억짜리 수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수표 아래에는 토지 증여계약서가 놓여 있었다. 비록 교외 지역이지만, 금액으로 치면 40억 정도는 될 것이었다.

이 두 가지 모두 도겸이 서명한 것이었고, 그들이 이별을 고할 때 도겸이 남긴 것이었다. 도겸은 정은이 가져갈 배짱이 없다고 확신했다.

‘6년을 140억으로 바꾼 거랑 같네.’

정은은 갑자기 그것이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몇 명의 여자가 그 정도 금액을 받을 수 있을까? 정은은 두 가지 모두를 가방에 넣었다. 주는 것을 굳이 안 받을 필요는 없었다. 또한 감정을 잃었을 뿐 돈을 얻지 않았는가? 정은은 흔한 로맨스 소설 속 비련의 여주인공이 아니었다.

“여보세요, 청소 업체죠? 급한데 가능한가요?”

“네, 대청소요. 돈 더 드릴게요.”

정은은 열쇠를 현관에 두고 택시를 타고 친구 집으로 향했다. 가는 길에, 청소 아주머니가 다시 전화를 걸어 확인했다.

[아가씨, 이 물건들을 다 버리실 건가요?]

“네, 알아서 처리하세요.”

그러고는 전화를 끊었다. 도겸이 집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밤이 깊었고, 청소는 이미 끝나 있었다. 몸에 진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러 두통이 났고, 넥타이를 느슨하게 풀며 소파에 앉았다가 그대로 잠들었다.

다음 날 아침, 주방에서 익숙한 그릇 소리가 들렸다. 도겸은 담요를 걷어내며 일어나, 한 손으로 이마를 문지르며 다른 손으로 물컵을 집으려 했다. 하지만 물컵이 없어서 손을 멈췄다. 그리고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돌아와서 담요도 덮어주면서, 꿀물은 왜 준비하지 않은 걸까? 이런 소심한 반항은 이제 더 이상 지겹지 않나? 하...’

도겸은 일어섰다.

“오늘은 네가...”

“도련님, 일어나셨군요?”

“순자 이모님?”

“세수하시고, 2분만 더 기다리시면 아침 식사가 준비됩니다. 추위에 떨지 않도록 난방을 틀었고, 걱정되어 담요를 하나 더 덮어드렸어요.”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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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아
으므므ㅡㅁ 너무 재미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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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952화

    문 두드리는 소리도 제법 컸고, 말하는 목소리도 일부러 낮추지 않았다.그런데도 정은은 깊이 자느라 끝내 깨지 않았다.재석은 그저 마음이 아플 뿐이었다.“엄마... 정은이가 애 낳을 때...”재석은 말을 잇지 못하고 잠깐 목이 메었다.강서원이 재석을 봤다.“응? 낳을 때 왜?”재석은 어렵게 말을 이었다.“아파서 토하기까지 했어요. 대체 얼마나 아픈 거예요?”강서원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은은 그 잠을 그대로 정오까지 잤다. 눈을 떴을 때는 이미 강서원이 돌아가고 병실에 없었다.결국 아침밥이 그대로 점심이 됐다.재석은 정은이 눈을 뜨자마자 바로 움직였다. 뜨거운 물을 받아오고, 컵을 건네고, 직접 세수를 시켜주고 손까지 닦아줬다.그 사이 정은이 몇 번이나 자기가 하겠다고 했지만, 재석은 단호하게 다 막았다.정은은 속으로 생각했다.‘나는 애만 낳았지, 생활 능력을 잃은 건 아닌데. 정말.’씻는 걸 마친 뒤에는 재석이 세심하게 정은의 얼굴에 세심하게 크림까지 발랐다.정은이 물었다.“당신, 크림도 챙겨왔어?”정은이 그렇게 묻는 것도 당연했다. 출산 가방은 전부 재석 혼자 챙겼으니까.커다란 가방 하나가 꽉 차 있었는데, 그 안에 뭐가 들어 있는지 정은은 아예 묻지도 않았고, 전혀 알지도 못했다.재석은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그럼. 우리 여보 얼굴도 소중한데 대충할 수 있나.”“말은 참 잘해...” 정은은 웃으면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가, 시간이 벌써 점심이라는 걸 보고 깜짝 놀랐다. “내가 이렇게 오래 잤다고?”“말소리도 안 들리고, 문 두드려도 안 깼는데, 당신 생각은 어때?”정은은 하품했다.“진짜 너무 졸렸어...”아이를 낳아내던 그때, 정은은 마치 천근만근 짓누르던 짐이 마침내 어깨에서 내려간 듯한 기분을 느꼈다.그저 홀가분했다.하지만 그 뒤를 따라온 건 극심한 피로였다.‘한숨 자고 싶다...’그런데 회복실에서는 의사가 잠들지 못하게 했고, 관찰을 마치고 병실로 돌아와서는 정은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951화

    현빈은 윤우의 이야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빠짐없이 다 이야기해 줬다.물론 임시호의 죽음에 관한 얘기도 포함해서였다.이야기를 마친 뒤 현빈은 고개를 들어 정은을 봤다. 그런데 정은은 눈도 깜빡이지 않고 현빈만 바라보고 있었다.현빈은 정은이 왜 이제야 말했냐고 서운해하는 줄 알고, 급히 입을 열었다.“그동안 너 임신 중이었고, 그것도 쌍둥이였잖아. 괜히 이 얘기 듣고 마음 복잡해질까 봐 일부러 말 안 했다...”“감사해요.”정은이 현빈의 말을 끊었다.현빈은 잠시 멍해졌다.“뭐?”“임시호가 얼마나 교활하고,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저는 알아요. 그런데 저 때문에 오빠가 그런 사람을 건드렸잖아요. 만약 그 사람이 안 죽었으면, 오빠는...”“근데 죽었잖아, 그렇지?”정은은 그 말에 잠깐 말을 잃었다.정은은 정말 묻고 싶었다.‘그게 정말 오빠 손에 피를 묻힐 정도로 중요한 일이었어?’하지만 굳이 물을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현빈이 그럴 가치가 없다고 여겼다면 애초에 그런 일을 하지 않았을 테니까.원래는 정은이 짊어져야 할 일이었는데, 그걸 현빈이 대신 감당하게 됐다.이 큰 빚은, 어쩌면 정은이 평생을 두고도 다 갚지 못할 것이다...현빈은 마치 정은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살짝 웃었다.“부담 가질 필요 없어. 전부 내가 원해서 한 일이니까. 그냥... 보상이라고 생각하면 돼.”“보상이요?” 정은은 미간을 좁혔다. “오빠는 저한테 빚진 거 없어요.”“누가 없대?”현빈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때 나는 네가 강도겸과 만나고 헤어지고를 반복하는 것도 봤고, 도겸이가 너한테 상처 주는 것도 여러 번 봤어. 그런데도 나는 한 번도 나서서 널 지켜주지 않았지.”“나중에 가만히 생각해 봤어. 내가 못 지킨 게 아니더라. 그냥... 내가 너무 이기적이었던 거야.”“네가 강도겸의 본모습을 똑똑히 보고 완전히 마음을 접길 바랐어. 그래서 도겸이 너한테 상처를 주고, 배신하고, 또 너를 울리고 무너지게 하는 걸 알면서도 나는 그대로 놔뒀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950화

    “조심해!”현빈이 곧바로 앞으로 다가와 정은의 몸을 붙잡아 안정시켰다.다행히 큰일은 아니었다.“감사해요, 오빠.”현빈은 웃으며 숟가락을 건넸다.“천천히 먹어.”“네네.”정은은 숨 돌릴 틈도 없이... 달걀프라이를 세 개나 먹어 치웠다.봉수진은 그 모습을 보다가 눈가가 금세 젖었다.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고, 얼마나 고생했으면 저렇게 허기진 채 먹을까 싶어서였다.그래도 많이 부쳐오길 잘했다.정은이 말했다.“배불러요.”봉수진이 물었다.“하나 더 있는데, 그것도 먹을래?”정은은 얼른 손을 내저었다.“정말 더는 못 먹겠어요, 외할머니...”“그래, 그럼 그만 먹자.”현빈이 컵을 건넸다.“물 좀 마실래?”“네네.”정은이 손을 뻗으려 하자, 현빈은 빨대를 직접 잡고 정은 입가에 가져다줬다.“감사해요, 오빠.”현빈은 입가를 살짝 올렸다. 자신이 뭔가라도 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괜히 기뻤다.그때는 이미 새벽 다섯 시였다.밤새 이렇게 정신없이 지냈으니, 정은은 다들 몹시 지쳤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저 이제 괜찮아요. 아버님, 어머님,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그리고 오빠, 형님과 아주버님도 먼저 들어가서 쉬세요.”가장 먼저 지언과 리아가 인사를 하고 나섰다.나가기 전, 리아가 말했다.“이틀쯤 뒤에 다시 보러 올게.”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좋아요.”봉수진과 이춘재도 돌아가기로 했다.봉수진이 말했다.“정은아, 외할머니가 조금 있다가 아침밥 가져다줄게.”정은이 막 뭐라고 말하려던 때, 강서원이 웃으며 끼어들었다.“어머님, 좀 쉬세요. 아침에는 제가 가져올게요. 어머님 마음은 알겠는데, 저녁밥을 어머님이 가져오시는 걸로 할까요?”봉수진은 잠깐 생각하더니 그 제안이 괜찮다고 여겼다.이춘재도 만족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봉수진은 이제 나이가 적지 않았다. 지금이 새벽 다섯 시인데, 아침밥을 일곱 시나 여덟 시에 다시 가져오려면 집에 가서 제대로 잠도 잘 수 없을 것이다.이춘재는 아내가 그렇게 무리하다가 버티지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949화

    “오빠? 외할아버지, 외할머니...”정은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봉수진과 이춘재가 걱정할까 봐, 정은은 연락할 때 두 사람만은 일부러 피했었다. 그런데도 결국...봉수진은 금방이라도 눈물이 떨어질 듯한 눈으로 정은을 바라봤다. 속상하고 화도 나고, 마음도 아픈 기색이 그대로 묻어났다.“이렇게 큰일을 우리한테 숨겨? 몸 회복하고 나면 그때는 내가 그냥 안 넘어가.”정은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어요.”이춘재도 한마디 보탰다.“네 엄마가 전화 안 했으면 우리는 아직도 모르고 있었겠다. 정은아, 너는 정말...”이춘재도 알고 있었다. 외손녀가 자신과 봉수진을 배려해서 그런 거라는 걸.하지만 분명 전부터 약속했었다. 출산할 때가 되면 꼭 가장 먼저 알려주기로.그런데 일이 이렇게 됐으니, 두 사람이 조금 서운하고 화가 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봉수진이 목이 메어 말을 이었다.“다행히 네가 무사해서 그렇지, 아니었으면 내가 정말...”이미숙과 소진헌은 다른 도시에 있어 바로 달려올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봉수진과 이춘재마저 자리에 없었다면, 정은 쪽 식구는 사실상 아무도 정은의 출산 현장에 오지 못했을 것이다.봉수진이 사돈댁을 못 믿는 것도 아니었고, 재석을 못 믿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사람 마음이라는 걸 믿지 못할 뿐이었다.정말 중요한 때에 자기 식구를 제일 걱정하고 돕는 건 결국 자기 식구뿐이니까.현빈은 제자리에 선 채, 이춘재와 봉수진 너머로 막 출산을 마친 정은을 가만히 바라봤다.정은은 안색이 조금 지쳐 보였고, 머리카락도 흐트러져 있었다. 그래도 눈빛만은 또렷하고 환했다.원래는 높이 불러 무서울 정도로 커 보이던 배도 이제는 푹 꺼져 넉넉한 병원복 안에 가려져 있었다.그 모습을 보면 정은이 얼마나 힘든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있었다.그런데도 살짝 올라간 입가에는 처음 엄마가 된 사람의 기쁨이 분명히 어려 있었다.고생은 했지만, 정은은 그마저 기꺼이 받아들인 듯했다.정은을 병실까지 데려가는 내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948화

    의사는 잠깐 말을 멈췄다. 산모 보호자 쪽의 망설임과 의문을 눈치챈 듯, 먼저 설명을 덧붙였다.“원래 산후 관찰 시간은 두 시간으로 정해져 있고, 사실 그 정도면 충분합니다. 다만 하찬영 교수님께서 30분 정도 더 지켜보라고 하셨습니다.”“그러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별문제는 없을 겁니다.”그제야 재석은 알겠다고 답하고, 의사가 조금 전까지 앉아 있던 자리에 가서 앉았다.정은도 핸드폰을 내려놓았다.아까는 너무 졸려서 자칫 잠들 뻔했다. 의사가 핸드폰이라도 보면서 버티라고 해서 그제야 꺼내 들었던 거였다.사진첩 안에는 두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체중계 위에 올려졌을 때 찍힌 사진이 들어 있었다.한 아이는 아주 얌전했고, 다른 아이는 작은 발을 번쩍 들고 있었다.정은은 그 사진을 몇 번이고 들여다봤다. 보면 볼수록 사랑스러웠다.정은이 입을 열었다.“두 꼬맹이 봤어, 못 봤어?”재석은 잠깐 굳었다.정은의 마음이 철렁 내려앉았다.“무슨 일 있었어? 나한테 숨기지 마!”“아니, 급한 일은 없고. 그냥...”“나 아직 애들 못 봤어.”정은은 말문이 막혔다.재석은 조금 민망한 듯 덧붙였다.“당신 보려고 방호복 갈아입는 데만 정신 팔려서 바로 들어왔거든. 애들 볼 틈이 없었어.”재석이 되물었다.“당신은 봤어?”정은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당연하지.”아이들이 태어나자마자 의사가 가장 먼저 정은 앞에 데려와 성별부터 확인시켜 줬다.그다음에는 몸무게를 재고, 기저귀를 채우고, 배냇저고리까지 입혔다.다 입힌 뒤에는 다시 정은 곁으로 데려왔다.하찬영은 정은에게 윗옷을 올리게 한 뒤, 아이들을 정은의 가슴 위에 엎드리게 했다.정은이 설명했다.“그거 캥거루 케어라고 하더라. 교수님 말로는 아기랑 엄마 사이에 친밀감이 생기는 데도 도움이 되고, 수유 관계 형성에도 좋대.”“또 시상하부에서 옥시토신이 나오게 해서 자궁수축을 돕고, 오로 배출도 빨라진다고 했어. 아무튼 아기한테도 좋고, 엄마한테도 좋대.”재석은 그 말을 듣고 잠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947화

    분만실 문이 열리고, 하찬영이 밖으로 나왔다.기다리던 사람들이 일제히 앞으로 몰려들었다.재석이 가장 먼저 물었다.“제 아내는요?”강서원이 다급하게 뒤를 이었다.“산모랑 애들은 다 괜찮아요?”조기봉도 바로 입을 열었다.“낳은 거지?”리아가 물었다.“자연분만했어요, 제왕절개수술 했어요?”지언은 한발 늦는 바람에 안쪽으로 끼어들지 못하고, 리아 뒤에 선 채 코끝만 괜히 한 번 만졌다.하찬영은 먼저 재석을 바라봤다.“축하드립니다. 아드님 한 분, 따님 한 분입니다.”그 뒤에야 사람들을 한 번 둘러보며 말했다.“자연분만으로 잘 끝났고, 산모와 아이들 모두 무사합니다.”“조금 있다가 회복실 관찰 시간이 지나면 산모는 먼저 병실로 이동하실 수 있습니다. 다만 쌍둥이 조산이라 위험 요소가 전혀 없다고는 볼 수 없어서...”“아기들은 오늘 밤 신생아중환자실에서 경과를 봐야 합니다. 큰 이상이 없으면 내일 아침에는 나올 수 있습니다.”말이 끝나자마자, 안에서 간호사 두 명이 아기 침대가 달린 이동용 카트를 밀고 나왔다.두 아이는 각각 분홍색 포대기와 파란색 포대기에 싸여 있었다.한 아이는 눈을 꼭 감은 채 얌전히 있었고, 다른 아이는 작은 발을 바둥거리며 입도 오물오물 움직이고 있었다.하찬영이 간호사들에게 잠시 멈추라는 눈짓을 보냈다.“보호자들, 가까이 오셔서 보셔도 됩니다. 다만 너무 바짝 붙지는 마시고, 공기 통할 정도 거리는 유지해 주세요.”그제야 사람들이 조심스럽게 앞으로 다가갔다.“어? 재석이는 어디 갔어? 얼른 와서 애들 봐야지.”이쪽을 봐도 없고 저쪽을 봐도 없었다.“아버지, 엄마, 저 대신 잠깐 봐주세요. 저는 먼저 들어가서 정은이 곁에 있을게요.”재석은 이미 방호복을 전부 갖춰 입고 소독까지 마친 상태였다. 얼굴도 단단히 가려져 있었으니, 다들 한참을 찾아도 못 알아본 게 당연했다.강서원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아? 어, 그래! 얼른 들어가. 내가 대신 보고 있을게.”강서원은 정말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손자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289화

    사실... 재석은 입맛이 썼다.창밖으로 달빛이 물처럼 쏟아지고, 방 안은 봄기운이 가득했다.모든 게 끝난 뒤, 재석은 정은을 품에 안았다.정은은 그의 가슴팍에 기대어, 게으르고 한가로운 고양이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그런데 정은이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 화들짝 몸을 일으켰다.“아, 큰일 났다... 중요한 거 까먹었어요!”말하며 후다닥 옷을 챙겨 입고, 거울 앞에 서서 흐트러진 머리를 대충 정리했다.재석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왜 일어나? 어디 가려고?”“스미스 교수님이랑 열 시 반에 미팅 잡았었는데, 깜빡했어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34화

    리아는 웃음기 머금은 얼굴로 다가왔다. 겉으로 듣기엔 장난스러운 말투였지만, 귀 기울여 들으면 그 안에 담긴 미묘한 뜻이 느껴졌다.“엄마!”두 아이가 뛰어가자 리아는 자연스럽게 한 팔에 아이 하나씩 안아 올렸다.그러다 문득 뭔가 떠오른 듯, 걸음을 멈추고 뒤돌아보았다.“지언 씨, 거기서 얼마나 더 서 있을 건데요?”지언은 잠깐 멈칫했다.“금방 갈 거예요.”리아는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내가 말을 모호하게 했나 봐요? 들어와서 애들이랑 좀 더 놀다 가라는 뜻이었는데요.”그 말에 시선을 옆으로 돌려 수환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311화

    “아, 여기가 어디라고 이렇게 소리를 질러? 여긴 사무실이야! 소리 지를 거면 운동장으로 가서 해.”하린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마음을 다잡았다. ‘참자, 딱 한 번만 더 물어보자.’“저기... 혹시 이거 누가 평가한 건지 알 수 있을까요?”직원은 귀찮다는 듯 입꼬리를 삐죽이며 하린 손에 들린 서류를 턱짓으로 가리켰다.“거기, 2페이지 넘겨봐. 지도교수 사인 있을 거야.”하린은 재빨리 페이지를 넘겼다.다음 순간, 이를 악물었다.‘역시... 소정은.’하린은 서류를 움켜쥔 채 바람처럼 사무실을 뛰쳐나갔다.“야, 쟤 소정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1271화

    식사 자리 후반부 내내 강서원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묵묵히 밥만 먹었다.주덕순 역시 소진호의 견제로, 더 이상 별다른 말실수는 하지 않았다.식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갑자기 룸 문이 열리고, 전통 복장을 입은 직원 몇 명이 줄줄이 들어섰다.모두 미소를 띤 채, 손엔 붉은 벨벳천으로 덮인 쟁반을 하나씩 들고 있었다.순간, 모두가 멍해졌다.조기봉조차도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강서원은 의외로 아주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처음 인사드리는 자리라 뭘 좋아하실지 몰라서요. 자그마한 성의예요. 다들 부담 없이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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