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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82화

Author: 십일
재운은 우물쭈물하며 말했다.

“아니요... 못 받았어요...”

진일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당황하지 말고 기숙사에서 기다려. 내가 직접 확인하고 올게.”

말을 마치고는 곧장 기숙사를 나와 송지혜의 사무실로 향했다.

문을 두드리려던 순간, 안에서 대화 소리가 들려왔다. 진일은 멈칫했다.

송지혜가 말했다.

“이번에 꽤 잘했어. 첫 도전인데도 최우수상을 받아왔잖아.”

이 성과는 학과에 명예를 가져왔을 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에게도 긍지를 안겨주었다.

몇 달간 쌓였던 울분을 단번에 해소할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송지혜는 만족하지 않을 리가 없었다.

지예는 싱긋 웃으며 말했다.

“사실, 이 모든 게 다 소정은 덕분이에요. 이모, 그 애 진짜 대단하지 않아요? Science나 네이처 학술지 같은 곳에 논문을 쉽게 낼 수 있고, 이런 대학생 경진대회에서도 이렇게 완성도 높은 연구 과제를 내놓다니...”

그녀의 말투에는 질투가 묻어 있었다.

지예는 비록 정은의 연구 결과를 가로채긴 했지만, 상대의 실력만큼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송지혜는 차를 홀짝이며 아무렇지 않다는 듯 말했다.

“그 정도가 대단한 거야? 흥, 소정은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도 할 수 있어. 그 애는 운이 좋아서 앞서 나간 것뿐이야. 언젠가 너도 충분히 따라잡을 수 있어!”

지예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속으로는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내가 소정은을 따라잡는다고? 허, 그런 생각은 꿈에서조차 해본 적이 없는데.’

한때 ‘천재 소녀'라는 타이틀을 등에 업고 살았던 지예는 자신이 정말 천재라고 착각했었다.

하지만 이번 일을 겪으며 그녀는 뼈저리게 깨달았다.

세상은 넓고, 고수는 많았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이 있었고, 자신은 그저 우물 안의 개구리일 뿐이었다.

예전의 거만함과 자만은 결국 우물 속 세상을 바라보며 스스로를 과대평가한 어리석음에 불과했다.

소정은은 정말 강했고, 지예는 한없이 부족했다.

하지만 어쨌든 이번 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것은 사실이었다.

어떤 방법을 썼든 결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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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3화

    “이모?” 지예는 의아해했다.“네가 일을 시켰으면서 마지막에 이름을 지워버리면, 재운이가 순순히 받아들일 것 같아?”“그렇든 말든 왜 제가 신경 써야 하는 거죠?” 지예는 턱을 치켜들었다.“겁낼 필요야 없지. 시골에서 온 가난뱅이가 뭘 할 수 있겠어? 하지만 생각해 봤어? 만약 재운이가 마음속으로 불만을 품고 있다가, 다른 사람들은 다 상을 받았는데 자신만 아무것도 못 얻게 되면? 그러다 네가 저지른 일을 눈치채고, 다 같이 망하자는 식으로 폭로해 버리면 어쩌려고?”“그럴 리 없어요... 그 바보가 뭘 알겠어요? 팔려 가도 돈 세며 좋아할 놈인데. 걔가 그렇게까지 똑똑할 것 같아요?”송지혜는 그렇게 낙관적이지 않았다. “재운 뒤에 진일이 있다는 걸 잊지 마.”지예는 코웃음을 쳤다. “그 사람 언급하지도 마세요. 생각하면 화가 나니까요. 이모, 그거 아세요? 지금 그 사람 버젓이 교외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던데요? 하루 종일 밖에서 돌아다니느라 학생답지도 않다니까요!”“지난주에 논문 두 편 빨리 내라고 했더니, 듣자마자 전화를 그냥 끊어버린 거 있죠! 점점 더 건방을 떠는 거 같아요. 교수님인 이모를 전혀 신경도 안 쓰는 것 같고요.”송지혜의 표정이 싸늘해졌다.지예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부채질했다. “게다가, 걔 소정은 팀들과 꽤 친한 사이 같던데요?”“누가 그래?”“그건 굳이 남한테 들을 것도 없죠. 눈으로 보면 다 아는 걸요! 보통 사이였으면, 아니, 아예 아무 사이도 아니었으면, 소정은이 실험실 완공 기념으로 따로 초청장을 보냈겠어요?”“뭐라고? 진일이 초청장을 받았다고?”“어머, 이모, 모르셨어요?” 지예는 일부러 놀란 척하며 속삭였다. “이거 이미 학교에 다 퍼졌어요. 다들 진일 선배가 대단하다니, 얼굴값 한다니, 아무튼 난리도 아니에요!”“이 자식이!”지예는 속으로 미소를 지었다.“아까 재운이 이름을 지웠다고 했지? 걔는 지금 조용하니?”“네. 찍소리도 못 하고 있어요. 지금쯤 어딘가에서 몰래 울고 있겠죠?”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4화

    게시글은 무려 10페이지에 달했고, 그 내용은 충격적이었다.고발자는 다름 아닌 송지혜의 제자인 진일이었다. 그는 송지혜가 논문을 조작하고, 사적으로 대학원생을 선발하며, 뇌물을 받고 외부 기업과 결탁한 것은 물론, 조카인 지예를 위해 대필 논문까지 작성하게 했다고 폭로했다.게시글 말미에는 PDF 파일이 첨부되어 있었는데, 이를 열어보면 총 30여 페이지가 넘는 송지혜의 비리와 부정행위가 낱낱이 기록되어 있었다. 구체적인 증거 자료까지 포함된 이 문서는 단순한 의혹을 넘어선 확실한 폭로였다.주요 내용은 아래와 같았다.[학생들을 착취하고 각종 선물을 요구한 정황.][제자들에게 정신적 압박을 가하며 강압적으로 일을 시킨 사례.]가장 충격적인 것은, 송지혜가 진일의 연구 성과를 가로채고, 이를 지예의 성과로 둔갑시킨 것이었다.이 모든 내용은 명확한 증거와 함께 공개되었고, 서비대학교의 사이트는 순식간에 폭발적인 반응을 보였다.[세상에, 30 페이지가 넘다니. 정말 충격이야. 이게 전부 사실이라면 정말 끔찍한데?][요약해 줄 사람 없나? 너무 길어서 다 읽긴 힘든데.][이건 명백한 교수님의 권력 남용이애. 제자가 이렇게까지 나서는 걸 보면, 얼마나 참다가 폭로한 것이겠어.][헉, 고등학생 때부터 이런 짓을 해왔다고? 그럼 특혜며 대학원 진학까지 다 부정입학 아니야?][천재 소녀? 웃기지 마. 부정행위로 쌓아 올린 가짜 성공이겠지!][그런데 교수님의 제자가 직접 폭로하는 경우는 처음 본다. 보통은 익명으로라도 조심스럽게 올리는데, 실명으로 터뜨린 걸 보면 진짜 궁지까지 몰렸던 모양이야. 만약 이게 사실이 아니면, 이 학생도 정말 악인이 다름없어!][읽다가 소름 돋았어. 매일같이 교수한테 갈굼당하는 나로선 너무 공감돼서 눈물 날 지경이야... 난 이런 용기가 없지만, 그래도 남진일을 응원하겠어!][와, 진일 선배 정말 너무 비참한대?][진짜 최악이다. 연구 성과를 가로챈 것도 모자라 조카 대신 논문을 써주게 했다고? 이 정도면 범죄 아니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5화

    “험난한 선택이요?”민지는 이해하지 못했다.“고발은 어렵지 않을 텐데. 증거만 충분하면 여론을 이용해 직접 송지혜 교수님을 무너뜨릴 수 있잖아요. 이게 정식으로 법적 절차를 밟는 것보다 훨씬 빠를 텐데.”여론이 커지면 학교도 모른 척할 수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지켜보고 있으니까.서준은 고개를 끄덕였다.“효율만 따지면 고발이 가장 빠른 방법이지. 하지만 그 게시물을 다시 한번 자세히 봐봐.”“봤어. 몇 번이나 봤는데, 무슨 문제라도 있어?”“진일 선배는 실명으로 고발했어.”“그래서?”민지는 고개를 갸웃거렸다.서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민지는 지금 순진무구한 얼굴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그는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학생이 교수님을 고발하면 두 가지 결과뿐이야. 첫째, 성공해서 교수님이 처벌을 받는다. 둘째, 실패해서 교수님은 여전히 멀쩡하다. 하지만 어떤 결과든 학생의 입장에 있어 이후의 상황은 지옥과 다름없어.”민지는 눈살을 찡그리며 물었다.“실패하면 교수님한테 괴롭힘을 당할 수도 있다는 건 이해해. 그런데 왜 성공해도 마찬가지란 거야?”서준은 조용히 되물었다.“그런 성공했다고 치자. 그다음은?”“당연히 그 교수님이 해임되거나, 감옥에 가겠지!”“맞아. 그럼 교수님이 해임되면, 그 학생은?”서준은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특히 진일 선배처럼 마지막 1년을 앞둔 사람이라면? 곧 졸업을 앞둔 상황에서 갑자기 지도교수가 사라지면 어떻게 될까?”민지는 순간 말을 잃었다. 이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듯했다.교수가 해임되면 진일은 제때 졸업할 수 없게 된다.설령 학교 측에서 지도교수를 바꿀 기회를 준다고 해도, 몇 년 동안 연구한 분야가 바뀌면 주제 자체를 다시 설정해야 한다.그렇게 되면 지난 3년 간의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졸업을 하지 못 한 대학원생이 학부생과 뭐가 다를까?아니, 어쩌면 학부생보다도 더 못할 수도 있었다.동기들 중 학부생들은 나이도 더 어리고, 앞으로 기회도 많았다.한참 동안 침묵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6화

    서준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안 되는 건 아닌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는 좀 더 생각해 봐야 해.”정은은 생각에 잠긴 듯했다.그러다 두 사람은 동시에 그녀를 바라보았다.“뭐야...” 그녀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왜 둘 다 날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거야?”“정은 언니, 좋은 방법 좀 생각해 봐요. 우리 같이 진일 선배 도와줘요. 이건 선배의 힘을 빌려 송 교수를 처치하는 거잖아요. 기왕이면 빨리 이 문제를 해결하고 싶어요. 후배들이 피해 보는 걸 막아야 하니까요.”서준도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 그동안 우리도 당한 게 많으니까, 이번엔 송 교수가 죗값을 치를 차례예요.”정은의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민지야, 진일 선배한테 전화 걸어. 그리고...”...정말 정은과 서준의 예상대로였다.글이 처음 올라왔을 땐 반응이 뜨거웠다.시간이 지나면서 더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고, 조회수도 10만을 돌파했다.하지만 학교 측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고, 송지혜 또한 묵묵부답으로 일관하자 점차 흥미를 잃은 사람들은 하나둘씩 사라졌다.그와 함께 게시물의 열기도 식어갔다.이렇게 되면 며칠 안으로 이번 논란은 조용히 사그라들 것이고, 결국 아무도 신경 쓰지 않게 될 것이다.“풉.”송지혜는 사태를 계속 주시하고 있었지만, 표정은 태연하기만 했다.마치 자신이 고발당한 게 아닌 듯, 오히려 비웃음을 터뜨렸다.하지만 이 같은 상황에서, 지예는 달랐다.진일이 글을 올린 순간부터 그녀는 멘탈이 무너질 지경이었다.사흘 내내 울기만 했다.눈물로 흠뻑 젖은 뺨이 마르기도 전에 다시 눈물이 흘렀고, 그 와중에도 휴대폰을 붙잡고 미친 듯이 사이트를 확인했다.댓글 속 끝없는 비난과 조롱을 보며 결국 또 울음을 터뜨리다 기절해버렸다.그 모습을 본 송지혜가 혀를 차며 소리쳤다.“쯧, 한심한 것! 내가 죽기라도 했어? 벌써부터 상이라도 지내는 거야? 날 저주하는 거냐, 아니면 내 속 뒤집히게 하려는 거야?”말을 마치자마자 송지혜는 성큼성큼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7화

    짝짝짝-송지혜가 박수를 쳤다.“그런데 넌 잊었니? 내가 네 지도교수야. 내가 무너지면, 네가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아?”“사제 간의 정을 봐서 기회를 줄게. 이번 일은 네가 꾸민 자작극이었다고 인정한 뒤 나에게 공개적으로 사과해. 그러면 난 이 일을 없던 걸로 해줄 수도 있어. 넌 정상적으로 졸업할 수 있고.”진일이 씁쓸하게 입꼬리를 구부렸다.“이미 결심했기에 후회 같은 건 없어요.”충혈된 눈, 지친 얼굴. 하지만 그의 눈빛은 그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빛났다.“그리고 한가지 여쭤보고 싶어요. 교수님은 가슴에 손을 얹고 대답하세요. 제가 신고한 내용이 사실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으세요?”송지혜가 코웃음을 쳤다.“그래서? 그게 뭐 중요한데? 좋아, 네가 끝까지 버틴다면 나도 사제 간의 정을 고려하지 않겠어.”진일은 우습다는 듯이 피식 웃었다. ‘사제 간의 정?’그녀에게 있어, 진일은 언제나 부르면 오고, 필요 없으면 버리면 되는 존재였다. 애초에 사람 취급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물론 진일은 침묵할 수도 있었다. 단지 6개월만 버티면 되니까. 졸업장을 들고 이곳을 떠나면, 송지혜라는 이름도 다시는 들을 일 없을 것이다.‘하지만 내가 떠난 뒤 남은 사람들은 어떡하지?’재운 같은 피해자는 또다시 생길 것이고, 이런 일들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그는 졸업하면 자유를 누릴 수 있었지만, 남겨진 사람들은 그 자유를 누릴 수 있을까?‘그 아이들은 결국 높은 곳에서 몸을 던지는 선택을 하게 되지 않을까?’진일은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이건 단순히 그 자신의 일이 아니었다.진일은 이제야 깨달았다. 누군가가 나서야 한다는 것을.누군가는 이 어리석어 보이지만 꼭 해야 할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을.전에 진일은 정은의 용기에 탄복한 적이 있는데, 지금, 그는 자신도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했다.두 사람은 결국 불쾌하게 헤어졌다.떠나기 전에 송지혜는 매섭게 경고했다.“나도 인내심이 많은 사람이 아니야. 넌 얼른 내가 말한 대로 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8화

    [이 순간부터 공부의 의미가 이미 변했어.]누군가 이런 댓글을 달았다.[나는 어릴 때부터 공부를 좋아하지 않았어. 하지만 공부를 잘하는 친구들이 늘 부러웠어. 그 친구들은 오랜 시간 노력했고, 먼 길을 걸어 마침내 최고의 학부에 들어가서 공부할 수 있었으니까. 그러나 아무도 내게 그곳에 깊고 어두운 심연이 도사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해주지 않았어.][나는 일반 대학 출신이라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차마 할 수가 없군. 그렇지만, 그래도 뭔가 남기고 싶어.][이번만큼은 꼭 이겨라.][나는 실패자일지 몰라도, 그 아이는 아니야. 그 아이는 내가 어릴 때부터 동경해온, 노력으로 빛나는 사람이니까.][난 진일이 무너지는 걸 보고 싶지 않아요.][남진일, 네 앞날이 밝고 찬란한 길이 되길 바랄게. 너의 인생이 눈부시게 펼쳐지길.][시든 꽃잎을 모아 엉성한 시집을 만들지 말고, 세상을 뒤흔드는 책 속의 가장 뜻깊은 한 장을 써 내려가야 해!]...정오 12시, 진일의 두 번째 게시글이 주요 온라인 커뮤니티에 올라왔다.이번엔 10분짜리 녹음 파일이었다.진일은 재운의 일을 해결하러 교수 사무실을 찾았으나, 문 앞에서 뜻밖의 대화를 엿듣게 되었다.송지혜와 서지예.이모와 조카의 대화를.진일은 그 녹음을 그대로, 한 치의 편집도 없이 올렸다.자동 생성된 자막이 전부였다.오후 1시.[서비대 학생, 자신의 지도교수를 고발하다.]이 태그가 순식간에 주요 SNS을 독차지하며 실시간 검색어 1위를 차지했다.수많은 네티즌이 서비대학교 공식 사이트로 몰려가 고발 방법을 찾았고, 결국 서버가 붕괴되었다.학교 공식 계정 역시 ‘폭격’을 당했다.댓글 창은 온통 진일을 위한 댓글로 뒤덮였다....한편, 휴가 중이던 교내 주요 부서의 책임자는 긴급 복귀하여 곧바로 학교로 향했다.“송지혜! 또 송지혜야!” 이제 사람들은 그 이름만 들어도 분노를 감추지 못했다. 국내 최상위권 명문으로 손꼽히는 서비대학교, 오랜 역사와 자부심을 지닌 학교가 한 사람으로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89화

    서비대학교 본부 행정실에서.“이제 우리 학교 공식 입장을 발표한 지 두 시간이 지났는데, 지금 여론의 흐름은 어떻게 됐어?”비서는 말을 하지 않았다.“왜 대답이 없지?!”그게...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랐습니다.”행정실 실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상했던 대로였다.결국, 고발 사건이 이렇게까지 커졌으니, 학교 측의 공식 입장이 주목받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반응은?”“별로 좋지 않습니다.”“그게 무슨 뜻이지?”“네티즌들은 전부 남진일 학생이 어떻게 될지, 예정대로 졸업할 수 있을지에 관심이 쏠려 있습니다.”행정실 실장은 순간 얼어붙었다....한 고급 아파트 단지에서.“망했어... 이제 끝장이야...”지예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채 온몸을 덜덜 떨었다. 정신을 차리자마자 황급히 핸드폰을 내던지고 침실로 뛰어들었다.“이모! 이모! 빨리 일어나세요, 큰일 났어요!”송지혜는 깊은 잠에 빠져 있었고, 조카의 목소리를 들었지만 몸을 살짝 움직였을 뿐 눈조차 뜨지 않았다.“이모! 진짜 심각한 일이에요!”지예는 다급하게 송지혜를 흔들며 깨우려 했다.그러자 송지혜는 갑자기 눈을 번쩍 뜨더니 반사적으로 지예의 손등을 탁 하고 내려쳤다.“아침부터 왜 이렇게 시끄럽게 떠드는 거야! 좀 편하게 자게 놔둘 수 없어?!”지예는 울 것 같은 얼굴로 손등을 감싸 쥐었다. 맞은 곳이 따끈하게 아팠고, 가슴은 더욱 불안감으로 가득 찼다.그녀는 울먹이며 외쳤다.“이모, 큰일 났어요! 지금 이러고 계실 때가 아니에요!”송지혜는 짜증 난 듯 침대에서 일어나 앉았다.“내가 몇 번을 말해, 침착하라고! 침착 좀 해! 너 지금 거울로 네 꼴 좀 봐! 울거나 소리 지르거나, 아니면 소파에 바짝 붙어서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거나... 도대체 정신을 어디다 두고 다니는 거야?”“이모! 남진일이 또 신고했어요!”지예는 다급하게 발을 굴렀고, 눈물이 눈가에 그렁그렁 맺혔다.그러자 송지혜는 비웃듯이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하! 학교 사이트가 자기의 것이라도 되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790화

    지예의 시각에서, 상대방의 얼굴이 순식간에 핏기를 잃는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방금 전까지 거만하게 굴며 태연하고 의기양양하던 표정이 순식간에 공포와 혼란, 그리고 믿을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바뀌었다.“아, 아니... 말도 안 돼... 하루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어떻게...”지예는 비웃듯이 말했다.“여론은 원래 순식간에 변하는 법이죠. 이모가 어제 밖에서 돌아와서 곯아떨어지는 동안, 무슨 일이든 일어날 수 있었겠죠.”“남진일 이 빌어먹을 자식! 학교 사이트에서 난리 친 것도 모자라, 감히 이 일을 SNS에 올리다니?!”“왜 못 하겠어요?” 지예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이모는 졸업을 빌미로 협박까지 하셨잖아요. 이미 더 나빠질 것도 없는 상황에서, 당연히 죽기 살기로 덤벼들겠죠. 가만히 앉아서 당할 바에야 어떻게든 발버둥 치는 게 낫지 않아요?”찰싹.손바닥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화끈거리는 느낌이 얼굴에 퍼졌다.“너, 대체 누구 편을 드는 거야?!” 송지혜가 격분하며 소리쳤다. “내가 무너지면, 넌 멀쩡할 것 같아?!”그러나 이번에 지예는 울지도, 반항하지도 않았다.그저 천천히 고개를 돌려, 맞은 볼이 붉게 부어오른 채 상대를 똑바로 바라보았다.송지혜는 정말 손에 힘을 주었다.“왜... 왜 그렇게 날 쳐다봐?”그 눈빛이 섬뜩했는지, 송지혜가 본능적으로 움찔하며 뒷걸음질쳤다.지예의 목소리는 싸늘했다.“당연히 이모가 겁에 질려 허둥대는 모습, 스스로 판 함정에 빠져 허우적대는 모습, 높은 곳에서 나락으로 추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는 거겠죠. 그리고, 스스로 초래한 파멸이 눈앞에 다가왔다는 걸 깨닫는 모습까지요.”“너...” 송지혜는 다시 손을 들어올렸다.하지만 이번엔 지예가 먼저 움직였다.번개처럼 그녀의 손목을 낚아채더니, 힘껏 밀쳐 벽으로 내던졌다.쿵.벽에 부딪힌 충격으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이제 두 번 다시 저를 때리게 놔두지 않을 거예요!”지예가 이를 악물고 외쳤다.“나는 이모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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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2화

    정은은 조수석 문을 열고 차에 올랐다. 안전벨트를 매고 창밖을 슬쩍 바라봤다. 공장은 호텔에서 10km 떨어진 개발지구에 자리 잡고 있었다.은혁이 운전대를 잡으며 말을 이어갔다. “그 구역은 첨단 기술 산업 클러스터로 지정돼 있어서, 기술 협력 프로젝트도 대부분 그쪽으로 집중되고 있어요.” “정은 씨가 찾는 그 새로운 감온 정확도 소재는 우리랑 CG그룹이 공동 개발한 건데, 지금까지 1세대부터 3세대까지 세 가지 버전이 있어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이며 집중했고, 중간중간 전문적인 질문도 빠짐없이 던졌다. 은혁이 답할 수 있는 부분은 성의껏 설명했지만, 구체적인 수치나 실험 조건처럼 세세한한 부분은 바로 대답하기 어려운 것도 있었다.약 20분 후, 두 사람은 공장에 도착했다. 은혁이 미리 연락해 둔 덕분에, 정문 앞에는 담당자가 나와 있었다.정은은 안내받아 간단히 실험실과 공장을 둘러봤다. 연구 구역과 생산라인은 전혀 겹치지 않게 구획이 나뉘어 있었고, 현장도 전반적으로 정돈된 느낌이었다.정은이 요청한 소재의 1세대와 2세대는 이미 완제품으로 확보되어 있었지만, 3세대는 아직 실험 단계였기에 정식 생산은 되지 않았다. 따라서 실험실에서 직접 합성해야 했다.“시간은 얼마나 걸리죠?” 정은이 은혁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은혁은 옆에 있는 연구원을 바라봤다.“8시간 정도 걸릴 것 같아요. 내일 오전엔 제품 받아보실 수 있어요.”정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관련 비용은 정산대로 처리해 주세요. 최종 결정되면 한 번에 입금할게요.”은혁은 급히 손사래를 쳤다. “아니에요. 비용은 무슨 비용... 정은 씨, 우리 사이에 뭘 그렇게 딱딱하게 굴어요.”정은은 침착하게 말했다. “그럴수록 더 딱딱하게 해야죠. ‘친할수록 돈 문제는 분명하게.’ 이건 기본이에요. 더군다나, 우리 둘은 그냥 ‘친구’일 뿐인데, 은혁 씨가 도와주는 것만 해도 충분히 고마워요.”“게다가 실험실도 예산이 따로 있는 조직이고, 모든 비용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1화

    실험실에서 진욱은 오늘만 몇 번째인지 모르게 재석을 힐끔거렸다. 결국 참지 못하고 다가갔다. “재석아, 너 오늘 길 가다 돈 주웠냐?”실험대 앞에서 입꼬리를 내릴 줄 모르던 재석의 손이 잠깐 멈췄다. “데이터 정리는 다 됐어? 3차 실험 가능성 평가 보고서는 언제 낼 건데?”“하, 이 사람 분위기 다 깨네.” 진욱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근데 말이야, 오늘 아침에 네가 샌드위치 먹는 거 봤거든.”“그래서?”“정은이가 해준 거지? 다 알아. 너희 둘, 다시 잘 되는 거야? 그것도 아니면, 이제 미련 접은 거야?” 재석은 살짝 고민하다가, 이제는 말해도 되겠다 싶어 입을 열려고 했다.바로 그때, 핸드폰에서 톡 알림이 떴다. 정은이었다.[도착했어요. 샌드위치는 맛있었어요?]재석은 바로 답장했다.[맛있었어.]정은은 곧장 자신의 일정을 재석에게 알려줬다.[지금 호텔 체크인하고, 오후엔 공장 갈 거예요.][응, 알겠어.]1분 정도 지났지만, 그다음 메시지는 오지 않았다. 재석은 괜히 허전해졌다.‘예전에도 이렇게 대화했었는데... 왜 지금은 이걸로는 부족하지?’정은과 더 오래 이야기하고 싶었다. 더 많은 말, 더 사적인 얘기, 더 가까운 거리. 그 마음은 마치, 가려운 곳을 손톱 끝으로 슬쩍 긁은 느낌. 절대 시원하지 않았다. 그냥 더 간지러워질 뿐.‘그냥, 정은이한테 세게 할퀴어지고 싶은데...’“누구랑 톡하냐?” 진욱이 슬쩍 핸드폰을 들여다보려 다가왔다.재석은 피할 틈도 없이 화면을 들킨 셈이 됐다. “뭘 감춰. 정은이랑 메시지 주고받는 거잖아. 왜? 뭐가 부끄럽다고.”“됐고.” 재석은 핸드폰을 집어넣고, 실험대에서 내려왔다. “오늘 점심은 내가 쏜다. 뭐 먹고 싶어?”진욱은 멍한 표정으로 몇 초 멈췄다. 옆에 있던 미진이랑 태민이 눈을 마주쳤다. “교수님, 무슨 좋은 일 있으세요? 갑자기 점심을요?”재석은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먹고 싶은 거 생각나면 전 교수한테 말해.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60화

    비행기 이륙 직전, 은혁이 정은에게 제한했다. “정은 씨, 내 마일리지로 좌석 업그레이드해 줄게요.”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은혁의 얼굴에 아쉬움이 스쳤다. 어쩔 수 없다는 듯 자리로 돌아갔다. 잠시 후, 다시 다가와 말했다. “내가 정은 씨 옆자리로 바꿨어요.”비즈니스석에서 이코노미석으로 자리를 바꾸다니, 웬만한 사람이면 거절하고도 남을 일이었다. “은혁 씨, 이렇게까지 안 하셔도 돼요.” 정은은 단호한 어조였다.‘처음으로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말한 것 같아.’정은은 연애 한 번 안 해본 소녀가 아니었다. 은혁의 눈빛에 담긴 감정이 어떤 건지, 모를 리 없었다.하지만 그동안 굳이 선을 긋지 않은 건, 은혁이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은 적이 없었기 때문이며, 오히려 몇 번이고 도와줬기 때문이었다. 이번 Z시 출장도 은혁의 도움 덕에 가능했던 일이었다.게다가 은혁이 고백도 안 했고, 정은이 불편할 정도로 다가온 것도 아니었으니까... 정은도 자신이 먼저 딱 잘라 말하는 게 오히려 예의 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그리고 그때의 정은은 솔로였고, 재석이 입을 열게 하기 위해서라면, 어느 정도의 자극은 필요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정은은 이미 재석과의 관계를 정리했고, 은혁은 더 적극적으로 다가오고 있으니, 그녀도 이제 더 늦기 전에 확실히 은혁에게 말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래야 서로 상처받지 않을 테니 말이다.은혁은 정은의 말에 잠시 당황한 듯하다가, 이내 웃으며 말했다. “괜찮아요. 난 정은 씨 옆자리에 있는 게 좋아서 그래요.”정은은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비즈니스석 티켓을 사 놓고 누구랑 자리를 바꾸든, 그건 상대방의 자유니까. 굳이 뭐라고 할 필요는 없지.’그 후, 정은은 노트북을 열고 일에 집중했다. 은혁은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틈틈이 정은을 흘끗거렸다.그러다 손을 들어 승무원을 불렀다. “저기요. 잠깐만요.”“네, 손님.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9화

    결국 재석은 아쉬움 가득한 눈빛으로 정은의 손을 놓았다. 그러고는 조용히 열쇠를 건네받아 현관문을 열어주었다.“정은아, 잘 자.”그 한마디.‘정은아’라는 이름이 너무나 자연스럽고도 부드럽게 흘러나왔다. 마치 수천 번은 불러본 것처럼.그 말에 정은은 순간 멍해졌다.‘왜 내 이름을 듣고도 가슴이 이렇게 설레지?’“네, 당신도 잘 쉬어요.”둘은 그렇게 짧은 인사를 나누고 각자의 문 안으로 들어갔다.그날 밤. 정은은 평소와 달랐다. 샤워를 마친 뒤 늘 하던 루틴, 논문 체크나 프로젝트 정리는 손도 대지 않았다.대신, 자기도 모르게 핸드폰을 들고 재석의 SNS를 열었다.‘뭐 하는 거야? 나...’그런데 이상하게, 자꾸만 궁금해졌다. ‘이 사람, 평소에 어떤 거 올리지?’재석은 SNS 설정 따위는 하지 않은 사람이었다.맨 아래까지 내리는 데 몇 초도 채 걸리지 않았다.포스트 총수, 대략 서른 몇 개. 그중 90%는 논문, 연구, 산업 동향 공유.‘진짜 성실한 연구자 모드네...’그나마 정은과 관련 있는 건 얼마 전 실험실이 SCI 논문 게재됐을 때 서비대학교 공식 계정에서 축하 포스팅한 걸 공유한 것뿐이었다.[축하합니다.]짧고 건조한 멘트.그 밑엔 전진욱과 조미진이 ‘좋아요’를 눌러뒀다.‘이게 전부야?’그렇게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던 순간, 알림이 하나 떴다. 재석이 새로운 글을 올렸다.정은은 무심코 눌러봤다. [r = a(1 - sinθ)]‘...어?’정은의 손가락이 멈췄다. 이 수식, 익숙했다. 너무 익숙해서 순간 심장이 멈칫했다.댓글 첫 줄엔 진욱이 있었다.[극좌표 함수? 밤에 안 자고 뭐 하세요? 조 교수님?]조미진과 손태민은 말없이 ‘좋아요’만 눌렀다. 하지만 두 사람은 속으로 ‘다음 연구 주제가 광학 쪽인가?’ 생각하며 혼란스러워했다.아무도 몰랐다. 이 수식의 진짜 의미를.‘r = a(1 - sinθ)’, 하트곡선.‘설마 이게, 그거? 진짜 그거... 맞아?’정은은 손끝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8화

    “그럼... 고백하기 전까지, 혼자서 그렇게 많이 고민한 거예요?”“응.”“어쩐지...”정은이 아주 작게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뭐라고?” 재석이 고개를 살짝 기울이자, 정은은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아니에요. 이젠 다 별로 중요하지 않아요. 가요...”둘은 손을 꼭 잡고 복도로 향했다. 조용한 밤, 서로의 온기가 손바닥을 타고 전해졌다.걷던 중, 재석이 문득 걸음을 멈췄다. 정은도 따라 멈춰 서며 돌아봤다.“왜요?”“정은아, 우리 지금... 사귀는 거 맞지?”정은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두 사람이 꼭 잡은 손을 살짝 들어 보였다.“그렇게 생각 안 해요? 조금 전부터 내가 ‘재석 씨’라고 부른 거 못 느꼈어요?”“혹시 지금... 꿈꾸는 거 아니지?”정은은 눈을 가늘게 뜨며 미소 지었다.“흠, 그렇게 말하는 거 보니까... 평소에도 꿈에서 날 자주 본 모양이네요?”재석의 몸이 순간 굳더니, 양 볼이 순식간에 빨개졌다.‘진짜 자주 꿨나 보다?’재석은 눈을 못 마주친 채, 그저 두 사람이 맞잡은 손만 바라보며 쑥스러운 듯 웃었다.“진짜 좋아.”‘정은이도, 나를 마음에 두고 있었구나.’‘나 혼자만의 생각이 아니었구나.’같은 계단, 같은 복도, 수없이 함께 걸어온 길. 그동안은 늘 친구라는 이름으로, 앞서거나 뒤따르며 일정한 거리를 유지해 왔지만, 오늘은 처음으로, 손을 잡고 나란히 오르는 계단.정은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근데, 왜 나랑 은혁 씨한테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재석은 목소리를 낮추며, 살짝 눈을 피했다.“미안. 계산하러 나갔다가... 우연히 통화하는 거 들었거든.”정은의 눈이 살짝 커졌다.그리고 머릿속으로 자신이 통화 중 했던 말을 하나하나 되짚어봤다.‘공항에서 보자, 기대된다, Z시 출장... 뭐 이상한 말한 것도 없는데...?’그런데도 재석은 그걸 ‘여행 약속’으로 받아들였고, 그걸로 인해 혼자 삭이다가 결국 아래층에서 고백까지 해버린 거였다.“너희, Z시에 여행 간다고 했잖아.”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7화

    정은이 멍해 있는 사이, 재석이 한 걸음 다가섰다. 늘 부드럽고 점잖던 그가, 이 순간만큼은 전에 없던 강한 기운을 뿜어냈다. ‘이 남자... 이런 눈빛도 있었나?’정은은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났다. 등이 벽에 닿는 순간, 재석은 어느새 바로 눈앞에 와 있었다.정은이도 이제야 제대로 실감이 났다. 재석이 자신보다 훨씬 크다는 걸. 그리고 지금처럼 가까운 거리에서 내려다보면, 자신이 마치 남자의 품 안에 갇힌 것처럼 느껴진다는 것도.재석이 조용히 눈을 내리깔았다.“이제 좀 알겠어?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그때 네가 학업이 먼저라고 했을 때, 난 받아들였어.”“그런데 장은혁한텐 기회를 줬지. 정은아...”그가 고개를 더 숙이자, 뜨거운 숨결이 그녀의 목선에 닿았다. 순간, 정은의 팔에 소름이 쫙 돋았다. “너, 나한테 너무 불공평해.”그 마지막 한 마디는 묘하게 서글픈 기운이 섞여 있었다.정은은 입술을 달싹이며 뭔가 말하려 했지만, 재석은 그녀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알아, 내가 지금 어떤 입장인지. 묻고 따질 자격도 없고, 네가 누구를 좋아하든, 그건 네 자유라는 것도 알아.”“이 말 꺼냈다가, 우리 사이가 끝날 수도 있다는 것도 알고 있어. 근데... 계속 참다 보니까 알겠더라.”‘난... 그렇게까지 쿨한 사람이 아니었어.’“그래서 이제 참지 않기로 했어.”‘어떻게 되든, 그건 네가 정해.’그렇게 말한 재석은 고개를 숙인 채 멈췄다. 마치 판결을 기다리는 죄인처럼.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한 밤공기 속에서, 정은의 목소리가 아주 작게 울렸다.“이제, 제가 말해도 될까요?”“응...”“재석 씨.”정은은 처음으로 재석을 그렇게 불렀다.“고개 들어요. 나 좀 봐요.”재석의 어깨가 순간 굳어졌다. 그리고 천천히, 아주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었다.그는 이미, 거절당할 각오까지 끝냈다.그런데 눈이 마주친 순간, 정은의 두 눈 속에서 재석이 본 건... 눈물이 아닌, 웃음이었다.억지로 짓는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6화

    “헤어졌다고요?”정은은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떴다.“몰랐어?!”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진욱은 눈을 반짝이며 의자째로 다가오더니, 목소리를 낮추고 본격적인 ‘TMI’를 털어놓기 시작했다.“M시 출장 갔다 오고 며칠 안 돼서, 재석이가 바로 짐 싸서 수아를 내보냈다니까?”정은은 그 말을 듣고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재석과 수아 사이에 어떤 감정선이 있었는지, 그동안 몇 번 스쳐 지나갔던 장면들이 퍼즐처럼 빠르게 떠올랐다. 그녀의 표정은 담담했지만, 눈빛 속엔 미묘한 기류가 스쳤다.“아마 진짜 많이 좋아했나 봐. 그러니까 정리할 때도 그만큼 아프고, 오래 걸리는 거겠지. 조금만 시간 지나면, 태민이도 정리될 거야.”진욱은 이어서 말했다.“네.”정은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작게 대답했다.그 이후론 더 이상 말을 잇지 않았다.‘남의 연애는, 들을 수는 있어도 깊게 얘기하지 말아야 해. 괜히 나서 봤자... 괜히 끼어든 꼴만 되니까.’...해가 지고, 붉은 노을이 건물 유리에 비치기 시작할 무렵. 정은은 마침내 작업을 끝냈다.진욱은 기다렸다는 듯 프로그램을 열고 기능 하나하나를 테스트했다.그리고 30초쯤 흐른 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외쳤다.“어어!! 복구됐어! 됐다! 돌아왔어! 다시 쓸 수 있어!!”미진도 덩달아 벌떡 일어나 양손을 번쩍 들었다.“살았다, 진짜!! 여태 손으로 데이터 입력한 거 생각하면... 이건 거의 기적이야!”진욱은 시계를 힐끗 보더니, 정은을 향해 말했다.“지금 이 시간까지 남아서 도와준 우리 정은이, 완전 수고 많았어! 조 교수...”“응...?”갑작스레 이름이 불리자, 재석은 몇 초간 멈칫하다가 고개를 돌렸다.진욱은 능청스럽게 말했다.“아니, 정은이가 이렇게 큰일 해줬는데, 감사 표시라도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적어도 밥 한 끼는 사야지.”“맞아요, 맞아요. 조 교수님, 이건 진짜 밥으로도 모자라요.” 미진이 곧장 거들었다.재석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5화

    대략 1년 전, 정은은 한동안 재석의 실험실을 빌려 쓴 적이 있었다. 그 일을 계기로 전진욱, 조미진 등과 인연이 닿았다.처음엔 서로 어색하고 낯설었지만, 몇 달이 지나면서 조금씩 가까워졌고, 지금은 가볍게 농담도 주고받을 만큼 편해졌다.그러던 어느 날, 진욱은 우연히 정은이 실험 데이터를 처리하는 속도를 보고 깜짝 놀랐다. 너무 빠른 게 아닌가 싶어서 슬쩍 물어봤더니, 정은은 코딩도 할 줄 아는 공대 만능 캐릭터였다. 그녀는 직접 짠 프로그램으로 데이터를 자동 정리하고, 다차원 분류와 정렬까지 가능하다고 했다.“와, 뭐야... 완전 반칙인데?”진욱은 결국 정은에게 부탁해 실험실 맞춤형 프로그램 하나를 따로 제작해달라고 했고, 그 이후, 데이터 정리는 그야말로 신세계를 맞이했다. 진욱은 쓸 때마다 감탄하며 말했다.“진짜... 정은이 덕분이야. 이게 사람을 살리네.”하지만 어제 그 기특한 프로그램이 갑자기 먹통이 됐다. 손태민이 고쳐보겠다고 덤볐지만, 결과는... 풍비박산이었다. ‘이젠 누가 손댔다간 진짜 박살 나겠어...’ 결국 정은에게 SOS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재석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오늘 시간 돼? 안 되면, 며칠 뒤도 괜찮고...]진욱은 훨씬 급했다. 말 그대로 살려달라는 마음이었다.[야, 오늘 안 데려오면... 나 여기서 바로 싸버린다! 진짜라고, 어?!]그는 어제 약 먹고 좀 괜찮아진 줄 알았건만, 밤새 배가 또 난리였다. 오늘 아침부터 실험실 화장실은 진욱의 전용이 되었다. 오전에만 6회 방문.그 말은, 그냥 협박 아니었다. 진짜 실현 가능성이 있었으니 말이다.정은은 상황을 듣고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시간 돼요. 지금 바로 갈게요.”[그래. 그럼 내가 정문 앞으로 갈게.]‘굳이 마중까진 필요 없는데...’ 뚝-정은이 전화를 끊으려던 찰나, 전화는 이미 끊겨 있었다. ...10분 뒤, 정은은 학교 정문 앞에서 재석과 마주쳤다. 두 사람은 실험실로 걸어가며 프로그램

  • 너 없이도 눈부신 나날들   제954화

    “언니, 이건 굳이 우리 의견 물을 필요도 없지 않아요? 언니가 해볼 만하다고 생각하면, 무조건 가는 거죠. 저희한텐 뭐든 시키기만 하세요. 무조건 따라갈게요!”민지가 단호하게 말하자, 서준도 고개를 끄덕이며 덧붙였다.“맞아요, 저흰 누나 믿고 가는 거예요. 결정은 누나가 해요.”정은은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가, 결국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너희들... 나 그렇게 믿어도 돼? 나도 가끔 실수하거든?”민지는 마치 어이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정은 언니가 실수했다면, 그건 100% 저랑 서준 오빠가 뭔가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뜻이에요.”“그건 좀 과장이지만...”‘그래도... 이런 믿음을 받는다는 게 참 따뜻하네.’세 사람은 그렇게 식사를 마쳤다.계산은 서준이 맡았고, 정은과 민지는 먼저 주차장으로 향했다. “언니, 먼저 가요. 전 서준이 데리러 갈게요.”“응? 굳이?”“우리 집이랑 방향이 같잖아요. 서준이는 차도 없으니까, 그냥 태워다 주는 거죠, 헤헤.”“그래, 알겠어. 그럼 조심히 가. 운전 천천히 하고.”“네. 언니도 잘 들어가요!”...두 ‘파트너’와 방향을 맞춘 정은은 집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준비에 들어갔다.자료 조사부터 시작해 ‘신소재 최적화 계획안’을 정리하고, 모든 내용이 빠짐없이 정리됐는지 처음부터 끝까지 꼼꼼히 확인했다.벌써 밤 10시. 정은은 핸드폰을 들고 조심스레 메시지를 보냈다.[장은혁 씨, 시간 돼요? 상의드릴 게 하나 있어요.]그 시각, 은혁은 거실 소파에 앉아 어머니인 황희숙 여사의 ‘진실 공방’에 시달리고 있었다.“너 외할아버지한테 전화 왔어. 오늘 도시락 들고 회사 갔다며? 근데 그냥 말도 없이 두고 사라졌다고 난리야. 게다가 누가 너랑 어떤 여자가 같이 있는 걸 병원 약국에서 봤다던데? 솔직히 말해봐. 너, 여자 친구 생겼지?”은혁은 억울함 가득한 목소리로 외쳤다.“아니 외할아버지는 왜 또 엄마한테 바로 전화해요? 진짜 너무하신다니까요...”“이 자식 봐라, 말버릇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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