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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4화

Author: 네입클로버
강성호는 말하면서 슬쩍 강태하의 정강이를 발로 차며 너도 좀 거들라는 뜻으로 신호를 보냈다.

강태하는 마지못해 앞으로 나와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입을 열었다.

“할머니, 나 어릴 때 할머니는 누구보다 나를 제일 예뻐했잖아요. 근데 이제는 누나만 챙기고 나는 왜 안 챙겨주는 거예요? 혹시 내가 못나서 누나만큼 돈도 못 버니까 이제는 나를 무시하는 거예요?”

“헛소리하지 마!”

홍순자는 분에 겨워 손까지 떨었다.

“이 집에서 너희 셋 말고 돈에 눈 돌아간 사람이 어디 있니?”

“그런데 왜 나를 예전처럼 생각해 주지 않는 거예요? 저 너무 섭섭해요...”

강태하는 정말 당장이라도 눈물을 터뜨릴 것처럼 눈시울을 붉혔다.

홍순자도 손주가 괴로운 표정으로 울먹이자 차마 독한 말은 못 하고 괴로움에 눈시울을 붉혔다.

옆에서 지켜보던 강지연은 속이 뒤집히는 것 같아 이를 악물고 말했다.

“할머니가 네 생각을 안 한다고? 강태하, 너 진짜 양심이라는 게 없어? 너 어릴 때 우리 부모님은 항상 나가서 자기들끼리 놀기에 바쁘고 할머니가 너를 키웠어. 분윳값도 못 내서 쩔쩔매던 때 누가 분유를 사서 너 먹였는데? 네가 아플 때 누가 병원비 내고 누가 밤새 네 옆을 지켜줬는데? 너 대학 갈 때 부모님이 돈 한 푼 보태지 못해서 누가 등록금 내주고 매달 생활비를 보내 줬는데? 할머니가 가진 그 얼마 안 되는 돈을 우리 집사람들이 다 갈아먹었잖아. 그런데 네가 어떻게 그런 말을 할 수가 있어?”

강태하가 얼굴을 홱 돌리며 우물쭈물 말했다.

“그건 할아버지 돈이잖아. 나를 제일 많이 아껴준 건 할아버지였어.”

강지연은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그래? 할아버지가 너를 제일 아꼈어? 그러면 할아버지한테 가. 할아버지한테 가서 회사 투자받고 할아버지한테서 프로젝트 따오고 할아버지한테 집 사달라고 하고 결혼자금도 할아버지한테 받아.”

강태하는 더 어두워진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매형이 해주면 되잖아.”

강지연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

“그래서 오늘 왜 왔는데? 갑자기 무슨 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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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9화

    지금 강지연의 가슴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바로 조금 전 그녀가 춰냈던 그 춤이었다.윤해정이 말한 것처럼 이 춤을 하나의 무용극으로 만든다면 어떻게 구성해야 할지, 그 생각만 머릿속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수많은 동작과 장면이 한꺼번에 폭풍처럼 몰아쳤다.그 바람에 온하준이 연달아 보내온 메시지들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마치 바다 한가운데 솟구치는 거대한 파도 사이로 떨어진 몇 방울의 빗물이 순식간에 삼켜져 흔적도 없이 사라지듯 그의 말들은 눈에 스치자마자 기억 저편으로 흩어졌다.그녀는 심지어 차단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그리고 애초에 그것들이 방해된다고 느끼지도 않았다.메시지를 한 번 훑어본 강지연은 곧바로 다시 춤의 세계로 빠져들었다.이번 무용의 출발점은 봉황의 열반이었다.그 생각은 점점 확장되어 생생불식에 닿았고 유구하게 흐르는 시간과 장대한 기세로 뻗어 나갔다.그 모든 것을 산해경의 세계를 바탕으로 한 편의 무용극으로 엮고 싶었다.그녀는 생각할수록 가슴이 뜨거워졌고 더 이상 다른 감정이 끼어들 틈은 없었다.그날 밤, 강지연의 꿈속은 온통 산과 바다였고 강과 호수 위로 봉황이 춤추고 용이 포효하는 풍경으로 가득했다.반면 온하준은 끝내 날이 밝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마지막 항공편까지 한 시간 남짓하게 남은 상황에 생각할 겨를도 없이 티켓을 구매하고 짐을 챙겨 공항으로 향했다.그는 원래 이하나를 데려갈 생각이 없었다.하지만 그녀가 어떻게든 함께 가겠다고 고집을 부렸고 시간은 너무 촉박했기에 더 설득하고 다툴 여유가 없었다.결국 두 사람은 함께 비행기에 올랐다.해성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숨 돌릴 틈도 없이 곧장 집으로 향했다.이하나도 끝까지 따라붙었다.사실 온하준도 자신이 왜 이렇게까지 집으로 돌아가려고 서두르는 건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집에 아무도 없을 거라는 걸 알면서도 지금 그의 머릿속을 지배하는 집념과 충동은 오로지 집 하나뿐이었다.집 앞에 도착해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하나가 먼저 내렸고 그녀의 시선이 멈춘 곳에는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8화

    조민서가 이미 잠들었을 거로 생각한 강지연은 발소리를 죽이며 조심스럽게 방으로 돌아왔다.하지만 뜻밖에도 그녀는 아직 잠들지 않은 채 노트를 펼쳐 놓고 펜으로 무언가를 열심히 적고 있었다.“선생님, 아직도 일하세요?”땀에 흠뻑 젖은 채 문가에 선 강지연이 조심스레 물었다.조민서는 고개를 들더니 혀를 차며 말했다.“아이고, 얼른 샤워부터 해. 그러다 감기 걸리겠다. 너희 도대체 얼마나 오래 춘 거야?”“선생님, 제가 춤춘 거... 알고 계셨어요?”한때 조민서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자신이 지금은 이런 모습으로 다시 무대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에 강지연은 괜히 민망해졌다.“그럼, 당연히 알지.”조민서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아까 가서 봤어. 너희 셋이서 새로운 안무를 만들고 있더구나.”강지연은 더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선생님, 저 지금은 예전 같지도 않고...”“잘 추더라.”조민서는 그녀의 말을 단호하게 끊었다.“춤은 기술이기도 하지만 감정을 풀어내는 표현이기도 해. 춤추고 싶을 때 마음 가는 대로 추는 그 낭만이 있고 수없이 넘어져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주는 게 춤이야. 선생님은 네가 다시 우리 곁으로 돌아온 게 너무 기뻐.”“선생님...”강지연은 품에 안기고 싶었지만 온몸이 땀투성이인 탓에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선생님, 저 일단 씻고 올게요.”“그래, 다녀와. 난 하던 거 마저 할게.”조민서는 가볍게 웃으며 다시 노트에 시선을 떨궜다.강지연이 샤워를 마치고 나오자 조민서의 일도 어느 정도 정리된 듯했다.두 사람은 몇 마디 더 나눈 뒤 서로 인사를 건네고 잠자리에 들었다.하지만 강지연은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하루 동안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몰아쳐 마음을 가라앉힐 수가 없었다.그녀는 윤해정이 보내 준 사진을 다시 열어 오래도록 들여다보았다.사진 속의 자신은 익숙하면서도 낯설었다.하지만 분명 그녀가 가장 사랑하는 모습이었다.조민서와 윤해정 그리고 장시범의 말들이 번갈아 가며 머릿속을 맴돌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7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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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6화

    곧이어 김도윤에게서 또 메시지가 도착했다.[이렇게 큰일을 어떻게 우리한테도 말 안 할 수가 있어? 그리고 하나가 괜히 오지랖 떤다고 뭐라 하지 마. 걔는 진짜 네가 너무 걱정돼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리한테까지 와서 물어본 거야. 네 기분 좀 풀어줄 방법 없겠냐고. 그리고 이 일 네가 알면 화낼까 봐 절대 티 내지 말라고 몇 번이나 신신당부했어.]온하준은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너희 마음은 나도 알아. 화내는 거 아니야.]김도윤은 이하나가 자주 쓰던 포옹 이모티콘을 보내더니 말을 이었다.[그리고 너 말이야, 또 우리한테 잔소리한다 어쩐다고 하지 마라. 넌 지난 5년 동안 강지연을 공주처럼 떠받들며 살았잖아. 그러니까 버릇이 안 나빠질 수가 없지. 강지연이 하나의 반만큼이라도 철들어 있었으면 네가 이런 고생을 했겠니? 내 말 잘 들어. 일단 바로 카드부터 끊어. 돈줄이 끊기면 어디 가서 더 날뛸 수가 없을 거야. 그러다 보면 결국 꼬리 내리고 기어들어 오게 돼 있어.]온하준은 더 이상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그는 카드를 끊을 수 없었다.강지연은 자기 명의의 계좌를 가지고 있었고 온하준이 돈을 줄 때마다 늘 그녀의 계좌로 송금해 왔다.하여 그녀는 애초에 그의 카드에만 의존해 생활하는 사람이 아니었다.잠시 후 김도윤이 다시 메시지를 보내왔다.[너 설마... 강지연한테 평생 먹고살 만큼의 경제적 자유를 준 건 아니지? 카드도 강지연 명의로 돼 있는 거야?]온하준은 여전히 답장하지 않았다.김도윤은 그의 침묵에서 답을 읽은 듯 바보라는 표정의 이모티콘을 하나 보내며 말을 덧붙였다.[하준아, 너 진짜 바보 아니야? 솔직히 말해서 네가 이러면 강지연이 네 재산 싹 다 가져가도 난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할 것 같다. 너 진짜...]그래도 답이 없자 김도윤은 더 이상 몰아붙이지 않고 말투를 바꿨다.[됐어. 누가 너더러 강지연이랑 결혼하래? 다 네 팔자지 뭐. 강지연은 네 팔자에 낀 액운이야. 이미 벌어진 일이니까 어쩔 수 없지. 혼자 놀러 간 거든,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5화

    이하나는 서둘러 고개를 저었다.“하준아, 나 다 알아. 네 마음 아니까 나한테 미안해할 필요 없어. 나 진짜 안 서운해.”온하준은 미간을 찡그린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하나는 입술을 한 번 적시더니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아니면 우리 같이 표 끊을까? 나도 같이 갈게.”온하준은 억지로 미소를 지어 보였다.“그럴 필요 없어. 넌 들어가서 쉬어. 오늘은 일찍 자.”이하나는 고개를 저었다.“아니야. 기분도 안 좋은데 여기 있어서 뭐 해. 어차피 나중에도 올 시간 많아. 일단 돌아가자.”온하준은 미간을 찡그린 채 소파 등받이에 몸을 기대고 이하나를 바라보며 말했다.“그러면 너한테 너무 미안하잖아.”이하나가 온화하게 웃었다.“뭐가 미안해? 하준아, 아직도 날 몰라? 난 그저 네가 행복하고 네가 하는 일이 다 잘 풀리면 그걸로 충분해.”온하준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일단 넌 자. 내일 얘기하자.”“응.”이하나는 대답만 하고는 그의 발치 쪽 카펫에 앉은 채 일어나지 않았다.“들어가 봐. 나 진짜 괜찮아. 걱정하지 말고 자.”그제야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일어섰다.“하준아, 돌아가서는 강지연이랑 잘 이야기해. 괜히 화내지 말고. 네가 세게 나올수록 강지연은 더 도망만 갈 거야.”그 말을 듣는 순간, 온하준의 미간은 더 깊게 구겨졌다.이하나는 서둘러 말을 이었다.“하준아, 진짜 너무 걱정할 필요 없어. 강지연은 몇 년 동안 네가 공주처럼 떠받들면서 키웠잖아. 그러면 당연히 버릇도 생기고 성격도 까다로워질 수밖에 없지. 여자들은 원래 그래. 맞춰 줄수록 더 기고만장해지는 법이야. 그래도 그건 그냥 투정일 거야.”온하준의 얼굴에 드리운 먹구름은 도무지 사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하준아, 강지연은 어차피 돌아올 거야.”이하나는 계속 그를 달랬다.“생각해 봐. 강지연은 춤밖에 모르는 애잖아. 널 떠나서 밖에 나가봤자 할 수 있는 일도 없고 이미 5년 동안 네 옆에서 아무것도 안 하면서 살아왔어. 먹고 자는 것까지 전부 가사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234화

    최아현은 아예 그 사진을 더 크게 확대해서 보내왔다.강지연은 굳이 부정하지 않았다. 그러자 최아현이 바로 문자를 쏟아냈다.[강지연! 너 지금 어디야? 이 사진을 올린 남자는 누구고, 넌 누구랑 여행 간 거야?]강지연이 답했다.[나랑 예전부터 함께했던 무용단 후배야. 유럽 순회공연이 있어서 나도 선생님들이랑 같이 구경하러 왔어.]최아현이 다급하게 문자를 보내왔다.[어떡해? 강지연, 온하준 진짜 화낼 것 같은데? 아니 이미 화나 있는 상태야.]강지연은 동창들이 있는 단톡방을 들어가 보더니 다시 문자를 보냈다.[아닌데? 아무도 말하는 사람 없잖아.][하이고, 지연아. 이런 걸 누가 동창들이 다 있는 단톡방에서 떠들어? 남자들끼리 따로 단톡방 있는 거 몰라? 거기서 지금 난리 났나 봐. 애들이 나한테까지 물어봤다니까.”강지연은 그제야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런데 너는 이 사진을 어떻게 본 거야?][지연아, 육인 법칙 못 들어봤어? 친구의 친구는 또 친구이고 여섯 사람 안에는 꼭 아는 사람 한 명쯤은 있다잖아. 아무튼 너 외국 간 거 온하준한테 말 안 하고 나간 거지? 걔 지금 장난 아니래. 단톡방에 제일 먼저 사진 올린 남자애한테 바로 전화했다더라.]강지연은 담담한 표정으로 회답했다.[응. 말 안 했어.][알았어. 그러면 만약에 온하준이 나한테까지 캐물으면 나는 뭐라고 해야 해?]강지연은 그냥 모른다고 하라고 했다.그 말을 보내자마자 이번엔 온하준이 장시범의 인스타 캡처 화면을 그대로 붙여 보내며 따지기 시작했다.[이게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봐, 강지연.]강지연이 회답하지 않자 곧장 문자가 연달아 쇄도했다.[답장 안 할 거야? 강지연, 내가 그동안 너무 오냐오냐했지?][내 돈은 서슴없이 받아놓고 뒤돌아서 다른 남자랑 해외로 도망가?][이거 언제부터 계획한 거야? 비자가 하루이틀 만에 나오는 것도 아닐 텐데 도대체 얼마나 오래 나 몰래 계획한 거야?][좋아. 답장도 안 하고 전화도 안 받는다 이거지? 할 수 있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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