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2
에:  데이지방금 업데이트되었습니다.
언어: Korean
goodnovel4goodnovel
순위 평가에 충분하지 않습니다.
19챕터
9조회수
읽기
보관함에 추가

공유:  

보고서
개요
장르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완벽한 남자, 단 하나 못하는 건… 청소? 그리고 그의 공간에 나타난, ‘청소에 진심인’ 여자 유리. 매주 반복되는 청소, 그 속에서 자꾸 어지러워지는 마음. "청소는 깔끔하게,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자꾸 마음에 남을까요?" 산뜻하고 달콤한, 생활 밀착형 설렘 로맨스 《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더 보기

1화

1화. 먼지와 당신 사이에

유리는 오늘도 청소 가방을 등에 메고, 

익숙한 듯 발끝에 힘을 주며 건물 입구로 향했다.

‘루체빌 오피스텔 1603호. 오후 3시 예약.’

아침에 확인했던 알림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연스레 속으로 중얼거렸다.

“3시. 좋아, 딱 햇살 잘 드는 시간.”

햇볕이 유리창을 타고 떨어지는 오후 세 시의 방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먼지도 반짝이고, 바닥도 더 잘 닦이고,

무엇보다 사람 마음도 괜히 가벼워지는 시간대랄까.

“오늘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드려야지.”

혼잣말을 하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등에 멘 가방 속에는 각종 청소 도구들과 유리만의 비장의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장비만 보면 거의 탐정 같다는 농담도 가끔 들었지만

그녀는 그게 좋았다. 누군가의 공간을 정리해 주는 일,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는 일.

띵동.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 끝 너머로 넓게 펼쳐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유리님?”

낮고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유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작게 눈이 동그래졌다.

“...아, 네. 안녕하세요.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에서 왔어요.”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사진도 정보도 없는 고객이라는 단어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치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생긴 남자였다.

흰 티에 그레이 니트 하나 걸친 차림인데도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웃을 때 살짝 찌그러지는 눈매가 너무, 너무 좋았다.

‘와... 이게 진짜 가능해?’

그는 유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더... 프로 같으시네요.”

“그런 얘기 자주 들어요. 사진보다 더 잘 치운다고도요.”

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꽤 넓었다. 그리고... 제법 어질러져 있었다.

“청소를... 한참 안 하셨나 봐요?”

“네. 아예요. 청소랑은 좀... 거리가 멀어서요.”

“그럼 잘 오셨어요. 제가 가까워질게요. 청소랑.”

그녀는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런 농담은 손님들 긴장도 풀어주고, 자신의 긴장도 풀리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를 마주하고 있자니 자꾸만 마음이, 쿵 하고 울렸다.

“이거, 다 직접 쓰시는 거예요?”

이현은 유리의 가방에서 나오는 장비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네. 직접 조립한 것도 있어요. 이거는 초미세먼지 전용,

이건 친환경 소재로 만든 세정제, 그리고 이건...”

설명을 하던 유리가 문득 말을 멈췄다.

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이건 그냥, 제가 아끼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리야.

그녀는 속으로 고개를 흔들며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런데, 그가 웃었다.

“왠지, 그런 거 같았어요.”

“네?”

“이 방을 대하는 손길이... 그냥 일하는 느낌이 아니어서요.”

유리는 그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닦아야 할 먼지가 갑자기 많아진 느낌이었다.

한참 청소를 하던 중,

이현은 조용히 소파에 앉아 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

가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 손등으로 턱 하고 넘기고,

그 손끝엔 언제나 부드러운 리듬이 있었다.

공간이 맑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

청소기 소리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상한 오후였다.

“정말, 다 끝났네요.”

“네. 기분도 좀 나아지셨죠?”

“많이요. 이렇게 맑은 집은 오랜만이에요.”

유리는 옷을 정리하며 마지막 정리정돈을 마쳤다.

이현은 작게 망설이다가 명함을 건네달라 부탁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조그만 카드를 꺼내 건넸다.

“이 앱에서 정기 청소 예약 누르시고, 제 아이디 입력하시면 돼요. 저를 지정하고 싶으시다면요.”

그 말에 이현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청소가 벌써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유리는 그만, 작게 웃고 말았다.

문을 나서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하다... 청소보다 사람이 더 남는 건 처음인데...”

그리고 이현 역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공간을 둘러봤다.

깨끗해진 바닥, 환해진 창, 가볍게 정돈된 테이블 위의 작은 화병.

그리고, 그녀가 남긴 향기 같은 뒷모습.

그건 먼지보다도 오래 남는 무엇이었다. 기억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    *    *    *    *    *    *    *    *   

루체빌 1603호.

그 주소를 다시 확인한 순간,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앱 화면엔 분명 ‘정기 청소 등록됨’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며칠 전, 햇살 가득한 오후에 청소를 마친 그 집.

창가에 먼지가 가볍게 흩날리던 거실.

그리고, 괜히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남자 고객.

‘...그분이 또 요청하신 건가?’

유리는 괜히 목덜미를 한번 긁었다.

특별할 건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얼굴이 조금 화끈해졌다.

아니지. 정기 예약도 흔한 일이고,

다시 방문하는 것도 전혀 드문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청소하러 가는 날에는 늘 입는 편한 베이지 셔츠 대신,

오늘은 크림색 니트에 밝은 연청 바지를 꺼냈다.

그것도 모자라 귀걸이를 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하지 않았다.

“...무슨 소개팅 가냐, 유리야.”

입술을 꾹 다물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손끝은 어딘가 들뜬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머리를 깔끔하게 묶고, 가방 정리를 꼼꼼히 하고 나서야 드디어 현관문을 나섰다.

이현은 이미 커피를 두 잔 내려두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혹시 몰라서.

"청소하러 오시는 분께 커피 내리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자신에게 중얼거리듯 말하며 머리를 한 번 넘겼다.

오늘따라 거실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바닥은 여전히 깔끔했고, 창문엔 지문 하나 없었고,

모든 게 정돈된 상태인데도 어쩐지 허전했다.

그건 아마, 며칠 전 그녀가 떠난 뒤로 그의 일상이 조금 심심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띵동~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괜히 두근거리며 문을 열었고, 그곳엔 환하게 웃으며 선 유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뵙네요.”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잠깐의 인사. 하지만 그 안에는 어색한 반가움과 말하지 못한 설렘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유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며 익숙한 듯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이현이 두 잔의 커피 중 하나를 자신 쪽으로 미는 걸 보고 당황했다.

“...저, 커피는 괜찮은데요?”

“괜찮으면 마시고요. 괜찮지 않으면, 그냥 봐주세요.”

“후기용 선물인가요?”

“아뇨. 감사의 마음? 오늘도 집을 빛나게 해주실 테니까요.”

그 말에 유리는 못 이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만 받아요.”

그녀는 컵을 들고 잠깐 향을 맡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바닐라 향.

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청소는 다시 시작되었다.

익숙한 듯 물티슈가 펼쳐지고, 분무기가 작동하며,

바닥은 부드러운 리듬을 따라 닦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유리의 손끝이 자꾸만 느려졌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주 그를 흘끗 보게 되었고,

그의 숨소리나 움직임이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녀가 거실 선반을 정리하다 잠깐 균형을 잃었을 때 이현이 무심한 듯 다가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받쳐주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작은 접촉,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리는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

심장이, 조금 웃기게도, 먼지 털이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자, 이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음 주 이 시간도... 괜찮을까요?”

“스케줄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가능해요.”

“그럼 그때도, 오늘처럼 부탁드릴게요.”

유리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는 확실하게 해드릴게요. 그 대신, 커피는 다음에도 주실 건가요?”

그 말에 이현은 순간 당황하더니, 천천히 웃었다.

“그럼요. 다음엔 더 맛있게 내려둘게요.”

문을 나서는 길. 유리는 발끝에 힘을 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청소하러 간 건 맞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그리고 그 순간, 이현은 그녀가 닫고 나간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웃는 그녀의 옆모습이, 아직 방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청소는 매주 계속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설렘도 조금씩, 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펼치기
다음 화 보기
다운로드

최신 챕터

더보기

독자들에게

굿노벨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굿노벨에 등록하시면 우수한 웹소설을 찾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완벽한 세상을 모색하는 작가도 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맨스, 도시와 현실, 판타지, 현판 등을 비롯한 다양한 장르의 소설을 읽거나 창작할 수 있습니다. 독자로서 질이 좋은 작품을 볼 수 있고 작가로서 색다른 장르의 작품에서 영감을 얻을 수 있어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작성한 작품들은 굿노벨에서 더욱 많은 관심과 칭찬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댓글 없음
19 챕터
1화. 먼지와 당신 사이에
유리는 오늘도 청소 가방을 등에 메고, 익숙한 듯 발끝에 힘을 주며 건물 입구로 향했다.‘루체빌 오피스텔 1603호. 오후 3시 예약.’아침에 확인했던 알림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연스레 속으로 중얼거렸다.“3시. 좋아, 딱 햇살 잘 드는 시간.”햇볕이 유리창을 타고 떨어지는 오후 세 시의 방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먼지도 반짝이고, 바닥도 더 잘 닦이고,무엇보다 사람 마음도 괜히 가벼워지는 시간대랄까.“오늘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드려야지.”혼잣말을 하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등에 멘 가방 속에는 각종 청소 도구들과 유리만의 비장의 아이템들이 가득했다.장비만 보면 거의 탐정 같다는 농담도 가끔 들었지만그녀는 그게 좋았다. 누군가의 공간을 정리해 주는 일,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는 일.띵동.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유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 끝 너머로 넓게 펼쳐진 공간을 바라보았다.“아, 안녕하세요. 혹시 유리님?”낮고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유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작게 눈이 동그래졌다.“...아, 네. 안녕하세요.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에서 왔어요.”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사진도 정보도 없는 고객이라는 단어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치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생긴 남자였다.흰 티에 그레이 니트 하나 걸친 차림인데도 분위기가 달랐다.그리고... 웃을 때 살짝 찌그러지는 눈매가 너무, 너무 좋았다.‘와... 이게 진짜 가능해?’그는 유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생각보다 더... 프로 같으시네요.”“그런 얘기 자주 들어요. 사진보다 더 잘 치운다고도요.”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실내는 꽤 넓었다. 그리고... 제법 어질러져 있었다.“청소를... 한참 안 하셨나 봐요?”“네. 아예요. 청소랑은 좀... 거리가 멀어서요.”“그럼 잘 오셨어요. 제가 가까워질게요. 청소랑.”그녀는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2화. 마음은 말보다 먼저 움직이죠
이현은 창문을 조금 열어두고 커피를 내렸다.은은한 향이 방 안에 퍼졌고, 그 사이로 봄기운이 실려 들어왔다.‘오늘도... 오는 거 맞겠지?’핸드폰 화면엔‘정기 청소 예약: 오늘 오후 3시, 유리’라는 알림이 또렷하게 떠 있었지만,그는 괜히 몇 번이고 그 문장을 다시 확인했다.얼마 지나지 않아, 초인종이 울렸다.띵동~그는 재빨리 걸어가 문을 열었다.그리고… 환하게 웃는 유리를 보았다.“안녕하세요! 오늘도 반짝이게 해드릴게요.”“...어서 오세요.”그는 자신도 모르게 목소리가 작아졌다는 걸 느꼈다.그녀가 방 안으로 들어서는 짧은 순간 동안,온도가 바뀌는 것처럼 방 안의 공기가 살짝 달라졌다.유리는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 들고, 가볍게 몸을 풀었다.“오늘은 창가 쪽부터 시작해볼게요. 햇빛이 좋으니까.”그녀는 햇빛이 잘 드는 쪽을 먼저 정리한다는 고집이 있었다.이현은 그걸 알고 있었다. 이제는 그녀의 청소 루틴이 익숙해졌다.어디를 먼저 닦고, 어떤 순서로 움직이고,어디쯤에서 슬며시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쉬는지까지.그녀가 창문을 닦을 때마다 햇빛이 유리 위에 맺히고, 손끝에 반짝이는 물방울이 일었다.그 모습을 멀찍이 바라보며 이현은 마음속으로 조용히 되뇌었다.‘청소 말고 다른 모습도...보고 싶다. 데이트 하자고 하면 부담느끼겠지?’너무 빠르단 걸 안다. 그녀에 대해 아는 것도 많지 않다.하지만 매주 이렇게 그녀를 맞이하고,그녀가 다녀간 방을 멍하니 한참 바라보는 자신을 보면 그냥 ‘고객과 청소 전문가’로는 더는 안 될 것 같았다.하지만 말은...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그저 조용히, 커피잔을 하나 더 꺼내고,그녀가 손을 털고 돌아보면 미소로 응답해주는 것밖에는.“요즘 청소 요청 많으시죠?”이현이 무심하게 물었다.“조금요. 봄 되니까 다들 대청소 모드인가 봐요.”“그래도... 여기 오는 날은 빠지지 않으시네요.”“정기 예약이잖아요. 약속은 지켜야죠.”그녀의 말에 이현은 웃었다.‘약속’이라는 단어가 이렇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3화. 그냥, 두고 가려 했는데요
아침부터 유리는 작은 병을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한참을 바라봤다.투명한 유리병 안엔 라벤더 잎과 시트러스 껍질을 말려 넣고,직접 조합한 향오일을 한 방울씩 섞어 만든 작은 방향제.‘그냥... 좀 더 좋은 냄새가 났으면 해서요.’그 말 한마디를 어떻게 꺼낼까.밤새 고민 끝에 포스트잇 메모까지 준비해뒀다.직접 주긴 뭐하니까, 청소 마치고 조용히 현관 신발장 위에 두고 가자.그게 계획이었다.하지만 그런 계획은, 늘 그렇듯 현실 앞에 무너진다.오후 3시 정각.루체빌 1603호 문이 열리자,이현은 여전히 말끔한 셔츠에 소매를 살짝 걷은 채 그녀를 반겼다.“오늘도 오셨네요.”“오늘도 열어주시네요.”짧은 인사가 웃음으로 바뀌는 데엔 몇 초도 걸리지 않았다.둘의 리듬은 이제 익숙해졌고, 말 안 해도 느껴지는 호흡이 있었다.“뭔가 향이 달라졌네요?”이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저요? 아, 오늘은 새로 개발 중인 방향제 조금 써봤어요.”“그래서 그런가. 기분이 좋아지네요.”그 말에 유리는 슬쩍 웃었다.작은 병이 가방 속에서 가만히 흔들리고 있었다.지금 당장 꺼내고 싶었지만, 아직은 아니었다.오늘도 청소는 부드럽고 조용하게 흘러갔다.하지만 이현은 뭔가를 눈치챈 듯 소파에 앉아 그녀의 주변을 힐끔거리기 시작했다.“가방... 오늘 되게 무겁게 들고 오셨네요?”“그런가요? 그냥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까.”“혹시 저한테 줄 거라도...?”“...네?”그녀는 당황해서 걸레를 쥔 손을 놓칠 뻔했다.이현은 장난처럼 웃었지만, 그 웃음 뒤에 조금의 진심이 있었다.“아니에요. 그냥... 느낌이 그랬어요.”“느낌이요?”“청소하러 오는 사람한테 매번 설레는 건... 기분 탓이겠죠?”그 말에 유리는 잠시 눈을 피했다.그건 기분 탓이 아니었고, 그녀 역시도 같은 감정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청소가 끝나갈 무렵, 유리는 조심스럽게 작은 방향제를 꺼냈다.작은 병에 손글씨로 “작은 향 하나, 공간 안에 머물게요 :)” 라고 쓴 포스트잇을 붙였다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4화. 당신의 이름이, 오늘 내 하루를 어지럽혔어요
청소 요청지가 오랜만에 낯선 동네였다.햇살이 잘 드는 아파트 12층,주방은 넓었고 거실엔 분홍빛 쿠션이 가득했다.“따님이 있으신가 봐요.”유리는 핑크색 인형이 놓인 소파를 바라보며 중얼거렸다.자잘한 먼지를 흡입기로 쓸어내면서, 머릿속은 오히려 고요했다.정기 예약 이외의 고객을 맡는 건 오랜만이었다.그동안은 스케줄 대부분이 루체빌 1603호.이현의 공간이 거의 유리의 주간 루틴이 되다시피 했으니까.‘그러고 보면 요즘, 다른 집 느낌이 좀 낯설다.’허리를 숙이다가, 폰이 진동했다.[이현]유리님, 혹시 방향제 병에 붙인 포스트잇… 직접 쓰신 거예요?순간, 손끝이 멈췄다. 문자 하나였을 뿐인데,그 이름 석 자가 공간 전체의 온도를 바꾸는 것처럼 느껴졌다.유리는 천천히 폰을 들여다봤다.메시지는 짧았고, 아주 사적인 내용도 아니었는데 왜 이렇게 가슴이 간질거릴까.‘직접 썼죠. 그걸 누가 대신 써줘요...’답장을 하려다 말고, 그냥 웃어버렸다.이름만 봐도 이렇게 마음이 붕 뜨는 사람은 처음이었다.[유리]네. 손글씨 별로죠?사실... 조금 부끄러웠어요.보내고 나서 괜히 후회가 됐다.너무 가볍게 쓴 건가, 아니면… 아예 답장을 안 했어야 했나?하지만 곧.[이현]아니요, 그 글씨 덕분에 그 병이 더 오래 남을 것 같아요.유리님 손끝이 묻은 것처럼요.‘유리님 손끝이 묻은 것처럼.’유리는 깊게 숨을 들이마셨다.거실은 여전히 정리 중이었고, 소파 위에 먼지 한 톨 없이 닦아낸 인형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지만 그 순간 유리의 마음은, 정리되지 못한 감정들로 꽤나 어질러져 있었다.청소를 마친 후, 의뢰인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서려다 유리는 잠깐 걸음을 멈췄다.폰 화면을 다시 켜고, 그의 메시지를 한 번 더 읽었다.딱히 특별한 문장은 아니었는데,읽을수록 그가 그녀를 아주 조용하고 섬세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게 느껴졌다.문득, 다음 주 루체빌 스케줄이 떠올랐다.벌써 가고 싶어졌다.집에 돌아오는 길.버스 창밖으로 넘어가는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5화. 청소 말고, 당신이 있는 곳
유리는 문득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청소 예약 앱에 올라온 일정표엔 루체빌 1603호가 오늘도 정각 3시로 표시되어 있었지만,이현의 메시지가 그보다 조금 더 일찍 도착했기 때문이다.[이현]유리님, 오늘 청소 전 30분만 시간 괜찮으실까요?근처 카페에서 잠깐만요. 아주 중요한... 음, 업무 관련 회의입니다 유리는 그 메시지를 읽고 세 번이나 다시 읽었다.‘업무 관련 회의’라는 말 뒤에 붙은 이현의 이모티콘 없는 문장은왠지 모르게 조심스럽고, 또 그만큼 다정하게 느껴졌다.“업무 회의가 카페라니...근데 왜 웃음이 나지.”고개를 숙여 조심스럽게 미소 지으며, 그녀는 평소보다 조금 다른 옷을 꺼냈다.청소하기엔 살짝 아까운 옅은 회색 셔츠,그리고 한 번도 안 써본 립밤.특별하지 않지만, 그녀 나름의 조용한 준비.카페는 이현의 회사 근처 골목 안쪽,햇살이 길게 들어오는 창가 자리가 조용히 비워져 있었다.“여기, 맞으세요?”유리가 조심스럽게 들어서자,이현은 자리에서 바로 일어나 그녀를 맞았다.“오셨어요. 생각보다... 더 일찍 오셨네요?”“...아, 저도 사실 좀 일찍 도착했는데, 근처에서 망설이다가요.”그 말에 이현은 작게 웃었다.그녀가 망설였다는 것만으로도 왠지 마음이 따뜻해졌다.“사실 오늘은, 특별한 날이에요.”그가 컵을 두 손으로 감싸며 말을 꺼냈다.“기념일이라든가... 그런 건 아닌데요,저희 회사가 첫 출시한 게임이 오늘 딱 2년 됐어요.그날 혼자 야근하다가... 정리도 못한 사무실에서 컵라면 먹고 있었거든요.근데 지금은 이렇게, 누군가랑 커피 마시고 있으니까... 이게 좀 특별해졌네요.”유리는 아무 말 없이 그의 말을 들었다.그가 말하는 '누군가'에 자신이 포함된다는 게, 이상하게 오래 마음에 머물렀다.“그래서... 그냥요. 그 자리에 유리님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조용한 목소리. 달지 않은 커피향 사이로 흘러나온 진심은,그 어떤 고백보다도 따뜻하게 스며들었다.“유리님은... 평소에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6화. 아무 말 없이도 티 나는 마음
햇살이 부드럽게 내려앉은 오후.유리는 오늘도 루체빌 1603호를 향해 걷고 있었다.늘 그렇듯 청소 도구가 담긴 가방을 들었고,양손은 바쁘게 움직였지만 마음은 어딘가 조용했다.'이젠 정말 익숙해졌다.'그의 현관, 향기, 커피잔 모양, 그리고 웃을 때 살짝 휘어지는 눈매까지.모두 익숙하고, 익숙해서 더 설레는 마음.띵동~ 벨을 누르자마자 문이 열렸다.“오셨어요.”이현은 웃으며 문을 열었다.그리고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오늘은… 청소하지 않아도 될지도 몰라요.”그 말에 유리는 눈을 깜빡였다.“네?”“제가 아침에 잠깐 치웠거든요. 유리님 오신다고 하니까 괜히.”유리는 조용히 웃었다.그가 ‘유리님 오신다고 하니까’라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때마다,마음이 자꾸 멀쩡하지 못해진다.“그럼, 오늘은 감상평 남기러 왔네요.”“저한테는 최고의 감상자니까요.”청소는 평소보다 훨씬 부드럽고, 오히려 덜 바빴다.그만큼 그녀의 손도 느릿해졌고, 움직임 사이에 여백이 생겼다.그 틈에 자꾸 그가 들어왔다.눈길, 숨소리, 컵 내려놓는 소리.심지어 그냥 가만히 앉아 있는 모습조차.'이젠 이 사람의 공간을 정리하러 오는 게 아니라, 이 사람 자체를 만나러 오는 것 같아.'그녀는 조용히 그 사실을 인정했다.그리고 이상하게 그게 전혀 이상하지 않았다.이현이 커피를 내리며 물었다.“유리님, 청소하면서 제일 좋아하는 공간이 어딘가요?”“의외로...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요.”“바닥이요?”“네. 가득하던 물건 치우고, 걸레질 하고 나면 아무것도 없는 바닥이 딱 보이잖아요.그게... 마음 같아서요.”“그럼...제 마음도 좀 정리됐을까요?”“이미 꽤 반짝이던데요.”그 말에 둘 다 웃었다. 그 웃음은 조용했지만, 서로에게 똑같은 의미로 닿았다.청소가 끝나고, 유리는 오늘은 먼저 나가지 않았다.그냥 조용히, 그의 공간에 조금 더 머물렀다.오래 있지 않아도 괜찮았다.짧은 순간에도 마음은 충분히 채워졌으니까.문 앞에 섰을 때, 이현이 작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7화. 그 남자, 무례할 정도로 솔직하다.
그날도 루체빌 1603호는 햇살 좋고, 커피 향이 좋았다.그리고 유리의 마음 역시… 아주 좋았다."이제 정말, 이 집은 제 일상 중 하나 같아요."유리가 싱긋 웃으며 말을 건네자,이현은 유리에게 커피를 건네며 조용히 말했다."저도요. 유리님이 오는 시간이, 이제 하루의 중심이에요."심장이 쿵. 유리는 순간 손에 들린 머그잔을 놓칠 뻔했다.그 말이 너무 진심 같아서, 농담처럼 넘기고 싶었지만 넘길 수 없었다.이현도 알았을 것이다.지금 이 분위기, 지금 이 타이밍… 말만 하면 된다.정리도 청소도 끝났고, 이제는 감정만 남아 있었다.하지만 바로 그때.띵동~초인종 소리에 두 사람의 눈빛이 동시에 흔들렸다.이현이 약간 당황한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났다."누구지? 요즘엔 택배도 안 오는데..."문을 열자, 익숙한 얼굴.헐렁한 가디건에 핸드폰을 손에 쥔 채 익숙하게 웃고 있는 남자.“나 왔지롱.”공찬이었다. 이현의 절친, 그리고 이현과는 정반대의 성격을 가진 남자.공찬은 현관 안쪽을 슬쩍 들여다보다, 순간 딱 멈췄다.그곳엔, 눈에 띌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었다.라벤더빛 셔츠에 살짝 묶은 머리,조심스럽게 머그잔을 들고 있는 유리.그리고 바로 튀어나온 한마디."헉… 설마, 이분은 그 유명한 인플러언서 청소 전문가님?"유리는 어색하게 웃으며 인사했다."네, 안녕하세요. 유리라고 해요."공찬은 눈썹을 한껏 치켜올리고, 감탄하듯 고개를 끄덕였다."청소 전문가가 이렇게 미인이어도 되는 거예요...?이 정도면 먼지들이 자진해서 도망가겠는데요."유리는 당황하며 웃었고, 이현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공찬.""왜~ 칭찬인데."공찬은 당연하단 듯 웃으며 안으로 들어섰다.그날 이후, 처음으로 유리와 이현 사이에 낯선 공기가 흘렀다.* * * * * * * * * 며칠 뒤. 루체빌 1603호에 다시 방문한 유리는 문 앞에서 괜히 손등으로 얼굴을 쓸어내렸다."왜 이렇게 긴장되지..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8화. 닮은 얼굴, 다른 의도
이현의 회사, '엔프로소프트'는 요즘 눈코 뜰 새 없이 바빴다.신작 게임의 개발이 본격화되며 프로젝트 규모가 두 배로 커졌고,자연스럽게 사람을 더 충원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대표님, 오늘 개발팀 면접 일정 있으신 거 아시죠?"비서의 말에 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중에 괜찮은 사람 있으면 좋겠네요."오후가 되자 면접이 하나둘 이어졌고,그렇게 개발팀 마지막 순서가 호출되었다.문이 열리고, 지원자가 들어섰다.이현은 서류에 시선을 두고 있다가,고개를 드는 순간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놓칠 뻔했다.그녀는 유리였다.…아니, 유리와 똑같이 생긴 사람이었다.긴 생머리, 뚜렷한 이목구비, 살짝 올라간 입꼬리. 하지만 눈빛이 달랐다.그녀는 유리처럼 맑고 따뜻한 인상이 아니라, 도도하고 자신감 넘치는 분위기였다.시선 하나하나가 강했고, 입꼬리 끝은 늘 여유로웠다."안녕하세요. 유진입니다."이현은 그녀의 이력서 사진을 다시 내려다보았다.이건 단순한 닮음이 아니다. 그는 직감적으로 느꼈다. 유리와 이 사람은 쌍둥이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을면접 내내 유진은 당당했고, 대답도 정확했다.그녀의 말투에는 확신이 있었고, 시선은 흔들림이 없었다.그런데 그중간중간 이현을 향한 눈빛은, 묘하게 길었다.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면접을 마무리했다."연락드리겠습니다."결국, 그는 그녀를 채용했다.실력 때문이라기보다는…그 얼굴 때문이었다.아니, 얼굴보다는 궁금증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왜 유리는 쌍둥이 언니 이야기를 한 번도 하지 않았을까.무슨 사연이 있는 건 아닐까.며칠 뒤, 정기 청소일.유리는 평소처럼 밝은 목소리로 현관을 들어섰고,이현은 어색하게 웃으며 문을 열어주었다.하지만 그의 머릿속에는 자꾸 유진의 얼굴이 떠올랐다.똑같은 얼굴인데, 이토록 다르다니.유리는 순하고 부드럽고 말투도 조심스러운데,유진은 단정하면서도 당당하고, 어딘가 위험한 끌림이 있었다.“대표님? 오늘은 기분이 좀 묘하세요?”“아, 그냥 일 때문에요. 요즘 정신이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9화. 점심은 대화보다 가까워서
이현의 사무실 인근, 회사 사람들이 자주 찾는 브런치 카페.점심시간보다 조금 빠른 11시 40분,이현은 약속보다 조금 먼저 도착해 있었다.잠시 후, 유진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단정한 셔츠에 차분하게 묶은 머리, 가벼운 립스틱.하지만 오늘의 유진은 어딘지 조금 더 여성스럽고 부드러워 보였다."대표님, 오래 기다리셨어요?""아뇨. 저도 방금 왔어요."둘은 마주 앉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하나씩 집어 들었다.초반의 대화는 주로 업무적인 이야기로 흘러갔다.어제 있었던 코드리뷰, 팀 내 협업 프로세스, 작은 UI 수정 건까지.그러다 문득 유진이 말을 멈추고, 커피잔을 살짝 흔들며 말했다."이런 자리, 낯설지만 좋네요. 대표님이 이렇게 따로 시간을 내주시니까."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요즘 유진 씨가 팀 분위기도 잘 챙기고 있어서 고마워요. 그 얘기, 직접 하고 싶었어요."유진은 잔을 내려놓고 작게 웃었다."칭찬... 이런 자리에서 들으면 더 오래 기억에 남는 것 같아요."잠시 정적이 흐르다가, 유진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사실 요즘 대표님이 저한테 많이 챙겨주시잖아요.그래서 저도 좀 더 잘하고 싶단 생각이 들어요."이현은 유진의 시선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부담되진 않아요? 괜히 내가 의식하게 만든 건 아닐까 싶기도 해서.""전혀요. 오히려... 그게 동기부여가 되는 것 같아요.대표님처럼 일에 진심인 사람 옆에 있다는 건 저한텐 큰 자극이에요."그 말에 이현은 피식 웃었다.그의 눈가에는 한결 부드러운 선이 그려졌다.유진은 더 말하지 않았다.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전달되는 공기라는 게 있으니까.식사를 마치고 계산을 마친 이현이 문을 열어주며 말했다."이런 자리, 앞으로도 종종 가져도 좋겠네요."유진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그럼요. 오늘, 정말 좋았어요."햇살은 창을 타고 들어왔고, 두 사람의 그림자가 나란히 바닥에 길게 드리워졌다.그 거리는 여전히 '일'이라는 명목 아래 놓여 있었지만, 마음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10화. 두 사람 사이, 아무도 모르는 거리
그날 밤, 이현은 평소보다 늦게 퇴근했다.책상 위에 올려둔 커피잔은 이미 식어 있었지만,잔향만은 여전히 그의 손끝을 붙잡고 있었다.유진의 말투, 눈빛, 그리고 마지막에 남긴 한 마디.“내일은 대표님 차례예요.”그 말은 장난처럼 가볍게 흘러나왔지만,묘하게도, 이현의 가슴 한구석을 오래도록 눌렀다.그녀는 확실히 직진하는 사람이었다.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단정한 옷차림에 숨겨진 강단,눈을 피하지 않는 솔직한 태도,말보다 진심이 먼저 도착하는 사람.하지만 이현은, 아직 확신할 수 없었다.그 감정의 방향이 어디로 흘러야 옳은지.창밖으로 조용히 스미는 밤공기를 바라보며, 그는 낮게 중얼거렸다."참, 복잡하네..."다음 날 오후. 루체빌 오피스텔 복도.유리는 손에 장비 가방을 든 채 익숙하게 비밀번호를 누르고 있었다.'삑~' 소리와 함께 열리는 문.그 문 너머로 마주한 이현은, 어제와 다름없는 표정을 하고 있었지만유리는 문득, 마음 어딘가가 살짝 움찔하는 걸 느꼈다.“오늘도 오셨어요.”“오늘은 유난히 날씨가 좋네요. 이 집엔 햇살이 참 잘 들어오죠.”밝게 웃는 유리.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자꾸만 이현의 표정을 쫓고 있었다.장비를 꺼내 정리하던 유리는, 청소기를 작동시키며 조심스럽게 물었다.“요즘 대표님, 기분이 자주 바뀌시는 것 같아요.전에 뵐 땐 늘 똑같았는데, 요즘은 조금 다르달까.”이현은 당황한 기색 없이 웃었다.“일이 많아졌어요. 신입도 들어오고, 일정도 앞당겨지고...”“아, 새 직원이요?”“개발팀에 유진 씨라고 있어요. 실력도 성격도 괜찮은 분이에요.”유리의 손이 아주 잠깐 멈췄다.그러다 아무렇지 않게 다시 청소기를 움직이며 대답했다.이현도 무심결에 나온 유진의 이름에 유리의 눈치를 살필 수 밖에 없었다.“오~ 듣기만 해도 멋진 분이네요. 대표님이 그렇게 말하시는 분이라면 더더욱.”그녀는 웃었지만, 그 웃음은 이현이 아는 유리의 웃음과는 조금 달랐다.조금은 조심스럽고, 아주 약간 슬퍼 보였다.
last update최신 업데이트 : 2026-03-10
더 보기
좋은 소설을 무료로 찾아 읽어보세요
GoodNovel 앱에서 수많은 인기 소설을 무료로 즐기세요! 마음에 드는 작품을 다운로드하고, 언제 어디서나 편하게 읽을 수 있습니다
앱에서 작품을 무료로 읽어보세요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