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IN완벽한 남자, 단 하나 못하는 건… 청소? 그리고 그의 공간에 나타난, ‘청소에 진심인’ 여자 유리. 매주 반복되는 청소, 그 속에서 자꾸 어지러워지는 마음. "청소는 깔끔하게, 그런데 왜 이 사람은... 자꾸 마음에 남을까요?" 산뜻하고 달콤한, 생활 밀착형 설렘 로맨스 《대표님! 청소하러 왔는데요》
View More유리는 오늘도 청소 가방을 등에 메고,
익숙한 듯 발끝에 힘을 주며 건물 입구로 향했다.
‘루체빌 오피스텔 1603호. 오후 3시 예약.’
아침에 확인했던 알림이 떠오르자, 그녀는 자연스레 속으로 중얼거렸다.
“3시. 좋아, 딱 햇살 잘 드는 시간.”
햇볕이 유리창을 타고 떨어지는 오후 세 시의 방은 대체로 기분이 좋다.
먼지도 반짝이고, 바닥도 더 잘 닦이고,
무엇보다 사람 마음도 괜히 가벼워지는 시간대랄까.
“오늘도 반짝반짝하게 만들어 드려야지.”
혼잣말을 하며 버튼을 누르고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등에 멘 가방 속에는 각종 청소 도구들과 유리만의 비장의 아이템들이 가득했다.
장비만 보면 거의 탐정 같다는 농담도 가끔 들었지만
그녀는 그게 좋았다. 누군가의 공간을 정리해 주는 일,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게 해주는 일.
띵동. 도어락이 풀리는 소리가 났다.
유리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복도 끝 너머로 넓게 펼쳐진 공간을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혹시 유리님?”
낮고 따뜻한 목소리가 귀를 간질였다.
유리는 무심코 고개를 들었고, 그 순간 작게 눈이 동그래졌다.
“...아, 네. 안녕하세요.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에서 왔어요.”
그녀가 마주한 사람은 사진도 정보도 없는 고객이라는 단어와는
너무 어울리지 않는, 마치 로맨스 드라마 속 주인공처럼 생긴 남자였다.
흰 티에 그레이 니트 하나 걸친 차림인데도 분위기가 달랐다.
그리고... 웃을 때 살짝 찌그러지는 눈매가 너무, 너무 좋았다.
‘와... 이게 진짜 가능해?’
그는 유리를 보며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생각보다 더... 프로 같으시네요.”
“그런 얘기 자주 들어요. 사진보다 더 잘 치운다고도요.”
유리는 환하게 웃으며 신발을 벗고 안으로 들어섰다.
실내는 꽤 넓었다. 그리고... 제법 어질러져 있었다.
“청소를... 한참 안 하셨나 봐요?”
“네. 아예요. 청소랑은 좀... 거리가 멀어서요.”
“그럼 잘 오셨어요. 제가 가까워질게요. 청소랑.”
그녀는 능숙하게 장비를 꺼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이런 농담은 손님들 긴장도 풀어주고, 자신의 긴장도 풀리게 했다.
하지만 오늘은 좀 달랐다.
그를 마주하고 있자니 자꾸만 마음이, 쿵 하고 울렸다.
“이거, 다 직접 쓰시는 거예요?”
이현은 유리의 가방에서 나오는 장비를 신기한 듯 바라봤다.
“네. 직접 조립한 것도 있어요. 이거는 초미세먼지 전용,
이건 친환경 소재로 만든 세정제, 그리고 이건...”
설명을 하던 유리가 문득 말을 멈췄다.
그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선이 너무 따뜻해서, 순간 숨이 막힐 뻔했다.
“...이건 그냥, 제가 아끼는 거예요.”
무슨 말을 하는 거야, 유리야.
그녀는 속으로 고개를 흔들며 뺨을 살짝 꼬집었다.
그런데, 그가 웃었다.
“왠지, 그런 거 같았어요.”
“네?”
“이 방을 대하는 손길이... 그냥 일하는 느낌이 아니어서요.”
유리는 그 말에 머쓱하게 웃으며 고개를 푹 숙였다.
닦아야 할 먼지가 갑자기 많아진 느낌이었다.
한참 청소를 하던 중,
이현은 조용히 소파에 앉아 유리의 뒷모습을 바라봤다.
허리를 숙여 테이블 밑을 정리하고 있는 그녀.
가끔 머리카락이 흘러내리면 손등으로 턱 하고 넘기고,
그 손끝엔 언제나 부드러운 리듬이 있었다.
공간이 맑아지는 것만 같은 착각.
청소기 소리마저 기분 좋게 느껴지는 이상한 오후였다.
“정말, 다 끝났네요.”
“네. 기분도 좀 나아지셨죠?”
“많이요. 이렇게 맑은 집은 오랜만이에요.”
유리는 옷을 정리하며 마지막 정리정돈을 마쳤다.
이현은 작게 망설이다가 명함을 건네달라 부탁했다.
그녀는 가방 속에서 조그만 카드를 꺼내 건넸다.
“이 앱에서 정기 청소 예약 누르시고, 제 아이디 입력하시면 돼요. 저를 지정하고 싶으시다면요.”
그 말에 이현은 눈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다음 청소가 벌써 기다려질지도 모르겠네요.”
그의 말에 유리는 그만, 작게 웃고 말았다.
문을 나서며 그녀는 중얼거렸다.
“진짜 이상하다... 청소보다 사람이 더 남는 건 처음인데...”
그리고 이현 역시, 문이 닫히는 소리를 들으며 그 공간을 둘러봤다.
깨끗해진 바닥, 환해진 창, 가볍게 정돈된 테이블 위의 작은 화병.
그리고, 그녀가 남긴 향기 같은 뒷모습.
그건 먼지보다도 오래 남는 무엇이었다. 기억 속에서, 조용히 반짝이는.
* * * * * * * * *
루체빌 1603호.
그 주소를 다시 확인한 순간, 유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라...?”
앱 화면엔 분명 ‘정기 청소 등록됨’이라는 문구가 떠 있었다.
며칠 전, 햇살 가득한 오후에 청소를 마친 그 집.
창가에 먼지가 가볍게 흩날리던 거실.
그리고, 괜히 가슴 한쪽이 간질거리는 남자 고객.
‘...그분이 또 요청하신 건가?’
유리는 괜히 목덜미를 한번 긁었다.
특별할 건 없는 일인데, 이상하게 얼굴이 조금 화끈해졌다.
아니지. 정기 예약도 흔한 일이고,
다시 방문하는 것도 전혀 드문 일이 아닌데 왜 이렇게 신경이 쓰이는 걸까.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청소하러 가는 날에는 늘 입는 편한 베이지 셔츠 대신,
오늘은 크림색 니트에 밝은 연청 바지를 꺼냈다.
그것도 모자라 귀걸이를 껴볼까 말까 망설이다가 결국 하지 않았다.
“...무슨 소개팅 가냐, 유리야.”
입술을 꾹 다물고 웃으며 고개를 저었지만,
손끝은 어딘가 들뜬 듯 부지런히 움직였다.
머리를 깔끔하게 묶고, 가방 정리를 꼼꼼히 하고 나서야 드디어 현관문을 나섰다.
이현은 이미 커피를 두 잔 내려두고 있었다.
하나는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른 하나는... 그냥, 혹시 몰라서.
"청소하러 오시는 분께 커피 내리는 사람은 또 처음이네."
자신에게 중얼거리듯 말하며 머리를 한 번 넘겼다.
오늘따라 거실이 괜히 낯설게 느껴졌다.
바닥은 여전히 깔끔했고, 창문엔 지문 하나 없었고,
모든 게 정돈된 상태인데도 어쩐지 허전했다.
그건 아마, 며칠 전 그녀가 떠난 뒤로 그의 일상이 조금 심심해졌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띵동~초인종이 울렸다.
그는 괜히 두근거리며 문을 열었고, 그곳엔 환하게 웃으며 선 유리가 있었다.
“안녕하세요, 다시 뵙네요.”
“오셨어요. 들어오세요.”
잠깐의 인사. 하지만 그 안에는 어색한 반가움과 말하지 못한 설렘이 조용히 섞여 있었다.
유리는 방 안으로 들어서며 익숙한 듯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러다 문득, 이현이 두 잔의 커피 중 하나를 자신 쪽으로 미는 걸 보고 당황했다.
“...저, 커피는 괜찮은데요?”
“괜찮으면 마시고요. 괜찮지 않으면, 그냥 봐주세요.”
“후기용 선물인가요?”
“아뇨. 감사의 마음? 오늘도 집을 빛나게 해주실 테니까요.”
그 말에 유리는 못 이긴 듯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오늘만 받아요.”
그녀는 컵을 들고 잠깐 향을 맡았다.
은은하게 퍼지는 바닐라 향.
이 집과는 어울리지 않을 만큼 따뜻하고 부드러웠다.
청소는 다시 시작되었다.
익숙한 듯 물티슈가 펼쳐지고, 분무기가 작동하며,
바닥은 부드러운 리듬을 따라 닦였다.
하지만 이상하게 오늘은, 유리의 손끝이 자꾸만 느려졌다.
어제보다 조금 더 자주 그를 흘끗 보게 되었고,
그의 숨소리나 움직임이 이상하게 또렷하게 들렸다.
그녀가 거실 선반을 정리하다 잠깐 균형을 잃었을 때 이현이 무심한 듯 다가와 손으로 그녀의 어깨를 받쳐주었다.
“괜찮으세요?”
“네! 아, 네. 괜찮아요. 감사합니다...”
작은 접촉, 짧은 순간이었지만, 유리는 도저히 아무렇지 않은 척할 수 없었다.
심장이, 조금 웃기게도, 먼지 털이개처럼 흔들리고 있었다.
정리를 모두 마치고 나자, 이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혹시 다음 주 이 시간도... 괜찮을까요?”
“스케줄 봐야 알겠지만... 아마도 가능해요.”
“그럼 그때도, 오늘처럼 부탁드릴게요.”
유리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청소는 확실하게 해드릴게요. 그 대신, 커피는 다음에도 주실 건가요?”
그 말에 이현은 순간 당황하더니, 천천히 웃었다.
“그럼요. 다음엔 더 맛있게 내려둘게요.”
문을 나서는 길. 유리는 발끝에 힘을 실으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청소하러 간 건 맞는데... 왜 이렇게 기분이 좋지?’
그리고 그 순간, 이현은 그녀가 닫고 나간 문 앞에 한참을 서 있었다.
웃는 그녀의 옆모습이, 아직 방 안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았다.
그날 이후, 청소는 매주 계속되었고,
두 사람 사이에 쌓인 설렘도 조금씩, 고르게 정리되고 있었다.
평일 저녁. 루체빌의 불은 늘 그랬듯 따뜻하게 켜져 있었지만,그 안을 채우는 공기는 어느 날보다 조금 더 무거웠다.이현은 귀가하자마자 양복 상의를 벗어 의자 등받이에 걸어두고, 말없이 노트북을 열었다.유리는 부엌에서 조용히 국을 데우고 있었고,그의 숨소리 하나에도 조심스레 마음을 기울였다.식탁에 앉았지만, 그날의 밥상엔 말이 적었다.“오늘 회의 많았어요?”유리가 먼저 조심스레 물었다.“네. 보고도 길고… 신제품 일정이 좀 당겨졌어요.”이현은 젓가락을 들었지만 숟가락에 밥을 올리기까지 조금 오래 걸렸다.그의 손끝은 피곤했고, 눈빛엔 뭔가 정리되지 않은 무게가 내려앉아 있었다.유리는 그를 바라보다 더 묻지 않기로 했다.저녁을 마치고 이현은 노트북 앞에 다시 앉았고,유리는 설거지를 마친 뒤 거실 소파에 조용히 앉아 책을 폈다.같은 공간에 있지만 서로가 다른 리듬으로 앉아 있는 시간.그건 이제 익숙한 함께의 형태였지만, 오늘만큼은 그 틈이 살짝 벌어진 것 같았다.이현은 화면을 내려다보다 문득 말을 꺼냈다.“유리 씨.”“응.”“요즘… 내가 잘하고 있는지 모르겠어요.”유리는 책을 덮고 고개를 돌렸다.“어떤 부분에서요?”“회사에서는 이제 ‘대표답게’ 더 많은 걸 끌어야 하고,집에 오면 당신한테 너무 무심해지는 것 같고…나 뭔가… 두 쪽 다 어중간한 사람이 되는 것 같아서.”그 말은 조용하지만, 단단히 눌러 참았던 마음의 기울기였다.유리는 소파에서 천천히 일어나 이현 옆에 조용히 앉았다.그리고 그의 노트북 화면을 살짝 닫으며 말했다.“이현 씨. 당신이 회사에서 어떤 모습인지는 내가 다 알 수 없지만 집에서의 당신은 지금도 충분히 내 남편이에요.”“하지만…”“내가 바라는 건 일을 덜 하라는 게 아니에요. 당신이 나 때문에 스스로를 갈라놓지 않았으면 해요.”이현은 고개를 떨궜다.유리는 그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사람은 하루에 하나만 완벽할 수 있어요. 그게 회사일 수도 있고, 우리의 하루일 수도 있죠.나는 그 하루가
비행기는 저녁 무렵 김포에 도착했다.신혼여행 내내 따뜻한 날씨와 낯선 풍경을 걸어온 두 사람은짐이 가볍지 않음에도 발걸음만큼은 한결 느슨하고 여유로웠다.택시가 루체빌 앞에 멈췄을 때, 유리는 창밖으로 펼쳐진 익숙한 거리의 불빛을 한참 바라보다 말했다.“집이네요.”이현은 짧게 웃었다.“그러게요. 다녀온 것 같기도 이제야 진짜 시작하는 것 같기도 해요.”현관 앞에 서자, 유리가 먼저 문을 열었다.익숙한 소리. 익숙한 냄새. 그 안에서 두 사람은 동시에 ‘돌아왔다’는 감각을 조용히 맞았다.루체빌 거실. 가방은 그대로 바닥에 놓였고, 두 사람은 말없이 소파에 앉아 있었다.오랜만에 맞이한 그 공간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지만,그 속에서의 마음은 분명 달라져 있었다.“여기 조명, 이제 좀 어둡게 느껴지지 않아요?”유리가 물었다.“그래요. 여행지에서 햇살이 워낙 강했으니까.”“그럼 우리, 이 조명도 조금 바꿔볼까요?”“좋아요. 결혼 후 첫 집 손보기.”둘은 그렇게, 평범한 변화의 시작을 다정하게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밤이 깊어갈수록 짐은 서서히 풀어졌고, 수건은 세탁기에 들어갔고,기념품은 식탁 한편에 줄지어 놓였다.유리는 여행지에서 사 온 작은 유리 종을 창가 선반 위에 올려두며 말했다.“이거, 햇빛 들어오면 맑은 소리 날 것 같아요.”이현은 고개를 끄덕였다.“그 소리 들을 때마다, 그날 골목 걷던 우리가 떠오를 거예요.”“그리고 그날 우리 마음도.”새벽 무렵, 유리는 부엌에서 조용히 머그잔을 꺼냈다.속이 허전하다는 말을 꺼내지 않아도 이현은 물을 데우고 있었다.“역시 우리, 말 안 해도 잘 통해요.”유리가 웃으며 말했다.“함께 산다는 게 그런 거잖아요. 같이 안 말해도, 같은 쪽으로 느껴지는 것.”이현은 머그잔을 건네며 말했다.“내일부터는 출근이에요.”“그러네요. 다시 일상.”유리는 머그잔을 양손으로 감싸쥐고 창밖을 바라보았다.“근데 이현 씨. 이제부터는 일상도 좀 다른 것 같지 않아요?”“어떤 점에서요?”
비행기는 제시간에 도착했다.창밖으로 펼쳐진 바다는 서울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넓고 깊어 보였고,하늘은 말 그대로 ‘휴가를 위한 색’이었다.유리와 이현은 공항에서부터 손을 잡은 채 이동했다.오래 걸리지 않는 거리였고, 차창 밖으로 흘러가는 풍경은 서로에게 익숙하지 않은 나라, 익숙하지 않은 시간대 속으로 천천히 걸어 들어가는 기분이었다.숙소는 바다와 가까운 언덕 위에 있었다.테라스가 넓었고, 하얀 커튼이 바람을 따라 천천히 흩날렸다.짐을 내려놓자마자, 유리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이 바람… 이현 씨, 여기 소리 들어봐요.”이현은 뒤에서 조용히 다가와 그녀 옆에 섰다.둘은 말없이 테라스 밖 바람소리와 파도소리를 들었다.조용하다는 말보다, 평화롭다는 말이 더 어울리는 순간이었다.점심을 먹기 위해 작은 로컬 식당을 찾았고, 유리는 메뉴판을 보며 잠시 고민에 빠졌다.“음… 고수 들어간 음식 괜찮아요?”이현은 웃었다.“내가 고수 잘 못 먹는 거 그새 잊었어요?”“아, 맞다. 그때 쌀국수집에서도 몰래 빼줬었죠.”“결혼했다고 입맛까지 같아지는 건 아니니까.”유리는 그 말에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맞아요. 다르다고 느끼는 게, 같아지려 애쓰는 것보다 훨씬 사랑스럽네요.”그 말은 오랜 연애보다 더 깊은 이해였다.식사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햇살은 점점 부드러워지고 있었고, 이현은 마트에 들러 유리에게 아이스크림 하나를 건넸다.“결혼 첫 여행 기념. 아이처럼 하나씩.”유리는 아이스크림을 받아들며 말했다.“그럼 오늘 하루, 우리 둘 다 아이처럼 굴어요.”“이미 당신 눈빛이 초등학교 방학 첫날이에요.”저녁 무렵. 숙소 테라스.두 사람은 나란히 발을 내밀고 바람을 맞으며 앉아 있었다.유리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입을 열었다.“이현 씨, 나 오늘 하루종일… 계속 당신이 낯설게 느껴졌어요.”“왜요?”“평소보다 말이 적고, 주변 잘 챙기고, 작은 거에 더 웃고 그런 당신을 보면서,'아, 이 사람은 내가 아직 다 모르는
결혼식 당일. 맑고 단정한 하늘 아래,서울의 작은 정원 예식장은 이른 아침부터 조용한 기척들로 분주했다.꽃은 유리의 취향대로 심플한 들꽃 위주로 꾸며졌고,웨딩홀 입구엔 두 사람이 직접 손으로 적은 간판이 세워져 있었다.“누구도 대신하지 않은 마음, 우리가 끝까지 함께 쓴 하루.”이현은 신랑 대기실에서 화이트 셔츠 위에 재킷을 입고 있었다.공찬이 사회자 대본을 손에 들고 농담 섞인 톤으로 말했다.“이 형… 긴장했네. 딱 봐도 손에 땀 났어.”이현은 웃지 않았다.다만 정면의 거울을 바라보며 조용히 말했다.“지금 내 마음은 단 한 가지 생각밖에 없어.”“뭔데?”“내가 저 사람 앞에 서는 순간, 절대 흔들리면 안 된다는 거.”공찬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그가 말장난을 멈췄다는 건,그 순간의 감정이 장난으로는 감당이 안 된다는 걸 의미했다.유리는 신부대기실에서 드레스를 입고 앉아 있었다.거울 속의 그녀는 조용했고, 부드러웠으며,지금껏 살아온 모든 시간이 고스란히 어깨에 걸쳐 있는 사람처럼 보였다.어머니와는 이른 아침 짧은 전화로 인사를 마쳤고,이현의 어머니는 직접 그녀의 드레스 자락을 한 번 정리해주고 나서 손을 꼭 잡아주었다.“내가 이현이 키우면서 한 번도 내 손으로 어깨를 만져준 적이 없는데…오늘 이렇게 네 드레스 잡아주니까 괜히 눈물 날 뻔했어.”유리는 잠시 눈을 감고 말했다.“이젠… 저 사람 어깨는 제가 감쌀게요.”결혼식은 정오 정각에 시작되었다.입장곡은 두 사람이 처음 비를 함께 맞으며 걷던 골목에서 들리던 낡은 재즈 한 곡이었다.유리의 발끝이 천천히 예식장 중앙으로 다가올 때, 이현은 눈을 한 번 감았다가 다시 떴다.그 순간, 그는 단 한 사람만을 보고 있었다.그 눈빛 안엔 “사랑해”보다 더 오래 견디는 말이 담겨 있었다.‘내가 앞으로 지키고 싶은 건, 지금 저 눈동자 속에 담긴 망설임 없는 마음이다.’사회자의 멘트가 조용히 이어지고,이현과 유리는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서약서를 꺼내 들었다.이현
핸드폰 화면에 '청소에 진심인 사람들' 앱이 떠 있었다.온유는 무심한 얼굴로 손가락을 움직였다.청소 요청 예약.예약 주소, 날짜, 시간. 정확하게 입력했다.그리고 청소 전문가 지정란에, 처음 본 순간부터 머릿속에 남았던 이름을 검색했다.유리.작은 사진 속, 웃고 있는 얼굴. 온유는 짧게 웃었다."생각보다 귀엽네."그리고, '지정 요청'을 눌렀다.예약 확정 알림이 도착한 건 그로부터 몇 분 뒤였다.온유는 핸드폰을 내려놓고,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이건 단순한 만남이 아니었다.유진이 요구한 것. 유진이 원하는 결과
“오늘은, 청소 아닌 이야기만 하고 싶어요.”목요일 저녁, 햇살이 완전히 물러간 골목 끝 작은 파스타 집.은은한 조명과 나지막한 음악.그리고 창가 자리에서 마주 앉은 두 사람.테이블 가운데 작은 촛불이 유리의 얼굴을 환하게 비추고 있었다.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메뉴를 보다가, 조심스레 시선을 들었다.“여기, 분위기 좋네요.”이현은 짧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유리씨가 편할 것 같아서요. 너무 번잡한 데는 좀… 그렇잖아요.”그의 말투는 늘 그렇듯 부드러웠지만, 오늘은 조금 더 신중했고, 눈빛은… 조금 더 솔직했다.
그날 밤, 루체빌 거실엔 조명이 은은히 켜져 있었다.이현은 소파에 앉아 책을 펼쳤지만 한 장도 넘기지 못했고,유리는 옆에서 무릎을 껴안은 채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말은 없었지만, 그 조용한 틈 사이로 서로를 향한 마음이 천천히 흔들리고 있었다.그리고, 유진은 공연장 이후 처음으로 온유와 제대로 된 작별을 마친 밤,혼자 걸으며 짧게 중얼거렸다.“고마웠어. 그리고… 잘 지내.”그 말은 그녀 안에서도, 온유 안에서도 조용히 닫힌 문을 향해 전해졌다.아침 공기는 생각보다 차가웠다.햇살은 분명히 떠 있었지만, 창문을 닫지
늦은 밤, 도심의 불빛이 창가에 내려앉았다.유진은 홀로 차 안에서 창밖을 바라보고 있었다.흩어지는 가로등 불빛 사이로지나가는 연인들, 웃음소리,그리고 멀리서 들려오는 가벼운 음악.그 모든 소음이 지금 유진에게는 전혀 닿지 않았다.차 안, 조수석에 놓인 핸드폰 화면에는 보내지 못한 메시지들이 빛나고 있었다.‘유리야, 나 사실…’‘유리야, 왜 너만…’유진은 숨을 가쁘게 내쉬며 손끝으로 화면을 꺼버렸다.“…이게 뭐라고.”낮게 내뱉은 혼잣말은 한순간 공허한 한숨으로 스며들었다.같은 시간, 루체빌.유리는 부엌 식탁에
review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