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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Author: 네입클로버
교실에 혼자 남은 강지연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지금이 언제인지부터 정리했다.

체육대회 당일이었다.

오늘은 경기가 끝나면 야간 자율 없이 바로 하교하고 거기에 온전한 주말까지 붙어 있다.

고3에게는 거의 기적 같은 휴식이었고 복도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가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

그녀는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자신이 없었던 1년의 흔적을 차분히 확인했다.

가방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휴대전화도 교체되어 있었다. 번호가 그대로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

통화와 메시지 목록을 훑어보니 가장 자주 연락한 사람은 할머니, 오빠, 고모, 그리고 최아현과 앨런이었다.

‘앨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된 건가?’

차유준과의 대화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온하준의 이름은 최근 목록 어디에도 없었다.

일부러 연락처를 찾아 들어가 보니 채팅창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

온하준은 인스타도 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그의 일상을 짐작할 통로는 애초에 없었다.

그가 말했었다. 그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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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86화

    ‘온하준은 더 이상 여기서 아르바이트를 하지 않는 건가?’지난 1년 사이 정말로 너무 많은 일이 있었다.강지연은 더는 생각을 이어가지 않고 곧장 2층 연습실로 향했다.변하지 않은 것은 오직 무용 학원과 선생님뿐이었다.선생님은 그녀를 보자마자 예전과 다름없는 다정한 목소리로 얼른 준비하라고 말했다.두 시간이 지난 뒤, 앨런이 강지연을 데리러 왔다.그의 손에는 여전히 그녀가 좋아하는 수정과 한 잔이 들려 있었다.강지연은 문득 생각했다.‘평소에도 내가 이렇게 구하기도 쉽지 않은 것들을 아무렇지 않게 사다 달라고 부탁했었나?’이날 그녀의 기분은 바닥까지 가라앉아 있었다.베르덴에서 온하준의 소식을 듣는 순간 강지연은 그대로 울다 기절했고 정신을 차렸을 땐 이미 이곳으로 돌아와 있었던 것이다.그녀는 한동안 머릿속이 텅 빈 듯 흐리멍덩한 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고 두 시간 내내 쉼 없이 춤을 추며 몸이 탈진할 만큼 지쳐서야 정신이 조금이나마 또렷해지는 듯했다.하지만 마음을 짓누르고 있는 그늘은 조금도 옅어지지 않았다.온하준의 다리, 그 사실은 거대한 바위처럼 강지연의 가슴 위에 내려앉아 숨이 막힐 듯 무겁고 또 무거웠다.평소라면 차에 오르자마자 들이켰을 수정과는 손에 쥔 채 그대로였고 내릴 때까지 한 모금도 줄어들지 않았다.앨런은 예전에 강시우가 사 두었던 그 오래된 별장으로 향했다.다만 이번에는 충분한 준비 시간이 있었기에 별장 내부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기존 인테리어는 전부 철거되고 강시우 특유의 취향대로 새롭게 꾸며져 있었다.별장에 들어섰을 때 강희라와 강시우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지난 일 년 동안 두 사람은 해외를 오가며 지냈고 지금은 베르덴에 머물고 있었다.그리고 이곳에는 경호원, 정원사, 요리사, 가정도우미까지 모두 갖춰져 있었다.많은 사람이 예전처럼 철통같이 지키고 있었기에 홍순자의 안전을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였다.주방에서 밥을 데우며 강지연을 기다리고 있던 홍순자는 그녀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었다.그러나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85화

    교실에 혼자 남은 강지연은 천천히 숨을 고르며 지금이 언제인지부터 정리했다.체육대회 당일이었다.오늘은 경기가 끝나면 야간 자율 없이 바로 하교하고 거기에 온전한 주말까지 붙어 있다.고3에게는 거의 기적 같은 휴식이었고 복도에서 터져 나오는 환호가 그 분위기를 고스란히 전하고 있었다.그녀는 책상 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자신이 없었던 1년의 흔적을 차분히 확인했다.가방은 새것으로 바뀌어 있었고 휴대전화도 교체되어 있었다. 번호가 그대로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다.통화와 메시지 목록을 훑어보니 가장 자주 연락한 사람은 할머니, 오빠, 고모, 그리고 최아현과 앨런이었다.‘앨런? 이렇게 빨리 만나게 된 건가?’차유준과의 대화도 적지 않았다. 그러나 온하준의 이름은 최근 목록 어디에도 없었다.일부러 연락처를 찾아 들어가 보니 채팅창은 텅 비어 있었고 아무 기록도 남아 있지 않았다.온하준은 인스타도 하지 않았기에 그녀가 그의 일상을 짐작할 통로는 애초에 없었다.그가 말했었다. 그녀가 1년 동안 자신을 모르는 척했다고.이 공백이 그 증거일까.혹시 차단이라도 해 둔 건 아닐까 싶어 화면을 몇 번이나 눌러보다가 실수로 이모티콘 하나를 전송해 버렸다.얼마 지나지 않아 읽음 표시가 떴지만 답은 오지 않았다.적어도 차단된 상태는 아닌 듯했다.하교 시간이 되자 앨런에게서 메시지가 도착했다.[아가씨, 도착했습니다. 춤추러 가시죠.]예전과 마찬가지로 이미 교문 앞에 와 있다는 뜻이었다.강지연은 가방을 메고 빠르게 교문을 향했다.“강지연!”뒤에서 최아현이 불렀다. 돌아보자 손으로 전화하는 시늉을 했다.“내일 전화할게!”“그래!”짧게 답하고 다시 걸음을 옮겼다.‘춤은 여전히 그곳에서 배우고 있는 걸까?’한편 최아현은 온하준, 이승우와 함께 운동장 쪽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온하준, 네 가게에서 애플파이 만들 수 있지? 내일 절에 가져가게.”“응, 돼.”“나 오늘 집에 일 있어서 너희 농구는 못 보겠다. 그런데 너희 또 농구해? 오후에 장거리까지 뛰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84화

    “병원 갈래?”온하준이 숟가락을 내려놓으며 금방이라도 일어날 듯 몸을 움직였다.“아니, 진짜 괜찮아.”강지연은 급히 그의 팔을 붙잡고 스스로 숟가락을 들어 빙수를 한 입 떠먹었다.“찬 거 좀 먹으니까 훨씬 나아졌어.”마침 이승우의 빙수와 최아현의 보리차도 나왔다. 네 사람은 어색하게 한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잠시 숟가락이 그릇에 닿는 소리만 잔잔하게 이어졌다.최아현이 먼저 분위기를 바꾸듯 입을 열었다.“야, 내일 주말이잖아. 어렵게 하루 쉬는 건데 약속한 거 잊지 마. 통도사 가는 거. 둘 다 또 핑계 대기만 해 봐.”이 말은 이승우와 온하준을 향한 것이었지만 강지연의 귀에도 또렷하게 박혔다.“통도사?”그녀가 낮게 되물었다.“응.”최아현이 고개를 끄덕였다.“이제 고3이잖아. 너도 같이 가자. 강지연, 너 우리랑 진짜 오래 안 어울렸어.”온하준이 말했었다. 그녀가 1년 동안 자신을 모르는 척했다고.그 1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왜 이 아이들과 멀어졌는지 지금의 강지연은 알 수 없었다.통도사.한때 차유준과 얽힌 기억이 남아 있던 곳.내일 아침 눈을 떴을 때도 여기에 있다면 한 번 가 보고 싶었다.“아침에 전화해 줘.”그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내일도 이곳이라면 함께 가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이 시간의 강지연이 스스로 결정할 일이었다.“좋아. 몸 괜찮으면 무조건 가는 거다.”최아현이 환하게 웃었다.“그런데 너희 통도사 가서 뭐 할 건데?”강지연의 물음에 최아현이 신비스럽게 속삭였다.“이제 고3이잖아. 엄마가 가서 기도라도 하래. 수능 대박 나게 해달라고.”강지연은 무심코 온하준을 바라봤다.온하준도 이런 걸 믿는 걸까.잠시 후 네 사람은 빙수집을 나섰다. 운동회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각자 반으로 돌아가야 했다.최아현은 강지연을 교실까지 데려다주었다.“운동장 너무 더워. 너는 그냥 교실에서 쉬어. 애들 다 오면 그때 내려가.”“응, 고마워.”강지연도 다시 이곳으로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터라 지금은 조용히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83화

    강지연은 눈물을 흘린 채 그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여기 있는 거 맞지? 여기 있는 네가 진짜인 거지? 그렇지?”매달리듯, 확인하듯 묻는 목소리였다.열일곱의 온하준은 그 말에 겹친 의미를 알 수 없었다. 잠시 어리둥절한 얼굴을 하더니 결국 고개를 끄덕였다.“응. 나 여기 있어.”온하준은 눈물로 젖은 강지연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휴지를 꺼내 조심스레 닦아주며 한층 낮아진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나는 계속 여기 있었어. 어디 간 적도 없고. 나를 안 찾은 건 너야.”강지연은 고개를 저었다. 그게 아니었다. 그녀가 찾는 대답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온하준, 나 답을 못 찾겠어.”‘그리고 너도 못 찾겠어...’온하준은 답답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무슨 답? 말해 봐. 같이 찾으면 되잖아. 울기만 하면 해결이 안 돼. 빙수 다 녹겠다. 안 먹으면 내가 먹는다.”그는 잠시 강지연을 살피더니 다시 물었다.“집에 무슨 일 있어? 새로 이사한 집 불편해? 누가 뭐라 해?”그가 말하는 ‘집’을 강지연은 한 박자 늦게 이해했다.‘아, 오빠가 산 집. 여기는 일 년 뒤니까 할머니랑 함께 그 집에 이사한 뒤겠구나.’“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강지연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고 눈물이 손바닥 사이로 흘러내렸다.“네가 없어졌는데 너를 못 찾겠어. 나 돌아가고 싶어. 돌아가서 널 찾고 싶어.”온하준은 그녀의 손목을 잡아 조심스럽게 얼굴에서 떼어냈다.“나 여기 있잖아. 나는 없어진 적 없어. 네가 언제 오든 난 항상 여기 있어.”그의 얼굴을 한참 바라보던 강지연은 목이 막혀 더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자, 한 입 먹어. 좀 나아질 거야.”온하준이 숟가락을 건넸지만 강지연은 좀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그는 주변을 한 번 훑어보았다. 빙수집 안에는 주인아주머니만 있을 뿐이었다.잠시 망설이던 그는 어색한 손길로 빙수를 한 숟갈 떠 조심스레 그녀 앞으로 내밀었다.“처음이자 마지막이야. 빨리 먹어.”차가운 단맛이 입안으로 퍼졌다. 현실이라는 증거처럼 선명한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82화

    온하준은 두 걸음쯤 먼저 걸어 나갔다가 그녀가 따라오지 않는 걸 알고 다시 돌아왔다.“가자고.”그제야 강지연은 그 말이 자신을 향한 것임을 알아차렸다.그녀는 손등으로 눈물을 대충 훔치고 그의 뒤를 따랐다.등 뒤에서는 이미 수군거림이 번지고 있었다.“뭐야, 강지연은 왜 울어?”“몰라.”“강지연이랑 온하준 친했어?”“예전에 같은 반이긴 했지.”“설마 둘이 뭐 있어?”“에이, 평소에 말도 안 하잖아.”더 이어졌을 말은 그녀에게 닿지 않았다.지금 그녀의 시선에는 오직 앞에서 걷고 있는 온하준의 다리만 들어왔다.반바지 아래로 드러난 종아리 근육이 걸음마다 선명하게 움직였고 살아 있는 힘이 실려 있었다.그는 학교 정문 근처 작은 빙수집으로 그녀를 데려가 안쪽 빈 테이블을 가리켰다.“앉아.”강지연은 멍하니 그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너 안 앉으면 나 앉는다?”온하준이 먼저 안쪽 자리에 앉자 강지연은 잠시 망설이다 그의 옆에 앉았다.그는 흘낏 그녀를 보았다. 보통이라면 마주 앉았을 것이다. 그래야 말하기가 편하니까.하지만 눈물로 엉망이 된 얼굴을 보고는 더 묻지 않았다.“아주머니, 시원한 보리차 한 잔 주세요.”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그가 덧붙였다.“빙수 먹을래?”강지연은 아무것도 목으로 넘어갈 것 같지 않았다.“아주머니, 빙수도 하나 주세요.”잠시 후 빙수가 나오자 온하준은 그것을 그녀 앞으로 밀어 놓았다.“이제 좀 말해 줄래? 왜 그렇게 울었는지.”강지연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왜 그러는 건데? 힘든 일 있어?”그는 얼음이 띄워진 보리차를 천천히 흔들며 물었다.하지만 그녀의 마음을 ‘힘들다’는 한 단어로 설명할 수는 없었다.“설마 내가 뭐 잘못한 건 아니지?”온하준은 가볍게 한숨을 내쉬었다.“넌 나를 일 년이나 못 본 척했잖아. 뭘 잘못할 기회도 없었는데 왜 이러는 거야?”‘일 년? 이쪽 시간이 그렇게 흘렀다는 뜻인가?’하지만 지금 몇 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강지연의 시선은 다시 그의 다리로 떨어졌고

  • 다섯 번째 결혼기념일에서   제681화

    ‘온하준.’베르덴에서 숨이 막히도록 울던 감각이 아직 가슴에 남아 있던 강지연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밖으로 뛰쳐나갔다.“강지연, 어디 가!”최아현이 뒤에서 쫓아왔다.“너 더위 먹었다고! 햇볕 쐬면 안 돼!”아무것도 들리지 않았다.귓속에는 단 하나의 문장만 울렸다.“온하준 파이팅!”그리고 온하준이라는 세 글자가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강지연은 운동장까지 단숨에 달려 나갔다. 트랙 위에서는 장거리 달리기 마지막 바퀴가 진행 중이었다.결승선을 향한 최종 구간.각 반 학생은 결승선 근처에 모여 자기 반 선수를 부축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강지연도 숨을 고르지 못한 채 그 틈에 섰다.그리고 선두로 달려오는 온하준을 발견했다.열일곱 살의 온하준.건강한 두 다리로 바람처럼 뛰어오고 있었다.농구부 에이스였고 장거리에서도 밀리지 않는 체력의 소유자.다리가 전부 없어졌다는 말도, 걷기 불편하다는 말도 전부 거짓말처럼 멀쩡하게 힘 있게 달리고 있었다.속도가 붙자 운동장 전체가 들썩였다.“온하준, 파이팅!”방송실 마이크 소리가 다른 모든 응원을 덮었고 그의 이름이 겹겹이 쏟아졌다. 그는 화살처럼 결승선을 향해 달려오며 점점 더 가까워졌다.짧은 머리카락이 바람에 흩날렸고 땀에 젖은 농구 조끼가 몸에 달라붙어 있었다.병실에서 숨이 가늘어지던 얼굴.더 이상 보러 오지 말라고 말하던 온하준.그리고 지금, 눈앞에서 숨차게 달려오는 소년이 겹쳤다.마침내 그가 결승선을 통과했다.강지연의 눈물이 또 터졌다.베르덴에서 다 흘리지 못한 눈물이 여기까지 따라 온 듯했다.말은 나오지 않았다. 그저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다.서른의 강지연이라면 그를 붙잡고 소리 내 울었을 것이다. 전남편이든 무엇이든 상관없이.하지만 지금은 아니었다. 지금의 온하준은 열일곱이었다.전교생이 지켜보는 운동장 한복판.모든 시선이 그에게 쏠린 이 자리에서 그를 보며 울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이상해 보였다.이미 그의 반 친구들이 몰려들어 온하준에게 물을 건네고 옷을 건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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